倒行逆施 (도행역시)

도행역시(倒行逆施)

倒 거꾸로 할 도 | 行 행할 행 | 逆 거스를 역 | 施 베풀 시 |

차례(次例)를 거꾸로 시행(施行)한다는 뜻으로, 곧 도리(道理)에 순종(順從)하지 않고 일을 행(行)하며 상도(常道)를 벗어나서 일을 억지로 함을 뜻


춘추 시대 초(楚)나라에 오자서(伍子胥)란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 오사(伍奢)는 왕자의 스승이고 형 역시 관직에 있었는데, 비무기(費無忌)라는 간신배의 모략에 걸려 아버지와 형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자기 목숨도 위태롭다고 본 오자서는 깊은 원한을 품고 멀리 도망치기로 했다. 그런데 도중에 친구인 신포서(申包胥)를 만나게 되었다.

“자네 어디로 가는 건가?”

“동쪽 오(吳)나라로 갈까 하네. 지금은 힘이 없어 달아나지만, 이놈의 나라를 멸하여 원수를 갚을 테니 두고 보게.”

오자서의 심정을 이해하는 신포서는 깊은 동정을 표하는 한편, 좋은 말로 다독거렸다.

“자네 마음을 내가 왜 못 헤아리겠는가. 하지만 원한을 슬기롭게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참된 선비일세. 더군다나 사적인 감정으로 자기 나라를 뒤엎겠다는 발상은 듣기에도 거북하네 그려.”

그렇지만 뼈저린 원한에 불타는 오자서의 귀에 그 말이 제대로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언성이 높아졌고, 끝내 친구가 마음을 돌리지 않음에 화가 난 신포서는 얼굴을 붉혔다.

“좋아. 자네가 정 초나라를 멸하겠다면 어디 해 보게나! 나는 역으로 기필코 구해 보이고 말 테니.”

이런 언쟁으로 두 사람은 우정을 깨뜨리고 결별하게 되었다.

양자강을 따라 고생고생 끝에 오나라로 간 오자서는 공자(公子) 광(光)을 사귀었다. 그리하여 광이 사촌 아우인 요(僚)임금을 시해하고 왕위를 찬탈할 때 적극 협조하여 출세의 기회를 잡았다. 이렇게 하여 등극한 오왕이 역사상으로 유명한 합려(闔閭)인데, 특출한 자질을 발휘하여 두각을 나타낸 오자서는 대부(大夫)가 되어 조정 일을 좌지우지하는 실력자로 올라섰다. 그는 합려에게 초나라를 정벌하자고 기회 있을 때마다 설득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왕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한 오자서는 정벌군의 선두에 서서 고국인 초나라로 향했다.

진격에 진격을 거듭한 오나라 군대는 마침내 초나라 도읍인 영(郢)에 들이닥쳤고, 별다른 대비도 없었던 초나라는 난리가 났다. 이때는 이미 평왕이 죽고 소왕(昭王)이 후사를 잇고 있었는데, 소왕은 혼비백산하여 도성을 버리고 달아나 버렸다. 도성을 점령하긴 했으나 살아 있는 평왕에게 직접 복수할 수 없게 된 오자서는 무덤을 파헤쳐 유해를 끌어내어 마구 채찍질을 했고[掘墓鞭屍(굴묘편시)], 그러고도 모자라 뼈를 짓찧어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이 정도로는 내 아버님과 형님의 원한을 풀기에 모자란다. 원수의 아들 놈을 붙들어 죽여야만 끝나는 것이다.”

오자서는 이렇게 부르짖으며 부하들로 하여금 소왕을 추적하라고 명령했다. 그때 옛 친구 신포서의 편지가 날아왔다. 행동이 너무 잔혹하지 않느냐고 꾸짖고, 그 정도에서 그쳐 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오자서는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기 때문에[日暮途遠(일모도원)] 도리에 어긋나는 줄 알면서도 부득이하게 순리에 거슬러 행동했다[倒行逆施(도행역시)]’고 거절했다.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고 판단한 신포서는 북쪽 진(秦)나라에 달려가 애공(哀公)을 붙들고 눈물로 구원군을 요청했고, 그 애소에 감복한 애공은 마침내 출병을 허락했다.

“진나라가 끼어들겠다고? 좋다! 어디 맛을 보여 주지.”

오자서는 투지를 불태우며 이번에는 창끝을 진나라에 겨누었다. 그런데 이때 오나라 국내에 반란이 일어났다. 다급해진 오자서는 진나라와의 결전과 소왕 추적을 포기하고 회군을 서둘렀다. 그리하여 오나라에 돌아오자마자 반란군을 격파해 급한 불은 껐지만, 그를 신임한 합려가 죽고 공자인 부차(夫差)가 왕위를 계승하면서 그의 입지는 눈에 띄게 약화되어 갔다.

부차는 타국 출신으로 자기네 나라에 들어와서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오자서를 평소부터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왕권을 쥐게 되자 그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것이다. 오자서를 시기하던 백비(佰嚭)가 갖은 험담으로 중상모략하자, 부차는 그 말을 전적으로 믿고 오자서로 하여금 자결하도록 명령했다.

“아하, 세상 이치란 결국 이런 것인가!”

오자서는 여전히 해소하지 못한 채 자결하고 말았다.


