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無擔石(가무담석)
家 집 가, 여자 고 | 無 없을 무 | 擔 멜 담 | 石 돌 석 |
석(石)은 한 항아리, 담(擔)은 두 항아리의 뜻으로, 집에 조금도 없다는 말로, 집에 재물(財物)의 여유(餘裕)가 조금도 없음
담(擔)은 손 수(手)에 이를 첨(詹)을 짝지어 놓은 글자. 손이 닿는 곳에 짊어져야 할 물건이 있다는 뜻에서 '책임지다', '떠맡다'는 의미로 사용
한나라 유방의 휘하에 한신이라는 유능한 장수가 있었다. 그는 벼슬 없이 초야에 묻혀 살 때 집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家無擔石] 정도로 가난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빌붙어 살았다.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고 벼슬을 할 수 있도록 추천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한신이 회음현에 살 때 그는 친구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곤 했다. 이를 귀찮게 여긴 친구의 부인은 새벽에 밥을 해 먹고 그에게는 아침을 주지 않았다. 그 정도로 그는 회음현에서 거지 취급을 받았다. 이를 불쌍하게 여긴 빨래터의 한 아낙이 굶주린 한신에게 밥을 주었다. 이에 감동한 한신이 그 아낙에게 성공하여 은혜를 갚겠다고 하자, 아낙은 입에 풀칠도 못하는 사내가 불쌍하여 밥을 주는데 무슨 보답을 원하겠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한신은 훗날 초나라의 왕이 되었고 권력의 중심에 섰다.
이때부터 가무담석은 '매우 가난하다'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출전
사기(史記) 회음후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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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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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4급 사자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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價値連城 (가치연성)
價値連城(가치연성)
价值连城(jiàzhíliánchéng)
價 값 가 | 値 값 치 | 連 이어질 연 | 城 성 성 |
여러 성을 합할 정도로 그 값어치가 귀중하다는 말.
소중한 보물이나 가치 있는 물건을 가리키는 성어(成語)로, 연성지보(連城之寶)·가중연성(價重連城)이라고도 한다.
이 말의 유래에 따르면,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초(楚)나라의 변화(卞和)가 다듬지 않은 구슬인 옥벽(玉璧)을 왕에게 올렸으나 돌을 속여서 바쳤다고 한쪽 다리가 잘리는 벌을 받았다. 변화는 무왕 때에도 옥벽을 바쳤는데 마찬가지로 다른 쪽 다리까지 잘리고 말았다. 그러나 문왕은, 변화가 바친 옥벽을 알아보고 초나라의 국보로 삼아 변화지벽(卞和之璧)·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고 불렀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조(趙)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이 초나라의 옥벽을 소유하였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진(秦)나라 소왕(昭王)은 그 옥벽을 차지하려고 15개 성의 영토와 바꾸자고 조나라와 교섭하였으나, 인상여(藺相如)의 재치로 조나라는 진나라에게 옥벽을 빼앗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옥벽을 조벽(趙璧), 연성지벽(連城之璧)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출전]
史記(사기) : 廉頗藺相如列傳(염파인상여열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연성지보(連城之寶) | 價重連城(가중연성) |
史記(사기) : 廉頗藺相如列傳(염파인상여열전) |
价值连城(jiàzhíliánchéng)
價 값 가 | 値 값 치 | 連 이어질 연 | 城 성 성 |
여러 성을 합할 정도로 그 값어치가 귀중하다는 말.
소중한 보물이나 가치 있는 물건을 가리키는 성어(成語)로, 연성지보(連城之寶)·가중연성(價重連城)이라고도 한다.
이 말의 유래에 따르면,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초(楚)나라의 변화(卞和)가 다듬지 않은 구슬인 옥벽(玉璧)을 왕에게 올렸으나 돌을 속여서 바쳤다고 한쪽 다리가 잘리는 벌을 받았다. 변화는 무왕 때에도 옥벽을 바쳤는데 마찬가지로 다른 쪽 다리까지 잘리고 말았다. 그러나 문왕은, 변화가 바친 옥벽을 알아보고 초나라의 국보로 삼아 변화지벽(卞和之璧)·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고 불렀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조(趙)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이 초나라의 옥벽을 소유하였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진(秦)나라 소왕(昭王)은 그 옥벽을 차지하려고 15개 성의 영토와 바꾸자고 조나라와 교섭하였으나, 인상여(藺相如)의 재치로 조나라는 진나라에게 옥벽을 빼앗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옥벽을 조벽(趙璧), 연성지벽(連城之璧)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출전]
史記(사기) : 廉頗藺相如列傳(염파인상여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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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지보(連城之寶) | 價重連城(가중연성) |
史記(사기) : 廉頗藺相如列傳(염파인상여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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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時代
假痴不癲 (가치부전)
假痴不癲 (가치부전)
假痴不癫(jiǎ chī bù diān)
假 거짓 가,멀 하,이를 격 | 痴 어리석을 치 | 不 아닐 부,아닐 불 | 癲 미칠 전 |
三十六計(삼십육계) 倂戰計(병전계) 제27계. 어리석은 척하되 미친 것은 아니다.
어리석은 척하되 미친 것은 아니다. 이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재능이나 식견을 감추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경계심을 품지 않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계략이다. 이도 역사를 둘러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계략 중 하나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일부러 어리석거나 딴전을 부리는 편이, 아는 척하거나 경거망동하는 것보다 유리하다. 조용히 계략을 가다듬고 실력을 기른다. 이는 우레가 가만히 때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寧僞作不知不僞,不僞作假知妄僞;靜不露機,雲雷屯也.]"
이에 대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방연의 시기에 대해 손빈이 미친척을 해서 제나라로 갔고, 패왕 항우 앞에서 유방이 어리석은 체하다가 뒤통수를 쳤으며, 조조의 서슬퍼런 태도 앞에서 유비가 어리석은 체하여 조조에게서 도망쳤다. 또한 우리역사에서는 흥선대원군이 정적들의 경계를 풀기 위해 어리석은 짓을 하고 다니기도 하였다.
흔히 많이 알려진 三國志演義의 예를 보기로 하자. 삼국지연의 '靑梅煮酒(청매자주)'에 소개되는 유비의 이야기이다.
