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抛塼引玉 (포전인옥, pāozhuānyǐnyù)

抛塼引玉(포전인옥)

抛砖引玉(pāozhuānyǐnyù)

抛 던질 포 | 塼 벽돌 전 | 引 끌 인 | 玉 구슬 옥 |


三十六計(삼십육계) 攻戰計(공전계) 제17계. '벽돌을 버리고 옥을 얻다'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고견이나 훌륭한 작품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자신이 먼저 미숙한 의견이나 작품을 발표한다고 겸손을 표하는 고사성어이다.

To cast a brick to attract jade—offer a few commonplace remarks by way of introduction so that others may come up with valuable opinions

抛出廉价的砖,引来珍贵的玉。比喻说出自己粗浅的意见引出别人的高论(多用作谦词)。

借屍還魂 (차시환혼, jièshīhuánhún)

借屍還魂(차시환혼)

借尸还魂(jièshīhuánhún)

借 빌 차,빌릴 차,의지할 자 | 屍 시동 시,주검 시 | 還 돌아올 환,돌 선 | 魂 넋 혼 |


三十六計 攻戰計 第十四計 借屍還魂(차시환혼). 죽은 사람의 혼이 다른 사람의 시체를 빌어 부활하다. 이미 몰락하거나 소멸되었던 사상·세력·사물 등이 새로운 명목이나 형식을 빌어 다시 나타나다.

To come back in a new form

(of a dead person's soul) To find reincarnation in another's corpse—(of something evil) revive in a new guise

迷信指人死后灵魂附在他人的尸体上复活。比喻已经没落或死亡的思想、势力、事物等凭借另一种名义或形式重新出现。


시체를 빌려 죽은 영혼이 돌아오다. 유명했던 고인 등의 이름을 이용하여 정통성 내지 계속성의 인상을 주어 명분을 살리라는 뜻이다. 이는 즉, 꼭뚜각시를 명분으로 내세워 실리를 취하는 식의,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명분론'의 문제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유능한 자는 조종하기 어렵다. 무능한 자는 스스로 도움을 요청해 온다. 그래서 조종하기 쉬운 무능한 자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쪽에서 먼저 나서는 것이 아니라 저쪽에서 도움을 구해 오는 형세를 이용하는 것이다.[有用者,不可借;不能用者,求借.借不能用者而用之,匪我求童蒙,童蒙求我.]"

사례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다. 간단하게 몇가지를 살펴보자.

먼저 楚漢志(초한지)에 등장하는 사례를 보자.

항우와 유방이 두각을 드러내기 전에 중원을 흔들었던 것은 '진승'과 '오광'이었다. 이들은 보잘것 없는 농민출신으로 反秦의 불씨가 되었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최초에 반란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舊 楚나라의 명장 '항연'과 진시황의 장자 '부소'의 이름을 빌렸다. 스스로를 항연과 부소라고 하며 사람들을 모았던 것이다. 구 초의 명장 항연은 항우의 조부이자 항량의 부친으로, 전국시대 초나라 말기에 명장으로 이름 높았던 인물이다. 당시 反秦(반진)을 외치는 반군의 대부분은 초나라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구 초의 명장 '항연'의 이름은 반진에 불타는 초나라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또 '부소'는 진시황의 큰아들로 조고와 이사의 장난이 없었다면 진의 2세 황제가 되어 진을 안정시킬만한 인물이었다. 진시황과는 달리 유가를 존중하고 인품도 나무랄데 없어서 백성들로부터의 인기도 높았던 터였다. 둘 다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단지 그 이름에 이끌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진승과 오광은 커다란 세력을 이루어 마침내 '항연'과 '부소'의 이름을 버리고 진승은 스스로 張楚王(장초왕)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그 이후 진승과 오광의 세력은 급격히 쇠퇴하여 마침내 秦軍에게 토벌당하고 만다.

