古稀 (고희)

古稀(고희)

杜甫 詩의 人生七十古來稀에서 나온 말로 일흔 살을 가리킴.

功虧一簣 (공휴일궤)

功虧一簣 (공휴일궤)

功 공 공 | 虧 이지러질 휴 | 一 한 일 | 簣 삼태기 궤 |

쌓는 공도 한 삼태기로 이지러진다는 뜻으로, 거의 성취한 일을 중지(中止)함을 이르는 말


書經(서경) 旅獒篇(여오편)에 나오는 말이다.

周(주)나라 武王(무왕)이 殷(은)나라 紂王(주왕)을 무찌르고 새 왕조를 열었는데 旅(여)라는 오랑캐 나라에서 ‘獒(오)’라는 珍奇(진기)한 개를 선물로 보냈다. 오는 키가 넉 자나 되는 큰 개로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고 또 사람이나 짐승을 잘 덮친다 해서 무왕이 몹시 기뻐하며 소중히 여기자 동생인 召公(소공) 奭(석)은 무왕이 혹시 그런 진기한 물건에 마음이 끌려 정치를 등한히 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이를 일깨워 말하길, “슬프다, 임금 된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시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안 된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이를 조심하지 않으면 마침내 큰 덕을 해치기에 이르게 된다. 예를 들어 흙을 가져다가 산을 만드는데, 이제 조금만 일을 계속하면 아홉 길 높이에 이르게 되었을 때, 이제는 다 되었다 하고 한 삼태기의 흙을 운반하는 데 게을리하게 되면 지금까지의 해 온 일이 모두 허사가 된다[爲山九 , 功虧一簣]”고 했다.

‘아홉 길 산을 쌓는 데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공이 한꺼번에 무너진다’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조금만 더 하면 목적을 이룰 수 있는데 한 삼태기가 부족해서 헛된 일이 되었다는 뜻으로 쓰인다. 九仞功虧一簣(구인공휴일궤)라는 숙어로 굳어져 있다. 주나라 소공이 정사에 힘쓴 일로 인해 甘棠之愛(감당지애)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출전

서경(書經) 旅獒篇(여오편) | 상서(尙書) 주서(周書) 여오(旅獒)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九仞功虧一簣(구인공휴일궤)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曲學阿世 (곡학아세)

曲學阿世(곡학아세)

曲学阿世(qūxué ēshì)。

曲 굽을 곡, 누룩 곡 | 學 배울 학, 가르칠 교, 고지새 할 | 阿 언덕 아, 호칭 옥 | 世 인간 세, 대 세 |

학문(學問)을 굽히어 세상(世上)에 아첨(阿諂)한다는 뜻으로, 정도(正道)를 벗어난 학문(學問)으로 세상(世上) 사람에게 아첨(阿諂)함을 이르는 말


사기 유림열전(儒林列傳)의 이야기.

중국 한나라 황제(皇帝)인 경제(景帝)가 즉위하여 천하(天下)의 선비를 찾다가 산동에 사는 원고생(轅固生)이란 90세의 노 시인을 등용(登用ㆍ登庸)하기로 했다.

중신들은 그의 등용(登用ㆍ登庸)을 반대했으나, 끝내 경제(景帝) 임금은 그를 등용(登用ㆍ登庸)한다. 그는 강직한 성품과 학문으로 왕자의 스승을 지냈으나 병 때문에 물러났다.

무제(武帝)가 즉위하자, 원고생은 9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게 되었는데, 아첨을 일삼는 관리들은 그가 너무 늙었다며 헐뜯었다. 원고생이 조정의 부름을 받았을 때, 같이 등용(登用ㆍ登庸)된 소장 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역시 산동 사람으로 공손홍(公孫弘)이라고 했다. 공손홍은 원고생을 깔보고 무시했으나, 개의치 아니하고 공손홍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다.

"지금은 학문(學問)의 정도(正道)가 어지러워져 속설이 유행하여 전통적 학문(學問)이 결국은 사설로 인하여 본연의 모습이 사라지고 말 것이오. 당신은 학문(學問)을 좋아하고 젊으니 선비로써 올바른 학문(學問)을 세상(世上)에 널리 펼쳐주기 바라오. 자신이 믿는 학설을 굽혀(曲學), 이 세상(世上) 속물들에게 아첨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되오.[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

이 말을 들은 공손홍은 고매한 학식과 인격을 갖춘 원고생에게 지난 잘못을 사죄하고 제자가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이로 인하여 전해지는 말이 바로 곡학아세이다.


출전

사기(史記)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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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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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활용도 ★★★

恭賀新禧 (공하신희)

恭賀新禧(공하신희)

恭 공손할 공 | 賀 하례할 하 | 新 새 신 | 禧 복 희

근하신년(謹賀新年)


유의어

謹賀新年(근하신년) | 恭賀新年(공하신년)


경조사

孤枕短命 (고침단명)

孤枕短命 (고침단명)

베개를 높이 베면 오래 살지 못한다

苦盡甘來 (고진감래)

苦盡甘來 (고진감래)

고생 끝에 낙이 온다

空中樓閣 (공중누각)

空中樓閣 (공중누각)

공중에 뜬 집. 근거가 없는 터무니 없는 말이나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일을 비유로 하는 말.

