巧言令色 (교언영색)

巧言令色 (교언영색)

巧 공교할 교 | 言 말씀 언 | 令 착할 령 | 色 빛 색 |

남에게 아첨하려고 듣기 좋게 꾸미는 말과 얼굴빛


상서(尙書) 경명(景命)편에는 주(周)나라 목왕(穆王)이 백경(伯京)을 태복(太僕)으로 임명하며 훈계하였던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대의 아래 사람들을 신중히 고르되, 교묘한 말을 하는 자, 좋은 듯 꾸민 얼굴을 하는 자, 남의 눈치만 보는 자, 아첨하는 자는 쓰지 말고, 오직 올바른 사람만을 쓰도록 하시오[無以巧言令色便 側媚, 其惟吉士].

巧言令色에다 鮮矣仁(선의인)을 붙여 巧言令色 鮮矣仁이라고 하면 교묘한 말솜씨에 꾸민 얼굴을 하고 있는 자 중에는 어진 사람이 적다는 뜻으로 孔子(공자)의 가르침이 된다. 여기서 鮮은 적다는 의미.

논어의 제일 앞대목 學而(학이)편에 교묘한 말과 꾸민 얼굴에는 인이 적다[巧言令色鮮矣仁(교언영색선의인)]이라는 말이 있으며, 공야장(公冶長)편, 양화(陽貨)편 등에도 巧言令色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교묘하게 꾸며대는 말솜씨와 꾸민 얼굴빛으로 잘난 척 착한 척 하는 행동에서 무슨 성실성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은 성실성의 빈곤을 스스로 광고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공자는 巧言令色 鮮矣仁의 對句(대구)가 됨직한 剛毅朴訥 近仁(강의박눌 근인)이란 글귀도 남기고 있다. 의지가 굳세고 의연하고 질박하고 말이 매끄럽지 못한 사람이 어진 사람에 가깝다는 뜻. 논어 子路(자로)편에 나오는 말이다.그러니까 도시의 때가 묻지 않은 村夫(촌부)같은 사람, 私慾(사욕)에 집착하지 않고 꾸밈이 없는 사람, 말은 서툴러도 진정이 담긴 말을 하는 사람을 공자는 진짜 인간으로 보았던 것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巧言令色 (교언영색) |

矯角殺牛 (교각살우)

矯角殺牛 (교각살우)

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인다. 작은 일에 힘쓰다가 큰 일을 망친다

寬弘磊落 (관홍뇌락)

寬弘磊落(관홍뇌락)

마음이 너그럽고 활달하여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아니함.

光風霽月 (광풍제월)

光風霽月(광풍제월)

군자의 인품이나 치세(治世)를 맑은 날 바람과 비 갠 후의 달빛에 비유

새 정부에 대한 국민의 바람을 담아 교수신문에서 선정한 2008년 희망의 사자성어


2008년 | 희망의 사자성어 | 교수신문

管鮑之交 (관포지교)

管鮑之交(관포지교)

管鲍之交(guǎnbàozhījiāo)

管 대롱 관,주관할 관 | 鮑 절인 물고기 포 | 之 갈 지 | 交 사귈 교 |


옛날 중국(中國)의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처럼 친구(親舊) 사이가 다정(多情)함을 이르는 말, 친구(親舊) 사이의 매우 다정(多情)하고 허물없는 교제(交際)


《사기(史記)》 〈관안열전(管晏列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관중과 포숙은 죽마고우로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어려서부터 포숙아는 관중의 범상치 않은 재능을 간파하고 있었으며, 관중은 포숙아를 이해하고 불평 한마디 없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벼슬길에 올라 관중은 공자(公子) 규(糾)를 섬기게 되고 포숙아는 규의 아우 소백(小白)을 섬기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두 공자는 왕위를 둘러싸고 격렬히 대립하게 되어 관중과 포숙아는 본의 아니게 적이 되었다. 이 싸움에서 소백이 승리했다. 그는 제나라의 새 군주가 되어 환공(桓公)이라 일컫고, 형 규를 죽이고 그 측근이었던 관중도 죽이려 했다. 그때 포숙아가 환공에게 진언했다. "관중의 재능은 신보다 몇 갑절 낫습니다. 제나라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으로도 충분합니다만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신다면 관중을 기용하셔야 하옵니다." 환공은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대부(大夫)로 중용하고 정사(政事)를 맡겼다.

재상(宰相)이 된 관중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마음껏 수완을 발휘해 환공으로 하여금 춘추(春秋)의 패자(覇者)로 군림하게 했다. 성공한 후 관중은 포숙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내가 젊고 가난했을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하면서 언제나 그보다 더 많은 이득을 취했다. 그러나 포숙은 나에게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몇 번씩 벼슬에 나갔으나 그때마다 쫓겨났다. 그래도 그는 나를 무능하다고 흉보지 않았다. 내게 아직 운이 안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싸움터에서 도망쳐 온 적도 있으나 그는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공자 규가 후계자 싸움에서 패하여 동료 소홀(召忽)은 싸움에서 죽고 나는 묶이는 치욕을 당했지만 그는 나를 염치없다고 비웃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에 부끄러워하기 보다 공명을 천하에 알리지 못함을 부끄러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진정으로 알아준 사람을 포숙아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

[유래]
史記(사기) : 管晏列傳(관안열전) |


참조 한자어

유의어

知音人(지음인) | 知音(지음) | 芝蘭之交(지란지교) | 知己之友(지기지우) | 知己(지기) | 猶魚有水(유어유수) | 魚水親(어수친) | 魚水之親(어수지친) | 魚水之交(어수지교) | 心友(심우) | 水魚之親(수어지친) | 水魚之交(수어지교) |
水魚(수어) | 伯牙絶絃(백아절현) | 刎頸之友(문경지우) | 刎頸之交(문경지교) | 莫逆之友(막역지우) | 淡水之交(담수지교) | 淡交(담교) | 斷金之交(단금지교) | 斷金之契(단금지계) | 金石之交(금석지교) | 金石之契(금석지계) | 金蘭之誼(금란지의) | 金蘭之交(금란지교) | 金蘭之契(금란지계) | 金蘭交(금란교) | 金蘭契(금란계) | 膠漆之心(교칠지심) | 膠漆之交(교칠지교) | 高山流水(고산유수) |

반의어

市道之交(시도지교) |


관련 인물

管仲(관중)


史記(사기):管晏列傳(관안열전) |

果珍李奈 (과진리내)

果珍李奈(과진리내)

果 과실 과 | 珍 보배 진 | 李 | 오얏 리(이) | 柰 능금나무 내 |

과실(果實) 중(中)에 오얏과 능금이 진미(珍味)임

[출전]
千字文(천자문)

瓜田李下 (과전이하)

瓜田李下(과전이하)

오이밭과 오얏나무 밑이라는 뜻으로,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와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을 준말.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으로 불필요한 행동을 하여 다른 사람에게 오해를 받지 말라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李下(이하) | 瓜田李下(과전이하) | 瓜田不納履(과전불납리) |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오이 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않는다.
¶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마라.

瓜田不納履李下不整冠 (과전불납리이하부정관)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

오이 밭에서는 신이 벗겨져도 다시 신지 아니하며 자두나무 밑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않는다. 남에게 의심받을 일은 하지 마라.


출전

군자행(君子行) |

군자방미연 불처혐의간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君子防未然 不處嫌疑間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瓜李(과리) | 瓜李之嫌(과리지혐) | 瓜田不納履(과전불납리) |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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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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瓜田不納履 (과전불납리)

瓜田不納履(과전불납리)

瓜田不纳履(guātián bù nà lǚ)。

瓜 오이 과 | 田 밭 전 | 不 아닐 불, 아닐 부 | 納 들일 납 | 履 밟을 리(이), 신 리(이) |

외밭에 신을 들여 놓지 않음. 곧 남에게 의심을 살 일은 아예 하지 않음의 비유.


제(齊)나라의 위왕(威王)은 간신인 주파호(周破胡)의 옳지 않은 말만 믿고 나라를 잘못 다스렸다. 위왕의 후궁인 우희(虞姬)가 보다 못해서 왕께 간했다.

"파호는 속이 검은 사람이니 등용(登用ㆍ登庸)해서는 안되며, 북곽(北郭) 선생은 현명하고 덕행(德行)이 있는 분이라 등용(登用ㆍ登庸)하시옵소서."

이 말을 전해들은 파호는 도리어 우희와 북곽 선생 사이가 수상쩍다고 모함했다. 이에 위왕이 우희를 국문하자, 우희가 아뢰었다.

"소첩을 지금 간사한 무리들이 모함하고 있을 뿐 결백하옵니다. 만약 죄가 있다면 오이 밭에서 신을 바꾸어 신지 않고, 이원(李園)을 지날 때에 갓을 고쳐 쓰지 않는다는 가르침에 따르지 않고 의심(疑心)받을 수 있는 행위를 한 것 뿐이옵니다. 하오나 설사 죽음을 당한다 할지라도 소첩은 더 이상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거니와 파호에게 국정을 맡기심은 나라의 장래(將來)를 위해 매우 위태(危殆)로운 일입니다."

위왕은 비로소 깨닫고 간신 아대부(阿大夫)와 파호를 삶아 죽이게 했으며, 그 후 제나라는 잘 다스려졌다고 한다.

《문선(文選)》 악부(樂府)·고사(古辭) 4수 중의 〈군자행(君子行)〉에서 나온 말로, 첫머리에 "군자방미연 불처혐의간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君子防未然 不處嫌疑間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라는 구절이 있다.


출전

문선(文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 | 瓜田之履(과전지리) | 瓜田李下(과전이하)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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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光而不耀 (광이불요)

光而不耀(광이불요)

빛나되 번쩍거리지 않음

노자 도덕경 58장에 나오며 학덕과 공적을 조용히 쌓을 뿐, 스스로 자신의 우월을 드러내지 말아야 함을 이름.

過猶不及 (과유불급, guòyóubùjí)

過猶不及(과유불급)

guòyóubùjí


정도가 지나친 것은 이르지 못한 것과 같다. 정도가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다름이 없다는 뜻. 중용을 꾀하라는 말.

To go beyond is as wrong as to fall short.


어느날 子貢(자공)이 스승 孔子(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子張(자장)과 子夏(자하)중 누가 더 낫습니까.”

자장과 자하는 둘 다 공자의 제자다. 이 두사람의 성격은 매우 대조적이었다. 자장은 每事(매사)에 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는데 반해 자하는 언제나 소극적이었다. 공자는 잠깐 생각해보곤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 자장은 지나친 면이 있고 자하는 미치지 못하는 점이 많은 편이지."

"그렇다면 자장이 낫다는 말씀이군요."

공자는 자공의 성급한 판단을 나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 지나침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지(過猶不及)"

觀於濁水迷於栗園 (관어탁수미어율원)

觀於濁水迷於栗園(관어탁수미어율원)

觀 볼 관 | 於 어조사 어, 탄식할 오, 어조사 우 | 濁 흐릴 탁 | 水 물 수 | 迷 미혹할 미 | 於 어조사 어, 탄식할 오, 어조사 우 | 栗 밤 율, 밤 률, 두려워할 율, 두려워할 률, 찢을 열, 찢을 렬 | 園 동산 원 |

흐린 물속을 들여다보고 밤나무 밭에서 길을 잃다

觀水洗心觀花美心 (관수세심관화미심)

觀水洗心 觀花美心(관수세심 관화미심)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

2011년 6월 삼성테크윈의 감사 결과 등으로 삼성 내 자정 경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그룹의 경영 메시지로 사용.

關門捉賊 (관문착적)

關門捉賊(관문착적)

关门捉贼(guānmén zhuōzéi)

關 관계할 관,당길 완 | 門 문 문 | 捉 잡을 착 | 賊 도둑 적 |


문을 닫아 걸고 도둑을 잡다.


三十六計(삼십육계) 混戰計(혼전계) 제22계. 문을 닫아 걸고 도둑을 잡는다. 적이 도망갈 곳을 막아두고 적을 완전섬멸한다는 의미이다. 살려두어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 사용되는 계략이다.

하지만 이러한 '완전포위'의 개념은 앞에서 본 '欲擒姑縱(욕금고종;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풀어주다)' 등의 계략과도 상충되는 듯 보인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듯이, 적의 도망칠 곳을 열어주어 적의 신경을 도망칠 곳으로 끈 다음, 도망치려는 적을 공격하는 식의 계략이 앞서 나온 '욕금고종' 이었다. 그리고 이는 손자병법에서도 논파하고 있는 바와 같다.

이에 대하여 풀이글은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약소한 적은 포위해서 섬멸한다. 다만 궁지에 몰린 적은 필사적으로 반항하기 때문에 지나친 추격은 피한다.[小敵困之.剝,不利有攸往.]"

결국 위에서 얘기한 것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포위할 때는 반격을 조심한다. 다만, 적이 '약'할 경우에 완전소탕을 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사례를 보도록 하자. 삼국지연의 이야기이다. 사마의에게 가로막혀 번번히 북벌이 좌절당한 제갈량은 사마의를 죽이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리하여 상방곡(호로곡)에 영채를 치고 사마의를 유인했다. 사마의는 기산을 촉군의 본거지로 보고 그곳을 공격하는척 한후, 군사들이 나오면 상방곡의 군량을 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상방곡에는 위연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곳에 사마의가 오자 위연은 싸우다가 거짓으로 패한 채하며 물러났다. 위연은 군사를 이끌고 골짜기 안으로 물러나 들어갔다. 사마의는 사람을 시켜 골짜기 안을 탐색해 보게 했다.
"골짜기 안에는 복병이 하나도 없고, 산꼭대기마다 모두 초막이 있사옵니다."
"그것은 분명히 군량을 쌓아둔 것일게다."

사마의는 즉시 군사를 이끌고 골짜기 안으로 들어왔다. 사마의가 얼핏 보니 초막 위에는 모두 마른 나무와 풀이고, 위연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사마의는 문득 의심이 들었다.
"만약 적군이 골짜기 어귀를 막는다면 어떻게 하느냐?"
미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함성이 울리며 산 위에서 불다발이 떨어졌다. 이로 인해 골짜기 안은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 위군은 달아나려 해도 길이 없었다. 산 위에서는 불화살이 쏟아져 내리고 지뢰가 일제히 폭발했다. 초막 안 마른 나무에 모두 불이 붙어 불꽃은 무서운 소리를 내며 하늘 높이 치솟았다. 사마의는 놀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말에서 내려 통곡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한참 울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미친듯 불어닥치며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골짜기의 불을 모두 꺼버렸다. 지뢰도 터지지 않고 화기도 힘을 잃었다. 사마의는 가까스로 살아나 도망쳤다. 제갈량은 '抛塼引玉(포전인옥)'으로 사마의가 군량을 노리게 하고, 함정에 빠뜨려 '관문착적'으로 섬멸하려 한 것이다.

이렇게 제갈량은 출구를 막아두고 또한 반격을 당할 우려조차 없는 상태로 만들어 사마의를 없애려고 하였으나 소나기가 내려 사마의를 또다시 놓치고...결국엔 사마의에 가로막혀 북벌을 완수하지 못하고 천명을 다하게 된다. 퇴로를 완전히 차단하고 반격의 우려조차 없게한 상황에서 완전한 섬멸전을 펼친 제갈량. 소나기라는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지만 않았다면 삼국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고시(古詩)는 전하고 있다.

그런데 상방곡(호로곡)의 지형에 대해 최근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좁은 계곡에 큰 불을 내면 주위의 수분이 상승해 소나기를 내리게 된다고 한다.


참조 한자어

참조어
欲擒姑縱(욕금고종) |

刮目相對 (괄목상대)

刮目相對(괄목상대)

눈을 비비고 상대한다. 몰라볼 정도로 실력이나 지위가 향상된 것을 두고 하는 말.


魏(위) 吳(오) 蜀(촉) 삼국이 鼎立(정립)하고 있을 당시 오나라 왕 孫權(손권)에게는 呂蒙(여몽)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졸병에서 장군까지 오른 그는 촉나라 명장 關羽(관우)를 사로잡기도 한 삼국지의 스타중의 한 명. 그러나 그는 어렸을 때 집안이 무척 가난하여 어렵게 자라느라 공부할 틈이 없어 무식꾼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여몽은 손권으로부터 책을 많이 읽어 학식을 쌓으라는 말을 들었다.

"장군은 이 나라의 대관 아니오. 학문을 하라고 해서 經學(경학)박사가 되라는 말은 아니오. 옛 사람들이 남긴 병법을 이론적으로 익히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된단 말이오."

이때부터 시작한 여몽의 공부는 쉴 줄을 모르고 계속되었다. 그는 읽은 책속에서 많은 지식을 얻었고 사물의 이치를 깨우쳤다. 전쟁터에서도 책을 손에서 떼지 않을 정도로 열심이어서 마침내 그의 학식은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 언젠가 여몽의 오랜 친구이자 학문이 깊은 걸로 이름난 오나라 重臣(중신) 魯肅(노숙)이 여몽과 토론을 벌이다가 그의 학문이 상당한 경지에 도달한 걸 알고 깜짝 놀랐다.

"나는 그대가 무예만 능하고 학식은 부족한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옛날의 여몽이 아니로군."

여몽은 이 말을 받아 이렇게 대꾸했다.

"무릇 선비라면 헤어졌다가 사흘이 지나 만났을 때는 눈을 비비고 상대를 다시 봐야 한다네[刮目相對]"

過目不忘 (과목불망)

過目不忘(과목불망)

过目不忘(guòmùbùwàng)

過 지날 과, 재앙 화 | 目 눈 목 | 不 아닐 불,아닐 부 | 忘 잊을 망 |


한번 보면 잊지 않다. 기억력이 대단히 좋다.


널리 듣고 보고 잘 기억한다는 뜻의 박문강기(博聞强記)와 같은 말이며, 한번 본 것은 평생 잊지 않을 만큼 기억력이 뛰어난 것을 말한다. 《삼국연의(三國演義)》에서 유래한 성어(成語)이다.

익주의 선비 장송(張松)은 허도에서 조조(曹操) 휘하의 장수인 양수(楊脩)를 만나 자신의 재주와 학식을 자랑하였다. 양수는 조조의 병법과 학덕을 자랑하며 조조가 지은 《맹덕신서(孟德新書)》를 보여주었더니, 장송이 "《맹덕신서》는 촉나라 어린아이도 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은 본래 전국시대의 저서를 조조가 도용하였다"라고 말하였다.

양수가 책의 내용을 외울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장송은 한 자도 틀리지 않고 끝까지 암송하였다. 그래서 양수는 "눈으로 한번 본 것은 그대가 잊어버리지 않으니 정말로 천하의 뛰어난 재주를 지닌 사람이다[公過目不忘 眞天下之奇才也]"라고 하였다.

장송의 유창한 달변과 박학다식함에 놀란 양수는 조조에게 장송을 천거하면서 《맹덕신서》를 한 번 보고 암송하는 기억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조조는 자신의 약점을 낱낱이 말한 장송을 몽둥이로 때려서 내쫓았는데, 유비(劉備)를 찾아가 환대를 받은 장송은 유비에게 익주를 차지해 패권을 잡으라고 권하였다고 전해진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博聞强記(박문강기) |


Tag

三國演義(Sānguóyǎnyì) : 第060回 | 강건 |

蝌蚪時節 (과두시절)

蝌蚪時節(과두시절)

蝌 올챙이 과 | 蚪 올챙이 두, 규룡 규 | 時 때 시 | 節 마디 절 |

개구리가 올챙이였던 때라는 뜻으로, 현재가 과거보다 발전한 경우 그 발전하기 이전의 과거를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蝌蚪時代(과두시대) |

夸大其词 (과대기사, kuādàqící)

夸大其词(과대기사,kuādàqící)

과장하여 말하다


과장

刮骨療毒 (괄골요독)

刮骨療毒(괄골요독)

뼈를 긁어 독을 치료하다.


관공(關公)이 조병(曹兵)을 공격할 때 적군으로 부터 초오(草烏)를 화살촉에 바른 화살을 어깨에 맞아 괄골요독(刮骨療毒) 수술을 받았다. 명의 화타(華陀)가 관우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칼로 살을 째고 뼈를 긁어 내었는데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이다.

過恭非禮 (과공비례)

過恭非禮 (과공비례)

지나치게 공손하면 오히려 예의에 벗어난다

古稀 (고희)

古稀(고희)

杜甫 詩의 人生七十古來稀에서 나온 말로 일흔 살을 가리킴.

功虧一簣 (공휴일궤)

功虧一簣 (공휴일궤)

功 공 공 | 虧 이지러질 휴 | 一 한 일 | 簣 삼태기 궤 |

쌓는 공도 한 삼태기로 이지러진다는 뜻으로, 거의 성취한 일을 중지(中止)함을 이르는 말


書經(서경) 旅獒篇(여오편)에 나오는 말이다.

周(주)나라 武王(무왕)이 殷(은)나라 紂王(주왕)을 무찌르고 새 왕조를 열었는데 旅(여)라는 오랑캐 나라에서 ‘獒(오)’라는 珍奇(진기)한 개를 선물로 보냈다. 오는 키가 넉 자나 되는 큰 개로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고 또 사람이나 짐승을 잘 덮친다 해서 무왕이 몹시 기뻐하며 소중히 여기자 동생인 召公(소공) 奭(석)은 무왕이 혹시 그런 진기한 물건에 마음이 끌려 정치를 등한히 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이를 일깨워 말하길, “슬프다, 임금 된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시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안 된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이를 조심하지 않으면 마침내 큰 덕을 해치기에 이르게 된다. 예를 들어 흙을 가져다가 산을 만드는데, 이제 조금만 일을 계속하면 아홉 길 높이에 이르게 되었을 때, 이제는 다 되었다 하고 한 삼태기의 흙을 운반하는 데 게을리하게 되면 지금까지의 해 온 일이 모두 허사가 된다[爲山九 , 功虧一簣]”고 했다.

