苟合取容 (구합취용)

苟合取容(구합취용)

苟合取容(gǒuhéqǔróng)

苟 진실로 구,구차할 구 | 合 합할 합,쪽문 합,홉 홉 | 取 가질 취 | 容 얼굴 용 |


무원칙적으로〔분별 없이〕 부화하여〔영합하여〕 남의 환심을 사다.

유래: 한서(漢書)


관련 글

報任少卿書(보임소경서) 司馬遷(사마천)

...
四者無一遂(사자무일수) : 이 네 가지 중에 한 가지도 성취하지 못하고
苟合取容(구합취용) : 남의 비위나 맞추고 영합해서
無所短長之效(무소단장지효) : 아무런 공로도 세우지 못한 것이
可見如此矣(가견여차의) : 이와 같습니다
...


Tag

아첨

九重深處 (구중심처)

九重深處(구중심처)

궁궐을 가리킴.

窮鳥入懷 (궁조입회)

窮鳥入懷(궁조입회)

窮 다할 궁, 궁할 궁 | 鳥 새 조, 땅 이름 작, 섬 도 | 入 들 입 | 懷 품을 회 |

쫓기던 새가 사람의 품안으로 날아든다는 뜻으로, 사람이 궁하면 적에게도 의지(依支)한다는 말

[출전]
안씨가훈(顔氏家訓)

君子固窮 (군자고궁)

君子固窮(군자고궁)

君 임금 군 | 子 아들 자 | 固 굳을 고 | 窮 궁할 궁 |

군자는 어렵고 궁핍할 때 더 굳고 심지가 깊어진다는 뜻.


논어(論語)에 보면 군자(君子)는 어려울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강해지는 사람이라 하고(君子固窮), 소인(小人)은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포기하고 넘쳐버리는 사람(小人窮濫)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와 세상을 주유(周遊)할 때 진(陳)나라에서 최악의 위기상황을 맞이하였다. 제자들은 아무 것도 먹지 못하여 대부분 병이 들었고 몸을 일으킬 힘조차 없었다. 이런 궁한 상황에서 공자의 다혈질 제자 자로(子路)는 공자를 만나 이렇게 따졌다.

“선생님! 군자도 이렇게 궁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까?”

자로의 이 물음 속에는 공자를 믿고 따르는 아무 죄 없는 제자들이 왜 이런 힘든 상황에 처해야 하는지를 공자에게 따져 묻는 것이었다. 공자의 대답은 아주 간단하였다.

“군자는 어려울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사람이다(君子固窮). 그러나 소인은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곧 원칙을 버리고 넘치게 되지(小人窮斯濫).”

공자의 이 말 속에는 어려움 속에 대처하는 두 가지 인간의 전형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논리가 있다.

어려움(窮), 그 상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 상황에 대처하는 사람의 정신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출전

논어

九折羊腸 (구절양장)

九折羊腸(구절양장)

꼬불꼬불한 길.

求田問舍 (구전문사)

求田問舍(구전문사)

국가 대사에는 뜻이 없고 자기 목전의 이익에만 마음을 씀.

君子坦蕩蕩小人長戚戚 (군자탄탕탕소인장척척)

君子坦蕩蕩 小人長戚戚(군자탄탕탕 소인장척척)

君 임금 군 | 子 아들 자 | 坦 평탄할 탄, 너그러울 탄 | 蕩 방탕할 탕 | 小 작을 소 | 人 사람 인 | 長 | 길 장, 어른 장 | 戚 친척 척, 근심할 척, 재촉할 촉 |

군자는 마음이 평탄하며 넓고, 소인은 항상 걱정이 많다.

[출처]
論語(논어) 述而(술이)


관련 한자어

참조어

君子與小人(군자여소인) |

群雄割據 (군웅할거)

群雄割據 (군웅할거)

여러 영웅이 세력을 얻기 위해 겨루고 있는 상태를 두고 하는 말.