이후 반란군 중에 떠오른 세력이 '항량'의 세력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반란군이 도적이나 농민 출신이었던 반면에, 구 초나라의 귀족이며 또한 '항연'의 혈통이라는 점이 작용하여 크게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항량에게 '범증'이 찾아와 아뢴다.

"진승과 오광이 어째서 멸망했는지 아십니까?"

"어째서 멸망했소?"

"그들은 초나라 사람들을 이끌면서도 스스로 장초왕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초나라 사람들은 정통성 있는 왕을 모시길 원합니다. 그러니 그들과 같은 처지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신 초회왕의 후손을 찾아 그 분을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항량은 초나라 마지막 왕인 회왕의 자손 '심'을 찾아 똑같이 회왕으로 모신다. 그리고 초나라의 정규군이 된 항량군은 反秦의 중심에 서게 된다. 물론 초왕이라고는 하지만 그 실제는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항우가 초의 상장군이 되어 秦을 무너뜨리고 유방과 대립하며, 회왕은 '義帝(의제)'로 칭해진다. 하지만 그 후 쓸모가 없어져, 항우에게 제거당하게 된다.

여기에서 '차시환혼'은 두 번 등장한다. 먼저 진승과 오광이 항연과 부소를 사칭한 것, 그리고 항량과 항우가 초회왕을 세운 것이 바로 그것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차시환혼'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調虎離山 (조호이산, diàohǔlíshān)

調虎離山(조호이산)

调虎离山(diàohǔlíshān)

調 고를 조 | 虎 호랑이 호 | 離 떠날 이 | 山 메 산 |


三十六計(삼십육계) 攻戰計(공전계) 제15계. '호랑이를 유인하여 산을 떠나게 하다'라는 뜻으로, 적으로 하여금 유리한 곳에서 벗어나게 하여 힘을 약화시킨 다음에 공격하는 전략을 말한다.


36계 가운데 공전계(攻戰計)에 속한다. 상대방을 유인하여 본거지로부터 끌어내서 싸우라는 것이다. 산중(山中)의 왕이라고 하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가 그 위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산중을 떠나게 하여 힘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보통 요새에 틀어박혀 굳게 지키기만 하는 적을 밖으로 끌어내어 공략하는 데 사용하는 계책이다.

이 계책에 대한 설명은 "하늘이 적을 곤란하게 만들 때를 기다리고, 인위적으로 적을 유인하여 그 행로를 어렵게 만든다(待天以困之, 用人以誘之, 往蹇來連)"는 것이다. 往蹇來連는 往蹇來返라고도 한다. 자연적인 여러 가지 조건이나 상황들이 적에게 불리할 때를 기다리고, 위장 전술을 펴 적으로 하여금 유리한 근거지를 벗어나게 함으로써 우세한 점을 잃게 한 뒤에 제압하여 승리를 취한다는 말이다.

《손자(孫子)》에서도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적을 공격하는 것을 하책(下策)이라 하고, 실패하기 쉽다고 하였다. 적이 이미 유리한 지세(地勢)를 차지하고 있고, 응전할 준비가 잘 되어 있는 경우에는 아군의 작은 이익을 버림으로써 적을 유인하여 견고한 방어지에서 나오도록 한 뒤에 공략하여야 승리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그 의미는 조호이산과 같다.

'조호이산'의 전형적인 예로 흔히 꼽는 것이 바로 한나라의 名將, 韓信(한신)의 예이다.

초에 붙은 趙(조)를 치기 위해 한신이 조나라를 향했을 때의 일이다. 조나라를 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20만 조군에 비해, 한신은 약 2만의 군사만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는 투항병들을 많이 받아들여 군사가 많았으나, 항상 유방이 군사들을 빼내갔기 때문이었다.