‘아홉 길 산을 쌓는 데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공이 한꺼번에 무너진다’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조금만 더 하면 목적을 이룰 수 있는데 한 삼태기가 부족해서 헛된 일이 되었다는 뜻으로 쓰인다. 九仞功虧一簣(구인공휴일궤)라는 숙어로 굳어져 있다. 주나라 소공이 정사에 힘쓴 일로 인해 甘棠之愛(감당지애)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출전

서경(書經) 旅獒篇(여오편) | 상서(尙書) 주서(周書) 여오(旅獒)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九仞功虧一簣(구인공휴일궤)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曲學阿世 (곡학아세)

曲學阿世(곡학아세)

曲学阿世(qūxué ēshì)。

曲 굽을 곡, 누룩 곡 | 學 배울 학, 가르칠 교, 고지새 할 | 阿 언덕 아, 호칭 옥 | 世 인간 세, 대 세 |

학문(學問)을 굽히어 세상(世上)에 아첨(阿諂)한다는 뜻으로, 정도(正道)를 벗어난 학문(學問)으로 세상(世上) 사람에게 아첨(阿諂)함을 이르는 말


사기 유림열전(儒林列傳)의 이야기.

중국 한나라 황제(皇帝)인 경제(景帝)가 즉위하여 천하(天下)의 선비를 찾다가 산동에 사는 원고생(轅固生)이란 90세의 노 시인을 등용(登用ㆍ登庸)하기로 했다.

중신들은 그의 등용(登用ㆍ登庸)을 반대했으나, 끝내 경제(景帝) 임금은 그를 등용(登用ㆍ登庸)한다. 그는 강직한 성품과 학문으로 왕자의 스승을 지냈으나 병 때문에 물러났다.

무제(武帝)가 즉위하자, 원고생은 9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게 되었는데, 아첨을 일삼는 관리들은 그가 너무 늙었다며 헐뜯었다. 원고생이 조정의 부름을 받았을 때, 같이 등용(登用ㆍ登庸)된 소장 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역시 산동 사람으로 공손홍(公孫弘)이라고 했다. 공손홍은 원고생을 깔보고 무시했으나, 개의치 아니하고 공손홍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다.

"지금은 학문(學問)의 정도(正道)가 어지러워져 속설이 유행하여 전통적 학문(學問)이 결국은 사설로 인하여 본연의 모습이 사라지고 말 것이오. 당신은 학문(學問)을 좋아하고 젊으니 선비로써 올바른 학문(學問)을 세상(世上)에 널리 펼쳐주기 바라오. 자신이 믿는 학설을 굽혀(曲學), 이 세상(世上) 속물들에게 아첨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되오.[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

이 말을 들은 공손홍은 고매한 학식과 인격을 갖춘 원고생에게 지난 잘못을 사죄하고 제자가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이로 인하여 전해지는 말이 바로 곡학아세이다.


출전

사기(史記)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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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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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활용도 ★★★

恭賀新禧 (공하신희)

恭賀新禧(공하신희)

恭 공손할 공 | 賀 하례할 하 | 新 새 신 | 禧 복 희

근하신년(謹賀新年)


유의어

謹賀新年(근하신년) | 恭賀新年(공하신년)


경조사

孤枕短命 (고침단명)

孤枕短命 (고침단명)

베개를 높이 베면 오래 살지 못한다

苦盡甘來 (고진감래)

苦盡甘來 (고진감래)

고생 끝에 낙이 온다

空中樓閣 (공중누각)

空中樓閣 (공중누각)

공중에 뜬 집. 근거가 없는 터무니 없는 말이나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일을 비유로 하는 말.

空前絶後 (공전절후)

空前絶後(공전절후)

비교할 만한 사물이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로도 없을 것임.

孔子穿珠 (공자천주, Kǒngzǐchuānzhū)

孔子穿珠(공자천주)

孔子穿珠(Kǒngzǐchuānzhū)

孔 구멍 공 | 子 아들 자 | 穿 꿸 천 | 珠 구슬 주 |


공자가 구슬을 꿴다는 뜻으로,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말.


이 고사는 송(宋)나라의 목암선경(睦庵善卿)이 편찬한 《조정사원(祖庭事苑)》에 나온다. 공자(孔子)가 진(陳)나라를 지나갈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공자는 전에 어떤 사람에게 진기한 구슬을 얻었는데, 이 구슬의 구멍이 아홉구비나 되었다. 그는 이것을 실로 꿰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성공할 수 없었다. 문득 바느질을 하는 아낙네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꿸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가까이 있던 뽕밭에서 뽕잎을 따고 있던 아낙네에게 그 방법을 물었다. 공자의 이야기를 듣고난 그 아낙은 이렇게 말했다.

"찬찬히 꿀[蜜]을 두고 생각해 보세요." 공자는 그 아낙의 말대로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잠시 후 그녀의 말의 의미를 깨닫고 "그렇지" 하고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는 나무 아래에 왔다갔다 하는 개미를 한 마리 붙잡아 그 허리에 실을 묶고는 개미를 구슬의 한쪽 구멍에 밀어넣고, 반대편 구멍에는 꿀을 발라 놓았다. 그 개미는 꿀 냄새를 맡고 이쪽 구멍에서 저쪽 구멍으로 나왔다. 이리하여 구슬에 실을 꿸 수 있게 되었다.

공자는 배우는 일에 있어서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자의 이와 같은 언행을 두고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고도 한다. 그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라고 하여 세 사람이 어떤 일을 같이 할 때에는 선악간(善惡間)에 반드시 스승으로서 배울 만한 사람이 있는 법이라 하였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不恥下問(불치하문) | 三人行必有我師(삼인행필유아사) |

孤掌難鳴 (고장난명)

孤掌難鳴 (고장난명)

손바닥 하나로는 박수를 칠 수 없다. 혼자 힘으론 일을 해내기가 어렵다

骨肉之親 (골육지친)

骨肉之親(골육지친)

骨 뼈 골 | 肉 고기 육, 둘레 유 | 之 갈 지, -의 지 | 親 친할 친 |

뼈와 살을 같이 나눈 사이로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친족(親族)이란 뜻으로, 부자(父子)와 형제(兄弟) 또는 그와 가까운 혈족(血族)을 지칭하는 말


여씨춘추(呂氏春秋) 정통(精通)편에는 혈연에 관한 글이 실여 있다.

주(周)나라에 신희(申喜)라는 사람은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였다. 어느 날, 걸식(乞食)하는 사람이 문밖에 서서 부르는 노래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마음이 너무 슬퍼서 그것이 얼굴에까지 나타났다. 그래서 문지기에게 그 걸인을 집으로 불러오도록 하여, 그에게 어찌 걸인이 되었는지를 물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보니, 그 걸인은 바로 자신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부모와 자식, 자식과 부모는 본디 한 몸뚱이에서 갈라지고, 동기(同氣)였다가 분리된 것이다. 풀의 꽃과 열매, 나무의 뿌리와 심(芯)처럼, 이 둘은 비록 있는 곳이 다르더라도 서로 통하고, 고통이 있으면 서로 도우고, 근심이 있으면 서로 느끼며, 살아 있을 때는 기뻐하고, 죽으면 서로 슬퍼하는 것이다. 이것이 골육간의 사랑이라는 것이다[此之謂骨肉之親]라고 하였다.


출전

여씨춘추(呂氏春秋)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骨肉(골육) | 血肉(혈육) | 血肉之親(혈육지친) |

骨肉相殘 (골육상잔)

骨肉相殘(골육상잔)

骨肉相残(gǔ ròu xiāng cán)

骨 뼈 골│肉 고기 육, 둘레 유│相 서로 상, 빌 양│殘 잔인할 잔, 남을 잔


부자(父子)나 형제(兄弟) 또는 같은 민족(民族) 간(間)에 서로 싸움


관련어

같은 뜻을 가진 한자어(유의어)

兄弟鬩墻(형제혁장)│煮豆燃萁(자두연기, zhǔdòuránqí)│民族相殘(민족상잔)│同族相爭(동족상쟁)│同族相殘(동족상잔)│骨肉相戰(골육상전)│骨肉相爭(골육상쟁)


정치│전쟁

苦肉計 (고육계, kǔròujì)

苦肉計(고육계)

苦肉计(kǔròujì)

苦 쓸 고 | 肉 고기 육 | 計 셀 계 |


제몸을 상해가면서까지 꾸며내는 방책이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어려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계책을 말하며 고육지계(苦肉知計) 또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이라고도 한다.


스스로를 희생하다. 이는 의심이 많은 상대방의 신용을 사기 위해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는 것을 뜻한다. 三十六計(삼십육계) 敗戰計(패전계) 제34계이다. 역사적으로 거짓투항하기 위하여 스스로 벌을 받거나 하는 식으로 많이 쓰였다. 특히 삼국지연의의 백미인 적벽대전에의 황개의 고육계가 유명하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사람은 스스로를 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상해를 입었다면 이는 가해를 받은 것이다. 이러하므로 거짓을 진실로, 진실을 거짓으로 보여 계략을 성공시킨다.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순수하여야 한다."

人不自害,受害必眞.假眞眞假,間以得行.童蒙之吉,願以巽也.

三國志演義에서 묘사된 황개의 고육계에 대해서 살펴보자. 어디까지나 연의 상의 이야기일 뿐이지,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다.

조조의 군세와 손오의 군세가 적벽에서 대치하고 있을때, 서로 대군이 대치하고 있는 만큼 소규모의 국지전은 빈번했지만 대규모의 정면전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겉으로는 소강상태에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치열한 신경전 및 첩보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소규모의 국지전에서 번번히 패한 조조는 채모(蔡瑁)에게 수군의 훈련을 맡겼고, 오군의 적정을 탐지하고자 주유의 친구였던 장간을 첩자로 보낸다. 주유는 장간이 조조의 첩자로 온 것을 알고는 이를 이용해 채모가 자신들과 내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장간이 돌아가 채모가 내통하고 있었다고 보고해, 조조는 채모를 죽인다. 이는 채모가 수군훈련에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주유가 채모를 제거하기 위해 '反間計(반간계)'를 쓴 것이었다.

조조는 채모를 죽인후 주유에게 놀아난 것을 알고는 크게 분개한다. 그리고는 채모의 아우인 채중과 채화를 거짓항복시켜 오군에 침투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채중(蔡中)·채화(蔡和)는 주유에게 거짓항복하며 아무 죄없이 죽은 형의 복수를 하고 싶다고 했다.이에 주유는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주유는 이들의 항복이 거짓인 줄을 알고 있었다. 채중과 채화는 가족들을 데려오지 않은 것을 보고 이들이 첩자로 온 것을 눈치챈 것이다. 그리고는 이들을 역으로 이용하고자 감녕을 불러서 은밀히 분부한다.

이후 주유의 심복인 황개(黃蓋)가 밤에 주유의 막사를 찾아온다. 그리고는 화공(火攻)을 진언한다. 사실 주유도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진중에는 조조의 첩자 채씨 형제가 있어 노련한 주유가 화공 같은 중요한 작전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먼저 거짓으로 항복하는 이른바 사항계(詐降計)를 생각해냈다. 황개는 자신이 기꺼이 그 역할을 맡고자 했다. 주유가 의심많은 조조를 속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말하자, 황개는 '苦肉計(고육계)'를 진언한다.

작전회의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 이때 황개가 “누가 보아도 조조를 꺾는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나 다름없소. 이럴 바에야 차라리 항복하느니만…….” 하고 말했다. 그 때 주유의 벽력(霹靂) 같은 질책(叱責)이 떨어졌다. 주유는 장수들이 보는 앞에서 황개를 크게 모욕하고 장형에 처한다. 물론 각본이었다. 즉시 황개는 끌려나와 형틀에 묶였다. 곧이어 곤장 소리와 함께 비명(悲鳴)소리가 들려왔다. 백여 대를 맞은 황개의 엉덩이는 허물어졌다. 그 동안 황개는 몇 번이나 까무러쳤다.

황개가 자기 막사에 누워있는데 감택이 찾아와 고육계가 아닌가 얘기를 한다. 이에 황개는 속내를 털어놓고 감택에게 가짜 항서를 조조에게 갖다 달라고 부탁한다.

감택이 가짜 항서를 조조에게 바치자, 조조는 의심하며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감택을 죽이려 하였다. 그때 채중과 채화가 보낸 편지가 도착했다. 그 편지는 황개의 수형에 관한 이야기였고, 이에 조조는 의심을 풀고 황개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감택은 황개에게 소식을 전한후, 채중과 채화의 소식을 알고자 감녕에게로 간다. 감녕과 감택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채중과 채화가 들어왔다. 이에 감녕과 감택은 짐짓 주유에게 불만이 가득차, 吳를 배반할 생각이 있는것처럼 연기했다. 그러자 채중과 채화는 이들에게 모반할 뜻이 있는 것으로 여겨, 자신들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네사람은 의기투합하였다.

채중과 채화는 이 이야기를 조조에게 편지로 보냈다. 감택은 감택대로 황개가 청아기를 꽂고 투항하러 갈 것이라는 편지를 보냈다. 조조는 두 통의 밀서를 받았지만 의혹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다. 이에 모사들과 상의하는데 장간이 지난 번의 실수를 만회하겠다며 나섰다.

장간이 찾아오자 주유는 크게 화를 내며 상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장간을 작은 암자에 감금하고 감시병을 붙혔다. 이에 장간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누군가 병서를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가 방통이며 주유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와 함께 조조에게로 간다.

방통을 맞은 조조는 크게 후대하며 그에게 군략에 관한 조언을 구한다. 이에 방통은 조조군이 수상전에 익숙치 않고, 물도 맞지 않아 크게 고생하고 있음을 간한다. 그러자 조조는 감탄하며 대책을 묻는다. 방통은 배를 쇠사슬로 서로 연결하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면 인마가 육지와 같이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조조는 즉시 좌우에 분부하여 배들을 모두 쇠사슬과 널빤지로 연결하였다.

이는 주유가 방통에게 미리 지시해둔 것으로, 화계를 쓸 때 배들이 연결이 되어 있으면 피해가 커지게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방통이 배를 연결하는 책략을 펼친 것을 '連環計(연환계)'라 한다.

이렇게 화공에 대한 준비는 모두 끝났으나 동남풍이 불지 않는 것을 알고 주유는 크게 앓게 된다. 이에 제갈량이 자신이 동남풍을 부르겠다고 말하여 주유를 일으킨다.

그리고 황개는 인화물질을 실은 배를 조조의 선단에 부딪혀 불을 일으키고, 동남풍이 불어 조조의 선단에 퍼져가는데, 조조의 선단은 연환계로 엮여 있어서 분리하지도 못하고 모두 전소되고 말았다는 것까지가 연의에서 묘사하고 있는 적벽대전의 전모이다.

딱히 고육계에 대한 설명은 더 필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살펴본 '三國志演義' 상의 적벽대전의 전모를 보면 '反間計(반간계)', '苦肉計(고육계)', '連環計(연환계)' 등이 모두 등장하는 희대의 전략전이지만 나관중이 지어낸 허구이다.

진수의 三國志 正史 吳書(오서) 주유전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적벽에서 손유 연합군이 조조 군을 우연히 만났을 때, 주유의 부장 황개는 '적은 큰 세력이고 아군은 힘이 없으니 견디기가 어렵다'고 말하며 화공에 의한 속공을 제안하고는 스스로 실행을 떠맡았다. 그리고 사전에 조조에게 투항하겠다는 거짓 편지를 몰래 보내두었다. 조조군은 황개의 선대가 나타나자 목을 빼고 황개의 모습을 살피며 '황개가 투항해왔다'고 떠들어댔다."

진수의 三國志에 주석을 붙인 배송지도 '강표전'을 인용해 황개가 보낸 편지를 실어두고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황개가 조조에게 투항해 목숨을 바치고자 하는 이유는, 첫째, 조조군이 너무 강해 오나라가 대항해 싸울 수 없고, 둘째로 이러한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 바이며, 셋째로 오나라의 정치는 부패하여 현명하고 어리석음을 분간하기 힘든 형편이기 때문이었다."

황개가 적벽에서의 대치 상태 중에 조조에게 거짓투항한 것은 사실이나, 고육계를 쓰지는 않았다. 모든 사료를 뒤져봐도 주유와 황개가 고육계를 꾸민 흔적도 없으며, 황개가 매를 맞은 이야기도 없고, 황개의 편지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 단지 나관중이 적벽대전을 좀 더 극적으로 보이고자 그려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참조 한자어

동의어

苦肉之策(고육지책) | 苦肉知計(고육지계) | 반간고육계(反間苦肉計) |

高陽酒徒 (고양주도)

高陽酒徒(고양주도)

高 높을 고 | 陽 볕 양 | 酒 술 주 | 徒 무리 도 |

술을 좋아하여 제멋대로 행동(行動)하는 사람을 비유(比喩ㆍ譬喩)


사기(史記) 역생육가(酈生陸賈)열전의 이야기.

진(秦)나라 말기, 유방(劉邦)은 패현(沛縣)에서 군대를 일으켜 진류(陳留)현의 교외에 주둔하였다. 당시 진류현의 고양이라는 시골에는 역이기(酈食其)라는 한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책 읽기를 좋아하였으나, 일정한 생업을 갖지는 못했다.

역이기는 유방의 휘하로 들어가고자 했는데, 유방이 유생(儒生)들을 싫어하여 그들이 찾아오면 관(冠)을 벗겨서 거기에 오줌을 누고 욕을 퍼붓는다는 말을 듣었다. 역이기는 심사숙고한 후 대책을 마련하여 유방을 만나러 갔다. 유방은 유생이 찾아왔다는 말에 크게 노하여 유생 따위는 만날 시간이 없다 라고 하였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역이기는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고양땅의 술꾼이지 유생이 아니오[吾高陽酒徒. 非儒人也]

시위의 보고를 받은 유방은 발을 씻다말고, 맨발로 나가 역이기를 맞았다. 그후 역이기는 유방을 도와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高陽酒徒란 술을 좋아하여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姑息之計 (고식지계)

姑息之計(고식지계)

일시적으로 변통하는 꾀를 말함. 아랫돌 빼서 웃돌 괴기.


관련 한자어

유의어

因循姑息(인순고식)

孤臣寃淚 (고신원루)

孤臣寃淚(고신원루)

임금의 사랑을 잃은 외로운 신하의 원통한 눈물

谷神不死 (곡신불사)

谷神不死(곡신불사)

계곡은 가뭄에 마르지 않는다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곡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면면약존 용지불근)

계곡의 정신은 마르지 않는다. 이를 여성스러움의 힘이라 한다. 여성스러움의 포용력. 이것을 하늘과 땅의 뿌리라고 한다. 도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왕성한 모양으로 존재하며 아무리 쓰더라도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 도덕경 제6장

高聲放歌 (고성방가)

高聲放歌(고성방가)

高 높을 고 | 聲 소리 성 | 放 놓을 방 | 歌 노래 가 |

큰소리로 떠들고 마구 노래 부름

① sing loudly ② sing boisterously

孔席墨突 (공석묵돌)

孔席墨突(공석묵돌)

孔 구멍 공 | 席 자리 석 | 墨 먹 묵 | 突 갑자기 돌 |

한(漢)나라 반고(班固)의 답빈희(答賓戱)에 나오는 이야기다. 춘추전국시대는 격렬한 전쟁으로 사회가 몹시 불안하였다. 이에따라 각종 사상이 발생하고 자신의 이상과 견해를 전파하고자 각국으로 유세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자(孔子)와 묵자(墨子) 역시 이러한 사람들에 속한다.

공자는 자신의 학문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제자들을 데리고 많은 제후국들에서 유세하였다. 그리고 노(魯)나라 사람인 묵자는 본시 수공업자 출신으로 백성들의 어려운 삶을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겸애(兼愛) 를 주장하며, 힘만 믿고 약자(弱者)에게 고통을 주는 전쟁을 반대하였다. 그는 검소하고 청빈한 생활을 하며 저술에 전념하였다. 그는 묵자(墨子) 이외에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귀중한 연구 결과를 정리하였다.

반고는 공자와 묵자의 이러한 유세 활동을 공자의 자리는 따뜻해 질 틈이 없고, 묵자 집의 굴뚝에는 그을음이 낄 새가 없다[孔席不暖, 墨突不黔]라고 표현하였다. 孔席墨突은 여기저기 몹시 바쁘게 돌아 다님을 비유한 말이다.

孤城落日 (고성낙일)

孤城落日(고성낙일)

멀리 외따로 떨어져 있는 성에 해마저 서산에 기울어 가는 쓸쓸한 심정과 삭막한 풍경을 비유해서 쓰이는 말.


외로움

空城計 (공성계, kōngchéngjì)

空城計(공성계)

空城计(kōngchéngjì)

空 빌 공 | 城 성 성 | 計 꾀 계 |


아군이 열세일 때 방어하지 않는 것처럼 꾸며 적을 혼란에 빠뜨리는 전략.


36계(計) 가운데 敗戰計(패전계) 제32계이다. 빈 성으로 적을 유인해 혼란에 빠뜨리는 계책을 말한다. 아군측에 승산이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공허한 상태를 보여줌으로써 '뭔가 계략을 숨겨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흔히 '없으면서도 있는척' 하여 적의 오판을 유도하는 반면, '없으면서 더욱 없는척' 하여 적으로 하여금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실력이 없으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허장성세(虛張聲勢)와 통한다.