九牛一毛 (구우일모)

九牛一毛(구우일모)

九 아홉 구 | 牛 소 우 | 一 한 일 | 毛 털 모 |


아홉 마리의 소 가운데서 뽑은 털 하나. 수에도 들지 않을 만큼 하찮은 것을 형용하는 데 쓰는 말이다.


前漢(전한) 武帝(무제) 때 5천의 군사를 이끌고 흉노 토벌에 나섰던 李陵(이릉)장군은 열 배가 넘는 적을 맞아 10여 일을 싸웠으나 끝내 패하고 말았다. 이듬해 무제는 전사한 줄만 알고 있던 이릉이 흉노에게 투항해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진노한 그는 이릉 일족을 참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신하 중 누구 하나 이릉을 변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만 司馬遷(사마천)만이 대담 솔직하게 이릉의 무고함을 直言(직언)했다.

『이릉은 적은 수의 군사로 적의 수만 병력을 맞아 용감하게 싸웠지만 援軍(원군)은 오지 않고 내부에서 적과 내통한 자가 있어 패한 겁니다. 이릉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흉노에게 투항한 것도 필시 훗날을 노린 苦肉策(고육책)일 것입니다』

사마천의 말에 더욱 격노한 무제는 그를 옥에 가두고 생식기를 자르는 형벌인 宮刑(궁형)에 처했다.

사마천은 친구 任安(임안)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에 당시의 참담했던 심경을 이렇게 썼다.

『내가 사형을 당했다해도 그것은 「아홉 마리 소 가운데에서 터럭 하나 없어지는 것과 같을 뿐(九牛亡一毛)」이니 땅강아지나 개미 따위와 내가 뭣이 다를까』

사마천이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참으며 목숨을 부지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史記(사기)」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기」를 끝내지 않고 두 눈을 감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滄海一滴(창해일적) | 大海一滴(대해일적) | 大海一粟(대해일속) | 九牛一毛(구우일모) | 滄海一粟(창해일속) |

窮餘之策 (궁여지책)

窮餘之策(궁여지책)

궁박한 끝에 나는 한 계책

求之於勢 (구지어세)

求之於勢(구지어세)

기세에서 구하다. 개개인이 아닌 전체적인 기세가 중요함을 이르는 말

故善戰者 求之於勢 不責之於人 故能擇人而任勢(고선전자 구지어세 불책지어인 고능택인이임세)

고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전쟁의 승패를 기세에서 구하지 병사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따라서 능력있는 자를 택하여 기세를 돋운다.

[출전] 손자병법

九十春光 (구십춘광)

九十春光(구십춘광)

봄이 석달 동안

救世濟民 (구세제민)

救世濟民(구세제민)

救 구원할 구 | 世 인간 세, 대 세 | 濟 건널 제 | 民 백성 민 |

세상(世上)을 구(救)하고 민생(民生)을 구제(救濟)함

九死一生 (구사일생)

九死一生(구사일생)

아홉 번 죽을 고비에서 한 목숨 살다. 곧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겪고 겨우 살아난다는 뜻.


전국시대 楚(초)나라에 시인이자 정치가로 유명한 屈原(굴원)이 있었다. 박학다식하고 변론에 뛰어나 많은 활약을 했으나 말년에는 失意(실의)의 나날을 보내다 멱라수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굴원은 왕의 듣고 보는 것이 총명하지 못하고 참소와 아첨이 왕의 밝음을 가로막는 것을 근심하고 비통해 하면서 장편의 시를 지어 울분을 토로했는데 이 시가 유명한 「離騷(이소)」다. 이 「이소」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길게 한숨 쉬고 눈물을 닦으며 인생에 어려움 많음을 슬퍼하노라.… 「비록 아홉 번 죽을지라도 오히려 후회하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雖九死 猶未其悔․수구사 유미기회)」

여기에 나오는 「九死」에 대해 劉良注(유양주)는 더 명확한 풀이를 했다.
최악의 처지에 서게 되고 어떠한 재난을 만나 「십중팔구 살아날 길이 없다고 하더라도 회한은 없다(雖九死無一生 未足悔恨․수구사무일생 미족회한)」

여기서 九死一生이란 말이 나왔다.