출전

史記(사기) 伍子胥傳(오자서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倒行(도행) |

참조어

掘墓鞭屍(굴묘편시) | 倒行逆施(도행역시) | 日暮途遠(일모도원) |

塗炭之苦 (도탄지고)

塗炭之苦(도탄지고)

塗 진흙 도 | 炭 숯 탄 | 之 갈 지 | 苦 괴로울 고 |

서경(書經) 중훼지고(仲虺之誥)에는 은(殷)나라 탕왕(湯王)의 어진 신하였던 중 훼가 탕왕에게 고하는 글이 실려있다. 탕왕은 무력으로 왕위를 차지한 것을 늘 괴롭게 여기고 후세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구실 삼을까 염려하였다. 중훼는 이러한 탕왕의 마음을 알고 다음과 같이 아뢰어 그를 격려하였다.

하늘은 총명한 이를 내셔서 이들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하(夏)나라 임금은 덕에 어두워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게 되었으니(民墜塗炭), 하늘은 이에 임금님께 용기와 지혜를 내리시어, 온 나라의 의표가 되어 바로 다스리게 하시어, 우(禹)임금의 옛 일을 계승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는 그분의 법을 따라서 하늘의 명을 받드시는 것입니다.

塗는 진흙을 뜻하고 炭은 숯불을 뜻하니, 塗炭之苦란 진흙수렁이나 숯불에 빠진 것과 같은 괴로움을 말한다. 이는 재난(災難) 등으로 몹시 곤란한 처지에 빠져있음을 나타낸다.

道聽塗說 (도청도설)

道聽塗說(도청도설)

길거리에 떠돌아다니는 말

同進大成 (동진대성)

同進大成(동진대성)

同 한가지 동 | 進 나아갈 진, 선사 신 | 大 클 대, 큰 대, 클 태, 클 다 | 成 이룰 성 |

함께 나아가 크게 이룬다

同舟共濟 (동주공제)

同舟共濟 (동주공제)

같은 배를 타고 천(川)을 건넌다는 뜻으로 이해(利害)와 환란(患亂)을 같이 했다는 것을 뜻함.

회남자(淮南子) 병략훈(兵略訓)과 후한서(後漢書) 주목전(朱穆傳)에서 인용.


회남자:병략훈, 후한서:주목전

淮南子:兵略訓, 後漢書:朱穆傳

凍足放尿 (동족방뇨)

凍足放尿(동족방뇨)

잠깐은 좀 낫지만 크게 이로움이 못 됨. 「언발에 오줌누기」

東征西伐 (동정서벌)

東征西伐(동정서벌)

여러 나라를 이리 저리로 쳐서 없앰.

桃園結義 (도원결의, táoyuánjiéyì)

桃園結義(도원결의)

桃园结义(táoyuánjiéyì)

桃 복숭아 도 | 園 동산 원 | 結 맺을 결,상투 계 | 義 옳을 의 |


도원에서 의형제(義兄弟)를 맺다는 뜻으로, ①의형제(義兄弟)를 맺음 ②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욕을 버리고 목적(目的)을 향(向)해 합심할 것을 결의(結義)함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가 도원(桃園)에서 의형제를 맺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말로, 뜻이 맞은 사람끼리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행동을 같이 할 것을 약속한다는 뜻이다. 한서(漢書)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온다.

《삼국지연의》는 진수(陳壽, 233~297)의 《삼국지(三國志)》에 서술된 위(魏)·촉(蜀)·오(吳) 3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전승되어 온 이야기들을 나관중이 이야기체의 장편 소설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는 후한(後漢) 황실의 혈통을 계승했다는 유비를 중심으로 삼국의 분립(分立)과 대립의 역사를 서술하였는데, 그래서 유비가 관우, 장비와 함께 도원(桃園)에서 결의(結義)하여 의형제(義兄弟)를 맺은 내용으로 이야기의 첫머리로 삼고 있다. 이는 진수(陳壽)의 《삼국지》에는 나타나지 않은 사실로 이야기의 전승 과정에서 허구(虛構)로 재구성된 것이다. 나관중이 도원결의(桃園結義)를 이야기의 첫머리로 삼은 것은 국가와 민족의 정통(正統) 회복이라는 대의(大義)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는 청(淸) 초기에 모종강(毛宗崗)이 다듬은 ‘모본(毛本)’이 《삼국지연의》의 정본(定本)으로 여겨지는데, 이를 기초로 도원결의(桃園結義)와 관련된 이야기를 간추려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후한(後漢) 말 환관의 발호로 정치가 어지럽자 천하 인심이 날로 흉흉해지고 사방에서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장각(張角)이 남화노선(南華老仙)에게 세 권의 천서를 얻어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면서 스스로를 대현량사(大賢良師)라 했다. 장각이 두 동생과 함께 난을 일으키니 사방의 백성들이 모두 누런 헝겊으로 머리를 싸매고 장각을 따라서 일어났다. 장각의 군대가 유주(幽州) 땅까지 범해 들어오자 유주(幽州) 태수(太守) 유언(劉焉)은 교위(校尉) 추정(雛靖)의 말을 들어 의병을 모집하는 방문(榜文)을 내 걸었다. 이 방문이 탁현(涿縣)으로 들어가 마침내 그 고을의 한 영웅을 끌어내게 되었다.