36계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병력이 적을때는 일부러 더욱 적은 것으로 보여, 의심많은 적을 한층 더 의심케 할 수 있다. 병력이 적을 때의 기책으로 효과를 얻는다.[虛者虛之,疑中生疑,剛柔之際,奇而復奇.]"

列國志에도 공성계가 등장한다.

때는 齊(제)에서는 제환공이 치세를 이루고, 晉(진)에서는 진헌공이 다스리고 있을 때였다. 당시 남방의 楚(초)에서는 초문왕이 식나라를 쳐서 식후의 부인을 자신의 부인으로 삼아, 그 사이에서 웅간과 웅운, 두 아들이 있던 때였다. 초문왕은 죽고 큰아들 웅간이 왕위에 올랐으나 웅간은 자신보다 재주와 지혜가 뛰어난 동생 웅운을 경계하여 틈을 보아 죽이려 하고 있었다. 또한 웅운은 웅운대로 자신보다 재주가 뒤처지는 형이 왕위에 있는 것이 불만이어서,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터였다.

그렇게 기회를 노리던 웅운은 사냥터에 나가는 웅간을 습격하여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이가 바로 楚成王(초성왕)이다. 초성왕의 숙부인 자원은 맹랑한 사람이었다. 형인 초문왕이 죽은 후부터 초나라 왕위를 노리고 있었으며, 또한 초문왕이 데려온 형수 문부인(식부인)을 사모하고 있었다. 이에 자원은 문부인의 환심을 사고자 초성왕의 윤허를 받아 鄭(정)나라로 쳐들어갔다.

정나라는 당시 鄭文公(정문공)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즉시 백관을 소집하여 상의했다. 의견은 분분하여 화평론, 주전론, 농성론 등이 계속 오갔다. 이에 숙첨이 말한다.

"세분 말씀이 다 일리가 있으나,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 보건데 초군은 머지않아 물러갈 것입니다."

한참 의논하고 있는데 초군이 이미 코앞까지 당도했다는 파발이 들어왔다.

이에 숙첨은 대담무쌍하게 성문을 활짝 열었다. 백성들은 이전과 다름없이 거리를 왕래하며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에 초군의 선봉인 투어강은 깜짝 놀라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자원을 기다렸다. 보고를 받은 자원이 나아가 살펴보자, 투어강의 보고와는 달리, 성위에는 정기가 정숙하고 무장한 군사들이 숲처럼 늘어서 있었다. 자원이 이를 보고 찬탄한다.

"정나라엔 훌륭한 신하가 세사람 있다더니 그들의 계책은 참으로 측량할 수 없구나. 우선 정나라의 허실부터 탐지한 후에 공격해야겠다."

그러나 다음날, 정나라와 동맹한 제나라에서 구원군이 온다는 첩보가 왔다. 이에 자원은 감히 정성을 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제후가 우리의 돌아갈 길을 끊으면 우리는 앞뒤로 적군 속에 들고 만다. 내 이번에 정나라를 쳐서 정성 대로까지 이르렀은 즉,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는 군사들에게 함매를 물리고 말의 방울들을 모두 떼어버리게 한 후, 조용히 퇴각할 것을 명령했다. 그날 밤, 초군은 소리없이 정성을 떠났다. 그들은 정군의 추격을 당할까 두려워 군막도 걷지 않고 많은 기를 꽂아둔 채로 달아났다.

이렇게 정나라의 숙첨의 공성계에 의해 초군은 계략이 있을까 두려워 공격을 유보하고 있었고, 그 동안 원군이 도착할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 제갈량전(諸葛亮傳)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제갈량이 촉나라 군대를 양평관에 주둔시키고, 대장군 위연(魏延)과 왕평(王平) 등으로 하여금 위(魏)나라 군대를 공격하게 할 때의 일이다. 군대를 모두 다른 곳으로 보냈기 때문에 제갈량이 주둔하고 있는 성에는 병들고 약한 일부의 병사들만 남아 있었다.

이때 위의 대도독 사마의(司馬懿)가 15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성으로 쳐들어 왔다. 이 소식을 들은 제갈량은 군사들로 하여금 성 안의 길목을 지키게 하고, 성문을 활짝 열어둔 채 20여 명의 군사를 백성들로 꾸며 청소를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성 밖에서 눈에 잘 띄는 적루(敵樓)의 난간에 기대앉아 웃음 띤 얼굴로 한가롭게 거문고를 뜯었다.

대군이 몰려와도 아무 일 없는 듯 청소를 하고 있는 백성들과 거문고를 뜯고 있는 제갈량을 본 사마의는 제갈량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몰라 군사를 거두고 물러가 버렸다.

《삼국지연의》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제갈량이 거문고를 뜯어 사마의를 물리쳤다는 탄금주적(彈琴走敵)과 뜻이 같다. 거문고를 울려 적을 쫓아냈다는 뜻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空城計(공성계) | 空城之計(공성지계) |

高山流水 (고산유수)

高山流水(고산유수)

높은 산과 흐르는 물


자연, 산[mountain], 물[water]

山, 水

鼓盆之痛 (고분지통)

鼓盆之痛(고분지통)

분을 두들긴 쓰라림이란 뜻으로 아내가 죽은 슬픔을 말함


관련 한자어

참조어

鼓盆之歎(고분지탄) | 鼓盆之嘆(고분지탄) | 天崩之痛(천붕지통) |

鼓腹擊壤 (고복격양)

鼓腹擊壤(고복격양)

鼓 두드릴 고 | 腹 배 복 | 擊 부딪칠 격 | 壤 흙 양 |

배를 두드리고 땅을 치면서 박자를 맞춰 흥겹게 노래 부른다는 말로 太平聖代(태평성대)라는 뜻.


鼓腹은 부른 배를 두드리다 라는 뜻이다. 壤은 본시 나무로 만든 신발모양의 놀이 도구이며, 30-40걸음 떨어진 곳에서 이것을 서로 맞치는 놀이를 격양(擊壤)이라 했다. 따라서 鼓腹擊壤은 부른 두드리며 양치기 놀이를 하는 것 인데, 이는 곧 太平聖代(태평성대)를 상징한다.

聖天子(성천자)로까지 불리는 堯(요)임금이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 지 50년이 지난 어느 날 微服(미복)을 걸치고 거리에 나섰다. 세상이 정말로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요임금이 큰 거리에 이르렀을 때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놀면서 요임금의 덕을 찬양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처럼 잘 살아가는 것은 모두가 그대의 덕택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임금님의 정하심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요임금은 흐뭇해진 기분에 미소를 짓다가 불현듯 누가 시킨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머리를 스쳤다. 게다가 노인들의 생활이 궁금하여 마을 끝까지 걸어가 보았다. 그러자 저쪽에 한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 노인은 입에 든 음식을 우물거리면서 배를 두드리고(鼓腹) 땅을 쳐(擊壤) 박자를 맞추면서 흥겹게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요임금이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노라
우물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노라
임금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 있단 말인가.

요임금의 눈은 비로소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백성들이 아무런 불안도 없이 정치의 힘따위는 잊어버리고 사는 것, 이야말로 요임금이 목표로 삼은 정치였던 것이다.

[출전]
십팔사략(十八史略)

枯木生花 (고목생화)

枯木生花(고목생화)

마른 아무에 꽃이 핀다는 뜻. 곤궁한 사람이 크게 행운을 얻는다는 말


꽃[flower] | 식물 | 花 | 나무 | 木 | 곤궁 | 행운

公明正大 (공명정대)

公明正大(공명정대)

공변되고, 밝고, 바르고, 큼. 곧, 하는 일이나 태도가 떳떳하고 정당함.

藁網捉虎 (고망착호)

藁網捉虎(고망착호)

새끼를 가지고 호랑이를 잡는다는 말. 어리석은 계책과 보잘 것없는 것으로 뜻밖에 큰 일을 이룸을 뜻함.

孤立無援 (고립무원)

孤立無援(고립무원)

孤 외로울 고 | 立 설 립(입), 자리 위 | 無 없을 무 | 援 도울 원 |

고립(孤立)되어 도움을 받을 데가 없음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四顧無親(사고무친) | 四顧無人(사고무인) | 無援孤立(무원고립) | 孤城落日(고성낙일) | 孤立無依(고립무의) |

孤立無依 (고립무의)

孤立無依(고립무의)

孤立无依(gū lì wú yī)

孤 외로울 고│立 설 립(입)│無 없을 무│依 의지할 의


외롭고 의지(依支)할 데 없음


관련어

같은 뜻을 가진 한자어(유의어)

進退維谷(진퇴유곡)│進退兩難(진퇴양난)│四顧無親(사고무친)│四顧無人(사고무인)│無援孤立(무원고립)│孤城落日(고성낙일)│孤立無援(고립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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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외로움

高麗公事三日 (고려공사삼일)

高麗公事三日 (고려공사삼일)

고려의 정령(精靈)이 사흘 만에 바뀐다는 뜻으로 착수한 일이 자주 바뀜을 비유한 말

膏粱珍味 (고량진미)

膏粱珍味(고량진미)

살찐 고기와 좋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

曲突徙薪 (곡돌사신)

曲突徙薪(곡돌사신)

曲 굽을 곡 | 突 굴뚝 돌 | 徙 옮길 사 | 薪 땔나무 신 |

준비를 철저히 하여 화근을 미연에 방지함.

한서(漢書) 곽광(藿光)전의 이야기. 한나라 선제(宣帝) 때, 황후의 부친인 곽씨 일가가 모반을 꾀하였다. 선제는 곽씨 일가를 멸하고, 그들을 진압한 사람들에게 큰 상을 내렸다. 그러나 그들을 미리 제거하라고 간언하였던 서복(徐福)이라는 사람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였다. 이에 한 신하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선제에게 불공평함을 간언하였다.

옛날, 한 나그네가 어느 집을 찾아 왔다가, 그 집의 굴뚝이 똑바로 서있어서 불꽃이 위로 곧장 치솟는 것과 아궁이 옆에는 땔감이 쌓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그네는 주인에게 굴뚝을 꼬불꼬불하게 만들고, 땔감은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이 집에 정말 불이 났습니다만, 이웃 사람들의 도움으로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주인은 술자리를 마련하여 이웃 사람들을 초대하였는데, 주인에게 충고했던 그 나그네는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누군가가 집주인에게 '그 나그네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술자리도 필요없을 것이며, 불도 나지 않았을 것이요. 그 나그네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하였답니다.

高臺廣室 (고대광실)

高臺廣室(고대광실)

높은 대에 있는 넓은 집. 매우 큰 집.

古今獨步 (고금독보)

古今獨步(고금독보)

예나 현재를 통하여 그와 견줄 만한 사람이 없음

孤軍奮鬪 (고군분투)

孤軍奮鬪(고군분투)

수가 적고 도움이 없는 약한 군대가 강한 적과 용감하게 싸움. 적은 인원과 약한 힘으로, 남의 도움도 없이 힘에 겨운 일을 악착스럽게 함

股肱之臣 (고굉지신)

股肱之臣(고굉지신)

팔다리와 같이 믿는 보필의 신하. 임금이 가장 믿고 중히 여기는 신하

曲高和寡 (곡고화과, qǔgāohèguǎ)

曲高和寡(곡고화과)

曲高和寡(qǔgāohèguǎ)

曲 굽을 곡 | 高 높을 고 | 和 화할 화 | 寡 적을 과 |


곡이 높으면 화답하는 사람이 적다는 뜻으로, 사람의 재능이 너무 높으면 따르는 무리들이 적어진다는 말


춘추전국시대 말엽 초(楚)나라의 정치가 굴원(屈原)과 더불어 대표적인 문인으로 손꼽히던 송옥(宋玉:굴원의 제자)은 문장가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의 문장은 난해하여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그의 글을 칭찬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때문에 초왕(楚王)은 송옥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대체 어찌하여 경(卿)의 문장을 따르는 사람이 없는 것이오?” 송옥은 초왕의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가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길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아주 쉬운 통속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위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여 따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조금 수준이 있는 노래를 부르자 그를 따라 노래 부르는 사람이 훨씬 적어졌습니다.

다시 더 어려운 노래를 부르자, 불과 10여 명만이 따라 불렀습니다. 나중에 아주 어려운 노래를 부르자 두세 명만이 따라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봉황(鳳凰)은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구름 위를 나는데, 동네 울타리를 날아다니는 참새가 어찌 하늘의 높음을 알겠으며, 곤(鯤)이라는 큰 물고기를 어항 속에 사는 작은 물고기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는 새 가운데만 봉황이 있고, 물고기 중에만 곤이 있는 것이 아니고 선비 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지 않겠습니까?”

곤은 《장자(莊子)》 〈소요유편(逍遙遊篇)〉에 나오는 상상의 큰 물고기로, '북양에 물고기가 사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몇천 리가 되는 지 알 수가 없다[北溟有魚 其名爲鯤 鯤之大 不之幾千里]'라 했다.


관련 한자어

鳳凰 관련 고사성어

朝陽鳳凰(조양봉황) 화제(畵題)로서 아침 해에 봉황(鳳凰)을 그린 것

鷄棲鳳凰食(계서봉황식) 닭집에서 봉황(鳳凰)이 함께 살면서 모이를 먹는다는 뜻으로, 충신(忠臣)이 천(賤)한 죄인(罪人)들과 함께 하는 삶을 비유(比喩)해 이르는 말

蝶粉蜂黃(접분봉황) 나비 날개의 흰 가루와 벌이 누른 빛이란 뜻으로, ①나비가 교미(交尾)하면 그 가루를 잃고, 벌이 교미하면 그 누른빛이 스러진다는 말 ②당(唐)나라 궁인(宮人)이 하던 단장(丹粧)의 이름

鳳鳴朝陽(봉명조양) '봉황(鳳凰)이 산의 동쪽에서 운다'는 뜻으로, 천하(天下)가 태평(太平)할 조짐(兆朕), 뛰어난 행위(行爲)를 칭찬(稱讚)하는 말

兩鳳齊飛(양봉제비) 두 마리의 봉황(鳳凰)이 나란히 날아간다는 뜻으로, 형제(兄弟)가 함께 영달함의 비유(比喩)

臥龍鳳雛(와룡봉추) 누운 용과 봉황(鳳凰)의 새끼라는 뜻으로, 누운 용은 풍운을 만나 하늘로 올라 가는 힘을 가지고 있고, 봉황(鳳凰)의 새끼는 장차 자라서 반드시 봉황(鳳凰)이 되므로, 때를 기다리는 호걸(豪傑)을 비유

騰蛟起鳳(등교기봉) 뛰어오르는 도롱뇽과 날아오르는 봉황(鳳凰)이라는 뜻으로, 재능(才能)이 많은 사람의 비유(比喩)

伏龍鳳雛(복룡봉추) 엎드린 용과 봉황(鳳凰)의 새끼라는 뜻으로, 엎드려 있는 용이란 제갈공명(諸葛孔明)을 가리키고, 봉왕의 새끼란 방사원(龐士元)을 이름인 데, 아직 세상(世上)에 알려지지 않은 특출(特出)한 인물(人物)을 비유

鳳麟芝蘭(봉린지란) 봉황(鳳凰), 기린(麒麟)과 같이 잘난 남자(男子)와 지초(芝草), 난초(蘭草)와 같이 예쁜 여자(女子)라는 뜻으로, 젊은 남녀(男女)의 아름다움을 형용(形容)하는 말

鳳鳥不至(봉조부지) 봉황(鳳凰)이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뜻으로, 세상(世上)에 聖君(성군)이 나타나지 않음을 한탄(恨歎)하는 말

龍瞳鳳頸(용동봉경) 용의 눈동자와 봉황(鳳凰)의 목이라는 뜻으로, 매우 잘 생긴 귀인(貴人)의 얼굴을 형용(形容)해 이르는 말

呱呱之聲 (고고지성)

呱呱之聲(고고지성)

아이가 처음 나면서 우는 소리

鷄皮鶴髮 (계피학발)

鷄皮鶴髮(계피학발)

사람이 늙어서 피부는 닭의 살갗과 같이 되고 머리는 세어 학의 날개처럼 희어졌다는 말

季札掛劍 (계찰괘검)

季札掛劍(계찰괘검)

季 계절 계, 끝 계 | 札 편지 찰, 뽑을 찰, 패 찰 | 掛 걸 괘 | 劍 칼 검 |

계찰이 검을 걸어 놓다는 뜻으로, 신의를 중시함을 비유하는 말.


《사기(史記)》 오태백세가편(吳太伯世家篇)에 보인다.

오(吳)나라 왕 수몽(壽夢)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막내 아들이 계찰(季札)이다. 계찰은 그 형제들 가운데 가장 현명하고 재능이 있어서 수몽은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였고 백성들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계찰은 왕위는 장자가 이어야 한다며 가족을 떠나 산촌에 살면서 밭을 갈며 살아 거절의 뜻을 분명히 했다.

계찰의 형들 역시 계찰의 높은 인격과 굳은 절개를 칭찬하며 차례로 집권하여 왕위가 그에게까지 이르도록 하려고 하였다. 계찰은 자신이 왕위에 오를 순서가 되었지만, 이때도 받지 않아서 왕은 계찰을 연릉(延陵)으로 봉후(封侯)했다. 그 후로부터 계찰을 연릉의 계자(季子)라 불렸다.

계찰이 처음 사신으로 길을 떠났을 때, 오(吳)나라의 북쪽으로 가는 도중에 서(徐)나라에 들러 서왕(徐王)을 알현하게 되었다. 서왕은 평소 계찰의 보검을 갖고 싶었으나 감히 말하지 않았다. 계찰 역시 속으로는 서왕이 자신의 보검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사신으로 중원(中原) 각 나라를 돌아다녀야 하였기 때문에 바치지 않았다.

각 나라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서(徐)나라에 도착해 보니 서왕은 이미 죽고 없었다. 이에 계찰은 보검을 풀어 서왕 집의 나무에 걸어놓고 떠났다[於是乃解其寶劍 繫之徐君家樹而去]. 그의 종자(從子)가 물었다.

"서왕은 이미 죽었는데 또 누구에게 주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계찰이 말하기를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처음에 마음속으로 그에게 주기로 결정하였는데, 그가 죽었다고 해서 내가 어찌 나의 뜻을 바꿀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계찰계검'은 이 글을 요약한 말이며, 중국의 유서(類書)인 《몽구(蒙求)》의 표제어에는 '계찰괘검(季札掛劍)'으로 적고 있다.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은 계찰의 인물됨을 평가하여, "연릉계자(延陵季子)의 어질고 덕성스런 마음과 도의(道義)의 끝없는 경치를 앙모한다. 조그마한 흔적을 보면 곧 사물의 깨끗함과 혼탁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어찌 그를 견문이 넓고 학식이 풍부한 군자가 아니라고 하겠는가!"라고 했다.


출전

사기(史記)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季布一諾(계포일락) | 季布一諾(계포일낙) | 季札繫劍(계찰계검) |

桂玉之歎 (계옥지탄)

桂玉之歎(계옥지탄)

桂玉之叹(guìyùzhītàn)

桂 계수나무 계 | 玉 구슬 옥 | 之 갈 지 | 嘆 탄식할 탄,또 우 |


식량(食糧) 구(求)하기가 계수 나무 구(求)하듯이 어렵고, 땔감을 구(求)하기가 옥을 구(求)하기 만큼이나 어려움


가난 |

戒愼恐懼 (계신공구)

戒愼恐懼(계신공구)

경계하고 삼가하며 두려워함

鷄鳴狗盜 (계명구도)

鷄鳴狗盜(계명구도)

鸡鸣狗盗(jīmínggǒudào)

鷄 닭 계 | 鳴 울 명 | 狗 개 구 | 盜 도둑 도 |


닭의 울음 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의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이라는 뜻으로, ①천한 재주를 가진 사람도 때로는 요긴(要緊)하게 쓸모가 있음을 비유(比喩)하여 이르는 말 ②'야비(野鄙)하게 남을 속이는 꾀'를 비유(比喩)한 말 ③잔재주를 자랑함

鷄肋 (계륵)

鷄肋(계륵)

쓸모가 별로 없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


후한 말, 삼국지로 유명한 촉(蜀)나라의 유비는 군사 제갈공명과 함께 위(魏)나라 조조의 대군을 한중땅에서 맞아 싸웠다. 조조의 군사는 너무 먼 거리를 원정했으므로 보급이 연결되지 않아서 한다하는 조조도 더 이상 싸운다는 것은 불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해서 패전(敗戰)을 한 것도 아닌지라 어떻게 명령을 내려야 좋을지 몰라서, 머리를 짜내고 있던 조조는 전군에게, '계륵(鷄肋)일 뿐이다'하며 아리송한 명령을 내렸다. 역전의 용장들도 조조의 마음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이때 양수라는 장수가 재빨리 후퇴할 준비를 서둘렀다. 장수들이 그에게 그 이유를 묻자 양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닭갈비는 먹을 만한 고기가 붙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이오. 한중 땅 역시 그런 곳이라고 주상께서는 생각하고 계신 것이라오."

요즈음에는 이 계륵은 '쓸모가 별로 없지만 버리자니 아까운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鷄卵有骨 (계란유골)

鷄卵有骨(계란유골)

鷄 닭 계 | 卵 알 란 | 有 있을 유 | 骨 뼈 골 |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말로, ①일이 공교롭게 틀어짐 ②운수가 나쁜 사람은 모처럼 좋은 기회를 만나도 역시 일이 잘 안됨을 뜻함.


