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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翁好鷗 (해옹호구, hǎiwēnghǎoōu)

海翁好鷗(해옹호구)

海翁好鸥(hǎiwēnghǎoōu)

海 바다 해 | 翁 늙은이 옹 | 好 좋을 호 | 鷗 갈매기 구 |


갈매기를 좋아하는 바닷가 노인이라는 뜻으로, 친하게 지내던 새도 막상 잡으려고 하면 그것을 알고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데서 야심(野心)이나 위험(危險)을 알아차리면 누구라도 접근(接近)하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

叱石成羊 (질석성양)

叱石成羊(질석성양)

叱 꾸짖을 질 | 石 돌 석 | 成 이룰 성 | 羊 양 양 |

바위를 양으로 바꾼다는 뜻으로 신기한 기술이나 괴이한 현상을 비유

To turn rocks into sheep by shouting


신선전(神仙傳)의 이야기.

옛날 황씨 성을 가진 형제가 있었다. 형의 이름은 황초기(黃初起)이고, 동생은 황초평(黃初平)이었다. 황초평이 14세가 되던 해, 하루는 산에서 양을 먹이고 있는데, 갑자기 한 도사(道士)가 나타났다. 도사는 초평을 제자로 삼고자 금화산의 한 동굴로 그를 데리고 갔다. 도사는 초평에게 신기한 재주를 가르쳐 주었다.

형인 황기초는 양치러 나간 동생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사방으로 찾아 나섰다. 몇일 후 산 꼭대기에 올라서야 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초평은 동생에게 물었다.

"양들은 모두 어디에 있느냐?"

황초평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동쪽 산 위에 있다고 대답했다. 형은 급히 양을 찾으러 달려 갔만, 그곳에는 양은 없고 흰 바위 하나만 있었다.

동생인 황초평은 자신을 원망하는 형과 함께 동쪽 산으로 갔다. 그는 흰 바위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양들아, 일어나라!"

흰 바위는 순식간에 수만 마리의 양들로 변하였다. 叱石成羊이란 신기한 기술이나 괴이한 현상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신선전(神仙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比翼連理 (비익연리, bǐyìliánlǐ)

比翼連理(비익연리)

比翼连理(bǐ yì lián lǐ)


比 견줄 비 | 翼 날개 익 | 連 이을 연 | 理 결리 리


중국 전설에 나오는 비익조(比翼鳥)와 연리지(連理枝).


부부의 사이가 매우 화락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비익조는 상상(想像)의 새 이름으로, 암컷 ·수컷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어서 언제나 깃을 가지런히 하여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하며, 연리지는 두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서 결이 서로 통한 것이라는 뜻에서 화목한 부부나 깊은 남녀관계를 가리킨다.

白居易(백거이)는 '장한가(長恨歌)'에서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비련을 그려 “하늘에서는 비익의 새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의 가지가 되리라”고 노래하였다.

비익총(比翼塚)은 정사(情死)한 남녀를 한구덩이에 묻은 무덤이다.


백거이 | 장한가 | 당:현종 | 양귀비 | 동물 | 새 | 부부

白居易 | 長恨歌 | 玄宗 | 楊貴妃

蚌鷸之爭 (방휼지쟁, bàngyùzhīzhēng)

蚌鷸之爭(방휼지쟁)

蚌鹬之争(bàngyùzhīzhēng)

蚌 방합 방 | 鷸 도요새 휼 | 之 갈 지 | 爭 다툴 쟁 |


방합과 도요새의 다툼이라는 뜻으로, 제3자(第三者)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


이 말은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에서 비롯되었다.

조(趙)나라가 연(燕)나라를 치려 하였는데, 때마침 연나라에 와 있던 소진(蘇秦)의 아우 소대(蘇代)는 연나라 왕의 부탁을 받고 조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을 찾아가 이렇게 설득하였다.

