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面書生 (백면서생, báimiànshūshēng)

白面書生(백면서생)

白面书生, báimiànshūshēng

白 흰 백 | 面 얼굴 면 | 書 글 서 | 生 날 생


백면랑(白面郞)이라고도 하는데 《송서(宋書)》〈심경지전(沈慶之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남북조시대에 남조(南朝)의 송(宋)나라와 북조의 북위(北魏)는 강남(江南)의 사진(四鎭)을 둘러싸고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화의하는 외교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북위의 태무제(太武帝)는 북쪽을 무력으로 통일한 다음 유연(柔然)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서역(西域) 여러 나라와 우호적인 외교 관계를 맺었다. 그러자 송나라 제3대 문제(文帝)는 남쪽의 임읍(林邑)을 평정하여 북위와의 일대 결전에 대비하였다.

449년에 북위의 태무제가 유연을 선제 공격하자 송나라의 문제는 이때가 숙적 북위를 공격할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여 문신들과 북위를 공격할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하였다. 이때 무관인 심경지는 이전에 결행한 북벌 출병의 전례를 들어 출병을 반대하고 다음과 같이 올바른 말을 하였다. “폐하, 밭갈이는 종에게 물어보고, 베를 짜는 일은 하녀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지금 폐하는 적국을 공격하려고 하면서 백면서생과 도모하면 어찌 적을 이길 수 있겠사옵니까[田事可問奴 織事可問婢 今陛下 將欲攻敵國 與白面書生謀之 事何由濟].”

그러나 문제는 심경지의 말을 듣지 않고 문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출병을 강행하였다가 대패하였다. 심경지의 말에서 유래한 백면서생이란, 얼굴이 검은 무관과 대비하여 집 안에서 책만 읽어 창백한 얼굴의 문신들을 가리키며, 말로만 떠들고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 또는 초년생을 비꼬아서 하는 말이다. 출전 경험이 많은 심경지는 비록 글에는 능숙하지 못하지만 어릴 때부터 무예를 연마하여 그 기량이 뛰어났다. 10세 때 동진(東晉)의 장군 손은(孫恩)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사병(私兵)들을 이끌고 반란군을 진압할 정도였다. 40세 때는 이민족의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장군에 임명되었으며, 이후에도 혁혁한 전공을 세워 건무장군(建武將軍)에 임명되어 변경 수비군의 총수로 부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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