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昏定晨省 (혼정신성)

昏定晨省(혼정신성)

昏定晨省(hūndìngchénxǐng)

昏 어두울 혼, 힘쓸 민 | 定 정할 정, 이마 정 | 晨 새벽 신 | 省 살필 성, 덜 생 |

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問安)을 드린다는 뜻으로, 자식(子息)이 아침저녁으로 부모(父母)의 안부(安否)를 물어서 살핌을 이르는 말


《예기(禮記)》의 '곡례편(曲禮篇)'에 나오는 말로 ‘밤에 잘 때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 안녕하시기를 여쭙는다.’는 뜻의 ‘혼정(昏定)’과 ‘아침 일찍 일어나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의 안후(安候)를 살핀다.’는 뜻의 ‘신성(晨省)’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부모에 대한 공경을 바탕으로 한 행위가 곧 효, 또는 효행이다. 이 효사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륜의 가장 으뜸되는 덕목으로 중시되었다. 즉 ‘효는 백행지본(百行之本)’이라 하여 부모를 봉양하고, 공경하며, 복종하고, 조상에게 봉제사(奉祭祀)하는 일이 의무화되면서 효사상이 사회규범으로 굳어졌다.

공자는 이러한 효에 대해 그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제시하여 확고히 정착시켰다. 이 유교적인 효사상은 맹자에 와서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의무가 더욱 강조되었고, 한대(漢代)에 이르러 《효경(孝經)》에서 도덕의 근원, 우주의 원리로서 명문화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효사상이 가장 중요한 도덕규범으로 정착되자 자연히 효에 대한 행동상의 규범도 많아지게 되었다. 일종의 구체적인 실천방법으로, 먼저 부모를 대하는 얼굴가짐을 중시했다. 늘 부드러운 얼굴빛으로 부모를 섬겨 편안하게 해드려야 한다는 것으로,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 하여 ‘색난(色難)’이라 하였다. 또 부모의 잘못을 보면 간언은 하되 뜻은 거역하지 않으며, 살아 계실 때에는 정성으로 모시고 돌아가시면 3년간 부모의 평소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고 지켜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평소 일상생활 중에서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를테면 저녁에는 잠자리가 어떤지 직접 손을 넣어 확인해보고 아침에는 간밤에 잘 주무셨는지 여쭌 다음 부모의 안색을 주의깊게 살폈으니, 이것이 바로 ‘혼정신성’으로 부모를 모시는 기본 도리였던 것이다.

이 말은 겨울에는 따뜻하게[溫] 여름에는시원하게[淸] 해드리고, 밤에는 이부자리를 펴고[定] 아침에는 문안을 드린다[省]는 뜻의 '온청정성(溫淸定省)'이란 말과 뜻이 통한다. 또 부모를 섬기기는 데,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서늘하게 한다는 뜻의 '동온하청(冬溫夏凊)'이라는 말도 모두 《예기》에 나오는 말로서 그 뜻이 서로 통하는 말이다.

[출전]
예기(禮記)

그 외에 出必告 反必面(출필곡 반필면)이란 말도 있다. 밖으로 나갈 때에는 반드시 부모에게 가는 곳을 아뢰고 밖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반드시 부모를 뵙고 歸家(귀가)했음을 알린다는 뜻이다.

이런 행위는 孝(효)이전에 부모에 대한 예의의 기본이었다. 이것이 지금은 뒤집어져 있다. 밤늦게 혹은 새벽까지 이제나 저제나 하고 자식을 기다리느라 잠을 설치는 부모가 많다. 늦은 사유를 전화로라도 전해왔다면 그렇게 애타하지는 않는다.

세상은 변하고 價値觀(가치관)도 바뀐다. 어제의 正(정)이 오늘은 反(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부모에 대한 孝만큼은 절대로 뒤집을 수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 孝는 모든 행실의 근원이며 仁(인)을 행하는 근본이라고 先賢(선현)들은 입을 모아 가르쳐 왔다. 退溪 李滉(퇴계 이황)도 孝는 모든 善(선)의 으뜸이라고 했다.

人口(인구)에 膾炙(회자)되어온 효심을 담은 시 하나를 읊어보자.

父兮生我 母兮鞠我 (부혜생아 모혜국아)
哀哀父母 生我구勞 (애애부모 생아구로)
欲報之德 昊天罔極 (욕보지덕 호천망극)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시도다
어버이여 나를 낳고 기르느라 애쓰셨도다
그 은덕 갚고자 하건만 하늘 같아 다함이 없도다.

이 시는 明心寶鑑(명심보감) 孝行篇(효행편)에 나오지만 일찍이 공자가 엮은 詩經(시경)에 실려 있는 6개 시구를 재구성해 만든것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冬溫夏凊昏定晨省(동온하정혼정신성) | 出必告反必面(출필고반필면) | 朝夕定省(조석정성) | 定省(정성) | 反哺之孝(반포지효) | 反哺報恩(반포보은) |

解衣推食 (해의추식)

解衣推食(해의추식)

解衣推食 [jiěyītuīshí]

解 풀 해 | 衣 옷 의 | 推 옮을 추, 밀 추, 밀 퇴 | 食 밥 식, 먹을 식, 먹이 사, 사람 이름 이 |

옷을 벗어주고 음식(飮食)을 밀어준다라는 뜻으로, 남에게 은혜(恩惠)를 베푸는 것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열전의 이야기.

