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代桃僵(이대도강)
李代桃僵(lǐdàitáojiāng)
李 오얏 리 | 代 대신할 대 | 桃 복숭아 도 | 僵 넘어질 강 |
三十六計 敵戰計 第十一計.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를 대신하여 넘어지다'라는 뜻으로, 작은 손해를 보는 대신 큰 승리를 거두는 전략이다. 그 외에 '형제는 마땅히 환난고락을 같이 나누어야 한다', '어떤 것으로 다른 것을 대체하다', '타인의 과실을 대신 책임져 주다', '남을 대신하여 희생하다' 등의 의미도 있다.
오얏나무가 복숭아나무 대신 쓰러지다. 이는 '중요성이 적은 것을 희생하여 중요성이 큰 것을 살린다'는 뜻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복숭아나무의 병충해가 심해서 그 옆에 오얏나무를 심어 쓰러뜨리면 병충해가 오얏나무에 집중되어 복숭아나무가 무사히 자랐다고 한다.
중국 고대와 중세의 악부시를 집대성한 《악부시집(樂府詩集)》에 실린 '계명(鷄鳴)'이라는 시에서 유래되었다. 이 시는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를 대신하여 벌레들에 갉아먹혀 희생하는 것을 형제 간의 우애에 빗대어 노래하였다.
"복숭아나무 우물가에서 자라고, 자두나무 그 옆에서 자랐네. 벌레가 복숭아나무 뿌리를 갉아먹으니,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를 대신하여 죽었네. 나무들도 대신 희생하거늘, 형제는 또 서로를 잊는구나[桃生露井上, 李樹生桃旁. 蟲來齧桃根, 李樹代桃僵. 樹木身相代, 兄弟還相忘]."
여기서 이대도강이라는 성어(成語)가 생겼고, 병법에 응용되어 작은 것을 희생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어내는 전략을 뜻하게 되었다. 이른바 나의 살을 내주고 적의 뼈를 취하는 전략이다. 전쟁에서 아군과 적군은 제각기 장단점이 있으며,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는 어려운 법이다. 승부의 비결은 장단점을 서로 비교하여 단점으로써 장점을 이기는 데 달려 있다.
병법 36계의 원문의 해설은 다음과 같다.
"싸움에는 반드시 손해가 따르기 마련이다. 부분적인 손해를 무릅쓰고, 대국적인 이익을 취해야 한다.[勢必有損,損陰以益陽.]"
이것은 이른바 '살을 내주고 상대방의 뼈를 자르는' '肉斬骨斷(육참골단)'과도 뜻이 통한다 할 것이다. 이는 양동작전시의 주력부대가 승리를 차지하기 위해 미끼부대를 버린 돌로 삼는 식의 작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승리를 위해서 작은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몇가지 살펴보자.
또 한사람의 孫子(손자)로 불리우는 전국시대 제나라의 '손빈'의 일화이다.
손빈이 위나라에서 탈출하여 제나라로 망명한 후 제위왕은 손빈에게 벼슬을 주려 했다. 이에 손빈은 '자신이 제나라에서 벼슬을 산다는 것이 위나라에 알려지면 방연이 무슨 간특한 짓을 꾸밀지 모른다'는 이유로 벼슬을 사양한다.
제위왕은 여가시간에 종족과 공자들을 거느리고 사냥터에 나가서 내기를 걸고 경주를 하거나 활을 쏘는 것이 취미였다. 그런데 제위왕의 종족인 대장군 전기(田忌)는 말[馬]이 그다지 좋지 못해서 겨룰 때마다 늘 지기만 했다. 그래서 전기는 제위왕에게 늘 막대한 돈을 잃곤 했다.
어느날 전기는 손빈을 데리고 나가 내기를 구경시켰다. 그 날도 전기는 제위왕과 세번을 겨루어 다 지고야 말았다. 이에 전기에게 의탁하고 있던 손빈은 마차를 끄는 말에 상중하의 등급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전기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내일 다시 왕과 내기를 하시오. 내 반드시 그대가 이기게 해드리리다."
이에 전기는 왕에게 가서 내기를 청하고, 돌아와 손빈에게 계책을 물었다. 손빈이 대답했다.
"왕은 제나라에서 좋은 말을 다 가지고 계시오. 그대가 순서대로 왕과 겨루다가는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기기 위해서는 다음의 방법을 써야 합니다. 먼저 그대는 가장 좋지 못한 말을 타고 왕의 가장 좋은 말과 경주하십시오. 그리고 대왕이 보통 말을 타시거든 당신은 가장 좋은 말을 타고 경주하십시오. 또 대왕이 가장 좋지 못한 말을 타시거든 당신은 보통 말을 타면 됩니다. 그러면 세 번 내기에서 한 번은 지겠지만, 두 번은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손빈의 계책에 따라 전기는 한 번은 지고 두 번은 이겼다. 여기서 손빈이 사용한 계책이 이대도강의 예이다. 하등급 말이 상등급 말과 겨루면 질 것이 뻔하지만 다른 두 번의 승리를 위하여 한 번 지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결국 전기는 한 번 졌지만 두 번을 이김으로써 왕자들로부터 천금을 딸 수 있었다.
전기는 그 후에 왕에게 자신이 이긴 것은 손빈의 계책 덕분이라는 것을 고했다. 이에 제위왕은 손빈을 존경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져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손빈에게 상을 내렸다.
이와 다른 방면의 예를 또 하나 살펴보자.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일화이다. 완성에서 전위를 잃고 살아돌아온 조조는 또다시 '황제'를 자칭하는 원술의 토벌에 나섰다. 조조군에 차츰 밀리던 원술은 식량을 모두 거두어 회수 건너로 후퇴했다. 이 해에 커다란 흉년이 들어 양식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17만 조조군은 양식이 부족해 곤란을 겪고 있었다. 이에 조조는 손책에게 양곡 10만 섬을 빌려왔다. 하지만 그것으로 병사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양곡관리관의 부하인 창고지기 '왕후'가 들어와 조조에게 품했다.
"군사는 많고 양식은 적으니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작은 되로 나누어 주어 우선 급한 불이나 끄면 될 것이다."
"병사들이 원망을 하면 어찌합니까?"
"나에게 생각이 있느니라."
왕후는 명령에 따라 작은되로 병사들에게 양곡을 배급했다. 조조가 암암리에 사람을 보내 살펴보니 모든 병사들이 '승상(조조)이 우리를 속였다'며 불평하고 있었다. 조조는 남몰래 왕후를 불렀다.
"내 너에게 한가지 물건을 빌리고자 한다. 그것만 있으면 군사들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으니 너는 인색하게 굴지 말지어다."
"무엇을 빌리려 하시옵니까?"
"너의 머리를 빌려야겠다."
"저는 아무 잘못도 없사옵니다."
"나 역시 너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군사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네 식솔들은 모두 책임지고 보살필 것이니 아무 걱정 말라."
조조는 왕후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장대에 매달고 방을 붙였다.
'왕후가 군량을 작은 되로 나누어 주며 군량을 착복했으므로 군법에 따라 다스리노라.'
이리하여 조조에 대한 군사들의 원망은 비로소 해소되었다.
그리고는 원술을 무찌름에 있어, 조조는 스스로 앞장 서며 칼을 들고 적을 베고 말에서 내려 흙을 퍼 해자를 메웠다. 이 모습을 본 장수와 군사들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원술의 본거지인 수춘성을 함락시키기에 이르렀다.
이 역시도 작은 희생으로 큰 승리를 거머쥔 계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승리'란 원술을 무찌른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병사들을 진정시킨 것을 뜻한다.
출전
악부시집(樂府詩集) 상화가사(相和歌辭) 계명(鷄鳴) | 三十六計 |
관련 한시
鷄鳴(계명) |
관련 한자어
참조어
肉斬骨斷(육참골단) | 煮豆燃萁(자두연기) |
36계, 삼십육계, 삼십육계:적전계, 병법
三十六計, 三十六計:敵戰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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暗渡陳倉 (암도진창, àndùchéncāng)
暗渡陳倉(암도진창)
暗渡陈仓(àndùchéncāng)
暗 어두울 암 | 渡 건널 도 | 陳 펼칠 진 | 倉 창고 창 |
三十六計 敵戰計 第八計. 아무도 모르게 진창으로 건너가다라는 뜻으로, 정면으로 공격할 것처럼 위장하여 적이 병력을 그쪽으로 집결시키도록 한 뒤에 방비가 허술한 후방을 공격하는 계책이다. 한(漢)나라의 장군 한신(韓信)이 초(楚)나라와 싸울 때 사용한 계책으로, 36계 가운데 제8계이다.
진나라 말기에 한나라의 유방은 초나라의 항우와 중원의 패권을 다투었다. 항우는 유방을 경계하여 한왕(漢王)으로 봉함으로써 군사 요충지인 관중(關中)을 떠나 한중(漢中)으로 가도록 하였다. 유방은 관중을 떠날 때 장량(張良)의 권고를 따라 잔도(棧道)를 붙태워 버렸다. 잔도는 험한 벼랑에 나무로 가설해 놓은 길인데, 너무도 위험하여 부임지로 가는 동안에만 수많은 병사들이 탈영했고, 심지어 장수들까지도 도망치는 자가 많았다. 관중으로 통하는 이 길을 스스로 없애 버림으로써 자신이 관중을 넘볼 마음이 없다는 뜻을 항우에게 보여준 것이다.
한중에서 세력을 형성한 유방은 한신을 대장군으로 삼아 동쪽을 정벌할 계획을 세웠다. 한신은 군사들을 시켜 불타 버린 잔도를 수리하는 척하였다. 한신은 병력 1만을 주고 번쾌에게 잔도를 3개월 안으로 보수하라는 명을 내린다.