空前絶後 (공전절후)

空前絶後(공전절후)

비교할 만한 사물이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로도 없을 것임.

孔子穿珠 (공자천주, Kǒngzǐchuānzhū)

孔子穿珠(공자천주)

孔子穿珠(Kǒngzǐchuānzhū)

孔 구멍 공 | 子 아들 자 | 穿 꿸 천 | 珠 구슬 주 |


공자가 구슬을 꿴다는 뜻으로,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말.


이 고사는 송(宋)나라의 목암선경(睦庵善卿)이 편찬한 《조정사원(祖庭事苑)》에 나온다. 공자(孔子)가 진(陳)나라를 지나갈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공자는 전에 어떤 사람에게 진기한 구슬을 얻었는데, 이 구슬의 구멍이 아홉구비나 되었다. 그는 이것을 실로 꿰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성공할 수 없었다. 문득 바느질을 하는 아낙네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꿸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가까이 있던 뽕밭에서 뽕잎을 따고 있던 아낙네에게 그 방법을 물었다. 공자의 이야기를 듣고난 그 아낙은 이렇게 말했다.

"찬찬히 꿀[蜜]을 두고 생각해 보세요." 공자는 그 아낙의 말대로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잠시 후 그녀의 말의 의미를 깨닫고 "그렇지" 하고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는 나무 아래에 왔다갔다 하는 개미를 한 마리 붙잡아 그 허리에 실을 묶고는 개미를 구슬의 한쪽 구멍에 밀어넣고, 반대편 구멍에는 꿀을 발라 놓았다. 그 개미는 꿀 냄새를 맡고 이쪽 구멍에서 저쪽 구멍으로 나왔다. 이리하여 구슬에 실을 꿸 수 있게 되었다.

공자는 배우는 일에 있어서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자의 이와 같은 언행을 두고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고도 한다. 그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라고 하여 세 사람이 어떤 일을 같이 할 때에는 선악간(善惡間)에 반드시 스승으로서 배울 만한 사람이 있는 법이라 하였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不恥下問(불치하문) | 三人行必有我師(삼인행필유아사) |

孤掌難鳴 (고장난명)

孤掌難鳴 (고장난명)

손바닥 하나로는 박수를 칠 수 없다. 혼자 힘으론 일을 해내기가 어렵다

骨肉之親 (골육지친)

骨肉之親(골육지친)

骨 뼈 골 | 肉 고기 육, 둘레 유 | 之 갈 지, -의 지 | 親 친할 친 |

뼈와 살을 같이 나눈 사이로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친족(親族)이란 뜻으로, 부자(父子)와 형제(兄弟) 또는 그와 가까운 혈족(血族)을 지칭하는 말


여씨춘추(呂氏春秋) 정통(精通)편에는 혈연에 관한 글이 실여 있다.

주(周)나라에 신희(申喜)라는 사람은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였다. 어느 날, 걸식(乞食)하는 사람이 문밖에 서서 부르는 노래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마음이 너무 슬퍼서 그것이 얼굴에까지 나타났다. 그래서 문지기에게 그 걸인을 집으로 불러오도록 하여, 그에게 어찌 걸인이 되었는지를 물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보니, 그 걸인은 바로 자신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부모와 자식, 자식과 부모는 본디 한 몸뚱이에서 갈라지고, 동기(同氣)였다가 분리된 것이다. 풀의 꽃과 열매, 나무의 뿌리와 심(芯)처럼, 이 둘은 비록 있는 곳이 다르더라도 서로 통하고, 고통이 있으면 서로 도우고, 근심이 있으면 서로 느끼며, 살아 있을 때는 기뻐하고, 죽으면 서로 슬퍼하는 것이다. 이것이 골육간의 사랑이라는 것이다[此之謂骨肉之親]라고 하였다.


출전

여씨춘추(呂氏春秋)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骨肉(골육) | 血肉(혈육) | 血肉之親(혈육지친) |

骨肉相殘 (골육상잔)

骨肉相殘(골육상잔)

骨肉相残(gǔ ròu xiāng cán)

骨 뼈 골│肉 고기 육, 둘레 유│相 서로 상, 빌 양│殘 잔인할 잔, 남을 잔


부자(父子)나 형제(兄弟) 또는 같은 민족(民族) 간(間)에 서로 싸움


관련어

같은 뜻을 가진 한자어(유의어)

兄弟鬩墻(형제혁장)│煮豆燃萁(자두연기, zhǔdòuránqí)│民族相殘(민족상잔)│同族相爭(동족상쟁)│同族相殘(동족상잔)│骨肉相戰(골육상전)│骨肉相爭(골육상쟁)


정치│전쟁

苦肉計 (고육계, kǔròujì)

苦肉計(고육계)

苦肉计(kǔròujì)

苦 쓸 고 | 肉 고기 육 | 計 셀 계 |


제몸을 상해가면서까지 꾸며내는 방책이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어려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계책을 말하며 고육지계(苦肉知計) 또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이라고도 한다.


