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厚顔無恥 (후안무치)

厚顔無恥(후안무치)

厚 투터울 후 | 顔 얼굴 안 | 無 없을 무 | 恥 부끄러워할 치 |

옛날 중국의 하나라 계(啓) 임금의 아들인 태강은 정치를 돌보지 않고 사냥만 하다가 끝내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난다. 이에 그의 다섯 형제들은 나라를 망친 형을 원망하며 번갈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들의 노래는 모두 書經의 '五子之歌'편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막내가 불렀다고 하는 노래에는 이러한 대목이 보인다.

만백성들은 우리를 원수라 하니, 우린 장차 누굴 의지할꼬. 답답하고 섧도다, 이 마음, 낯이 뜨거워지고 부끄러워지누나.

萬姓仇予, 予將疇依. 鬱陶乎予心, 顔厚有.

厚顔이란 두꺼운 낯가죽을 뜻하는데, 여기에 무치(無恥)를 더하여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로 자주 쓰인다. 이는 낯가죽이 두꺼워서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킨다.

換骨奪胎 (환골탈태)

換骨奪胎(환골탈태)

뼈대를 바꿔 끼고 태를 달리 쓰다.

원래는 古人(고인)이 지은 詩文(시문)의 뜻을 취해 어구나 結構(결구)만을 바꾸어 자기 작품인 것처럼 꾸미는 것을 가리켰다. 요즘은 용모나 차림새가 몰라보게 좋아졌을 때 많이 쓰는 표현이 되었다.

중국 書藝史(서예사)에서 蘇軾(소식) 米(미불) 蔡襄(채양)과 더불어 宋代四大家(송대사대가)를 이룬 黃庭堅(황정견)은 소식(蘇東坡․소동파)과 함께 北宋(북송)을 대표하는 시인이기도 했다. 황정견은 杜甫(두보)의 詩(시)를 두고 이렇게 평했다.

『두보의 붓에 걸리면 흔해빠진 경치도 금세 아름다운 풍광으로 변하는데 이것은 마치 연금술사가 한 알의 靈丹(영단)을 넣어서 황금으로 변화시키는 것과 같다』

그가 말한 영단이란 시인의 詩想(시상)을 가리키지만 道家(도가)에서는 이 영단을 먹여서 보통사람의 뼈를 仙骨(선골)로 바꾸는 것을 「換骨(환골)」이라고 한다. 「奪胎(탈태)」란 시인의 시상이 마치 아기가 어머니의 胎內(태내)에 있는 것과 같으므로 그 태를 나의 것으로 삼아 자기의 詩境(시경)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황정견은 이렇게 말한다.

『시의 뜻은 무궁하지만 사람에게 주어진 재능에는 한계가 있다. 한계가 있는 재주로 무궁한 뜻을 좇는다는 것은 陶淵明(도연명)이나 두보라 할지라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先人(선인)의 작품에서 뜻을 바꾸지 않고 말만 바꾸어 만드는 것을 「환골법」이라 하고 그 뜻을 본받아 그것을 조금 바꾸어 표현하는 것을 「탈태법」이라고 한다』

虎口餘生 (호구여생)

虎口餘生(호구여생)

虎 범 호 | 口 입 구 | 餘 남을 여 | 生 날 생 |

큰 위험에서 목숨을 구함을 비유한 말.

life spared from the mouth of a tiger

송(宋)나라 때, 호주(湖州)에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주태(朱泰)라는 사람이 있었다. 집안이 가난한 탓에 산에서 나무를 해다 백리 밖에 있는 저자에 내다 팔아 겨우 몇 푼의 돈을 마련하여 생활하였다. 어느 날, 주태가 산에 올라 나무를 하고 있었는데, 큰 호랑이가 나타나 그를 물고 갔다. 주태는 호랑이게 물려 가면서도 죽을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내가 죽는 것은 상관없지만, 늙으신 어머니는 어찌 할꼬.

그는 계속 소리치면서 호랑이의 이빨에서 벗어 나려고 몸부림쳤다. 그를 물고 달리던 호랑이도 이제껏 이런 상황을 본 적이 없었던 터라 깜짝 놀라서, 입을 벌려 주태를 놓아 주고는, 오히려 허둥지둥 도망치고 말았다.

간신히 목숨을 구한 주태가 부상당한 채 집으로 돌아 오자,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그를 위로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돈과 물건을 가지고 와서 그를 도와 주었다.