이와 비슷한 말에 「起死回生(기사회생)」이 있다. 다 죽어가던 목숨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이다.

「呂氏春秋(여씨춘추)」에 이런 대목이 보인다.

『노나라에 공손작이란 자가 있었는데 「나는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가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반신불수를 고칠 수가 있다. 반신불수를 고치는 약을 두 배로 늘리면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도 있다(起死回生)」』

口尙乳臭 (구상유취)

口尙乳臭 (구상유취)

입에서 젖내가 날 만큼 말이나 하는 짓이 유치하다는 말.


어느 여름날 김삿갓이 한 마을을 지나는데 시골 선비들이 개를 잡아놓고 詩會(시회)를 열고 있었다. 한쪽 귀퉁이에 앉아 술 한잔을 얻어마시던 김삿갓에게는 시랍시고 지어놓은 시가 같잖게 여겨졌다.

그냥 보고 지나친다면 김삿갓이 아니다. "구상유취로군"하고 내뱉었것다.

구상유취라면 口尙乳臭,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뜻. 유치함을 얕잡아 이르는 말 아닌가. 좌중의 視線(시선)이 소리를 낸 꾀죄죄한 행색의 김삿갓에게 꽂혔다.

"방금 뭐라고 했소?"

험악한 표정을 한 한 참석자가 금방 쥐어박을 듯이 말했다. 김삿갓이 능청스럽게 받았다.

"개초상에 선비들이 모여있다(狗喪儒聚, 구상유취)고 한 내 말이 뭐가 잘못됐단 말이오?"

재치있게 받아넘긴 김삿갓에게 돌아온 건 몽둥이가 아니고 새로 잘 차린 술상이었다던가.누가 지어낸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뜻글자인 漢字(한자)가 동원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우스갯소리다.

한자를 모르고서는 이같은 말장난에 아예 웃을 수도 없다.

軍師父一體 (군사부일체)

軍師父一體 (군사부일체)

임금 스승 아버지의 은혜는 같다는 뜻

毆槃捫燭 (구반문촉, ōupánménzhú)

毆槃捫燭(구반문촉)

殴盘扪烛(ōupánménzhú)

毆 때릴 구 | 槃 쟁반 반 | 捫 어루만질 문 | 燭 촛불 촉 |


장님이 쟁반을 두드리고 초를 어루만져 본 것만 가지고 태양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확실하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함부로 논하거나 말하지 말라는 것을 빗댄 한자성어이다. 군맹무상(群盲撫象)과 뜻이 통한다.


북송(北宋) 때의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쓴〈일유(日喩)〉에서 유래하였다. 태어나면서 장님인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태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어떤 사람에게 물으니, 구리 쟁반처럼 생겼다고 대답하였다. 소경은 집으로 돌아와 쟁반을 두드려 보고 그 소리를 기억해 두었다. 다른 날 길을 가다가 종소리를 듣고는 쟁반을 두드릴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하자, 종을 태양이라고 하였다.

어떤 이가 다시 태양은 촛불처럼 빛을 낸다고 하자, 손으로 초를 어루만져 보고는 그 생김새를 기억해 두었다. 뒷날 우연히 피리를 만져보고는 초와 생김새가 비슷했으므로 이번에는 피리를 태양이라고 하였다.

구반문촉이란 말은 이 우화에서 생겼다. 장님은 태양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남의 말만 듣고 지레짐작으로 쟁반·종·초를 태양으로 단정하였다. 하지만 이 셋은 태양의 실체와는 전혀 다르다. 사람들이 들으면 배꼽 잡고 웃을 일인데도, 장님은 이를 태연하게 진리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남의 말만 곧이 듣고서 그것이 마치 사실이나 진리인 듯 여겨 어리석음을 자초하지 말라고 경계하는 한자성어가 바로 구반문촉이다. 섣부른 판단, 불확실한 일, 맹목적인 믿음 등이 모두 경계 대상에 포함된다. 군맹모상(群盲摸象)·군맹무상(群盲撫象)·군맹평상(群盲評象)·맹인모상(盲人摸象)과도 뜻이 통한다.