스스로를 희생하다. 이는 의심이 많은 상대방의 신용을 사기 위해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는 것을 뜻한다. 三十六計(삼십육계) 敗戰計(패전계) 제34계이다. 역사적으로 거짓투항하기 위하여 스스로 벌을 받거나 하는 식으로 많이 쓰였다. 특히 삼국지연의의 백미인 적벽대전에의 황개의 고육계가 유명하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사람은 스스로를 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상해를 입었다면 이는 가해를 받은 것이다. 이러하므로 거짓을 진실로, 진실을 거짓으로 보여 계략을 성공시킨다.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순수하여야 한다."

人不自害,受害必眞.假眞眞假,間以得行.童蒙之吉,願以巽也.

三國志演義에서 묘사된 황개의 고육계에 대해서 살펴보자. 어디까지나 연의 상의 이야기일 뿐이지,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다.

조조의 군세와 손오의 군세가 적벽에서 대치하고 있을때, 서로 대군이 대치하고 있는 만큼 소규모의 국지전은 빈번했지만 대규모의 정면전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겉으로는 소강상태에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치열한 신경전 및 첩보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소규모의 국지전에서 번번히 패한 조조는 채모(蔡瑁)에게 수군의 훈련을 맡겼고, 오군의 적정을 탐지하고자 주유의 친구였던 장간을 첩자로 보낸다. 주유는 장간이 조조의 첩자로 온 것을 알고는 이를 이용해 채모가 자신들과 내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장간이 돌아가 채모가 내통하고 있었다고 보고해, 조조는 채모를 죽인다. 이는 채모가 수군훈련에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주유가 채모를 제거하기 위해 '反間計(반간계)'를 쓴 것이었다.

조조는 채모를 죽인후 주유에게 놀아난 것을 알고는 크게 분개한다. 그리고는 채모의 아우인 채중과 채화를 거짓항복시켜 오군에 침투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채중(蔡中)·채화(蔡和)는 주유에게 거짓항복하며 아무 죄없이 죽은 형의 복수를 하고 싶다고 했다.이에 주유는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주유는 이들의 항복이 거짓인 줄을 알고 있었다. 채중과 채화는 가족들을 데려오지 않은 것을 보고 이들이 첩자로 온 것을 눈치챈 것이다. 그리고는 이들을 역으로 이용하고자 감녕을 불러서 은밀히 분부한다.

이후 주유의 심복인 황개(黃蓋)가 밤에 주유의 막사를 찾아온다. 그리고는 화공(火攻)을 진언한다. 사실 주유도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진중에는 조조의 첩자 채씨 형제가 있어 노련한 주유가 화공 같은 중요한 작전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먼저 거짓으로 항복하는 이른바 사항계(詐降計)를 생각해냈다. 황개는 자신이 기꺼이 그 역할을 맡고자 했다. 주유가 의심많은 조조를 속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말하자, 황개는 '苦肉計(고육계)'를 진언한다.

작전회의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 이때 황개가 “누가 보아도 조조를 꺾는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나 다름없소. 이럴 바에야 차라리 항복하느니만…….” 하고 말했다. 그 때 주유의 벽력(霹靂) 같은 질책(叱責)이 떨어졌다. 주유는 장수들이 보는 앞에서 황개를 크게 모욕하고 장형에 처한다. 물론 각본이었다. 즉시 황개는 끌려나와 형틀에 묶였다. 곧이어 곤장 소리와 함께 비명(悲鳴)소리가 들려왔다. 백여 대를 맞은 황개의 엉덩이는 허물어졌다. 그 동안 황개는 몇 번이나 까무러쳤다.

황개가 자기 막사에 누워있는데 감택이 찾아와 고육계가 아닌가 얘기를 한다. 이에 황개는 속내를 털어놓고 감택에게 가짜 항서를 조조에게 갖다 달라고 부탁한다.

감택이 가짜 항서를 조조에게 바치자, 조조는 의심하며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감택을 죽이려 하였다. 그때 채중과 채화가 보낸 편지가 도착했다. 그 편지는 황개의 수형에 관한 이야기였고, 이에 조조는 의심을 풀고 황개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감택은 황개에게 소식을 전한후, 채중과 채화의 소식을 알고자 감녕에게로 간다. 감녕과 감택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채중과 채화가 들어왔다. 이에 감녕과 감택은 짐짓 주유에게 불만이 가득차, 吳를 배반할 생각이 있는것처럼 연기했다. 그러자 채중과 채화는 이들에게 모반할 뜻이 있는 것으로 여겨, 자신들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네사람은 의기투합하였다.

