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臥薪嘗膽 (와신상담)

臥薪嘗膽(와신상담)

장작더미 위에서 잠을 자고 쓸개를 핥으며 보복을 다짐한다는 말로 마음 먹은 일을 이루기 위해 온갖 괴로움을 무릅쓴다는 뜻.

羊頭狗肉 (양두구육)

羊頭狗肉(양두구육)

羊頭狗肉[yángtóugǒuròu]

羊 양 양 | 頭 머리 두 | 狗 개 구 | 肉 고기 육, 둘레 유 |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懸羊頭賣狗肉(현양두매구육)”의 줄임말. ①겉은 훌륭해 보이나 속은 그렇지 못한 것②겉과 속이 서로 다름③말과 행동(行動)이 일치(一致)하지 않음

crying out wine and selling vinegar, using a better name to sell inferior goods, all outside show, making an extravagant advertisement


안자춘추(晏子春秋) 내편(內篇)의 이야기.

춘추(春秋)시대 제(齊)나라 靈公(영공)은 좀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다름아니라 예쁜 여자에게 남자 옷을 입혀놓고 觀賞(관상)하는 일인데 궁중에 있는 미인들을 붙잡아 男裝(남장)을 시키곤 좋아했다. 이같은 작태는 궁중에만 머물지 않고 민간에까지 퍼져 제나라 거리 거리에는 남장한 미녀들로 넘쳐났다. 이에 놀란 영공이 궁중밖에서는 여자가 남장을 못하도록 엄한 禁令(금령)을 내렸다. 그러나 자신은 여전히 남장여인을 보며 즐겼으니 금령은 있으나 마나였다. 그런데도 영공은 금령이 지켜지지 않는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답답해진 영공은 그 이유를 재상인 晏子(안자)에게 물어보았다. 안자의 대답은 이러했다.

"전하께서는 궁중에서만 여자에게 남장을 하게 허락하시면서 백성들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양의 머리를 문에다 내걸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猶懸牛首于門而賣馬肉于內也] 전하께서는 어째서 궁중에서만 남장하는 것을 금하지 않습니까. 궁중에서도 금한다면 밖에서 남장하는 여자는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영공은 안자의 말을 듣고 궁중에서도 남장을 못하도록 했다.그러자 한 달이 못되어 제나라 전국에서 남장하는 여자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본시 소머리와 말고기였던 것이 후에는 양머리(羊頭)와 개고기(狗肉)로 바뀌었다.


출전

안자춘추(晏子春秋) 내편(內篇) | 항언록(恒言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羊頭狗肉(양두구육) | 懸羊頭賣狗肉(현양두매구육) | 懸羊頭賣馬脯(현양두매마포) | 현우수매마육(懸牛首賣馬肉) |

表裏不同(표리부동) | 羊質虎皮(양질호피) | 笑中有劍(소중유검) | 笑面虎(소면호) | 笑裏藏刀(소리장도) | 似而非者(사이비자) | 似而非(사이비) | 似是而非(사시이비) | 面從腹背(면종복배) | 同床異夢(동상이몽) | 同床各夢(동상각몽) | 口有蜜腹有劒(구유밀복유검) | 口蜜腹劍(구밀복검)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Cry up wine and sell vinegar
포도주 대신 식초 팔기


중요도 ★

三夫二君一子 (삼부이군일자, sānfūèrjūnyìzǐ)

三夫二君一子(삼부이군일자)

三夫二君一子(sānfū èrjūn yìzǐ)


三 석 삼 | 夫 지아비 부 | 二 두 이 | 君 임금 군 | 一 하나 일 | 子 아들 자 |


세 명의 남편과 두 명의 임금과 한 명의 아들


경국지색에 빼놓을 수 없는 여인이 또 있다. 바로 하희(夏姬)이다. 하희는 춘추시대 정나라 목공의 딸로 진(陳)나라 대부 하어숙의 미망인이었다. 그녀는 자그마치 세 명의 남편과 두 명의 임금과 한 명의 아들 (三夫二君一子 삼부이군일자)을 죽게 만들었으며 한 나라와 두 명의 대신을 멸망시킨 희대의 요부였다.

그녀는 결혼하기 전에도 자기의 친오빠인 정나라 영공과 정을 통했고 또 재상 자공과도 통정하였다. 이 불륜의 삼각관계가 불씨가 되어 마침내 영공은 자공에게 죽음을 당했다. 하희가 진(陳)나라에 시집온 후 아들 하나를 낳고 남편 하어숙은 그만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러나 '하희는 세 번씩이나 젊어졌다.'는 말이 후세에 전해질 정도로 하희의 미색은 뛰어났을 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그녀의 요염미는 더해졌던 것이었다.