당시 유비는 조조와 함께 여포를 치고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던 와중에 동승을 중심으로 하는 조조토벌 모의에 가담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후원으로 나가 채소를 심고 손수 물을 주며 가꾸었다. 관우와 장비가 이에 한탄한다.
"형님께서는 천하대사는 생각지 않으시고 小人들의 일이나 배워 무엇하시려는 것이옵니까?"
"그것은 너희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관우와 장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조조가 현덕을 불렀다. 현덕이 상부로 올라가 조조를 뵙자 조조가 웃으며 말했다.
"집에서 큰일을 하고 계신다지요?"
현덕은 크게 놀라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동승과의 모의가 들킨 것은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조조가 현덕의 손을 잡고 후원으로 나오며 말했다.
"채마밭을 가꾸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닐테지요."
현덕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그저 심심풀이로 하는 것뿐이옵니다."
조조는 매실이 잘 익어 현덕과 한 잔 하고 싶어 불렀다며, 정자로 안내했다. 한 동이 술을 데워 두 사람이 마주앉아 유쾌하게 마셨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 오를 때였다. 갑자기 비구름이 몰려들며 곧 소나기라도 내릴 기세였다. 저 멀리 龍掛(용괘)가 생겨났다. 조조가 말했다.
"사군은 龍이 어떻게 변하는지 아시오?"
"잘 모르옵니다."
"용은 제 몸을 크게 할수도 있고, 작게 할수도 있으며, 하늘로 올라갈 수도 있고, 숨어들 수도 있다고 하오. 커지면 구름을 일으키고 안개를 토하지만, 작아지면 비늘도 감추고 형태조차 나타나지 않으며, 올라가면 우주 속을 날아다니지만 숨어들면 파도 속에 엎드려 때를 기다린다고 하는데, 지금은 바야흐로 깊은 봄이라 용이 변하고 있는 중이오. 사람도 뜻을 이루면 천하를 주름잡으니, 세상의 영웅들도 용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오. 현덕은 오랫동안 사방을 편력하였으니 지금 세상의 영웅이 누구인지 분명히 아실게요. 누구누구인지 어디 한 번 말씀해 보시오."
이에 유비는 원술, 원소, 유표, 손책, 유장, 장수, 장로, 한수 등의 이름을 차례로 언급하나 조조는 이를 일축한다.
"대저 영웅이란 가슴에 큰 뜻을 품고, 뱃속에 좋은 계책이 있으며, 우주의 기미를 싸 감추고, 천지의 뜻을 삼키거나 뱉는 사람이오."
"누가 그런 사람이옵니까?"
"지금 천하의 영웅은 사군(당신)과 이 조조 뿐이외다."
현덕은 그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그때 마친 비가 쏟아지며 천둥소리가 크게 일었다. 현덕은 젓가락을 주우며 말했다.
"웬 천둥이 이리 대단하담."
"장부도 천둥을 무서워 하시오?"
"공자께서도 '빠른 천둥과 맹렬한 바람이 일면 반드시 안색이 변하셨다' 했는데 어찌 무섭지 않겠사옵니까?"
현덕은 조조의 말에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린 일을 가볍게 얼버무려 넘겼다. 조조는 현덕의 그릇이 작은 것을 알고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이때, 관우와 장비가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유비가 조조에게 불려갔다는 것을 알고 부랴부랴 달려온 것이다.
이내 술자리가 파하고, 유비 일행은 관사로 돌아왔다. 현덕은 관우와 장비에게 젓가락 떨어뜨린 일을 얘기해 주었다. 관우가 물었다.
"무슨 뜻이옵니까?"
"내가 채소를 가꾼 것은, 조조가 나의 그러한 행동을 보고 큰뜻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믿게 하려는 속셈이었는데, 뜻밖에 조조가 나를 영웅이라고 하는 바람에 크게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린 것이다. 또한 다시 조조의 의심을 살까봐 천둥을 핑계로 얼버무렸던 것이다."
관우와 장비가 말했다.
"형님은 참으로 내다보시는 눈이 높사옵니다."
여기에서 유비는 두 번의 '가치부전'을 행한다. 먼저, 채소를 가꾸며 자신에게 웅지가 없음을 가장한 것이요, 둘째 자신의 속내를 들킨듯 하자 천둥을 핑계삼아 담이 작은 사내로 보이게 한 것이다.
假痴不癫(jiǎ chī bù diān)
假 거짓 가,멀 하,이를 격 | 痴 어리석을 치 | 不 아닐 부,아닐 불 | 癲 미칠 전 |
三十六計(삼십육계) 倂戰計(병전계) 제27계. 어리석은 척하되 미친 것은 아니다.
어리석은 척하되 미친 것은 아니다. 이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재능이나 식견을 감추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경계심을 품지 않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계략이다. 이도 역사를 둘러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계략 중 하나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일부러 어리석거나 딴전을 부리는 편이, 아는 척하거나 경거망동하는 것보다 유리하다. 조용히 계략을 가다듬고 실력을 기른다. 이는 우레가 가만히 때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寧僞作不知不僞,不僞作假知妄僞;靜不露機,雲雷屯也.]"
이에 대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방연의 시기에 대해 손빈이 미친척을 해서 제나라로 갔고, 패왕 항우 앞에서 유방이 어리석은 체하다가 뒤통수를 쳤으며, 조조의 서슬퍼런 태도 앞에서 유비가 어리석은 체하여 조조에게서 도망쳤다. 또한 우리역사에서는 흥선대원군이 정적들의 경계를 풀기 위해 어리석은 짓을 하고 다니기도 하였다.
흔히 많이 알려진 三國志演義의 예를 보기로 하자. 삼국지연의 '靑梅煮酒(청매자주)'에 소개되는 유비의 이야기이다.
당시 유비는 조조와 함께 여포를 치고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던 와중에 동승을 중심으로 하는 조조토벌 모의에 가담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후원으로 나가 채소를 심고 손수 물을 주며 가꾸었다. 관우와 장비가 이에 한탄한다.
