弄璋之慶 (농장지경)

弄璋之慶(농장지경)

아들을 낳은 경사.

老益壯 (노익장)

老益壯(노익장)

老 늙을 노(로) | 益 더할 익, 넘칠 일 | 壯 장할 장 |

①나이는 들었으나 기력(氣力)은 더욱 좋아짐 ②또는, 그런 사람

old but vigorous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동한(東漢)시기, 부풍군(扶風郡) 무릉현(茂陵縣)에 부풍군의 독우(督郵)를 지낸 마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느 날 군 태수의 명령으로 죄인들을 장안(長安)으로 압송하게 되었다. 그는 죄수들의 형편을 동정하여 그만 도중에서 그들을 풀어주고, 자신은 관직을 버리고 변방으로 도망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조정으로부터 대사면(大赦免)을 받고, 과거의 일을 다시 추궁 당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곳에서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지으며 항상 열심히 일하였다. 몇년 지나지 않아 풍성한 수확을 거두고 가축들도 그 수효가 많아져서, 그는 매우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변방으로 도망온 사람들에게 자주 "대장부가 뜻을 세웠으면, 생활이 궁핍할수록 그 의지를 굳게 하고, 나이가 들수록 그 정신을 왕성하게 해야한다[大丈夫爲者 窮當益堅 老當益壯]"라고 말했다.

老益壯(Live to agreen old age)이란 나이는 비록 많지만 그 활동과 정신이 더욱 강성해짐을 나타내는 말이다.


출전

後漢書(후한서) 마원전(馬援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老當益壯(노당익장) | 老当益壮(lǎodāngyìzhuàng) | 老益壯(노익장) |

勞而無功 (노이무공)

勞而無功(노이무공)

勞 일할 노(로) | 而 말 이을 이, 능히 능 | 無 없을 무 | 功 공 공

①애를 썼으나 공이 없음 ②얻은 것 없이 헛수고만 함


온갖 애를 썼으나 아무런 보람이 없다는 뜻으로 '도로무공(徒勞無功)'이라고도 한다.

'莊子(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옛날과 지금이란 물과 육지나 같은 게 아닙니까. 주나라와 노나라는 배와 수레나 같은 게 아닙니까[古今非水陸與 周魯非舟車與(고금비수륙여 주노비주차여]? 지금 주나라의 방식을 노나라에 행하려 한다는 것은 마치 육지에서 배를 밀고 가려는 것과 같습니다[今蘄行周於魯 是猶推舟於陸也(금기행주어노 시유추주어육야)]. 수고롭기만 했지 아무런 성과도 없을 것이며 자신에게 반드시 재앙이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勞而無功 身必有殃(노이무공 신필유앙)]."

'荀子(순자)' 정명편에는 "어리석은 사람의 말은 막연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고, 번잡하고 통일이 없으며 시끄럽게 떠들어대기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말은 하지만 요령이 없고, 몹시 애는 쓰지만 공이 없다"고 하였다.

'관자(管子)'의 형세편에도 "옳지 못한 것에 편들지 말라. 능하지 못한 것을 강제하지 말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르지 말라. 이와 같은 것을 가리켜 수고롭기만 하고 공이 없다고 말한다"고 하였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勞而無功(노이무공) | 萬事休矣(만사휴의) | 徒勞無益(도로무익) | 徒勞無功(도로무공) |

綠衣紅裳 (녹의홍상)

綠衣紅裳(녹의홍상)

여인의 고운 옷차림.

綠陰芳草 (녹음방초)

綠陰芳草(녹음방초)

푸른 나무 그늘과 꽃다운 풀. 곧 여름의 자연 경치.

路遙知馬力日久見人心 (노요지마력일구견인심)

路遙知馬力,日久見人心(노요지마력 일구견인심)

路 길 로, 길 노, 울짱 락, 울짱 낙 | 遙 멀 요 | 知 알 지 | 馬 말 마 | 力 힘 력, 힘 역 | 日 날 일 | 久 오랠 구 | 見 볼 견, 뵈올 현 | 人 사람 인 | 心 마음 심 |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세월이 흘러야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은 같이 살아 보아야 알고, 말은 타 보아야 안다.

A Long Road Tests a Horse’s Strength


출전

명심보감(明心寶鑑) 교우편(交友篇)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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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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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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弄瓦之慶 (농와지경)

弄瓦之慶(농와지경)

딸을 낳은 경사.

勞心焦思 (노심초사)

勞心焦思(노심초사)

마음을 졸이며 생각에 골몰한다. 근심걱정이 많다

老生之夢 (노생지몽)

老生之夢(노생지몽)

인생은 한 바탕의 꿈과 같이 허무함.

鹿死誰手 (녹사수수)

鹿死誰手(녹사수수)

鹿 사슴 녹(록) | 死 죽을 사 | 誰 누구 수 | 手 손 수 |

사슴이 누구의 손에 죽는가라는 뜻으로, 승패(勝敗)를 결정(決定)하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 말


진서(晉書) 석륵재기하(石勒載記下)에 나오는 이야기다.

서진(西晉)말기, 중국 5호16국(五胡十六國)의 하나인 후조(後趙)의 제1대 황제 석륵(石勒:재위 319∼333)은 재간이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에 대하여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석륵은 외국의 사신들을 연회에 초대하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자, 석륵은 신하인 서광(徐光)에게 말했다.

"그대가 보기에 나는 이전의 어느 제왕(帝王)과 비교될 것 같소?"

서광은 공손하게 대답하였다.

"폐하의 지모(智謀)와 무용(武勇)은 모두 한(漢)나라 고조(高祖)인 유방(劉邦:재위 BC 202∼BC 195)을 능가합니다."

석륵은 이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그대의 말은 너무 지나치오. 내가 만약 한나라 고조를 만났더라면, 나는 기꺼이 그의 부하가 되어, 그의 지휘를 받으며 한신이나 팽월 같은 장군들과 실력을 겨루었을 것이오. 만약 한나라의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를 만났더라면, 나는 그와 함께 중원(中原)에서 함께 말을 달리며 재간을 겨루어, 사슴이 누구의 손에 죽는지를 알지 못하였을 것이오[未知鹿死誰手]."