"이번에 제가 이 곳으로 오는 도중에 역수(易水)를 건너오게 되었습니다. 마침 민물조개가 강변에 나와 입을 벌리고 햇볕을 쪼이고 있는데, 도요새란 놈이 지나가다 조갯살을 쪼아 먹으려 하자 조개는 깜짝 놀라 입을 오므렸습니다. 그래서 도요새는 주둥이를 물리고 말았습니다. 도요새는 생각하기를 오늘 내일 비만 오지 않으면 바짝 말라 죽은 조개가 될 것이다 하였고, 조개는 조개대로 오늘 내일 입만 벌려 주지 않으면 죽은 도요새가 될 것이다 생각하여 서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마침 어부가 이 광경을 보고 도요새와 조개를 한꺼번에 망태 속에 넣고 말았습니다. 지금 조나라가 연나라를 치려 하시는데 두 나라가 오래 버티어 백성들이 지치게 되면 강한 진(秦)나라가 어부가 될 것을 저는 염려합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소대의 이 비유를 들은 혜문왕은 과연 옳은 말이라 하여 연나라 공격계획을 중지하였다

趙且伐燕(조차벌연)이어늘 蘇代(소대)가 爲燕(위연)하여 謂惠王曰(위혜왕왈) "今日(금일)에 臣(신)이 過易水(과역수)할새 蚌(방)이 方出曝而鷸(방출폭이휼)이 啄其肉(탁기육)하니 蚌(방)이 合而箝(합이겸) 其喙(기훼)라 鷸曰(휼왈) "今日不雨(금일불우)하고 明日不雨(명일불우)면 卽有死蚌(즉유사방)이라"蚌(방)이 亦謂鷸曰(역위휼왈) "今日不出(금일불출)하고 明日不出(명일불출)이면 卽有死鷸(즉유사휼)이라"하고 兩者(양자)가 不肯相舍(불긍상사)하니 漁者(어자)가 得而幷(득이병) 擒之(금지)라 今趙且伐燕(금조차벌연)하여 燕趙(연조)가 久相攻(구상공)하여 以大衆(이대중)이면 臣(신)은 恐强秦之爲漁夫(공강진지위어부) 也(야)라 願大王(원대왕)은 熟計之也(숙계지야)니이다." 惠王(혜왕)이 曰(왈) "善(선)하다"하니라.

[유래]
戰國策(전국책) : 卷三十•燕策二 |


관련 한자어

유의어

鷸蚌之爭(휼방지쟁) | 漁人之利(어인지리) | 漁人得利(어인득리) | 漁翁之利(어옹지리) | 漁父之利(어부지리) | 漁夫之利(어부지리) | 犬兎之爭(견토지쟁) |


전국책 | 전국책:연책 | 동물 | 방합 | 도요새 | 어부지리 | 이익

戰國策 | 戰國策:卷三十•燕策二 | 蚌 | 鷸 | 漁夫之利

沐猴而冠 (목후이관, mùhóu'érguàn)

沐猴而冠(목후이관,mùhóu'érguàn)

沐猴而冠(mùhóu'érguàn)

沐 머리 감을 목 | 猴 원숭이 후 | 而 말 이을 이,능히 능 | 冠 갓 관 |


1. 원숭이가 관을 쓰고 사람처럼 꾸미다. 《사기·항우본기(史記·項羽本紀)》에 나오는, “사람들이 초(楚)나라 사람은 관을 쓰고 사람 행세를 하는 원숭이 같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구나.”라는 말에서 유래함. 2.[성어,비유] 덕도 없고 무능하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사람.


