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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禮之會非酒不行 (백례지회비주불행)
百禮之會非酒不行
- 中國俗談
There is no party without wine.
- Chinese Proverb
술 없는 잔치 없다. [백례지회비주불행(百禮之會非酒不行)]
- 중국속담(中國俗談)
百 일백 백 | 禮 예도 례 | 之 갈 지 | 會 모일 회 | 非 아닐 비 | 酒 술 주 | 不 아닐 불 | 行 갈 행 |
온갖 예의의 모임은 술이 없으면 행하지 아니함. [출전] 漢書(한서).
伯牙絶絃 (백아절현)
伯牙絶絃(백아절현)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는 뜻으로, 서로마음 속 깊이 이해하고 있는 참다운 벗의 죽음을 슬퍼함.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 타고 종자기(鍾子期)는 이 거문고 소리를 잘 들었는데,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여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유래.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는 뜻으로, 서로마음 속 깊이 이해하고 있는 참다운 벗의 죽음을 슬퍼함.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 타고 종자기(鍾子期)는 이 거문고 소리를 잘 들었는데,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여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유래.
白眼 (백안)
白眼(백안)
남을 냉담하게 다룸을 이르는 말. 진(晋)나라의 완적(阮籍)은 예법 따위에 얽매이는 소인에게는 백안(白眼)으로 응대하고 그런 것쯤 상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쾌히 청안(靑眼)으로 응대하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
남을 냉담하게 다룸을 이르는 말. 진(晋)나라의 완적(阮籍)은 예법 따위에 얽매이는 소인에게는 백안(白眼)으로 응대하고 그런 것쯤 상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쾌히 청안(靑眼)으로 응대하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
白眉 (백미, báiméi)
白眉(백미)
白眉(báiméi)
白 흰 백 | 眉 눈썹 미 |
중국(中國) 蜀(촉)나라 馬良(마량)의 5형제(兄弟) 중(中) 흰 눈썹이 섞인 良(양)의 재주가 가장 뛰어나다는 데서 온 말로, 여럿 중(中)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물건(物件)을 이르는 말.
The best of all
백미는 흰 눈썹이란 뜻이다.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 권39에는 마씨(馬氏) 5형제에 관한 기록이 있다.
위ㆍ촉 ㆍ오가 서로 패권을 다툴 무렵, 촉나라에 마량(馬良, 187-222)이라는 자가 있었다. 마량은 양양(襄陽)의 의성(宜城) 출신으로 자(字)는 계상(季常)이다. 그는 제갈량과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은 사이로, 뛰어난 덕성과 지모로 남쪽 변방의 오랑캐들을 평정하는 데 큰 활약을 했다.
마속을 포함하여 마량의 형제는 다섯이었는데 다섯 형제는 모두 자(字)에 상(常)이란 글자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들 형제를 가리켜 ‘마씨오상(馬氏五常)’이라 일컬었다.
그중 맏이인 마량은 태어날 때부터 눈썹에 흰 털이 섞여 있어 '백미(흰 눈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들은 모두 재주가 비범하여 명성이 자자했는데, 그 중에서 마량이 가장 뛰어났다. 그 고장사람들은 말하기를 “마씨오상은 모두 뛰어나지만 그 중에서도 흰 눈썹이 가장 훌륭하다[馬氏五常 白眉最良]”라고 하였다.
이 때부터 같은 또래, 같은 계통의 많은 사람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을 백미라 부르게 되었고, 지금은 사람만이 아니라 뛰어난 작품을 이야기할 때도 백미라 부른다.《삼국지》 촉지 마량전(蜀志馬良傳)에 그 유래가 전한다.
蜀漢馬良(촉한마량)의 字(자)는 季常(계상)이니 兄弟五人(형제오인)이 皆用常爲字(개용상위자)하고 幷有才名(병유재명) 이라. 鄕里爲之諺曰(향리위지언왈)「馬氏五常(마씨오상)에 白眉最長(백미최장)이라」하니 良(량)은 眉中(미중)에 有白眉(유백미)라 故(고)로 以稱之(이칭지)니라.
유비(劉備)는 촉(蜀)땅에 들어와서 마량을 좌장군연(左將軍 )으로 임명하였으며, 제위(帝位)에 즉위한 후에는 그를 시중(侍中)에 등용하였다. 마량은 유비를 수행하여 이릉(夷陵)전투에 참가하였다가 35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유래
三國志(삼국지)
관련 고사성어
유의어
鶴立鷄群(학립계군) | 出衆(출중) | 錐處囊中(추처낭중) | 錐囊(추낭) | 絶倫(절윤) | 壓卷(압권) | 拔群(발군) | 囊中之錐(낭중지추) | 群鷄一鶴(군계일학) | 鷄群一鶴(계군일학) | 鷄群孤鶴(계군고학) |
참조어
言過其實(언과기실) | 泣斬馬謖(읍참마속) |
白眉(báiméi)
白 흰 백 | 眉 눈썹 미 |
중국(中國) 蜀(촉)나라 馬良(마량)의 5형제(兄弟) 중(中) 흰 눈썹이 섞인 良(양)의 재주가 가장 뛰어나다는 데서 온 말로, 여럿 중(中)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물건(物件)을 이르는 말.