조나라로 향한 한신은 '정형구'라는 곳에 이르렀다. 이 정형구는 길이 굉장히 좁아서 사람이 2열로 지나가기도 어려운 곳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군사를 가지고 이 곳을 지나갈 때 공격을 받는다면 패배는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조군은 정형구를 지나오는 한신군을 공격하지 않았다. 병사의 수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형구를 지나 병사를 정렬한 한신은 밤중에 별동대를 시켜 비밀리에 임무를 주어 보내고, 다음날 남은 병사들을 조나라 성 앞에 흐르고 있는 강물을 등지고 포진했다(유명한 '背水의 진'이다). 이에 조나라 군사들은 코웃음을 쳤다. 배수진은 그야말로 병법의 금기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한신을 '병법도 모르는 풋내기'라고 생각했다.

한신을 풋내기라고 생각한 조군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만다. '지키는 입장의 유리함'을 버리고 성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전투가 벌어지자 갑자기 조군의 뒤에서 함성소리가 들렸다. 한신이 미리 보내둔 별동대가 조군이 성 밖으로 나간 틈을 타서 성을 장악한 것이었다. 그리고 강을 등에 진 병사들의 필사의 분전 앞에 조군은 무너져 버리고 만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声东击西 |


병법, 36계, 三十六計, 삼십육계, 三十六計:攻戰計, 삼십육계:공전계

欲擒姑縱 (욕금고종, yùqíngùzòng)

欲擒姑縱(욕금고종)

欲擒故纵(yùqíngùzòng)

欲 하고자 할 욕 | 擒 사로잡을 금 | 姑 연고 고 | 縱 세로 종,바쁠 총


三十六計(삼십육계) 攻戰計(공전계) 제16계. 더 큰 것을 잡기 위해 일부러 놓아주다. 더욱 제압하기 위해 일부러 느슨하게 하다.

leave somebody at large the better to apprehend him; allow somebody more latitude first to keep a tighter rein on him afterwards

想要捉住他,故意先放开他,使他不加戒备;比喻为了更好地控制而故意先放松一步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풀어주다. 여러가지로 사용될 수 있는 계략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완전포위로 공격하면 적도 필사적으로 반격한다. 도망칠 수 있게 하면 적의 기세도 줄어든다. 너무 빈틈없이 공각하지 마라. 적의 기세가 줄어들 때 기다렸다가 공격하면 큰 희생없이 승리할 수 있다. 기다릴 줄 알아야 놓치지 않을 변화가 있다.[逼則反兵,走則減勢.緊隨勿迫,累其力氣,消其斗志,散而後擒,兵不血刃.需,有孚,光.]"

이는 즉 '막다른 길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는 뜻이다.

孫子兵法(손자병법)에서도 九變(구변) 편에서, "...포위할 때는 꼭 한 쪽을 비워두어야 한다..." 라고 하고 있다. 도망갈 길이 완전히 막히면 당연히 죽음을 각오하고 반격해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망갈 곳을 비워두면 적은 도망갈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미리 비워둔 곳으로 적이 도망할 때 공격하면 쉽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례를 살펴보자.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서도 아주 유명한 일화이다.

번성을 공략하던 관우는 여몽의 계략에 빠져 형주를 잃고, 후방을 맡겼던 미방과 부사인의 배반으로 위태로운 처지에 있었다. 관평의 조언에 따라, 그나마의 패잔병들을 이끌고 麥城(맥성)으로 들어가 군사들을 둔쳤다. 그리고는 上庸(상용)에 있는 유봉과 맹달에게 요화를 보내 구원을 청했다. 하지만 유봉과 맹달은 이 청을 무시하고, 요화는 분통을 터뜨리며 멀리 성도(촉의 수도)로 가서 유비에게 직접 구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번성에 있던 관우는 구원병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으나 소식은 오지 않고, 성안의 양식도 떨어져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이 때 吳에서 제갈근이 와서 관우에게 항복을 권하나, 관우는 이를 거절한다. 그리고는 제갈근을 죽이려는 관평을 말리고 제갈근을 돌려보낸다. 이에 吳主 손권은 크게 탄식하고, 부하에게 점을 쳐보게 한다. 나온 괘는 地水師卦(지수사괘)였다. 그리고 卦辭(괘사)는 '현무가 나타나니 주작이 멀리 달아난다'고 하였다. 이에 손권이 관우가 도망치지 않을까 염려하나, 여몽은 크게 웃는다.