한편 유방이 파촉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보고를 들은 삼진(三秦)의 왕 중 장한(章邯)은 신속히 잔도 보수 상황을 알아보았다. 그리고는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실제 잔도는 1만의 군사가 3개월이 아니라 3년의 시간이 걸려도 보수될까 말까 한 정도였다. 이에 장한을 비롯한 삼진의 왕들은 마음을 놓고 방심하면서도 군사들을 잔도로 집결시켰다. 하지만 한신의 생각은 잔도의 보수가 아니었다. 잔도의 보수가 오래 걸릴 것이라 보고 삼진의 왕들이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한신은 대군을 이끌고 진령산맥을 우회하여 단숨에 전략적 요충지인 陳倉(진창:지명)을 점령해 버렸다. 그리고는 기세를 몰아 삼진왕들을 무찌르고 단숨에 관중을 차지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유방은 파촉에 부임하는 漢中王(한중왕)으로 임명된지 불과 석달만에 항우와 어깨를 겨루는 楚漢之爭(초한지쟁)에 접어들게 된다.
이로부터 '명수잔도, 암도진창(明修棧道, 暗渡陳倉:겉으로는 잔도를 수리하는 척하면서, 몰래 진창으로 건너가다)'라는 말이 생겼다. 여기서 유래하여 암도진창은 정면으로 공격할 것처럼 행동을 취하여 적의 주의를 끈 뒤에 방비가 허술해진 후방을 공격하는 계책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36계의 제6계인 성동격서(聲東擊西)와 비슷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양동을 벌여 적이 이에 따라 움직이게 되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 기습한다.[示之以動,利其靜而有主,益動而巽.]"
이 성어는 비단 삼십육계에서만이 아니고, 중국의 史書(사서)에서 '뒷전에서 딴 짓을 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로 흔히 사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또 적에게 거짓된 정보를 흘려 역으로 이용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고, 남녀 간의 부정한 행위를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明修棧道 暗渡陳倉(míngxiūzhàndào, àndùchéncāng)
삼십육계, 삼십육계:적전계, 병법
三十六計, 三十六計:敵戰計
暗渡陈仓(àndùchéncāng)
暗 어두울 암 | 渡 건널 도 | 陳 펼칠 진 | 倉 창고 창 |
三十六計 敵戰計 第八計. 아무도 모르게 진창으로 건너가다라는 뜻으로, 정면으로 공격할 것처럼 위장하여 적이 병력을 그쪽으로 집결시키도록 한 뒤에 방비가 허술한 후방을 공격하는 계책이다. 한(漢)나라의 장군 한신(韓信)이 초(楚)나라와 싸울 때 사용한 계책으로, 36계 가운데 제8계이다.
진나라 말기에 한나라의 유방은 초나라의 항우와 중원의 패권을 다투었다. 항우는 유방을 경계하여 한왕(漢王)으로 봉함으로써 군사 요충지인 관중(關中)을 떠나 한중(漢中)으로 가도록 하였다. 유방은 관중을 떠날 때 장량(張良)의 권고를 따라 잔도(棧道)를 붙태워 버렸다. 잔도는 험한 벼랑에 나무로 가설해 놓은 길인데, 너무도 위험하여 부임지로 가는 동안에만 수많은 병사들이 탈영했고, 심지어 장수들까지도 도망치는 자가 많았다. 관중으로 통하는 이 길을 스스로 없애 버림으로써 자신이 관중을 넘볼 마음이 없다는 뜻을 항우에게 보여준 것이다.
한중에서 세력을 형성한 유방은 한신을 대장군으로 삼아 동쪽을 정벌할 계획을 세웠다. 한신은 군사들을 시켜 불타 버린 잔도를 수리하는 척하였다. 한신은 병력 1만을 주고 번쾌에게 잔도를 3개월 안으로 보수하라는 명을 내린다.
한편 유방이 파촉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보고를 들은 삼진(三秦)의 왕 중 장한(章邯)은 신속히 잔도 보수 상황을 알아보았다. 그리고는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실제 잔도는 1만의 군사가 3개월이 아니라 3년의 시간이 걸려도 보수될까 말까 한 정도였다. 이에 장한을 비롯한 삼진의 왕들은 마음을 놓고 방심하면서도 군사들을 잔도로 집결시켰다. 하지만 한신의 생각은 잔도의 보수가 아니었다. 잔도의 보수가 오래 걸릴 것이라 보고 삼진의 왕들이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한신은 대군을 이끌고 진령산맥을 우회하여 단숨에 전략적 요충지인 陳倉(진창:지명)을 점령해 버렸다. 그리고는 기세를 몰아 삼진왕들을 무찌르고 단숨에 관중을 차지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유방은 파촉에 부임하는 漢中王(한중왕)으로 임명된지 불과 석달만에 항우와 어깨를 겨루는 楚漢之爭(초한지쟁)에 접어들게 된다.
이로부터 '명수잔도, 암도진창(明修棧道, 暗渡陳倉:겉으로는 잔도를 수리하는 척하면서, 몰래 진창으로 건너가다)'라는 말이 생겼다. 여기서 유래하여 암도진창은 정면으로 공격할 것처럼 행동을 취하여 적의 주의를 끈 뒤에 방비가 허술해진 후방을 공격하는 계책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36계의 제6계인 성동격서(聲東擊西)와 비슷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양동을 벌여 적이 이에 따라 움직이게 되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 기습한다.[示之以動,利其靜而有主,益動而巽.]"
이 성어는 비단 삼십육계에서만이 아니고, 중국의 史書(사서)에서 '뒷전에서 딴 짓을 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말로 흔히 사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또 적에게 거짓된 정보를 흘려 역으로 이용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고, 남녀 간의 부정한 행위를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明修棧道 暗渡陳倉(míngxiūzhàndào, àndùchéncāng)
삼십육계, 삼십육계:적전계, 병법
三十六計, 三十六計:敵戰計
順手牽羊 (순수견양, xiàolǐcángdāo)
順手牽羊(순수견양)
笑里藏刀(xiàolǐcángdāo)
順 순할 순 | 手 손 수 | 牽 끌 견 | 羊 양 양 |
三十六計 敵戰計 第十二計. '기회를 틈타 양을 끌고 가다' 또는 '손에 잡히는 대로 양을 끌고 간다'라는 말로, 병법에서 작은 틈과 작은 이익이라도 놓치지 않고 이용하는 책략을 뜻한다.
원래는 기회를 틈타 남의 양을 훔쳐 끌고 간다는 뜻이다. 적의 허점을 발견하면 주저없이 이에 편승하라는 뜻으로 36계에서는 이것을 응용하여 적전계(敵戰計), 곧 아군과 적의 세력이 대등한 경우에 사용하는 계책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적이 드러낸 허점이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반드시 이용하고, 아군에게 유리한 점은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반드시 때를 놓치지 않고 쟁취한다(微隙在所必乘, 微利在所必得.少陰,少陽.)"는 것이다.
이는 《육도(六韜)》에서 "잘 싸우는 사람은 아군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될 때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절한 때가 되면 의심을 품지 않고 단행한다(善戰者, 牽利不失, 遇時不疑)"라고 말한 것과 통한다. 적의 허점을 놓치지 않고 공격하여 작은 승리를 거두고, 이러한 작은 승리가 쌓이면 큰 승리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로 적이 이동하면서 드러내는 허점을 공격하여 승리를 얻어내는 것을 말한다.
4세기 때 전진(前秦)의 황제 부견은 동진(東晉)을 정복하기 위하여 90만 대군을 징집하였다. 부견은 동생인 부융을 선봉대로 보내어 수양을 점령하였다. 부융은 동진의 병력이 적고 군량도 부족한 사실을 파악하고, 부견에게 빨리 공격할 것을 건의하였다. 부견은 90만 대군이 모두 집결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수천 명의 기병만 이끌고 수양에 당도하였다.
동진의 장군 사석(謝石)은 전진의 대군이 모두 집결하지 않은 틈을 타서 적의 선봉을 공격하여 격퇴시킴으로써 적의 예봉을 꺾었다. 이후 동진과 전진은 비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되었는데, 사석은 중과부적이므로 속전속결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였다. 사석은 교만한 부견을 자극하여, 물을 사이에 두고 싸우기 불편하니 조금만 병력을 후퇴시키면 물을 건너가 싸우겠노라는 뜻을 전하였다.
부견은 동진의 군대가 물을 건널 때 기습하여 섬멸할 요량으로 군대를 후퇴시켰는데, 전진의 병사들은 그 이유를 모르고 동진에 패하여 후퇴하는 줄로만 알고 서로 먼저 도망치려 하는 바람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동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수를 건너 공격하였고, 부견은 그 와중에 화살에 맞아 부상하여 겨우 10만 병사만 이끌고 장안으로 돌아갔다.
이 전투를 비수전투라고 하는데, 고대 전쟁사에서 열세인 병력으로 강대한 적을 상대하여 승리한 전례(戰例)의 하나로 꼽힌다. 이 전투에서 동진이 사용한 병법이 순수견양의 예로 인용된다.
또 다른 예를 하나 살펴보자.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유명한 일화이다.
적벽대전 이후 형주에 눌러앉은 유비는 형주를 반환하라는 吳의 요청을 완전히 묵살하고 있었다. 이에 吳의 주유와 손권이 이를 갈고 있었는데, 사자로 보냈던 노숙에게서 '병사들이 모두 상복을 입고 있었고, 喪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주유가 누가 죽었는지 묻자 유비의 부인인 감부인이 죽었다고 했다. 이에 주유는 계책을 내놓으며 형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유비는 부인들이 모두 죽었으니 당연히 새장가를 들어야 할 것이다. 이에 주유는 손권의 여동생을 미끼로 유비를 꾀어 죽일 계책을 세운다. 그리고는 유비에게 사자를 보내 양가가 인척을 맺고 힘을 합쳐 조조를 무찌르자는 뜻을 전하게 한다.
이에 형주에서는 제갈량이 이를 눈치채고 조운을 동행하여 유비를 동오로 보낸다. 의심을 품고 감히 가지 못하는 유비였으나 제갈량이 이미 계책을 세워두었다고 하자 길을 떠난다. 그리고 제갈량은 조운을 불러 금낭(비단주머니) 세개를 주며 순서대로 행하라 이른다. 유비 일행이 남서에 도착하자 조운이 첫번째 금낭을 열었다. 거기에 쓰여진 계책에 따라 병사들에게 지시한다. 그리고는 유비에게 교국로를 찾아가 만나라고 여쭈었다. 교국로는 '강동의 이교(손책의 부인 대교와 주유의 부인 소교)'의 아버지였다. 유비는 교국로를 만나 이번에 동오로 장가를 들러 왔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병사들은 떠들썩하게 혼례용품을 구입하며 유비가 동오로 장가들러 왔다는 소문을 계속 퍼뜨렸다.