양쪽의 실력이 비슷해 누가 이길지 모를 정도로 미리 승부를 짐작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지위나 정권을 사슴에 비유하였는데, 천하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라는 뜻에서 제위의 다툼을 비유하는 중원축록(中原逐鹿)과 비슷한 말이다.


출전

진서(晉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角逐(각축) | 中原逐鹿(중원축록) | 逐鹿(축록) |



路逢狹處難回避 (노봉협처난회피)

路逢狹處難回避(노봉협처난회피)

길 좁은 곳에서 원수를 만나면 피하기 어렵다는 뜻.

景行錄 曰, 恩義 廣施。人生何處不相逢。讐怨 莫結。路逢狹處 難回避。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라. 인생이 어느 곳에서든지 서로 만나지 않으랴? 원수와 원한을 맺지 말라. 길 좁은 곳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렵다"라고 경행록에 나와있다.


관련 속담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


경행록, 명심보감, 명심보감:계선편, 원수

景行錄, 明心寶鑑, 明心寶鑑:繼善篇

怒髮衝冠 (노발충관)

怒髮衝冠(노발충관)

怒 성낼 노(로) | 髮 터럭 발 | 衝 찌를 충, 뒤얽힐 종 | 冠 갓 관 |

노한 머리털이 관을 추켜 올린다는 뜻으로, 몹시 성낸 모양(模樣)을 이르는 말


중국 전한(前漢)의 역사가인 사마 천(司馬遷:BC 145?∼BC 86?)이 저술한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오는 이야기.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이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는 귀중한 보물을 갖게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은 화씨벽을 차지하려는 욕심에 혜문왕에게 진나라의 15성(城)과 바꾸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혜문왕은 화씨벽을 주더라도 15성을 얻지 못한채 속을 것만 같고, 그렇다고 주지 않으면 진나라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 걱정되었다.

혜문왕은 인상여를 사신으로 임명하여 진나라에 보냈다. 소양왕이 큰 나라의 위세를 부리며 성을 내주지 않고 인상여가 가져간 화씨지벽을 빼앗으려 하자 인상여는 진나라 소양왕의 무례한 행동을 크게 꾸짖었는데, '매우 분노하여 머리카락이 곤두서 갓이 벗어질 정도였다[怒髮上衝冠]'고 전해진다.


송나라 흥화군(興化軍) 선유(仙遊) 사람인 임예(林豫)는 신종(神宗) 희녕(熙寧) 9년(1076) 진사(進士)가 되었다. 일찍이 통리군(通利軍)을 맡아 소식(蘇軾) 형제와 친하게 사귀었다. 소철(蘇轍)이 폄적(貶謫)되자 그가 사(詞)를 지어 보냈는데, 그 안에 “화난 머리카락이 관을 뚫었고, 비장한 마음은 돌에 비긴만 하네.[怒髮衝冠 壯心比石]”란 구절이 있었다.


출전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怒發大發(노발대발) | 怒髮上衝冠(노발상충관) | 노발충천(怒髮衝天)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老馬之智 (노마지지, lǎomǎzhīzhì)

老馬之智(노마지지)

老马之智(lǎomǎzhīzhì)

老 늙을 노(로) | 馬 말 마 | 之 갈 지 | 智 슬기 지,지혜 지 |

늙은 말의 지혜(智慧)라는 뜻으로, ①연륜이 깊으면 나름의 장점(長點)과 특기가 있음 ②저마다 한가지 재주는 지녔다는 말

An old dog for a hard road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저마다 장기(長技)나 장점을 지니고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한비자(韓非子)》설림(說林) 상편에 있는 이야기이다.

춘추시대 오패(五覇)의 한 사람이었던 제(齊)나라 환공(桓公) 때의 일이다. 어느 해 봄, 환공은 명재상 관중(管仲)과 대부(大夫) 습붕(隰朋)을 대동하고 고죽국(孤竹國:하북성(河北城)내)을 정벌하였다. 그런데 전쟁이 의외로 길어지는 바람에 그해 겨울에야 끝이 났다. 그래서 혹한 속에 지름길을 찾아 귀국하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전군(全軍)이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져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말하였다.

“이런 때 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하다[老馬之智可用也(노마지지가용야)].”

즉시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 놓았다. 그리고 전군이 그 뒤를 따라 행군한 지 얼마 안되어 큰길이 나타났다[乃放老馬而隨之 遂得道行(내방노마이수지 수득도행)].

또 한번은 산길을 행군하다가 식수가 떨어져 전군이 갈증에 시달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습붕이 말하였다.

“개미란 원래 여름엔 산 북쪽에 집을 짓지만 겨울엔 산 남쪽 양지 바른 곳에 집을 짓고 산다. 흙이 한 치[一寸]쯤 쌓인 개미집이 있으면 그 땅속 여덟 자[一仞≒8자≒2.4m]쯤 되는 곳에 물이 있는 법이다.”

군사들이 산을 뒤져 개미집을 찾은 다음 그곳을 파 내려가자 과연 샘물이 솟아났다.

이 이야기에 이어 한비는 그의 저서《한비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관중의 총명과 습붕의 지혜로도 모르는 것은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으로 삼아 배웠다. 그러나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어리석음에도 성현의 지혜를 스승으로 삼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 아닌가.”

노마지지란 여기서 나온 말인데, 노마식도(老馬識道)·노마지도(老馬知道)라고도 하며, 요즈음에도 ‘경험을 쌓은 사람이 갖춘 지혜’란 뜻으로 사용된다.

[유래]
韓非子(한비자) : 說林上(설림상) |


참조 한자어

동의어

老馬知途(노마지도) | 老馬識途(노마식도) : 老马识途(lǎomǎshítú) | 识途老马(shítúlǎomǎ) |

駑馬十駕 (노마십가)

駑馬十駕(노마십가)

駑 둔한 말 노, 둔할 노 | 馬 말 마 | 十 열 십 | 駕 멍에 가 |

둔한 말도 열흘 동안 수레를 끌 수 있다는 뜻으로, 재주 없는 사람도 노력(努力)하고 태만(怠慢)하지 않으면 재주 있는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을 비유(比喩ㆍ譬喩)


중국 주(周)나라의 유학자(儒學者)인 순자(荀子)의 사상을 집록(輯錄)한 순자(荀子) 수신편(修身篇)에 나오는 말이다.

'천리마는 하루 만에 천 리를 달리는데, 둔한 말도 열흘 동안 달리면 이에 미칠 수 있다[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則亦及之矣].'