조선(朝鮮) 초기에 대신 黃喜(황희)가 집이 가난하므로 임금의 명령(命令)으로 하루 동안 남대문으로 들어오는 상품은 모두 황희의 집으로 보내라 했으나, 이 날은 종일 비가 와서 아무 것도 들어오는 물건이 없다가 저녁 때 달걀 한 꾸러미가 들어왔는데, 달걀을 삶아 놓고 보니 모두 곯아서 먹을 수가 없었다는 데서 나온 말. 곯았다는 '곯'음과 骨(골)의 음이 비슷하므로 와전되어 계란유골이란 말로 바뀜


출전

송남잡지(松南雜識)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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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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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계란에도 뼈가 있다.
¶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鷄口牛後 (계구우후)

鷄口牛後(계구우후)

鷄 닭 계 | 口 입 구 | 牛 소 우 | 後 뒤 후 |

큰 조직의 말석을 차지하기보다 작은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는 편이 낫다는 뜻.

Better be the head of an ass than the tail of a horse.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에는 전국(戰國)시대의 모사(謀士) 소진의 일화가 실려 있다. 소진은 합종책(合從策)으로 입신(立身)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진(秦)나라 혜왕, 조(趙)나라의 재상인 봉양군 등을 만나 보았으나 환영 받지 못하였다.

그는 다시 연(燕)나라로 가서 문후(文侯)를 만나, 연나라가 조(趙)나라와 맹약을 맺어 진나라에 대항해야한다는 합종의 계획을 말하였다. 문후의 후한 사례에 고무된 소진은 얼마 후 한(韓)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그는 한나라의 선혜왕(宣惠王)을 만나 진나라를 섬기지 말 것을 권고하며 다음과 같이 유세하였다.

이번 기회에 남북으로 연합하는 합종책으로써 진나라의 동진(東進)을 막아보십시오. 옛말에 차라리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말라[寧爲鷄口無爲牛後]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선혜왕은 소진의 권유를 받아 들였다. 나머지 다섯 나라들도 그에게 설복되었으며, 결국 소진은 6국의 재상을 겸임하게 되었다.


출전

전국책(戰國策) 한책(韓策) | 사기(史記) 소진전(蘇秦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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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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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닭의 볏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마라.
¶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낫다.


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鷄群一鶴 (계군일학)

鷄群一鶴(계군일학)

범용한 사람 가운데 뛰어난 한 사람

☞ 群鷄一鶴(군계일학)

鷄犬昇天 (계견승천)

鷄犬昇天(계견승천)

鷄 닭 계 (ji1; 鳥-10획) | 犬 개 견 (quan3; 犬-총4획) | 昇 오를 승 (sheng1; 日-4획) | 天 하늘 천 (tian1; 大-총4획) |

다른 사람의 권세(權勢)에 빌붙어 승진(昇進ㆍ陞進)하는 것을 이르는 말

A hen and dog rise to heaven. If a man becomes immortal, even his hen and dog become immortal, too


신선전(神仙傳) 회남왕편(淮南王篇)에 실려 있다.

중국 한(漢) 나라 때 회남왕 유안(劉安:BC 179?∼BC 122)은 팔공(八公)이라고 불리는 신선에게 먹으면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신선이 된다고 하는 선단(仙丹)의 제조하는 기술을 전수 받았다. 고생 끝에 이 기술을 연마하여, 그는 곧 대낮에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집에서 기르던 개와 닭들도 약 그릇에 묻은 선약을 핥아먹었는데, 모두 함께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었다[鷄犬舐藥器者, 亦同飛去]고 전해진다. 중천에서 '꼬끼오' 하는 소리와 '멍멍멍' 개 짓는 소리가 한참동안이나 어지럽게 들려 왔다고 한다.


출전

신선전(神仙傳) 회남왕편(淮南王篇)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淮南鷄犬(회남계견) | 拔宅飛升(발택비승) | 一人得道 鷄犬昇天(일인득도 계견승천)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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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속담

When a man gets to the top, all his friends and relatives get there with him.
한 사람이 최고(最高)에 오르면, 그의 모든 친구들과 친척들은 그와 함께 그곳에 있게 된다.

When a man is at court, all his followers are in favor.
한 사람이 궁정(宮庭)에 가게 되면, 그의 수행원들도 모두 호의(好意)를 받게 된다.


중요도·활용도

缺效未遂 (결효미수)

缺效未遂(결효미수)

실행은 끝났으나 결과가 발생하지 아니함

隔靴搔榻 (격화소양)

隔靴搔榻(격화소양)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다는 뜻으로 일이 성에 차지 않음을 비유

驚惶罔措 (경황망조)

驚惶罔措 (경황망조)

놀라고 두려워서 어쩔 바를 모른다

犬兎之爭 (견토지쟁)

犬兎之爭(견토지쟁)

개와 토끼가 싸우다 지쳐서 둘 다 쓰러져 숨져있는 것을 지나가던 농부가 주워서 이득을 보았다는 데서 나온 말로, 제 3자가 이익을 얻게 됨을 비유

激濁揚淸 (격탁양청)

격탁양청(激濁揚淸)

흐린 물을 씻어내고 맑은 물을 흐르게 한다

'당서'(唐書)의 '왕규전'(王珪傳)에서 나온 말

結草報恩 (결초보은)

結草報恩(결초보은)

结草报恩(jiécǎobàoēn)。

結 맺을 결, 상투 계 | 草 풀 초 | 報 갚을 보, 알릴 보 | 恩 은혜 은 |

풀을 묶어서 은혜(恩惠)를 갚는다라는 뜻으로, ①죽어 혼이 되더라도 입은 은혜(恩惠)를 잊지 않고 갚음 ②무슨 짓을 하여서든지 잊지 않고 은혜(恩惠)에 보답(報答)함 ③남의 은혜(恩惠)를 받고도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사람에게 개만도 못하다고 하는 말


춘추시대 진(晉)나라에 魏武(위무)라는 사람이 어느날 위무자가 큰 병으로 몸져눕게 되었다. 아직 제정신일 때 그는 아들 魏顆(위과)에게 일러 말했다.

"내가 죽으면 이 첩을 다른 사람에게 개가를 시켜라."

그러나 위무자가 숨이 넘어갈 지경에 이르자 처음과 달리 유언하였다.

"내가 죽으면 저 여인은 순장을 시켜라."

위무자가 세상을 드디어 떠나자 아들은 아버지의 뒤에 한 유언을 정신이 혼미할 때 한 것이라고 판단하여 정신이 있을 때의 명령(命令)을 따라서 서모(庶母)를 개가시켜 순사(殉死)를 면하게 했다.

그후 진나라(秦)가 위무자의 아들 위과(魏顆)가 장수로 있던 진나라(晉)를 침략하자 위과는 진(秦)의 장수 두회(杜回)와 맞붙어 싸우게 되었다.

위과가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두회가 풀에 걸려 넘어져 위과가 두회를 사로잡아 뜻밖에도 큰 전공을 세울 수가 있었다. 그날밤, 위과의 꿈 속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말을 하는데 그는 서모의 아버지의 망혼이었다.

"나는 그대가 출가시켜 준 여인의 아비요. 그대는 아버님이 옳은 정신일 때의 유언에 따라 내 딸을 출가시켜 주었소. 그 때 이후로 나는 그대에게 보답할 길을 찾았는데 이제야 그 은혜를 갚은 것이오."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 십오년조(宣公 十五年條)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刻骨難忘(각골난망) | 結草(결초) | 難忘之恩(난망지은) | 難忘之澤(난망지택) | 白骨難忘(백골난망)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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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4급 사자성어 |

兼聽則明 (겸청즉명)

兼聽則明(겸청즉명)

兼 겸할 겸 | 聽 들을 청 | 則 곧 즉 | 明 밝을 명 |

자치통감(資治通鑒) 당기(唐紀) 태종(太宗) 정관(貞觀) 2년조의 이야기. 당나라 태종 때 위징(魏徵)이라는 유명한 정치가가 있었다. 그는 역사에 정통하였기 때문에 항상 당태종에게 여러 가지 계책을 건의하였다. 그는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벼슬이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이르렀다. 서기 628년, 즉위한지 얼마되지 않은 당태종이 그에게 물었다.

"나라의 군주로서 어떻게 해야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는가? 또한 일을 잘못 처리하는 경우 그 원인은 무엇인가?"

위징은 이렇게 대답했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다 들어보면 자연스럽게 정확한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쪽 말만 듣고 그것을 믿는다면 일을 잘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어서 위징은 역사적인 교훈을 예로 들면서, 군주의 편파적인 판단이 얼마나 큰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는지 설명하였다.

經天緯地 (경천위지)

經天緯地(경천위지)

온 천하를 경륜하여 다스림

敬天愛人 (경천애인, jìngtiānàiren)

敬天愛人(경천애인,jìngtiānàiren)

하늘을 공경(恭敬)하고 사람을 사랑함

驚天動地 (경천동지)

驚天動地(경천동지)

驚 놀랄 경 | 天 하늘 천 | 動 움직일 동 | 地 땅 지 |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움직이게 한다는 뜻으로, 몹시 세상(世上)을 놀라게 함을 이르는 말

world-shaking


출전

주자어록(朱子語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驚天(경천) | 動天驚地(동천경지)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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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敬天勤民 (경천근민)

敬天勤民(경천근민)

하느님을 공경하고 백성을 다스리기에 부지런함

磬竹難書 (경죽난서)

磬竹難書(경죽난서)

磬 경쇠 경 | 竹 대 죽 | 難 어려울 난, 우거질 나 | 書 글 서 |

저지른 죄(罪)가 너무 많아 이루 다 적을 수 없다는 말

죽간(竹簡: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사용된 서사 재료)을 모두 사용해도 기록할 수 없다는 뜻으로, 지은 죄가 많아서 글과 말로 일일이 다 표현할 수 없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 수(隋)나라의 제2대 황제 양제(煬帝)는 사치스런 생활을 하였으며, 대규모 토목공사와 고구려를 침공하여 살수에서 패하는 등 대외정벌을 계속함으로써 백성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주었다. 그래서 농민군의 이밀(李密)은 수 양제를 비판하는 격문을 발표하였는데, 《구당서(舊唐書)》 '이밀전'에 다음의 격문 내용이 나온다.

'남산의 대나무를 죽간으로 만들어 다 써도 그의 죄를 모두 적을 수 없으며, 동해의 물을 다 써도 그의 죄악을 씻어낼 수 없다[磬南山之竹 書罪無窮 決東海之波 流惡難盡].'

또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옥에 갇힌 협객 주세안(朱世安)이 공손하(公孫賀)의 죄를 고발하면서 '남산의 죽간을 다 허비해도 나의 말을 모두 기록하는데는 부족하다[南山之竹 不足受我詞]'라고 한 말이 《한서(漢書)》 '공손하전'에 전해진다.

[출전]
구당서(舊唐書)

輕燼浮薄 (경조부박)

輕燼浮薄(경조부박)

언어행동이 경솔하고 신중하지 못함

輕敵必敗 (경적필패)

輕敵必敗(경적필패)


경계

結者解之 (결자해지)

結者解之 (결자해지)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

兼人之勇 (겸인지용)

兼人之勇(겸인지용)

능히 몇 사람을 당해낼 만한 용기

敬而遠之 (경이원지)

敬而遠之 (경이원지)

공경하지만 멀리한다. 누구를 공경하는 것이 반드시 그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말. 또는 겉으로는 공경하되 멀리하라는 말.

見而不食 (견이불식)

見而不食(견이불식)

見 볼 견 | 而 말 이을 이 | 不 아닐 불 | 食 밥 식 |

보고도 먹지 못함. 보기만 하였지 먹을 수도 없고 가질 수도 없어 실속이 없고 보지 않은 것만도 못하다는 뜻. 아무 실속이 없다는 뜻.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그림의 떡.
¶ 그림의 선녀.

堅忍不拔 (견인불발)

堅忍不拔(견인불발)

堅 굳을 견 | 忍 참을 인 | 不 아닐 불, 아닐 부 | 拔 뽑을 발, 무성할 패 |

굳게 참고 견디어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함.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해 뜻을 이루자는 뜻으로 사용

結義兄弟 (결의형제)

結義兄弟(결의형제)

结义兄弟(jiéyì xiōngdi)。

結 맺을 결, 상투 계 | 義 옳을 의 | 兄 형 형, 두려워할 황 | 弟 아우 제, 기울어질 퇴 |

①남남끼리 의리(義理)로써 형제(兄弟) 관계(關係)를 맺음 ②또는 그런 형제(兄弟)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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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結約兄弟(결약형제) | 桃園結義(도원결의)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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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중요도 ★ |

鯨飮馬食 (경음마식, jīngyìnmǎshí)

鯨飮馬食(경음마식)

鲸饮马食(jīngyìnmǎshí)

鯨 고래(의 수컷) 경 | 飮 마실 음 | 馬 말 마 | 食 밥 식,먹을 식,먹이 사,사람 이름 이 |


고래가 물을 마시듯, 말이 풀을 먹듯이 많이 먹고 많이 마심


관련 한자어

유의어

暴飮暴食(폭음폭식) | 牛飮馬食(우음마식) |

見危致命 (견위치명)

見危致命(견위치명)

나라가 위급해지는 경우에 몸을 나라에 바치는 것

見危授命 (견위수명)

見危授命(견위수명)

見 볼 견, 뵈올 현 | 危 위태할 위 | 授 줄 수 | 命 목숨 명 |

위험(危險)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으로, 나라의 위태(危殆)로운 지경(地境)을 보고 목숨을 바쳐 나라를 위(爲)해 싸우는 것을 말함


《논어(論語)》 헌문(憲問)편에 나온다.

자로(子路)가 성인(成人)에 대해 묻자, 공자(孔子)는 지혜·청렴·용기·재예·예악(禮樂)을 두루 갖춘 사람이 성인이라고 대답한 뒤,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그러나 오늘날의 성인이야 어찌 반드시 그러하겠는가? 이로움을 보면 대의(大義)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 오래 전의 약속을 평생의 말(약속)로 여겨 잊지 않는다면, 또한 마땅히 성인이라 할 수 있다.(今之成人者 何必然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 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

공자는 여기서 지금의 성인은 옛날의 성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위의 세 가지 요건만 갖추면 성인이라 할 만하다는 뜻으로 이른 것이다. 이 문장에서 유래한 견위수명은 이후 나라를 위해서는 목숨도 아낌없이 바칠 줄 아는 충신을 일컫는 용어로 굳어졌다. 흔히 견리사의와 함께 '견리사의 견위치명'으로 어울려 쓰이는 경우가 많다.


출전

논어(論語) 헌문(憲問)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見危致命(견위치명)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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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犬猿之間 (견원지간)

犬猿之間(견원지간)

개와 원숭이의 사이라는 뜻으로, 사이가 매우 나쁜 두 관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氷炭之間(빙탄지간) | 氷炭不相容(빙탄불상용) | 不俱戴天(불구재천) | 不俱戴天(불구대천)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개와 고양이 사이. cat-and-dog terms
¶ 닭과 지네 사이.
¶ 새우와 돼지 사이.

敬畏之心 (경외지심)

敬畏之心(경외지심)


공경(恭敬)

謙讓之德 (겸양지덕)

謙讓之德(겸양지덕)

겸손한 태도로 남에게 사양하는 덕

擊壤歌 (격양가)

擊壤歌(격양가)

중국 堯임금 때 풍년이 들어 농부가 태평한 세월을 기리며 부른 노래

犬牙相錯 (견아상착)

犬牙相錯(견아상착)

犬 개 견 | 牙 어금니 아 | 相 서로 상, 빌 양 | 錯 어긋날 착, 둘 조 |

개의 어금니가 서로 맞물려 있다는 뜻으로 여러 가지 요인이 얽혀 복잡한 것을 이르는 말.


한서(漢書) 중산정왕전(中山靖王傳)의 이야기.

중국 한(漢)나라의 제1대 황제인 고조(高祖) 유방(劉邦)은 건국 후,각 지역에 다른 성씨(姓氏)의 제후(諸侯)들을 제거하고 같은 성씨(姓氏)의 인물들을 왕후로 봉하였다. 그러나 3번째 군주인 경제(景帝) 때에는 각 지역의 동성 제후들이 증대된 세력을 믿고 조정에 대항하며 제위를 다투었다.

오왕(吳王) 유비(劉濞)의 반란이 평정된 후, 경제는 다시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봉하였다.

한무제가 제위를 계승한 후, 조정 대신들은 이러한 왕후들이 다시 반란을 일으킬까 우려하며, 그들을 제거하도록 무제에게 건의하였다. 그러자 이러한 사실을 알게된 제후들이 반발하였다.

"우리는 모두 황실의 골육지친으로서 선왕께서 땅을 주시어 마치 개의 이빨처럼 서로 얽혀있으며, 서로 도와 도읍을 지키며 종실을 반석처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를 무고하다니, 이는 참으로 억울한 일입니다[諸侯王自以骨肉至親 先帝所以廣封連城 犬牙相錯者 爲盤石宗也]."

이들 중 중산정왕은 무제의 앞에서 대성통곡 하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한무제는 그들을 위로하면서도, 비밀리에 중앙집권 통치를 강화하였다. 犬牙相錯 이란 많은 요인들이 얽혀 상황이 복잡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한서(漢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견아교착(犬牙交錯) | 견아상림(犬牙相臨) | 犬牙相制(견아상제) |

見我舌 (견아설)

見我舌(견아설)

혀는 자기 생각을 나타내는데 필요할 뿐 아니라 상대를 위협하고 또는 추켜세워서 등용토록 하며, 책략에 걸리게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기라는 뜻

隔岸觀火 (격안관화)

隔岸觀火 (격안관화)

隔岸观火(gé'ànguānhuǒ)

隔 사이 뜰 격 | 岸 언덕 안 | 觀 볼 관 | 火 불 화,화반 화 |


三十六計 敵戰計 第九計. 강가에 앉아 맞은편 기슭에 난 불을 바라보다. 강 건너 불 보듯 하다. 수수방관하다.


강 건너 불보듯 하다. 우리에게도 쉽게 와닿는 말일 것이다. 문자 그대로의 계략이다. 건너편에 불이 나면 그냥 구경이나 하라는 것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적 진영이 자중지란에 빠지면, 조용히 그들의 변란을 기다린다. 횡폭한 세력은 자멸하기 마련이다. 사태의 변화에 순응하며 순리에 따라 행동하라.[陽乖序亂,陰以待逆.暴戾恣睢,其勢自斃.順以動豫,豫順以動.]"

역시나 간단한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이번에도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일화이다.

관도대전에서의 승리로 원소를 궤멸시킨 조조는 살아남은 원소의 두 아들, 원희(원소의 차남)과 원상(원소의 삼남)을 죽이고자 계속 추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袁家(원가)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 만리장성을 넘어 이민족의 땅에까지 쳐들어갔다.

하지만 조조가 신뢰하던 軍師(군사)인 郭嘉(곽가)가 죽어 조조는 크게 상심하고 있었다.

"봉효(곽가)가 죽은 것은 바로 하늘이 나를 망치려는 것이오."

그리고 여러 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모두 나이가 나와 비슷하지만 봉효는 한참 적소. 그래서 나는 후사를 그에게 부탁하려 했는데, 이렇게 뜻밖에 요절을 하니 가슴이 미어지는구려."

곽가를 모시던 사람들이 봉함된 편지를 바치며 말했다.

"곽공께서 돌아가실 무렵 손수 써서 봉해 놓은 편지이옵니다. '승상께서 만일 이 편지대로 하신다면 요동의 일은 평정될 것이다'고 하셨사옵니다."

조조는 편지를 뜯어 보고 머리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그 뜻을 몰랐다.

이튿날, 하후돈이 무리를 이끌고 들어와 품했다.

"요동태수 공손강은 오래전부터 賓服(빈복 : 제후가 천자에게 공물을 바치고 복종하는것)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 또 원희와 원상이 가서 의탁했으니 반드시 후환이 될 것이옵니다.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빨리 가서 토벌하는 것이 낫사옵니다. 그래야만 요동을 평정할 수 있습니다."

조조가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이 번거롭게 虎威(호위)를 뽐내지 않아도 며칠 후면 공손강이 스스로 원희와 원상의 머리를 보내올 것이오."

여러 장수들은 모두 믿으려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다. 조조는 여전히 군사를 역현에 묶어둔 채 움직이지 않았다. 하후돈과 장료가 들어와서 품했다.

"요동을 정벌하지 않을 것 같으면 허도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유표가 딴마음을 먹을까 두렵습니다."
"원희와 원상의 수급이 오면 즉시 회군하겠다."

여러 사람들은 은근히 비웃었다. 그 때 갑자기 사람이 들어와 공손강이 원희와 원상의 수급을 보내왔다고 아뢰었다. 여러 사람은 모두 크게 놀랐다. 조조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과연 곽봉효의 예상이 틀리지 않는구나!"

조조는 사자에게 큰 상을 내리고 공손강을 양평후 좌장군에 봉했다. 여러 관원이 조조에게 물었다.

"어째서 곽봉효의 예상이 틀리지 않다고 하시옵니까?"

조조는 곽가의 편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 원희와 원상은 요동으로 몸을 의탁하러 갔다고 하는데, 명공께서는 절대로 쳐들어가지 마소서. 공손강은 오래전부터 원씨가 자기의 땅을 빼앗을까봐 두려워 했는데 원희와 원상이 의탁하러 갔으니 반드시 의심을 할 것이옵니다. 만일 군사를 이끌고 가서 공격하면 반드시 힘을 합해 맞설 것이니 간단히 쳐부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공격을 늦추고 있으면 공손강과 원씨는 반드시 자기들끼리 죽이고자 획책할 것이옵니다. 그러니 명공께서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시면 되옵니다.

강건너 불구경하라는 隔岸觀火(격안관화)는 제5계인 趁火打劫(진화타겁)의 불난 집에 들어가 도둑질하라는 전략과 상충되는 면이 있다.