한편 교국로는 유비를 만난 후 오국태(손권의 이모. 손권의 친어머니는 일찍 죽었고 그 이모가 길렀다)를 만나 경사를 축하했다. 이에 오국태는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하고, 교국로가 유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손권을 만났다.
"너는 이렇게 나를 무시할 셈이냐? 나의 언니가 돌아가실 때 너에게 뭐라고 분부하시더냐?"
"어머니! 하실 말씀이 계시면 분명히 하소서. 무엇 때문에 이리 서러워 하시옵니까?"
"사내가 장가들고 계집이 시집가는 것은 고금의 이치이다. 그러나 내가 너의 어미가 되었으니 그런 일은 당연히 나에게 묻고 명을 받아야 할 터인데, 너는 유현덕을 매제로 삼으려 하면서 어찌 나를 속이느냐?"
손권이 깜짝 놀라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니옵니다. 이는 주유의 계략이옵니다. 형주를 빼앗기 위해 구실을 내세운 것 뿐입니다. 유비를 속여 이곳에 잡아 가두고 그와 형주를 바꿀 생각이었습니다. 이는 계략이지 진실로 혼사를 맺고자 함이 아니옵니다."
이에 오국태가 크게 노해 손권을 꾸짖는다.
"주유는 6군 81현의 대도독으로 있으면서 형주 하나 빼앗을 계책이 없어서 나의 딸을 구실로 유비를 죽이겠다고 하더냐? 그러면 나의 딸은 바로 까막과부가 될터인데 앞으로 어떻게 다시 시집을 가라고 말하겠느냐? 내 딸의 평생을 그르쳐 놓게 생겼으니 너희들은 참 잘도 했구나!"
이에 교국로가 '일이 이렇게 되었고, 유황숙은 황실의 종친이니 그를 정말로 사위로 맞아들여 망신을 면하는게 낫겠다'며 옆에서 거든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손권이 말하자, 유황숙은 세상의 호걸이니 이는 영매에게도 욕되지 않을 것이라 한다. 이에 오국태는 자신이 유비를 만나보고 마음에 들면 사위로 삼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유의 마음대로 하라고 말했다.
이에 손권은 연회를 준비시키는 한편 병사들을 매복시켜 놓으라 지시한다. 그리고 유비를 불렀는데 유비는 조운이 이끄는 5백 병사의 보호를 받으며 감로사에 왔다. 손권은 현덕의 풍채가 비범한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다. 오국태는 현덕을 보자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사위라 말했다. 갑자기 유비가 울며 말한다.
"만일 유비를 죽이시려거든 이 자리에서 즉시 죽여주소서!"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가?"
"도처에 도부수들을 숨겨 놓으셨으니 유비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옵니까?"
이에 오국태는 크게 노해 손권을 꾸짖었다. 그리고는 유비와 손부인의 혼례가 치러졌다. 주유는 크게 놀랐다. 그리고는 다른 계책을 손권에게 전했다. 그 계책은 유비는 가난하게 자라서 풍요로운 생활을 한 적이 없으니 그에게 온갖 사치를 시켜주어 형주로 돌아갈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이 계략은 제대로 먹혀서 유비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형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에 조운은 두번째 금낭을 열고 계책을 실행한다. 유비를 만나서 형주가 조조의 침입을 받고 있으니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유비에게 말한 것이다. 유비는 돌아가려 하나 동오에서 순순히 보내줄까 염려했다. 이에 손부인이 꾀를 내어 설날에 동오를 빠져나간다. 하지만 이윽고 손권의 부하들이 추격해 오자 조운이 세번째 금낭을 열었다. 이에 유비가 손부인에게 울면서 지금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손부인은 직접 나서서 자신들을 추격해온 손권의 부하 장수들을 오히려 꾸짖어서 돌려보낸다. 이에 손권은 크게 화가 나서 손부인의 목도 유비의 목과 함께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유비는 강 기슭에 도착하였으나 배가 한 척도 없었다. 그리고 동오의 군사들은 바로 지척까지 와 있었다. 유비가 이제 죽었구나 탄식하는데 갑자기 강 기슭에 돛단배 20여척이 일렬로 늘어선다. 유비와 손부인이 황급히 배에 오르고, 조운도 병사들과 배에 오르자 한 사람이 나와 웃으며 말했다.
"주공! 우선 축하드리옵니다. 제갈량이 여기서 기다린지 이미 오래이옵니다."
배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형주의 수군이었다. 제갈량이 동오의 병사들을 보고 말했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너희들은 돌아가 주랑에게 다시는 미인계 같은 수단을 쓰지 말라고 전하여라!"
그리고 돌아가는데 동오의 병사들이 추격해왔다. 또한 소식을 들은 주유도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나왔다. 그리고 배가 형주에 이르자 배에서 내려 추격해갔다. 하지만 이미 형주에는 관우, 황충, 위연등이 모두 대기하고 있어서 동오의 군사는 크게 패하였다. 허둥지둥 달아나는 동오의 병사들을 보며 병사들이 소리쳐 놀려댔다.
"천하를 안정시키겠다던 주유의 묘책이, 부인만 얻어 주고 군사마저 잃었구나!"
이는 주유의 계책을 간파하고 그 헛점을 노려서 양(손부인)을 끌고와 버린 틀림없는 '순수견양'이라 할 것이다.
위 사례에서 연의에서 묘사하고 있는 예이나, 정사와는 다르다. 실제로 손권이 혼인을 청한 것은 나날이 늘어가는 유비의 인기에 편승해 보고자 했을 따름이며, 따라서 유비를 죽일 생각 같은 것은 전혀 없었고, 동오행이 위험하다고 말린 것은 소심한 제갈량이었으며, 그 만류를 뿌리치고 동오로 간 것이 유비였다. 위의 이야기는 나관중이 지어낸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순수견양 계략은 실행하는 데 있어서 주의가 필요한 계략이다. 적의 작은 헛점도 놓치지 말고 공략하여, 아군은 작은 이익이라도 꼭 챙겨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상당한 위험부담의 문제가 있다. 바로 상대방의 속임수에 넘어갈 위험이 있는 것이다. 같은 삼십육계 내에서만 봐도 제6계 '성동격서(동쪽에 소리내고 서쪽을 친다)', 제8계 '암도진창(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창으로 건너가다)', 제11계 '이대도강(오얏나무가 복숭아나무 대신 쓰러지다)', 제13계 '타초경사(풀을 쳐 뱀을 나오게 하다)', 제16계 '욕금고종(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풀어주다), '제17계 '포전인옥(돌을 던져서 구슬을 얻다)' 등등 작은 이익으로 상대방을 꾀어내는 계략들이 많다.
笑里藏刀(xiàolǐcángdāo)
順 순할 순 | 手 손 수 | 牽 끌 견 | 羊 양 양 |
三十六計 敵戰計 第十二計. '기회를 틈타 양을 끌고 가다' 또는 '손에 잡히는 대로 양을 끌고 간다'라는 말로, 병법에서 작은 틈과 작은 이익이라도 놓치지 않고 이용하는 책략을 뜻한다.
원래는 기회를 틈타 남의 양을 훔쳐 끌고 간다는 뜻이다. 적의 허점을 발견하면 주저없이 이에 편승하라는 뜻으로 36계에서는 이것을 응용하여 적전계(敵戰計), 곧 아군과 적의 세력이 대등한 경우에 사용하는 계책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적이 드러낸 허점이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반드시 이용하고, 아군에게 유리한 점은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반드시 때를 놓치지 않고 쟁취한다(微隙在所必乘, 微利在所必得.少陰,少陽.)"는 것이다.
이는 《육도(六韜)》에서 "잘 싸우는 사람은 아군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될 때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절한 때가 되면 의심을 품지 않고 단행한다(善戰者, 牽利不失, 遇時不疑)"라고 말한 것과 통한다. 적의 허점을 놓치지 않고 공격하여 작은 승리를 거두고, 이러한 작은 승리가 쌓이면 큰 승리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로 적이 이동하면서 드러내는 허점을 공격하여 승리를 얻어내는 것을 말한다.
4세기 때 전진(前秦)의 황제 부견은 동진(東晉)을 정복하기 위하여 90만 대군을 징집하였다. 부견은 동생인 부융을 선봉대로 보내어 수양을 점령하였다. 부융은 동진의 병력이 적고 군량도 부족한 사실을 파악하고, 부견에게 빨리 공격할 것을 건의하였다. 부견은 90만 대군이 모두 집결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수천 명의 기병만 이끌고 수양에 당도하였다.
동진의 장군 사석(謝石)은 전진의 대군이 모두 집결하지 않은 틈을 타서 적의 선봉을 공격하여 격퇴시킴으로써 적의 예봉을 꺾었다. 이후 동진과 전진은 비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되었는데, 사석은 중과부적이므로 속전속결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였다. 사석은 교만한 부견을 자극하여, 물을 사이에 두고 싸우기 불편하니 조금만 병력을 후퇴시키면 물을 건너가 싸우겠노라는 뜻을 전하였다.
부견은 동진의 군대가 물을 건널 때 기습하여 섬멸할 요량으로 군대를 후퇴시켰는데, 전진의 병사들은 그 이유를 모르고 동진에 패하여 후퇴하는 줄로만 알고 서로 먼저 도망치려 하는 바람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동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수를 건너 공격하였고, 부견은 그 와중에 화살에 맞아 부상하여 겨우 10만 병사만 이끌고 장안으로 돌아갔다.
이 전투를 비수전투라고 하는데, 고대 전쟁사에서 열세인 병력으로 강대한 적을 상대하여 승리한 전례(戰例)의 하나로 꼽힌다. 이 전투에서 동진이 사용한 병법이 순수견양의 예로 인용된다.
또 다른 예를 하나 살펴보자.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유명한 일화이다.