호구(虎口)에서 살아 돌아온 주태는 그후 주호잔(朱虎殘)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杏林春滿 (행림춘만)

杏林春滿(행림춘만)

杏 살구나무 행 | 林 수풀 림 | 春 봄 춘 | 滿 찰 만 |

'살구나무 숲(행림)에 봄이 가득하다'라는 뜻으로, 의술이 고명함을 칭송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동봉(董奉)과 관련된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Full apricot trees in spring


진(晋)나라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 동봉(董奉)편의 이야기다.

삼국(三國)시대, 오(吳)나라에 동봉이라는 명의(名醫)가 있었다. 그는 예장(豫章) 지방의 여산(廬山) 밑에 살면서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었다.

그의 집은 진찰 받으러 온 사람들로 하루 종일 붐볐으나, 그는 다른 의사들과는 달리 환자들로부터 치료비를 받지 않고, 완치된 후에는 살구나무를 심게 하였다. 중병이었던 사람은 다섯 그루, 병이 가벼웠던 사람은 한 그루를 심게 하였다. 몇 년후, 그의 집은 수십만 그루의 살구나무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그 살구나무 숲을 동선행림(董仙杏林)이라 했다.

동봉은 뭇 짐승들로 하여금 행림 안에서 놀게 하고 자신을 대신하여 행림을 지키게 하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살구가 익으면 곡식 한 바가지를 살구 한 바가지로 바꾸어 가되, 자신에게 알릴 필요는 없으며 자율적으로 하라고 일렀다. 때로 반 그릇의 쌀을 놓고 한 그릇의 살구를 슬쩍 따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럴 때면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포효하여 놀래켰다. 욕심 많은 사람은 허둥지둥 도망가느라 바가지에서 쌀을 적지 않게 흘리게 마련이었는데, 집에 돌아가서 살펴보면 살구의 양이 자신이 가지고 갔던 쌀의 양과 똑같았다.

동봉은 해마다 살구를 팔아 곡식으로 바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어느 날, 동봉은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는데, 인간 세상에 300여 년이나 머물렀으나 승천할 때 그의 용모는 30여 세의 젊음을 유지하였다. 杏林春滿이란 의술이 고명(高明)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葛洪(갈홍) 神仙傳(신선전) 董奉篇(동봉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杏林春暖(행림춘난) 행림에 봄이 따뜻하다 | 譽滿杏林(예만행림) 행림에 명예가 가득하다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投筆從戎 (투필종융)

投筆從戎(투필종융)

投 던질 투, 머무를 두 | 筆 붓 필 | 從 좇을 종 | 戎 병장기 융, 오랑캐 융 |

붓을 던지고 창을 쫓는다는 뜻으로, 학문(學問)을 포기(抛棄)하고 전쟁터(戰爭-)로 나아감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중국의 한(漢)나라 때 반초(班超)의 고사(故事)에서 유래

동한(東漢) 초, 반고(班固)와 반초(班超) 형제가 있었다. 반고(班固)는 한서(漢書)를 편찬하였고, 반초는 그의 동생이다.

반초는 큰 뜻을 품고 있어 사소한 일에는 개의치 않았으나, 속으로는 효성스럽고 근신하는 인물이었다. 집에 있을 때는 항상 근면하였으며, 힘든 노동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또 언변이 뛰어났고, 여러 서적을 두루 섭렵하였다. 그의 형 반고가 교서랑(校書郞)에 임명되어 어머니와 함께 낙양(洛陽)에으로 이주하였으나, 집안은 여전히 가난하여 관청에서 문서를 베껴 주는 일을 하여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당시 북방의 흉노들은 끊임없이 한나라의 북쪽 변경을 침입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반초는 관청에서 문서를 베껴 쓰는 일을 하다가 문득 붓을 던져 버리고 탄식하며 말하기를(嘗輟業投筆嘆曰) "대장부로서 지략이 없다면 마땅히 부개자(傅介子)와 장건(張騫)을 본받아 이역(異域)에서 공을 세워 봉후(封侯)의 자리를 얻어야지 어찌 붓과 벼루 사이에서 오래 지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부개자와 장건은 모두 서역(西域)에 출사하여 공을 세운 사람들이다. 주위에 있던 동료들이 그의 말을 비웃자 반초는 "소인배가 어찌 장사(壯士)의 뜻을 알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이후 반초는 31년 동안이나 서역에 머물면서 흉노의 지배를 받던 서역 국가들을 정복하는 등 한나라의 세력을 확장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 고사는 《후한서(後漢書)》의 반초전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투필종융은 문인 또는 학자가 글쓰기나 학문을 포기하고 종군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반초(班超)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기필종융(棄筆從戎)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七步成詩 (칠보성시)

七步成詩(칠보성시)

七 일곱 칠 | 步 걸음 보 | 成 이룰 성 | 詩 시 시 |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文學)편에는 위(魏) 문제(文帝)인 조비(曹丕)와 그의 동생인 동아왕(東阿王) 조식(曹植) 간에 일어난 고사가 실려 있다.