초(楚)나라의 패왕인 항우(項羽)가 진(秦)나라의 서울을 불태워버리고 유방(劉邦)을 추방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며 자기는 금의 환향(錦衣還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생(韓生)이 항우는 그런 의관을 할 사람이 됨이 못 된다고 비꼬아 한 말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오는 말이다. 홍문(鴻門)의 연(宴)으로 유방으로부터 진(秦)의 수도 함양을 넘겨받은 항우는 약탈과 방화를 자행하여 함양을 폐허로 만들었다. 함양이 폐허로 변하자, 자기의 성공을 고향에서 뽐내기도 할 겸 해서 초(楚)의 팽성(彭城)으로 천도를 서둘렀다. ‘부귀한 뒤에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는 금의환향(錦衣還鄕)의 욕심 때문이었다.

함양은 주(周)와 진(秦)이 일어났던 패업의 땅으로, 관중(關中)이라고도 불리는 천혜의 요지이다. 그럼에도 항우가 천도를 고집하자, 간의대부(諫議大夫) 한생(韓生)이 이를 간하였다.

“관중은 예부터 천혜의 요지로 패업의 땅이었고, 토지 또한 비옥합니다. 여기에 도읍을 정하고 천하의 왕이 되십시오. 지난 번 범승상(范丞相:范增)이 떠날 때도 결코 함양을 버리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 말을 들은 항우는 화를 벌컥 내면서 한생의 말을 막았다. 한생은 크게 탄식하며 물러나서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원숭이를 목욕시켜 관을 씌운 꼴이군[沐猴而冠].”

그런데 이 말을 그만 항우가 듣고 말았다. 항우가 옆에 있던 진평에게 그 뜻을 묻자, 진평이 답하였다.

“폐하를 비방하는 말이온데,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원숭이는 관을 써도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과 원숭이는 꾸준하지 못해 관을 쓰면 조바심을 낸다는 것, 그리고 원숭이는 사람이 아니므로 만지작거리다가 의관을 찢고 만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듣고 격분한 항우는 한생을 붙잡아 펄펄 끓는 가마솥에 던져 죽였다. 한생이 죽으면서 말했다.

“나는 간언하다가 죽게 되었다. 그러나 두고 보아라. 백일 이내에 한왕(漢王)이 그대를 멸하리라. 역시 초나라 사람들은 원숭이와 같아 관을 씌워도 소용이 없구나.”

결국 천도를 감행한 항우는 관중을 유방에게 빼앗기고 마침내는 해하(垓下)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 속에 목숨을 끊고 말았다.

[유래]
史記(사기) : 項羽本紀(항우본기)


관련 한자어

참조어

錦衣還鄕(금의환향) | 四面楚歌(사면초가) |


史記(사기) : 項羽本紀(항우본기) |

老馬之智 (로마지지, lǎomǎzhīzhì)

老馬之智(노마지지)

老马之智(lǎomǎzhīzhì)

老 늙을 노(로) | 馬 말 마 | 之 갈 지 | 智 슬기 지,지혜 지 |


늙은 말의 지혜(智慧)라는 뜻으로, ①연륜이 깊으면 나름의 장점(長點)과 특기가 있음 ②저마다 한가지 재주는 지녔다는 말

☞ 노마지지

羅雀掘鼠 (라작굴서)

羅雀掘鼠(라작굴서)

그물 라 | 참새 작 | 팔 굴 | 쥐 서 |


그물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는다는 뜻으로, 최악의 상태에 이르러 어찌할 방법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 羅雀掘鼠(나작굴서)

螳螂蟬蟬 (당랑박선, tánglángbóchán)

螳螂蟬蟬(당랑박선)

螳螂搏蝉(táng láng bó chán)

螳 사마귀 당│螂 사마귀 랑│蟬 잡을 박│蟬 매미 선


눈 앞의 이익에 어두워 뒤에 따를 걱정거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


장주(莊周)가 조릉(雕陵)이라는 밤나무밭 울타리 안을 거닐다가 문득 남쪽에서 이상하게 생긴 까치 한 마리가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 까치의 날개 넓이는 일곱 자였고, 눈의 직경이 한 치나 되었다. 까치는 장주의 이마에 닿았다가 밤나무 숲에 가서 멎었다. 장주는 혼잣말로 이렇게 말했다.