채중과 채화는 이 이야기를 조조에게 편지로 보냈다. 감택은 감택대로 황개가 청아기를 꽂고 투항하러 갈 것이라는 편지를 보냈다. 조조는 두 통의 밀서를 받았지만 의혹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다. 이에 모사들과 상의하는데 장간이 지난 번의 실수를 만회하겠다며 나섰다.

장간이 찾아오자 주유는 크게 화를 내며 상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장간을 작은 암자에 감금하고 감시병을 붙혔다. 이에 장간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누군가 병서를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가 방통이며 주유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와 함께 조조에게로 간다.

방통을 맞은 조조는 크게 후대하며 그에게 군략에 관한 조언을 구한다. 이에 방통은 조조군이 수상전에 익숙치 않고, 물도 맞지 않아 크게 고생하고 있음을 간한다. 그러자 조조는 감탄하며 대책을 묻는다. 방통은 배를 쇠사슬로 서로 연결하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면 인마가 육지와 같이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조조는 즉시 좌우에 분부하여 배들을 모두 쇠사슬과 널빤지로 연결하였다.

이는 주유가 방통에게 미리 지시해둔 것으로, 화계를 쓸 때 배들이 연결이 되어 있으면 피해가 커지게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방통이 배를 연결하는 책략을 펼친 것을 '連環計(연환계)'라 한다.

이렇게 화공에 대한 준비는 모두 끝났으나 동남풍이 불지 않는 것을 알고 주유는 크게 앓게 된다. 이에 제갈량이 자신이 동남풍을 부르겠다고 말하여 주유를 일으킨다.

그리고 황개는 인화물질을 실은 배를 조조의 선단에 부딪혀 불을 일으키고, 동남풍이 불어 조조의 선단에 퍼져가는데, 조조의 선단은 연환계로 엮여 있어서 분리하지도 못하고 모두 전소되고 말았다는 것까지가 연의에서 묘사하고 있는 적벽대전의 전모이다.

딱히 고육계에 대한 설명은 더 필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살펴본 '三國志演義' 상의 적벽대전의 전모를 보면 '反間計(반간계)', '苦肉計(고육계)', '連環計(연환계)' 등이 모두 등장하는 희대의 전략전이지만 나관중이 지어낸 허구이다.

진수의 三國志 正史 吳書(오서) 주유전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적벽에서 손유 연합군이 조조 군을 우연히 만났을 때, 주유의 부장 황개는 '적은 큰 세력이고 아군은 힘이 없으니 견디기가 어렵다'고 말하며 화공에 의한 속공을 제안하고는 스스로 실행을 떠맡았다. 그리고 사전에 조조에게 투항하겠다는 거짓 편지를 몰래 보내두었다. 조조군은 황개의 선대가 나타나자 목을 빼고 황개의 모습을 살피며 '황개가 투항해왔다'고 떠들어댔다."

진수의 三國志에 주석을 붙인 배송지도 '강표전'을 인용해 황개가 보낸 편지를 실어두고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황개가 조조에게 투항해 목숨을 바치고자 하는 이유는, 첫째, 조조군이 너무 강해 오나라가 대항해 싸울 수 없고, 둘째로 이러한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 바이며, 셋째로 오나라의 정치는 부패하여 현명하고 어리석음을 분간하기 힘든 형편이기 때문이었다."

황개가 적벽에서의 대치 상태 중에 조조에게 거짓투항한 것은 사실이나, 고육계를 쓰지는 않았다. 모든 사료를 뒤져봐도 주유와 황개가 고육계를 꾸민 흔적도 없으며, 황개가 매를 맞은 이야기도 없고, 황개의 편지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 단지 나관중이 적벽대전을 좀 더 극적으로 보이고자 그려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참조 한자어

동의어

苦肉之策(고육지책) | 苦肉知計(고육지계) | 반간고육계(反間苦肉計) |

高陽酒徒 (고양주도)

高陽酒徒(고양주도)

高 높을 고 | 陽 볕 양 | 酒 술 주 | 徒 무리 도 |

술을 좋아하여 제멋대로 행동(行動)하는 사람을 비유(比喩ㆍ譬喩)


사기(史記) 역생육가(酈生陸賈)열전의 이야기.

진(秦)나라 말기, 유방(劉邦)은 패현(沛縣)에서 군대를 일으켜 진류(陳留)현의 교외에 주둔하였다. 당시 진류현의 고양이라는 시골에는 역이기(酈食其)라는 한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책 읽기를 좋아하였으나, 일정한 생업을 갖지는 못했다.

역이기는 유방의 휘하로 들어가고자 했는데, 유방이 유생(儒生)들을 싫어하여 그들이 찾아오면 관(冠)을 벗겨서 거기에 오줌을 누고 욕을 퍼붓는다는 말을 듣었다. 역이기는 심사숙고한 후 대책을 마련하여 유방을 만나러 갔다. 유방은 유생이 찾아왔다는 말에 크게 노하여 유생 따위는 만날 시간이 없다 라고 하였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역이기는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고양땅의 술꾼이지 유생이 아니오[吾高陽酒徒. 非儒人也]

시위의 보고를 받은 유방은 발을 씻다말고, 맨발로 나가 역이기를 맞았다. 그후 역이기는 유방을 도와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高陽酒徒란 술을 좋아하여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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姑息之計 (고식지계)

姑息之計(고식지계)

일시적으로 변통하는 꾀를 말함. 아랫돌 빼서 웃돌 괴기.