문제는 동아왕에게 일곱 걸음을 떼는 사이에 시를 지으라고 하면서(文帝嘗令東阿王七步作詩), 못지을 경우에는 국법으로 다스리겠다고 하였다. 동아왕은 대답을 마치자 마자 한 수의 시를 지었다.

콩을 삶아 콩국을 끓이고 콩물을 짜서 즙을 만드네. 콩깍지는 솥 아래서 불에 타고 콩은 솥 안에서 눈물짓네. 본시 같은 뿌리에서 생겨났건만 서로 지저댐이 어찌 이리도 급할까!

문제는 조식의 이 시를 듣고 몹시 부끄러웠다고 한다.

조조(曹操)와 그의 큰 아들인 조비, 셋째 아들인 조식은 중국 문학에서 삼조(三曹)라 칭하는 유명한 문장가들이다. 이들 중 조식의 시재(詩才)가 특히 뛰어났기 때문에, 조비는 천자(天子)가 된 후에도 조식에 대한 시기심이 변하지 않았다.

조비는 조식이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그를 죽일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어서 이러한 시를 짓게 했던 것이다. 七步成詩는 문재(文才)가 민첩함 을 말하며, 칠보재(七步才)란 글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七步才(칠보재) | 七步之才(칠보지재) |

債臺高築 (채대고축)

債臺高築(채대고축)

債 빚 채 | 臺 돈대 대 | 高 높을 고 | 築 쌓을 축 |

債臺高築이란 빚이 너무 많아 갚을 방법이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한서(漢書) 제후왕표서(諸侯王表序)의 이야기. 전국시대, 주(周)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난왕(周 王)은 나약하고 무능한 사람이었다. 명목상 군주의 자리에 있었지만 각 제후들은 그의 통치에 따르지 않았다. 그들 중 진(秦)나라는 국력이 강해지자 자주 다른 나라를 침공하였으며, 초(楚)나라 효열왕(孝烈王)은 각국과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였다. 그는 주나라의 난왕에게 진나라를 공격할 것을 요구했다.

주난왕은 전쟁이 끝나면 이자까지 갚겠다고 설득하며 부호(富豪)들에게서 돈을 빌려 출전(出戰)하였다. 그러나 전쟁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하게 되자, 돈을 빌려줬던 부호들이 궁으로 몰려와 난왕에게 빚을 갚을 것을 요구했다. 소란스런 소리가 궁궐 깊은 곳까지 들려왔다. 주난왕은 빚쟁이들을 피해, 하루종일 궁안의 높은 누대에 숨어서 근심과 두려움으로 지냈다[有逃債之臺].

滄浪之水淸兮可以濯吾纓 (창랑지수청혜가이탁오영)

滄浪之水淸兮可以濯吾纓(창랑지수청혜가이탁오영)

滄 푸를 창 | 浪 물결 랑 | 之 갈 지 | 水 물 수 | 淸 맑을 청 | 兮 어조사 혜 | 可 가할 가 | 以 써 이 | 濯 씻을 탁 | 吾 나 오 | 纓 갓끈 영 |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는다.

이 말은 ≪楚辭(초사)≫ 漁父辭(어부사)에 나온다.

초나라 忠臣(충신) 屈原(굴원)이 간신의 모함을 입고 벼슬에서 쫓겨나와 강가를 거닐며 憔悴(초췌)한 모습으로 시를 읊고 있는데 고기잡이 영감이 배를 저어 지나다가 그가 굴원인 것을 알고, 어찌하여 이 꼴이 되었느냐면서 안타까워 까닭을 물었다. 굴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온 세상이 흐려 있는데 나만이 홀로 맑고 뭇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이 홀로 깨어 있다. 그래서 쫓겨난 것이다[擧世皆濁 我獨法 衆人皆濁 我獨醒(거세개탁 아독법 중인개탁 아독성)].”

어부는 굴원의 처신에 대해 오히려 꾸중을 했다. 굴원은 말했다.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을 털고 새로 몸을 씻은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턴다[新沐者 必彈冠 新浴者 必振衣(신목자 필탄관 신욕자 필진의)].”