한신(韓信)은 본시 초나라 항우(項羽) 밑에서 말단 군관을 지냈으나, 항우가 자신을 크게 써주지 않자 유방(劉邦)에게 귀순하였다. 유방은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를 대장으로 임명하였다. 한신이 군대를 이끌고 제(齊)나라를 공격했을 때, 제나라는 초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항우는 부하 장수 용저(龍且)에게 20만 대군을 이끌고 제나라를 돕게 하였다. 그러나 한신은 초나라 군대를 대파하고 제왕(齊王)에 봉하여졌다. 한신의 능력에 두려움을 느낀 항우는 무섭(武涉)이라는 세객(說客)을 보내어 한신으로 하여금 한나라로부터 독립하여 초·한·제의 세 나라로 천하를 삼분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자 한신은 그의 말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과거 내가 내가 항왕(항우)을 섬길 때는 낭중(郞中)에 불과하여 창을 들고 문지기 노릇을 하였소. 내 계책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므로 초나라를 배반하고 한나라에 귀순한 것이오. 이제 한왕(유방)은 내게 장군의 인수(印綬)를 내리고 수만의 병력을 맡겼으며, 자기 옷을 벗어 내게 입혀 주고 자기 밥을 나누어 주었으며, 내 계책을 받아들였으므로 내가 여기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이오[漢王授我上將軍印, 予我數萬衆, 解衣衣我, 推食食我, 言聽計用, 故吾得以至於此]. 무릇 남이 나를 깊이 신뢰하는데 내가 그를 배신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니 설령 죽더라도 뜻을 바꿀 수는 없소."

여기서 유래하여 해의추식은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을 벗어 주고, 자기 밥을 나누어 줄 정도로 다른 사람을 각별히 친절하게 대하거나 돌보아 주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추식해의(推食解衣)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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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白骨難忘 (백골난망)

白骨難忘(백골난망)

백골이 되어도 잊지 못한다는 뜻이니 잊을 수 없는 큰 은혜를 입었다는 말.


은혜

結草報恩 (결초보은)

結草報恩(결초보은)

结草报恩(jiécǎobàoēn)。

結 맺을 결, 상투 계 | 草 풀 초 | 報 갚을 보, 알릴 보 | 恩 은혜 은 |

풀을 묶어서 은혜(恩惠)를 갚는다라는 뜻으로, ①죽어 혼이 되더라도 입은 은혜(恩惠)를 잊지 않고 갚음 ②무슨 짓을 하여서든지 잊지 않고 은혜(恩惠)에 보답(報答)함 ③남의 은혜(恩惠)를 받고도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사람에게 개만도 못하다고 하는 말


춘추시대 진(晉)나라에 魏武(위무)라는 사람이 어느날 위무자가 큰 병으로 몸져눕게 되었다. 아직 제정신일 때 그는 아들 魏顆(위과)에게 일러 말했다.

"내가 죽으면 이 첩을 다른 사람에게 개가를 시켜라."

그러나 위무자가 숨이 넘어갈 지경에 이르자 처음과 달리 유언하였다.

"내가 죽으면 저 여인은 순장을 시켜라."

위무자가 세상을 드디어 떠나자 아들은 아버지의 뒤에 한 유언을 정신이 혼미할 때 한 것이라고 판단하여 정신이 있을 때의 명령(命令)을 따라서 서모(庶母)를 개가시켜 순사(殉死)를 면하게 했다.

그후 진나라(秦)가 위무자의 아들 위과(魏顆)가 장수로 있던 진나라(晉)를 침략하자 위과는 진(秦)의 장수 두회(杜回)와 맞붙어 싸우게 되었다.

위과가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두회가 풀에 걸려 넘어져 위과가 두회를 사로잡아 뜻밖에도 큰 전공을 세울 수가 있었다. 그날밤, 위과의 꿈 속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말을 하는데 그는 서모의 아버지의 망혼이었다.

"나는 그대가 출가시켜 준 여인의 아비요. 그대는 아버님이 옳은 정신일 때의 유언에 따라 내 딸을 출가시켜 주었소. 그 때 이후로 나는 그대에게 보답할 길을 찾았는데 이제야 그 은혜를 갚은 것이오."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 십오년조(宣公 十五年條)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刻骨難忘(각골난망) | 結草(결초) | 難忘之恩(난망지은) | 難忘之澤(난망지택) | 白骨難忘(백골난망)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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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4급 사자성어 |

刻骨難忘 (각골난망)

刻骨難忘 (각골난망)

뼈에 새겨질 만큼 잊기 어렵다. 커다란 은혜를 입은 것을 잊지 않고 있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