적벽대전 이후 형주에 눌러앉은 유비는 형주를 반환하라는 吳의 요청을 완전히 묵살하고 있었다. 이에 吳의 주유와 손권이 이를 갈고 있었는데, 사자로 보냈던 노숙에게서 '병사들이 모두 상복을 입고 있었고, 喪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주유가 누가 죽었는지 묻자 유비의 부인인 감부인이 죽었다고 했다. 이에 주유는 계책을 내놓으며 형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유비는 부인들이 모두 죽었으니 당연히 새장가를 들어야 할 것이다. 이에 주유는 손권의 여동생을 미끼로 유비를 꾀어 죽일 계책을 세운다. 그리고는 유비에게 사자를 보내 양가가 인척을 맺고 힘을 합쳐 조조를 무찌르자는 뜻을 전하게 한다.
이에 형주에서는 제갈량이 이를 눈치채고 조운을 동행하여 유비를 동오로 보낸다. 의심을 품고 감히 가지 못하는 유비였으나 제갈량이 이미 계책을 세워두었다고 하자 길을 떠난다. 그리고 제갈량은 조운을 불러 금낭(비단주머니) 세개를 주며 순서대로 행하라 이른다. 유비 일행이 남서에 도착하자 조운이 첫번째 금낭을 열었다. 거기에 쓰여진 계책에 따라 병사들에게 지시한다. 그리고는 유비에게 교국로를 찾아가 만나라고 여쭈었다. 교국로는 '강동의 이교(손책의 부인 대교와 주유의 부인 소교)'의 아버지였다. 유비는 교국로를 만나 이번에 동오로 장가를 들러 왔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병사들은 떠들썩하게 혼례용품을 구입하며 유비가 동오로 장가들러 왔다는 소문을 계속 퍼뜨렸다.
한편 교국로는 유비를 만난 후 오국태(손권의 이모. 손권의 친어머니는 일찍 죽었고 그 이모가 길렀다)를 만나 경사를 축하했다. 이에 오국태는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하고, 교국로가 유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손권을 만났다.
"너는 이렇게 나를 무시할 셈이냐? 나의 언니가 돌아가실 때 너에게 뭐라고 분부하시더냐?"
"어머니! 하실 말씀이 계시면 분명히 하소서. 무엇 때문에 이리 서러워 하시옵니까?"
"사내가 장가들고 계집이 시집가는 것은 고금의 이치이다. 그러나 내가 너의 어미가 되었으니 그런 일은 당연히 나에게 묻고 명을 받아야 할 터인데, 너는 유현덕을 매제로 삼으려 하면서 어찌 나를 속이느냐?"
손권이 깜짝 놀라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니옵니다. 이는 주유의 계략이옵니다. 형주를 빼앗기 위해 구실을 내세운 것 뿐입니다. 유비를 속여 이곳에 잡아 가두고 그와 형주를 바꿀 생각이었습니다. 이는 계략이지 진실로 혼사를 맺고자 함이 아니옵니다."
이에 오국태가 크게 노해 손권을 꾸짖는다.
"주유는 6군 81현의 대도독으로 있으면서 형주 하나 빼앗을 계책이 없어서 나의 딸을 구실로 유비를 죽이겠다고 하더냐? 그러면 나의 딸은 바로 까막과부가 될터인데 앞으로 어떻게 다시 시집을 가라고 말하겠느냐? 내 딸의 평생을 그르쳐 놓게 생겼으니 너희들은 참 잘도 했구나!"
이에 교국로가 '일이 이렇게 되었고, 유황숙은 황실의 종친이니 그를 정말로 사위로 맞아들여 망신을 면하는게 낫겠다'며 옆에서 거든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손권이 말하자, 유황숙은 세상의 호걸이니 이는 영매에게도 욕되지 않을 것이라 한다. 이에 오국태는 자신이 유비를 만나보고 마음에 들면 사위로 삼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유의 마음대로 하라고 말했다.
이에 손권은 연회를 준비시키는 한편 병사들을 매복시켜 놓으라 지시한다. 그리고 유비를 불렀는데 유비는 조운이 이끄는 5백 병사의 보호를 받으며 감로사에 왔다. 손권은 현덕의 풍채가 비범한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다. 오국태는 현덕을 보자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사위라 말했다. 갑자기 유비가 울며 말한다.
"만일 유비를 죽이시려거든 이 자리에서 즉시 죽여주소서!"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가?"
"도처에 도부수들을 숨겨 놓으셨으니 유비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옵니까?"
이에 오국태는 크게 노해 손권을 꾸짖었다. 그리고는 유비와 손부인의 혼례가 치러졌다. 주유는 크게 놀랐다. 그리고는 다른 계책을 손권에게 전했다. 그 계책은 유비는 가난하게 자라서 풍요로운 생활을 한 적이 없으니 그에게 온갖 사치를 시켜주어 형주로 돌아갈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이 계략은 제대로 먹혀서 유비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형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에 조운은 두번째 금낭을 열고 계책을 실행한다. 유비를 만나서 형주가 조조의 침입을 받고 있으니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유비에게 말한 것이다. 유비는 돌아가려 하나 동오에서 순순히 보내줄까 염려했다. 이에 손부인이 꾀를 내어 설날에 동오를 빠져나간다. 하지만 이윽고 손권의 부하들이 추격해 오자 조운이 세번째 금낭을 열었다. 이에 유비가 손부인에게 울면서 지금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손부인은 직접 나서서 자신들을 추격해온 손권의 부하 장수들을 오히려 꾸짖어서 돌려보낸다. 이에 손권은 크게 화가 나서 손부인의 목도 유비의 목과 함께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유비는 강 기슭에 도착하였으나 배가 한 척도 없었다. 그리고 동오의 군사들은 바로 지척까지 와 있었다. 유비가 이제 죽었구나 탄식하는데 갑자기 강 기슭에 돛단배 20여척이 일렬로 늘어선다. 유비와 손부인이 황급히 배에 오르고, 조운도 병사들과 배에 오르자 한 사람이 나와 웃으며 말했다.
"주공! 우선 축하드리옵니다. 제갈량이 여기서 기다린지 이미 오래이옵니다."
배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형주의 수군이었다. 제갈량이 동오의 병사들을 보고 말했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너희들은 돌아가 주랑에게 다시는 미인계 같은 수단을 쓰지 말라고 전하여라!"
그리고 돌아가는데 동오의 병사들이 추격해왔다. 또한 소식을 들은 주유도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나왔다. 그리고 배가 형주에 이르자 배에서 내려 추격해갔다. 하지만 이미 형주에는 관우, 황충, 위연등이 모두 대기하고 있어서 동오의 군사는 크게 패하였다. 허둥지둥 달아나는 동오의 병사들을 보며 병사들이 소리쳐 놀려댔다.
"천하를 안정시키겠다던 주유의 묘책이, 부인만 얻어 주고 군사마저 잃었구나!"
이는 주유의 계책을 간파하고 그 헛점을 노려서 양(손부인)을 끌고와 버린 틀림없는 '순수견양'이라 할 것이다.
위 사례에서 연의에서 묘사하고 있는 예이나, 정사와는 다르다. 실제로 손권이 혼인을 청한 것은 나날이 늘어가는 유비의 인기에 편승해 보고자 했을 따름이며, 따라서 유비를 죽일 생각 같은 것은 전혀 없었고, 동오행이 위험하다고 말린 것은 소심한 제갈량이었으며, 그 만류를 뿌리치고 동오로 간 것이 유비였다. 위의 이야기는 나관중이 지어낸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순수견양 계략은 실행하는 데 있어서 주의가 필요한 계략이다. 적의 작은 헛점도 놓치지 말고 공략하여, 아군은 작은 이익이라도 꼭 챙겨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상당한 위험부담의 문제가 있다. 바로 상대방의 속임수에 넘어갈 위험이 있는 것이다. 같은 삼십육계 내에서만 봐도 제6계 '성동격서(동쪽에 소리내고 서쪽을 친다)', 제8계 '암도진창(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창으로 건너가다)', 제11계 '이대도강(오얏나무가 복숭아나무 대신 쓰러지다)', 제13계 '타초경사(풀을 쳐 뱀을 나오게 하다)', 제16계 '욕금고종(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풀어주다), '제17계 '포전인옥(돌을 던져서 구슬을 얻다)' 등등 작은 이익으로 상대방을 꾀어내는 계략들이 많다.
笑裏藏刀 (소리장도, xiàolǐcángdāo)
笑裏藏刀(소리장도)
笑里藏刀(xiàolǐcángdāo)
笑 웃을 소 | 裏 속 리 | 藏 감출 장 | 刀 칼 도 |
三十六計 敵戰計 第十計. 웃음 속에 칼을 품다.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해칠 생각을 가지다. '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있다'라는 뜻으로, 겉으로는 웃는 낯으로 상냥하게 대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상대방을 해칠 뜻을 품고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웃음 속에 칼날을 숨기다. 우리 옛말에 '솜으로 칼을 싼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부드러운 말씨와 미소짓는 표정으로 상대방의 경계심을 풀고 방심하게 하라는 말이다. 병법에서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하여 안심시킨 뒤에 허를 찔러 공격하는 계책이다.
원문의 풀이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성의를 보여 적을 안심시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뜻하는 바를 도모하라. 충분히 준비한 후에 행동하라. 마음 속에 剛(강)을 품고 겉으로는 柔(유)를 보여라.[信而安之,陰以圖之,備而後動,勿使有變.剛中柔外也.]"
外柔內剛(외유내강)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나는 부분이다.
전통적으로 '笑裏藏刀'의 대명사로 꼽히는 인물은 '呂蒙(여몽)' 이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서 관우를 함정에 빠뜨려 사로잡고, 관우가 죽은 후 그의 혼령에 사로잡혀 죽게된 인물, 그가 바로 여몽이다. 자세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삼국지연의》에서 적벽대전 이후 유비는 형주를 차지해 버리고, 파촉을 차지하고, 한중까지 나아가 급기야는 스스로 '漢中王(한중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자, 위나라의 조조는 오나라의 손권과 손을 잡고 형주를 치려고 하였다. 유비는 관우를 보내 형주를 지키게 하면서 위나라의 번성을 치도록 하였다. 吳의 손권은 형주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지만, 관우는 吳에 있어 공포의 대상이었다. 노숙의 뒤를 이어 대도독의 자리에 오른 여몽은 관우가 번성을 치러 간 사이에 형주를 공략하고자 하나, 관우가 남겨놓은 봉화대가 큰 걸림돌이 되었다. 결국에 여몽은 자리에 드러눕고 만다. 손권이 크게 걱정하나 '陸遜(육손)'은 그 속을 꿰뚫어 보고 여몽을 문병간다. 여몽은 형주를 탈환하고 싶지만 관우의 봉화대가 걸림돌이 되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꾀병을 앓은 것이었다. 이에 육손이 조언을 한다.