"저건 대체 무슨 새일까? 날개는 큰데 높이 날지 못하고 눈은 크나 보지 못하다니!"

그리고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재빨리 다가가 활을 쥐고 그 새를 쏘려 했다. 그러다 문득 보니, 매미 한 마리가 시원한 나무 그늘에 멎어 제 몸을 잊은 듯 울고 있었고, 바로 곁에는 정신이 팔려 스스로의 몸을 잊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긴 까치는 이 기회에 사마귀를 노리면서 정신이 팔려 제 몸을 잊고 있었다. 장주는 이 꼴을 보고 깜짝 놀라서 이렇게 외쳤다.

"아, 모든 사람이란 본래 서로 해를 끼치고, 이(利 )와 해(害 )는 서로를 불러들이고 있구나!"

그리고는 활을 내버리고 도망쳐 나왔다. 그때 밤나무 밭지기가 쫓아와 장주가 밤을 훔친 줄로 알고 꾸짖었다.

장주는 집에 돌아온 뒤 석 달 동안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제자 인저(藺咀)가 와서 물었다.

"선생님께선 요즘 무슨 일로 언짢으십니까?" 장주는 대답했다.

"나는 외물(外物)에 사로잡혀 내 몸을 잊고 있었다. 흙탕물을 보느라고 맑은 못을 잊듯이, 외물에 사로잡혀 자연의 대도(大道)를 놓치고 있었다. 나는 또 선생님으로부터 '속세에 들어가면 그 속세를 따르라'는 말을 들었는데도, 이번에 조릉을 거닐며 내 몸을 잊었고 이상한 까치는 내 이마에 닿았다가 밤나무 숲에서 노닐며 그 몸을 잊었으며, 나는 밤나무 밭지기로 부터 꾸지람을 듣고 모욕을 당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언짢은 것이다."

[출전] 장자(莊子) 산목(山木)


관련 한자어

유의어

螳螂窺蟬(당랑규선)│螳螂搏蟬(당랑박선, táng láng bó chán)│ 螳螂捕蟬(당랑포선, táng láng bǔ chán)│ 螳螂在後(당랑재후)

多岐亡羊 (다기망양)

多岐亡羊(다기망양)


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길을 잃었다는 뜻으로, ①학문(學問)의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 진리(眞理)를 찾기 어려움 ②방침(方針)이 많아 할 바를 모르게 됨. 곧 본 뜻이나 목적을 망각하고 지엽적이고 단편적인 것에 집착하게 되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말.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사상가(思想家)로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주장했던 양자(楊子)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어느날, 양자의 이웃집 양 한 마리가 도망쳤다. 이웃집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양자의 집 하인들까지 총동원되어 양을 찾으러 나섰다. 이런 소동을 보고 양자가 물었다.

"양 한 마리를 찾는데 쫓아가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은가?"
"워낙 갈림길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게 하인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모두들 기진맥진해 돌아와서 말했다.

"갈림길을 지나면 또 갈림길이어서 양이 어느 길로 도망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단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 양은 찾았느냐?" "갈림길이 하도 많아서 그냥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양을 못 찾았단 말이냐?"

"예, 갈림길에 또 갈림길이 있는지라 양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통 알 길이 없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양자는 우울한 얼굴로 그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물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제자인 맹손양(孟孫陽)은 스승의 고민을 알지 못하고 선배 제자인 심도자(心都子)에게 양자가 침묵하는 까닭을 물었다.

심도자의 대답은 이랬다.

"큰 길은 갈림길이 많아서 양을 놓쳐 버리고(多岐亡羊) 학문하는 사람은 방법이 많기 때문에 본성을 잃고 마네. 학문이란 원래 근본은 하나였는데 그 끝은 이같이 달라지게 되네. 그러므로 하나인 근본으로 되돌아가게 되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는 게 선생님의 생각이시네. 그런데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이라네."