또한 '반 걸음이라도 쉬지 않으면 절룩거리며 가는 자라도 천리를 갈 수 있고, 흙을 쌓는데도 멈추지 않고 쌓아나가면 언덕이나 산을 이룰 것이다'라는 말도 있다.

駑馬란 걸음이 느린 말을 가리키며, 재능이 없고 무능한 사람을 비유하기도 한다. 말이 수레를 끌고 다니는 하루 동안의 노정(路程)을 일가(一駕)라 하니, 十駕란 곧 열흘간의 노정을 말한다.

駑馬十駕란 둔한 말이 열흘 동안 수레를 끌고 다니다라는 뜻이다. 이는 곧 재주 없는 사람이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훌륭한 사람에 미칠 수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영어의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라는 표현과 비슷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출전

순자(荀子) 수신편(修身篇)

綠林 (녹림, lùlín)

綠林(녹림)

绿林(lùlín)

綠 푸를 록 | 林 수풀 림


도둑의 별칭.


이 말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전한(前漢) 말기에 대사마(大司馬) 왕망(王莽)이 왕위를 찬탈하여 천자(天子)가 되고, 국호를 신(新)이라 고친 다음 모든 제도를 개혁하였다. 그러나 개혁정책이 너무 급격하여 혼란만 빚었고, 백성은 극도의 생활고에 빠져 새 왕조를 원망하게 되었다. AD 14년(천봉 4) 왕광(王匡) ·왕봉(王鳳) 일당이 이들 난민을 모아 녹림산(綠林山)에서 반기를 들었는데, 그 무리가 수백 명이었다. 그러자 관군에 쫓긴 마무(馬武) ·왕상(王常) ·성단(成丹) 등이 몰려와 함께 녹림산에 근거지를 차리고 마을을 공략하였는데, 이들의 세력이 몇 달 사이에 8천여 명으로 불어났다.

그 후 이들은 형주자사(荊州刺使)가 이끈 관군 2만명과 싸워 크게 이기고, 세력이 커져 5만명이 되었을 때 유수(劉秀:光武帝)와 유현(劉玄)이 군사를 일으키자 이들과 합류하여 왕망을 위협하는 큰 세력을 이루었다. 녹림은 원래 산 이름이지만, 왕광의 무리가 굶주린 백성을 모아 이 곳을 근거지로 도둑질을 하였기 때문에 이 후부터 도둑의 소굴을 녹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수호지(水滸誌)》와 당(唐)나라 이섭(李涉)이 지은 우도시(遇盜詩)에도 도둑을 가리켜 녹림의 호객이라 하였다.

路柳牆花 (노류장화)

路柳牆花(노류장화)

누구든지 꺾을 수 있는 길가의 버들과 담밑의 꽃이라는 뜻으로 기생 또는 몸을 파는 여자

老當益壯 (노당익장)

老當益壯(노당익장)

老当益壮(lǎodāngyìzhuàng)

老 늙을 노(로) | 當 마땅 당 | 益 더할 익, 넘칠 일 | 壯 장할 장 |

①늙을수록 더욱 강인한 마음과 뜻을 지녀야 함. ②나이는 들었으나 기력(氣力)은 더욱 좋아짐 ③또는, 그런 사람

old but vigorous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를 섬긴 명장 마원(馬援)은 열 두 살 때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느 어렸을 때부터 큰 뜻을 품고 있었으며, 그의 형들도 그 장래(將來)를 주목(注目)하고 있었다.맏형 마황(馬況)은 그에게 『시경(詩經)』을 읽으라고 일렀지만, 마원은 케케묵은 책을 읽는 것을 싫어하고, 변지로 가서 목축을 하고 싶어했다. 마황은 아우 마원이 장래(將來)에 반드시 대성할 것이라 보고 그 소원을 들어 주었다.그 후 얼마 안 가서 뜻하지 않게 마황이 죽었다. 마원은 몹시 슬퍼하며, 과부가 된 형수를 잘 섬기고 아우로서의 예절(禮節)을 다했다. 그리고 북쪽 변지로 가는 것은 부득이 중단(中斷)해야만 했다. 뒤에 그는 시골 관원(官員)이 되었다. 한번은 죄인을 호송한 일이 있었다. 호송 도중 죄인의 신상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 달아나게 해주었다.마원도 북쪽 변경으로 도망가서 이름을 감춘 채 숨어 지내고 있었다. 다행히 대사면령이 내려 묵은 죄를 용서받은 그는 그 땅에 눌러 살면서 전부터 하고자 했던 목축업을 시작했다. 그의 선조가 예전에 그 곳에서 관원(官員) 노릇을 했기 때문에 많았는데, 모두들 그를 우두머리로 삼았다. 그는 목축과 함께 농업에도 종사(從事)했으며, 얼마 안 가서 소와 양이 수천 마리, 곡물이 숨나 석이나 되는 부자가 되었다.그는 항시 친구(親舊)에게 말했다. "대장부는, 곤란(困難)할 때는 의지를 보다 굳세게 갖고, 늙어서는 더욱 더 왕성해야만 한다(大丈夫爲志 當益堅 老當益壯)"그리고 또 말했다. "가멸지더라도 사람에게 베풀지 않으면 수전노일 뿐이다."그는 그 말대로 실천했다. 모은 돈이나 물건은 모조리 친척(親戚)이나 친구(親舊)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은 늘 수수한 옷차림으로 일에만 열중(熱中)했다.

출전
後漢書(후한서) 마원전(馬援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老當益壯(노당익장) | 老当益壮(lǎodāngyìzhuàng) | 老益壯(노익장) |

論功行賞 (논공행상)

論功行賞(논공행상)

공적의 크고 작음을 따져 그에 알맞은 상을 준다는 말.


삼국시대의 魏(위)나라 文帝(문제) 曹丕(조비)는 병으로 죽기 며칠 전에 曹叡(조예)를 황태자로 정했다. 이 자리에서 문제는 장군이자 일가가 되는 曹眞(조진)과 曹休(조휴), 유교와 법에 정통한 陳群(진군), 원로인 司馬懿(사마의) 등 네 사람에게 뒷일을 간곡히 부탁했다.

