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弦更張 (해현경장)

解弦更張(해현경장)

解 풀 해 | 弦 시위 현 | 更 고칠 경, 다시 갱 | 張 베풀 장 |

'거문고의 줄을 바꾸어 매다'라는 뜻으로, 느슨해진 것을 긴장하도록 다시 고치거나 사회적·정치적으로 제도를 개혁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한(漢)나라 때 동중서(董仲舒)가 무제(武帝)에게 올린 현량대책(賢良對策)에서 유래되었다.


개현경장(改弦更張)·개현역장(改弦易張)·해현역철(解弦易轍)·개현역철(改弦易轍)·개현역조(改弦易調)라고도 한다. 동중서는 이름난 유학자로 어려서부터 《춘추(春秋)》를 공부하였고, 경제(景帝) 때 박사(博士)가 되었다. 경제를 이어 즉위한 무제는 국사를 운영하면서 수시로 동중서에게 자문을 구하였다. 무제가 널리 인재를 등용하려 하자, 동중서는 '원광원년거현량대책(元光元年擧賢良對策)'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지금 한나라는 진나라의 뒤를 계승하여 썩은 나무와 똥이 뒤덮인 담장과 같아서 잘 다스리려고 해도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지경입니다. (중략) 이를 비유하자면 거문고를 연주할 때 소리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심해지면 반드시 줄을 풀어서 고쳐 매어야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竊譬之琴瑟不調, 甚者必解而更張之, 乃可鼓也]. 마찬가지로 정치도 행하여지지 않는 경우가 심해지면 반드시 옛것을 새롭게 변화하여 개혁하여야만 제대로 다스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줄을 바꿔야 하는데도 바꾸지 않으면 훌륭한 연주가라 하더라도 조화로운 소리를 낼 수 없으며, 개혁하여야 하는데도 실행하지 않으면 대현(大賢)이라 하더라도 잘 다스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출전]
漢書(한서) 董仲舒傳(동중서전)

여기서 유래하여 해현경장은 주로 사회적·정치적 개혁을 의미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조선시대 말기에 발생한 갑오경장(甲午更張:갑오개혁)의 명칭도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解弦易轍(해현역철) | 改弦易轍(개현역철) | 改弦易調(개현역조) | 改弦易張(개현역장) | 改弦更張(개현경장) |

幸災樂禍 (행재요화)

幸災樂禍(행재요화)

幸 다행 행 | 災 재앙 재 | 樂 좋아할 요, 즐길 락(낙), 노래 악 | 禍 재앙 화 |

남이 재화(災禍)를 입음을 보고 좋아함


출전

顔氏家訓(안씨가훈)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낙화행재(樂禍幸災) | 幸災樂禍(행재낙화) | 幸災樂禍(행재락화) | 幸災樂禍(행재요화)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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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幸災樂禍 (행재낙화)

幸災樂禍(행재낙화)

幸 다행 행 | 災 재앙 재 | 樂 좋아할 요, 즐길 락(낙), 노래 악 | 禍 재앙 화 |

'재앙을 다행으로 여기고 즐거워한다'라는 뜻으로, 남의 불행을 즐기는 이기적인 태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춘추시대의 경정(慶鄭)과 자퇴(子頹)와 관련된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좌전(左傳) 희공(僖公) 14년조의 이야기.

경정의 고사에서 유래된 '행재'와 자퇴의 고사에서 유래된 '낙화'가 합쳐진 고사성어이다.

춘추시대, 진(晋)나라에 내란이 발생하자 공자 이오(夷吾)는 진(秦)나라로 도망하였다. 이오는 귀국하기 전에 다섯 성을 진(秦)나라에 감사의 대가로 주기로 하였으나, 진(晋)의 군주, 즉 혜공(惠公)에 즉위하자 생각을 바꾸었다.

기원전 647년, 진(晉)나라 혜공(惠公) 때 큰 흉년이 들었다. 진(秦)나라 진혜왕은 지난 날의 일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대부 백리해(百里奚)의 권유로 진(晋)나라에 양식을 보내 주었다.