우선 하희는 정나라의 왕이었던 영공과 눈이 맞아 남몰래 정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영공뿐 아니라 공령, 의행보라는 두 사람의 대부도 각기 하희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세 사람은 하희의 속옷을 얻어 그것을 조정의 회의 석상에 까지 입고 나와 서로 자랑할 정도였다.

어느날 영공은 하희의 아들이며 대부인 징서를 앞에 놓고 두 사람의 대부를 비아냥댔다.

"징서의 얼굴이 아무래도 자네들을 닮았네 그려."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왕님을 쏙 빼어 닮았습니다."

그리고는 세 사람은 키득거렸다.

징서는 매우 불쾌해 졌다. 그래서 그는 큰 활을 들고 마굿간 문 옆에 숨어 기다리다가 영공이 돌아갈 때 쏘아 죽이고 말았다. 공령과 의행보는 그대로 초나라로 도망쳤고 영공의 태자도 진(晋)나라로 피했다. 그리하여 징서는 스스로 왕임을 자처하게 되었다.

이듬해 초나라 장왕은 영공 암살의 죄상을 들어 군사를 일으켜 징서를 토벌하고 주살하였으며 정나라를 초나라에 복속시켰다. 이때 장왕은 하희와 환락의 하룻밤을 보낸 후 그녀를 소실로 삼고자 했으나 대부 무신이 말렸다.

"하희는 상서롭지 못한 여인입니다. 그녀가 정나라에 있을 때 오빠인 영공과 그리고 재상 자공과 동시에 정을 통해 마침내 영공이 비명횡사 했습니다. 그리고 시집와서도 남편을 요절하게 만들었고 또한 세 사람과 정을 통해 그로 말미암아 나라까지 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천하에 미인이 도처에 깔려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이 음란하고 상서롭지 못한 여자를 취하려 하십니까?"

그러자 왕이 단념하였다.

이번에는 장군 자반이 그녀를 달라고 했지만 무신이 역시 제지시켰다. 그후 연윤(連尹) 벼슬에 있던 양로가 하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양로 역시 전쟁에 나가 죽었고 그 아들 흑요가 그녀를 범하여 데리고 살게 되었다. 이때 평소에 하희를 탐내왔던 무신이 꾀를 내어 결국 하희를 데리고 진(晋)나라로 도망쳐 같이 살았다. 그러자 장군 자반이 크게 화를 내어 흑요를 죽이고 무신의 가족들을 몰살시켜 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무신은 복수를 결심하고 스스로 오나라로 가서 강력한 군대를 길러 틈만 있으면 초나라를 침략하였다. 드디어 오나라는 진(晋)나라와 힘을 합해 초나라를 공격, 대승을 거두게 되었는데 초나라 왕은 한쪽 눈을 실명하였고 홧김에 장군 자반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 모두가 하희라는 한 요부로부터 비롯된 일이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傾國之色(경국지색) |

老馬之智 (로마지지, lǎomǎzhīzhì)

老馬之智(노마지지)

老马之智(lǎomǎzhīzhì)

老 늙을 노(로) | 馬 말 마 | 之 갈 지 | 智 슬기 지,지혜 지 |


늙은 말의 지혜(智慧)라는 뜻으로, ①연륜이 깊으면 나름의 장점(長點)과 특기가 있음 ②저마다 한가지 재주는 지녔다는 말

☞ 노마지지

老馬之智 (노마지지, lǎomǎzhīzhì)

老馬之智(노마지지)

老马之智(lǎomǎzhīzhì)

老 늙을 노(로) | 馬 말 마 | 之 갈 지 | 智 슬기 지,지혜 지 |

늙은 말의 지혜(智慧)라는 뜻으로, ①연륜이 깊으면 나름의 장점(長點)과 특기가 있음 ②저마다 한가지 재주는 지녔다는 말

An old dog for a hard road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저마다 장기(長技)나 장점을 지니고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한비자(韓非子)》설림(說林) 상편에 있는 이야기이다.

춘추시대 오패(五覇)의 한 사람이었던 제(齊)나라 환공(桓公) 때의 일이다. 어느 해 봄, 환공은 명재상 관중(管仲)과 대부(大夫) 습붕(隰朋)을 대동하고 고죽국(孤竹國:하북성(河北城)내)을 정벌하였다. 그런데 전쟁이 의외로 길어지는 바람에 그해 겨울에야 끝이 났다. 그래서 혹한 속에 지름길을 찾아 귀국하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전군(全軍)이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져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말하였다.

“이런 때 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하다[老馬之智可用也(노마지지가용야)].”

즉시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 놓았다. 그리고 전군이 그 뒤를 따라 행군한 지 얼마 안되어 큰길이 나타났다[乃放老馬而隨之 遂得道行(내방노마이수지 수득도행)].

또 한번은 산길을 행군하다가 식수가 떨어져 전군이 갈증에 시달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습붕이 말하였다.