한(漢) 경제(景帝)의 후손인 유비(劉備)는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모친을 지성으로 섬겼는데 집이 가난해서 미투리를 삼고 자리를 치는 것으로 생계를 삼았다. 유언이 방(枋)을 내어 군사를 모집할 때 유비의 나이는 이미 스물여덟이었다. 이 날 유비가 방문(榜文)을 보고 탄식을 하고 있는데 장비(張飛)가 나타나 대장부가 나라를 위해서 힘을 내려고 하지 않고 어째서 한숨만 쉬고 있느냐고 꾸짖었다. 유비가 도적을 무찔러 백성을 편안히 할 생각은 간절하나 힘이 없어서 장탄식을 한다고 하자, 장비는 자신의 재산을 팔아 고을 안의 용사들을 모아 함께 큰 일을 하자고 했다. 유비가 크게 기뻐하며 장비와 함께 마을 주막에 가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관우가 주막으로 들어와 군사 모집에 응해 성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며 술을 독촉했다. 유비가 자리로 불러 마음에 있는 바를 이야기했더니 관우도 크게 기뻐했고, 세 사람은 함께 장비의 집으로 갔다.

큰 일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장비가 집 뒤의 복숭아 동산에 꽃이 한창이니 내일 이 동산에서 천지(天地)에 제(祭)를 지내고 셋이 의형제를 맺어 한마음으로 협력하기로 한 뒤에 일을 도모하자고 하였다. 유비와 관우가 동의하여 다음날 도원(桃園)에 검은 소(黑牛)와 흰 말(白馬)과 지전(紙錢) 등 제물을 차려 놓고 제를 지내며 맹세했다. “유비, 관우, 장비가 비록 성은 다르오나 이미 의를 맺어 형제가 되었으니, 마음과 힘을 합해 곤란한 사람들을 도와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케 하려 하고, 한 해 한 달 한 날에 태어나지 못했어도 한 해 한 달 한 날에 죽기를 원하니, 하늘과 땅의 신령(皇天后土)께서는 굽어 살펴 의리를 저버리고 은혜를 잊는 자가 있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죽이소서” 맹세를 마치고 유비가 형이 되고, 관우가 둘째, 장비가 셋째가 되었다. 제(祭)를 마치고 소를 잡고 술을 내어 고을 안의 용사들을 불러모으니 300명이었다. 이 날 도원(桃園)에서 다들 취하도록 술을 마시며 함께 즐겼다.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桃園)에서 결의(決議)를 한 이 이야기에서 도원결의(桃園結義)는 의형제(義兄弟)를 맺거나 뜻이 맞는 사람들이 사욕을 버리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합심할 것을 결의하는 일을 나타내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전승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삼국지연의》의 영향 때문에 제문(祭文)의 내용이 중국인들 사이에서 서약(誓約)의 모범으로 널리 쓰이기도 했다.

[출전]
三國演義 : 第015回 |


관련 한자어

유의어

結義兄弟 (결의형제) |


三國演義 : 第015回 |

同心同德 (동심동덕)

同心同德(동심동덕)

同心同德(tóngxīntóngdé)

同 한가지 동 | 心 마음 심 | 同 한가지 동 | 德 큰 덕, 덕 덕 |

사상과 행동이 완전히 일치하다. 한마음 한뜻이 되다. 같은 목표(目標)를 위해 일치단결(一致團結)된 마음을 갖다.

Be of one heart and one mind; referring to be in accordance with each other in both thinking and action.


서로 같은 마음으로 덕을 같이하는 일치단결한 마음을 말한다. 일심일덕(一心一德)이라고도 하며, 마음을 합쳐 서로 돕는다는 뜻의 동심합력(同心合力)·동심동력(同心同力)과도 비슷한 뜻이다. 《상서(尙書)》 '태서편(泰誓篇)'에 나오는 성어(成語)이다.

상(商)나라 말기, 중국 주(周)나라 문왕(文王) 희창(姬昌)의 아들 희발(姬發)은 아버지를 이어 무왕(武王:BC 1169?∼BC 1116)으로 즉위한 후, 포악한 은(殷:商)나라 주왕(紂王:BC 1154∼BC 1111)을 정벌하려고 군대를 이끌고 맹진(孟津)이라는 곳을 통해 황허강[黃河]을 건너 은나라의 도읍인 조가(朝歌)로 진격하였다.

그곳에서 무왕은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려고 조가성의 남쪽 들에서 진군의 선서식을 거행하였다. 그는 상나라 주왕의 죄상을 낱낱이 들어 밝히면서 단결하여 싸움에서 공을 세우자는 다음의 '태서(泰書)'를 발표하였다.

"주왕은 많은 군사와 관리를 거느리고 있을지라도 마음을 한데 합하지 못하였지만, 우리는 다함께 일치단결하여 하나의 목표로 마음과 덕을 같이 하고 있다 [予有亂臣十人, 同心同德]."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다같이 힘쓰고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출전
尙書(상서) 泰誓篇(태서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戮力同心(육력동심,lùlìtóngxīn) | 同心协力(동심협력,tóngxīnxiélì) | 一心一德(일심일덕) |

반의어·상대어

离心离德(이심이덕,líxīnlídé) 분열되다. 생각과 행동이 제각각이다. 반목〔불화〕하다. 마음이 모두 달라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다. 알력(軋轢)이 생기다. |

東山再起 (동산재기)

東山再起(동산재기)