"형님께서는 천하대사는 생각지 않으시고 小人들의 일이나 배워 무엇하시려는 것이옵니까?"
"그것은 너희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관우와 장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조조가 현덕을 불렀다. 현덕이 상부로 올라가 조조를 뵙자 조조가 웃으며 말했다.
"집에서 큰일을 하고 계신다지요?"
현덕은 크게 놀라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동승과의 모의가 들킨 것은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조조가 현덕의 손을 잡고 후원으로 나오며 말했다.
"채마밭을 가꾸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닐테지요."
현덕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그저 심심풀이로 하는 것뿐이옵니다."
조조는 매실이 잘 익어 현덕과 한 잔 하고 싶어 불렀다며, 정자로 안내했다. 한 동이 술을 데워 두 사람이 마주앉아 유쾌하게 마셨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 오를 때였다. 갑자기 비구름이 몰려들며 곧 소나기라도 내릴 기세였다. 저 멀리 龍掛(용괘)가 생겨났다. 조조가 말했다.
"사군은 龍이 어떻게 변하는지 아시오?"
"잘 모르옵니다."
"용은 제 몸을 크게 할수도 있고, 작게 할수도 있으며, 하늘로 올라갈 수도 있고, 숨어들 수도 있다고 하오. 커지면 구름을 일으키고 안개를 토하지만, 작아지면 비늘도 감추고 형태조차 나타나지 않으며, 올라가면 우주 속을 날아다니지만 숨어들면 파도 속에 엎드려 때를 기다린다고 하는데, 지금은 바야흐로 깊은 봄이라 용이 변하고 있는 중이오. 사람도 뜻을 이루면 천하를 주름잡으니, 세상의 영웅들도 용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오. 현덕은 오랫동안 사방을 편력하였으니 지금 세상의 영웅이 누구인지 분명히 아실게요. 누구누구인지 어디 한 번 말씀해 보시오."
이에 유비는 원술, 원소, 유표, 손책, 유장, 장수, 장로, 한수 등의 이름을 차례로 언급하나 조조는 이를 일축한다.
"대저 영웅이란 가슴에 큰 뜻을 품고, 뱃속에 좋은 계책이 있으며, 우주의 기미를 싸 감추고, 천지의 뜻을 삼키거나 뱉는 사람이오."
"누가 그런 사람이옵니까?"
"지금 천하의 영웅은 사군(당신)과 이 조조 뿐이외다."
현덕은 그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그때 마친 비가 쏟아지며 천둥소리가 크게 일었다. 현덕은 젓가락을 주우며 말했다.
"웬 천둥이 이리 대단하담."
"장부도 천둥을 무서워 하시오?"
"공자께서도 '빠른 천둥과 맹렬한 바람이 일면 반드시 안색이 변하셨다' 했는데 어찌 무섭지 않겠사옵니까?"
현덕은 조조의 말에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린 일을 가볍게 얼버무려 넘겼다. 조조는 현덕의 그릇이 작은 것을 알고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이때, 관우와 장비가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유비가 조조에게 불려갔다는 것을 알고 부랴부랴 달려온 것이다.
이내 술자리가 파하고, 유비 일행은 관사로 돌아왔다. 현덕은 관우와 장비에게 젓가락 떨어뜨린 일을 얘기해 주었다. 관우가 물었다.
"무슨 뜻이옵니까?"
"내가 채소를 가꾼 것은, 조조가 나의 그러한 행동을 보고 큰뜻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믿게 하려는 속셈이었는데, 뜻밖에 조조가 나를 영웅이라고 하는 바람에 크게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린 것이다. 또한 다시 조조의 의심을 살까봐 천둥을 핑계로 얼버무렸던 것이다."
관우와 장비가 말했다.
"형님은 참으로 내다보시는 눈이 높사옵니다."
여기에서 유비는 두 번의 '가치부전'을 행한다. 먼저, 채소를 가꾸며 자신에게 웅지가 없음을 가장한 것이요, 둘째 자신의 속내를 들킨듯 하자 천둥을 핑계삼아 담이 작은 사내로 보이게 한 것이다.
苛政猛於虎 (가정맹어호, kēzhèngměngyúhǔ)
苛政猛於虎(가정맹어호)
苛政猛於虎(kēzhèng měng yú hǔ)
苛 가혹할 가 | 政 정사 정 | 猛 사나울 맹 | 於 어조사 어 | 虎 호랑이 호 |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뜻.
《예기(禮記)》의 '단궁하편(檀弓下篇)'에 나오는 “가정맹어호야(苛政猛於虎也)”에서 유래되었다.
가정이란 혹독한 정치를 말하고, 이로 인하여 백성들에게 미치는 해는 백수(百獸)의 왕이라 할 만큼 사납고 무서운 범의 해(害)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 기슭을 지나고 있는데, 한 부인이 무덥 앞에서 울며 슬퍼하고 있었다. 공자는 제자인 자로에게 그 까닭을 묻게 하였다. 그 부인은 대답하길 오래전에 시아버님이 호랑이게 죽음을 당하였고, 저의 남편 또한 호랑이에게 변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의 아들마저 호랑이게 목숨을 잃게 되었답니다. 라고 하였다.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말에 그 부인은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無苛政]라고 짧게 대답하였다. 자로의 말을 듣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잘 알아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다[苛政猛於虎也]"라고 하였다.
춘추 말엽 노(魯)나라의 대부 계손자(系孫子)의 폭정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은 차라리 호랑이에게 물려죽는 쪽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苛政이란 번거롭고 잔혹한 정치를 뜻한다. 政을 徵(징)의 차용으로 보아 번거롭고 무서운 세금과 노역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苛政猛於虎(kēzhèng měng yú hǔ)
苛 가혹할 가 | 政 정사 정 | 猛 사나울 맹 | 於 어조사 어 | 虎 호랑이 호 |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뜻.
《예기(禮記)》의 '단궁하편(檀弓下篇)'에 나오는 “가정맹어호야(苛政猛於虎也)”에서 유래되었다.