문제의 죽음은 과연 吳(오)나라와 蜀(촉)나라에 위나라를 공격하는 기회를 주었다. 조예가 明帝(명제)로 등극한지 3개월 뒤 오나라의 孫權(손권)은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의 江夏郡(강하군)을 공격했다.

태수인 문빙이 공격을 막았다. 조정에서는 응원군을 보내 문빙을 도우려고 했다. 그러나 명제는 조정 중신들의 건의를 듣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오나라는 전통적으로 水戰(수전)에 강하다. 그런데도 그들이 배를 버리고 육상의 싸움에 도전한 것은 우리쪽의 무방비를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무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얼마 못가서 지칠 것이다. 지금 문빙의 군대가 잘 버티고 있으니 攻守(공수)의 세력이 뒤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과연 얼마 뒤 손권은 후퇴했다. 오나라 장군 제갈근과 장패도 위나라를 공격해왔지만 대장군 사마의가 善戰(선전), 이들을 격파하고 장패를 목벴다. 용장 조휴도 오나라의 別動隊(별동대)를 격파했다.

삼국지는 싸움이 끝난 뒤 위나라 장병들의 「공에 따라 나누어준 포상은 그 공에 합당하게 각각에 주어졌다(論功行賞各有差․논공행상각유차)」라고 적고 있다.

弄假成眞 (농가성진)

弄假成眞(농가성진)

장난삼아 한 것이 참으로 한 것처럼 됨.

內憂外患 (내우외환)

內憂外患(내우외환)

内忧外患(nèiyōu wàihuàn)。

內 안 내, 들일 납 | 憂 근심 우 | 外 바깥 외 | 患 근심 환 |

내부(內部)에서 일어나는 근심과 외부(外部)로부터 받는 근심이란 뜻으로, 나라 안팎의 여러 가지 어려운 사태(事態)를 이르는 말

1. internal and external troubles 2. trouble from within and without


국어(國語) 진어(晉語)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춘추시대 중엽에 막강한 세력의 초(楚)와 진(晉) 두 나라가 대립한 시대가 있었다. 진나라 여공이 송(宋)나라와 동맹을 맺어 평화가 실현되었으나 수년 후 초나라 공왕(共王)이 정(鄭)나라와 위(衛)나라를 침략하였다. 다음해 진나라와 초나라의 군대가 언릉에서 마주쳤다.

당시에 진나라의 내부에서는 극씨(郤氏)ㆍ낙서(樂書)ㆍ범문자(范文子) 등의 대부(大夫)들이 정치를 좌우할 만큼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초나라와 충돌하기 전에 낙서는 진나라에 항거한 정나라를 치기 위하여 동원령을 내린 후, 스스로 중군(中軍)의 장군이 되고 범문자는 부장(副將)이 되어 전열을 가다듬었지만, 막상 진과 초의 두 군대가 충돌하게 되자 낙서는 초나라와 싸울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범문자는 이에 반대하여, ‘제후(諸侯)로 있는 사람이 반란하면 이것을 토벌하고, 공격을 당하면 이를 구원하여 나라는 이로써 혼란해진다. 따라서 제후는 어려움의 근본이다’라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다.
“오직 성인만이 안으로부터의 근심도, 밖으로부터의 재난도 능히 견디지만[唯聖人能外內無患(유성인능외내무환)], 성인이 아닌 우리들에게는 밖으로부터의 재난이 없으면 반드시 안으로부터 일어나는 근심이 있다[自非聖人 外寧必有內憂(자비성인 외녕필유내우)]. 초나라와 정나라는 놓아두고 밖으로부터의 근심을 내버려두지 않겠는가.”


관자(管子) 계(戒)편의 이야기.

춘추시대,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음식을 들지도 않으며 외전(外殿)에서 지내고 있었다. 궁녀들을 관장하는 여관(女官)이 궁녀들에게 임금이 곧 거동하실거라며 외전에 나가서 임금을 모시도록 지시하였다. 궁녀들이 모시겠다고 몰려오자, 환공은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곧 거동하리라는 소리를 누가 하더냐?"

궁녀들의 말을 들은 환공이 곧 여관을 불러 그 까닭을 물었다. 여관의 대답은 이러했다.

"저는 임금께서 내우(內憂)가 있거나 외환(外患)이 있으면 외전에서 주무시고 음식을 들지 않으신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임금께서 외전에서 지내시는 것은 다른 내우는 없으나, 필시 외환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非有內憂, 必有外患]. 그래서 저는 임금께서 곧 거동하시라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읽어낸 여관에게 환공은 감동하였다.


출전

국어(國語) 진어(晉語) | 관자(管子) 계(戒)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內憂外亂(내우외란) | 近憂遠慮(근우원려)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來語不美去語何美 (내어불미거어하미)

來語不美去語何美(내어불미거어하미)

來 올 내 | 語 말씀 어 | 不 아닐 불 | 美 아름다울 미 | 去 갈 거 | 語 말씀 어 | 何 어찌 하 | 美 아름다울 미 |

①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 ② 말은 누구에게나 점잖고 부드럽게 해야 한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己所欲施於人(기소욕시어인) | 自業自得(자업자득) |


관련 속담·격언

동의어·유의어

¶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

¶ Do as you would be done by. 자신이 대접 받고 싶은 만큼 남에게 해 주어라. (서양 속담)
¶ So always treat others as you would like them to treat you. (Matthew 7, 12)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마태오의 복음서 7장 12절)
¶ Whatever someone sows, that is what he will reap. (Galatians 6, 7)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자기가 심은 것을 그대로 거둘 것입니다.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6장 7절)
¶ You get what you give. 자업자득(自業自得)


http://blog.naver.com/goldenrule50/20132731277
http://www.catholic.org/bible

落花流水 (낙화유수)

落花流水 (낙화유수)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이라는 뜻으로, 남녀 간 서로 그리워하는 애틋한 정을 이르는 말

難兄難弟 (난형난제, nánxiōngnándì)

難兄難弟(난형난제)

难兄难弟(nán xiōng nán dì)

難 어려울 난 | 兄 맏 형 | 難 어려울 난 | 弟 아우 제 |


양자(兩者) 중에 어느 편이 낫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 쓰이는 말.


형 노릇 하기도 어렵고 동생 노릇 하기도 어렵다는 뜻으로, 양자(兩者) 중에 어느 편이 낫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 사용된다. 《세설신어·덕행(世說新語·德行)》에 나오는 말이다.