東 동녘 동 | 山 뫼 산 | 再 두 재 | 起 일어날 기 |

동산(動産)에서 다시 일어난다는 뜻으로, 은퇴(隱退)한 사람이나 실패(失敗)한 사람이 재기(再起)하여 다시 세상(世上)에 나옴을 뜻함


사안(謝安)은 허난성 진군(陳郡) 양하(陽夏) 태생으로 동진(東晉) 최대의 명문 출신이다. 젊었을 때부터 재능과 식견이 뛰어나 조정에서 불렀으나 매번 사양하고 초야에 묻혀 살았다. 당시의 정치(政治) 상황이 출사(出仕)하기에 알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회계군의 동산(東山)에 집을 짓고, 아름다운 그 곳의 산수에 묻혀 왕희지(王羲之)ㆍ지둔(支遁) 등과 어울리며 시를 짓고 술을 마시는 등 풍류를 즐겼다. 양주자사(揚州刺史) 유영(庾永)이 그의 평판을 듣고 몇 번이고 출사를 청하자 마지못해 한 달 남짓 관직에 있었지만 곧 사임하고 돌아와 버렸다. 주위 사람들이 서운하게 여기자 사안은 "지금의 상황으로는 관직에 그대로 머무는 것이 신상에 해로울 것 같다."고 답하며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문벌 세력이 서로 다투고 북쪽에서는 전진(前秦)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나이 40에 이르러, 문벌 세력을 제압한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환온(桓溫)이 청하자, 마침내 그의 휘하에 들어가 이부상서(吏部尙書)의 요직에까지 진급했다. 그러나 환온이 제위를 넘보려 하자 이를 저지하고, 그 공으로 효무제(孝武帝)가 즉위한 후에는 재상(宰相)이 되었다. 당시 북쪽에서는 전진 왕 부견(符堅)이 산시, 쓰촨, 후베이 일대를 장악하고 세력을 뽐내고 있었다. 환온이 죽자, 부견은 100만 대군을 이끌고 동진을 향해 남하하기 시작했다. 사안은 아우 사석(謝石)과 형의 아들 사현(謝玄), 그리고 유뇌지(劉牢之) 등을 앞세워 비수(底水)에서 전진군을 크게 무찔렀다.

동산재기란 이와 같이 사안이 동산에 은거하다가 관계에 나가 크게 성공한 것을 가리키던 말로, 오늘날에는 한번 실패했던 사람이 재기에 성공한 경우에까지 이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출전
晉書(진서) 謝安傳(사안전)

同床異夢 (동상이몽)

同床異夢(동상이몽)

같은 잠자리에 누워 자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꾼다. 행동은 같이 하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의미.


삼성경제연구소의 곽수종, 최명해 수석연구원은 서로의 전략적 불신을 확인했다는 의미에서 2010년 미국과 중국관계를 표현하는 한자성어로 선정

凍氷寒雪 (동빙한설)

凍氷寒雪(동빙한설)

얼음이 얼고 눈보라가 치는 추위.

獨不將軍 (독불장군)

獨不將軍(독불장군)

獨 홀로 독 | 不 아닐 불, 아닐 부 | 將 장수 장, 장차 장 | 軍 군사 군 |

혼자서는 장군(將軍)을 못한다는 뜻으로, ①남의 의견(意見)을 무시(無視)하고 혼자 모든 일을 처리(處理)하는 사람의 비유(比喩ㆍ譬喩) ②혼자서는 다 잘할 수 없으므로 남과 협조(協助)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③저 혼자 잘난 체하며 뽐내다가 남에게 핀잔을 받고 고립(孤立)된 처지(處地)에 있는 사람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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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鳥之兩翼(조지양익) | 脣齒之國(순치지국) | 脣齒輔車(순치보거) | 脣亡齒寒(순망치한) | 輔車相依(보거상의) | 獨掌難鳴(독장난명) | 孤掌難鳴(고장난명)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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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東奔西走 (동분서주)

東奔西走(동분서주)

이리 저리 분주하게 뛰어다님.

同病相憐 (동병상련)

同病相憐(동병상련)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걱정한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동정하고 돕는다는 뜻.


전국시대 楚(초)나라의 소부라는 벼슬을 하고 있던 비무기의 모함으로 아버지와 형이 죽음을 당하자 伍子胥(오자서)는 복수를 맹세하고 吳(오)나라로 몸을 피했다.

7년 뒤 오자서는 왕위를 노리는 공자 光(광)을 도와 왕을 弑害(시해)하고 그를 왕위에 앉혔다. 광은 임금이 되자 오왕 闔閭(합려)라 칭하고 오자서에게는 대부 벼슬을 주어 중용하고 나라 일을 자문했다. 오자서가 반역에 적극 가담한 것은 광의 힘을 빌려 아버지와 형의 원수를 갚으려는 의도에서였다.

어느날 초나라에서 백비라는 망명객이 찾아왔다. 그 역시 비무기의 모함으로 아버지가 죽음을 당한 처지였다. 오자서는 그를 합려에게 천거하여 대부가 되게 했다. 그러자 피리라는 중신이 오자서에게 따졌다.

『백비의 눈은 매와 같고 걸음걸이는 범을 닮았소. 그것은 살인할 惡相(악상)이오. 그런 그를 딱 한번 보고 그토록 신임하시는 이유가 뭐요』

오자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와 내가 같은 원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오. 왜 何上歌(하상가)에도 있지 않소.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기고 (同病相憐) 같은 근심을 가진 사람끼리 서로 돌보아주네(同憂相救․동우상구)라고』

9년뒤 오자서와 백비는 합려를 도와 초나라를 깨뜨리고 원수를 갚았다. 그러나 그 뒤 피리가 본대로 백비는 오자서에게 은혜를 원수로 갚고 만다.