근본을 도외시(度外視)하고 지엽적인 것에 몰두하게 되면 아무런 소득이 없거나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유래: 列子(열자)


관련 한자어

유의어

望洋之歎(망양지탄) |


列子(열자) |

老馬之智 (노마지지, lǎomǎzhīzhì)

老馬之智(노마지지)

老马之智(lǎomǎzhīzhì)

老 늙을 노(로) | 馬 말 마 | 之 갈 지 | 智 슬기 지,지혜 지 |

늙은 말의 지혜(智慧)라는 뜻으로, ①연륜이 깊으면 나름의 장점(長點)과 특기가 있음 ②저마다 한가지 재주는 지녔다는 말

An old dog for a hard road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저마다 장기(長技)나 장점을 지니고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한비자(韓非子)》설림(說林) 상편에 있는 이야기이다.

춘추시대 오패(五覇)의 한 사람이었던 제(齊)나라 환공(桓公) 때의 일이다. 어느 해 봄, 환공은 명재상 관중(管仲)과 대부(大夫) 습붕(隰朋)을 대동하고 고죽국(孤竹國:하북성(河北城)내)을 정벌하였다. 그런데 전쟁이 의외로 길어지는 바람에 그해 겨울에야 끝이 났다. 그래서 혹한 속에 지름길을 찾아 귀국하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전군(全軍)이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져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말하였다.

“이런 때 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하다[老馬之智可用也(노마지지가용야)].”

즉시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 놓았다. 그리고 전군이 그 뒤를 따라 행군한 지 얼마 안되어 큰길이 나타났다[乃放老馬而隨之 遂得道行(내방노마이수지 수득도행)].

또 한번은 산길을 행군하다가 식수가 떨어져 전군이 갈증에 시달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습붕이 말하였다.

“개미란 원래 여름엔 산 북쪽에 집을 짓지만 겨울엔 산 남쪽 양지 바른 곳에 집을 짓고 산다. 흙이 한 치[一寸]쯤 쌓인 개미집이 있으면 그 땅속 여덟 자[一仞≒8자≒2.4m]쯤 되는 곳에 물이 있는 법이다.”

군사들이 산을 뒤져 개미집을 찾은 다음 그곳을 파 내려가자 과연 샘물이 솟아났다.

이 이야기에 이어 한비는 그의 저서《한비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관중의 총명과 습붕의 지혜로도 모르는 것은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으로 삼아 배웠다. 그러나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어리석음에도 성현의 지혜를 스승으로 삼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 아닌가.”

노마지지란 여기서 나온 말인데, 노마식도(老馬識道)·노마지도(老馬知道)라고도 하며, 요즈음에도 ‘경험을 쌓은 사람이 갖춘 지혜’란 뜻으로 사용된다.

[유래]
韓非子(한비자) : 說林上(설림상) |


참조 한자어

동의어

老馬知途(노마지도) | 老馬識途(노마식도) : 老马识途(lǎomǎshítú) | 识途老马(shítúlǎomǎ) |

狼狽 (낭패, lángbèi)

狼狽(낭패)

狼狈(lángbèi)

狼 이리 낭(랑) | 狽 이리 패,낭패할 패 |


① 다리 없는 두 마리의 이리가 처한 곤경. 패(狽)와 낭(狼)은 다 이리의 일종으로서 낭은 앞다리가 길고 뒷다리가 짧으며, 패는 그와 반대이므로 그 두 짐승이 같이 나란히 걷다가 서로 사이가 벌어지면 균형을 잃고 넘어지게 되므로 당황하게 되는 데서 유래한 말 ② 계획(計劃)하거나 기대(期待)한 일이 실패(失敗)하거나 어긋나 딱하게 됨


'낭패'라는 말은 우리의 일상 생활 중에 자주 쓰이는 말이다. 어떤 일을 도모했을 때 잘 풀리지 않아 처지가 고약하게 꼬이는 경우에 사용한다.