이듬해에는 거꾸로 진(秦)나라에 흉년이 들어 진(晉)나라로부터 식량을 사들이고자 하였으나, 진(晉)나라는 지난 해의 고마움을 잊은 듯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大夫)인 경정만은 혜공에게 말하면서, 식량을 팔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은혜를 저버리면 외로운 처지가 될 것이며, 남의 재앙을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어질지 못한 일입니다[背施無親, 幸災不仁]"

그러나 혜공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분노한 진(秦)나라는 결국 군사를 일으켜 진(晉)나라를 공격하였고, 혜공은 포로의 신세가 되었다. 이 고사는 《좌씨전(左氏傳)》의 '희공(僖公) 14년'조에 실려 있으며, '행재'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춘추시대 주(周)나라의 장왕(莊王)은 애첩과의 사이에서 자퇴라는 아들을 얻었다. 장왕이 죽은 뒤에 희왕에 이어 혜왕(惠王)이 왕위에 올랐다. 혜왕 때 대신들이 반란을 일으켜 혜왕을 몰아내고 자퇴를 꼭두각시 왕으로 내세웠다. 음탕하고 어리석은 자퇴는 매일 대신들과 음주가무에 빠져 지냈다.

정(鄭)나라의 려왕이 이 소식을 듣고 괵숙에게 "때를 가리지 않고 슬픔과 즐거움을 나타내면 재앙이 반드시 닥친다고 들었다. 지금 자퇴가 가무를 즐기느라 피곤한 줄을 모르는 것은 재앙을 즐기는 짓이다(哀樂失時, 殃咎必至. 今王子頹歌舞不倦, 樂禍也)"라고 말하였다. 이 고사는 《좌씨전》의 '장공(莊公) 20년'조에 실려 있으며, '낙화'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이 두 가지 고사에서 유래하여 행재낙화는 남의 불행을 함께 슬퍼하기는커녕 즐거워하는 그릇된 행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낙화행재(樂禍幸災)라고도 한다.


출전

좌씨전(左氏傳) 희공(僖公) 14년 | 좌씨전(左氏傳) 장공(莊公) 20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낙화행재(樂禍幸災) | 幸災樂禍(행재낙화) | 幸災樂禍(행재락화) | 幸災樂禍(행재요화)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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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解衣推食 (해의추식)

解衣推食(해의추식)

解衣推食 [jiěyītuīshí]

解 풀 해 | 衣 옷 의 | 推 옮을 추, 밀 추, 밀 퇴 | 食 밥 식, 먹을 식, 먹이 사, 사람 이름 이 |

옷을 벗어주고 음식(飮食)을 밀어준다라는 뜻으로, 남에게 은혜(恩惠)를 베푸는 것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열전의 이야기.

한신(韓信)은 본시 초나라 항우(項羽) 밑에서 말단 군관을 지냈으나, 항우가 자신을 크게 써주지 않자 유방(劉邦)에게 귀순하였다. 유방은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를 대장으로 임명하였다. 한신이 군대를 이끌고 제(齊)나라를 공격했을 때, 제나라는 초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항우는 부하 장수 용저(龍且)에게 20만 대군을 이끌고 제나라를 돕게 하였다. 그러나 한신은 초나라 군대를 대파하고 제왕(齊王)에 봉하여졌다. 한신의 능력에 두려움을 느낀 항우는 무섭(武涉)이라는 세객(說客)을 보내어 한신으로 하여금 한나라로부터 독립하여 초·한·제의 세 나라로 천하를 삼분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자 한신은 그의 말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과거 내가 내가 항왕(항우)을 섬길 때는 낭중(郞中)에 불과하여 창을 들고 문지기 노릇을 하였소. 내 계책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므로 초나라를 배반하고 한나라에 귀순한 것이오. 이제 한왕(유방)은 내게 장군의 인수(印綬)를 내리고 수만의 병력을 맡겼으며, 자기 옷을 벗어 내게 입혀 주고 자기 밥을 나누어 주었으며, 내 계책을 받아들였으므로 내가 여기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이오[漢王授我上將軍印, 予我數萬衆, 解衣衣我, 推食食我, 言聽計用, 故吾得以至於此]. 무릇 남이 나를 깊이 신뢰하는데 내가 그를 배신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니 설령 죽더라도 뜻을 바꿀 수는 없소."