道傍苦李 (도방고리)

道傍苦李(도방고리)

道 길 도 | 傍 곁 방 | 苦 쓸 고, 땅 이름 호 | 李 오얏 리(이), 성씨 리(이) |

길가에 있는 쓴 자두 열매라는 뜻으로, ①남에게 버림받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또는, ②많은 사람이 무시하는 것은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는 뜻.


진서(晉書) 왕융전(王戎傳)과 육조시대 송(宋)나라 유의경(劉義慶)이 지은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오는 이야기.

동진(東晉)의 왕융(王戎, 서기 234-305년)은 노장사상에 심취하여 예교(禮敎)를 방패로 권세를 잡으려는 세태에 저항하였다. 평생을 죽림에 묻혀 유유자적하며 청담(淸談)을 즐겨 완적(阮籍), 혜강(嵆康) 등과 함께 죽림칠현으로 불렸다. 이러한 왕융이 일곱 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그는 동네의 아이들과 놀다가 문득 길가의 자두나무에 가지가 휘어지게 많은 자두가 달려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은 그것을 따려고 앞다투어 그 나무로 달려갔으나, 왕융만은 그 자리에 가만 있었다.

그때 길을 가던 어떤 사람이 왕융에게 물었다.

"얘야, 너는 왜 따러가지 않고 서 있는 거냐?"

그러자 왕융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무가 길 가에 있는데도 열매가 저렇게 많이 달려있다는 것은 틀림없이 써서 먹지 못하는 자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들이 그 자두를 따서 맛을 보니 과연 왕융의 말처럼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일로 사람들은 왕융의 영민함을 칭찬하면서도 일면 두려워하였다 한다.

도방고리란 이와 같이 쓸 데가 없어 버림받는다는 뜻에서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모두가 버리는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는 뜻으로까지 쓰이고 있다.


출전

진서(晉書) | 세설신어(世說新語) |

東問西答 (동문서답)

東問西答(동문서답)

東 동녘 동 | 問 물을 문 | 西 서녘 서 | 答 대답 답 |

동쪽을 묻는데 서쪽을 대답한다는 뜻으로, 묻는 말에 대한 전혀 엉뚱한 대답(對答)을 함.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問東答西(문동답서) |

同門修學 (동문수학)

同門修學(동문수학)

같은 스승 밑에서 같이 학문을 닦고 배움.

道模是用 (도모시용)

道模是用(도모시용)

道 길 도 | 模 본뜰 모, 모호할 모 | 是 이 시, 옳을 시 | 用 쓸 용 |

길 옆에 집을 짓는데, 길 가는 사람과 어떻게 짓는 것이 좋은가 상의하면 그들의 생각이 구구하여 일치되지 않아 집을 지을 수 없음

If too many people try to do something it will not be done well or properly.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 목수가 많으면 집을 무너뜨린다.

¶ Too many cooks spoil the broth. 요리사가 너무 많으면 스프를 망친다.

獨木不成林 (독목불성림)

독목불성림(獨木不成林)

홀로선 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한다.

屠龍之技 (도룡지기)

屠龍之技(도룡지기)

屠 잡을 도 | 龍 용 룡 | 之 갈 지 | 技 재주 기 |

장자(莊子) '열어구편(列禦寇篇)'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실려있다.

장자는 주팽만은 용을 죽이는 방법을 지리익에게서 배우는데, 천금이나 되는 가산(家産)을 탕진하고 삼 년만에야 그 재주를 이루었지만 그것을 써먹을 곳이 없었다[朱 漫學屠龍於支離益, 單千金之家, 三年成技, 而無所用其巧]. 성인은 필연적인 일에 임할 때에도 필연으로 여기지 않으므로 마음속에 다툼이 없지만 범속한 사람들은 이와 반대로 마음속에 다툼이 많다. 라고 말하며, 소인들은 사소로운 일에 얽매여 대도(大道)를 이룰 수 없음을 지적하였다.

屠龍之技란, 곧 많은 돈과 세월을 투자하여 배웠으나 세상에서 써먹을 데가 없는 재주를 말한다. 본시 龍 이란 상상 속의 동물일뿐이니, 주팽만이 고생 끝에 배운 기술은 결국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는 것이다.

徒勞無功 (도로무공)

徒勞無功(도로무공)

徒 무리 도, 헛될 도 | 勞 힘쓸 로(노), 일할 로(노) | 無 없을 무 | 功 공 공 |

헛되이 수고만 하고 공을 들인 보람이 없음

Toil in vain


장자(莊子) 천운(天運)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이 있다.

춘추시기, 공자가 서쪽의 위(衛)나라로 유세(遊說)를 떠났다. 스승인 공자의 여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안연(顔淵)에게 사금(師金)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물길을 가는 데에는 배가 가장 좋으며, 육지를 가는 데에는 수레가 최고이지. 그런데 만약 배를 육지에서 밀고 간다면 평생 걸려도 얼마 가지 못할 것이네. 옛날과 지금의 차이는 물과 육지의 차이와 같으며, 주나라와 노나라의 차이도 이러한데, 공자께서 주나라에서 시행되었던 것을 노나라에서 시행하려는 것은 배를 육지에서 미는 것과 같아 애만 쓰고 보람은 없으며[是猶推舟于陸也, 勞而無功], 틀림없이 몸에 재앙이 있을 걸세."