[유래]
日喩(일유) |


관련 한자어

유의어

群盲評象(군맹평상) | 群盲撫象(군맹무상) |


Tag

日喩(일유) | 蘇東坡(소동파) |

狗尾續貂 (구미속초)

狗尾續貂(구미속초)

훌륭한 것에 하찮은 것이 뒤를 잇는 것

口蜜腹劍 (구밀복검)

口蜜腹劍(구밀복검)

口蜜腹剑 [kǒumìfùjiàn]

口 입 구 | 蜜 꿀 밀 | 腹 배 복 | 劍 칼 검 |

입에는 꿀을 바르고 있지만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다. 곧 겉으로는 꿀같이 달콤하게 말하지만 속으로는 해칠 생각을 하고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honey-mouthed and dagger-hearted—a cruel heart under the cover of sugar-coated words; hypocritical and malignant


楊貴妃(양귀비)를 寵愛(총애)한 황제로 이름난 唐(당)나라 玄宗(현종)때 李林甫(이임보)라는 재상이 있었다. 그는 황제의 일가 친척인데다 宦官(환관)에게 뇌물을 바쳐 출세한 인물로 궁정을 활보하는 權臣(권신)이었다.

그는 또 아첨하는 재주가 있어서, 권세 있는 인물들과 자주 접촉하고, 황제의 주변 인물들에게도 많은 뇌물을 주어 황제의 언행을 항상 파악하여, 황제의 기분에 맞게 처세할 수 있었다.

언제나 현종의 측근에 있으면서 인사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조정의 누구도 이임보를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그는 19년 동안이나 안전하게 재상의 자리에 있으며, 위세를 떨쳤다. 그가 죽은 뒤 반란을 일으켜 당나라를 한때 亡國(망국)의 벼랑까지 몰고갔던 安祿山(안록산)도 두려워 할 정도였다.

그는 현종에게 盲從(맹종)하며 아첨하는 한편 올바른 말을 하는 충신들을 陰害(음해)하여 멀리 내쫓거나 죽음에 이르도록 했다.

어느날 현종이 이임보에게 물었다.

“嚴挺之(엄정지)는 지금 어디에 있지.그에게 중책을 맡기고 싶은데.”

엄정지는 강직한 신하로 중앙에서 요직을 맡고 있다가 이임보에게 밉보여 지방으로 쫓겨나 태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날 저녁 엄정지의 아우를 불러들인 이임보는 이렇게 말했다.

“황제께서 자네 형님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칭찬하시네.틀림없이 금명간 높은 벼슬을 주실거니까 일단 병치료차 장안에 돌아왔다고 상소문을 쓰도록 연락하게.”

긴급연락을 받은 엄정지는 현종에게 상소문을 올리자 이임보는 그걸 들고 현종에게 가서 말했다.

“전에 말씀하신 엄정지의 상소문이 올라왔습니다만 나이도 많은데다 중병에 걸린 모양이니 중임은 맡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황제는 이임보의 말에 따랐고 술수에 말려든 걸 알게 된 엄정지는 화병으로 죽고 말았다.

조정의 벼슬아치들은 이렇게 수군거렸다.

“이임보는 입에 꿀을 바르고 말하지만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다[李林甫口有蜜, 腹有劍].”