가정이란 혹독한 정치를 말하고, 이로 인하여 백성들에게 미치는 해는 백수(百獸)의 왕이라 할 만큼 사납고 무서운 범의 해(害)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 기슭을 지나고 있는데, 한 부인이 무덥 앞에서 울며 슬퍼하고 있었다. 공자는 제자인 자로에게 그 까닭을 묻게 하였다. 그 부인은 대답하길 오래전에 시아버님이 호랑이게 죽음을 당하였고, 저의 남편 또한 호랑이에게 변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의 아들마저 호랑이게 목숨을 잃게 되었답니다. 라고 하였다.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말에 그 부인은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無苛政]라고 짧게 대답하였다. 자로의 말을 듣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잘 알아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다[苛政猛於虎也]"라고 하였다.
춘추 말엽 노(魯)나라의 대부 계손자(系孫子)의 폭정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은 차라리 호랑이에게 물려죽는 쪽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苛政이란 번거롭고 잔혹한 정치를 뜻한다. 政을 徵(징)의 차용으로 보아 번거롭고 무서운 세금과 노역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佳人薄命 (가인박명)
佳人薄命(가인박명)
佳人薄命(jiā rén bó mìng)
佳 아름다울 가 | 人 사람 인 | 薄 메마를 박 | 命 운명 명
여자의 얼굴이 너무 빼어나면 삶이 순탄하지 않다는 말.
소식(蘇軾:1036∼1101)의 칠언율시 '박명가인(薄命佳人)'의 한 구절인 "자고가인다박명(自古佳人多薄命)"에서 유래한다.
自古佳人多命薄 閉門春盡楊花落
예로부터 아름다운 여인의 운명 기박함이 많으니 / 문을 닫은채 봄이 지나가면 버들꽃도 떨어지리.
본래 이 시에서는 佳人命薄이라 하였으나 후에는 佳人薄命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美人薄命(미인박명) 이라는 말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佳人薄命이란 미모가 뛰어난 여자는 그 운명이 기구하거나 길지 못함을 뜻하는 말이다.
본명보다 雅號(아호)를 딴 蘇東坡(소동파)로 더 알려진 蘇軾(소식)은 北宋(북송)후기의 대시인이며 문장가요 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官界(관계)에 들어간 이래 줄곧 정적과의 싸움으로 보낸 덕분에 지방의 변변찮은 관직만을 맴돌 수밖에 없었다. 기구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도 오히려 그의 문학은 자유롭고 활달하게 전개되어 오늘날에도 인구에 회자되는 不朽(불후)의 작품들을 남겨 놓았으며, 양주지방 장관으로 있을 때 30세가 넘은 예쁜 여승의 파란만장한 삶을 유추하여 시를 지었다.
동양 최고의 미인으로 알려진 '양귀비'가 '안녹산의 난' 중에 군인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한 것을 두고 사람들은 '가인박명'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佳人薄命(가인박명) | 美人薄命(미인박명) |
佳人薄命(jiā rén bó mìng)
佳 아름다울 가 | 人 사람 인 | 薄 메마를 박 | 命 운명 명
여자의 얼굴이 너무 빼어나면 삶이 순탄하지 않다는 말.
소식(蘇軾:1036∼1101)의 칠언율시 '박명가인(薄命佳人)'의 한 구절인 "자고가인다박명(自古佳人多薄命)"에서 유래한다.
自古佳人多命薄 閉門春盡楊花落
예로부터 아름다운 여인의 운명 기박함이 많으니 / 문을 닫은채 봄이 지나가면 버들꽃도 떨어지리.
본래 이 시에서는 佳人命薄이라 하였으나 후에는 佳人薄命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美人薄命(미인박명) 이라는 말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佳人薄命이란 미모가 뛰어난 여자는 그 운명이 기구하거나 길지 못함을 뜻하는 말이다.
본명보다 雅號(아호)를 딴 蘇東坡(소동파)로 더 알려진 蘇軾(소식)은 北宋(북송)후기의 대시인이며 문장가요 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官界(관계)에 들어간 이래 줄곧 정적과의 싸움으로 보낸 덕분에 지방의 변변찮은 관직만을 맴돌 수밖에 없었다. 기구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도 오히려 그의 문학은 자유롭고 활달하게 전개되어 오늘날에도 인구에 회자되는 不朽(불후)의 작품들을 남겨 놓았으며, 양주지방 장관으로 있을 때 30세가 넘은 예쁜 여승의 파란만장한 삶을 유추하여 시를 지었다.
동양 최고의 미인으로 알려진 '양귀비'가 '안녹산의 난' 중에 군인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한 것을 두고 사람들은 '가인박명'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佳人薄命(가인박명) | 美人薄命(미인박명) |
家書萬金 (가서만금)
가서만금(家書萬金)
家 집 가, 여자 고 | 書 글 서 | 萬 일만 만 | 金 쇠 금, 성씨 김 |
타국(他國)이나 타향(他鄕)에 살 때는 고향(故鄕) 가족(家族)의 편지(便紙)가 더없이 반갑고, 그 소식(消息)의 값이 황금(黃金) 만 냥보다 더 소중(所重)하다는 말. 가서저만금(家書抵萬金)의 준말
여행 중에 가인(家人)으로부터 서신을 받으면 그 기쁨이 만금을 얻는 데 해당한다.
시성(詩聖)인 당(唐)나라 두보(杜甫 712∼770, 字:子美, 號:少陵)의 '춘망(春望)'이라는 시(詩)에 나오는 구절.
國破山河在 (국파산하재)
春城草木深 (춘성초목심)
感時和賤淚 (감시화천루)
恨別鳥驚心 (한별조경심)
烽火連三月 (봉화연삼월)
家書抵萬金 (가서저만금)
白頭搔更短 (백두소경단)
渾欲不勝簪 (혼욕불승잠)
나라는 망했어도 산하는 남아있고,
성에 봄이 오니 초목이 우거졌구나.
시절을 느껴 꽃에 눈물을 뿌리고,
이별을 한스러워하니 새 소리에도 놀란다.
봉화불은 삼 개월이나 계속 피고 있고,
집에서 온 편지는 만금에 해당하는구나.
대머리 긁어서 더욱 빠지고,
상투를 하고자 하나 비녀를 이기지 못하는구나.