徒勞無功은 도로무익(徒勞無益) 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보람이나 이익이 없음을 뜻한다.


출전

장자(莊子) 천운(天運)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勞而無功(노이무공) | 徒勞無益(도로무익) |

徒勞無益 (도로무익)

徒勞無益(도로무익)

수고만 되고 이익은 없음.

棟樑之材 (동량지재)

棟樑之材(동량지재)

대들보가 될 만한 훌륭한 인재.

東道主 (동도주)

동도주(東道主)

東(동녘 동) 道(길 도) 主(주인 주)

동쪽으로 가는 데 길을 안내(案內)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주인(主人) 또는 주인의 역할(役割)을 하는 사람을 비유하는말.

진(晉) 헌공의 아들 중이는 19년 동안 각 나라를 떠돌다가, 정(鄭)나라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정나라는 그에게 극히 비우호적인 대접을 하여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다. 중이는 귀국하여 왕위에 오르자, 복수를 하기 위해 진(秦)나라와 연합하여 정나라를 공격하였다. 때는 기원전 627년 9월.

눈앞에 적들이 밀어닥치자 정 문공(文公)은 겁을 먹고 대신들을 불러모아 대책을 논의하였다. 대부 질지호(佚之狐)가 먼저 의견을 내놓았다.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만약 촉지무(燭之武)를 보내어 진(秦)나라 군주를 만나게 한다면, 진나라는 철군할 것 같습니다."

촉지무는 언변(言辯)이 뛰어나고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여태껏 조정에서 크게 쓰이지 못해 불만이 많았다. 촉지무는 정 문공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맡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정 문공은 계속하여 그를 설득하였다.

"내가 일찍이 그대를 중용하지 않다가, 이제야 다급하게 그대에게 이 일을 맡기고자 하니, 이는 나의 잘못이오."

촉지무는 불만이 다소 풀렸다. 밤이 되자 촉지무는 밧줄을 타고 성을 빠져나가 진나라 진영으로 향했다. 그러나 진나라 병사들이 그를 막자, 촉지무는 성벽에 밧줄로 자신의 몸을 묶은 채 대성통곡하기 시작하였다. 진나라 병사들은 하는 수 없이 그를 진나라 목공에게 데려 갔다.

"너는 왜 그리 울었더냐?"

"저는 정나라의 멸망 때문에 통곡을 하였으며, 진나라에 대해서는 슬픔을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진(秦)과 진(晉)의 대군이 우리 정나라를 포위하고 공격을 하니 정나라는 망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정나라는 진(秦)나라와 영토가 붙어있지 않습니다.

진(秦)나라는 서쪽에, 정나라는 동쪽에 있으며 그 가운데는 진(晉)나라가 막고 있습니다. 때문에 정나라가 망한 뒤에 영토는 진(晉)나라로 병합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진(晉)나라의 국력은 점차 강대해질 것이고, 진나라는 상대적으로 약해질 것입니다. 진나라는 무엇 때문에 남의 세력은 키워주면서 자신의 힘은 줄이는 것입니까? 만약 저희 정나라를 그대로 두시고 동쪽 진출의 길 안내역으로 삼으시고. 사신(使臣)들의 왕래에 부족한 물자를 공급하게 하신다면, 진(秦)나라 입장에서도 손해됨이 없을 것입니다(若舍鄭以爲東道主, 行李之往來, 供其乏困, 君亦無所害)."

진(秦)나라 목공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이를 좋아하며 즉각 군대를 철수하는 한편, 기자(杞子), 봉손(逢孫), 양손(揚孫) 등 사람을 남겨두어 정나라 도읍의 방위를 돕게 하였다. 얼마 후에는 진(晉)나라 군대도 그곳을 떠났다.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僖公 30年條

圖南之翼 (도남지익)

圖南之翼(도남지익)

남쪽으로 가는 새의 날개. 큰 일을 앞에 두고 있다

童男童女 (동남동녀)

童男童女(동남동녀)

사내아이와 계집아이.

同工異曲 (동공이곡)

同工異曲(동공이곡)

기술이나 재주는 같으나 곡이 다름. 곧 기교는 훌륭하나 그 내용이 다르다는 말.

同苦同樂 (동고동락)

同苦同樂(동고동락)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함.

豚犬 (돈견)

豚犬(돈견)

豚犬(túnquǎn)

豚 돼지 돈 | 犬 개 견 |


①돼지와 개 ②미련하고 못난 사람의 비유(比喩) ③자기(自己) 아들을 겸손(謙遜)하게 일컫는 말


송(宋)나라 말 원(元)나라 초에 증선지(曾先之)가 편찬한 사서《18사략(十八史略)》 동한(東漢) 효헌제(孝獻帝) 조에 나오는 말이다. 관도(官渡)의 싸움에서 원소군을 물리치고 기반을 확립한 조조는 이어 형주를 공략하고 유비를 하구라는 곳으로 몰아 넣은 후 백만 대군을 동원하여 강동의 오(吳)나라로 진격해 왔다. 이때 오나라에는 손견(孫堅)이 죽고 그 아들 손권(孫權)이 즉위하여 주유(周瑜)·여몽(呂蒙)·노숙(魯肅) 등 막강한 참모의 보좌를 받고 있었다. 조조의 대군이 밀려 온다는 소식을 들은 손권은 유비군과 연합하여 이를 대적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양군은 장강을 사이에 두고 포진하였다.