여기서 유래하여 해의추식은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을 벗어 주고, 자기 밥을 나누어 줄 정도로 다른 사람을 각별히 친절하게 대하거나 돌보아 주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추식해의(推食解衣)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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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海翁好鷗 (해옹호구, hǎiwēnghǎoōu)

海翁好鷗(해옹호구)

海翁好鸥(hǎiwēnghǎoōu)

海 바다 해 | 翁 늙은이 옹 | 好 좋을 호 | 鷗 갈매기 구 |


갈매기를 좋아하는 바닷가 노인이라는 뜻으로, 친하게 지내던 새도 막상 잡으려고 하면 그것을 알고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데서 야심(野心)이나 위험(危險)을 알아차리면 누구라도 접근(接近)하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

解語花 (해어화, jiěyǔhuā)

解語花(해어화)

解语花(jiěyǔhuā)

解 풀 해 | 語 말씀 어 | 花 꽃 화 |


'말을 아는 꽃'이라는 뜻으로, ①'미녀(美女)'를 일컫는 말 ②'기생(妓生)'을 달리 이르는 말

行不由徑 (행불유경)

行不由徑(행불유경)

行 다닐 행, 항렬 항 | 不 아닐 불, 아닐 부 | 由 말미암을 유, 여자의 웃는 모양 요 | 徑 지름길 경, 길 경 |

길을 가는 데 지름길을 취하지 아니하고 큰길로 간다는 뜻으로, 행동(行動)을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함을 비유(比喩ㆍ譬喩)함


논어(論語) 옹야(雍也)편의 이야기.

자유(子遊)는 공자의 제자로 공문십철(孔門十哲)에 속하며, 자하(子夏)와 더불어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가 노(魯)나라에서 벼슬하여 무성(武城)의 재상으로 임명되었을 때의 일이다. 공자는 사랑하는 제자가 벼슬을 하게 되자, 일하는 모습도 볼 겸 축하도 할 겸해서 직접 무성으로 찾아갔다.

공자는 자유에게 물었다.

"일을 잘하려면 좋은 협력자가 필요하다. 네게도 아랫사람 중에 훌륭한 인물이 필요할 텐데, 그래 쓸만한 인물이 있느냐?"

그러자 자유가 대답하였다.

"예, 안심하십시오. 성은 담대(澹臺), 이름은 멸명(滅明)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훌륭한 인물로, 언제나 천하의 대도를 갈 뿐, 결코 지름길이나 뒤안길을 가지 않습니다[行不由徑]. 공적인 일이 아니면 저의 방에 찾아 오는 일이 없습니다. 정말 존경할 만한 훌륭한 인물입니다."

공자는 기뻐하며 훌륭한 인물은 소중히 대하라며 제자를 격려했다.

徑은 지름길이나 샛길을 뜻한다. 行不由徑이란 지름길이나 샛길을 가지 않고 떳떳하게 큰 길로 가는 것이니, 이는 곧 눈 앞의 이익을 탐하지 않고 정정 당당한 방법으로 일을 처리함을 비유한 말이다.

여기서 행불유경(行不由徑)이란 말이 나왔으며, 군자는 큰길을 택해서 간다는 뜻의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이란 말과 뜻이 통하는 말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君子大路行(군자대로행) | 行不由徑(행불유경) |

海不讓水 (해불양수)

海不讓水(해불양수)

海 바다 해 | 不 닐 불,아닐 부 | 讓 사양할 양 | 水 물 수 |

바다는 어떠한 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여 거대한 대양을 이룬다는 뜻으로, 모든 사람을 차별않고 포용할 수 있다는 뜻.

중국 고문 중 명문으로 손꼽히는 ‘간축객서(諫逐客書)’의 ‘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이라는 말에 나온다.