굴원은 차라리 강에 빠져 물고기 배 속에 장사를 지내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 깨끗한 몸으로 세상의 먼지를 쓸 수 있느냐고 했다. 어부가 노래를 불러 화답했다.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고[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창랑지수청혜가이탁오영)]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濁兮可以濯吾足(창랑지수탁혜가이탁오족)]” 세상이 맑으면 맑게 맞춰 살고 세상이 흐리면 흐리게 살라는 말이었다. 淸濁自適(청탁자적)의 생활을 권한 것이다.

‘淸斯濯纓濁斯濯足(청사탁영탁사탁족)’이라고도 한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擧世皆濁(거세개탁) |

捉襟見肘 (착금현주)

捉襟見肘(착금현주)

捉 잡을 착 | 襟 옷깃 금 | 見 볼 견, 드러날 현 | 肘 팔꿈치 주 |

'옷깃을 여미면 팔꿈치가 드러난다'라는 뜻으로, 생활이 곤궁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장자(莊子)'에 실린 증자(曾子)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Tightening the lapel of the jacket, one exposed the elbow

장자 양왕(讓王)편의 이야기. 증자(曾子)가 위(衛)나라에 살고 있을 때, 그의 솜옷은 다 낡아서 껍데기가 없었으며, 그의 얼굴은 퉁퉁 부어 종기가 곪아 터졌으며, 손발은 트고 갈라져 있었다. 그의 집은 사흘 동안이나 불을 때지 못했으며, 십 년이 넘도록 옷 한 벌을 변변히 지어 입지 못했다. 갓을 쓰려고 하면 갓끈이 끊어지고, 옷깃을 여미려 하면 팔꿈치가 나오고, 신을 신으려 하면 뒤꿈치가 터져 버리는 형편이었다.[正冠而纓絶, 捉襟而肘見, 納履而踵決]

하지만 그가 신발을 끌면서 시경의 상송(商頌)편을 읊으면, 그 소리는 사방에 가득차며 마치 금석(金石)의 악기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증자는 빈한하였지만 천자도 그를 신하로 삼을 수 없었고, 제후도 그를 벗으로 삼을 수 없었다.

이 고사는 《장자》의 '양왕(讓王)'편에 실려 있다. 《한시외전(韓詩外傳)》과 《신서(新序)》에는 이와 비슷한 내용이 역시 공자의 제자인 원헌(原憲)의 고사로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착금현주는 초라한 차림새나 제몸에 맞는 옷을 입을 형편이 못될 정도로 생활이 곤궁한 상태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襟은 衿으로도 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捉襟見肘(착금현주) | 捉衿見肘(착금현주) |

集思廣益 (집사광익)

集思廣益(집사광익)

集 모을 집 | 思 생각 사 | 廣 넓을 광 | 益 더할 익 |

생각을 모아 이익을 더한다.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면 더 큰 효과와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삼국시대 촉(蜀)나라의 제갈량(諸葛亮)이 쓴 글에서 유래되었다.


제갈량은 신기묘산(神奇妙算)의 지략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나랏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그는 촉나라의 승상이 된 뒤에 '교여군사장사참군연속'이라는 글을 수하들에게 전하여 널리 의견을 구하는 방침을 밝히고 협조를 당부하였다.

"무릇 관직에 참여한 사람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나라의 이익을 넓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夫參署者, 集衆思廣忠益也). 조금이라도 미움을 받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의견을 말하기를 멀리하고, 서로 의견이 엇갈리게 될까 걱정하여 말하기를 어려워한다면 큰 손실을 입는 것이다.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얻는 것이 있으니, 병폐를 버리고 주옥을 얻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하기 어렵거늘, 오직 서서(徐庶)만은 하는 일마다 미혹됨이 없었다. 또 동화(童和)도 7년 동안 일하면서 생각이 다른 경우에는 열 번이라도 와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였다. 진실로 서서의 10분의 1이라도 본받고, 동화의 은근함을 본받아 나라에 충성을 다한다면 나의 잘못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내용은 《삼국지(三國志)》촉지(蜀志)의 동화전(董和傳)과 《자치통감(資治通鑑)》의 위기(魏紀)에도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집사광익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유익한 점을 취하면 더 큰 효과와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三國志(삼국지)

中原逐鹿 (중원축록)

中原逐鹿(중원축록)

中 가운데 중 | 原 근원 원 | 逐 쫓을 축 | 鹿 사슴 록 |

한서(漢書) 괴오강식부(蒯伍江息夫)전과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열전의 이야기. 한나라 유방(劉邦)은 한신(韓信)의 도움으로 많은 승리를 거두게 되자, 한신을 제왕(齊王)으로 봉하였다. 당시 한신의 모사(謀士)로 있던 괴통(蒯通)은 한신에게 제위(帝位)를 차지하도록 종용하였다.