동한(東漢)시기, 영천(潁川)의 허(許)지방에 진식(陳寔)이라는 유명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고 매사에 공정하였다. 그는 생활이 검소하여 집안에 하인을 두지 않았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의 이름은 기(紀)이고 자(字)는 원방(元方)이었으며, 작은 아들은 이름이 담(湛)이고 자(字)는 계방(季方)이었다. 이들 또한 모두 명망이 드높은 인물들이었다.

진원방(陳元方)의 아들 장문(長文)과 그의 사촌, 즉 원방의 동생 계방(季方)의 아들 효선(孝先)이, 서로 자기 아버지의 공덕이 더 훌륭하다고 주장하다가 결말이 나지 않으므로 할아버지인 진식(陳寔)에게 가서, 이에 대한 판정을 내려주실 것을 호소하였다. 그러자 진식은 "원방도 형 되기가 어렵고 계방도 동생 되기가 어렵다[元方難爲兄 季方難爲弟]"라고 대답하였다고 한 데서 유래한 고사성어이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덕행(德行)


관련 한자어

유의어

莫上莫下(막상막하) |

구분

难兄难弟(nànxiōngnàndì) |

難兄難弟 (난형난제, nànxiōngnàndì)

難兄難弟(난형난제)

难兄难弟, nàn xiōng nàn dì

難 어려울 난 | 兄 맏 형 | 難 어려울 난 | 弟 아우 제


고난이나 재난을 함께한 사람. 생사고락을 함께한 사람. 함께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 서로 같은 곤경에 처한 사람.


관련 한자어

구분

难兄难弟(nánxiōngnándì)

狼狽爲奸 (낭패위간)

狼狽爲奸(낭패위간)

狼 이리 랑(낭) | 狽 이리 패 爲 할 위 | 奸 범할 간 |

서로 결탁하여 나쁜 일을 함을 비유한 말.

당(唐)나라 단성식(段成式)의 유양잡조(酉陽雜俎)의 이야기. 狼과 狽는 모두 이리를 뜻하는 말이만, 狼은 앞 다리가 길고 뒷 다리가 짧은 이리이고, 狽는 앞 다리가 짧고 뒷 다리가 긴 이리이다. 狼은 狽 없이 혼자서 일어설 수 없고, 狽는 狼 없이 걸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狼과 狽는 항상 한 몸이 되다시피 하여 양을 훔치러 다녔으나, 울타리가 높고 단단하면 그들은 그걸 무너뜨릴 수 없었다. 이럴 때면 狼은 狽의 목에 올라타고 狽는 긴 두 다리를 이용해 일어섰다. 그런 후 狼은 울타리 너머로 긴 앞 다리로 뻗쳐 양을 잡아챘던 것이다.

이리(狼)의 다리는 사실 앞뒤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으나 狽는 가공의 동물인 것 같다. 실패나 사고, 또는 아주 난처한 상황 을 뜻하는 말로 흔히 쓰이는 낭패(狼狽) 라는 말은, 다리의 길이가 다른 두 이리를 묶어 걷게 하면 기우뚱거리며 넘어지게 된다는 점에서 유래되었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狼狽(낭패) |

狼狽 (낭패, lángbèi)

狼狽(낭패)

狼狈(lángbèi)

狼 이리 낭(랑) | 狽 이리 패,낭패할 패 |


① 다리 없는 두 마리의 이리가 처한 곤경. 패(狽)와 낭(狼)은 다 이리의 일종으로서 낭은 앞다리가 길고 뒷다리가 짧으며, 패는 그와 반대이므로 그 두 짐승이 같이 나란히 걷다가 서로 사이가 벌어지면 균형을 잃고 넘어지게 되므로 당황하게 되는 데서 유래한 말 ② 계획(計劃)하거나 기대(期待)한 일이 실패(失敗)하거나 어긋나 딱하게 됨


'낭패'라는 말은 우리의 일상 생활 중에 자주 쓰이는 말이다. 어떤 일을 도모했을 때 잘 풀리지 않아 처지가 고약하게 꼬이는 경우에 사용한다.

'낭'이나 '패'나 한결같이 개사슴록(犬)변으로 이뤄졌다. 한자에서 犬변이 들어 있는 글자는 모두 동물이거나 또는 동물의 특성을 함축한 글자다.

예를 들면 여우 호(弧), 개 구(狗), 삵쾡이 리(狸), 돼지 저(猪), 고양이 묘(猫) 등등이다.

낭(狼)과 패(狽)도 마찬가지다. 낭과 패는 전설상의 동물이다. 낭(狼)은 태어날 때부터 뒷다리 두 개가 없거나 아주 짧다. 그런가 하면 패(狽)는 앞다리 두 개가 없거나 짧다. 그런 이유로 걸을 때 狈(패)는 낭의 몸에 앞다리를 걸쳐야 했다. 하지만 두 마리가 같이 걸으려면 어지간히 사이가 좋지 않고서는 넘어지기 일쑤였다.

낭과 패의 성품을 분석해 보면, 낭은 성질이 흉포하지만 지모(智謀)가 부족하다. 반대로 패는 순한 듯 싶은데도 지모가 뛰어나다. 그래서 함께 먹이를 찾으러 나갈 때엔 패의 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도 마음이 바뀌면 문제가 생긴다. 서로 고집을 피우면 움직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꼼짝없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곤경에 처한 의미가 파생되었다.

[출전]
後漢書(후한서) : 李杜列傳(이두열전) | 酉陽雜俎(유양잡조) : 卷十六 |


간사하고 꾀가 많다는 뜻의 교활(狡猾)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 역시 개사슴록 (犬)변이다. 교(狡)나 활(猾)도 모두 동물 이름이다. 물론 실존하는 것은 아니며 전설상의 동물이다.

《산해경》에 모습을 드러내는 이 동물에 대한 특성이 있다.

교(狡)는 옥산(玉山)에 살며 개와 같지만 표범 무늬를 하고 있다. 머리에는 쇠뿔을 달고 있으니 그 형상이 괴이하다. 울음소리 역시 개와 비슷하다고 적혀 있다. 한가지 특별한 것은 이놈이 나타나면 그해엔 여지없이 풍작이다. 그런 점에서 교는 길조이며 어느 누구나 반긴다.