유명한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붙잡혀서 이듬해(757년) 탈주했다. 수도 장안(長安)에 구속된 몸이 되었을 때, 전란으로 심하게 황폐해진 장안의 봄을 아파해서 만든 저 유명한 시 가운데 한 구절. 家書는 아내 혹은 가족으로부터의 편지.
출전
두보 춘망시(春望詩)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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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 집 가, 여자 고 | 書 글 서 | 萬 일만 만 | 金 쇠 금, 성씨 김 |
타국(他國)이나 타향(他鄕)에 살 때는 고향(故鄕) 가족(家族)의 편지(便紙)가 더없이 반갑고, 그 소식(消息)의 값이 황금(黃金) 만 냥보다 더 소중(所重)하다는 말. 가서저만금(家書抵萬金)의 준말
여행 중에 가인(家人)으로부터 서신을 받으면 그 기쁨이 만금을 얻는 데 해당한다.
시성(詩聖)인 당(唐)나라 두보(杜甫 712∼770, 字:子美, 號:少陵)의 '춘망(春望)'이라는 시(詩)에 나오는 구절.
國破山河在 (국파산하재)
春城草木深 (춘성초목심)
感時和賤淚 (감시화천루)
恨別鳥驚心 (한별조경심)
烽火連三月 (봉화연삼월)
家書抵萬金 (가서저만금)
白頭搔更短 (백두소경단)
渾欲不勝簪 (혼욕불승잠)
나라는 망했어도 산하는 남아있고,
성에 봄이 오니 초목이 우거졌구나.
시절을 느껴 꽃에 눈물을 뿌리고,
이별을 한스러워하니 새 소리에도 놀란다.
봉화불은 삼 개월이나 계속 피고 있고,
집에서 온 편지는 만금에 해당하는구나.
대머리 긁어서 더욱 빠지고,
상투를 하고자 하나 비녀를 이기지 못하는구나.
유명한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붙잡혀서 이듬해(757년) 탈주했다. 수도 장안(長安)에 구속된 몸이 되었을 때, 전란으로 심하게 황폐해진 장안의 봄을 아파해서 만든 저 유명한 시 가운데 한 구절. 家書는 아내 혹은 가족으로부터의 편지.
출전
두보 춘망시(春望詩)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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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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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貧思良妻 (가빈사양처)
家貧思良妻(가빈사양처)
家 집 가 | 貧 가난할 빈 | 思 생각할 사 | 良 좋을 량 | 妻 아내 처 |
사기(史記) 위세가(魏世家)에는 위나라 문후文侯가 재상 임명을 위해 이극(李克)에게 자문을 요청하면서 나눈 대화가 기록되어 있다.
위문후는 이극에게 말하길, "선생께서 과인에게 말씀하시길 집안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를 그리게 되고, 나라가 혼란하면 훌륭한 재상을 그리게 된다[家貧思良妻, 國亂思良相]라고 하셨습니다. 제 동생인 성자(成子)와 적황(翟璜) 중, 어떤 이가 적합합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이극은 문후에게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 사항을 진언한다. 평소에 지낼 때는 그의 가까운 사람을 살피고, 부귀할 때에는 그와 왕래가 있는 사람을 살피고, 관직에 있을 때에는 그가 천거한 사람을 살피고, 곤궁할 때에는 그가 하지 않는 일을 살피고, 어려울 때에는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살피십시오.
위나라 재상이 된 사람은 바로 성자(成子)였다. 비록 문후의 동생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소득 중 10%만을 생활에 쓰고, 나머지 90%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였다. 어진 아내 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어진 재상으로서도 적임자였던 것이다. 家貧思良妻나 國亂思良相이라는 말은 모두 어려운 시기에는 유능하고 어진 인재가 필요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家貧思良妻(가빈사양처) | 國亂思良相(국난사양상) |
家 집 가 | 貧 가난할 빈 | 思 생각할 사 | 良 좋을 량 | 妻 아내 처 |
사기(史記) 위세가(魏世家)에는 위나라 문후文侯가 재상 임명을 위해 이극(李克)에게 자문을 요청하면서 나눈 대화가 기록되어 있다.
위문후는 이극에게 말하길, "선생께서 과인에게 말씀하시길 집안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를 그리게 되고, 나라가 혼란하면 훌륭한 재상을 그리게 된다[家貧思良妻, 國亂思良相]라고 하셨습니다. 제 동생인 성자(成子)와 적황(翟璜) 중, 어떤 이가 적합합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이극은 문후에게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 사항을 진언한다. 평소에 지낼 때는 그의 가까운 사람을 살피고, 부귀할 때에는 그와 왕래가 있는 사람을 살피고, 관직에 있을 때에는 그가 천거한 사람을 살피고, 곤궁할 때에는 그가 하지 않는 일을 살피고, 어려울 때에는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살피십시오.
위나라 재상이 된 사람은 바로 성자(成子)였다. 비록 문후의 동생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소득 중 10%만을 생활에 쓰고, 나머지 90%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였다. 어진 아내 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어진 재상으로서도 적임자였던 것이다. 家貧思良妻나 國亂思良相이라는 말은 모두 어려운 시기에는 유능하고 어진 인재가 필요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家貧思良妻(가빈사양처) | 國亂思良相(국난사양상) |
家徒壁立 (가도벽립)
家徒壁立(가도벽립)
家徒壁立[jiātúbìlì]
家 집 가, 여자 고 | 徒 무리 도 | 壁 벽 벽 | 立 설 립(입), 자리 위 |
빈한한 집안이라서 아무것도 없고, 네 벽만 서 있다는 뜻으로, 살림이 심(甚)히 구차(苟且)함을 이르는 말
출전
한서(漢書)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家徒四壁(가도사벽) | 家徒四壁(jiātúsìbì)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중요도 ★★ |
家徒壁立[jiātúbìlì]
家 집 가, 여자 고 | 徒 무리 도 | 壁 벽 벽 | 立 설 립(입), 자리 위 |
빈한한 집안이라서 아무것도 없고, 네 벽만 서 있다는 뜻으로, 살림이 심(甚)히 구차(苟且)함을 이르는 말
출전
한서(漢書)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家徒四壁(가도사벽) | 家徒四壁(jiātúsìbì)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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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중요도 ★★ |
假途伐虢 (가도벌괵)
假途伐虢(가도벌괵)
假途伐虢(jiǎtúfáGuó)
假 빌릴 가,거짓 가,멀 하,이를 격 | 途 길 도 | 伐 칠 벌 | 虢 나라 이름 괵,범 발톱 자국 괵 |
길을 빌린다는 명목이지만 실제로는 그 나라나 그 집단을 멸망시키는 책략.