훗날, 모반죄로 처형되기 전, 한신은 내가 괴통의 말을 듣지 않아 오늘 이런 꼴을 당하게 되었도다라며 탄식하였다. 이 말에 유방은 즉시 괴통을 붙잡아 사형에 처하려 했다. 괴통은 일이 이미 이렇게 된 것을 보고 침착하게 말했다.

개는 그 주인을 따르는 법입니다. 당시 저는 한신만을 알았지, 폐하를 알지 못했습니다. 진나라가 중원에서 사슴을 놓치자 천하 사람들은 모두 이를 잡으려 하였는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먼저 천하를 차지하였던 것입니다[秦失其鹿, 天下共逐之. 高材者先得]. 폐하와 다투던 자들이 모두 실패한 이 마당에 어찌 한신을 두려워 하십니까?

酒囊飯袋 (주낭반대)

酒囊飯袋(주낭반대)

酒 술 주 | 囊 주머니 낭 | 飯 밥 반 | 袋 자루 대 |

송(宋)나라 증조(曾 )의 유설(類說)에 나오는 이야기. 중국의 오대십국(五代十國) 시기, 마은(馬殷)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는 목공일을 하였으나, 군에 입대한 후에는 손유(孫儒)라는 장수를 따라 양주(揚州)로 들어갔다. 그후, 유건봉(劉建峰)이라는 장군을 수행하여 담주(潭州)로 옮겨갔다. 훗날 유건종이 부하에게 피살되자, 마은은 곧 우두머리로 추대되었다. 그후 당(唐)나라 때에 마은은 담주 자사(刺史)로 임명되었다.

서기 907년, 대장군 주온(朱溫)이 스스로 황제라 칭하게 되자, 마은은 다시 초왕(楚王)으로 책봉되었다. 마은의 영향으로 그의 친척들도 모두 큰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마은은 향락 만을 알았지 문무(文武) 따위는 조금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일러 술 주머니에 밥 자루[時謂之酒囊飯袋]라고 하며 얕보았다.

酒囊飯袋란 먹고 마실줄만 알지 일할 줄을 모르는 쓸모없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助長 (조장)

助長(조장)

助 도울 조 | 長 길 장 |

孟子 '공손추(公孫丑)' 상편에는 공손추와 맹자의 문답이 실려 있다.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설명하고 나서, 순리(順理)와 의기(義氣)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송(宋)나라의 한 농부의 조급한 행동을 예로 들었다.

그 농부는 자기가 심은 곡식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그 싹들은 뽑아 올렸으나, 그 싹들은 모두 말라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무리해서라도 잘 되게 하려고 했던 농부의 행동은 오히려 무익(無益)의 정도를 넘어서 해악(害惡)이 되었던 것이다.

맹자는 이 이야기 끝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천하에 싹이 자라도록 돕지 않은 사람을 드물다[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 아무 이익이 없다고 하여 내버려두는 사람은 김을 매지 않는 자이고, 자라도록 돕는 사람[助之長者]은 싹을 뽑아 올리는 사람이니, 이는 무익할 뿐 아니라 도리어 그 것을 해치는 것이다.

助長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도와서 성장시키다라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쓸데없는 일을 해서 일을 모두 망쳐버리다라는 부정적 의미가 훨씬 강하다.


출전

孟子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拔苗助長(발묘조장) | 助長(조장) |

井中之蛙 (정중지와, jǐngzhōngzhīwā)

井中之蛙(정중지와)

井中之蛙(jǐng zhōng zhī wā)

井 우물 정 | 中 가운데 중 | 之 갈 지 | 蛙 개구리 와


우물 안 개구리라는 뜻으로, 식견이 좁음의 비유.


왕망이 전한을 멸하고 세운 신나라 말경, 마원이란 인재가 있었다. 그는 관리가 된 세형과는 달리 고향에서 조상의 묘를 지키다가 농서(감숙성)에 웅거하는 외효의 부하가 되었다.

그 무렵, 공손술은 촉땅에 성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참칭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외효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해 마원을 보냈다. 마원은 고향 친구인 공손술이 반가이 맞아 주리라 믿고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공손술은 계단 아래 무장한 군사들을 도열시켜 놓고 위압적인 자세로 마원을 맞았다. 그리고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옛 우정을 생각해서 자네를 장군에 임명할까 하는데, 어떤가?"

마원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천하의 자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는데 공손술은 예를 다하여 천하의 인재를 맞으려 하지 않고 허세만 부리고 있구나. 이런자가 어찌 천하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마원은 서둘러 돌아와서 외효에게 고했다.

