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井中之蛙 (정중지와, jǐngzhōngzhīwā)

井中之蛙(정중지와)

井中之蛙(jǐng zhōng zhī wā)

井 우물 정 | 中 가운데 중 | 之 갈 지 | 蛙 개구리 와


우물 안 개구리라는 뜻으로, 식견이 좁음의 비유.


왕망이 전한을 멸하고 세운 신나라 말경, 마원이란 인재가 있었다. 그는 관리가 된 세형과는 달리 고향에서 조상의 묘를 지키다가 농서(감숙성)에 웅거하는 외효의 부하가 되었다.

그 무렵, 공손술은 촉땅에 성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참칭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외효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해 마원을 보냈다. 마원은 고향 친구인 공손술이 반가이 맞아 주리라 믿고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공손술은 계단 아래 무장한 군사들을 도열시켜 놓고 위압적인 자세로 마원을 맞았다. 그리고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옛 우정을 생각해서 자네를 장군에 임명할까 하는데, 어떤가?"

마원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천하의 자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는데 공손술은 예를 다하여 천하의 인재를 맞으려 하지 않고 허세만 부리고 있구나. 이런자가 어찌 천하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마원은 서둘러 돌아와서 외효에게 고했다.

"공손술은 좁은 촉 땅에서 으스대는 재주밖에 없는 '우물안 개구리[정중지와]'였습니다."

그래서 외효는 공손술과 손잡을 생각을 버리고 훗날 후한의 시조가 된 광무제와 수호하게 되었다.

'정중지와'란 말은 [장자] '추수편'에도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황하의 신(神) 하백(河伯)은 가을 홍수로 황하의 물이 불어나자 기뻐하며 천하의 훌륭함이 모두 자기에게 모여있다고 생각하였다. 물을 따라 동해의 북쪽 바다에 이르자 하백은 바다의 위세에 눌려 한숨을 지었다. 그러자 북해의 해신인 약(若)이 하백에게 말했다.

"'우물안 개구리'가 바다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구애되기 때문이고[井蛙不可以語於虛也, 拘於虛也], 여름 벌레가 얼음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여름 한철 밖에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일밖에 모르는 사람과 도에 대해 말 할 수 없는것은 자기가 배운 것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은 대해를 보고 비로소 자신의 꼴불견을 깨달았으니, 이제는 대도의 이치를 말할 수 있습니다."

[출전]
후한서:마수전, 장자:추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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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어·유의어

坐井觀天(좌정관천) | 井中之蛙(정중지와) | 井中蛙(정중와) | 井中視星(정중시성) | 井中觀天(정중관천) | 井底蛙(정저와) | 夜郞自大(야랑자대) | 坎中之蛙(감중지와) | 井底之蛙(정저지와) | 井蛙不知大海(정와부지대해) |

유사어

촉견폐일 | 월견폐설 |

참조어

望洋之歎(망양지탄) | 득롱망촉 |

井中觀天 (정중관천)

井中觀天(정중관천)

井 우물 정 | 中 가운데 중 | 觀 볼 관 | 天 하늘 천 |

우물 속에 앉아서 좁은 하늘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소견(所見)이나 견문(見聞)이 좁음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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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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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물 안 개구리

井底之蛙 (정저지와)

井底之蛙(정저지와)

井底之蛙(jǐngdǐzhīwā)

우물 안 개구리라는 뜻으로 소견(所見)이나 견문(見聞)이 좁은 사람의 비유.

a frog in a well—a person with a very limited outlook and experience; an ignorant person


장자(莊子) 추수편에 보면 황하(黃河)의 신(神)인 하백(河伯)이 강물을 따라 처음으로 북해(北海)에 와 동해를 바라보았다. 매우 넓음에 놀라서 북해의 신(神) 약(若)에게 물으니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사는 곳에 구속된 까닭이며 여름 벌레가 얼음을 말할 수 없는 것은 한 계절에 고정되어 산 까닭이며 정직하지 못한 선비는 도에 대해서 말할 수 없으니 세속적인 가르침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당신은 좁은 개울에서 나와 큰 바다를 바라보고 나서 자기가 보잘 것없는 존재(存在)임을 알았기 때문에 이젠 당신과 함께 천하(天下)의 진리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對答)했다고 한다.