관련 한자어

유의어

因循姑息(인순고식)

孤臣寃淚 (고신원루)

孤臣寃淚(고신원루)

임금의 사랑을 잃은 외로운 신하의 원통한 눈물

谷神不死 (곡신불사)

谷神不死(곡신불사)

계곡은 가뭄에 마르지 않는다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곡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면면약존 용지불근)

계곡의 정신은 마르지 않는다. 이를 여성스러움의 힘이라 한다. 여성스러움의 포용력. 이것을 하늘과 땅의 뿌리라고 한다. 도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왕성한 모양으로 존재하며 아무리 쓰더라도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 도덕경 제6장

高聲放歌 (고성방가)

高聲放歌(고성방가)

高 높을 고 | 聲 소리 성 | 放 놓을 방 | 歌 노래 가 |

큰소리로 떠들고 마구 노래 부름

① sing loudly ② sing boisterously

孔席墨突 (공석묵돌)

孔席墨突(공석묵돌)

孔 구멍 공 | 席 자리 석 | 墨 먹 묵 | 突 갑자기 돌 |

한(漢)나라 반고(班固)의 답빈희(答賓戱)에 나오는 이야기다. 춘추전국시대는 격렬한 전쟁으로 사회가 몹시 불안하였다. 이에따라 각종 사상이 발생하고 자신의 이상과 견해를 전파하고자 각국으로 유세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자(孔子)와 묵자(墨子) 역시 이러한 사람들에 속한다.

공자는 자신의 학문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제자들을 데리고 많은 제후국들에서 유세하였다. 그리고 노(魯)나라 사람인 묵자는 본시 수공업자 출신으로 백성들의 어려운 삶을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겸애(兼愛) 를 주장하며, 힘만 믿고 약자(弱者)에게 고통을 주는 전쟁을 반대하였다. 그는 검소하고 청빈한 생활을 하며 저술에 전념하였다. 그는 묵자(墨子) 이외에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귀중한 연구 결과를 정리하였다.

반고는 공자와 묵자의 이러한 유세 활동을 공자의 자리는 따뜻해 질 틈이 없고, 묵자 집의 굴뚝에는 그을음이 낄 새가 없다[孔席不暖, 墨突不黔]라고 표현하였다. 孔席墨突은 여기저기 몹시 바쁘게 돌아 다님을 비유한 말이다.

孤城落日 (고성낙일)

孤城落日(고성낙일)

멀리 외따로 떨어져 있는 성에 해마저 서산에 기울어 가는 쓸쓸한 심정과 삭막한 풍경을 비유해서 쓰이는 말.


외로움

空城計 (공성계, kōngchéngjì)

空城計(공성계)

空城计(kōngchéngjì)

空 빌 공 | 城 성 성 | 計 꾀 계 |


아군이 열세일 때 방어하지 않는 것처럼 꾸며 적을 혼란에 빠뜨리는 전략.


36계(計) 가운데 敗戰計(패전계) 제32계이다. 빈 성으로 적을 유인해 혼란에 빠뜨리는 계책을 말한다. 아군측에 승산이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공허한 상태를 보여줌으로써 '뭔가 계략을 숨겨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흔히 '없으면서도 있는척' 하여 적의 오판을 유도하는 반면, '없으면서 더욱 없는척' 하여 적으로 하여금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실력이 없으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허장성세(虛張聲勢)와 통한다.

36계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병력이 적을때는 일부러 더욱 적은 것으로 보여, 의심많은 적을 한층 더 의심케 할 수 있다. 병력이 적을 때의 기책으로 효과를 얻는다.[虛者虛之,疑中生疑,剛柔之際,奇而復奇.]"

列國志에도 공성계가 등장한다.

때는 齊(제)에서는 제환공이 치세를 이루고, 晉(진)에서는 진헌공이 다스리고 있을 때였다. 당시 남방의 楚(초)에서는 초문왕이 식나라를 쳐서 식후의 부인을 자신의 부인으로 삼아, 그 사이에서 웅간과 웅운, 두 아들이 있던 때였다. 초문왕은 죽고 큰아들 웅간이 왕위에 올랐으나 웅간은 자신보다 재주와 지혜가 뛰어난 동생 웅운을 경계하여 틈을 보아 죽이려 하고 있었다. 또한 웅운은 웅운대로 자신보다 재주가 뒤처지는 형이 왕위에 있는 것이 불만이어서,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터였다.