교(狡)의 주변에는 활(猾)이 있다. 이놈은 아주 간악하다. 사는 곳은 요광산 (堯光山)인데 몸뚱이에는 돼지털이 나 있으며 동굴 안에서 겨울잠을 잔다. 한소리 기합을 지르듯 울어대면 온 천하가 큰 혼란에 빠져 버린다. 사람들은 모두 흉조의 상징이기 때문에 활을 두려워 한다.

교(狡)나 활(猾)은 산 속에서 호랑이 같은 맹수를 만나면 스스로의 몸을 구부려 공처럼 만들어 버린다.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삼키려 들면 재빨리 입안으로 들어가 내장으로 굴러가 그것을 파먹는다. 배가 아파 호랑이가 날뛰면 맘껏 내장을 뜯어 먹는다. 그리고 호랑이가 죽으면 그제야 유유히 뱃속에서 빠져 나온다.

[출전]
山海經(산해경) : 南山經, 西山經 |


망설여 결행하지 못하는 뜻의 유예(猶豫)라는 말도 동물에서 나왔다. 유(猶)는 의심이 많은 동물이다. 이놈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나무 위로 숨어 버린다. 유의 본래 뜻은 원숭이다. 예(豫)는 상(象)자가 있으므로 코끼리다. 아마 지금의 큰 코끼리보다 더 커서 매우 동작이 느렸을 것이다.


참조 한자어

유의어

狼狽不堪(낭패불감) | 進退兩難(진퇴유곡) | 進退惟谷(진퇴양난) |

참조어

到處狼狽(도처낭패) ①하는 일마다 모두 실패(失敗)함 ②가는 곳마다 뜻밖의 화를 입음 |

勸上搖木(권상요목) 나무에 오르라 하고, 흔들어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남을 부추겨 놓고 낭패를 보도록 방해(妨害)함이라는 말 |

觸處逢敗(촉처봉패) 가서 닥치는 곳마다 낭패를 당(當)함 |


後漢書(후한서) : 李杜列傳(이두열전) | 酉陽雜俎(유양잡조) : 卷十六 | 山海經(산해경) : 南山經, 西山經 |

囊中之錐 (낭중지추, nángzhōngzhīzhuī)

囊中之錐(낭중지추)

囊中之锥(náng zhōng zhī zhuī)

囊 주머니 낭 | 中 가운데 중 | 之 갈 지 | 錐 송곳 추 |


능력과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스스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는 뜻.


전국시대(戰國時代) 말엽,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동생이자 재상(宰相)인 평원군(平原君)을 초(楚)나라에 보내어 구원군을 청하기로 했다. 20명의 수행원이 필요한 평원군은 그의 3000여 식객(食客)중에서 19명은 쉽게 뽑았으나, 나머지 한 명을 뽑지못한 채 고심했다. 이 때에 모수(毛遂)라는 식객이 "나리,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하고 나섰다. 평원군은 어이없어 하며 "그대는 내집에 온 지 얼마나 되었소?"하고 물었다. 그가 "이제 3년이 됩니다."하고 대답하자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 끝이 밖으로 나오듯이 남의 눈에 드러나는 법이오. 그런데 내 집에 온 지 3년이나 되었다는 그대는 단 한 번도 이름이 드러난 일이 없지 않소?"하고 반문하였다. 모수는 "나리께서 이제까지 저를 단 한번도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신다면 끝뿐이 아니라 자루(炳)까지 드러내 보이겠습니다."하고 재치있는 답변을 하였다. 만족한 평원군은 모수를 수행원으로 뽑았고, 초나라에 도착한 평원군은 모수가 활약한 덕분에 국빈(國賓)으로 환대받고, 구원군도 얻을수 있었다.

[출전]
史記(사기) : 平原君虞卿列傳(평원군우경열전) |


관련 한자어

유의어

鶴立鷄群 학립계군 | 出衆 출중 | 錐處囊中 추처낭중 | 錐囊 추낭 | 絶倫 절윤 | 白眉(백미) | 拔群 발군 | 群鷄一鶴 군계일학 | 鷄群一鶴 계군일학 | 鷄群孤鶴 계군고학 |

참조어

毛遂自薦(모수자천) | 三寸之舌(삼촌지설) |


史記(사기) : 平原君虞卿列傳(평원군우경열전) |

脫穎而出 (탈영이출)

脫穎而出(탈영이출)

脫 벗을 탈 | 穎 이삭 영 | 而 말 이을 이 | 出 날 출 |

脫穎而出이란 모든 재능이 완전하게 드러남을 비유한 말이다.

사기(史記) 평원군우경(平原君虞卿)열전의 이야기. 전국시기,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의 식객(食客) 모수(毛遂)는 3년여를 묵으면서, 이제껏 어떠한 재능을 발휘해 본적이 없었으므로,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기원전 257년, 진(秦)나라의 공격으로 조(趙)나라의 수도인 한단(邯鄲)이 포위되었다. 평원군은 효왕(孝王)의 명으로 초(楚)나라에 원군을 요청하러 가게 되었다. 출발하려는 순간, 갑자기 모수가 나서서, 초나라까지 수행하게 해줄 것을 요구했다. 모수는 군께서 저에게 좀더 일찍 기회를 주셨더라면, 저의 모든 재능이 일찍 드러났을 것입니다[乃穎脫而出]라고 했다.

이에 평원군은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를 데리고 초나라로 떠났다. 평원군은 초왕과의 협상에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때, 모수가 한 손에는 칼을 뽑아 들고, 또 한 손으로는 초왕의 옷깃을 잡은채, 초왕을 설복시켜 동의를 얻어 내게 되었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囊中之錐(낭중지추,nángzhōngzhīzhuī) | 毛遂自薦(모수자천,Máosuìzìjiàn) | 因人成事 (인인성사) | 脫穎而出(탈영이출) |

落穽下石 (낙정하석)

落穽下石(낙정하석)

落 떨어질 낙 | 穽 함정 정 | 下 아래 하 | 石 돌 석 |

우물 아래에 돌을 떨어뜨림. 다른 사람이 재앙을 당하면 도와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재앙이 닥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下穽投石(하정투석)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
¶ 불 붙는데 키질한다.
¶ 불 난데 풀무질한다.
¶ 타는 불에 기름 끼얹는다.