行百里者半於九十 (행백리자반어구십)

行百里者 半於九十(행백리자 반어구십)

백리를 가고자 하는 자는 구십리가 반이라는 말로 마무리가 중요함을 뜻함.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진(秦) 무왕(武王)의 교만함을 걱정한 신하가 '시경(詩經)'을 인용하여 충고한 데서 비롯된 말로 '백 리를 가려는 사람은 구십 리를 가고서 이제 절반쯤 왔다고 여긴다'는 뜻이다. 무슨 일이든 마무리가 중요하고 어려우므로 끝마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는 뜻을 나타내는 성어(成語)이며, ‘행백리자반구십(行百里者半九十)’, ‘행백리자반어구십(行百里者半於九十)’, ‘행백리자반구십리(行百里者半九十里)’라고도 한다.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진(秦) 무왕(武王, 재위 BC 310~BC 307)은 나라의 세력이 강성해지자 점차 자만심에 빠지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자 주(周) 난왕(赧王) 8년(기원전 307년)에 한 신하가 무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신(臣)은 왜 대왕이 제(齊)와 초(楚) 두 나라를 가벼이 여기고 한(韓)을 업신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왕자(王者)는 싸움에 이겨도 교만하지 않고, 패자(覇者)는 맹주가 되어도 쉽게 분노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기고도 교만하지 않기에 이웃나라가 복종하는 법입니다. 지금 대왕은 위(魏), 조(趙) 두 나라를 얻은 것에 만족하여 제(齊)를 잃은 것을 너무 가벼이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의양(宜陽) 싸움에서 승리한 뒤 초(楚)와의 국교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쉽게 분노를 드러낸 것입니다. 교만과 분노는 패왕(覇王)이 지녀야 할 바가 아닙니다.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시경(詩經)>에 ‘처음은 누구나 잘하지만 끝을 잘 마무리하는 사람은 적다(靡不有初 鮮克有終)’는 말이 있습니다. 선왕(先王)들은 시작과 끝을 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역사에는 처음에는 잘하다가도 끝마무리를 잘하지 못해 멸망한 경우가 많습니다. 춘추시대 말기 진(晉)에서 공경(公卿)들의 세력다툼이 일어났을 때 지백(智伯) 요(瑤)는 범(范)과 중행(中行)을 물리치고 조양자(趙襄子)를 진양(晋陽)에 몰아넣고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한(韓), 위(魏), 조(趙)의 연합군에게 멸망되어 비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오왕(吳王) 부차(夫差)도 회계(會稽)에서 월왕(越王) 구천(句踐)에게 항복을 받고 애릉(艾陵)에서 제(齊)를 대파하였지만, 황지(黃池)의 회맹(會盟)에서 송(宋)에 무례하게 굴다가 결국 구천(句踐)에게 사로잡혀 간수(干隨)에서 죽었습니다. 양혜왕(梁惠王)도 초(楚)와 제(齊) 두 나라를 물리치고, 조(趙)와 한(韓) 두 나라의 군사를 제압한 뒤 12제후(諸侯)를 이끌고 맹진(孟津)에서 천자(天子)에게 조회(朝會)하였지만, 결국 태자 신(申)은 죽고 자신은 제(齊)로 끌려가 억류되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공(功)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시작은 잘했지만 끝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그러한 종말을 맞이한 것입니다.

지금 대왕은 의양(宜陽)에서 승리하고 삼천(三川) 일대를 점령하면서 제후들로 하여금 감히 대항하지 못하게 하였고, 한(韓)과 초(楚) 두 나라의 군사들이 감히 진격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만일 대왕이 마무리만 잘하면 삼왕[三王, 중국 고대의 세 임금인 하(夏)의 우왕(禹王), 상(商)의 탕왕(湯王), 주(周)의 문왕(文王)을 가리킨다]과 나란히 사왕(四王)으로 칭송되고, 오백[五伯, 춘추 오패(五覇)를 가리킨다]이 육백(六伯)으로 되어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멸망의 화를 입을 것입니다. 신(臣)은 제후(諸侯)들과 선비들이 장차 대왕을 오왕(吳王) 부차(夫差)나 지백(智伯) 요(瑤)처럼 여기게 될까 두렵습니다. <시경(詩經)>에서는 ‘1백리를 가는 사람은 90리를 절반으로 여긴다[행백리자 반어구십(行百里者 半於九十)]’고 했습니다. 이는 마무리의 어려움을 말한 것입니다.