三十六計(삼십육계) 混戰計(혼전계) 제24계 가도벌괵. 길을 빌려 괵나라를 치다. 이는 春秋時代(춘추시대)에 晉獻公(진헌공)이 晉나라와 인접해 있는 괵나라와 우나라 때문에 골치를 앓다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쓴 계략이다. 이는 아래에서 살펴보도록 하고, 풀이글을 보자.
"적과 아군의 두 나라 사이에 위치하는 약소국에 대해 만약에 적이 진출하면 우리도 구원을 명분으로 진출하여 차지한다. 약소국의 곤경에 말만 있고 행동이 없다면 신뢰하지 않는다.[兩大之間,敵脅以從,我假以勢.困,有言不信.]"
뭔가 딱히 와닿지 않는 해설이다. 실제 '가도벌괵'의 계략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진헌공이 인접한 괵나라와 우나라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다는 얘기는 앞에서도 한 바 있다. 하지만 진헌공이 괵을 치려 하면 우가 와서 괵에 가세하고, 또 우를 치려하면 괵이 와서 가세하는 바람에 쉽게 해결을 낼 수가 없었다. 이 우나라와 괵나라의 관계를 가리켜 '脣亡齒寒(순망치한)'의 입술과 이의 관계로 흔히 일컬어 왔을 정도였다.
한번은 괵나라가 또 진나라의 남방에 침범해 왔다. 진헌공이 대부 순식에게 상의한다.
"괵을 쳐야 할까?"
"우와 괵은 서로 친한 사이입니다. 우리가 괵을 치면 우는 반드시 괵을 돕습니다. 우리가 만일 군사를 옮겨 우를 치면 이번엔 괵이 반드시 우를 도울 것입니다. 신은 두 나라와 싸워 이겼다는 나라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대책을 논의하던 중에 순식이 아뢴다.
"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처음엔 괵을 굴복시키고 다음엔 우를 굴복시켜 두 나라를 모두 주공께 바치겠습니다."
"그런 좋은 계책이 있다면 속히 말하오."
"우와 괵 두 나라 사이를 떼어놓아야 합니다. 주공은 많은 뇌물을 우나라에 보내시고 잠시 길을 빌려[假途] 괵나라를 치십시오[伐虢]."
그리하여 우공이 탐내하는 좋은 구슬과 말을 가지고 순식이 우나라에 갔다. 우공은 처음에 괵나라를 치려는 것을 알고 분기충천했으나, 구슬과 말을 보고 태도가 바뀌었다. 또한 괵을 친 후에 괵에서 노획한 물건을 모두 바치겠다는 얘기를 듣고 또한 크게 기뻐했다. 이에 우공의 곁에 있던 궁지기가 간한다.
"주공께서는 진나라의 청을 승낙하지 마십시오. 속담에 이르기를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나라가 우리 우와 괵에 손을 쓰지 못한 것은 우리 우와 괵이 입술과 이처럼 서로 돕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괵이 망하면 그 다음은 우리 우나라의 차례이옵니다."
그러나 우공은 궁지기의 말을 듣지 않고 진나라에 길을 내주었다.
이에 진헌공은 이극을 대장으로 삼고, 순식을 부장으로 삼아 우나라를 지나 괵나라를 쳤다. 그리고 괵나라를 친 후에는 괵나라 부고에 있는 보물의 10분의 3과 아름다운 궁녀들을 우공에게 바쳤다. 우공은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는 우나라를 찾아온 진헌공과 함께 사냥을 했다. 사냥을 하던 도중 성안에서 연기가 피어올라 보니 진나라의 군사들이 도성을 점령해 버린 이후였다. 이에 우공은 진헌공에게 길을 빌려주고 결국 나라까지 넘겨주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도벌괵'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기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가도벌괵'은 이 실제 사례보다 다른 사례로 사람들에게 더 익숙하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주유의 '가도벌괵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비는 적벽대전 이후 뻔뻔스럽게도 형주에 눌러앉아 도무지 오나라에 형주를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에 주유는 여러가지 방법을 써보았으나 제갈량에게 번번히 당하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주유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숙을 보내 유비에게 형주를 돌려줄 것을 재촉했다.
하루는 노숙이 형주에 와서 형주반환 문제를 얘기하고 있는데 유비가 갑자기 크게 울기 시작했다. 이에 놀란 노숙이 이유를 묻자 제갈량이 대답한다. 유비가 형주를 빌릴때 서천을 차지하면 돌려주겠다 하였지만, 서천의 주인은 유비와 종친인 유장이므로, 종친을 차마 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형주를 돌려주면 마땅히 갈 곳도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이에 노숙이 주유에게 가서 아뢰자, 주유가 말한다.
"공은 다시 형주로 가서 유비에게 '손씨와 유씨 양 가문이 혼사를 맺었으니 바로 한 집안이옵니다. 만약 유씨로서 차마 서천을 빼앗을 수 없다면, 우리 東吳가 군사를 이끌고 가서 서천을 빼앗아 결혼 지참금 삼아 드릴 터이니 바로 형주를 돌려달라'고 하시오."
이에 노숙이 형주에 와서 말을 전했다. 제갈량이 감사를 표하자 노숙은 돌아갔다. 노숙이 돌아간 후로 제갈량이 크게 웃으며 유비에게 말했다.
"이는 바로 '가도벌괵지계'이옵니다. 서천을 빼앗겠다는 명분으로 실은 형주를 빼앗으려는 것이옵니다. 주공께서는 안심하시고 보고만 계시옵소서."