"관우는 군사가 적으니 반드시 대로를 따라 도망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맥성 북쪽에 험준한 소로가 하나 있는데, 그 길로 달아날 것이 분명하옵니다. 정예병 5천을 맥성 북쪽 20리쯤에 매복시켜 두었다가 그들을 뒤에서 치게 하면, 그들은 오직 도망칠 마음 뿐이니 임저로 달아날 것이 분명하옵니다. 이 때 임저에 정예병 5백을 임저에 숨겨 두었다가 덮치면 관우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군사를 보내 맥성을 포위하되, 북문만은 남겨 두고 그들이 달아나도록 해야겠습니다."

관우는 서천으로 돌아가 군사를 이끌고 와서 실지를 회복하라는 조루의 말에 따라 서천으로 탈출할 길을 모색한다. 그러다가 마침 북문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 길로 탈출하려 하나 왕보가 말린다.

"소로에는 매복이 있을 터이니 대로로 가셔야 하옵니다."

하지만, 관우는 '매복이 있다 한들 내가 무엇을 겁내겠는가'라고 하며 북문으로 나선다. 하지만 여몽의 계략대로 매복에 걸려 관우와 관평 부자는 吳軍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이렇게 맥성에서 관우를 붙잡은 여몽의 계략이 바로 기본적인 '욕금고종'이라 할 수 있다.

뒷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손권이 끈질기게 관우에게 항복을 권하지만 관우는 끝끝내 버티다가 아들 관평과 함께 목이 잘리고 만다. 여포를 거쳐 관우가 타던 적토마는 손권이 마충에게 주었으나 며칠 동안 여물을 먹지 않다가 끝내 굶어죽고 말았다.

한편 손권은 관우를 죽이고 형주를 차지한 공을 치하하고자 잔치를 벌였다. 손권이 여몽의 공을 치하하며 직접 잔에 술을 따라 여몽에게 주었다. 여몽은 술잔을 받아 마시려 하다가 갑자기 술잔을 집어던지고 손권의 멱살을 조르며 큰 소리로 꾸짖었다.

"파란 눈에 수염 붉은 쥐새끼야! 나를 알아 보겠느냐!"

주위의 장수들이 크게 놀라 말리려 하였다. 여몽은 손권을 밀어 넘어뜨리고 성큼성큼 걸어가 손권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나는 황건적을 무찌른 이후 30여년 동안 천하를 주름잡아 오다가 이제 하루 아침에 너희들의 간계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나는 살아서 너의 고기를 씹지 못하고 죽었으니 당장 여가놈(여몽)의 혼을 잡아가겠다. 나는 바로 한수정후 관운장이다."

이에 손권은 크게 놀라, 황망히 좌우를 거느리고 큰 절을 올렸다. 여몽은 땅에 거꾸러지더니 七竅(칠규 : 두 눈, 두 콧구멍, 두 귀, 입의 일곱구멍)로 피를 쏟으며 죽었다.

正史에 따르면, 여몽은 병으로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를 나관중의 이처럼 '관우의 혼령에 의해 죽는 것'으로 극화시켰다.

또한, 유비의 양아들인 유봉은 이 사건 때문에 유비에게 죽게 되고, 맹달은 위나라로 망명한다. 후에 맹달은 제갈량과 손을 잡고 위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키려 하나, 사마의에게 당하고 만다.