The best of all
백미는 흰 눈썹이란 뜻이다.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 권39에는 마씨(馬氏) 5형제에 관한 기록이 있다.
위ㆍ촉 ㆍ오가 서로 패권을 다툴 무렵, 촉나라에 마량(馬良, 187-222)이라는 자가 있었다. 마량은 양양(襄陽)의 의성(宜城) 출신으로 자(字)는 계상(季常)이다. 그는 제갈량과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은 사이로, 뛰어난 덕성과 지모로 남쪽 변방의 오랑캐들을 평정하는 데 큰 활약을 했다.
마속을 포함하여 마량의 형제는 다섯이었는데 다섯 형제는 모두 자(字)에 상(常)이란 글자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들 형제를 가리켜 ‘마씨오상(馬氏五常)’이라 일컬었다.
그중 맏이인 마량은 태어날 때부터 눈썹에 흰 털이 섞여 있어 '백미(흰 눈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들은 모두 재주가 비범하여 명성이 자자했는데, 그 중에서 마량이 가장 뛰어났다. 그 고장사람들은 말하기를 “마씨오상은 모두 뛰어나지만 그 중에서도 흰 눈썹이 가장 훌륭하다[馬氏五常 白眉最良]”라고 하였다.
이 때부터 같은 또래, 같은 계통의 많은 사람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을 백미라 부르게 되었고, 지금은 사람만이 아니라 뛰어난 작품을 이야기할 때도 백미라 부른다.《삼국지》 촉지 마량전(蜀志馬良傳)에 그 유래가 전한다.
蜀漢馬良(촉한마량)의 字(자)는 季常(계상)이니 兄弟五人(형제오인)이 皆用常爲字(개용상위자)하고 幷有才名(병유재명) 이라. 鄕里爲之諺曰(향리위지언왈)「馬氏五常(마씨오상)에 白眉最長(백미최장)이라」하니 良(량)은 眉中(미중)에 有白眉(유백미)라 故(고)로 以稱之(이칭지)니라.
유비(劉備)는 촉(蜀)땅에 들어와서 마량을 좌장군연(左將軍 )으로 임명하였으며, 제위(帝位)에 즉위한 후에는 그를 시중(侍中)에 등용하였다. 마량은 유비를 수행하여 이릉(夷陵)전투에 참가하였다가 35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유래
三國志(삼국지)
관련 고사성어
유의어
鶴立鷄群(학립계군) | 出衆(출중) | 錐處囊中(추처낭중) | 錐囊(추낭) | 絶倫(절윤) | 壓卷(압권) | 拔群(발군) | 囊中之錐(낭중지추) | 群鷄一鶴(군계일학) | 鷄群一鶴(계군일학) | 鷄群孤鶴(계군고학) |
참조어
言過其實(언과기실) | 泣斬馬謖(읍참마속) |
白面書生 (백면서생, báimiànshūshēng)
白面書生(백면서생)
白面书生, báimiànshūshēng
白 흰 백 | 面 얼굴 면 | 書 글 서 | 生 날 생
백면랑(白面郞)이라고도 하는데 《송서(宋書)》〈심경지전(沈慶之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남북조시대에 남조(南朝)의 송(宋)나라와 북조의 북위(北魏)는 강남(江南)의 사진(四鎭)을 둘러싸고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화의하는 외교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북위의 태무제(太武帝)는 북쪽을 무력으로 통일한 다음 유연(柔然)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서역(西域) 여러 나라와 우호적인 외교 관계를 맺었다. 그러자 송나라 제3대 문제(文帝)는 남쪽의 임읍(林邑)을 평정하여 북위와의 일대 결전에 대비하였다.
449년에 북위의 태무제가 유연을 선제 공격하자 송나라의 문제는 이때가 숙적 북위를 공격할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여 문신들과 북위를 공격할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하였다. 이때 무관인 심경지는 이전에 결행한 북벌 출병의 전례를 들어 출병을 반대하고 다음과 같이 올바른 말을 하였다. “폐하, 밭갈이는 종에게 물어보고, 베를 짜는 일은 하녀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지금 폐하는 적국을 공격하려고 하면서 백면서생과 도모하면 어찌 적을 이길 수 있겠사옵니까[田事可問奴 織事可問婢 今陛下 將欲攻敵國 與白面書生謀之 事何由濟].”
그러나 문제는 심경지의 말을 듣지 않고 문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출병을 강행하였다가 대패하였다. 심경지의 말에서 유래한 백면서생이란, 얼굴이 검은 무관과 대비하여 집 안에서 책만 읽어 창백한 얼굴의 문신들을 가리키며, 말로만 떠들고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 또는 초년생을 비꼬아서 하는 말이다. 출전 경험이 많은 심경지는 비록 글에는 능숙하지 못하지만 어릴 때부터 무예를 연마하여 그 기량이 뛰어났다. 10세 때 동진(東晉)의 장군 손은(孫恩)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사병(私兵)들을 이끌고 반란군을 진압할 정도였다. 40세 때는 이민족의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장군에 임명되었으며, 이후에도 혁혁한 전공을 세워 건무장군(建武將軍)에 임명되어 변경 수비군의 총수로 부임하기도 하였다.