"관우는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믿고 자기를 당해낼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소. 염려하는 사람은 오직 장군이 있을 뿐이오. 장군은 이러한 기회에 병을 칭탁하고 사직한 다음, 육구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그 사람에게 관우를 비굴한 말로 찬미케 하면 관우는 마음 가득 교만해져서 형주의 군사를 철수시켜 모두 번성으로 향하게 할 것이오. 만일 형주에 방비가 없다면 어찌 함락시키지 못하겠소?"
육구에 주둔한 오나라의 여몽(呂蒙)은 관우가 마음을 놓도록 하기 위하여 병이 든 것처럼 속여 물러갔고, 육손을 추천하며 사직을 청했다.
"만일 인망이 두터운 사람을 쓴다면 관우는 반드시 대비를 할 것이옵니다. 육손은 사려가 깊으나 아직 이름이 덜 알려졌으니 관우가 경계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 대신 임용하시면 반드시 성과가 있을 것이옵니다."
이리하여 무명의 육손(陸遜)이 여몽 대신 육구를 지키게 되었다. 육손은 육구에 부임하여 관우의 무용을 칭송하는 겸손한 내용의 편지 한 통을 써서 명마와 이금, 주례 등을 준비해 번성에 있는 관우에게 보냈다. 편지는 말놀림이 극히 겸손하고 조신했다. 관우는 읽고 나서 크게 웃으며 사자를 돌려보냈다. 관우는 노련한 여몽은 경계하였지만 젊고 무명인 육손에 대해서는 애송이라 여기고, 형주 병력의 태반을 거두어 번성을 공격하는 데 투입하였다. 여몽은 형주의 병력이 취약한 틈을 타서 공격하여 봉화대를 침묵시키고 형주를 함락시켰다. 관우는 여몽과 육손의 소리장도 계책에 넘어간 것이다.
연의에서는 여몽을 깎아내리기 위해 위의 계책도 여몽이 아닌 육손이 낸 것으로 되어있고, 또한 관우가 죽은 후 여몽은 관우의 혼령에 씌어 비참하게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正史에 의하면, 위의 계략은 여몽에 의한 것이었고, 여몽은 단지 병 때문에 죽은 것 뿐이었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겉으로는 상냥하게 남을 위하는 척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해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 대표적 인물이 당나라 고종 때 중서시랑을 지낸 이의부(李義府)이다. 그는 겉으로는 온화하고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미소를 지으며 선량한 얼굴을 하였다.
그러나 마음 속은 각박하고 간사하여 음험한 계책으로 다른 사람들을 해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의부의 웃음 속에는 칼이 숨겨져 있다고 말하였다(故時人言義府笑中有刀). 이 고사는 《구당서(舊唐書)》의 〈이의부전〉에 실려 있다. 당나라 현종 때의 간신 이임보(李林甫)의 고사에서 유래된 구밀복검(口蜜腹劍)과 같은 의미이다.
소리장도의 또 다른 예는 바로 '臥薪嘗膽(와신상담)'이라는 고사의 주인공인 越王(월왕) '구천'이다.
춘추시대 말기, 위대한 전략가 손무와 명장 오자서의 힘으로 강국 초나라를 무찌르고 주변나라를 떨게 했던 吳나라의 왕 합려는 초를 치고 난 후, 越나라와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만다(이 때 손무는 은퇴한 이후이다). 이에 합려의 뒤를 이어 吳王이 된 합려의 손자인 '부차'는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한다. 그리고 합려의 상이 끝나자 곧 越을 치기 위해 군사를 움직인다. 손무는 없었지만 명장 오자서의 힘으로 월나라는 궤멸적인 타격을 받는다. 이에 월나라는 오왕의 측근인 백비를 매수하여 '월왕 부부가 신하가 되어 오나라에서 생활하는 것'을 조건으로 멸망은 면하게 된다.
월왕 구천은 오나라에 와서 오왕 부차의 신하로 생활하게 된다. 이때 '섶에 누워 쓸개를 빨며' 생활한 것이 '臥薪嘗膽(와신상담)'의 고사가 되었다. 오왕 부차의 경계를 풀기 위해 그의 배설물까지 먹어가며 고생을 하여 결국엔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물론 오자서가 반대했지만, 이미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는 오왕에겐 충신의 강직한 충언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월왕 구천은 고국으로 돌아가 즉시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복수를 계획한다. 그리고 오왕에게 많은 보물과 미인 '서시'를 바친다. '찡그린 얼굴도 그렇게 아름다웠다'는 '西施嚬目(서시빈목)'의 주인공인 서시를 선물로 받은 오왕 부차는 점점 더 방탕한 생활에 빠지게 된다. 그리하여 커다란 궁궐의 공사까지도 실행하는데 월왕은 커다란 목재를 보내 토목공사의 규모를 더 크게 부추켜 吳의 재정을 파탄나게 한다.
또한 한 해는 越나라에 흉년이 들었는데 吳나라에서 곡식을 꾸기로 했다. 과연 곡식을 빌려줄까 싶었으나 '복수를 꾀하고 있다면 곡식을 빌려달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에 따라 吳에서는 곡식을 꾸어준다. 다음해에는 越에는 풍년이 들었으나 吳에 흉년이 들었다. 월왕 구천은 이 때를 틈타 공격하려 하였으나 신하들이 만류한다. 越은 吳에 빚을 갚는다며 곡식을 보냈는데, 이 때 낱알이 좋은 것만을 골라 살짝 쪄서 보냈다. 이에 吳에서는 곡식의 품종이 좋은 것을 보고 다음해에 종자로 쓰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찐 씨앗이 자랄리가 없는 법. 吳에는 그 해에 유래없는 대흉을 맞게 되고, 이를 기회로 越은 吳를 크게 쳐 무너뜨린다. 吳王 부차는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을 받아주길 청하지만, 越王은 자신이 이미 그렇게 해서 살아남아 복수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인간의 복수심'을 쉽게 보지 않았다. 그러게 吳는 越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월왕 구천은 한 나라의 王으로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신하가 되고, 온갖 허드렛일을 다하고, 다른 사람의 대변까지 먹으면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리고는 그 힘든 날들을 지나며 복수심이 무뎌지게 하지 않기 위해 고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섶에 누워 쓸개를 빠는' 생활을 계속했다. 또한 吳王의 경계심이 느슨해지게 하기 위해 많은 뇌물을 보내 그 눈을 흐리게 만들었고, 미인 서시를 보내 정사로부터 관심이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급기야 吳를 무너뜨리기에 이른다. 이야말로 여몽의 예보다 훨씬 처절한 '笑裏藏刀'의 예라 할 것이다. 물론 이 예는 '臥薪嘗膽'으로 더 유명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관련 한자
유사어
口蜜腹劍(구밀복검) | 包藏禍心(포장화심) |
참조어
臥薪嘗膽(와신상담) | 西施嚬目(서시빈목) |
36계, 삼십육계, 삼십육계:적전계, 병법
三十六計, 三十六計:敵戰計
笑里藏刀(xiàolǐcángdāo)
笑 웃을 소 | 裏 속 리 | 藏 감출 장 | 刀 칼 도 |
三十六計 敵戰計 第十計. 웃음 속에 칼을 품다.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해칠 생각을 가지다. '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있다'라는 뜻으로, 겉으로는 웃는 낯으로 상냥하게 대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상대방을 해칠 뜻을 품고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웃음 속에 칼날을 숨기다. 우리 옛말에 '솜으로 칼을 싼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부드러운 말씨와 미소짓는 표정으로 상대방의 경계심을 풀고 방심하게 하라는 말이다. 병법에서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하여 안심시킨 뒤에 허를 찔러 공격하는 계책이다.
원문의 풀이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성의를 보여 적을 안심시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뜻하는 바를 도모하라. 충분히 준비한 후에 행동하라. 마음 속에 剛(강)을 품고 겉으로는 柔(유)를 보여라.[信而安之,陰以圖之,備而後動,勿使有變.剛中柔外也.]"
外柔內剛(외유내강)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나는 부분이다.
전통적으로 '笑裏藏刀'의 대명사로 꼽히는 인물은 '呂蒙(여몽)' 이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서 관우를 함정에 빠뜨려 사로잡고, 관우가 죽은 후 그의 혼령에 사로잡혀 죽게된 인물, 그가 바로 여몽이다. 자세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삼국지연의》에서 적벽대전 이후 유비는 형주를 차지해 버리고, 파촉을 차지하고, 한중까지 나아가 급기야는 스스로 '漢中王(한중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자, 위나라의 조조는 오나라의 손권과 손을 잡고 형주를 치려고 하였다. 유비는 관우를 보내 형주를 지키게 하면서 위나라의 번성을 치도록 하였다. 吳의 손권은 형주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지만, 관우는 吳에 있어 공포의 대상이었다. 노숙의 뒤를 이어 대도독의 자리에 오른 여몽은 관우가 번성을 치러 간 사이에 형주를 공략하고자 하나, 관우가 남겨놓은 봉화대가 큰 걸림돌이 되었다. 결국에 여몽은 자리에 드러눕고 만다. 손권이 크게 걱정하나 '陸遜(육손)'은 그 속을 꿰뚫어 보고 여몽을 문병간다. 여몽은 형주를 탈환하고 싶지만 관우의 봉화대가 걸림돌이 되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꾀병을 앓은 것이었다. 이에 육손이 조언을 한다.
"관우는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믿고 자기를 당해낼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소. 염려하는 사람은 오직 장군이 있을 뿐이오. 장군은 이러한 기회에 병을 칭탁하고 사직한 다음, 육구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그 사람에게 관우를 비굴한 말로 찬미케 하면 관우는 마음 가득 교만해져서 형주의 군사를 철수시켜 모두 번성으로 향하게 할 것이오. 만일 형주에 방비가 없다면 어찌 함락시키지 못하겠소?"