南田北畓 (남전북답)

南田北畓(남전북답)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모든 논

羅雀掘鼠 (나작굴서)

羅雀掘鼠(나작굴서)

그물 라 | 참새 작 | 팔 굴 | 쥐 서 |


그물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는다는 뜻으로, 최악의 상태에 이르러 어찌할 방법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新唐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당(唐)나라 현종(玄宗)의 통치 말기, 장순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충직한 신하였을 뿐만 아니라 재주도 많고 무인답게 담력 또한 컸으며 대의가 분명한 그런 인물이었다. 정치가 부패하자 변방의 안록산(安祿山)은 군대를 일으켜 당나라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서시 756년, 진원(眞源) 현령 장순(張巡)은 군대를 동원하여 안록산 토벌에 나섰다. 이듬해, 안록산의 아들 안경서(安慶緖)는 윤자기(尹子琦)를 보내 십만 대군으로 장순을 맹렬히 공격하였다.

당시 장순에게는 겨우 삼 천명의 병력 뿐으로 수적으로 열세였다. 윤자기의 군대는 어떤 때에는 하루에 20여 차례나 공격을 해 왔지만, 장순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웠다. 윤자기의 군대는 수적으로는 우세하였지만, 성(城)을 함락하지 못하며, 몇 달 동안 대치하게 되었다. 장순은 몇 달 동안 구원군을 기다렸지만 그들이 오지 않자, 성 안의 식량과 풀이 다 바닥날 상황이었다. 형세가 급박하게 변하자 장순은 부하 남제운(南霽雲)을 보내 포위망을 뚫고 임회(臨淮) 태수 하란진명(賀蘭進明)에게 위급한 소식을 알렸다. 그러나 임회태수는 장순의 명성을 시기하여, 그들의 위급함을 보고도 구원병을 보내지 않았다.

윤자기는 강공(强攻)으로는 성을 함락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방법을 바꾸어 장순에게 투항을 권유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장순은 이에 굴하지 않고, 쉴새 없이 공격해 오는 적들을 모두 물리쳤다. 얼마 후, 성안의 식량이 점점 줄어들자, 군인들은 매일 한 수저의 쌀만을 먹었다. 이에 장순은 먹을 것을 확보하기 위하여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심지어는 그물을 쳐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으며, 갑옷과 활에 붙어있는 소가죽을 삶아서 굶주림을 달래라고 하였다(至羅雀掘鼠, 煮鎧弩以食).

장순은 지휘관의 입장에서 자식같은 병사들의 몸부림을 안타깝게 여겨 자기 아내를 죽여 국을 끓여서 병사들에게 먹이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상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악화되어 갔고, 더 이상 성을 고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마침내 성으로 진격해 들어오는 반란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장순이 항복을 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항복을 요구하는 반란군들을 향해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고는 청청병력 같은 소리로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반란군은 그 자리에서 그의 목을 베었다.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장순의 부하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의 죽음과 바꾼 충성심에 새삼 고개를 떨구게 되었다.

樂而不流 (낙이불류)

樂而不流(낙이불류)

기쁘면서도 지나치게 들뜨고 휩쓸리지 말라는 뜻

낙이불류 애이불비 가위정야(樂而不流 哀而不悲 可謂正也)


출전

삼국사기 '잡지(雜誌) 악(樂)'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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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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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男兒須讀五車書 (남아수독오거서)

男兒須讀五車書(남아수독오거서)

두보(杜甫)가 한 말로, 남자라면 다섯 수레 정도의 책은 읽어야 한다는 뜻.

亂臣賊子 (난신적자)

亂臣賊子(난신적자)

亂 어지럽힐 란 | 臣 신하 신 | 賊 해칠 적 | 子 아들 자 |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신하와 어버이를 해치는 자식.

孟子 등문공(藤文公) 하편에는 맹자의 제자인 공도자가 제기한 논쟁에 관한 맹자의 답변이 실려 있다. 맹자는 자신이 논쟁을 피하지 않는 이유를 인의(仁義)의 실천을 위한 것으로 설명하였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공자가 춘추를 완성하자 나라를 어지럽히는 무리들은 두려워 하였다[孔子成春秋而亂臣賊子懼]라는 구절이 나온다.

후한서 '동탁전(董卓傳)'에도 너희들은 반역하여 천자를 핍박하니, 역적들중에도 이제껏 너희같은 자들은 없었다[亂臣賊子未有如汝者]라는 구절이 보인다.

南山玄豹 (남산현표)

南山玄豹(남산현표)

南 남녘 남, 나무 나 | 山 뫼 산 | 玄 검을 현 | 豹 표범 표 |

남산의 검은 표범. 배고픔을 견뎌야 무늬가 박힌다. 공부를 차곡차곡 쌓아야 문득 반짝이는 지혜를 갖게 된다는 뜻.

[출전]
열녀전, 주역

주역엔 '군자는 표범처럼 변한다.'는 '군자표변'(君子豹變)으로 등장.

濫觴 (남상)

濫觴(남상)

사물(事物)의 연원, 발생

男負女戴 (남부여대)

男負女戴(남부여대)

남자는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간다. 가난한 사람들이 이리저리 살곳을 찾아다닌다

羅浮少女 (나부소녀, luófúshàonǚ)

羅浮少女(나부소녀)

罗浮少女(luó fú shào nǚ)

羅 벌일 나(라),그물 나(라) | 浮 뜰 부 | 少 적을 소 | 女 계집 녀(여)


미인(美人)을 이르는 말. 나부산(羅浮山)에 있던 매화의 정령이 미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함. '나부(羅浮)'는 중국 광동(廣東)성 증성(增城)현의 동쪽에 있는 지명이다.

落落長松 (낙락장송)

落落長松 (낙락장송)

가지가 축 늘어진 큰 소나무

難得糊塗 (난득호도)

難得糊塗(난득호도)

難 어려울 난 | 得 얻을 득 | 糊 풀 호 | 塗 진흙도

(어리석은데 총명한척 하기도 어렵지만) 총명한데 어리석어 보이기는 (더욱) 힘들다는 뜻. 뛰어난 사람이 때로는 바보처럼 위장하여 풍랑이 많은 세상에서 살아사는 도가적 삶의 처세술을 보여주는 의미.

It's difficult to be careless all the time; wise people rarely get confused, but sometimes it's better to pretend to be bewildered.

