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擧措失當 (거조실당)

擧措失當(거조실당)

擧 들 거 | 措 둘 조, 섞을 착, 잡을 책, 찌를 척 | 失 잃을 실, 놓을 일 | 當 마땅 당 |

모든 조치(措置)가 정당(正當)하지 않음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의 이야기다.

진시황 26년, 즉 기원전 221년 진(秦)나라는 6국을 멸하고 천하(天下)를 통일했다. 진시황은 곧이어 전국을 36개 군(郡)으로 나누고 도량형(度量衡)을 통일했다. 이듬해, 진시황은 위덕(威德)을 선양하기 위하여 천하(天下)를 돌기 시작했다.

기원전 219년, 진시황은 태산(泰山)에서 제사를 지내고, 다시 남쪽으로 낭야산(琅邪山)에 올랐다. 이곳에서 진시황은 낭야대를 쌓고, 비석을 세워 자신의 공덕(功德)과 진(秦)나라 왕조의 덕정(德政)을 담은 비문(碑文)을 새겼다.

다음은 비문에 나오는 대목이다.

憂恤黔首, 朝夕不懈. 除疑定法, 咸知所辟. 方伯分職, 諸治經易. 擧錯必當, 莫不如畵.

'진시황께서는 백성(百姓)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조석(朝夕)으로 게으름을 피지 않으시고, 의혹을 제거하고 법령을 제정하시니 백성(百姓)들이 모두 법으로 금한 일을 피할 줄 알게 되었다. 지방 장관의 직무가 나뉘어서 모든 정무의 시행이 용이(容易)해지고, 모든 조치가 타당하여 바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출전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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擧一反三 (거일반삼)

擧一反三(거일반삼)

擧 들 거 | 一 한 일 | 反 돌이킬 반, 돌아올 반, 어려울 번, 삼갈 판 | 三 석 삼 |

한 가지를 들어서 세가지를 돌이켜 안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을 미루어 모든 일을 헤아림. 매우 영리(怜悧ㆍ伶俐)함을 이르는 말


원래는 한 귀퉁이를 가리키면 나머지 세 귀퉁이도 미루어 헤아릴 수 있다는 뜻으로, 한 가지를 가르치면 세 가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하거나 지혜가 있음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 나온다.

공자가 말하였다.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 가르쳐 주지 않고, 표현하고자 하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더듬거릴 정도에 이르지 않으면 일으켜 주지 않는다. 한 귀퉁이를 들어 가르쳐 주었는데도 나머지 세 귀퉁이를 미루어 알지 못하면 되풀이하지 않는다(擧一隅 不以隅三 則不復也)."

공자는, 하나를 일러 주었음에도 나머지 셋을 미루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되풀이해서 가르쳐 주더라도 소용이 없고, 다만 그 셋을 알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음을 말한 것이다. 거일반삼은 여기서 유래하였다. 이와 같이 영리한 사람을 뜻하는 말에 '문일지십(聞一知十)'이 있는데,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뜻으로, 《논어》 공야장(公冶長)편에 나온다.

반대되는 표현으로는 '우이독경(牛耳讀經)'이 있는데, 이 말은 '쇠귀에 경읽기'라는 뜻이다.


출전

論語(논어) 述而篇(술이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문일지십(聞一知十) |

반의어·상대어

우이독경(牛耳讀經)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4급 사자성어 |

擧案齊眉 (거안제미)

擧案齊眉(거안제미)

举案齐眉(jǔ àn qí méi)。

擧 들 거 | 案 책상 안 | 齊 가지런할 제, 재계할 재, 옷자락 자, 자를 전 | 眉 눈썹 미 |

밥상을 눈썹 높이로 들어 공손(恭遜)히 남편(男便) 앞에 가지고 간다는 뜻으로, 남편(男便)을 깍듯이 공경(恭敬)함을 일컫는 말


후한서(後漢書) 양홍전(梁鴻傳)의 이야기다.

동한(東漢)시대, 집은 가난하지만 절개가 곧은 양홍(梁鴻)이란 학자가 있었다. 그는 일찍 부모를 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태학(太學)을 마쳐 많은 학식을 갖추었다. 그러나 그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들에서 돼지를 기르며 살았다.

그런데 맹(孟)씨라는 사람의 집에 다 자란 딸 맹광(孟光)이 있었는데, 그녀는 뚱뚱한 몸매에 시커먼 얼굴, 게다가 힘은 장사였다. 그녀의 부모가 그녀에게 결혼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묻자, 그녀는 '양홍(梁鴻)같은 훌륭한 분이 아니면 시집을 가지 않겠다'라고 대답했다.