'낭'이나 '패'나 한결같이 개사슴록(犬)변으로 이뤄졌다. 한자에서 犬변이 들어 있는 글자는 모두 동물이거나 또는 동물의 특성을 함축한 글자다.

예를 들면 여우 호(弧), 개 구(狗), 삵쾡이 리(狸), 돼지 저(猪), 고양이 묘(猫) 등등이다.

낭(狼)과 패(狽)도 마찬가지다. 낭과 패는 전설상의 동물이다. 낭(狼)은 태어날 때부터 뒷다리 두 개가 없거나 아주 짧다. 그런가 하면 패(狽)는 앞다리 두 개가 없거나 짧다. 그런 이유로 걸을 때 狈(패)는 낭의 몸에 앞다리를 걸쳐야 했다. 하지만 두 마리가 같이 걸으려면 어지간히 사이가 좋지 않고서는 넘어지기 일쑤였다.

낭과 패의 성품을 분석해 보면, 낭은 성질이 흉포하지만 지모(智謀)가 부족하다. 반대로 패는 순한 듯 싶은데도 지모가 뛰어나다. 그래서 함께 먹이를 찾으러 나갈 때엔 패의 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도 마음이 바뀌면 문제가 생긴다. 서로 고집을 피우면 움직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꼼짝없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곤경에 처한 의미가 파생되었다.

[출전]
後漢書(후한서) : 李杜列傳(이두열전) | 酉陽雜俎(유양잡조) : 卷十六 |


간사하고 꾀가 많다는 뜻의 교활(狡猾)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 역시 개사슴록 (犬)변이다. 교(狡)나 활(猾)도 모두 동물 이름이다. 물론 실존하는 것은 아니며 전설상의 동물이다.

《산해경》에 모습을 드러내는 이 동물에 대한 특성이 있다.

교(狡)는 옥산(玉山)에 살며 개와 같지만 표범 무늬를 하고 있다. 머리에는 쇠뿔을 달고 있으니 그 형상이 괴이하다. 울음소리 역시 개와 비슷하다고 적혀 있다. 한가지 특별한 것은 이놈이 나타나면 그해엔 여지없이 풍작이다. 그런 점에서 교는 길조이며 어느 누구나 반긴다.

교(狡)의 주변에는 활(猾)이 있다. 이놈은 아주 간악하다. 사는 곳은 요광산 (堯光山)인데 몸뚱이에는 돼지털이 나 있으며 동굴 안에서 겨울잠을 잔다. 한소리 기합을 지르듯 울어대면 온 천하가 큰 혼란에 빠져 버린다. 사람들은 모두 흉조의 상징이기 때문에 활을 두려워 한다.

교(狡)나 활(猾)은 산 속에서 호랑이 같은 맹수를 만나면 스스로의 몸을 구부려 공처럼 만들어 버린다.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삼키려 들면 재빨리 입안으로 들어가 내장으로 굴러가 그것을 파먹는다. 배가 아파 호랑이가 날뛰면 맘껏 내장을 뜯어 먹는다. 그리고 호랑이가 죽으면 그제야 유유히 뱃속에서 빠져 나온다.

[출전]
山海經(산해경) : 南山經, 西山經 |


망설여 결행하지 못하는 뜻의 유예(猶豫)라는 말도 동물에서 나왔다. 유(猶)는 의심이 많은 동물이다. 이놈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나무 위로 숨어 버린다. 유의 본래 뜻은 원숭이다. 예(豫)는 상(象)자가 있으므로 코끼리다. 아마 지금의 큰 코끼리보다 더 커서 매우 동작이 느렸을 것이다.