중국 청대의 유명한 화가 겸 서예가 정섭(鄭燮, 1693-1765, 호: 板橋)이 쓴 말. 자신을 본 모습을 숨기고 일을 도모하는 것을 뜻한다. 중국인들이 매우 좋아하는 어구로서 속과 겉이 다른 중국인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어느날 정판교는 정묵이라는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가옥의 담장에 문제로 이웃과 소송이 붙었으니 편지를 써서 흥화현 지현에게 부탁이었다. 정판교는 서신을 다 읽고 다음과 같이 시를 써서 회신했다.

“천리나 편지를 보낸 것이 담장 하나 때문인가? 그에게 몇 자를 양보하면 또 어떤가? 만리장성은 아직도 남아 있는데 어찌 진시황은 보이질 않겠는가.”

그리고 나중에 어리석기도 어렵다는 뜻의 난득호도(難得糊塗)란 글과 손해보는 것이 복을 받는 것이라는 뜻의 흘휴시복(吃虧是福)라는 두 개의 큰 글자를 써서 보냈다고 한다.

“난득호도(難得糊塗)”란 글에 대하여 정판교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聰明難,糊塗難,(총명난, 호도난)
由聰明轉入 糊塗更難。(유총명전입 호도갱난)
放一著 退一步,當下心安,(방일착 퇴일보, 당하안심)
非圖後來 福報也。(비도후래복보야)

총명하기도 어렵고, 어리석기도 어렵다.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게 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생각을 놓고 한 걸음 물러서면, 그 순간 마음은 편해진다.
뜻하지 않고 있노라면 후에 복으로써 보답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흘휴시복(吃虧是福)”이라는 글자에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고 한다.

滿者損之機 (만자손지기)
虧者盈之漸。(휴자영지점)
損於己則盈於彼。(손어기즉영어피)
各得心情之半。(각득심정지반)
而得我心安卽平 (이득아심안즉평)
且安福卽在時矣。(차안복즉재시의)

가득 차면 덜어지게 되어 있고
비어 있으면 점점 차게 되어 있다.
자기가 손해 보면 다른 사람이 이익을 본다.
그러면 각자 심정의 절반씩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을 얻게 되니,
어찌 바로 복을 받은 때가 아니겠는가.

南橘北枳 (남귤북지)

南橘北枳(남귤북지)

淮水(회수)의 남쪽인 淮南(회남)의 귤나무를 회수의 북쪽인 淮北(회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로 변해버린다는 말로 처지가 달라짐에 따라 사람의 기질도 변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춘추시대 齊(제)나라에 안영이란 유명한 재상이 있었다. 어느해 안영이 사신으로 楚(초)나라에 가게 되었다.평소 안영이 비상한 인물이라는 소문을 듣고 있던 초나라 靈王(영왕)은 이 기회에 그를 시험해 볼 욕심이 생겼다.그런데 안영은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외모는 볼품이 없고 키도 아주 작았다.

영왕이 안영에게 물었다. “제나라에는 인재가 별로 없는 모양이지요. 당신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는 걸 보면.” 안영의 보잘 것 없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비웃는 말이었다.

그러나 안영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우리 제나라는 한가지 원칙을 세워두고 있죠.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보내는 것이지요. 저는 작은 사람중에서도 가장 작기 때문에 이렇게 초나라에 오게 된 겁니다.”

영왕이 한방 얻어맞은 꼴이 되었는데 마침 그때 捕吏(포리)가 죄수를 끌고 지나갔다. 왕이 물었다. “그 죄수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 제나라 사람인데 절도 죄인 입니다.”

포리의 대답을 듣고 초왕이 안영에게 물었다.“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 합니까.” “회남쪽의 귤을 회북땅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어버립니다(南橘北枳 남귤북지). 제나라 사람은 도둑질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라는데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한 것을 보면 초나라 풍토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연거푸 두방을 얻어맞은 영왕은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南郭濫吹 (남곽남취)

南郭濫吹(남곽남취)

南 남녘 남, 나무 나 | 郭 둘레 곽, 성곽 곽 | 濫 넘칠 남(람), 함부로 남(람), 동이 함 | 吹 불 취 |

남곽(南郭)이 함부로 분다는 뜻으로, 학예(學藝)에 전문(專門) 지식(知識)도 없이 함부로 날뜀을 두고 이르는 말


한비자(韓非子) 내저설(內儲說) 상편에는 남곽처사(南郭處士)라는 무능한 자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국(戰國)시대 제(齊)나라의 선왕(宣王)은 생우(笙竽)라는 관악기의 연주를 매우 즐겨 들었다. 그는 많은 악사들이 함께 연주하는 것을 특히 좋아하여, 매번 300명의 사람들을 동원하여 악기를 연주하게 하였다.

우를 전혀 불지 못하는 남곽(南郭)이라는 한 처사(處士)가 선왕을 위하여 우를 불겠다고 간청하였다. 선왕은 흔쾌히 그를 받아들여 합주단의 일원으로 삼고, 많은 상을 하사하였다. 남곽은 다른 합주단원들의 틈에 끼여 열심히 연주하는 시늉을 했다. 몇 해가 지나, 선왕이 죽고 그의 아들인 민왕(緡王)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민왕은 아버지인 선왕과는 달리 300명의 합주단이 연주하는 것을 즐겨 듣지 않고 단원 한 사람이 단독으로 연주하는 것을 즐겨 들었다. 난처해진 남곽은 자신의 차례가 돌아 오자 도망치고 말았다.

南郭濫吹(남곽이 우를 함부로 불다)는 남우충수(濫竽充數)라고도 한다. 이는 무능한 자가 재능이 있는 척하거나, 실력이 없는 자가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근래에는 '濫竽充數(남우충수)'란 말이 중요한 자리에 참석해 자신을 낮춰 겸손을 부릴 때 쓰는 말로 뜻이 바뀌어 사용되기도 한다.


출전

한비자(韓非子) | 시경(詩經)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南郭濫吹(남곽남취) | 濫竽(남우) | 濫竽充數(남우충수) | 濫芋充數南郭濫吹(남우충수남곽남취) | 濫吹(남취) |

難攻不落 (난공불락, nángōngbúluò)

難攻不落(난공불락,nángōngbúluò)

쳐 부수기 어려운 성지(城地)

南柯一夢 (남가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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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없이 지나간 한 때의 부귀나 행복을 일컫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