육구에 주둔한 오나라의 여몽(呂蒙)은 관우가 마음을 놓도록 하기 위하여 병이 든 것처럼 속여 물러갔고, 육손을 추천하며 사직을 청했다.
"만일 인망이 두터운 사람을 쓴다면 관우는 반드시 대비를 할 것이옵니다. 육손은 사려가 깊으나 아직 이름이 덜 알려졌으니 관우가 경계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 대신 임용하시면 반드시 성과가 있을 것이옵니다."
이리하여 무명의 육손(陸遜)이 여몽 대신 육구를 지키게 되었다. 육손은 육구에 부임하여 관우의 무용을 칭송하는 겸손한 내용의 편지 한 통을 써서 명마와 이금, 주례 등을 준비해 번성에 있는 관우에게 보냈다. 편지는 말놀림이 극히 겸손하고 조신했다. 관우는 읽고 나서 크게 웃으며 사자를 돌려보냈다. 관우는 노련한 여몽은 경계하였지만 젊고 무명인 육손에 대해서는 애송이라 여기고, 형주 병력의 태반을 거두어 번성을 공격하는 데 투입하였다. 여몽은 형주의 병력이 취약한 틈을 타서 공격하여 봉화대를 침묵시키고 형주를 함락시켰다. 관우는 여몽과 육손의 소리장도 계책에 넘어간 것이다.
연의에서는 여몽을 깎아내리기 위해 위의 계책도 여몽이 아닌 육손이 낸 것으로 되어있고, 또한 관우가 죽은 후 여몽은 관우의 혼령에 씌어 비참하게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正史에 의하면, 위의 계략은 여몽에 의한 것이었고, 여몽은 단지 병 때문에 죽은 것 뿐이었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겉으로는 상냥하게 남을 위하는 척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해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 대표적 인물이 당나라 고종 때 중서시랑을 지낸 이의부(李義府)이다. 그는 겉으로는 온화하고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미소를 지으며 선량한 얼굴을 하였다.
그러나 마음 속은 각박하고 간사하여 음험한 계책으로 다른 사람들을 해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의부의 웃음 속에는 칼이 숨겨져 있다고 말하였다(故時人言義府笑中有刀). 이 고사는 《구당서(舊唐書)》의 〈이의부전〉에 실려 있다. 당나라 현종 때의 간신 이임보(李林甫)의 고사에서 유래된 구밀복검(口蜜腹劍)과 같은 의미이다.
소리장도의 또 다른 예는 바로 '臥薪嘗膽(와신상담)'이라는 고사의 주인공인 越王(월왕) '구천'이다.
춘추시대 말기, 위대한 전략가 손무와 명장 오자서의 힘으로 강국 초나라를 무찌르고 주변나라를 떨게 했던 吳나라의 왕 합려는 초를 치고 난 후, 越나라와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만다(이 때 손무는 은퇴한 이후이다). 이에 합려의 뒤를 이어 吳王이 된 합려의 손자인 '부차'는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한다. 그리고 합려의 상이 끝나자 곧 越을 치기 위해 군사를 움직인다. 손무는 없었지만 명장 오자서의 힘으로 월나라는 궤멸적인 타격을 받는다. 이에 월나라는 오왕의 측근인 백비를 매수하여 '월왕 부부가 신하가 되어 오나라에서 생활하는 것'을 조건으로 멸망은 면하게 된다.
월왕 구천은 오나라에 와서 오왕 부차의 신하로 생활하게 된다. 이때 '섶에 누워 쓸개를 빨며' 생활한 것이 '臥薪嘗膽(와신상담)'의 고사가 되었다. 오왕 부차의 경계를 풀기 위해 그의 배설물까지 먹어가며 고생을 하여 결국엔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물론 오자서가 반대했지만, 이미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는 오왕에겐 충신의 강직한 충언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월왕 구천은 고국으로 돌아가 즉시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복수를 계획한다. 그리고 오왕에게 많은 보물과 미인 '서시'를 바친다. '찡그린 얼굴도 그렇게 아름다웠다'는 '西施嚬目(서시빈목)'의 주인공인 서시를 선물로 받은 오왕 부차는 점점 더 방탕한 생활에 빠지게 된다. 그리하여 커다란 궁궐의 공사까지도 실행하는데 월왕은 커다란 목재를 보내 토목공사의 규모를 더 크게 부추켜 吳의 재정을 파탄나게 한다.
또한 한 해는 越나라에 흉년이 들었는데 吳나라에서 곡식을 꾸기로 했다. 과연 곡식을 빌려줄까 싶었으나 '복수를 꾀하고 있다면 곡식을 빌려달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에 따라 吳에서는 곡식을 꾸어준다. 다음해에는 越에는 풍년이 들었으나 吳에 흉년이 들었다. 월왕 구천은 이 때를 틈타 공격하려 하였으나 신하들이 만류한다. 越은 吳에 빚을 갚는다며 곡식을 보냈는데, 이 때 낱알이 좋은 것만을 골라 살짝 쪄서 보냈다. 이에 吳에서는 곡식의 품종이 좋은 것을 보고 다음해에 종자로 쓰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찐 씨앗이 자랄리가 없는 법. 吳에는 그 해에 유래없는 대흉을 맞게 되고, 이를 기회로 越은 吳를 크게 쳐 무너뜨린다. 吳王 부차는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을 받아주길 청하지만, 越王은 자신이 이미 그렇게 해서 살아남아 복수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인간의 복수심'을 쉽게 보지 않았다. 그러게 吳는 越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월왕 구천은 한 나라의 王으로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신하가 되고, 온갖 허드렛일을 다하고, 다른 사람의 대변까지 먹으면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리고는 그 힘든 날들을 지나며 복수심이 무뎌지게 하지 않기 위해 고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섶에 누워 쓸개를 빠는' 생활을 계속했다. 또한 吳王의 경계심이 느슨해지게 하기 위해 많은 뇌물을 보내 그 눈을 흐리게 만들었고, 미인 서시를 보내 정사로부터 관심이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급기야 吳를 무너뜨리기에 이른다. 이야말로 여몽의 예보다 훨씬 처절한 '笑裏藏刀'의 예라 할 것이다. 물론 이 예는 '臥薪嘗膽'으로 더 유명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관련 한자
유사어
口蜜腹劍(구밀복검) | 包藏禍心(포장화심) |
참조어
臥薪嘗膽(와신상담) | 西施嚬目(서시빈목) |
36계, 삼십육계, 삼십육계:적전계, 병법
三十六計, 三十六計:敵戰計
無中生有 (무중생유)
無中生有(무중생유)
无中生有(wúzhōngshēngyǒu)
無 없을 무 | 中 가운데 중 | 生 날 생 | 有 있을 유
三十六計 敵戰計 第七計. 無에서 有를 창조하다. 본래 없던 일을 있다고 말하다. 없는 사실을 날조하다. 터무니없이 꾸며 대다.
'敵戰計(적전계)'의 敵은 '원수 적'이지만, '짝 적'으로도 해석된다. 즉 '필적하다'는 의미이며, '견줄만하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敵戰計'란 적과 병력이 비슷할 때 사용하는 계략을 뜻한다. 하지만 단순히 적과 병력이 비슷하다고 해서 무턱대고 사용하는 계략은 아니다. 적과 병력이 비슷해서 '어느 쪽도 섣불리 움직이기 힘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사용되는 계략이 '敵戰計'인 것이다.
無에서 有를 창조하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속이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속이는 것만은 아니다. 그 속이는 바를 실속있게 만드는 것이다. 無에서 有로, 虛에서 實로의 전환이 필요하다.[誑也,非誑也,實其所誑也.少陰,太陰,太陽.]"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三國志演義의 적벽대전. 그 적벽대전 직전의 吳의 대도독 주유는 후에 화근이 될 제갈량을 죽이고자 여러차례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제갈량을 죽여야한다는 주유의 결심은 확고해져 갔다. 그러다가 군사회의에서 주유가 제갈량에게 물었다.
"며칠 내에 조조와 싸우게 될 듯 싶소. 강에서 싸우자면 무슨 무기가 필요하겠소?"
"큰 강 위에서는 활과 화살이 주가 되어야겠지요."
"내 생각이 선생의 생각과 같소. 그러나 우리 군중에는 바로 그 화살이 부족하오. 수고스럽지만 선생께서 화살 10만개만 만들어 주시지 않겠소? 이것은 公的인일이니 거절하지 말아주시오."
"도독께서 부탁하시니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화살 10만개는 언제 쓰시려 하십니까?"
"열흘 안에 만들어 주실수 있겠소?"
"조조의 군사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데 열흘이나 허비하다가는 큰일을 그르칠 것입니다."
"그러면 며칠이나 걸릴 것 같소이까?"
"사흘이면 화살 10만개는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軍中(군중)에는 戱言(희언:농담)이 있을 수 없소!"
"어찌 감히 농담을 하겠습니까? 사흘 안에 화살 10만개를 조달하지 못하면 중벌을 받겠다는 軍令狀(군령장)이라도 써 드리겠소."
주유는 대단히 제갈량이 스스로 함정에 빠졌다며 대단히 기뻐했다. 제갈량이 사흘 안에 화살 10만개를 만들지 못하면 군령을 어긴 죄로 죽여버릴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노숙에게 일의 처리 상황을 보고하도록 했다. 노숙은 명령을 받고는 제갈량에게 갔다. 제갈량이 노숙에게 말했다.
"내가 자경(노숙)에게 누차 말하지 않았소? 공근(주유)에게 말하면 그가 반드시 나를 해치려 할 것이니 말하지 말라고. 그 덕에 내가 공경에 빠지게 되었으니, 자경이 나를 구해주어야겠소."
"공이 스스로 화를 불렀는데, 내가 어찌 구해드릴 수가 있겠소?"
"자경은 나에게 배 스무척만 빌려주시기 바라오. 배마다 30명의 군사가 있어야 하오. 배는 푸른 장막으로 둘러치고 그 속에 짚단 1천여단을 배 양쪽으로 나누어 쌓아 주오. 나에게 쓸 곳이 있소. 그러나 공근에게 또 알려서는 아니되오."