그렇게 기회를 노리던 웅운은 사냥터에 나가는 웅간을 습격하여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이가 바로 楚成王(초성왕)이다. 초성왕의 숙부인 자원은 맹랑한 사람이었다. 형인 초문왕이 죽은 후부터 초나라 왕위를 노리고 있었으며, 또한 초문왕이 데려온 형수 문부인(식부인)을 사모하고 있었다. 이에 자원은 문부인의 환심을 사고자 초성왕의 윤허를 받아 鄭(정)나라로 쳐들어갔다.

정나라는 당시 鄭文公(정문공)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즉시 백관을 소집하여 상의했다. 의견은 분분하여 화평론, 주전론, 농성론 등이 계속 오갔다. 이에 숙첨이 말한다.

"세분 말씀이 다 일리가 있으나,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 보건데 초군은 머지않아 물러갈 것입니다."

한참 의논하고 있는데 초군이 이미 코앞까지 당도했다는 파발이 들어왔다.

이에 숙첨은 대담무쌍하게 성문을 활짝 열었다. 백성들은 이전과 다름없이 거리를 왕래하며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에 초군의 선봉인 투어강은 깜짝 놀라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자원을 기다렸다. 보고를 받은 자원이 나아가 살펴보자, 투어강의 보고와는 달리, 성위에는 정기가 정숙하고 무장한 군사들이 숲처럼 늘어서 있었다. 자원이 이를 보고 찬탄한다.

"정나라엔 훌륭한 신하가 세사람 있다더니 그들의 계책은 참으로 측량할 수 없구나. 우선 정나라의 허실부터 탐지한 후에 공격해야겠다."

그러나 다음날, 정나라와 동맹한 제나라에서 구원군이 온다는 첩보가 왔다. 이에 자원은 감히 정성을 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제후가 우리의 돌아갈 길을 끊으면 우리는 앞뒤로 적군 속에 들고 만다. 내 이번에 정나라를 쳐서 정성 대로까지 이르렀은 즉,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는 군사들에게 함매를 물리고 말의 방울들을 모두 떼어버리게 한 후, 조용히 퇴각할 것을 명령했다. 그날 밤, 초군은 소리없이 정성을 떠났다. 그들은 정군의 추격을 당할까 두려워 군막도 걷지 않고 많은 기를 꽂아둔 채로 달아났다.

이렇게 정나라의 숙첨의 공성계에 의해 초군은 계략이 있을까 두려워 공격을 유보하고 있었고, 그 동안 원군이 도착할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 제갈량전(諸葛亮傳)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제갈량이 촉나라 군대를 양평관에 주둔시키고, 대장군 위연(魏延)과 왕평(王平) 등으로 하여금 위(魏)나라 군대를 공격하게 할 때의 일이다. 군대를 모두 다른 곳으로 보냈기 때문에 제갈량이 주둔하고 있는 성에는 병들고 약한 일부의 병사들만 남아 있었다.

이때 위의 대도독 사마의(司馬懿)가 15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성으로 쳐들어 왔다. 이 소식을 들은 제갈량은 군사들로 하여금 성 안의 길목을 지키게 하고, 성문을 활짝 열어둔 채 20여 명의 군사를 백성들로 꾸며 청소를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성 밖에서 눈에 잘 띄는 적루(敵樓)의 난간에 기대앉아 웃음 띤 얼굴로 한가롭게 거문고를 뜯었다.

대군이 몰려와도 아무 일 없는 듯 청소를 하고 있는 백성들과 거문고를 뜯고 있는 제갈량을 본 사마의는 제갈량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몰라 군사를 거두고 물러가 버렸다.

《삼국지연의》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제갈량이 거문고를 뜯어 사마의를 물리쳤다는 탄금주적(彈琴走敵)과 뜻이 같다. 거문고를 울려 적을 쫓아냈다는 뜻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空城計(공성계) | 空城之計(공성지계) |

高山流水 (고산유수)

高山流水(고산유수)

높은 산과 흐르는 물


자연, 산[mountain], 물[water]

山, 水

鼓盆之痛 (고분지통)

鼓盆之痛(고분지통)

분을 두들긴 쓰라림이란 뜻으로 아내가 죽은 슬픔을 말함


관련 한자어

참조어

鼓盆之歎(고분지탄) | 鼓盆之嘆(고분지탄) | 天崩之痛(천붕지통) |

鼓腹擊壤 (고복격양)

鼓腹擊壤(고복격양)

鼓 두드릴 고 | 腹 배 복 | 擊 부딪칠 격 | 壤 흙 양 |

배를 두드리고 땅을 치면서 박자를 맞춰 흥겹게 노래 부른다는 말로 太平聖代(태평성대)라는 뜻.


鼓腹은 부른 배를 두드리다 라는 뜻이다. 壤은 본시 나무로 만든 신발모양의 놀이 도구이며, 30-40걸음 떨어진 곳에서 이것을 서로 맞치는 놀이를 격양(擊壤)이라 했다. 따라서 鼓腹擊壤은 부른 두드리며 양치기 놀이를 하는 것 인데, 이는 곧 太平聖代(태평성대)를 상징한다.