이렇게 제갈량은 주유의 '가도벌괵지계'를 꿰뚫어 보고 오히려 주유의 계략을 비웃어 주어 결국 주유로 하여금 금창이 터져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연의는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주유가 쓰려던 계략도 바로 '가도벌괵'이다. 하지만 주유가 쓰려던 것은 반쪽짜리 계략이라 할 수 있다. 실제 '가도벌괵'은 괵과 순망의 관계에 있던 우나라로부터 길을 빌려 '괵'을 친 후, 다시 '우'를 치는 계략이었다. 이에 반해 주유의 계략은 단지 길을 빌린다는 핑계로 바로 형주만을 치려는 계략이었기 때문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假途滅虢(가도멸괵) |
참조어
脣亡齒寒(순망치한) |
假途伐虢(jiǎtúfáGuó)
假 빌릴 가,거짓 가,멀 하,이를 격 | 途 길 도 | 伐 칠 벌 | 虢 나라 이름 괵,범 발톱 자국 괵 |
길을 빌린다는 명목이지만 실제로는 그 나라나 그 집단을 멸망시키는 책략.
三十六計(삼십육계) 混戰計(혼전계) 제24계 가도벌괵. 길을 빌려 괵나라를 치다. 이는 春秋時代(춘추시대)에 晉獻公(진헌공)이 晉나라와 인접해 있는 괵나라와 우나라 때문에 골치를 앓다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쓴 계략이다. 이는 아래에서 살펴보도록 하고, 풀이글을 보자.
"적과 아군의 두 나라 사이에 위치하는 약소국에 대해 만약에 적이 진출하면 우리도 구원을 명분으로 진출하여 차지한다. 약소국의 곤경에 말만 있고 행동이 없다면 신뢰하지 않는다.[兩大之間,敵脅以從,我假以勢.困,有言不信.]"
뭔가 딱히 와닿지 않는 해설이다. 실제 '가도벌괵'의 계략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진헌공이 인접한 괵나라와 우나라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다는 얘기는 앞에서도 한 바 있다. 하지만 진헌공이 괵을 치려 하면 우가 와서 괵에 가세하고, 또 우를 치려하면 괵이 와서 가세하는 바람에 쉽게 해결을 낼 수가 없었다. 이 우나라와 괵나라의 관계를 가리켜 '脣亡齒寒(순망치한)'의 입술과 이의 관계로 흔히 일컬어 왔을 정도였다.
한번은 괵나라가 또 진나라의 남방에 침범해 왔다. 진헌공이 대부 순식에게 상의한다.
"괵을 쳐야 할까?"
"우와 괵은 서로 친한 사이입니다. 우리가 괵을 치면 우는 반드시 괵을 돕습니다. 우리가 만일 군사를 옮겨 우를 치면 이번엔 괵이 반드시 우를 도울 것입니다. 신은 두 나라와 싸워 이겼다는 나라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대책을 논의하던 중에 순식이 아뢴다.
"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처음엔 괵을 굴복시키고 다음엔 우를 굴복시켜 두 나라를 모두 주공께 바치겠습니다."
"그런 좋은 계책이 있다면 속히 말하오."
"우와 괵 두 나라 사이를 떼어놓아야 합니다. 주공은 많은 뇌물을 우나라에 보내시고 잠시 길을 빌려[假途] 괵나라를 치십시오[伐虢]."
그리하여 우공이 탐내하는 좋은 구슬과 말을 가지고 순식이 우나라에 갔다. 우공은 처음에 괵나라를 치려는 것을 알고 분기충천했으나, 구슬과 말을 보고 태도가 바뀌었다. 또한 괵을 친 후에 괵에서 노획한 물건을 모두 바치겠다는 얘기를 듣고 또한 크게 기뻐했다. 이에 우공의 곁에 있던 궁지기가 간한다.
"주공께서는 진나라의 청을 승낙하지 마십시오. 속담에 이르기를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나라가 우리 우와 괵에 손을 쓰지 못한 것은 우리 우와 괵이 입술과 이처럼 서로 돕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괵이 망하면 그 다음은 우리 우나라의 차례이옵니다."
그러나 우공은 궁지기의 말을 듣지 않고 진나라에 길을 내주었다.
이에 진헌공은 이극을 대장으로 삼고, 순식을 부장으로 삼아 우나라를 지나 괵나라를 쳤다. 그리고 괵나라를 친 후에는 괵나라 부고에 있는 보물의 10분의 3과 아름다운 궁녀들을 우공에게 바쳤다. 우공은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는 우나라를 찾아온 진헌공과 함께 사냥을 했다. 사냥을 하던 도중 성안에서 연기가 피어올라 보니 진나라의 군사들이 도성을 점령해 버린 이후였다. 이에 우공은 진헌공에게 길을 빌려주고 결국 나라까지 넘겨주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도벌괵'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기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가도벌괵'은 이 실제 사례보다 다른 사례로 사람들에게 더 익숙하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주유의 '가도벌괵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비는 적벽대전 이후 뻔뻔스럽게도 형주에 눌러앉아 도무지 오나라에 형주를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에 주유는 여러가지 방법을 써보았으나 제갈량에게 번번히 당하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주유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숙을 보내 유비에게 형주를 돌려줄 것을 재촉했다.
하루는 노숙이 형주에 와서 형주반환 문제를 얘기하고 있는데 유비가 갑자기 크게 울기 시작했다. 이에 놀란 노숙이 이유를 묻자 제갈량이 대답한다. 유비가 형주를 빌릴때 서천을 차지하면 돌려주겠다 하였지만, 서천의 주인은 유비와 종친인 유장이므로, 종친을 차마 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형주를 돌려주면 마땅히 갈 곳도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이에 노숙이 주유에게 가서 아뢰자, 주유가 말한다.
"공은 다시 형주로 가서 유비에게 '손씨와 유씨 양 가문이 혼사를 맺었으니 바로 한 집안이옵니다. 만약 유씨로서 차마 서천을 빼앗을 수 없다면, 우리 東吳가 군사를 이끌고 가서 서천을 빼앗아 결혼 지참금 삼아 드릴 터이니 바로 형주를 돌려달라'고 하시오."
이에 노숙이 형주에 와서 말을 전했다. 제갈량이 감사를 표하자 노숙은 돌아갔다. 노숙이 돌아간 후로 제갈량이 크게 웃으며 유비에게 말했다.