白面书生, báimiànshūshēng
白 흰 백 | 面 얼굴 면 | 書 글 서 | 生 날 생
백면랑(白面郞)이라고도 하는데 《송서(宋書)》〈심경지전(沈慶之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남북조시대에 남조(南朝)의 송(宋)나라와 북조의 북위(北魏)는 강남(江南)의 사진(四鎭)을 둘러싸고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화의하는 외교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북위의 태무제(太武帝)는 북쪽을 무력으로 통일한 다음 유연(柔然)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서역(西域) 여러 나라와 우호적인 외교 관계를 맺었다. 그러자 송나라 제3대 문제(文帝)는 남쪽의 임읍(林邑)을 평정하여 북위와의 일대 결전에 대비하였다.
449년에 북위의 태무제가 유연을 선제 공격하자 송나라의 문제는 이때가 숙적 북위를 공격할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여 문신들과 북위를 공격할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하였다. 이때 무관인 심경지는 이전에 결행한 북벌 출병의 전례를 들어 출병을 반대하고 다음과 같이 올바른 말을 하였다. “폐하, 밭갈이는 종에게 물어보고, 베를 짜는 일은 하녀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지금 폐하는 적국을 공격하려고 하면서 백면서생과 도모하면 어찌 적을 이길 수 있겠사옵니까[田事可問奴 織事可問婢 今陛下 將欲攻敵國 與白面書生謀之 事何由濟].”
그러나 문제는 심경지의 말을 듣지 않고 문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출병을 강행하였다가 대패하였다. 심경지의 말에서 유래한 백면서생이란, 얼굴이 검은 무관과 대비하여 집 안에서 책만 읽어 창백한 얼굴의 문신들을 가리키며, 말로만 떠들고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 또는 초년생을 비꼬아서 하는 말이다. 출전 경험이 많은 심경지는 비록 글에는 능숙하지 못하지만 어릴 때부터 무예를 연마하여 그 기량이 뛰어났다. 10세 때 동진(東晉)의 장군 손은(孫恩)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사병(私兵)들을 이끌고 반란군을 진압할 정도였다. 40세 때는 이민족의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장군에 임명되었으며, 이후에도 혁혁한 전공을 세워 건무장군(建武將軍)에 임명되어 변경 수비군의 총수로 부임하기도 하였다.
百年河淸 (백년하청)
百年河淸(백년하청)
중국의 黃河(황하)는 언제나 흐려 백년을 기다린다해도 맑아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아무리 오래되어도 사물이 이루어지기 어려움을 일컫는 말이다.
春秋(춘추)시대의 鄭(정)나라는 晉(진)나라와 楚(초)나라 등 강국 사이에 끼여있어 간신히 독립을 유지하고 있는 처지였다. 가만히 있었으면 괜찮을 것인데 정나라가 초나라의 속국이었던 蔡(채)나라를 공격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곧바로 초나라가 공격을 해왔기 때문이다.
정나라 重臣(중신)들이 대책을 논의했으나 항복을 하자는 측과 진나라의 구원을 기다려 저항을 해야한다는 측이 맞서 좀처럼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이때 항복을 주장하는 측의 子駟(자사)가 말했다.
"周(주)나라 詩(시)에 이르기를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한이 없어 사람의 짧은 목숨으로는 불가능하다. 점쳐서 꾀하는 일이 많으면 새가 그물에 얽히듯 움직일 수 없게 된다」고 했습니다. 희생물과 비단을 갖추어 초나라와 진나라의 국경에서 기다렸다가 강한 쪽에 붙어 백성을 지킵시다. 적이 해로운 일을 하지않고 백성들이 괴로움을 당하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중국의 黃河(황하)는 언제나 흐려 백년을 기다린다해도 맑아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아무리 오래되어도 사물이 이루어지기 어려움을 일컫는 말이다.
春秋(춘추)시대의 鄭(정)나라는 晉(진)나라와 楚(초)나라 등 강국 사이에 끼여있어 간신히 독립을 유지하고 있는 처지였다. 가만히 있었으면 괜찮을 것인데 정나라가 초나라의 속국이었던 蔡(채)나라를 공격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곧바로 초나라가 공격을 해왔기 때문이다.
정나라 重臣(중신)들이 대책을 논의했으나 항복을 하자는 측과 진나라의 구원을 기다려 저항을 해야한다는 측이 맞서 좀처럼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이때 항복을 주장하는 측의 子駟(자사)가 말했다.
"周(주)나라 詩(시)에 이르기를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한이 없어 사람의 짧은 목숨으로는 불가능하다. 점쳐서 꾀하는 일이 많으면 새가 그물에 얽히듯 움직일 수 없게 된다」고 했습니다. 희생물과 비단을 갖추어 초나라와 진나라의 국경에서 기다렸다가 강한 쪽에 붙어 백성을 지킵시다. 적이 해로운 일을 하지않고 백성들이 괴로움을 당하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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