聖天子(성천자)로까지 불리는 堯(요)임금이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 지 50년이 지난 어느 날 微服(미복)을 걸치고 거리에 나섰다. 세상이 정말로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요임금이 큰 거리에 이르렀을 때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놀면서 요임금의 덕을 찬양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처럼 잘 살아가는 것은 모두가 그대의 덕택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임금님의 정하심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요임금은 흐뭇해진 기분에 미소를 짓다가 불현듯 누가 시킨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머리를 스쳤다. 게다가 노인들의 생활이 궁금하여 마을 끝까지 걸어가 보았다. 그러자 저쪽에 한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 노인은 입에 든 음식을 우물거리면서 배를 두드리고(鼓腹) 땅을 쳐(擊壤) 박자를 맞추면서 흥겹게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요임금이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노라
우물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노라
임금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 있단 말인가.

요임금의 눈은 비로소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백성들이 아무런 불안도 없이 정치의 힘따위는 잊어버리고 사는 것, 이야말로 요임금이 목표로 삼은 정치였던 것이다.

[출전]
십팔사략(十八史略)

枯木生花 (고목생화)

枯木生花(고목생화)

마른 아무에 꽃이 핀다는 뜻. 곤궁한 사람이 크게 행운을 얻는다는 말


꽃[flower] | 식물 | 花 | 나무 | 木 | 곤궁 | 행운

公明正大 (공명정대)

公明正大(공명정대)

공변되고, 밝고, 바르고, 큼. 곧, 하는 일이나 태도가 떳떳하고 정당함.

藁網捉虎 (고망착호)

藁網捉虎(고망착호)

새끼를 가지고 호랑이를 잡는다는 말. 어리석은 계책과 보잘 것없는 것으로 뜻밖에 큰 일을 이룸을 뜻함.

孤立無援 (고립무원)

孤立無援(고립무원)

孤 외로울 고 | 立 설 립(입), 자리 위 | 無 없을 무 | 援 도울 원 |

고립(孤立)되어 도움을 받을 데가 없음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四顧無親(사고무친) | 四顧無人(사고무인) | 無援孤立(무원고립) | 孤城落日(고성낙일) | 孤立無依(고립무의) |

孤立無依 (고립무의)

孤立無依(고립무의)

孤立无依(gū lì wú yī)

孤 외로울 고│立 설 립(입)│無 없을 무│依 의지할 의


외롭고 의지(依支)할 데 없음


관련어

같은 뜻을 가진 한자어(유의어)

進退維谷(진퇴유곡)│進退兩難(진퇴양난)│四顧無親(사고무친)│四顧無人(사고무인)│無援孤立(무원고립)│孤城落日(고성낙일)│孤立無援(고립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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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외로움

高麗公事三日 (고려공사삼일)

高麗公事三日 (고려공사삼일)

고려의 정령(精靈)이 사흘 만에 바뀐다는 뜻으로 착수한 일이 자주 바뀜을 비유한 말

膏粱珍味 (고량진미)

膏粱珍味(고량진미)

살찐 고기와 좋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

曲突徙薪 (곡돌사신)

曲突徙薪(곡돌사신)

曲 굽을 곡 | 突 굴뚝 돌 | 徙 옮길 사 | 薪 땔나무 신 |

준비를 철저히 하여 화근을 미연에 방지함.

한서(漢書) 곽광(藿光)전의 이야기. 한나라 선제(宣帝) 때, 황후의 부친인 곽씨 일가가 모반을 꾀하였다. 선제는 곽씨 일가를 멸하고, 그들을 진압한 사람들에게 큰 상을 내렸다. 그러나 그들을 미리 제거하라고 간언하였던 서복(徐福)이라는 사람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였다. 이에 한 신하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선제에게 불공평함을 간언하였다.

옛날, 한 나그네가 어느 집을 찾아 왔다가, 그 집의 굴뚝이 똑바로 서있어서 불꽃이 위로 곧장 치솟는 것과 아궁이 옆에는 땔감이 쌓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그네는 주인에게 굴뚝을 꼬불꼬불하게 만들고, 땔감은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이 집에 정말 불이 났습니다만, 이웃 사람들의 도움으로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주인은 술자리를 마련하여 이웃 사람들을 초대하였는데, 주인에게 충고했던 그 나그네는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누군가가 집주인에게 '그 나그네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술자리도 필요없을 것이며, 불도 나지 않았을 것이요. 그 나그네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하였답니다.

高臺廣室 (고대광실)

高臺廣室(고대광실)

높은 대에 있는 넓은 집. 매우 큰 집.