또다른 예를 살펴보자면, 제갈량(諸葛亮)의 '七縱七擒(칠종칠금)'을 들 수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북벌을 단행하기 전에 후방을 튼튼히 하기 위해 남만평정에 나서게 된 제갈량은 그들을 초전에 크게 무찌르고 남만왕 맹획(孟獲)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를 죽이지 않고 '병사들을 모아 다시 도전하라'며 풀어준다. 이에 주위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라지만, 제갈량은 개의치 않는다. 맹획은 다시 병사들을 모아 도전해 오고, 또 사로잡힌다. 하지만 이번에도 제갈량은 맹획을 풀어준다.

이렇게 잡았다가 풀어주기를 일곱 번. 마침내 맹획은 제갈량의 큰 지혜와 덕에 감복하여 항복한다. 제갈량은 맹획을 죽이고 촉한의 관리를 두기는 쉬운 일이지만, 그렇게 하면 현지인들의 반란이 빈번할 것으로 예상하여 그들을 감화시켜 마음으로부터 복속하도록 한 것이었다. 이렇게 제갈량이 맹획을 일곱번 잡았다가 일곱번 놓아준 것을 '七縱七擒(칠종칠금)'이라 한다.

이것 또한 '욕금고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한자어

반의어

打草驚蛇(타초경사) |

참조어

七縱七擒(칠종칠금,qīqínqīzòng) |

擒賊擒王 (금적금왕, qínzéiqínwáng)

擒賊擒王(금적금왕)

擒贼擒王(qínzéiqínwáng)

擒 사로잡을 금 | 賊 도둑 적 | 擒 사로잡을 금 | 王 임금 왕 |


적을 사로잡으려면 우두머리부터 잡아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 또는 일을 함에 있어 핵심을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도 사용. 三十六計(삼십육계) 攻戰計(공전계) 제18계.


중국 성당시대(盛唐時代)의 시인 두보(杜甫:712∼770)의 《출새곡(出塞曲)》 에 실린 〈전출새 6수(前出塞六首)〉에 나오는 말이다.

挽弓當挽强
用箭當用長
射人先射馬
擒賊先擒王

활을 당기려면 강하게 당기고
화살을 쏘려면 멀리 쏘아야 한다
사람을 쏘려면 먼저 그 말을 쏘고
적을 잡으려면 먼저 그 왕을 잡아라

적의 장수를 잡으면 적의 전체 병력을 무너뜨릴 수 있으므로 싸움에서는 우두머리를 먼저 잡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신당서(新唐書)》 〈장순전(張巡傳)〉에는 다음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나라 숙종(肅宗:711∼762) 때 장순(張巡)과 윤자기(尹子奇)의 군대가 전투를 하였는데, 장순의 군대가 적을 공격하여 혼란에 빠뜨리고 장순은 윤자기를 죽이려 하였으나 얼굴을 몰랐다.

그래서 장순은 군사들에게 볏짚으로 만든 화살을 쏘게 하여 윤자기의 군사가 장순 군대의 화살이 모두 없어졌다고 윤자기에게 알리는 것을 보고 윤자기를 찾아낼 수 있었다. 장순은 부하 장수에게 진짜 화살을 쏘게 했는데, 윤자기의 왼쪽 눈을 맞히고 윤자기의 군대는 참패하였다. 장수를 잡으려면 먼저 그 말을 쏜다는 뜻으로 전투에서의 전술을 말한다.

擒賊擒王(금적금왕)은 三十六計(삼십육계) 攻戰計(공전계) 제18계에도 나온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적의 주력을 부수고 수령을 취하면 그 집단은 무너진다. 이는 용을 땅으로 끌어내는 것과 같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摧其堅,奪其魁。以解其體。龍戰在野,其道窮也。]"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사례를 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魏將 등애가 면죽을 함락하고, 제갈첨 부자가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後主 유선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위군은 금방이라도 성도로 들이닥칠 거리까지 와 있었다. 후주(後主) 유선은 급히 문무백관들을 모아 회의를 하나 의견들이 모두 갈팡질팡하여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남만으로 물러나자는 의견, 吳로 망명하자는 의견, 魏에 그냥 항복하자는 의견들이 난립하여 후주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튿날, 후주는 초주의 말을 따라 魏에 항복하려 하였다. 그 때 병풍 뒤에서 한 사람이 나오며 초주를 크게 꾸짖었다.