참조 한자어

유의어

狼狽不堪(낭패불감) | 進退兩難(진퇴유곡) | 進退惟谷(진퇴양난) |

참조어

到處狼狽(도처낭패) ①하는 일마다 모두 실패(失敗)함 ②가는 곳마다 뜻밖의 화를 입음 |

勸上搖木(권상요목) 나무에 오르라 하고, 흔들어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남을 부추겨 놓고 낭패를 보도록 방해(妨害)함이라는 말 |

觸處逢敗(촉처봉패) 가서 닥치는 곳마다 낭패를 당(當)함 |


後漢書(후한서) : 李杜列傳(이두열전) | 酉陽雜俎(유양잡조) : 卷十六 | 山海經(산해경) : 南山經, 西山經 |

羅雀掘鼠 (나작굴서)

羅雀掘鼠(나작굴서)

그물 라 | 참새 작 | 팔 굴 | 쥐 서 |


그물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는다는 뜻으로, 최악의 상태에 이르러 어찌할 방법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新唐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당(唐)나라 현종(玄宗)의 통치 말기, 장순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충직한 신하였을 뿐만 아니라 재주도 많고 무인답게 담력 또한 컸으며 대의가 분명한 그런 인물이었다. 정치가 부패하자 변방의 안록산(安祿山)은 군대를 일으켜 당나라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서시 756년, 진원(眞源) 현령 장순(張巡)은 군대를 동원하여 안록산 토벌에 나섰다. 이듬해, 안록산의 아들 안경서(安慶緖)는 윤자기(尹子琦)를 보내 십만 대군으로 장순을 맹렬히 공격하였다.

당시 장순에게는 겨우 삼 천명의 병력 뿐으로 수적으로 열세였다. 윤자기의 군대는 어떤 때에는 하루에 20여 차례나 공격을 해 왔지만, 장순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웠다. 윤자기의 군대는 수적으로는 우세하였지만, 성(城)을 함락하지 못하며, 몇 달 동안 대치하게 되었다. 장순은 몇 달 동안 구원군을 기다렸지만 그들이 오지 않자, 성 안의 식량과 풀이 다 바닥날 상황이었다. 형세가 급박하게 변하자 장순은 부하 남제운(南霽雲)을 보내 포위망을 뚫고 임회(臨淮) 태수 하란진명(賀蘭進明)에게 위급한 소식을 알렸다. 그러나 임회태수는 장순의 명성을 시기하여, 그들의 위급함을 보고도 구원병을 보내지 않았다.

윤자기는 강공(强攻)으로는 성을 함락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방법을 바꾸어 장순에게 투항을 권유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장순은 이에 굴하지 않고, 쉴새 없이 공격해 오는 적들을 모두 물리쳤다. 얼마 후, 성안의 식량이 점점 줄어들자, 군인들은 매일 한 수저의 쌀만을 먹었다. 이에 장순은 먹을 것을 확보하기 위하여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심지어는 그물을 쳐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으며, 갑옷과 활에 붙어있는 소가죽을 삶아서 굶주림을 달래라고 하였다(至羅雀掘鼠, 煮鎧弩以食).

장순은 지휘관의 입장에서 자식같은 병사들의 몸부림을 안타깝게 여겨 자기 아내를 죽여 국을 끓여서 병사들에게 먹이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상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악화되어 갔고, 더 이상 성을 고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마침내 성으로 진격해 들어오는 반란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장순이 항복을 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항복을 요구하는 반란군들을 향해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고는 청청병력 같은 소리로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반란군은 그 자리에서 그의 목을 베었다.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장순의 부하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의 죽음과 바꾼 충성심에 새삼 고개를 떨구게 되었다.

矯角殺牛 (교각살우)

矯角殺牛 (교각살우)

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인다. 작은 일에 힘쓰다가 큰 일을 망친다

藁網捉虎 (고망착호)

藁網捉虎(고망착호)

새끼를 가지고 호랑이를 잡는다는 말. 어리석은 계책과 보잘 것없는 것으로 뜻밖에 큰 일을 이룸을 뜻함.