조조는 수전에 약한 군사를 보호하기 위해 전함의 고물과 이물을 연결시켜 선단을 하나로 묶었다. 오군 사령관 주유는 이를 보고 곧 화공(火攻)을 준비하였다. 먼저 노장 황개(黃蓋)를 사소한 트집을 잡아 군사들 앞에서 욕보이는 고육계(苦肉計)로 조조를 속이고, 황개는 조조에게 거짓 항복을 하였다. 그리고는 겨울철에 보이는 강남 특유의 계절풍을 기다렸다. 하나로 묶인 선단은 불에 약할 수밖에 없고, 화공을 하려면 바람의 방향이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동남풍이 불기 시작하자, 황개가 마른 풀과 염초를 가득 실은 작은 배를 이끌고 백기를 휘날리며 조조군으로 향하였다. 조조군에서는 뜻밖의 동남풍에 당황하면서도 황개의 투항을 기뻐하였다.

황개가 조조군에 다가가 화공을 시작한 후에야 모든 것을 눈치 챈 조조군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불은 바람을 타고 곧 조조군의 선단에 옮겨 붙었다. 가뜩이나 물에 약한 조조 군사들은 우왕좌왕하다가 불에 타 죽거나 물에 빠져 죽었다. 이때 주유의 본군이 물밀듯이 밀어닥치자 조조군은 대적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궤멸하고 말았다. 이것이 유명한 적벽(赤壁) 대전이다. 적벽 대전으로 자존심을 크게 상한 조조는 틈만 나면 오나라의 손권을 공략하려 했지만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탄식하며 말하였다. “아들을 낳으면 응당 손중모(孫仲謀:중모는 손권의 자) 같아야 한다. 지난 날 항복한 유경승(劉景升:劉表)의 아들(劉琮)은 돼지 자식, 개 자식에 불과하다.”

돈견이란 이와 같이 어리석고 못난 자식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인데, 부모가 남 앞에서 자기 자식을 겸손하게 부르는 말로도 쓰인다.

[출전]
十八史略(십팔사략) : 卷三 |


관련 한자어

유의어

迷兒(미아) | 迷息(미식) | 迷豚(미돈) | 豚兒(돈아) | 家兒(가아) | 家豚(가돈) |


十八史略(십팔사략) : 卷三 |

同價紅裳 (동가홍상)

同價紅裳(동가홍상)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東家食西家宿 (동가식서가숙)

東家食西家宿 (동가식서가숙)

‘東家食西家宿’ 고사는 ‘동쪽 집에서 먹고 서쪽 집에서 잔다.’는 뜻


본래 고사는 ‘욕심이 지나친 탐욕스러운 사람’의 의미로 표현된 것이지만, 현대에서는 보통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면서 얻어먹고 사는 경우나 혹은 주소가 일정하지 않은 사람을 비유해서 활용되어 ‘바람을 맞으며 밥을 먹고 이슬을 맞으며 잠을 잔다’는 ‘風餐露宿(풍찬노숙)’과 유사한 의미로도 사용.

하지만 고사의 유래로 접근해서 보면 자기 정체성을 버리고 이익을 위해 휩쓸리는 저속한 인간의 속성을 비판하는 속뜻이 본래 고사가 주장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당(唐)나라 고종(高宗)의 명으로 구양순(歐陽詢)이 저술한 일종의 백과사전식 저서인 《예문유취(藝文類聚)》에 출전을 두고 있는데, 송(宋)나라때 이방이라는 사람이 지은 역시 일종의 백과사전류의 서적인《천평어람(天平御覽)》에도 실려있는 고사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옛날 제나라에 한 처녀가 있었다. 그녀에게 두 집안에서 함께 청혼이 들어왔다. 그런데 동쪽 집 총각은 못 생겼으나 부자였고, 서쪽 집 총각은 인물이 출중했지만 가난했다. 난처해져 결정을 못한 처녀의 부모는 딸에게 의중을 물어 시집갈 곳을 정하려 하였다.

“지적해서 말하기가 어렵거든, 좌우 중 한쪽 어깨를 벗어서 우리가 알게 하거라..”

그러자 딸은 문득 양쪽 어깨를 모두 벗어 버리고는 놀라서 그 까닭을 묻는 부모에게 이렇게 말했다.

“낮엔 동쪽 집에 가서 먹고, 밤엔 서쪽 집에 가서 자려고 해요."


원문

齊人有女. 二人求見, 東家子醜而富, 西家子好而貧. 父母疑而不能決, 問其女, 定所欲適, "難指斥言者, 偏袒, 令我知之." 女便兩袒1). 怪問其故, 云 "欲東家食西家宿."

藝文類聚

주1) 偏袒(편단): 한쪽 어깨를 벗다. 불가의 법의를 우견편단(右肩偏袒)하거나, 상례(喪禮)에서 상주가 偏袒하는 사례가 있음.


http://hanja.pe.kr/han_2/h2_40.htm

德勝才 (덕승재)

德勝才(덕승재)

德 큰 덕, 덕 덕 | 勝 이길 승 | 才 재주 재 |

덕이 재주를 이김

德勝才謂之君子 (덕승재위지군자)

德勝才謂之君子(덕승재위지군자)

德 큰 덕, 덕 덕 | 勝 이길 승 | 才 재주 재 | 謂 이를 위 | 之 갈 지 | 君 임금 군 | 子 아들 자 |

덕이 재주보다 많은 사람을 군자라 한다.