"구차하게 살아남으려는 이 썩어빠진 선비 놈아! 어찌 사직에 관한 일을 놓고 터무니 없는 말을 늘어놓느냐? 자고로 항복하는 천자가 어디 있더냐!"

후주가 보니 이는 다섯째 아들 북지왕 劉諶(유심)이었다. 후주의 일곱 아들 중 오직 유심만이 퐁명하고 영민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나약하고 착하기만 했다. 후주가 유심에게 말했다.

"지금 대신들이 모두 항복해야 한다고 하는데, 너는 온 성을 피로 물들일 생각이냐?"

"지난날 선제(유비)께서 살아계실 때 초주가 국정에 간여했사옵니까? 이제와서 주제넘게 국가대사를 논하면서 입을 열자마자 허튼 소리를 늘어놓으니 온당치 못하옵니다. 신이 보건데 성도에는 아직 수만 명의 군사가 있고, 강유가 거느리는 전군이 모두 검각에 있사옵니다. 만일 위군이 궁궐로 침입하려 한다는 것을 알면 반드시 구원하러 올 터이니 안팎에서 공격하면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옵니다. 어찌 썩어빠진 선비의 말만 듣고 가벼이 선제의 기업을 버리려 하시옵니까?"

그러나 후주는 끝내 유심의 말을 듣지 않고 위군에 항복하기로 하고, 항기를 올린다. 다음날 등애가 이끄는 위군이 몰려와서, 후주 및 문관과 무관들에게 벼슬을 내렸다. 그리고는 검각에 있는 강유에게 귀순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검각에서 이 소식을 들은 강유는 크게 놀라 할 말을 잃었다. 장하의 뭇 장수들은 이 말을 듣자 일제히 피가 거꾸로 치솟아 올라 눈을 부릅뜨고 어금니를 깨문채 수염과 머리털을 곤두세우고 칼을 뽑아 바윗돌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우리는 죽기로 싸우고 있는데 어째서 먼저 항복한다는 말이냐!"

강유는 원래 위나라의 장수였으나 제갈량에게 감복하여 제갈량의 제자가 되었다. 그 후 제갈량의 모든 병법을 전수받고, 제갈량의 사후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북벌을 이어가고 있었다. 위군을 이끄는 등애는 강유와 정면대결을 피하기 위해 검각을 지나지 않고 곧장 성도로 가서 後主(유선)에게 항복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금적금왕'이라 할 것이다.

이에 강유는 군사들을 달래고 한가지 계책을 생각해낸다.

강유는 즉시 위장 종회에게 항복했다. 종회는 강유를 흠모하고 있었기에 상빈으로 예우했다. 그리고 종회는 즉시 화살을 꺾으며 맹세하고 강유와 의형제를 맺었다. 그 때 위나라 조정에서는 등애와 종회의 공훈처리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이에 종회는 모함받는 등애를 붙잡고, 천하를 향한 야심을 드러냈다. 강유는 종회를 꾀어 촉을 재건할 계획을 세우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천명을 다하고 만다.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강유를 무시하고 항복해버린 '樂不思蜀(낙불사촉)'의 유선 때문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천수를 다하고 만 것이다.


관련 한시

전출새 6수(前出塞六首) |


관련 고사성어

樂不思蜀(낙불사촉) : 魏에 항복한 후주 유선이 사마소가 베푼 연회 자리에서, 사마소가 '서촉 생각이 나지 않소?' 라고 묻자 유선이 '이곳이 너무 즐거워 서촉의 생각은 나지 않나이다'라고 대답한 일에서 유래된 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