黔驢之技 (검려지기, Qiánlǘzhījì)

>黔驢之技(검려지기)

黔驴之技(Qiánlǘzhījì)

黔 검을 검,귀신 이름 금 | 驢 당나귀 려(여) | 之 갈 지 | 技 재주 기 |


검주에 사는 당나귀의 재주라는 뜻으로, 보잘것없는 기량을 들켜 비웃음을 산다는 말.


옛날 중국 검주(黔州:구이저우성의 별명)에는 당나귀가 없었다. 그런데 호기심이 많은 어떤 사람이 당나귀 한 마리를 배로 실어 왔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당나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또 무엇에 써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산 아래 풀어 놓아 먹이며 키웠다.

어느 날 산속을 어슬렁거리던 호랑이가 이 당나귀를 보고 자기보다 큰 데 놀랐다. 호랑이는 지금까지 당나귀를 본 일이 없었으므로 신수(神獸)라 생각하고는 숲속에 몸을 숨기고 가만히 동정을 살폈다. 얼마 후 호랑이는 슬슬 주위를 살피며 숲에서 나와 당나귀에게 접근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이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당나귀가 갑자기 소리 높이 울었다. 그 소리를 들은 호랑이는 '이건 분명 나를 잡아 먹으려는 것이다' 생각하고 황급히 도망을 쳤다.

며칠이 지나자 그 우는 소리에도 익숙해지고 아무래도 무서운 동물은 아닌 듯하였다. 호랑이는 당나귀의 주위를 서성거려 보았으나 당나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용기가 생긴 호랑이는 당나귀의 본성(本性)을 시험해 보려고 일부러 지분거려 보았다.

그러자 당나귀는 화가 나서 호랑이에게 뒷발질을 할 뿐이었다. 호랑이는 당나귀에게 그 밖의 기량이 없음을 알게 되자 좋아하며 당나귀에게 덤벼들어 순식간에 잡아먹어 버렸다.

기술·기능이 졸렬함을 비유하거나 또는 자신의 재주가 보잘것없음을 모르고 나서거나 우쭐대다가 창피를 당하거나 화(禍)를 자초(自招)함을 비유한 우화(寓話)로 유종원(柳宗元)의 〈삼계(三戒)〉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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苛政猛於虎 (가정맹어호, kēzhèngměngyúhǔ)

苛政猛於虎(가정맹어호)

苛政猛於虎(kēzhèng měng yú hǔ)

苛 가혹할 가 | 政 정사 정 | 猛 사나울 맹 | 於 어조사 어 | 虎 호랑이 호 |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뜻.


《예기(禮記)》의 '단궁하편(檀弓下篇)'에 나오는 “가정맹어호야(苛政猛於虎也)”에서 유래되었다.

가정이란 혹독한 정치를 말하고, 이로 인하여 백성들에게 미치는 해는 백수(百獸)의 왕이라 할 만큼 사납고 무서운 범의 해(害)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 기슭을 지나고 있는데, 한 부인이 무덥 앞에서 울며 슬퍼하고 있었다. 공자는 제자인 자로에게 그 까닭을 묻게 하였다. 그 부인은 대답하길 오래전에 시아버님이 호랑이게 죽음을 당하였고, 저의 남편 또한 호랑이에게 변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의 아들마저 호랑이게 목숨을 잃게 되었답니다. 라고 하였다.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말에 그 부인은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無苛政]라고 짧게 대답하였다. 자로의 말을 듣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잘 알아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다[苛政猛於虎也]"라고 하였다.

춘추 말엽 노(魯)나라의 대부 계손자(系孫子)의 폭정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은 차라리 호랑이에게 물려죽는 쪽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苛政이란 번거롭고 잔혹한 정치를 뜻한다. 政을 徵(징)의 차용으로 보아 번거롭고 무서운 세금과 노역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