"공손술은 좁은 촉 땅에서 으스대는 재주밖에 없는 '우물안 개구리[정중지와]'였습니다."

그래서 외효는 공손술과 손잡을 생각을 버리고 훗날 후한의 시조가 된 광무제와 수호하게 되었다.

'정중지와'란 말은 [장자] '추수편'에도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황하의 신(神) 하백(河伯)은 가을 홍수로 황하의 물이 불어나자 기뻐하며 천하의 훌륭함이 모두 자기에게 모여있다고 생각하였다. 물을 따라 동해의 북쪽 바다에 이르자 하백은 바다의 위세에 눌려 한숨을 지었다. 그러자 북해의 해신인 약(若)이 하백에게 말했다.

"'우물안 개구리'가 바다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구애되기 때문이고[井蛙不可以語於虛也, 拘於虛也], 여름 벌레가 얼음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여름 한철 밖에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일밖에 모르는 사람과 도에 대해 말 할 수 없는것은 자기가 배운 것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은 대해를 보고 비로소 자신의 꼴불견을 깨달았으니, 이제는 대도의 이치를 말할 수 있습니다."

[출전]
후한서:마수전, 장자:추수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坐井觀天(좌정관천) | 井中之蛙(정중지와) | 井中蛙(정중와) | 井中視星(정중시성) | 井中觀天(정중관천) | 井底蛙(정저와) | 夜郞自大(야랑자대) | 坎中之蛙(감중지와) | 井底之蛙(정저지와) | 井蛙不知大海(정와부지대해) |

유사어

촉견폐일 | 월견폐설 |

참조어

望洋之歎(망양지탄) | 득롱망촉 |

爭先恐後 (쟁선공후)

爭先恐後(쟁선공후)

爭 다툴 쟁 | 先 먼저 선 | 恐 두려워할 공 | 後 뒤 후 |

爭先恐後란 격렬한 경쟁의 모습을 뜻한다.

한비자(韓非子) 유로(喩老)편의 이야기. 춘추시기, 진(晋)나라에는 왕자기(王子期)라는 유명한 마부가 있었다. 조(趙)나라의 대부 양주(襄主)는 왕자기에게서 말 부리는 기술을 배우고, 그와 마차 달리기 시합을 했다. 그러나 양주는 세 번이나 말을 바꾸었지만 모두 지고 말았다. 몹시 불만스런 표정의 양주에게 왕자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을 제어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의 몸과 수레가 일치되어야 하고, 또 부리는 사람과 말의 마음이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부께서는 저를 앞지르고자 초조해 하고, 또 앞서 달릴 때에는 제가 뒤쫓아오지나 않을까 하여 걱정하셨습니다[君後則欲逮臣, 先則恐捷于臣]. 대부께서는 앞서든지 뒤서든지간에 내내 저에게 마음을 쓰고 계시니, 어떻게 잘 달릴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대부께서 저에게 뒤처진 까닭입니다.

長江後浪推前浪 (장강후랑추전랑)

長江後浪推前浪(장강후랑추전랑)

長 길 장 | 江 강 강 | 後 뒤 후 | 浪 파도 랑 | 推 밀 추 | 前 앞 전 | 浪 파도 랑 |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듯, 한 시대의 새사람으로 옛사람을 교체한다는 뜻.

明代의 증광현문(增廣賢文)에 나오는 말.

長江後浪推前浪, 一代新人換舊人


長江(장강)은 6300km에 이르는 중국에서 가장 긴 강으로 중국인이 ‘창장’이라 말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揚子江(양자강)은 고대 揚(양)나라 지역에 해당하는 하류 일대의 장강을 이르는 말로, 주로 유럽에서 사용한 이름이다. 江(강) 자체가 원래는 이 장강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였다.

浪(랑)은 파도 또는 물결이다. 浪花(낭화)는 물결에 부딪쳐 생기는 물방울과 거품이다. 삼가지 않다 또는 헛되다라는 뜻도 있다. 浪費(낭비)는 헛되이 씀, 浪說(낭설)은 터무니없는 헛소리이다.

推(추)의 본뜻은 손으로 미는 것이다. 推薦(추천)처럼 밀어 올리다, 推理(추리)처럼 미루어 헤아리다, 推仰(추앙)처럼 높이 받들다의 뜻이 있다. 옮아 가다의 뜻도 있으니, 推移(추이)는 변화하거나 이동함을 뜻한다. 밀어서 열거나 밀쳐내는 등 구체적인 동작일 때는 흔히 ‘퇴’로 읽는다. 推敲(퇴고)는 글의 자구를 다듬어 고치는 일을 가리키는데, 민다는 推(퇴)와 두드린다는 敲(고)의 글자 선택을 고심한 데서 유래했다.