經世致用 (경세치용)

經世致用(경세치용)

经世致用(jīngshì zhìyòng)。

經 지날 경, 글 경 | 世 인간 세, 대 세 | 致 이를 치, 빽빽할 치 | 用 쓸 용 |

學問은 世上을 다스리는 데에 實質的인 利益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유학(儒學)의 한 주장(主張)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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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利用厚生(이용후생)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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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隔世之感 (격세지감)

隔世之感(격세지감)

隔 사이 뜰 격 | 世 인간 세, 대 세 | 之 갈 지 | 感 느낄 감, 한할 감 |

아주 바뀐 다른 세상(世上)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世代)와 같이 많은 변화(變化)가 있었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be astonished[amazed] at how much things have changed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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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隔世感(격세감) | 滄桑之變(창상지변) | 滄海桑田(창해상전)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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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傾城之美 (경성지미)

傾城之美(경성지미)

한 성을 기울어뜨릴 만한 미색

犬齧枯骨 (견설고골)

犬齧枯骨(견설고골)

개가 마른뼈를 핥는다 함이니 아무 맛이 없다는것

耕山釣水 (경산조수)

耕山釣水(경산조수)

산에서 밭을 갈고 물에서 고기를 낚음. 속세를 떠나 산중에서 농사짓고 사는 것

堅壁淸野 (견벽청야)

堅壁淸野(견벽청야)

堅 굳을 견 | 壁 벽 벽 | 淸 맑을 청 | 野 들 야, 변두리 여, 농막 서 |

성벽을 견고(堅固)히 지키고, 들의 작물(作物)을 거두거나 가옥(家屋)을 철거(撤去)하여 쳐들어오는 적에게 양식(糧食)이나 쉴 곳의 편의(便宜)를 주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우세(優勢)한 적에 대(對)한 작전(作戰) 수단(手段)을 말함


중국에서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해온 방어전술의 하나이다. 해자(垓子)를 깊이 파고 성벽의 수비를 견고히 하는 한편, 들어 있는 모든 곡식을 모조리 성내로 걷어들여 공격해 오는 적의 군량미 조달에 타격을 입히는 전법으로, 이러한 전법은 우세한 적에 대한 수단으로 흔히 약자가 사용한다. 청태조(淸太祖) 누르하치의 공격을 영원성(寧遠城)을 사수(死守)함으로써 패퇴시켰던 원숭환(袁崇煥)의 견벽청야 작전은 유명하다.

《삼국지(三國志)》의 순욱전(筍彧傳)에, 위(魏)의 조조(曹操)가 영주의 복양에 진을 치고 있는 여포(呂布)를 강하게 공격하였으나 여포는 무리한 싸움을 피하고 지구전(持久戰)으로 맞섰다. 이때 서주목사(徐州牧使) 도겸(陶謙)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조조는 서주를 빼앗기 위해 군사를 돌리려 하였다. 그러나 명참모 순욱이 이 작전을 말렸다.

“도겸이 죽으면서 서주의 인심이 동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깔보는 것은 금물입니다. 지금은 보리를 걷어들일 때이므로 서주에서는 주민을 총동원해 보리를 성내로 걷어들이고 성벽을 다져 전쟁 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견벽청야’이므로 우리의 공격은 먹혀들지 않을 것이며 만일 이때 여포가 이틈을 노려 공격해 온다면 그때는 끝장입니다.”

견벽청야 전술을 모를 리 없는 순욱이 조조에게 진언하고, 조조는 서주탈환 작전을 취소하고 여포공략에 힘을 쏟아 결국에는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출전

三國志(삼국지) 荀彧傳(순욱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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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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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4급 사자성어 |

格物致知誠意正心 (격물치지성의정심)

格物致知誠意正心(격물치지성의정심)

사물(事物)의 이치(理致)를 통찰해 자기(自己)의 지식(知識)을 확고히 하며, 사물의 이치를 통찰해 지식을 확고히 함

格物致知 誠意正心 修身齊家 治國平天下。(격물치지 성의정심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사물에 이르러 앎을 이루고,뜻을 성실히 하여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고 집안을 정돈하며,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한다.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정심(誠意正心)은 수신을 위한 공부이고, 제가(濟家)와 치국(治國) 및 평천하(平天下)는 수신의 결과임.

[출전]
大學(대학)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格物致知(격물치지) | 誠意正心(성의정심) | 修身齊家(수신제가) | 治國平天下(치국평천하) |

格物致知 (격물치지)

格物致知(격물치지)

格物致知(géwùzhìzhī)

格 격식 격, 가지 각, 마을 락(낙), 별 이름 학 | 物 물건 물 | 致 이를 치, 빽빽할 치 | 知 알 지 |

① (대학)六禮를 습득하여 지식을 명확히 한다는 말. ② (失子學) 사물(事物)의 이치(理致)를 통찰해 자기(自己)의 지식(知識)을 확고히 함. ③ (양명학) 부정을 바로잡고 큰 지혜를 키우는 것.

gaining knowledge by the study of things.


중국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말.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8조목으로 된 내용 중, 처음 두 조목을 가리키는데, 이 말은 본래의 뜻이 밝혀지지 않아 후세에 그 해석을 놓고 여러 학파(學派)가 생겨났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주자학파(朱子學派: 程伊川 ·朱熹)와 양명학파(陽明學派: 陸象山 ·王陽明)이다.

송(宋)나라 주자는 격(格)을 이른다[至]는 뜻으로 해석하여 모든 사물의 이치(理致)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앎에 이른다[致知]고 하는, 이른바 성즉리설(性卽理說)을 확립하였다. 주자의 설은 만물은 한그루의 나무와 풀 한포기에 이르기까지 그 이치(理致)를 가지고 있어 깊이 연구(硏究)하면 속과 겉의 세밀함과 거침을 명확히 알 수가 있다는 결과론으로 보여진다.

명나라 왕양명은 격물(格物)의 물(物)이란 사(事)로 봤다. 사란 마음의 움직임, 즉 뜻이 있는 곳을 말함이라 했다. 사람의 참다운 양지(良知)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물욕(物欲)을 물리쳐야 한다고 주장하여, 격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풀이한 심즉리설(心卽理說)을 확립하였다.

즉, 주자의 격물치지가 지식 위주인 것에 반해 왕양명은 도덕적 실천을 중시하고 있어 오늘날 주자학을 이학(理學)이라 하고, 양명학을 심학(心學)이라고도 한다.


출전

大學(대학)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格物致知(격물치지) | 誠意正心(성의정심) | 修身齊家(수신제가) | 治國平天下(치국평천하)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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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輕物重生 (경물중생)

輕物重生(경물중생)

輕 가벼울 경 | 物 물건 물 | 重 무거울 중, 아이 동 | 生 날 생 |

외물(外物)을 경시하고 생(生)을 중시한다

鏡無心姸媸自見 (경무심연치자현)

鏡無心姸媸自見(경무심연치자현)

鏡 거울 경 | 無 없을 무 | 心 마음 심 | 姸 고울 연 | 媸 추할 치 | 自스스로 자 | 見볼 견, 뵈올 현 |

거울은 무심해서 미추가 절로 드러난다


[출전]

木几冗談(목궤용담)


관련 한자어

관련어

鏡無心姸媸自見(경무심연치자현) | 衡無心輕重自見(형무심경중자현) | 衡無心輕重自見 鏡無心姸媸自見(형무심경중자현 경무심연치자현) |

見物生心 (견물생심)

見物生心(견물생심)

見 볼 견, 뵈올 현 | 物 물건 물 | 生 날 생 | 心 마음 심 |

물건을 보면 그것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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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见财起意[jiàncáiqǐyì] 재물을 보고 훔칠 욕심이 생기다 | 견리망의(見利忘義) 见利忘义[jiànlìwàngyì]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의리마저 저버리다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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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見蚊拔劍 (견문발검)

見蚊拔劍 (견문발검)

모기를 보고 칼을 빼어 든다. 하찮은 일에 너무 거창하게 덤빈다는 말.

經妙脫灑 (경묘탈쇄)

經妙脫灑(경묘탈쇄)

경쾌 미묘하여 범속의 기풍을 벗어난 용모

犬馬之齒 (견마지치)

犬馬之齒(견마지치)

자기 나이를 낮추어서 상대방에게 하는 말

犬馬之忠 (견마지충)

犬馬之忠(견마지충)

개나 말처럼 자기의 몸을 아끼지 않고 바치는 자기의 충성

犬馬之養 (견마지양)

犬馬之養(견마지양)

단지 어버이를 부양할 뿐 공경하는 마음이 없음을 이름

犬馬之勞 (견마지로)

犬馬之勞(견마지로)

임금이나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노력. 자기의 노력을 겸손히 일컫는 말.

見利思義 (견리사의)

見利思義(견리사의)

见利思义(jiànlì sīyì)。

見 볼 견, 뵈올 현 | 利 이로울 리(이) | 思 생각 사, 수염이 많을 새 | 義 옳을 의 |

눈앞에 이익(利益)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義理)에 합당(合當)한 지를 생각하라는 말


출전

論語(논어) 憲問篇(헌문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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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見利忘義(견리망의) |


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중요도 ★★ |

見利忘義 (견리망의)

見利忘義(견리망의)

见利忘义(jiàn lì wàng yì)

見 볼 견│利 이로울 이│忘 잊을 망│義 뜻 의



견리이망 기진(見利而忘其眞)의 준말. 눈 앞의 이익에 사로잡히게 되면 자기의 참된 처지를 모르게 된다. 이끗만 보고 의리를 생각지 아니함.


역상은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과 함께 고양(高陽)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역상은 자신의 4천 병마(兵馬)를 유방에게 바치고, 자신은 적진으로 돌진하여 여러 차례 큰공을 세웠다. 때문에, 유방은 천하를 차지하고 황제가 된 후, 역상을 우승상(右丞相)에 임명하고, 그를 매우 중시하였다.

유방이 죽자, 여태후(呂太后)가 대권을 장악하고 자기 친족들의 세력을 넓히려 하였다. 이에 여태후는 자신의 조카인 여신(呂辛)과 여록(呂祿)을 왕에 봉하고 중앙의 대권을 장악하려 하였다. 이 때문에 여태후는 민심을 얻지 못하고, 대신들의 반대를 당하게 되었다.

여태후가 죽자, 주발(周勃)과 진호(陳乎)를 중심으로 한 일부 신하들은 여씨 가족들을 살해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여록(呂祿)이 북군(北軍)을 관장하고 있었으므로, 주발은 그에게 접근하여 그를 죽일 방도가 없었다. 이때, 그에게 늙은 승상인 역상이 떠올랐다. 역상의 아들 역기와 여록은 친한 친구사이였으므로, 이러한 관계를 이용하여 여록을 유인하여 그를 제거할 수 있었다.

역상은 여씨 제거에 협조할 것을 동의하고, 역기에게 사냥을 구실로 여록을 유인해 내도록 명하였다. 주발은 이 틈을 이용하여 북군을 장악하고, 곧이어 여씨 가족 모두를 제거하였다. 같은 해, 역상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역기는 황제에 의해 장군에 봉하여졌다.

훗날, 사람들은 이 일을 두고, ˝역기는 친구를 팔아 먹었으며, 그러한 행위를 일러 곧 이익에 어두워 도의(道義)를 잊어버린 짓이라 한다[賣友者,謂見利而忘義].˝ 라고 기록하였다.

[충전] 한서열전(漢書列傳)-역상전


장자가 조릉(雕陵)이라는 정원에 놀러 갔다. 큰 새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 새를 활로 쏘기 위해 자 세히 보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미얀마제비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자 세히 보니 그 미얀마제비는 나무그늘에 있는 매미를 노리고 있었다. 미얀마제비가 노 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 매미는 맴맴하고 즐겁게 울고 있었다.

살아 있는 생물은 눈앞에 이익이 있으면 그것에 열중해서 자기의 처지를 잊어버린 다. 새도 미얀마재비도 매미도 모두 눈앞의 이익에 마음을 빼앗겨서 지금 자기에게 어떤 위험이 닥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장자는 만물은 이런 것이라고 깨닫고 득의양양해 있으니 뒤에서 정원지기가 다가와서, "여기 서 있는 당신은 누구요."하며 이 정원에 함부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장자 를 책망했다. 장자도 또한 이(利)를 보고 자기의 처지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출전] 장자


관련 한자어

유의어

螳螂窺蟬(당랑규선)│당랑박선(螳螂搏蟬)│螳螂捕蟬(당랑포선)│당랑재후(螳螂在後)

敬老思想 (경로사상)

敬老思想(경로사상)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

耕堂問奴 (경당문노)

耕堂問奴(경당문노)

농사일은 머슴에게 물어야 한다. 일은 항상 그 부문의 전문가와 상의하여 행하여야 한다는 뜻

見金如石 (견금여석)

見金如石(견금여석)

見 볼 견, 뵈올 현 | 金 쇠 금, 성씨 김 | 如 같을 여, 말 이을 이 | 石 돌 석 |

황금(黃金) 보기를 돌같이 한다는 뜻에서, ①지나친 욕심을 절제함 ②대의를 위(爲)해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돌보지 않는다는 의미(意味)


조선 전기의 학자인 성현(成俔:1439∼1504)의 수필집 《용재총화》에 나오는 말이다. "최영(崔瑩:1316∼1388) 장군이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는 항상 그에게 훈계하여 말하기를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하였다[崔鐵城瑩 少時 其父 常戒之曰 見金如石]."

고려의 명장이자 충신인 최영은 아버지의 말을 잊지 않으려고 비단천에 '견금여석'이라고 새겨서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 최영은 고려에 쳐들어온 홍건적(紅巾賊)과 왜구(倭寇) 등을 물리치고 높은 지위에 오른 뒤에도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남의 재물을 탐내지 않았으며 일반 백성들의 살림살이와 마찬가지로 겨우 생활하는 정도였다. 지나친 욕심을 절제하는 검소한 생활로 재물을 멀리하고 의리를 앞세웠던 것이다.

그 무렵 재상(宰相)들 사이에는 서로 돌려가며 집으로 초대하여 바둑을 두는 일이 있었는데, 어느 집이고 서로 다투어 진수성찬을 마련하여 누가 더 사치스럽게 잘 차리는 지를 뽐내었다. 최영이 대접할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그는 점심때가 훨씬 지나도록 음식상을 내지 않다가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상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잡곡밥에 채소반찬 뿐이었다. 그러나 손님들은 워낙 배가 고팠던 터라 밥그릇을 모두 비우며, "역시 최 장군 댁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칭찬(稱讚)했다. 그는 웃으며 대답(對答)했다.

"이도 또한 용병술의 하나입니다."


출전

용재총화(慵齋叢話)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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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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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經國濟世 (경국제세)

經國濟世(경국제세)

经国济世(jīngguó jìshì)。

經 지날 경, 글 경 | 國 나라 국 | 濟 건널 제 | 世 인간 세, 대 세 |

나라 일을 경륜(經綸)하여 세상을 구함. '경제(經濟)'의 본말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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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經世濟民(경세제민) | 經濟(경제)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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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傾國之色 (경국지색, qīngguózhīsè)

傾國之色 (경국지색)

倾国之色(qīng guó zhī sè)

傾 기울어질 경 | 國 나라 국 | 之 갈 지 | 色 빛 색 |


나라를 기울어지게 할 만큼의 미인.


원래 傾國의 본뜻은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이었으나, 나라 안에 으뜸가는 미인 혹은 나라를 뒤집어엎을 만한 절세미인을 지칭하기도 한다.

경국(傾國)이란 말은 이백(李白)의 '淸平調詞' 중 '名花傾國兩相歡' 구절과 백거이의 '장한가' 中 '한왕은 색(色)을 중히 여겨 경국(傾國)을 생각한다.'라는 구절, 항우에게서 자기 처자(妻子)를 변설로써 찾아준 후공(侯公)을 한고조(漢高祖) 가 칭찬한 데서도 찾을 수 있으며, 또한 이연년의 시에서도 볼수 있다.


한고조(韓高祖) 유방이 항우에게 부모와 처자식을 포로로 빼앗겨 괴로워하고 있을 때, 후공(侯公)이라는 자가 변설(辯舌)로써 이들을 구출한 일이 있다. 이때 유방은 이런 말을 했다.

"그대는 천하의 변사(辯士)요. 그 변설이면 나라도 기울게 할 것이오. "

유방은 여기서 '경국'이라는 말로 나라를 기울게 할 정도로 뛰어난 후공의 변설을 칭찬했다.

[출전] 史記(사기) : 項羽本紀(항우본기) |


경국지색은 중국 한무제(漢武帝) 때 협률도위(協律都尉:음악을 관장하는 벼슬)로 있던 이연년(李延年)이 지은 다음과 같은 시에 나온다.

北方有佳人
絶世而獨立
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
寧不知傾城與傾國
佳人難再得

북쪽에 어여쁜 사람이 있어
세상에서 떨어져 홀로 서 있네.
한 번 돌아보면 성을 위태롭게 하고
두 번 돌아보면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어찌 경성이 위태로워지고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모르리요만
어여쁜 사람은 다시 얻기 어렵도다.

이 노래는 무제 앞에서 절세미인인 자기 누이동생을 자랑하여 부른 것이었다.

항우와의 결전을 거쳐 천하를 통일한 유방이 세운 한(漢)은 무제(武帝) 때에 이르러 탄탄한 반석 위로 올라선다. 일찍 황후를 잃은 무제는 이때 이미 50고개를 넘어 있었고, 사랑하는 여인도 없이 쓸쓸한 처지였으므로 당장 그녀를 불러들이게 하였다. 무제는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와 날아갈 듯이 춤추는 솜씨에 매혹되었는데, 이 여인이 무제의 만년에 총애를 독차지하였던 이부인(李夫人)이었다. 그녀가 병들었을 때 무제가 문병을 와서 얼굴 보기를 청하였으나 초췌한 얼굴을 보이기 싫다고 끝내 얼굴을 들지 않았다 한다.

[출전]
漢書(한서) : 外戚傳(외척전) |


관련 한시

秋風辭(추풍사) | 長恨歌(장한가) | 淸平調詞三首(청평조사3수) | 北方有佳人(북방유가인) |


동의어·유의어

傾城之色(경성지색) | 萬古絶色(만고절색) | 絶世美人 | 羞花閉月(수화폐월) | 國香 | 國色 | 花容月態(화용월태) | 丹脣皓齒(단순호치) | 解語花(해어화) |

반의어

薄色(박색) |


관련 고사성어

하나라 걸왕과 매희: 酒池肉林(주지육림) |

은나라 주왕과 달기: 酒池肉林(주지육림), 炮烙之刑(포락지형) |

주나라 유왕과 포사: 丹脣皓齒(단순호치) |

정나라 영공과 하희: 三夫二君一子(삼부이군일자) |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 解語花(해어화) |


史記(사기) : 項羽本紀(항우본기) | 漢書(한서) : 外戚傳(외척전) | 長恨歌(장한가) | 淸平調詞三首(청평조사3수) |

箝口枯腸 (겸구고장)

箝口枯腸(겸구고장)

궁지에 몰리어 생각과 말이 막혀 대답을 못함

傾國 (경국, qīngguó)

傾國(경국)

倾国之色(qīng guó zhī sè)

傾 기울어질 경 | 國 나라 국 |


나라를 위태롭게 하다. 나라를 위태롭게 할 정도로 뛰어남. 나라를 기울어지게 할 만큼의 미인.


원래 傾國의 본뜻은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이었으나, 나라 안에 으뜸가는 미인 혹은 나라를 뒤집어엎을 만한 절세미인을 지칭하기도 한다.

경국(傾國)이란 말은 이백(李白)의 '淸平調詞' 중 '名花傾國兩相歡' 구절과 백거이의 '장한가' 中 '한왕은 색(色)을 중히 여겨 경국(傾國)을 생각한다.'라는 구절, 항우에게서 자기 처자(妻子)를 변설로써 찾아준 후공(侯公)을 한고조(漢高祖) 가 칭찬한 데서도 찾을 수 있으며, 또한 이연년의 시에서도 볼수 있다.


한고조(韓高祖) 유방이 항우에게 부모와 처자식을 포로로 빼앗겨 괴로워하고 있을 때, 후공(侯公)이라는 자가 변설(辯舌)로써 이들을 구출한 일이 있다. 이때 유방은 이런 말을 했다.

"그대는 천하의 변사(辯士)요. 그 변설이면 나라도 기울게 할 것이오. "

유방은 여기서 '경국'이라는 말로 나라를 기울게 할 정도로 뛰어난 후공의 변설을 칭찬했다.

[출전] 史記(사기) : 項羽本紀(항우본기) |

☞ 傾國之色 (경국지색)

傾箱倒篋 (경상도협)

傾箱倒篋(경상도협)

傾 기울 경 | 箱 상자 상 | 倒 넘어질 도 | 篋 상자 협 |

광주리를 기울이고 상자를 엎는다는 뜻으로, 가진 것을 남김없이 다 내놓아 극진히 환대함을 이르는 말


세설신어(世說新語) 현원(賢媛)편의 이야기.

진(晋)나라 때, 태위(太尉)인 치감(郗鑒)은 자신의 딸을 매우 예뻐하였다. 그는 사도(司徒)인 왕도(王道)의 아들과 조카들이 모두 훌륭하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청혼하고자 했다. 중매인은 왕씨 집안의 젊은이들을 살펴 본 후, 치감에게 말했다.

"왕씨댁의 자제들은 매우 훌륭하였습니다만, 한 자제는 배를 드러낸 채 침상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훗날 잠을 잤던 이 젊은이가 치감의 사위가 되었는데, 그는 왕도의 조카로서 후세에 이름을 날린 서예가 왕희지(王羲之)였다. 왕희지는 처남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사안(謝安)과 사만(謝萬) 등과는 마음이 잘 맞았다.