"이는 바로 '가도벌괵지계'이옵니다. 서천을 빼앗겠다는 명분으로 실은 형주를 빼앗으려는 것이옵니다. 주공께서는 안심하시고 보고만 계시옵소서."
이렇게 제갈량은 주유의 '가도벌괵지계'를 꿰뚫어 보고 오히려 주유의 계략을 비웃어 주어 결국 주유로 하여금 금창이 터져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연의는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주유가 쓰려던 계략도 바로 '가도벌괵'이다. 하지만 주유가 쓰려던 것은 반쪽짜리 계략이라 할 수 있다. 실제 '가도벌괵'은 괵과 순망의 관계에 있던 우나라로부터 길을 빌려 '괵'을 친 후, 다시 '우'를 치는 계략이었다. 이에 반해 주유의 계략은 단지 길을 빌린다는 핑계로 바로 형주만을 치려는 계략이었기 때문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假途滅虢(가도멸괵) |
참조어
脣亡齒寒(순망치한) |
假途滅虢 (가도멸괵)
假途滅虢(가도멸괵)
假途灭虢(jiǎtúmièGuó)
假 빌릴 가,거짓 가,멀 하,이를 격 | 途 길 도 | 滅 멸망할 멸 | 虢 나라 이름 괵,범 발톱 자국 괵 |
길을 빌려 괵나라를 멸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
괵나라는 중국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아우인 괵중이 세운 제후국(諸侯國)인데, 진(晉)나라의 침입으로 괵나라가 멸망함으로써 생겨난 이야기로 《천자문(千字文)》에 실려 있는 성어(成語)이다.
중국 춘추시대 이웃나라인 우(虞)나라와 괵나라는 진나라와 경계가 서로 맞닿아 있었다. 진나라의 헌공(獻公)이 괵나라로 쳐들어가려고 순식(荀息)에게 그 의견을 묻자, 순식은 '괵나라로 가려면 우나라를 통과해야 하므로 우나라 왕에게 옥과 말을 보내 길을 빌려달라고 해야 한다'고 하였다. 순식의 계략에 따라 헌공은 우나라로 옥과 말을 보냈는데, 욕심 많은 우나라 왕은 재상인 궁지기(宮之寄)와 논의하였다.
궁지기는 왕에게 '진나라는 괵나라를 멸망시킨 뒤 우나라도 쳐들어올 것이므로 길을 빌려주면 안 될 뿐만 아니라 우나라와 괵나라는 이와 입술 같은 사이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듯이[脣亡齒寒] 괵나라가 무너지면 우나라도 위험하다'고 간언하였다. 우나라와 괵나라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였으나, 우나라 왕은 눈앞의 이익 때문에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고 진나라에게 길을 내어주었다.
일찍부터 괵나라와 우나라를 정복하려는 야심을 가졌던 진나라가 우나라에게 길을 빌려달라는 핑계로 괵나라를 무너뜨린 뒤 우나라까지 쳐들어가 멸망시켰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군사계획의 의도를 숨기기 위한 구체적 수단으로 쓰이는 계책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假途伐虢(가도벌괵) |
참조어
脣亡齒寒(순망치한) |
假途灭虢(jiǎtúmièGuó)
假 빌릴 가,거짓 가,멀 하,이를 격 | 途 길 도 | 滅 멸망할 멸 | 虢 나라 이름 괵,범 발톱 자국 괵 |
길을 빌려 괵나라를 멸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
괵나라는 중국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아우인 괵중이 세운 제후국(諸侯國)인데, 진(晉)나라의 침입으로 괵나라가 멸망함으로써 생겨난 이야기로 《천자문(千字文)》에 실려 있는 성어(成語)이다.
중국 춘추시대 이웃나라인 우(虞)나라와 괵나라는 진나라와 경계가 서로 맞닿아 있었다. 진나라의 헌공(獻公)이 괵나라로 쳐들어가려고 순식(荀息)에게 그 의견을 묻자, 순식은 '괵나라로 가려면 우나라를 통과해야 하므로 우나라 왕에게 옥과 말을 보내 길을 빌려달라고 해야 한다'고 하였다. 순식의 계략에 따라 헌공은 우나라로 옥과 말을 보냈는데, 욕심 많은 우나라 왕은 재상인 궁지기(宮之寄)와 논의하였다.
궁지기는 왕에게 '진나라는 괵나라를 멸망시킨 뒤 우나라도 쳐들어올 것이므로 길을 빌려주면 안 될 뿐만 아니라 우나라와 괵나라는 이와 입술 같은 사이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듯이[脣亡齒寒] 괵나라가 무너지면 우나라도 위험하다'고 간언하였다. 우나라와 괵나라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였으나, 우나라 왕은 눈앞의 이익 때문에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고 진나라에게 길을 내어주었다.
일찍부터 괵나라와 우나라를 정복하려는 야심을 가졌던 진나라가 우나라에게 길을 빌려달라는 핑계로 괵나라를 무너뜨린 뒤 우나라까지 쳐들어가 멸망시켰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군사계획의 의도를 숨기기 위한 구체적 수단으로 쓰이는 계책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假途伐虢(가도벌괵) |
참조어
脣亡齒寒(순망치한) |
可東可西 (가동가서)
可東可西(가동가서)
可 옳을 가, 오랑캐 임금 이름 극 | 東 동녘 동 | 可 옳을 가, 오랑캐 임금 이름 극 | 西 서녘 서 |
동쪽이라도 좋고 서쪽이라도 좋다는 뜻으로, 이러나 저러나 상관(相關)없다는 말. 가이동가이서(可以東可以西)의 준말
출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可以東可以西(가이동가이서)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可 옳을 가, 오랑캐 임금 이름 극 | 東 동녘 동 | 可 옳을 가, 오랑캐 임금 이름 극 | 西 서녘 서 |
동쪽이라도 좋고 서쪽이라도 좋다는 뜻으로, 이러나 저러나 상관(相關)없다는 말. 가이동가이서(可以東可以西)의 준말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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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可以東可以西(가이동가이서)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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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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