이 소식을 들은 양홍(梁鴻)은 이 처녀에게 청혼을 하여 결혼을 했다. 결혼 후 며칠이 지나도 잠자리를 같이 아니하자 색시가 궁금하여 그 이유를 물었다.

양홍(梁鴻)이 대답(對答)하기를 "내가 원했던 부인은 비단옷 입고 진한 화장을 한 여자가 아니라 누더기 옷을 입고 깊은 산 속에서 살 수 있는 그런 여자였소."라고 했다. 그러자 색시는 "이제 당신의 마음을 알았으니 당신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라고 대답(對答)했다.

그 후로 그녀는 화장도 하지 않고 산골 농부의 차림으로 양홍(梁鴻)과 산 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베를 짜면서 생활했다. 양홍(梁鴻)은 농사짓는 틈틈이 시를 지어 친구(親舊)들에게 보냈는데, 왕실을 비방하는 시가 발각되어 오(吳)나라로 건너가 고백통이라는 병문가의 방앗간지기가 되어 지냈다. 그러나 양홍(梁鴻)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내는 밥상을 눈썹 위까지 들어올려 남편에게 공손하게 바쳤다고 한다. [不敢于鴻前仰視, 擧案齊眉] 고백통은 양홍(梁鴻) 내외를 보통으로 보지 않고 그들을 도왔고, 양홍(梁鴻)은 수십 편의 책을 저술할 수가 있었다.

擧案齊眉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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擧世皆濁 (거세개탁)

擧世皆濁(거세개탁)

擧 들 거 | 世 세상 세 | 皆 다 개 | 濁 흐릴 탁 |

온 세상이 다 흐림.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음.

'거세개탁'은 초(楚)나라의 충신 굴원이 지은 '漁父辭(어부사)'에 실린 고사성어다.

초나라 忠臣(충신) 屈原(굴원)이 간신의 모함을 입고 벼슬에서 쫓겨나와 강가를 거닐며 憔悴(초췌)한 모습으로 시를 읊고 있는데 고기잡이 영감이 배를 저어 지나다가 그가 굴원인 것을 알고, 어찌하여 이 꼴이 되었느냐면서 안타까워 까닭을 물었다. 굴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온 세상이 흐려 있는데 나만이 홀로 맑고 뭇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이 홀로 깨어 있다. 그래서 쫓겨난 것이다[擧世皆濁 我獨法 衆人皆濁 我獨醒(거세개탁 아독법 중인개탁 아독성)].”

온 세상이 혼탁한 가운데서는 홀로 맑게 깨어있기가 쉽지 않고, 깨어있다고 해도 세상과 화합하기 힘든 처지를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된다.

擧棋不定 (거기부정)

擧棋不定(거기부정)

擧 들 거 | 棋 바둑 기 | 不 아닐 부, 아닐 불 | 定 정할 정, 이마 정 |

바둑을 두는 데 포석(布石)할 자리를 결정(決定)하지 않고 둔다면 한 집도 이기기 어렵다는 뜻으로, 사물(事物)을 명확(明確)한 방침(方針)이나 계획(計劃)을 갖지 않고 대함을 의미(意味)


춘추좌전(春秋左傳) 양공(襄公) 25년조에 나오는 이야기다.

춘추말기, 즉 기원전 548년 위(衛)나라 대부(大夫) 손임보(孫林父)와 영식 등은 위나라 헌공(獻公)을 축출하고, 그의 동생인 상공을 군주로 삼았다. 복귀하려는 계책을 세우던 헌공은 사람을 보내어 영식의 아들인 영희에게 자신을 도와준다면 돌아가서 위나라의 정무(政務)를 그에게 맡기겠다는 말을 전했다. 영희는 매우 기뻐하며 곧 협조하겠다고 응답했다.

대숙문자(大叔文子)가 이 소문을 듣고, 영희의 우유부단한 태도를 걱정하며 말했다.

"군자는 행동함에 그 종말을 생각하고, 그대로 행해도 좋은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는 군주 보기를 바둑 두는 일 같이도 여기지 않으니, 어찌 화를 면하랴! 바둑 돌을 들고 놓을 곳을 정하지 못하면 상대를 이기지 못하는데[弈者擧棋不定, 不勝其耦], 하물며 군주를 모시는 일에 주관이 없어서야?"

12년 후, 영희는 군주로 복귀한 헌공의 손에 죽었다.

擧棋不定이란 확고한 주관이 없거나 계획이 수시로 바뀜 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 左傳˙襄公二十五年 |

成語“舉棋不定”出自春秋時期《左傳﹒襄公二十五年》:“弈者舉棋不定,不勝其耦。”
說的是下圍棋而舉棋不定,猶猶豫豫者無法取勝。
這也是現存中國曆史上最早關於圍棋的確切記載。


관련 한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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