출전

당서(唐書)


관련 한자

참조어

口有蜜腹有劒(구유밀복유검) | 面從腹背(면종복배) | 笑裏藏刀(소리장도) | 笑中刀(소중도) | 笑中有劍(소중유검) | 笑中有刀(소중유도) | 羊頭狗肉(양두구육) | 陽奉陰違(양봉음위) | 羊質虎皮(양질호피) | 表裏不同(표리부동) | 包藏禍心(포장화심) |

掘墓鞭屍 (굴묘편시, juémùbiānshī)

掘墓鞭屍(굴묘편시)

掘墓鞭尸(juémùbiānshī)

堀 굴 굴 | 墓 무덤 묘 | 鞭 채찍 편 | 屍 주검 시 |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을 한다는 뜻으로, 통쾌한 복수나 지나친 행동을 일컫는 말.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자서(伍子胥)의 고사에서 나왔는데, 그는 초(禁)나라 평왕(平王)의 태자 건(建)의 태부(太傅)요 충신이었던 오사(伍奢)의 아들이었다. 평왕이 건의 소부(少傅)였던 비무기(費無忌)의 참언으로 태자를 죽이려 하고 오사를 감옥에 가두었다. 비무기는 평왕을 부추겨 오사를 인질로 삼아 그의 큰아들 오상(伍尙)과 오자서를 불러들여 죽임으로써 후환을 없애고자 하였다. 오상은 이것이 함정인 줄 알면서도 부름에 따라 아버지와 함께 살해되었으나 오자서는 복수를 기약하며 오나라로 망명하였다.

송(宋)나라와 정(鄭)나라를 거쳐 오(吳)나라로 간 오자서는 합려(闔閭)를 보좌하여 오나라를 강국으로 키웠다. BC 506년 오나라가 초나라를 함락시킨 뒤, 오자서는 평왕의 아들 소왕(昭王)을 잡으려 하였으나 이미 도망친 뒤였다. 평왕은 생전에 이미 그의 보복을 예견하고 자신의 무덤을 깊은 연못 속에 만들고 묘의 조성작업에 종사한 일꾼 500명을 모두 죽여 버린 까닭에 무덤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작업에 종사했다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노인이 알려주어, 자서는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에 채찍질을 300번 함으로써 복수하였는데, 굴묘편시(掘墓鞭屍)는 여기서 유래된 고사성어이다.

오자서의 친구 신포서(申包胥)가 이 소문을 듣고, "그대의 그러한 복수방법은 지나친 게 아닌가…"라고 책하였다. 그러자 오자서는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어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답하였는데, 여기서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되었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日暮途遠(일모도원) | 心腹之患(심복지환) | 吴市吹箫(오시취소,Wúshìchuīxiāo) |


史記(사기) : 伍子胥列傳(오자서열전) | 伍子胥(오자서) |

苟命徒生 (구명도생)

苟命徒生(구명도생)

구차스럽게 목숨만 보전함

軍令泰山 (군령태산)

軍令泰山(군령태산)

군대의 명령은 태산같이 무거움.

鞠躬盡力 (국궁진력)

鞠躬盡力(국궁진력)

鞠 공 국, 국문할 국, 궁궁이 궁 | 躬 몸 궁 | 盡 다할 진 | 力 힘 력(역) |

존경(尊敬)하는 마음으로, 몸을 낮춰 온힘을 다한다는 뜻을 나타냄

救國干城 (구국간성)

救國干城(구국간성)

나라를 구하여 지키는 믿음직한 군인이나 인물

九曲肝腸 (구곡간장)

九曲肝腸(구곡간장)

굽이굽이 서린 창자라는 뜻으로, 깊은 마음속 또는 시름이 쌓인 마음속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群鷄一鶴 (군계일학)

鷄群一鶴(계군일학) | 群鷄一鶴(군계일학) |

群鸡一鹤(qúnjīyíhè)

群 무리 군 | 鷄 닭 계 | 一 한 일 | 鶴 학 학,흴 학 |


무리 지어 있는 닭 가운데 있는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여러 평범(平凡)한 사람들 가운데 있는 뛰어난 한 사람을 이르는 말


위진시대(魏晉時代)에는 혼란스러운 세상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 문학과 노장(老莊)의 사상, 음악 등 청담(淸談)을 담론하며 세월을 보내던 선비가 적지 않았다. 이들 중 대표적인 인물은 죽림칠현(竹林七賢)으로 불리는 일곱 명의 선비 완적(阮籍)·완함(阮咸)·혜강(嵆康)·산도(山濤)·왕융(王戎)·유령(劉伶)·상수(尙秀) 등이다.