한번은 왕희지의 아내가 친정에 다니러 와서 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씨 집안 사람들은 사안과 사만이 오면 광주리를 다 쏟아[傾筐倒庋] 음식을 차려 맞이하면서도, 너희들이 오면 평상시 처럼 대접하니 다음부터 번거롭게 왕씨 댁에 내왕하지 않도록 해라."

王右軍郗夫人謂二弟司空、中郎曰:「王家見二謝,傾筐倒庋;見汝輩來,平平爾。汝可無煩復往。」世說新語  賢媛第十九

이 이야기에서 유래하여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다 내놓는다든가, 말을 숨기지 않고 다 하는 것을 일러 경광도협(傾筐倒篋)이라고 한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현원(賢媛) 第十九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傾筐倒庋(경광도기) | 傾筐倒篋(경광도협) |


중요도·활용도

輕擧妄動 (경거망동)

輕擧妄動 (경거망동)

함부로 가볍게 하는 짓

牽强附會 (견강부회)

牽强附會(견강부회)

牽 이끌 견, 끌 견 | 强 강할 강 | 附 붙을 부 | 會 모일 회 |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맞춤


전혀 가당치도 않은 말이나 주장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조건이나 이치에 맞추려고 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도리나 이치와는 상관 없이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면서 합당하다고 우기는 꼴이니, 지나치게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을 가리킬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이와 유사한 표현에는 '아전인수(我田引水)'가 있는데, 제 논에 물 대기라는 뜻으로, 자기에게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한다는 말이다. 또 '수석침류(漱石枕流)'는 돌로 양치질을 하고 흐르는 물로 베개를 삼는다는 뜻이니, 가당치도 않게 억지를 부린다는 말이요, '추주어륙(推舟於陸)'은 배를 밀어 육지에 댄다는 뜻이니, 역시 되지 않을 일에 억지를 쓴다는 말이다.

그밖에 '영서연설(郢書燕說)'이란 표현이 있는데, 이는 영 땅의 사람이 쓴 편지를 연나라 사람이 잘못 해석하고도, 자신이 해석한 내용대로 연나라를 다스렸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우리말에 '채반이 용수가 되게 우긴다'는 속담이 있으니, 가당치도 않은 의견을 끝까지 주장한다는 말이요, '홍두깨로 소를 몬다'는 속담 역시 무리한 일을 억지로 한다는 뜻으로, '견강부회'와 통한다.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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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郢書燕說(영서연설) | 附會(부회) | 傅會(부회)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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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劍號巨闕 (검호거궐)

劍號巨闕(검호거궐)

劍 칼 검 | 號 이름 호, 부르짖을 호 | 巨 클 거, 어찌 거 | 闕 대궐 궐 |

칼 중 에서는 거궐이 으뜸으로 불리웠다.

거궐(巨闕)은 칼 이름이고, 구야자가 지은 보검(寶劍)임

[출전]
千字文(천자문)

據虛博影 (거허박영)

據虛博影(거허박영)

어찌할수 없는 것


束手無策

乞骸骨 (걸해골)

乞骸骨(걸해골)

乞骸라고도 함. 老臣이나 관리가 임금에게 사직을 청할 때 쓰는 말

居之中天 (거지중천)

居之中天(거지중천)

텅빈 공간

擧族一致 (거족일치)

擧族一致(거족일치)

온 겨레의 뜻과 힘이 함께 뭉쳐 한결같음

擧措失當 (거조실당)

擧措失當(거조실당)

擧 들 거 | 措 둘 조, 섞을 착, 잡을 책, 찌를 척 | 失 잃을 실, 놓을 일 | 當 마땅 당 |

모든 조치(措置)가 정당(正當)하지 않음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의 이야기다.

진시황 26년, 즉 기원전 221년 진(秦)나라는 6국을 멸하고 천하(天下)를 통일했다. 진시황은 곧이어 전국을 36개 군(郡)으로 나누고 도량형(度量衡)을 통일했다. 이듬해, 진시황은 위덕(威德)을 선양하기 위하여 천하(天下)를 돌기 시작했다.

기원전 219년, 진시황은 태산(泰山)에서 제사를 지내고, 다시 남쪽으로 낭야산(琅邪山)에 올랐다. 이곳에서 진시황은 낭야대를 쌓고, 비석을 세워 자신의 공덕(功德)과 진(秦)나라 왕조의 덕정(德政)을 담은 비문(碑文)을 새겼다.

다음은 비문에 나오는 대목이다.

憂恤黔首, 朝夕不懈. 除疑定法, 咸知所辟. 方伯分職, 諸治經易. 擧錯必當, 莫不如畵.

'진시황께서는 백성(百姓)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조석(朝夕)으로 게으름을 피지 않으시고, 의혹을 제거하고 법령을 제정하시니 백성(百姓)들이 모두 법으로 금한 일을 피할 줄 알게 되었다. 지방 장관의 직무가 나뉘어서 모든 정무의 시행이 용이(容易)해지고, 모든 조치가 타당하여 바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출전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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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載斗量 (거재두량)

車載斗量(거재두량)

차에 싣고 말로 셀 만큼 물건이 흔하거나 많음.

去者日疎 (거자일소)

去者日疎(거자일소)

떠난 사람은 나날이 멀어진다는 말. 아무리 슬픈 死別(사별)을 했더라도 죽은 사람은 날이 감에 따라 차차 잊혀지고 절친한 사이였던 사람도 일단 멀리 떠나면 점차 疎遠(소원)하게 된다는 뜻이다.


去者日疎(거자일소)는 文選(문선)의 雜詩(잡시)항목에 실려 있는 작자미상의 시 첫대목에 나오는 구절. 시 전체는 인생의 무상을 읊어 읽는 사람을 공감으로 이끌면서 서글픔을 자아낸다.

去者日以疎․거자일이소
來者日以親․내자일이친
出郭門直視․출곽문직시
但見丘與墳․단견구여분

古墓爲田․고묘여위전
松柏爲薪․송백최위신
白楊多悲風․백양다비풍
蕭蕭愁殺人․소소수살인

思還故里閭․사환고리려
欲歸道無因․욕귀도무인

떠난 사람은 나날이 멀어지고
오는 사람은 나날이 친해지네
성문을 나서 곧바로 바라보니
보이는 것이라고는 언덕과 무덤뿐이네

옛 무덤은 뭉개져서 밭이 되고
소나무와 잣나무는 베어져 장작이 되었네
사시나무엔 슬픈 바람이 휘몰아쳐
쓸쓸히 사람의 애간장을 끊는구나

고향 마을에 돌아가려 마음 먹어보지만
돌아가본들 의지할 데라고는 없을테지

去者不追來者不拒 (거자불추내자불거)

去者不追來者不拒(거자불추내자불거)

去 갈 거 | 者 사람 자 | 不 아닐 불 | 追 따를 추 | 來 올 래 | 者 사람 자 | 不 아닐 불 | 拒 막을 거


가는 사람 붙들지 말고 오는 사람 뿌리치지 말라는 뜻.

이 말을 풀어서 “거자(去者)를 불추(不追)하고 내자(來者)를 불거(不拒)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공자의 말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지만, 이 말은 '맹자'에 있는 말이 쉬운 글자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맹자 진심편 하(盡心篇下)'에는 거(去) 대신 왕(往)이란 글자가 쓰여 있다. 이 왕(往)에는 시간이 지나가 버린 것을 뜻하는 예가 많아 거(去)로 바뀌어 일반화된 듯하다.

擧一反三 (거일반삼)

擧一反三(거일반삼)

擧 들 거 | 一 한 일 | 反 돌이킬 반, 돌아올 반, 어려울 번, 삼갈 판 | 三 석 삼 |

한 가지를 들어서 세가지를 돌이켜 안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을 미루어 모든 일을 헤아림. 매우 영리(怜悧ㆍ伶俐)함을 이르는 말


원래는 한 귀퉁이를 가리키면 나머지 세 귀퉁이도 미루어 헤아릴 수 있다는 뜻으로, 한 가지를 가르치면 세 가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하거나 지혜가 있음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 나온다.

공자가 말하였다.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 가르쳐 주지 않고, 표현하고자 하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더듬거릴 정도에 이르지 않으면 일으켜 주지 않는다. 한 귀퉁이를 들어 가르쳐 주었는데도 나머지 세 귀퉁이를 미루어 알지 못하면 되풀이하지 않는다(擧一隅 不以隅三 則不復也)."

공자는, 하나를 일러 주었음에도 나머지 셋을 미루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되풀이해서 가르쳐 주더라도 소용이 없고, 다만 그 셋을 알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음을 말한 것이다. 거일반삼은 여기서 유래하였다. 이와 같이 영리한 사람을 뜻하는 말에 '문일지십(聞一知十)'이 있는데,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뜻으로, 《논어》 공야장(公冶長)편에 나온다.

반대되는 표현으로는 '우이독경(牛耳讀經)'이 있는데, 이 말은 '쇠귀에 경읽기'라는 뜻이다.


출전

論語(논어) 述而篇(술이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문일지십(聞一知十) |

반의어·상대어

우이독경(牛耳讀經)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4급 사자성어 |

擧日反三 (거일반삼)

擧日反三(거일반삼)

한일을 미루어 모든 일을 헤아림

居移氣養移體 (거이기양이체)

居移氣養移體(거이기양이체)

사람은 그가 처해 있는 위치에 따라 기상이 달라지고, 먹고 입는 것에 의해 몸이 달라진다는 뜻.

鉅野洞庭 (거야동정)

鉅野洞庭(거야동정)

鉅 클 거 | 野 들 야 | 洞 골 동, 꿰뚫을 통 | 庭 뜰 정 |

거야(鋸野)는 태산(泰山) 동편에 있는 광야(廣野), 동정(洞庭)은 호남성(湖南省)에 있는 중국(中國) 제1(第一)의 호수(湖水)임

[출전]
千字文(천자문)

擧案齊眉 (거안제미)

擧案齊眉(거안제미)

举案齐眉(jǔ àn qí méi)。

擧 들 거 | 案 책상 안 | 齊 가지런할 제, 재계할 재, 옷자락 자, 자를 전 | 眉 눈썹 미 |

밥상을 눈썹 높이로 들어 공손(恭遜)히 남편(男便) 앞에 가지고 간다는 뜻으로, 남편(男便)을 깍듯이 공경(恭敬)함을 일컫는 말


후한서(後漢書) 양홍전(梁鴻傳)의 이야기다.

동한(東漢)시대, 집은 가난하지만 절개가 곧은 양홍(梁鴻)이란 학자가 있었다. 그는 일찍 부모를 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태학(太學)을 마쳐 많은 학식을 갖추었다. 그러나 그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들에서 돼지를 기르며 살았다.

그런데 맹(孟)씨라는 사람의 집에 다 자란 딸 맹광(孟光)이 있었는데, 그녀는 뚱뚱한 몸매에 시커먼 얼굴, 게다가 힘은 장사였다. 그녀의 부모가 그녀에게 결혼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묻자, 그녀는 '양홍(梁鴻)같은 훌륭한 분이 아니면 시집을 가지 않겠다'라고 대답했다.

이 소식을 들은 양홍(梁鴻)은 이 처녀에게 청혼을 하여 결혼을 했다. 결혼 후 며칠이 지나도 잠자리를 같이 아니하자 색시가 궁금하여 그 이유를 물었다.

양홍(梁鴻)이 대답(對答)하기를 "내가 원했던 부인은 비단옷 입고 진한 화장을 한 여자가 아니라 누더기 옷을 입고 깊은 산 속에서 살 수 있는 그런 여자였소."라고 했다. 그러자 색시는 "이제 당신의 마음을 알았으니 당신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라고 대답(對答)했다.

그 후로 그녀는 화장도 하지 않고 산골 농부의 차림으로 양홍(梁鴻)과 산 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베를 짜면서 생활했다. 양홍(梁鴻)은 농사짓는 틈틈이 시를 지어 친구(親舊)들에게 보냈는데, 왕실을 비방하는 시가 발각되어 오(吳)나라로 건너가 고백통이라는 병문가의 방앗간지기가 되어 지냈다. 그러나 양홍(梁鴻)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내는 밥상을 눈썹 위까지 들어올려 남편에게 공손하게 바쳤다고 한다. [不敢于鴻前仰視, 擧案齊眉] 고백통은 양홍(梁鴻) 내외를 보통으로 보지 않고 그들을 도왔고, 양홍(梁鴻)은 수십 편의 책을 저술할 수가 있었다.

擧案齊眉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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居安思危 (거안사위)

居安思危(거안사위)

居安思危[jū'ānsīwēi]

居 살 거, 어조사 기 | 安 편안 안 | 思 생각 사, 수염이 많을 새 | 危 위태할 위 |

편안할 때에도 닥칠지 모를 위태로움을 생각하며 정신을 가다듬음.


춘추 시대에 진(晉)나라와 초(楚)나라가 중원의 패권을 놓고 팽팽하게 맞섰다. 그런데, 진의 임금 여공(勵公)은 사람됨이 어리석고 향락에 눈이 멀어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 바람에 기강이 무너져 사회가 어지럽고, 지금까지 진나라를 따르던 제후들도 차츰 딴마음을 가지게 되어 초나라에 비해 열세를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다간 필경 나라가 망하고 말겠구나!”

대신들은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그중에서도 뜻이 무겁고 과단성이 있는 실력자 두 사람이 정변을 일으켰다. 그들은 여공을 죽이고, 국외에 있던 공자(公子)를 불러들여 임금으로 추대했다. 그가 곧 도공(悼公)이다. 진나라는 도공의 지도력과 대신들이 합심해서 협력하여 다시 초나라와 맞설 수 있을 정도의 국력을 회복하였다. 문제는 북방의 야인 부족 융적(戎狄)이었다. 이들이 등 뒤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한 마음 놓고 초나라와 맞설 수가 없는 것이다. 도공은 먼저 융적을 토벌하여 후환을 없앤다는 생각을 했으나, 대신인 위강(魏絳)이 간했다.

“그것은 안 될 말씀입니다. 우리 군사가 융적을 치러 나간 사이에 초나라가 갑자기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차라리 융적을 잘 달래어 화친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 임무를 신에게 맡겨 주십시오.”

도공도 그 말을 옳게 여겨 위강을 파견했고, 융적을 찾아간 위강은 유창한 언변으로 그들을 구슬려 동맹을 맺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마음 놓고 초나라와 패권을 겨루게 된 진나라는 두 강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정(鄭)나라를 쳐서 간단히 항복시키는 것으로 천하에 위세를 떨쳤고, 도공의 인망도 높아졌다. 대단히 만족한 도공이 정나라로부터 받은 예물의 절반을 위강에게 주며 공로를 치하하자, 위강이 말했다.

“면구스럽습니다. 주공(主公)의 위덕과 여러 대신들의 공이 더 큽니다. 아무쪼록 주공께서 ‘평안할 때도 위기를 생각하는 마음을 항상 가지시면’ 이 즐거움을 언제까지나 누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居安思危(거안사위) | 安居危思(안거위사) | 安不忘危(안불망위) | 有備無患(유비무환) |


반의어·상대어

死後淸心丸(사후청심환) | 死後藥方文(사후약방문) | 亡羊補牢(망양보뢰) |


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車水馬龍(거수마룡)

車水馬龍(거수마룡)

車 수레 거, 수레 차 | 水 물 수 | 馬 말 마 | 龍 용 룡(용), 언덕 롱(농), 얼룩 망, 은총 총 |

수레는 흐르는 물과 같고 말의 움직임은 하늘을 오르는 용과 같다는 뜻으로, 수레와 말의 왕래(往來)가 많아 매우 떠들석한 상황(狀況). 즉, 행렬(行列)이 성대(盛大)한 모양(模樣)을 말함


흐르는 물이나 길게 늘어진 용처럼 거마의 왕래가 잦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람의 행차가 장관을 이루는 모습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마후기(馬后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중국 한나라 명제의 비인 마후는 후한(後漢)의 장군 마원(馬援)의 딸로서 명제의 아들인 장제 때 황태후가 되었다. 장제는 마후가 낳은 자식이 아니었으나 황태후를 존중하고 마후의 외삼촌들에게 관직을 주려고 하였는데, 간사한 신하들은 동의했으나 마후는 이를 거부하였다.

마후는 장제에게 "친정에 가니 외삼촌들은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였고 하인들도 내 마부에 비길 수 없이 화려한 옷차림이었습니다. 집에 찾아오는 손님은 얼마나 많은지 '수레는 물흐르는 듯하였으며 말은 용이 헤엄치는 것과 같았습니다[車如流水馬如遊龍].' 그들의 사치함을 깨우쳐주지는 못하고 어찌 관작을 내리려고 합니까?"하고 말하였다.

마후의 말에서 유래한 성어(成語)로, 수많은 수레와 말들이 끊임없이 오가면서 장관을 이루는 성대한 행렬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마후기(馬后記)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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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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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車水馬龍 (거수마용)

車水馬龍(거수마용)

車 수레 거, 수레 차 | 水 물 수 | 馬 말 마 | 龍 용 룡(용), 언덕 롱(농), 얼룩 망, 은총 총 |

수레는 흐르는 물과 같고 말의 움직임은 하늘을 오르는 용과 같다는 뜻으로, 수레와 말의 왕래(往來)가 많아 매우 떠들석한 상황(狀況). 즉, 행렬(行列)이 성대(盛大)한 모양(模樣)을 말함


후한서(後漢書) 명덕마황후기(明德馬皇后紀)에 실린 이야기다.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가 죽자 태자 유장(劉莊)이 보위를 이으니, 그가 곧 2대 황제인 명제(明帝)다. 동한(東漢)의 명장(名將)인 마원(馬援)의 딸은 한나라 명제(明帝)의 비(妃)로 뽑혀 입궁하였다가 얼마후에는 후(后)의 자리에 올랐다.

마황후는 어질고 덕성스런 여자였다. 명색이 황후이면서도 옷차림이나 생활 태도가 극히 검소하고, 상하 구별을 두지 않고 인자하게 대했으므로 사람들의 경모와 칭송이 자자했다.

마황후의 한 가지 흠결이라면 아들을 못 낳는 것이었다. 그래서 명제는 후궁인 고씨(賈氏)한테서 난 아들을 태자로 삼아 마황후로 하여금 기르도록 했는데, 그녀는 이 아이를 친자식처럼 사랑하며 길렀다. 태자 역시 그녀를 친어머니처럼 여겨 효행이 지극했다.

명제는 제위 18년 만에 죽고, 태자가 보위를 이어받았다. 그가 3대 황제 장제(章帝)다. 따라서 마황후는 자연히 황태후로 대궐의 가장 웃어른이 되어 권위가 막강했다.

일부 간신들은 황태후의 형제들을 제후에 봉해 줄 것을 황제에게 건의하여, 황태후에게 아부하려고 생각하였다. 이에 황태후 마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금상(今上),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일찍이 광무 황제께서는 ‘후비(后妃)의 가족은 제후에 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셨지요. 그 뜻이 무엇이겠소? 황실 외척의 세력이 턱없이 강해지는 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 친정집에 인사차 찾아가는 손님들의 행렬을 보니, ‘수레는 흐르는 물 같고 말들은 늘어져 꿈틀대는 용처럼 보입디다[車如流水 馬如遊龍(거여유수 마여유용)]’. 아부배들이 하는 소리는 절대 이 어미가 바라지도 허락하지도 않을 일이니 명심하세요.”

車水馬龍이란 권세있는 자에게 줄을 대보려는 아부꾼들의 차량 행렬을 묘사한 말이며, 수레들의 왕래가 많아 매우 떠들석한 상황을 뜻한다.


출전

후한서(後漢書)의 마후기(馬后記)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車如流水馬如遊龍(거여유수 마여유용) |

擧世皆濁 (거세개탁)

擧世皆濁(거세개탁)

擧 들 거 | 世 세상 세 | 皆 다 개 | 濁 흐릴 탁 |

온 세상이 다 흐림.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음.

'거세개탁'은 초(楚)나라의 충신 굴원이 지은 '漁父辭(어부사)'에 실린 고사성어다.

초나라 忠臣(충신) 屈原(굴원)이 간신의 모함을 입고 벼슬에서 쫓겨나와 강가를 거닐며 憔悴(초췌)한 모습으로 시를 읊고 있는데 고기잡이 영감이 배를 저어 지나다가 그가 굴원인 것을 알고, 어찌하여 이 꼴이 되었느냐면서 안타까워 까닭을 물었다. 굴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온 세상이 흐려 있는데 나만이 홀로 맑고 뭇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이 홀로 깨어 있다. 그래서 쫓겨난 것이다[擧世皆濁 我獨法 衆人皆濁 我獨醒(거세개탁 아독법 중인개탁 아독성)].”

온 세상이 혼탁한 가운데서는 홀로 맑게 깨어있기가 쉽지 않고, 깨어있다고 해도 세상과 화합하기 힘든 처지를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된다.

乞不竝行 (걸불병행)

乞不竝行(걸불병행)

구걸하는 사람은 같이 다니지 않는다.

무엇을 요구하거나 청을 할때는 혼자서 가는 것이 이롭다는 뜻

乾木水生 (건목수생)

乾木水生(건목수생)

마른나무에서 물이 난다는 뜻.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 무엇을 무리하게 내라고 요구함을 비유한 말.

黔驢之技 (검려지기, Qiánlǘzhījì)

>黔驢之技(검려지기)

黔驴之技(Qiánlǘzhījì)

黔 검을 검,귀신 이름 금 | 驢 당나귀 려(여) | 之 갈 지 | 技 재주 기 |


검주에 사는 당나귀의 재주라는 뜻으로, 보잘것없는 기량을 들켜 비웃음을 산다는 말.