노숙은 그 뜻은 알 수 없었으나,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주유에게 제갈량은 대나무, 새깃, 아교(화살을 만드는 재료들)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약속한 배에 대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 주유는 의아해하며 어쨌거나 사흘 동안 기다려 보기로 했다.
노숙은 쾌속선 20척을 선발하여 제갈량이 말한대로 준비를 해두고 제갈량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첫째날, 제갈량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둘째날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사흘째 되는 날 새벽에 제갈량은 노숙을 찾았다.
"이제 화살을 가지러 갑시다."
"어디 가서 가져온다는 것이오?"
"물어볼 것 없이 가보면 아시게 될게요."
제갈량은 즉시 배를 긴 밧줄로 연결하게 한 다음 북쪽을 향해 이동했다. 이 날의 장강은 안개가 짙게 끼어 눈 앞에 있는 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새벽 오경 무렵이 되자 배들은 조조의 수상영채 가까이 접근하게 되었다. 제갈량은 뱃머리를 서쪽으로 향하게 하고 배꼬리가 동쪽으로 향하게 하여 배를 한 줄로 늘어세웠다. 그리고 배 위에서 병사들에게 북을 치며 함성을 지르라 명했다. 노숙이 깜짝 놀랐다.
"조조의 병사들이 공격해 오면 어찌합니까?"
"공은 아무 걱정 말고, 나하고 술이나 드십시다."
한편 보고를 받은 조조는 이렇게 명령했다.
"짙은 안개 속에서 갑자기 쳐들어 온 것을 보면 반드시 매복이 있을 것이다. 절대로 가벼이 나가지 말고, 수군 궁노수를 동원하여 난전을 쏘도록 하라. 그리고 장료와 서황의 육상 궁노군 3천명씩을 대동하여 강변으로 나와 화살을 쏘아 돕도록 하라."
이리하여 조조의 궁노수 대략 1만여명이 강을 향해 화살을 쏘아 댔다. 화살은 빗발치듯 날아들었다. 제갈량은 이번에는 뱃머리와 배꼬리의 방향을 바꾼후 한층 더 힘차게 북을 치고 고함을 지르게 했다. 화살은 더욱 빗발치듯 쏟아졌다.
해가 높아져 안개가 걷힐 즈음 제갈량은 재빨리 배를 거두어 돌아가자는 명을 내렸다. 그리고 배의 모든 병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외치게 했다.
"승상! 화살 고맙게 잘 쓰겠소!"
노숙이 가져온 쾌속선은 워낙에 빨라, 조조의 수군이 따라잡을 수 없었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제갈량이 노숙에게 말했다.
"배마다 5~6천개의 화살이 꽂혀있을 것이오. 조금의 힘도 들이지 않고 10만개의 화살을 얻었소. 내일이라도 바로 조조의 병사들에게 쏘아 돌려줘도 될 것이오."
"선생은 참으로 神人(신인)이시오. 오늘 이렇게 짙은 안개가 낄 줄 아셨소이까?"
"장수가 되어 천문을 알지 못하고, 지리를 알지 못하고, 기문을 알지 못하고, 음양을 알지 못하고, 진도를 볼 줄 모르고, 병세에 밝지 못하다면 이는 용렬한 사람이오. 나는 이미 사흘 전에 오늘 짙은 안개가 낄 줄 알고 말미를 사흘로 잡은 것이오. 공근은 화살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나를 죽이려 했겠지만, 내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어찌 공근이 나를 죽일 수 있겠소?"
노숙은 가슴 깊이 감복했다. 돌아가자 노숙은 주유에게 자세히 보고했다. 그러자 주유는 크게 놀라 개연히 탄식했다.
"공명은 지략이 귀신 같소이다. 나는 따라가지 못하겠소."
관련 한자어
유의어
捕风捉影(bǔfēngzhuōyǐng): 말이나 일이 전혀 근거가 없다.
捕 사로잡을 포 | 风 바람 풍 | 捉 잡을 착 | 影 그림자 영 |
无中生有(wúzhōngshēngyǒu)
無 없을 무 | 中 가운데 중 | 生 날 생 | 有 있을 유
三十六計 敵戰計 第七計. 無에서 有를 창조하다. 본래 없던 일을 있다고 말하다. 없는 사실을 날조하다. 터무니없이 꾸며 대다.
'敵戰計(적전계)'의 敵은 '원수 적'이지만, '짝 적'으로도 해석된다. 즉 '필적하다'는 의미이며, '견줄만하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敵戰計'란 적과 병력이 비슷할 때 사용하는 계략을 뜻한다. 하지만 단순히 적과 병력이 비슷하다고 해서 무턱대고 사용하는 계략은 아니다. 적과 병력이 비슷해서 '어느 쪽도 섣불리 움직이기 힘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사용되는 계략이 '敵戰計'인 것이다.
無에서 有를 창조하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속이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속이는 것만은 아니다. 그 속이는 바를 실속있게 만드는 것이다. 無에서 有로, 虛에서 實로의 전환이 필요하다.[誑也,非誑也,實其所誑也.少陰,太陰,太陽.]"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三國志演義의 적벽대전. 그 적벽대전 직전의 吳의 대도독 주유는 후에 화근이 될 제갈량을 죽이고자 여러차례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제갈량을 죽여야한다는 주유의 결심은 확고해져 갔다. 그러다가 군사회의에서 주유가 제갈량에게 물었다.
"며칠 내에 조조와 싸우게 될 듯 싶소. 강에서 싸우자면 무슨 무기가 필요하겠소?"
"큰 강 위에서는 활과 화살이 주가 되어야겠지요."
"내 생각이 선생의 생각과 같소. 그러나 우리 군중에는 바로 그 화살이 부족하오. 수고스럽지만 선생께서 화살 10만개만 만들어 주시지 않겠소? 이것은 公的인일이니 거절하지 말아주시오."
"도독께서 부탁하시니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화살 10만개는 언제 쓰시려 하십니까?"
"열흘 안에 만들어 주실수 있겠소?"
"조조의 군사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데 열흘이나 허비하다가는 큰일을 그르칠 것입니다."
"그러면 며칠이나 걸릴 것 같소이까?"
"사흘이면 화살 10만개는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軍中(군중)에는 戱言(희언:농담)이 있을 수 없소!"
"어찌 감히 농담을 하겠습니까? 사흘 안에 화살 10만개를 조달하지 못하면 중벌을 받겠다는 軍令狀(군령장)이라도 써 드리겠소."
주유는 대단히 제갈량이 스스로 함정에 빠졌다며 대단히 기뻐했다. 제갈량이 사흘 안에 화살 10만개를 만들지 못하면 군령을 어긴 죄로 죽여버릴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노숙에게 일의 처리 상황을 보고하도록 했다. 노숙은 명령을 받고는 제갈량에게 갔다. 제갈량이 노숙에게 말했다.
"내가 자경(노숙)에게 누차 말하지 않았소? 공근(주유)에게 말하면 그가 반드시 나를 해치려 할 것이니 말하지 말라고. 그 덕에 내가 공경에 빠지게 되었으니, 자경이 나를 구해주어야겠소."
"공이 스스로 화를 불렀는데, 내가 어찌 구해드릴 수가 있겠소?"
"자경은 나에게 배 스무척만 빌려주시기 바라오. 배마다 30명의 군사가 있어야 하오. 배는 푸른 장막으로 둘러치고 그 속에 짚단 1천여단을 배 양쪽으로 나누어 쌓아 주오. 나에게 쓸 곳이 있소. 그러나 공근에게 또 알려서는 아니되오."
노숙은 그 뜻은 알 수 없었으나,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주유에게 제갈량은 대나무, 새깃, 아교(화살을 만드는 재료들)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약속한 배에 대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 주유는 의아해하며 어쨌거나 사흘 동안 기다려 보기로 했다.
노숙은 쾌속선 20척을 선발하여 제갈량이 말한대로 준비를 해두고 제갈량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첫째날, 제갈량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둘째날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사흘째 되는 날 새벽에 제갈량은 노숙을 찾았다.
"이제 화살을 가지러 갑시다."
"어디 가서 가져온다는 것이오?"
"물어볼 것 없이 가보면 아시게 될게요."
제갈량은 즉시 배를 긴 밧줄로 연결하게 한 다음 북쪽을 향해 이동했다. 이 날의 장강은 안개가 짙게 끼어 눈 앞에 있는 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새벽 오경 무렵이 되자 배들은 조조의 수상영채 가까이 접근하게 되었다. 제갈량은 뱃머리를 서쪽으로 향하게 하고 배꼬리가 동쪽으로 향하게 하여 배를 한 줄로 늘어세웠다. 그리고 배 위에서 병사들에게 북을 치며 함성을 지르라 명했다. 노숙이 깜짝 놀랐다.
"조조의 병사들이 공격해 오면 어찌합니까?"
"공은 아무 걱정 말고, 나하고 술이나 드십시다."
한편 보고를 받은 조조는 이렇게 명령했다.
"짙은 안개 속에서 갑자기 쳐들어 온 것을 보면 반드시 매복이 있을 것이다. 절대로 가벼이 나가지 말고, 수군 궁노수를 동원하여 난전을 쏘도록 하라. 그리고 장료와 서황의 육상 궁노군 3천명씩을 대동하여 강변으로 나와 화살을 쏘아 돕도록 하라."
이리하여 조조의 궁노수 대략 1만여명이 강을 향해 화살을 쏘아 댔다. 화살은 빗발치듯 날아들었다. 제갈량은 이번에는 뱃머리와 배꼬리의 방향을 바꾼후 한층 더 힘차게 북을 치고 고함을 지르게 했다. 화살은 더욱 빗발치듯 쏟아졌다.
해가 높아져 안개가 걷힐 즈음 제갈량은 재빨리 배를 거두어 돌아가자는 명을 내렸다. 그리고 배의 모든 병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외치게 했다.
"승상! 화살 고맙게 잘 쓰겠소!"
노숙이 가져온 쾌속선은 워낙에 빨라, 조조의 수군이 따라잡을 수 없었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제갈량이 노숙에게 말했다.