[출전]
장자(莊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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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물 안 개구리
¶ 바늘구멍으로 하늘 보기.

挺身而出 (정신이출)

挺身而出(정신이출)

挺身而出[tǐngshēn'érchū]

挺 빼어날 정, 곧을 정 | 身 몸 신 | 而 말 이을 이 | 出 날 출, 단락 척 |

'몸을 펴 앞장서서 나아가다'라는 뜻으로, 어떤 일에 용감하게 앞장서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당(唐)나라의 무장 경군홍(敬君弘) 등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당(唐)나라의 개국황제인 당 고조(高祖) 이연(李淵)에게는 건성(建成), 세민(世民), 원길(元吉) 등 세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인 건성은 태자(太子)에 옹립되고 세민은 진왕(秦王)에, 원길은 제왕(齊王)에 봉하여졌다. 그러나 세민은 부친을 도와 당나라 건국에 많은 공을 세웠기 때문에, 그의 위엄과 명망은 세 아들들 가운데에서 가장 높았다.

태자 건성은 제위계승을 세민에게 빼앗기게 될까 두려워 원길과 연합하여 그를 죽이기로 하였다. 이를 눈치챈 세민은 심복인 방현령(房玄齡)과 대책을 상의하여 선수를 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현무문(玄武門)에 복병을 두고 건성이 입조(入朝)하기를 기다려 살해하고 원길도 함께 죽였다.

그러자 건성과 원길의 부하인 풍립(馮立)과 사숙방(謝叔方)이 정예 병사를 규합하여 세민을 공격하였다. 이때 경군홍이 현무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쌍방 간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구당서(舊唐書)》의 '경군홍전'에 따르면, 경군홍은 앞장서서 전투에 나섰다[君弘挺身出戰].

경군홍은 주위에서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사태의 변화를 살펴보고 병력이 모이기를 기다려 전열을 이룬 뒤에 싸워도 늦지 않다"라고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용맹스럽게 진군하여 적과 싸웠다. 나중에 태종(太宗)이 된 세민이 그의 공을 치하하며 좌둔위대장군(左屯衛大將軍)으로 삼았다.

또 《구오대사(舊五代史)》에 따르면, 당경사(唐景思)가 박주의 방어사로 있을 때 비적들이 성을 포위하여 공격하였다. 당경사는 전력으로 항거하였으나 며칠 뒤에 성이 함락되었다. 당경사는 앞장서서 나아가 싸웠으며[景思挺身而出], 인근 고을에 사람을 보내 수백 명의 원군을 얻어 마침내 비적들을 몰아내고 성을 되찾았다.

한편, 송(宋)나라 때 소동파(蘇東坡)가 지은 《유후론(留侯論)》에는 "필부는 모욕을 당하면 칼을 뽑아들고 일어나 온몸을 던져 싸우는데, 이는 참된 용기라고 할 수 없다[匹夫見辱, 拔劍而起, 挺身而鬪, 此不足爲勇也]"라는 말이 있다. 이러한 고사들에서 유래하여 정신이출은 어떤 위난한 일을 당하였을 때 용감하게 앞장서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舊唐書(구당서)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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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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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正復爲奇善復爲妖 (정복위기선복위요)

正復爲奇善復爲妖(정복위기선복위요)

正 바를 정, 정월 정 | 復 다시 부, 회복할 복 | 爲 하 위, 할 위 | 奇 기특할 기, 의지할 의 | 善 착할 선 | 復 다시 부, 회복할 복 | 爲 하 위, 할 위 | 妖 요사할 요 |

바른 것은 다시 기이한 것으로 변할 수 있고 선한 것은 다시 요사한 것으로 변할 수 있다.