옛날 중국 검주(黔州:구이저우성의 별명)에는 당나귀가 없었다. 그런데 호기심이 많은 어떤 사람이 당나귀 한 마리를 배로 실어 왔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당나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또 무엇에 써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산 아래 풀어 놓아 먹이며 키웠다.

어느 날 산속을 어슬렁거리던 호랑이가 이 당나귀를 보고 자기보다 큰 데 놀랐다. 호랑이는 지금까지 당나귀를 본 일이 없었으므로 신수(神獸)라 생각하고는 숲속에 몸을 숨기고 가만히 동정을 살폈다. 얼마 후 호랑이는 슬슬 주위를 살피며 숲에서 나와 당나귀에게 접근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이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당나귀가 갑자기 소리 높이 울었다. 그 소리를 들은 호랑이는 '이건 분명 나를 잡아 먹으려는 것이다' 생각하고 황급히 도망을 쳤다.

며칠이 지나자 그 우는 소리에도 익숙해지고 아무래도 무서운 동물은 아닌 듯하였다. 호랑이는 당나귀의 주위를 서성거려 보았으나 당나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용기가 생긴 호랑이는 당나귀의 본성(本性)을 시험해 보려고 일부러 지분거려 보았다.

그러자 당나귀는 화가 나서 호랑이에게 뒷발질을 할 뿐이었다. 호랑이는 당나귀에게 그 밖의 기량이 없음을 알게 되자 좋아하며 당나귀에게 덤벼들어 순식간에 잡아먹어 버렸다.

기술·기능이 졸렬함을 비유하거나 또는 자신의 재주가 보잘것없음을 모르고 나서거나 우쭐대다가 창피를 당하거나 화(禍)를 자초(自招)함을 비유한 우화(寓話)로 유종원(柳宗元)의 〈삼계(三戒)〉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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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戒(삼계) | 柳宗元(유종원) |

去頭截尾 (거두절미)

去頭截尾 (거두절미)

앞뒤로 길게 이야기하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擧棋不定 (거기부정)

擧棋不定(거기부정)

擧 들 거 | 棋 바둑 기 | 不 아닐 부, 아닐 불 | 定 정할 정, 이마 정 |

바둑을 두는 데 포석(布石)할 자리를 결정(決定)하지 않고 둔다면 한 집도 이기기 어렵다는 뜻으로, 사물(事物)을 명확(明確)한 방침(方針)이나 계획(計劃)을 갖지 않고 대함을 의미(意味)


춘추좌전(春秋左傳) 양공(襄公) 25년조에 나오는 이야기다.

춘추말기, 즉 기원전 548년 위(衛)나라 대부(大夫) 손임보(孫林父)와 영식 등은 위나라 헌공(獻公)을 축출하고, 그의 동생인 상공을 군주로 삼았다. 복귀하려는 계책을 세우던 헌공은 사람을 보내어 영식의 아들인 영희에게 자신을 도와준다면 돌아가서 위나라의 정무(政務)를 그에게 맡기겠다는 말을 전했다. 영희는 매우 기뻐하며 곧 협조하겠다고 응답했다.

대숙문자(大叔文子)가 이 소문을 듣고, 영희의 우유부단한 태도를 걱정하며 말했다.

"군자는 행동함에 그 종말을 생각하고, 그대로 행해도 좋은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는 군주 보기를 바둑 두는 일 같이도 여기지 않으니, 어찌 화를 면하랴! 바둑 돌을 들고 놓을 곳을 정하지 못하면 상대를 이기지 못하는데[弈者擧棋不定, 不勝其耦], 하물며 군주를 모시는 일에 주관이 없어서야?"

12년 후, 영희는 군주로 복귀한 헌공의 손에 죽었다.

擧棋不定이란 확고한 주관이 없거나 계획이 수시로 바뀜 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 左傳˙襄公二十五年 |

成語“舉棋不定”出自春秋時期《左傳﹒襄公二十五年》:“弈者舉棋不定,不勝其耦。”
說的是下圍棋而舉棋不定,猶猶豫豫者無法取勝。
這也是現存中國曆史上最早關於圍棋的確切記載。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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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坤一色 (건곤일색)

乾坤一色(건곤일색)

하늘과 땅이 한 빛임

乾坤一擲 (건곤일척)

乾坤一擲

하늘 건 | 땅 곤 | 한 일 | 던질 척 |


하늘과 땅을 걸고 단판걸이로 승부를 겨루다. 곧 운명과 흥망을 걸고서 단번에 결판을 내는 것을 말한다.

唐(당)나라의 대문장가 韓愈(한유)가 鴻溝(홍구)를 건너다가 그 옛날 楚(초)나라 項羽(항우)와 漢(한)나라 劉邦(유방)이 이 江(강)을 경계로 하여 천하를 나누었던 일을 생각해내고 ‘홍구를 지나면서(過鴻溝)’란 七言絶句(칠언절구) 시 한 수를 읊었다. 홍구는 현재 河南省(하남성) 開封(개봉)서쪽을 흐르는 강.

龍疲虎困割川原·용피호곤할천원
億萬蒼生性命存·억만창생성명존
誰勸君王回馬首·수권군왕회마수
眞成一擲賭乾坤·진성일척도건곤

용은 지치고 호랑이는 피곤하여 영토를 나누니
만천하 백성들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구나
그런데 누가 군왕의 말머리를 돌리도록 해서
하늘과 땅을 걸고 단판 승부를 내게 했던고

첫 행의 용과 호랑이는 유방과 항우를 가리킨다.두 사람은 秦(진)나라를 무너뜨린 다음에는 서로가 천하를 독차지하려고 피나는 싸움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싸움은 일진일퇴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천하를 둘로 나누기로 하고 유방은 홍구에서 서쪽을, 항우는 동쪽을 차지하기로 했다.이렇게 되어 백성들은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두번째 행의 뜻.

셋째 행에서 유방의 말머리를 돌리게 한 사람은 참모 張良(장량)과 陳平(진평)이었다. 약속대로 항우는 동쪽으로 철수하고 유방도 철군하려하자 두 참모는 이렇게 진언했다. “지금 초나라 군사들은 지쳐있으며 식량도 떨어졌습니다. 초나라를 물리칠 수 있는 하늘이 주신 절호의 기회입니다.”이 말을 받아들여 서쪽으로 가려던 유방은 말머리를 돌려 넷째 행대로 운명과 흥망을 건 乾坤一擲(건곤일척)의 승부로 천하를 거머쥐게 된 것이다.


하늘 | 땅 | 韓愈(한유) |

桀犬吠堯 (걸견폐요)

桀犬吠堯(걸견폐요)

桀犬吠尧(JiéquǎnfèiYáo)

桀 홰 걸,하왕 이름 걸 | 犬 개 견 | 吠 짖을 폐 | 堯 요임금 요 |


폭군 걸왕(桀王)의 개도 성왕(聖王) 요(堯)임금을 보면 짓는다는 뜻으로, 웃사람이 교만(驕慢)한 마음을 버리고 아랫 사람을 진심(眞心)과 믿음으로 대하면 아랫사람은 자기(自己) 상관(上官)에게 충성(忠誠)을 다하게 된다는 것을 이름


사기(史記) 노중련추양(魯仲連鄒陽)열전에는 한(漢)나라 경제(景帝)때의 유명한 학자인 추양(鄒陽)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처음에, 추양은 뛰어난 문장력과 언변을 가지고 오왕(吳王) 수하에서 벼슬을 하였는데, 오왕이 반란을 꾀하자, 그는 이를 따르지 않고 간언하는 글을 올렸다. 오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추양은 양(梁)나라 효왕(孝王)에게 귀순하였다.

그러나 효왕의 심복들은 추양의 재능을 시기하여, 효왕에게 그를 중상모략했다. 크게 노한 효왕은 추양을 구금하고 사형에 처하려 했다. 그는 목숨을 지키기 위하여 효왕에게 글을 올려 모략당한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모두 충절지사였음을 말하고, 사실을 정확히 살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글에서 어진 선비에게 벼슬과 봉록을 베푼다면, 포악한 걸왕의 개라도 성왕(聖王)인 요임금에게 대들어 짖게 할 수 있다[傑之狗可使吠堯]라고 하였다. 양 효왕은 이 글에 매우 감동하여, 그를 석방하였다.

傑犬吠堯란, 하(夏)나라 폭군 걸왕이 부리는 개가 그의 명을 받고 요임금과 같은 성왕(聖王)에게도 짖고 덤벼드는 것처럼 자기가 섬기는 사람에게는 선악시비(善惡是非)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충성을 다함을 비유한 말이다.


'사기(史記) 회음후전(淮陰侯傳)'에는 "도척(盜跖)의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는다(跖之狗吠堯)"고 되어 있다.

도척(盜跖)은 중국(中國) 춘추(春秋) 시대(時代)의 큰 도둑으로서 공자와 같은 시대(時代)의 노(魯)나라 사람이었다. 현인(賢人) 유 하혜의 아우로 그의 도당 9천명과 떼를 지어 전국(全國)을 휩쓸었다 전해진다.

결국 개는 주인만을 알아볼 뿐 그 밖의 사람에게는 사정을 두지 않는다는 뜻이며, 나아가서는 인간도 상대의 선악(善惡)을 가리지 않고 자기가 섬기는 주인에게만 충성을 다한다는 뜻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跖狗吠堯(척구폐요) |


史記:魯仲連鄒陽. 사기:노중련추양열전 | 史記:淮陰侯列傳, 사기:회음후열전 |

鏡花水月 (경화수월)

鏡花水月(경화수월)

鏡 거울 경 | 花 꽃 화 | 水 물 수| 月 달 월 |

거울 속의 꽃이나 물에 비친 달이라는 뜻으로, ①눈에 보이나 손으로 잡을 수 없음 ②시의 정취(情趣)가 말로 표현(表現)할 수 없을 정도(程度)로 훌륭함을 이르는 말


출전

시가직설(詩家直說)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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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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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客窓寒燈 (객창한등)

客窓寒燈(객창한등)

나그네의 외로운 숙소에 비치는 차고 쓸쓸한 등불. 외로운 나그네 신세

客地眠食 (객지면식)

客地眠食(객지면식)

객지에서 자고 먹는 일. 곧 객지생활을 하는 상태

開源節流 (개원절류)

開源節流(개원절류)

開 열 개, 평평할 견 | 源 근원 원 | 節 절제할 절 | 流 흐를 류(유) |

재원(財源)을 늘리고 지출(支出)을 줄인다는 뜻으로, 부를 이루기 위하여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原則)을 비유(比喩ㆍ譬喩)한 말


춘추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학자 순황(荀況)은 순자(荀子)를 저술하였다. 그는 부국(富國)편에서 국가의 강약과 빈부에 대해 설명하였다.

순황은 경제를 물에 비유하여 생산과 수입은 원천(源)으로, 비용과 지출은 흐름(流)으로 파악하였다. 그는 부국의 요체는 바로 원천을 늘리고(開源) 흐름을 줄이는(節流) 것으로 보았다.

국가가 부강해지고자 한다면, 조정은 백성들을 사랑해야 하며, 그들로 하여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해야한다고 했다. 이렇게 하여 백성들은 적극적으로 생산에 임하며, 그 축적된 것이 증가함에 따라 국고(國庫)가 충실해지고, 국가는 곧 부강해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반대로 조정에서 생산은 돌보지 않고 무거운 세금만 부과하며 물자를 아끼지 않는다면, 백성들과 나라가 빈곤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이에 대한 군주의 의무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온 백성이 천시(天時)의 화기(和氣)를 얻고 사업에 차서를 얻으니 이는 재화의 본원이요, 차등을 두어 거둬들인 국고의 저장물은 재화의 지류(支流)이다. 그러므로 명철한 군주는 반드시 신중하게 화기를 기르고 그 지류를 절제하며, 재화의 원천을 더욱 개발하여야 한다[故明主必謹養其和, 節其流, 開其源]

여기서 유래하여 이 고사성어는 국가 재정에만 국한되지 않고, 부를 이루기 위해 지켜야 할 철칙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출전

순자(荀子) 부국(富國)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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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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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중요도 ★ |

改玉改行 (개옥개행)

改玉改行(개옥개행)

改 고칠 개 | 玉 구슬 옥 | 改 고칠 개 | 行 다닐 행, 항렬 항 |


차고 다닐 玉의 種類를 바꾸면 걸음걸이도 바꾸어야 함. 법을 변경(變更)하면 일도 고쳐야 한다는 뜻.


옛날 중국의 귀족 관리들은 그 등급과 지위에 따라 몸에 차고 다니는 패옥(佩玉)이 서로 다르고, 각종 의식을 거행할 때 걸어가는 간격과 속도도 달랐다. 따라서 신분이 상승하면 차고 다니는 패옥도 그에 맞게 바뀌고, 걸음걸이도 바뀌게 되었다. 개옥개행은 이러한 상황을 가리키는 말로서 《국어(國語)》의 '주어(周語)'편과 《순자(荀子)》의 '왕패(王覇)'편 등에 보인다. 나중에는 의미가 확장하여 지위가 달라지면 그에 따라 예절도 달라지거나 법을 바꾸면 그에 맞게 시행(施行)도 바뀌어야 함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출전

國語(국어)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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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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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중요도 ★ |

蓋世之才 (개세지재)

蓋世之才(개세지재)

일세를 뒤덮을 만한 재주, 또 그런 재주를 가진 인재.

客反爲主 (객반위주)

客反爲主(객반위주)

客 손 객 | 反 돌이킬 반 | 爲 할 위 | 主 주인 주 |

손이 도리어 주인(主人) 행세(行世)를 한다는 뜻으로, ①주객이 전도(顚倒)됨을 이르는 말 ②사물(事物)의 대소(大小), 경중(輕重), 전후(前後)을 뒤바꿈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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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賊反荷杖(적반하장) | 主客顚倒(주객전도)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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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배보다 배꼽이 크다.
¶ 산보다 골이 크다.
¶ 기둥보다 서까래가 더 굵다.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4급 사자성어 |

開門揖盜 (개문읍도)

開門揖盜(개문읍도)

開 열 개, 평평할 견 | 門 문 문 | 揖 읍할 읍, 모을 집, 모을 즙 | 盜 도둑 도 |

일부러 문을 열어 놓고 도둑을 청한다는 뜻으로, 긴박한 주위 사정을 깨닫지 못하고 감상(感傷)이나 비탄에 빠져 스스로 화를 불러 들인다는 말


삼국지(三國志) 오서(吳書) 손권전(孫權傳)의 이야기다.

후한(後漢) 말, 조정의 통제력이 상실되자, 강동(江東)의 손책(孫策)은 자신의 세력 기반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에 당거의 태수(太守)인 허공(許貢)은 천자 헌제(獻帝)에게 밀서(密書)를 보내 손책을 제거할 것을 건의하고자 하였으나, 상서문이 중도에 손책의 손에 들어가게 되고, 크게 노한 손책은 무력으로 허공을 죽여버렸다. 그 때 허공의 집에 있던 세 명의 식객(食客)은 손책의 무력에서 간신히 탈출하였다.

이들은 허공의 원수를 갚기 위해 손책이 사냥을 즐겨하는 것을 알고 이를 노려 손책을 덮쳤다. 이때 손책은 깊은 상처를 입고 간신히 도망쳤으나 그 후 상처가 악화되어 위독해지자 동생인 손권에게 뒷일을 맡기고 죽었다.

그러나 손권이 형의 죽음을 슬퍼하여 비탄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어 손책의 가신(家臣)인 장소(張劭)가 손권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하였다.

"지금 간사한 무리들이 우리들을 뒤쫓아오고, 이리 같은 놈들이 도처에 숨어 있는데, 부친의 죽음만을 슬퍼하고 대사(大事)를 돌보지 않고 있으니, 이는 문을 열어 도둑을 맞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是猶開門揖盜]. 난세에는 욕심이 많은 늑대가 득실거리는 법입니다. 정신차리십시오!"

손권은 이 충고의 참뜻을 깨달아 그 즉시 상복을 벗어던지고 군대를 순시하러 나섰고, 아버지 손견(孫堅)의 원수 황조(黃祖)를 무찌르고 적벽(赤壁)에서는 유비(劉備)와 연합하여 조조(曹操)의 군대를 격파하여 강남(江南)에서 그의 지위를 굳혔으며, 조조의 아들 조비(曹丕)가 후한(後漢)의 헌제(獻帝)를 협박하여 제위(帝位)를 빼앗아 국호를 위(魏)라 하고 황제를 칭하자, 손권도 제위에 올라 오(吳)·위·촉한(蜀漢)의 삼국시대(三國時代)를 열게 된 주역으로서 역사와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출전

삼국지(三國志) 오서(吳書) 손권전(四七孫權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開門納盜(개문납도) | 開門納賊(개문납적) | 開門而揖盜(개문이읍도)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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開物成務 (개물성무)

開物成務(개물성무)

開 열 개, 평평할 견 | 物 물건 물 | 成 이룰 성 | 務 힘쓸 무, 업신여길 모 |

①만물(萬物)의 뜻을 열어 천하(天下)의 사무(事務)를 성취(成就)함 ②사람이 아직 모르는 곳을 개발(開發)하고, 사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성취(成就)시킴

주역에 나온 말로 `만물의 뜻을 열어 천하의 사무를 성취한다`는 뜻이다. 사람이 아직 모르는 곳을 개발하고 이루려는 바를 성취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출전]
역경(易經)

更無道理 (갱무도리)

更無道理(갱무도리)

다시는 어쩔 도리가 없음.

開門納賊 (개문납적)

開門納賊(개문납적)

开门纳贼(kāiménnàzéi)。

開 열 개, 평평할 견 | 門 문 문 | 納 들일 납 | 賊 도둑 적 |

문을 열고 도둑을 맞아들인다는 뜻으로, 스스로 화(禍)를 불러들임을 이르는 말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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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開門而揖盜(개문이읍도) | 開門揖盜(개문읍도)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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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중요도 ★★ |

改頭換面 (개두환면)

改頭換面 (개두환면)

改头换面 (gǎi tóu huàn miàn)

改 고칠 개│頭 머리 두│換 바꿀 환│面 낯 면,밀가루 면


일의 근본(根本)은 고치지 않고 단지 그 겉만을 고침


얕음

開卷有益 (개권유익)

開卷有益(개권유익)

開 열 개, 평평할 견 | 卷 책 권, 말 권, 곤룡포 곤 | 有 있을 유 | 益 더할 익, 넘칠 일 |

책을 펴서 읽으면 반드시 이로움이 있다는 뜻으로, 독서(讀書)를 권장(勸奬)하는 말. 개권(開卷)은 책을 펴서 읽는 것을 말함


승수연담록(繩水燕談錄)은 송(宋)나라 왕벽지(王闢之)가 남송(南宋) 고종(高宗) 이전의 잡다한 일화들을 모아 엮은 책인데, 이 책의 권6에는 독서를 무척 좋아했던 송나라 태종(太宗)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태종은 이방(李昉) 등 14명의 학자들에게 사서(辭書)를 편찬하도록 명하였다. 이들은 이전에 발간된 많은 책들을 널리 인용하는 등 7년 동안의 작업을 통하여 사서를 완성하였다. 55개부문으로 일천권에 달하는 방대한 이 책은 처음 서명을 태평편류(太平編類)라 하였으나 후에는 태평어람(太平御覽)으로 개칭하였다.

태종은 이 사서가 완성되자 몹시 기뻐하며 매일 이 책을 읽었다. 스스로 하루에 세 권씩 읽도록 정하여 놓고, 정사(政事)로 인해 못 읽는 경우에는 쉬는 날 이를 보충하였다.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는 신하들에게, 태종은 항상 다음과 같이 말했다. 책을 펼치면 이로움이 있으니, 짐은 이를 피로하다 여기지 않소[開卷有益, 朕不以爲勞也].


출전

왕벽지(王闢之)의 승수연담록(繩水燕談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韋編三絶(위편삼절)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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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改過遷善 (개과천선)

改過遷善 (개과천선)

지난 나쁜 잘못을 바르게 고쳐서 착하게 된다


晋(진)나라 惠帝(혜제)때 양흠지방에 周處(주처)라고 하는 난폭스럽기 짝이 없는 사나이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태수 벼슬을 했을 정도로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주처가 여남은 살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집안이 기울면서 빗나가기 시작했다.집을 뛰쳐나온 주처는 하루종일 거리를 헤매며 나쁜 짓을 골라가며 했다. 힘이 천하장사인데다 주먹을 거칠게 휘두르고 다니니 사람들은 그를 멀리서만 봐도 슬슬 피해 다녔다.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그런 거리의 無法者(무법자)주처가 어느 때부터인가 사람이 달라지고 있었다.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새 사람이 되려는 모습이 뚜렷했다.어느날 주처는 마을 사람들에게 “여러분들은 왜 나만 보면 얼굴을 찡그리십니까” 하고 물어보자 어느 간 큰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이 지방의 3害(해)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오. 남산에 있는 사나운 호랑이와 長橋(장교)아래에 있는 蛟龍(교룡)과 당신이 바로 그 세가지 해로움이오.

이 말을 들은 주처는 더욱더 새사람이 되겠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사람들에게 3해의 제거를 약속했다. 그는 남산에 올라가 호랑이를 잡아 죽이고 천신만고 끝에 교룡도 처치하고 돌아왔다.그래도 사람들은 별로 반갑게 맞이하지 않았다. 주처는 다시 한번 착한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당대의 대학자인 陸機(육기) 陸雲(육운)형제를 찾았다.

자네가 굳은 의지를 가지고 지난날의 허물을 고쳐 착한 사람이 된다면(改過遷善) 자네의 앞날은 밝네라는 육기형제의 격려를 받고 열심히 학문을 닦은 주처는 마침내 대학자가 될 수 있었다.