"배마다 5~6천개의 화살이 꽂혀있을 것이오. 조금의 힘도 들이지 않고 10만개의 화살을 얻었소. 내일이라도 바로 조조의 병사들에게 쏘아 돌려줘도 될 것이오."
"선생은 참으로 神人(신인)이시오. 오늘 이렇게 짙은 안개가 낄 줄 아셨소이까?"
"장수가 되어 천문을 알지 못하고, 지리를 알지 못하고, 기문을 알지 못하고, 음양을 알지 못하고, 진도를 볼 줄 모르고, 병세에 밝지 못하다면 이는 용렬한 사람이오. 나는 이미 사흘 전에 오늘 짙은 안개가 낄 줄 알고 말미를 사흘로 잡은 것이오. 공근은 화살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나를 죽이려 했겠지만, 내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어찌 공근이 나를 죽일 수 있겠소?"
노숙은 가슴 깊이 감복했다. 돌아가자 노숙은 주유에게 자세히 보고했다. 그러자 주유는 크게 놀라 개연히 탄식했다.
"공명은 지략이 귀신 같소이다. 나는 따라가지 못하겠소."
관련 한자어
유의어
捕风捉影(bǔfēngzhuōyǐng): 말이나 일이 전혀 근거가 없다.
捕 사로잡을 포 | 风 바람 풍 | 捉 잡을 착 | 影 그림자 영 |
隔岸觀火 (격안관화)
隔岸觀火 (격안관화)
隔岸观火(gé'ànguānhuǒ)
隔 사이 뜰 격 | 岸 언덕 안 | 觀 볼 관 | 火 불 화,화반 화 |
三十六計 敵戰計 第九計. 강가에 앉아 맞은편 기슭에 난 불을 바라보다. 강 건너 불 보듯 하다. 수수방관하다.
강 건너 불보듯 하다. 우리에게도 쉽게 와닿는 말일 것이다. 문자 그대로의 계략이다. 건너편에 불이 나면 그냥 구경이나 하라는 것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적 진영이 자중지란에 빠지면, 조용히 그들의 변란을 기다린다. 횡폭한 세력은 자멸하기 마련이다. 사태의 변화에 순응하며 순리에 따라 행동하라.[陽乖序亂,陰以待逆.暴戾恣睢,其勢自斃.順以動豫,豫順以動.]"
역시나 간단한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이번에도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일화이다.
관도대전에서의 승리로 원소를 궤멸시킨 조조는 살아남은 원소의 두 아들, 원희(원소의 차남)과 원상(원소의 삼남)을 죽이고자 계속 추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袁家(원가)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 만리장성을 넘어 이민족의 땅에까지 쳐들어갔다.
하지만 조조가 신뢰하던 軍師(군사)인 郭嘉(곽가)가 죽어 조조는 크게 상심하고 있었다.
"봉효(곽가)가 죽은 것은 바로 하늘이 나를 망치려는 것이오."
그리고 여러 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모두 나이가 나와 비슷하지만 봉효는 한참 적소. 그래서 나는 후사를 그에게 부탁하려 했는데, 이렇게 뜻밖에 요절을 하니 가슴이 미어지는구려."
곽가를 모시던 사람들이 봉함된 편지를 바치며 말했다.
"곽공께서 돌아가실 무렵 손수 써서 봉해 놓은 편지이옵니다. '승상께서 만일 이 편지대로 하신다면 요동의 일은 평정될 것이다'고 하셨사옵니다."
조조는 편지를 뜯어 보고 머리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그 뜻을 몰랐다.
이튿날, 하후돈이 무리를 이끌고 들어와 품했다.
"요동태수 공손강은 오래전부터 賓服(빈복 : 제후가 천자에게 공물을 바치고 복종하는것)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 또 원희와 원상이 가서 의탁했으니 반드시 후환이 될 것이옵니다.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빨리 가서 토벌하는 것이 낫사옵니다. 그래야만 요동을 평정할 수 있습니다."
조조가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이 번거롭게 虎威(호위)를 뽐내지 않아도 며칠 후면 공손강이 스스로 원희와 원상의 머리를 보내올 것이오."
여러 장수들은 모두 믿으려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다. 조조는 여전히 군사를 역현에 묶어둔 채 움직이지 않았다. 하후돈과 장료가 들어와서 품했다.
"요동을 정벌하지 않을 것 같으면 허도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유표가 딴마음을 먹을까 두렵습니다."
"원희와 원상의 수급이 오면 즉시 회군하겠다."
여러 사람들은 은근히 비웃었다. 그 때 갑자기 사람이 들어와 공손강이 원희와 원상의 수급을 보내왔다고 아뢰었다. 여러 사람은 모두 크게 놀랐다. 조조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과연 곽봉효의 예상이 틀리지 않는구나!"
조조는 사자에게 큰 상을 내리고 공손강을 양평후 좌장군에 봉했다. 여러 관원이 조조에게 물었다.
"어째서 곽봉효의 예상이 틀리지 않다고 하시옵니까?"
조조는 곽가의 편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 원희와 원상은 요동으로 몸을 의탁하러 갔다고 하는데, 명공께서는 절대로 쳐들어가지 마소서. 공손강은 오래전부터 원씨가 자기의 땅을 빼앗을까봐 두려워 했는데 원희와 원상이 의탁하러 갔으니 반드시 의심을 할 것이옵니다. 만일 군사를 이끌고 가서 공격하면 반드시 힘을 합해 맞설 것이니 간단히 쳐부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공격을 늦추고 있으면 공손강과 원씨는 반드시 자기들끼리 죽이고자 획책할 것이옵니다. 그러니 명공께서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시면 되옵니다.
강건너 불구경하라는 隔岸觀火(격안관화)는 제5계인 趁火打劫(진화타겁)의 불난 집에 들어가 도둑질하라는 전략과 상충되는 면이 있다.
隔岸观火(gé'ànguānhuǒ)
隔 사이 뜰 격 | 岸 언덕 안 | 觀 볼 관 | 火 불 화,화반 화 |
三十六計 敵戰計 第九計. 강가에 앉아 맞은편 기슭에 난 불을 바라보다. 강 건너 불 보듯 하다. 수수방관하다.
강 건너 불보듯 하다. 우리에게도 쉽게 와닿는 말일 것이다. 문자 그대로의 계략이다. 건너편에 불이 나면 그냥 구경이나 하라는 것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적 진영이 자중지란에 빠지면, 조용히 그들의 변란을 기다린다. 횡폭한 세력은 자멸하기 마련이다. 사태의 변화에 순응하며 순리에 따라 행동하라.[陽乖序亂,陰以待逆.暴戾恣睢,其勢自斃.順以動豫,豫順以動.]"
역시나 간단한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이번에도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일화이다.
관도대전에서의 승리로 원소를 궤멸시킨 조조는 살아남은 원소의 두 아들, 원희(원소의 차남)과 원상(원소의 삼남)을 죽이고자 계속 추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袁家(원가)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 만리장성을 넘어 이민족의 땅에까지 쳐들어갔다.
하지만 조조가 신뢰하던 軍師(군사)인 郭嘉(곽가)가 죽어 조조는 크게 상심하고 있었다.
"봉효(곽가)가 죽은 것은 바로 하늘이 나를 망치려는 것이오."
그리고 여러 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모두 나이가 나와 비슷하지만 봉효는 한참 적소. 그래서 나는 후사를 그에게 부탁하려 했는데, 이렇게 뜻밖에 요절을 하니 가슴이 미어지는구려."
곽가를 모시던 사람들이 봉함된 편지를 바치며 말했다.
"곽공께서 돌아가실 무렵 손수 써서 봉해 놓은 편지이옵니다. '승상께서 만일 이 편지대로 하신다면 요동의 일은 평정될 것이다'고 하셨사옵니다."
조조는 편지를 뜯어 보고 머리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그 뜻을 몰랐다.
이튿날, 하후돈이 무리를 이끌고 들어와 품했다.
"요동태수 공손강은 오래전부터 賓服(빈복 : 제후가 천자에게 공물을 바치고 복종하는것)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 또 원희와 원상이 가서 의탁했으니 반드시 후환이 될 것이옵니다.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빨리 가서 토벌하는 것이 낫사옵니다. 그래야만 요동을 평정할 수 있습니다."
조조가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이 번거롭게 虎威(호위)를 뽐내지 않아도 며칠 후면 공손강이 스스로 원희와 원상의 머리를 보내올 것이오."
여러 장수들은 모두 믿으려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다. 조조는 여전히 군사를 역현에 묶어둔 채 움직이지 않았다. 하후돈과 장료가 들어와서 품했다.
"요동을 정벌하지 않을 것 같으면 허도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유표가 딴마음을 먹을까 두렵습니다."
"원희와 원상의 수급이 오면 즉시 회군하겠다."
여러 사람들은 은근히 비웃었다. 그 때 갑자기 사람이 들어와 공손강이 원희와 원상의 수급을 보내왔다고 아뢰었다. 여러 사람은 모두 크게 놀랐다. 조조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과연 곽봉효의 예상이 틀리지 않는구나!"
조조는 사자에게 큰 상을 내리고 공손강을 양평후 좌장군에 봉했다. 여러 관원이 조조에게 물었다.
"어째서 곽봉효의 예상이 틀리지 않다고 하시옵니까?"
조조는 곽가의 편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 원희와 원상은 요동으로 몸을 의탁하러 갔다고 하는데, 명공께서는 절대로 쳐들어가지 마소서. 공손강은 오래전부터 원씨가 자기의 땅을 빼앗을까봐 두려워 했는데 원희와 원상이 의탁하러 갔으니 반드시 의심을 할 것이옵니다. 만일 군사를 이끌고 가서 공격하면 반드시 힘을 합해 맞설 것이니 간단히 쳐부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공격을 늦추고 있으면 공손강과 원씨는 반드시 자기들끼리 죽이고자 획책할 것이옵니다. 그러니 명공께서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시면 되옵니다.
강건너 불구경하라는 隔岸觀火(격안관화)는 제5계인 趁火打劫(진화타겁)의 불난 집에 들어가 도둑질하라는 전략과 상충되는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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