“개미란 원래 여름엔 산 북쪽에 집을 짓지만 겨울엔 산 남쪽 양지 바른 곳에 집을 짓고 산다. 흙이 한 치[一寸]쯤 쌓인 개미집이 있으면 그 땅속 여덟 자[一仞≒8자≒2.4m]쯤 되는 곳에 물이 있는 법이다.”

군사들이 산을 뒤져 개미집을 찾은 다음 그곳을 파 내려가자 과연 샘물이 솟아났다.

이 이야기에 이어 한비는 그의 저서《한비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관중의 총명과 습붕의 지혜로도 모르는 것은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으로 삼아 배웠다. 그러나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어리석음에도 성현의 지혜를 스승으로 삼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 아닌가.”

노마지지란 여기서 나온 말인데, 노마식도(老馬識道)·노마지도(老馬知道)라고도 하며, 요즈음에도 ‘경험을 쌓은 사람이 갖춘 지혜’란 뜻으로 사용된다.

[유래]
韓非子(한비자) : 說林上(설림상) |


참조 한자어

동의어

老馬知途(노마지도) | 老馬識途(노마식도) : 老马识途(lǎomǎshítú) | 识途老马(shítúlǎomǎ) |

南橘北枳 (남귤북지)

南橘北枳(남귤북지)

淮水(회수)의 남쪽인 淮南(회남)의 귤나무를 회수의 북쪽인 淮北(회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로 변해버린다는 말로 처지가 달라짐에 따라 사람의 기질도 변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춘추시대 齊(제)나라에 안영이란 유명한 재상이 있었다. 어느해 안영이 사신으로 楚(초)나라에 가게 되었다.평소 안영이 비상한 인물이라는 소문을 듣고 있던 초나라 靈王(영왕)은 이 기회에 그를 시험해 볼 욕심이 생겼다.그런데 안영은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외모는 볼품이 없고 키도 아주 작았다.

영왕이 안영에게 물었다. “제나라에는 인재가 별로 없는 모양이지요. 당신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는 걸 보면.” 안영의 보잘 것 없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비웃는 말이었다.

그러나 안영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우리 제나라는 한가지 원칙을 세워두고 있죠.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보내는 것이지요. 저는 작은 사람중에서도 가장 작기 때문에 이렇게 초나라에 오게 된 겁니다.”

영왕이 한방 얻어맞은 꼴이 되었는데 마침 그때 捕吏(포리)가 죄수를 끌고 지나갔다. 왕이 물었다. “그 죄수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 제나라 사람인데 절도 죄인 입니다.”

포리의 대답을 듣고 초왕이 안영에게 물었다.“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 합니까.” “회남쪽의 귤을 회북땅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어버립니다(南橘北枳 남귤북지). 제나라 사람은 도둑질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라는데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한 것을 보면 초나라 풍토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연거푸 두방을 얻어맞은 영왕은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橘化爲枳 (귤화위지, júhuàwéizhǐ)

橘化爲枳(귤화위지)

橘化为枳(júhuàwéizhǐ)

橘 귤 귤 | 化 될 화,잘못 와 | 爲 하 위,할 위 | 枳 탱자 지,탱자 기 |


강남(江南)의 귤을 강북(江北)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사람도 환경(環境)에 따라 기질(氣質)이 변한다는 말


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강남에 심은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로 되듯이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비유한 고사이다.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안영(晏嬰:晏子는 경칭)은 중국 역사상 드물게 보는 명 재상(宰相)이다. 세 명의 왕(靈公·莊公·景公) 밑에서 재상을 지냈지만 절검(節儉)과 역행(力行)으로 일관하였다. 그는 재상이 된 뒤에도 밥상에는 고기 반찬을 올리지 않았고 아내에게는 비단옷을 입히지 않았고, 조정에 들어가면 임금께서 묻는 말에 대답하되 묻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았으며, 스스로의 품행을 조심하였다. 또한 유창(流暢)한 달변(達辯)과 임기응변(臨機應變)으로도 유명하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해, 초(楚)나라의 영왕(靈王)이 그를 초청하였다. 초(楚)나라 영왕은 인사말을 끝내기가 바쁘게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소? 하필 경(卿)과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낸 이유가 뭐요?" 안영의 키가 작은 것을 비웃는 말이었다. 초나라 왕은 당시 제나라를 우습게 보았기 때문에 이런 심한 농담을 함부로 해댔다. 안영은 서슴지 않고 태연히 대답하였다. "그 까닭은 이러하옵니다. 우리 나라에선 사신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에 맞게 사람을 골라서 보내는 관례가 있습니다. 즉,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보내고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보내는데, 신(臣)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초나라로 오게 된 것이옵니다."