지금 대왕과 초왕(楚王)은 교만(驕慢)한 기색이 뚜렷합니다. 신(臣)이 생각건대 천하의 패업은 제후들의 선택에 따라 초(楚) 아니면 진(秦)이 반드시 병화(兵禍)를 입는 것으로 마무리될 것입니다. 진(秦), 위(魏), 초(楚), 한(韓) 네 나라의 병력은 균형을 이루고 있어 다시 싸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齊)와 송(宋) 두 나라가 저울추의 역할을 하게 되어 이들을 먼저 손에 넣는 쪽이 공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행백리자반구십’이란 말이 비롯되었으며, 일을 마치기 전에 교만하지 말고 끝마무리를 잘 지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나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이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행백리자반구십’은 마무리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성어(成語)라고 할 수 있다.


참조어

事貴作始 成功之半(사귀작시 성공지반)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을 한문으로 번역한 것

杏林春滿 (행림춘만)

杏林春滿(행림춘만)

杏 살구나무 행 | 林 수풀 림 | 春 봄 춘 | 滿 찰 만 |

'살구나무 숲(행림)에 봄이 가득하다'라는 뜻으로, 의술이 고명함을 칭송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동봉(董奉)과 관련된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Full apricot trees in spring


진(晋)나라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 동봉(董奉)편의 이야기다.

삼국(三國)시대, 오(吳)나라에 동봉이라는 명의(名醫)가 있었다. 그는 예장(豫章) 지방의 여산(廬山) 밑에 살면서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었다.

그의 집은 진찰 받으러 온 사람들로 하루 종일 붐볐으나, 그는 다른 의사들과는 달리 환자들로부터 치료비를 받지 않고, 완치된 후에는 살구나무를 심게 하였다. 중병이었던 사람은 다섯 그루, 병이 가벼웠던 사람은 한 그루를 심게 하였다. 몇 년후, 그의 집은 수십만 그루의 살구나무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그 살구나무 숲을 동선행림(董仙杏林)이라 했다.

동봉은 뭇 짐승들로 하여금 행림 안에서 놀게 하고 자신을 대신하여 행림을 지키게 하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살구가 익으면 곡식 한 바가지를 살구 한 바가지로 바꾸어 가되, 자신에게 알릴 필요는 없으며 자율적으로 하라고 일렀다. 때로 반 그릇의 쌀을 놓고 한 그릇의 살구를 슬쩍 따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럴 때면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포효하여 놀래켰다. 욕심 많은 사람은 허둥지둥 도망가느라 바가지에서 쌀을 적지 않게 흘리게 마련이었는데, 집에 돌아가서 살펴보면 살구의 양이 자신이 가지고 갔던 쌀의 양과 똑같았다.

동봉은 해마다 살구를 팔아 곡식으로 바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어느 날, 동봉은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는데, 인간 세상에 300여 년이나 머물렀으나 승천할 때 그의 용모는 30여 세의 젊음을 유지하였다. 杏林春滿이란 의술이 고명(高明)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葛洪(갈홍) 神仙傳(신선전) 董奉篇(동봉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杏林春暖(행림춘난) 행림에 봄이 따뜻하다 | 譽滿杏林(예만행림) 행림에 명예가 가득하다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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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害群之馬 (해군지마)

害群之馬(해군지마)

중국 고전 ‘장자’에 나오는 고사성어다. 황제가 현명한 목동에게 나라를 잘 다스리는 방법을 묻자 목동이 “‘말(言)을 듣지 않는 말(馬)’만 없애도 말 무리 전체가 편안해진다”고 답한데서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