換(환)은 交換(교환)처럼 맞바꾸다 또는 轉換(전환)처럼 교체하거나 변경하다의 뜻이다. 換骨奪胎(환골탈태)는 뼈를 바꾸고 胎(태)를 빼앗는다는 말로, 원래는 남의 글을 본뜨되 흔적을 남기지 않고 매우 새롭게 함을 비유하며, 좋은 방향으로 아주 많이 달라짐을 비유하기도 한다.

舊(구)는 옛것이나 오래된 것을 가리킨다.

새 물결이 앞의 물결을 밀어내듯이 그 물결도 다시 뒤에 오는 물결에 밀려나기 마련이다. 내일이 오늘이 되고 다시 어제가 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앞사람이 그랬듯이 뒷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가 또 그 뒷사람에게 넘길 것이다. 몹시도 공평하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닌가. 明(명) ‘增廣賢文(증광현문)’에 보인다.

以火救火 (이화구화)

以火救火(이화구화)

以 -로써 이 | 火 불 화 | 救 건질 구 | 火 불 화 |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방법을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을 비유한 말.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에는 공자(孔子)와 그의 제자인 안회(顔回)의 대화가 실려 있다.

안회는 위(衛)나라로 떠나기에 앞서 스승에게 작별을 고하였다.

위나라 국왕은 제멋대로 독재를 한다고 합니다. 국권을 남용하고, 백성들 가운데는 죽은 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전에 선생님으로부터 잘 다스려지는 나라에서는 떠나고, 어지러운 나라로 가라. 의사 집에 환자가 많이 모이기 마련이다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저는 이에 따르려는 것입니다.

이에 공자는 대답했다.

위나라 왕이 어진 이를 반기고 어리석은 자를 싫어한다면, 어찌 너를 써서 다른 일을 하겠느냐? 그는 왕의 권세로 너를 누르며 능숙한 말솜씨로 이기려고 덤벼들 것이니, 이는 불을 끄려고 불을 더하고 물을 막으려고 물을 붓는 일과 같다[是以火救火, 以水救水].

一葉知秋 (일엽지추)

一葉知秋(일엽지추)

一 한 일 | 葉 잎 엽 | 知 알 지 | 秋 가을 추 |

회남자 설산훈(說山訓)에는 하나의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 해가 장차 저물려는 것을 알고(見一落葉而知歲之將暮), 병 속의 얼음을 보고 천하에 추위가 닥쳐옴을 아는 것은 가까운 것으로써 먼 것을 논한 것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당나라 한 시인의 시(詩)에는 떨어지는 잎새 하나로 천하가 가을임을 알다(一落葉知天下秋). 라는 구절이 보인다.

一葉知秋는 하나의 낙엽을 보고 곧 가을이 왔음을 알다라는 뜻이다. 이는 사소한 것으로써 큰 것을 알며, 부분적인 현상으로써 사물의 본질이나 전체, 발전 추세 등을 미뤄 알게 된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一葉知秋와 유사한 표현으로는 以偏槪全(이편개전), 즉 반쪽으로써 전체를 짐작하다라는 말이 있다.

耳視目聽 (이시목청)

耳視目聽(이시목청)

耳 귀 이, 팔대째 손자 잉 | 視 볼 시 | 目 눈 목 | 聽 들을 청 |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다는 뜻으로, 눈치가 매우 빠른 사람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열자(列子) 중니(仲尼)편에 실린 이야기다.

진(陳)나라의 대부(大夫)가 노(魯)나라에 초빙되어 숙손씨(叔孫氏)를 만났다. 숙손씨가 노나라에는 공자(孔子)라는 성인(聖人)이 있다고 말하자, 진나라 대부는 자기 나라에도 성인이 있다고 하였다. 숙손씨가 누구냐고 묻자, 대부는 "노담(老聃:노자)의 제자인 항창자(亢倉子)인데, 노담의 도를 체득하여 귀로 보고 눈으로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老聃之弟子有亢倉子者, 得聃之道, 能以耳視而目聽]"라고 대답하였다.