[출전]
노자 58장

頂門一鍼 (정문일침)

頂門一鍼(정문일침)

정수리에 침 하나를 꽂는다는 뜻으로, 상대방(相對方)의 급소(急所)를 찌르는 따끔한 충고(忠告)나 교훈(敎訓)을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寸鐵殺人(촌철살인) | 頂上一鍼(정상일침) | 頂門一針(정문일침) |

程門立雪 (정문입설, Chéngménlìxuě)

程門立雪(정문입설)

程门立雪(Chéngménlìxuě)

程 한도 정,길 정 | 門 문 문 | 立 설 입(립) | 雪 눈 설 |


'정씨 집 문 앞에 서서 눈을 맞다'라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을 존경함 또는 간절히 배움을 구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송(宋)나라 때 양시(楊時)와 유초(游酢 또는 遊酢)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양시와 유초는 북송(北宋) 때의 대유학자 정호(程顥)의 제자였다. 정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양시와 유초는 정호의 동생인 정이를 스승으로 섬기고자 찾아갔다. 그들이 정이의 집에 이르렀을 때, 마침 정이는 눈을 감고 좌정하여 명상에 잠겨 있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서서 정이가 눈을 뜨기를 기다렸는데, 이때 밖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한참 뒤에 정이가 눈을 뜨고 양시와 유초를 보았을 때, 문 밖에는 눈이 한 자나 쌓여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 두 사람은 스승을 뵙고자 말없이 서서 기다렸던 것이다.

이 고사는 《송사(宋史)》의 〈양시전(楊時傳)〉에 실려 있다. 양시와 유작은 이와 같이 배움을 간절히 구하는 자세로 학문에 정진하여, 여대림(呂大臨)·사양좌(謝良佐)와 함께 정문(程門:정호와 정이의 문하)의 4대 제자로 꼽힌다. 이들의 고사에서 유래하여 정문입설은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의 마음이나 배움을 간절히 구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유래]
宋史(송사):楊時傳(양시전) | 名臣言行錄(명신언행록) |


宋史, 송사, 宋史:楊時傳, 송사:양시전, 名臣言行錄, 명신언행록

庭訓 (정훈)

庭訓(정훈)

庭 뜰 정 | 訓 가르칠 훈 |

뜰에서 가르친다는 뜻으로 가정 교육을 이르는 말.


논어(論語) 계씨(季氏)편의 이야기.

공자의 제자인 진항(陳亢)이 공자의 아들인 백어(伯魚)에게 물었다.

"그대는 또 다른 말씀을 들은 적이 있는가."

백어가 대답하였다.

"아직 없습니다. 한번은 홀로 서 계실 때 제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자 이르시기를, '시(詩)를 배웠느냐?' 하시기에 '아직 배우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하시기에 물러나 시를 배웠습니다. 다른 날 또 홀로 서 계실 때 제가 뜰을 지나가자 이르시기를, '예(禮)를 배웠느냐?' 하시기에 '아직 배우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세상에 나가 설 수 없다' 하시기에 물러나 예를 배웠습니다. 들은 것은 이 두 가지뿐입니다."

진항이 물러나와 기뻐하며, "하나를 물어 셋을 얻었다. 시와 예에 관한 것을 들었고, 또 군자는 자식을 멀리한다는 것을 들어 알았으니 말이다"라고 하였다.

공자는 이처럼 아들에게 세세한 가르침을 주지 않고, 그저 뜰을 지나는 아들을 불러 간접적으로 가르침을 주었을 뿐이다. 뜰을 지날 때의 가르침이라 하여 과정지훈(過庭之訓) 또는 추정(趨庭)이라고도 한다.


출전

논어(論語) 계씨(季氏)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趨庭(추정) | 鯉庭之訓(이정지훈) | 鯉庭(이정) | 過庭之訓(과정지훈) | 家敎(가교)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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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