안영의 능수능란(能手能爛)한 말솜씨에 기세가 꺾인 영왕은 은근히 부아가 끓어올랐는데, 마침 그 앞으로 포리(捕吏)가 제나라 사람인 죄인을 끌고 가자 영왕은 안영에게 들으라고 큰소리로 죄인의 죄명을 밝힌 다음, "제나라 사람은 도둑질을 잘하는군."

안영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가 듣기로는 귤이 회남(淮南)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淮北)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고 들었습니다[嬰聞之 橘生淮南則爲橘 生于淮北爲枳(영문지 귤생회남즉위귤 생우회북위지)]. 잎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과실의 맛은 다릅니다[葉徒相似 其實味不同(엽도상사 기실미부동)]. 그러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물과 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所以然者何 水土異也(소이연자하 수토이야)]. 지금 백성들 중 제나라에서 나고 성장한 자는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나라로 들어오면 도둑질을 합니다. 초나라의 물과 땅이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잘하게 하는 것입니다."

왕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성인(聖人)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고 하오. 과인(寡人)이 오히려 부끄럽군요." 제나라 출신의 죄수를 안영에게 보여 줌으로써 안영의 명성을 눌러 보려던 초왕의 계획은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참조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南橘北枳(남귤북지) | 江南橘化爲枳(강남귤화위지) |


晏子春秋(안자춘추) : 卷六 內篇雜下第六 |

干將莫耶 (간장막야)

干將莫耶(간장막야)

干将莫耶(Gān Jiàng Mò Yé)

干 방패 간 | 將 장수 장 | 莫 없을 막 | 耶 어조사 야 |


중국 춘추(春秋)시대 간장이 만든 두 자루의 명검(名劍).


간장은 오(吳)나라 도장(刀匠)의 이름이고 막야는 그의 아내인데, 임금 합려(闔閭, 闔廬, 재위 BC 515~BC 496)의 청으로 간장이 칼을 만들 때 막야는 그녀의 머리털과 손톱을 쇠와 함께 가마에 넣고 달구어서 명검 두 자루를 만들었다. 음양법(陰陽法)에 의하여 양으로 된 칼을 간장, 음으로 된 칼을 막야라고 이름지었는데, 이것이 전의(轉義)되어 명검을 일컫게 되었다.


참조

干将(gànjiàng) 1.수완가. 민완가(敏腕家). 인재.

干将(gānjiàng) 1.간장. 중국 춘추 시대 전설 속의 보검(寶劍). 주조한 사람의 이름이 '干将'인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주로 '莫邪(mòyé)'와 함께 쓰임. 2.보검. 명검.


검 | 도검 | 춘추시대 | 합려(闔閭) |

假途滅虢 (가도멸괵)

假途滅虢(가도멸괵)

假途灭虢(jiǎtúmièGuó)

假 빌릴 가,거짓 가,멀 하,이를 격 | 途 길 도 | 滅 멸망할 멸 | 虢 나라 이름 괵,범 발톱 자국 괵 |


길을 빌려 괵나라를 멸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


괵나라는 중국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아우인 괵중이 세운 제후국(諸侯國)인데, 진(晉)나라의 침입으로 괵나라가 멸망함으로써 생겨난 이야기로 《천자문(千字文)》에 실려 있는 성어(成語)이다.

중국 춘추시대 이웃나라인 우(虞)나라와 괵나라는 진나라와 경계가 서로 맞닿아 있었다. 진나라의 헌공(獻公)이 괵나라로 쳐들어가려고 순식(荀息)에게 그 의견을 묻자, 순식은 '괵나라로 가려면 우나라를 통과해야 하므로 우나라 왕에게 옥과 말을 보내 길을 빌려달라고 해야 한다'고 하였다. 순식의 계략에 따라 헌공은 우나라로 옥과 말을 보냈는데, 욕심 많은 우나라 왕은 재상인 궁지기(宮之寄)와 논의하였다.

궁지기는 왕에게 '진나라는 괵나라를 멸망시킨 뒤 우나라도 쳐들어올 것이므로 길을 빌려주면 안 될 뿐만 아니라 우나라와 괵나라는 이와 입술 같은 사이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듯이[脣亡齒寒] 괵나라가 무너지면 우나라도 위험하다'고 간언하였다. 우나라와 괵나라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였으나, 우나라 왕은 눈앞의 이익 때문에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고 진나라에게 길을 내어주었다.

일찍부터 괵나라와 우나라를 정복하려는 야심을 가졌던 진나라가 우나라에게 길을 빌려달라는 핑계로 괵나라를 무너뜨린 뒤 우나라까지 쳐들어가 멸망시켰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군사계획의 의도를 숨기기 위한 구체적 수단으로 쓰이는 계책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假途伐虢(가도벌괵) |

참조어

脣亡齒寒(순망치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