이들 가운데 혜강은 특히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는데, 무고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을 당하였다. 당시 그에게 열살박이 아들 혜소(嵆紹)가 있었다. 혜소는 장성하자 혜강의 친구 중 한 사람인 산도가 혜소를 무제(武帝:265~290)에게 천거하며 이렇게 말했다.

"《서경(書經)》 〈강고편(康誥篇)〉에 보면, 아버지와 자식간의 죄는 서로 연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혜소는 비록 혜강의 아들이지만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부 극결(郤缺)에 뒤지지 않을 만큼 총명합니다. 그를 비서랑(秘書郞)으로 임명하십시오." 무제는 "경(卿)이 천거(薦擧)하는 사람이라면 승(丞)이라도 능히 감당할 것이오"라고 흔쾌히 허락하였다. 이리하여 혜소는 비서랑보다 한 계급 위인 비서승에 임명되었다.

《진서(晉書)》 〈혜소전(嵆紹傳)〉에, 혜소가 낙양(洛陽)으로 가던 날,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이가 다음 날 왕융에게 "어제 구름같이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서 궁궐로 들어가는 혜소를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의젓하고 늠름하여 마치 닭의 무리 속에 있는 한 마리의 학 같았습니다[昂昂然如野鶴之在雞群]"라고 하였다.

그러자 왕융은 말했다. "혜소의 아버지는 그보다 더 뛰어났었다네. 자네는 그의 부친을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일세." 왕융의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혜소는 부친만은 못하지만, 상당히 뛰어난 인물이었다. 여기서 '계군일학'이란 말이 나왔으며 이 뜻은 학립계군(鶴立鷄群)·군계일학(群鷄一鶴)·계군고학(鷄群孤鶴) 등과 같이 통용된다. 혜소는 나중에 시중(侍中)으로 승진하여 혜제(惠帝) 곁에서 직언(直言)을 올리는 몸이 되어 올바르고 곧게 처신하였다고 한다.

팔왕의 난이 한창일 때 혜제는 이를 진압하려고 군병을 일으켰으나 전세가 불리하여 피란을 가게 되었다. 혜소가 부름을 받아 당도하였을 때는 혜제의 군이 이미 패하였을 때였다. 해소는 백관 시위가 모두 도망해 버린 곳에서 홀로 의관을 바로하고, 창과 칼이 불꽃을 일으키는 어차 앞에서 몸으로 혜제를 감싸며 지키다가, 적의 화살에 맞아 혜제의 어의(御依)를 선혈로 물들였다. 난이 끝난 뒤, 근시(近侍)들이 의복을 빨려 하자 혜제는 “이것은 혜소가 흘린 충의의 피이다. 씻어 없애지 마라" 하였다 한다.

[유래] 晉書(진서) : 忠義 |


관련 한자어

유의어

鶴立鷄群(학립계군) | 出衆(출중) | 錐處囊中(추처낭중) | 錐囊(추낭) | 絶倫(절윤) | 穎脫而出(영탈이출) | 穎脫(영탈) | 白眉(백미) | 拔群(발군) | 囊中之錐(낭중지추) | 鷄群鶴(계군학) | 鷄群一鶴(계군일학) | 鷄群孤鶴(계군고학) |

出類拔萃(출류발췌) 무리 가운데 특출나게 뛰어난 사람을 이르는 한자성어 |

庸中佼佼(용중교교,yōngzhōngjiǎojiǎo) 평범한 사람 중의 비범한 사람. 군계일학(群鷄一鶴) |


Tag

晉書(진서) : 忠義 | 出衆(출중) | 혜소(嵆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