古今獨步 (고금독보)

古今獨步(고금독보)

예나 현재를 통하여 그와 견줄 만한 사람이 없음

孤軍奮鬪 (고군분투)

孤軍奮鬪(고군분투)

수가 적고 도움이 없는 약한 군대가 강한 적과 용감하게 싸움. 적은 인원과 약한 힘으로, 남의 도움도 없이 힘에 겨운 일을 악착스럽게 함

股肱之臣 (고굉지신)

股肱之臣(고굉지신)

팔다리와 같이 믿는 보필의 신하. 임금이 가장 믿고 중히 여기는 신하

曲高和寡 (곡고화과, qǔgāohèguǎ)

曲高和寡(곡고화과)

曲高和寡(qǔgāohèguǎ)

曲 굽을 곡 | 高 높을 고 | 和 화할 화 | 寡 적을 과 |


곡이 높으면 화답하는 사람이 적다는 뜻으로, 사람의 재능이 너무 높으면 따르는 무리들이 적어진다는 말


춘추전국시대 말엽 초(楚)나라의 정치가 굴원(屈原)과 더불어 대표적인 문인으로 손꼽히던 송옥(宋玉:굴원의 제자)은 문장가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의 문장은 난해하여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그의 글을 칭찬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때문에 초왕(楚王)은 송옥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대체 어찌하여 경(卿)의 문장을 따르는 사람이 없는 것이오?” 송옥은 초왕의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가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길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아주 쉬운 통속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위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여 따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조금 수준이 있는 노래를 부르자 그를 따라 노래 부르는 사람이 훨씬 적어졌습니다.

다시 더 어려운 노래를 부르자, 불과 10여 명만이 따라 불렀습니다. 나중에 아주 어려운 노래를 부르자 두세 명만이 따라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봉황(鳳凰)은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구름 위를 나는데, 동네 울타리를 날아다니는 참새가 어찌 하늘의 높음을 알겠으며, 곤(鯤)이라는 큰 물고기를 어항 속에 사는 작은 물고기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는 새 가운데만 봉황이 있고, 물고기 중에만 곤이 있는 것이 아니고 선비 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지 않겠습니까?”

곤은 《장자(莊子)》 〈소요유편(逍遙遊篇)〉에 나오는 상상의 큰 물고기로, '북양에 물고기가 사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몇천 리가 되는 지 알 수가 없다[北溟有魚 其名爲鯤 鯤之大 不之幾千里]'라 했다.


관련 한자어

鳳凰 관련 고사성어

朝陽鳳凰(조양봉황) 화제(畵題)로서 아침 해에 봉황(鳳凰)을 그린 것

鷄棲鳳凰食(계서봉황식) 닭집에서 봉황(鳳凰)이 함께 살면서 모이를 먹는다는 뜻으로, 충신(忠臣)이 천(賤)한 죄인(罪人)들과 함께 하는 삶을 비유(比喩)해 이르는 말

蝶粉蜂黃(접분봉황) 나비 날개의 흰 가루와 벌이 누른 빛이란 뜻으로, ①나비가 교미(交尾)하면 그 가루를 잃고, 벌이 교미하면 그 누른빛이 스러진다는 말 ②당(唐)나라 궁인(宮人)이 하던 단장(丹粧)의 이름

鳳鳴朝陽(봉명조양) '봉황(鳳凰)이 산의 동쪽에서 운다'는 뜻으로, 천하(天下)가 태평(太平)할 조짐(兆朕), 뛰어난 행위(行爲)를 칭찬(稱讚)하는 말

兩鳳齊飛(양봉제비) 두 마리의 봉황(鳳凰)이 나란히 날아간다는 뜻으로, 형제(兄弟)가 함께 영달함의 비유(比喩)

臥龍鳳雛(와룡봉추) 누운 용과 봉황(鳳凰)의 새끼라는 뜻으로, 누운 용은 풍운을 만나 하늘로 올라 가는 힘을 가지고 있고, 봉황(鳳凰)의 새끼는 장차 자라서 반드시 봉황(鳳凰)이 되므로, 때를 기다리는 호걸(豪傑)을 비유

騰蛟起鳳(등교기봉) 뛰어오르는 도롱뇽과 날아오르는 봉황(鳳凰)이라는 뜻으로, 재능(才能)이 많은 사람의 비유(比喩)

伏龍鳳雛(복룡봉추) 엎드린 용과 봉황(鳳凰)의 새끼라는 뜻으로, 엎드려 있는 용이란 제갈공명(諸葛孔明)을 가리키고, 봉왕의 새끼란 방사원(龐士元)을 이름인 데, 아직 세상(世上)에 알려지지 않은 특출(特出)한 인물(人物)을 비유

鳳麟芝蘭(봉린지란) 봉황(鳳凰), 기린(麒麟)과 같이 잘난 남자(男子)와 지초(芝草), 난초(蘭草)와 같이 예쁜 여자(女子)라는 뜻으로, 젊은 남녀(男女)의 아름다움을 형용(形容)하는 말

鳳鳥不至(봉조부지) 봉황(鳳凰)이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뜻으로, 세상(世上)에 聖君(성군)이 나타나지 않음을 한탄(恨歎)하는 말

龍瞳鳳頸(용동봉경) 용의 눈동자와 봉황(鳳凰)의 목이라는 뜻으로, 매우 잘 생긴 귀인(貴人)의 얼굴을 형용(形容)해 이르는 말

呱呱之聲 (고고지성)

呱呱之聲(고고지성)

아이가 처음 나면서 우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