蓋棺事定 (개관사정)

蓋棺事定(개관사정)

盖棺事定 (gàiguānshìdìng)

蓋 덮을 개 | 棺 널 관 | 事 일 사 | 定 정할 정 |


사람의 일이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뜻. 또는 관 뚜껑을 덮고 일을 정(定)한다는 뜻으로, 사람은 죽고 난 뒤에라야 올바르고 정당(正當)한 평가(評價)를 할 수 있다는 말.


원래 관의 뚜껑을 덮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오늘의 충신이 내일은 역적이 되고, 이제까지 걸식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는 수도 있다. 따라서 사람의 운명이란 죽은 후에라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두보(杜甫)가 쓰촨성[四川省] 동쪽 쿠이저우[夔州]의 깊은 산골로 낙배해 있을 때 친구의 아들인 소혜(蘇徯)가 유배되어 그곳에 와서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두보가 보다 못하여 지어 보낸 《군불견(君不見)》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길 가에 버려진 못을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부러져 넘어진 오동나무를/ 백년되어 죽은 나무가 거문고로 만들어지며 / 조그만 물웅덩이 속에도 큰 용이 숨어 있을 수 있네. / 장부는 관 뚜껑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결정되는 법이네(蓋棺事始定) / 그대는 다행히도 아직 늙지 않았거늘.....

이 시를 읽은 소혜는 후에 그곳을 떠나 호남 땅에서 설객(說客)이 되었다고 한다.

蓋棺事定이란 죽어서 관의 뚜껑을 덮은 후에라야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결정된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죽은 이의 업적을 찬양하기도 하고, 생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盖棺论定 (개관론정, gàiguānlùndìng)한 사람의 일생의 공과(功過)와 시비(是非)는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최종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 사람이 죽기 전에는 그 사람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내릴수 없다.
Only when a man is dead can he be judged.


관련 한시

君不見 (군불견) 杜甫 (두보) |


杜甫 (두보) | 君不見 (군불견) |

改過不吝 (개과불린)

改過不吝(개과불린)

과실(過失)이 있으면 즉시 고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말라.


과실 | 過失 | fault |

刻畵無鹽 (각화무염, kèhuàwúyán)

刻畵無鹽(각화무염)

刻畵无盐(kè huà wú yán)

刻 새길 각 | 畵 그림 화 | 無 : 없을 무 | 鹽 소금 염


차이가 많이 나는 물건을 비교하거나 맞지 않는 비유를 이르는 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차이가 나거나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을 비유한 성어(成語)이다.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 제(齊)나라의 무염(無鹽)이라는 지방에 '종리 춘(鐘離春)'이라는 못생긴 여자가 살았다. 종리 춘은 선왕에게 제나라의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그 재능을 인정받아 무염군에 봉해져 황후가 되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월(越)나라의 미녀인 서시(西施)에 비유하여 못생긴 여자를 '무염'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무염은 고대 중국의 대표적 추녀(醜女)로 불리게 되었다.

《진서(晉書)》 〈주의전〉에 따르면, 진나라 원제 때 신하들이 주의를 악광(樂廣)과 같이 고결한 사람이라고 하자 주의는 스스로 악광과 비교될 수 없다면서 "어찌 무염에게 화장을 한다고 하여 갑자기 서시가 되겠는가[何乃刻畵無鹽 唐突西施也]"라고 말하면서 겸손함을 나타냈다고 전해진다. 얼굴이 못생긴 여자가 아무리 꾸며도 서시와 같은 미인이 될 수 없다는 뜻으로,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家和萬事成 (가화만사성)

家和萬事成(가화만사성)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되어 나감.

江湖煙波 (강호연파)

江湖煙波(강호연파)

江 강 강 | 湖 호수 호 | 煙 연기 연, 제사 지낼 인 | 波 물결 파, 방죽 피 |

①강이나 호수(湖水) 위에 안개처럼 보얗게 이는 기운 또는 그 수면 위의 잔물결 ②산수(山水)의 좋은 경치(景致)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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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淸風明月(청풍명월) | 煙霞日輝(연하일휘) | 山紫水明(산자수명) | 山明水淸(산명수청) | 山明水麗(산명수려)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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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4급 사자성어 |

甘呑苦吐 (감탄고토)

甘呑苦吐 (감탄고토)

자기 비위에 맞으면 삼키고 싫으면 내뱉는다. 신의(信義)를 저버리고 사리(私利)를 꾀한다는 말.

竭澤而漁 (갈택이어)

竭澤而漁(갈택이어)

竭 다할 갈, 다할 걸 | 澤 못 택, 풀 석, 전국술 역, 별 이름 탁 | 而 말 이을 이, 능히 능 | 漁 고기 잡을 어 |

연못의 물을 말려 고기를 잡는다는 뜻으로, 일시적(一時的)인 욕심 때문에 먼 장래를 생각하지 않음


여씨춘추(呂氏春秋) 의상(義賞)편의 이야기.

춘추시기, 진(晋)나라 문공(文公)은 기원전 632년, 성복(城濮)이라는 곳에서 초(楚)나라 군대와 격전을 벌였다. 당시 그러나 초나라 군사의 수가 진나라 군사보다 훨씬 많을 뿐만 아니라, 병력 또한 막강하였으므로 승리할 방법이 없었다.

진문공은 부하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초나라의 병력은 많고 우리 병력은 적으니 이 싸움에서 승리할 방법이 없겠소?"

이에 호언(狐偃)이라는 자가 의견을 냈다.

"저는 예절을 중시하는 자는 번거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움에 능한 자는 속임수를 쓰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속임수를 써 보십시오."

진문공은 호언의 계책을 이옹(李雍)에게 알려주며, 그의 견해를 물었다. 이옹은 호언의 속임수 작전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별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다만 이렇게 말했다.

"못의 물을 모두 퍼내어 물고기를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그 훗날에는 잡을 물고기가 없게 될 것이고, 산의 나무를 모두 불태워서 짐승들을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뒷날에는 잡을 짐승이 없을 것입니다[竭澤而漁 豈不獲得 而明年無魚 焚藪而田 豈不獲得 而明年無獸]. 지금 속임수를 써서 위기를 모면한다 해도 영원한 해결책이 아닌 이상 임시 방편의 방법일 뿐입니다."

이옹의 비유는 눈앞의 이익만을 위하는 것은 화를 초래한다고 본 것이다.


출전

여씨춘추(呂氏春秋) 의상(義賞)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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價値連城 (가치연성)

價値連城(가치연성)

价值连城(jiàzhíliánchéng)

價 값 가 | 値 값 치 | 連 이어질 연 | 城 성 성 |


여러 성을 합할 정도로 그 값어치가 귀중하다는 말.


소중한 보물이나 가치 있는 물건을 가리키는 성어(成語)로, 연성지보(連城之寶)·가중연성(價重連城)이라고도 한다.

이 말의 유래에 따르면,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초(楚)나라의 변화(卞和)가 다듬지 않은 구슬인 옥벽(玉璧)을 왕에게 올렸으나 돌을 속여서 바쳤다고 한쪽 다리가 잘리는 벌을 받았다. 변화는 무왕 때에도 옥벽을 바쳤는데 마찬가지로 다른 쪽 다리까지 잘리고 말았다. 그러나 문왕은, 변화가 바친 옥벽을 알아보고 초나라의 국보로 삼아 변화지벽(卞和之璧)·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고 불렀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조(趙)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이 초나라의 옥벽을 소유하였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진(秦)나라 소왕(昭王)은 그 옥벽을 차지하려고 15개 성의 영토와 바꾸자고 조나라와 교섭하였으나, 인상여(藺相如)의 재치로 조나라는 진나라에게 옥벽을 빼앗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옥벽을 조벽(趙璧), 연성지벽(連城之璧)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출전]
史記(사기) : 廉頗藺相如列傳(염파인상여열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연성지보(連城之寶) | 價重連城(가중연성) |


史記(사기) : 廉頗藺相如列傳(염파인상여열전) |

假痴不癲 (가치부전)

假痴不癲 (가치부전)

假痴不癫(jiǎ chī bù diān)

假 거짓 가,멀 하,이를 격 | 痴 어리석을 치 | 不 아닐 부,아닐 불 | 癲 미칠 전 |


三十六計(삼십육계) 倂戰計(병전계) 제27계. 어리석은 척하되 미친 것은 아니다.


어리석은 척하되 미친 것은 아니다. 이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재능이나 식견을 감추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경계심을 품지 않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계략이다. 이도 역사를 둘러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계략 중 하나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일부러 어리석거나 딴전을 부리는 편이, 아는 척하거나 경거망동하는 것보다 유리하다. 조용히 계략을 가다듬고 실력을 기른다. 이는 우레가 가만히 때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寧僞作不知不僞,不僞作假知妄僞;靜不露機,雲雷屯也.]"

이에 대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방연의 시기에 대해 손빈이 미친척을 해서 제나라로 갔고, 패왕 항우 앞에서 유방이 어리석은 체하다가 뒤통수를 쳤으며, 조조의 서슬퍼런 태도 앞에서 유비가 어리석은 체하여 조조에게서 도망쳤다. 또한 우리역사에서는 흥선대원군이 정적들의 경계를 풀기 위해 어리석은 짓을 하고 다니기도 하였다.

흔히 많이 알려진 三國志演義의 예를 보기로 하자. 삼국지연의 '靑梅煮酒(청매자주)'에 소개되는 유비의 이야기이다.

당시 유비는 조조와 함께 여포를 치고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던 와중에 동승을 중심으로 하는 조조토벌 모의에 가담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후원으로 나가 채소를 심고 손수 물을 주며 가꾸었다. 관우와 장비가 이에 한탄한다.
"형님께서는 천하대사는 생각지 않으시고 小人들의 일이나 배워 무엇하시려는 것이옵니까?"
"그것은 너희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관우와 장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조조가 현덕을 불렀다. 현덕이 상부로 올라가 조조를 뵙자 조조가 웃으며 말했다.
"집에서 큰일을 하고 계신다지요?"
현덕은 크게 놀라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동승과의 모의가 들킨 것은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조조가 현덕의 손을 잡고 후원으로 나오며 말했다.
"채마밭을 가꾸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닐테지요."
현덕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그저 심심풀이로 하는 것뿐이옵니다."

조조는 매실이 잘 익어 현덕과 한 잔 하고 싶어 불렀다며, 정자로 안내했다. 한 동이 술을 데워 두 사람이 마주앉아 유쾌하게 마셨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 오를 때였다. 갑자기 비구름이 몰려들며 곧 소나기라도 내릴 기세였다. 저 멀리 龍掛(용괘)가 생겨났다. 조조가 말했다.
"사군은 龍이 어떻게 변하는지 아시오?"
"잘 모르옵니다."
"용은 제 몸을 크게 할수도 있고, 작게 할수도 있으며, 하늘로 올라갈 수도 있고, 숨어들 수도 있다고 하오. 커지면 구름을 일으키고 안개를 토하지만, 작아지면 비늘도 감추고 형태조차 나타나지 않으며, 올라가면 우주 속을 날아다니지만 숨어들면 파도 속에 엎드려 때를 기다린다고 하는데, 지금은 바야흐로 깊은 봄이라 용이 변하고 있는 중이오. 사람도 뜻을 이루면 천하를 주름잡으니, 세상의 영웅들도 용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오. 현덕은 오랫동안 사방을 편력하였으니 지금 세상의 영웅이 누구인지 분명히 아실게요. 누구누구인지 어디 한 번 말씀해 보시오."

이에 유비는 원술, 원소, 유표, 손책, 유장, 장수, 장로, 한수 등의 이름을 차례로 언급하나 조조는 이를 일축한다.
"대저 영웅이란 가슴에 큰 뜻을 품고, 뱃속에 좋은 계책이 있으며, 우주의 기미를 싸 감추고, 천지의 뜻을 삼키거나 뱉는 사람이오."
"누가 그런 사람이옵니까?"
"지금 천하의 영웅은 사군(당신)과 이 조조 뿐이외다."

현덕은 그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그때 마친 비가 쏟아지며 천둥소리가 크게 일었다. 현덕은 젓가락을 주우며 말했다.
"웬 천둥이 이리 대단하담."
"장부도 천둥을 무서워 하시오?"
"공자께서도 '빠른 천둥과 맹렬한 바람이 일면 반드시 안색이 변하셨다' 했는데 어찌 무섭지 않겠사옵니까?"

현덕은 조조의 말에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린 일을 가볍게 얼버무려 넘겼다. 조조는 현덕의 그릇이 작은 것을 알고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이때, 관우와 장비가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유비가 조조에게 불려갔다는 것을 알고 부랴부랴 달려온 것이다.

이내 술자리가 파하고, 유비 일행은 관사로 돌아왔다. 현덕은 관우와 장비에게 젓가락 떨어뜨린 일을 얘기해 주었다. 관우가 물었다.
"무슨 뜻이옵니까?"
"내가 채소를 가꾼 것은, 조조가 나의 그러한 행동을 보고 큰뜻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믿게 하려는 속셈이었는데, 뜻밖에 조조가 나를 영웅이라고 하는 바람에 크게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린 것이다. 또한 다시 조조의 의심을 살까봐 천둥을 핑계로 얼버무렸던 것이다."
관우와 장비가 말했다.
"형님은 참으로 내다보시는 눈이 높사옵니다."

여기에서 유비는 두 번의 '가치부전'을 행한다. 먼저, 채소를 가꾸며 자신에게 웅지가 없음을 가장한 것이요, 둘째 자신의 속내를 들킨듯 하자 천둥을 핑계삼아 담이 작은 사내로 보이게 한 것이다.

覺跌千里 (각질천리)

覺跌千里(각질천리)

큰 일을 그르치는 자를 깨닫게 하는 뜻.

刻舟求劍 (각주구검, kèzhōuqiújiàn)

刻舟求劍(각주구검)

刻舟求剑(kèzhōuqiújiàn)

刻 새길 각 | 舟 배 주 | 求 구할 구 | 劍 칼 검 |


가는 배에서 칼을 떨어뜨리고 떨어진 자리에 표시를 하였다가 배가 정박한 뒤에 칼을 찾는다는 뜻으로 융통성 없이 현실에 맞지 않는 낡은 생각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비유.


여씨춘추(呂氏春秋) 찰금편(察今篇)에는 융통성 없는 한 사나이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중국 전국(戰國)시대 초(楚)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다가 들고 있던 칼을 물 속에 빠뜨렸다. 그러자 그는 곧 칼을 빠뜨린 뱃전에 칼자국을 내어 표시를 해 두었다[遽刻其舟]. 이윽고 배가 언덕에 와 닿자 칼자국이 있는 뱃전 밑 물 속으로 뛰어들어 그 칼을 찾으려 했다[求劍]. 그러나 자신이 탔던 배는 칼을 빠뜨린 곳을 지나 계속 이동하여 왔으므로, 그곳에 칼이 있을 리 없었다.

刻舟求劍이란 뱃전에 새겨놓은 표시만을 믿고 물에 빠뜨린 칼을 찾으려함을 뜻한다. 이는 위와 같이 옛것을 지키다 시세의 추이도 모르고 눈앞에 보이는 하나만을 고집하는 처사를 비유한 말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 그 유래가 전한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守株待兎(수주대토) 요행만을 바라다, 융통성이 없다.

緣木求魚(연목구어) 연목구어, 방법이 틀려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呂氏春秋(여씨춘추) | 미련[stupidity] | 劍(검) |

各從其類 (각종기류)

各從其類(각종기류)

各 각각 각 | 從 좇을 종 | 其 그 기 | 類 무리 류, 무리 유, 치우칠 뢰, 치우칠 뇌 |

만물은 각기 같은 종류끼리 서로 따름.

유유상종과 같은 뜻으로, 우리말의 '끼리끼리 모인다'와 같은 표현이다. 《주역》문언(文言)편에 "하늘에 근본을 둔 것은 위와 친하고, 땅에 근본을 둔 것은 아래와 친하니, 이는 각자가 그 비슷한 것을 좇기 때문이다[本乎天者親上, 本乎地者親下, 則各從其類也]"라는 구절이 있다. 물각유주(物各有疇)나 물각유류(物各有類), 방이유취(方以類聚), 물이군분(物以群分), 각종기류(各從其類)는 모두 같은 의미이며, 물이유취로 많이 쓰인다.

[출전]
易經(역경) 文言(문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物各有疇(물각유주) | 物各有類(물각유류) | 方以類聚(방이유취) | 物以群分(물이군분) | 各從其類(각종기류) | 草綠同色(초록동색)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초록은 동색.
¶ 가재는 게 편이다.

甘井先渴 (감정선갈)

甘井先渴(감정선갈)

맛이 좋은 우물물은 길어가는 사람이 많으므로 빨리 마른다. 재능있는 사람이 빨리 쇠약해진다는 말

苛政猛於虎 (가정맹어호, kēzhèngměngyúhǔ)

苛政猛於虎(가정맹어호)

苛政猛於虎(kēzhèng měng yú hǔ)

苛 가혹할 가 | 政 정사 정 | 猛 사나울 맹 | 於 어조사 어 | 虎 호랑이 호 |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뜻.


《예기(禮記)》의 '단궁하편(檀弓下篇)'에 나오는 “가정맹어호야(苛政猛於虎也)”에서 유래되었다.

가정이란 혹독한 정치를 말하고, 이로 인하여 백성들에게 미치는 해는 백수(百獸)의 왕이라 할 만큼 사납고 무서운 범의 해(害)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 기슭을 지나고 있는데, 한 부인이 무덥 앞에서 울며 슬퍼하고 있었다. 공자는 제자인 자로에게 그 까닭을 묻게 하였다. 그 부인은 대답하길 오래전에 시아버님이 호랑이게 죽음을 당하였고, 저의 남편 또한 호랑이에게 변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의 아들마저 호랑이게 목숨을 잃게 되었답니다. 라고 하였다.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말에 그 부인은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無苛政]라고 짧게 대답하였다. 자로의 말을 듣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잘 알아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다[苛政猛於虎也]"라고 하였다.

춘추 말엽 노(魯)나라의 대부 계손자(系孫子)의 폭정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은 차라리 호랑이에게 물려죽는 쪽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苛政이란 번거롭고 잔혹한 정치를 뜻한다. 政을 徵(징)의 차용으로 보아 번거롭고 무서운 세금과 노역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家藏什物 (가장집물)

家藏什物(가장집물)

집안의 모든 세간

各自爲政 (각자위정)

各自爲政(각자위정)

各 각각 각 | 自 스스로 자 | 爲 하 위, 할 위 | 政 정사 정, 칠 정 |

저마다 스스로 정치(政治)를 한다는 뜻으로, 각각(各各)의 사람들이 자기(自己) 마음대로 한다면 전체(全體)와의 조화(調和)나 타인(他人)과의 협력(協力)을 생각하기 어렵게 된다는 뜻


기원전 722년부터 기원전 481년까지를 다룬 역사서 《좌씨전(左氏傳)》 평전(評傳)에 있는 글이다.

좌씨전(左氏傳) 선공(宣公) 2년에 따르면, 춘추시대 송(宋)나라와 진(晉)나라가 서로 협력하였기 때문에 송나라와 초(楚)나라는 사이가 벌어졌다. 이에 초(楚)나라 장왕(莊王)은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동맹국인 정(鄭)나라로 하여금 송나라를 치게 하였다.

정나라 목공(穆公)은 즉시 출병했다. 정나라와의 결전을 하루 앞두고 송나라의 대장 화원(華元)은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식사 때 특별히 양고기를 지급하였다. 군사들은 모두 크게 기뻐하며 맛있게 먹었지만 화원의 마차를 모는 양짐(羊斟)만은 이 양고기를 먹지 못하였다. 한 부장(副將)이 그 까닭을 묻자 화원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마차를 모는 사람에게까지 양고기를 먹일 필요는 없네. 마차부는 전쟁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말일세."

이튿날 양군의 접전이 시작되었다. 화원은 양짐이 모는 마차 위에서 지휘를 하였다. 송나라와 정나라의 군사가 모두 잘 싸워 쉽게 승패가 나지 않자 화원이 양짐에게 명령하였다.

"마차를 적의 병력이 허술한 오른쪽으로 돌려라."

그러나 양짐은 반대로 정나라 병력이 밀집해 있는 왼쪽으로 마차를 몰았다. 당황한 화원이 방향을 바꾸라고 소리치자 양짐은 말했다.

"어제 양고기를 군사들에게 먹인 것은 장군의 판단에 따라 한 일이지만 오늘의 이 일은 나의 생각대로 한 것입니다[疇昔之羊 子爲政 今日之事 我爲政]"

그는 곧바로 정나라 군사가 모여 있는 곳으로 마차를 몰았기 때문에 화원은 결국 정나라 군사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대장이 포로가 된 것을 본 송나라 군사는 전의(戰意)를 잃고 전열(戰列)이 무너졌다. 그 결과 250여 명의 군사가 사로잡히고 사공(司空:토지와 민사를 맡아보는 관원)까지 포로가 되었다. 정나라 군사는 모두 460량의 병거(兵車)를 포획하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송나라의 대패는 바로 양짐이 화원의 지휘에 따르지 않고 '각자위정'했기 때문이다.

군자들의 혹평처럼 양짐은 ‘그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나라를 패망하게 하고 백성들을 죽게 만든(以其私憾 敗國殄民)’ 것이다. 융통성이 부족하고 아집이 강하여 전체적인 균형을 생각하지 못해 결국 국가의 대사를 그르치게 만든 것이다.

비단 군사행동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나 사회의 경영에 있어 전체로서의 조화나 개개의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경영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었지만 결과가 이렇게 심각한 경우는 늘 존재해 왔던 것이다.


출전

좌씨전(左氏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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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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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4급 사자성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