이러한 소문을 전해들은 노(魯)나라의 군주는 상경(上卿)의 예(禮)로써 그를 초빙하여, 겸손한 말로 그러한 능력이 사실인지를 물었다. 이에 항창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런 소문은 전한 사람들의 망발입니다. 도가(道家)의 수련에서 눈과 귀를 쓰지 않고도 소리를 듣거나 물체를 볼 수는 있지만 귀와 눈의 기능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제가 눈을 쓰지 않고 귀로 물체를 본다는 것과 귀를 쓰지 않고 눈으로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가장된 것이오니, 이를 사실로 믿지마십시오. [我能視聽不用耳目 不能易耳目之用(아능시청불용이목 불능역이목지용)]

노나라 임금이 더 이상히 여겨 그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이에 항창자는 몸이 마음과 합하고, 마음이 기운과 합하고, 기운이 정신과 합하고, 정신이 무(無)와 합하는 수양을 쌓으면 감각작용이나 지각작용에 의하지 않고서도 자연히 알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耳視目聽은 본시 도가수련의 한 단계로서 눈과 귀의 도움없이 정신만으로도 보고 듣는 것이 가능하게 된 상태를 말한다. 耳視 란 직접 보지 않고 소문을 들어서 알아차림을 뜻하고, 目聽이란 직접 듣지 않고 표정을 보고 알아차림을 뜻하니, 耳視目聽이란 사람의 눈치가 매우 빠름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열자(列子)의 중니편(仲尼篇) |


관련 한자어

참조어

목식이시(目食耳視) |

移木之信 (이목지신)

移木之信(이목지신)

移 옮길 이 | 木 나무 목 | 之 의 지 | 信 믿을 신 |

위정자(爲政者)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百姓)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①신용(信用)을 지킴을 이르는 말 ②남을 속이지 아니함


진(秦)나라의 효공(孝公) 때에 상앙(商鞅)이라는 재상(宰相)이 있었다.

상앙(商鞅)은 전국 시대 진(秦)나라의 명재상이었으며,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한 사람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위(衛)나라의 공족(公族) 출신이었으며, 법률에 밝았는데 특히 법치주의(法治主義)를 바탕으로 한 부국강병책(富國强兵策)을 펴 천하통일(統一天下)의 기틀을 마련했다.

상앙은 법치주의자답게 법의 제정이나 시행에 매우 신중한 면모를 보였는데, 한번은 법을 제정해 놓고도 얼른 시행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효공이 그 까닭을 묻자, 상앙은 이렇게 대답했다.

“법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백성들이 조정을 믿고 잘 따라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못하여 사람들이 그 법을 우습게 알거나 잘 모르거나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면 백성들의 관심을 끌어 모을 수 있을까, 그것을 신중히 생각하는 중입니다.”

상앙은 그런 이유로 고심하던 나머지 하나의 계책(計策)을 생각해 냈다. 다음날, 도성 남문 근처에는 높이가 석 장[三丈(삼장)]에 이르는 커다란 나무 기둥 하나가 세워졌다. 그리고 옆에는 다음과 같은 방이 붙었다.

누구든지 이 기둥을 북문으로 옮겨 놓는 사람한테 십 금(十金)을 주겠노라.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고, 아무도 선뜻 나서서 옮기려고 하지 않았다. 우선 나무가 크고 무거워 보이기도 했거니와, 그것을 옮긴다고 해서 상금을 틀림없이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반응을 지켜 본 상앙은 다음날에는 상금을 올려서 방을 바꾸어 붙였다.

이 기둥을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한테 오십 금(五十金)을 주겠노라.

이번에는 사람들의 반응이 달랐다. 상금이 상당히 많이 붙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운께나 쓰는 사람 하나가 달려들어 나무 기둥을 둘러매고는 낑낑대며 북문까지 옮겨 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호기심에 차서 그 뒤를 줄레줄레 따라갔다. 마침내 나무 기둥이 북문에 도착하자, 상앙은 약속대로 그 남자에게 오십 금을 내주었다.

그런 다음 드디어 법령을 공포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조정이 약속한 바는 틀림없이 지켜진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 법에 대해서는 상당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조문의 내용들이 너무 엄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행 일 년 동안에 새 법령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사람이 1천 명을 넘었다.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법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따라야만 하겠구나.’

상앙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마침 태자가 그 법을 어겼다. 상앙은 옳다구나 하고, 법에 따라 태자의 태부(太傅)를 참형에 처하는 한편 태사(太師)는 칼로 이마를 째어 글자를 새기는 경형(鯨刑)에 처했다. 이러한 처벌을 본 백성들은 겁이 덜컥 나서 법을 잘 지키게 되었다.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나자 백성들은 법에 익숙해져 오히려 만족스러워했고, 남의 물건이면 길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았으며, 도적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뿐만 아니라 강력한 제도의 지원 덕분에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한결 윤택해졌다.


출전

사기(史記)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徙木之信(사목지신) | 移木之信(이목지신) |

반의어·상대어

食言(식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