德不孤必有隣 (덕불고필유린)

德不孤必有隣(덕불고필유린)

德 큰 덕, 덕 덕 | 不 아닐 불, 아닐 부 | 孤 외로울 고 | 必 반드시 필 | 有 있을 유 | 隣 이웃 린(인)

덕이 있으면 따르는 사람이 있으므로 외롭지 않다는 뜻

출전
논어(論語)


관련 한자어

유의어

德必有隣(덕필유린) |

德建名立形端表正 (덕건명립형단표정)

德建名立 形端表正

덕이 세워지면 이름이 서게 되고, 몸매가 깔끔해야 겉모습이 똑바르게 된다.


덕(德)이란 알맹이를 말하고 명(名)이란 그 알맹이를 나타내는 이름이니, 속이 알차면 이름은 저절로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것이 ‘덕건명립(德建命立)’ 임.

‘형단표정(形端表正)’은 <예기(禮記)>의 겉모습이 똑바르면 그림자 또한 똑바르다(形正則, 影必端)를 다시 쓴 것임

<金聖東 千字文>, 김성동 쓰고 지음, 청년사 펴냄

戴天之讐 (대천지수)

戴天之讐(대천지수)

이 세상에 함께 살 수 없는 원수

大志遠望 (대지원망)

大志遠望(대지원망)

大 클 대 | 志 뜻 지 | 遠 멀 원 | 望 바랄 망 |

큰 뜻을 품고 멀리 바라본다.

對症下藥 (대증하약)

對症下藥(대증하약)

對 대할 대 | 症 증세 증, 적취 징 | 下 내릴 하 | 藥 약 약, 뜨거울 삭, 간 맞출 략(약) |

증세(症勢)에 맞게 약을 써야 한다는 뜻으로, 문제(問題)의 핵심(核心)을 바로 보고 대처(對處)해야 함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화타전(華 傳)에는 동한(東漢) 말기 뛰어난 의술로 신의(神醫)라는 칭송을 받았던 화타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한번은 고을의 벼슬아치인 예심(倪尋)과 이연(李延) 두 사람 모두 고열(高熱)과 심한 두통(頭痛)을 앓게 되었다. 다른 의원들이 와서 그들을 살펴 보았으나 효과가 없자, 결국 화타가 초빙되어 왔다. 그는 두 사람의 상태를 살펴 본 후, 각각 다른 처방을 내렸다. 증상이 똑같은 두 사람에게 각기 다른 약을 먹게 하자, 많은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하며 그 이유를 물었다.

화타는 대답하였다.

"예심은 신체 외부에 병은 없으나 잘못 먹어 내부에 배탈이 났으므로 사약(瀉藥)을 먹어야 하고, 이연은 신체 내부에 병은 없으나 외부의 영향으로 감기에 걸린 것이니 발산약(發散藥)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對症下藥(There is a slave for every sore)는 증세에 맞게 약을 써야 한다는 뜻이며, 이는 곧 문제의 핵심을 바로 보고 대처해야함 을 비유한 말이다.

大材小用 (대재소용)

大材小用(대재소용)

大材小用(dàcáixiǎoyòng)

大 클 대, 큰 대, 클 태, 클 다 | 材 재목 재 | 小 작을 소 | 用 쓸 용 |

큰 재목(材木)이 작게 쓰이고 있다는 뜻으로, ①사람을 부리는 데 있어서 제 능력(能力)을 다 발휘(發揮)할 수 있는 조건(條件)이 안됨 ②역설적(逆說的)으로 큰 재목(材木)은 큰 일에 쓰여야 한다는 말 ③정부나 조직(組織)에서 사람을 쓰는 법이 잘못되었음을 가리킴

to assign talented people for trivial tasks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牛鼎烹鷄(우정팽계) 소를 삶을 수 있는 큰 가마솥에 닭을 삶는다는 뜻으로, 큰 재목(材木)을 알맞은 곳에 쓰지 못하고 소소한 일을 맡기는 경우(境遇)를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

代人捉刀 (대인착도)

代人捉刀(대인착도)

代人捉刀(dàirénzhuōdāo)

代 대신할 대 | 人 사람 인 | 捉 잡을 착 | 刀 칼 도 |

남을 대신(代身)하여 일을 함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편의 이야기다.

위(魏)나라 무제(武帝) 때, 흉노(匈奴)의 사신이 위 무제를 만나러 왔다. 위 무제는 자신의 키가 작고 풍채가 초라하여 사신들에게 위풍을 보이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에 위무제는 대신(大臣) 최계각(崔季珪)으로 하여금 흉노의 사신을 접견하게 하고, 자신은 칼을 잡고 시위(侍衛)처럼 서있었다[帝自捉刀立牀頭].

최계각은 본시 큰 몸집에 짙은 눈썹과 큰 눈으로 풍채가 당당하고 위엄있었으며, 우렁찬 목소리에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흉노의 접견을 마친 후, 위 무제는 몰래 사람을 보내어 흉노의 사신이 위 무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 보게 하였다.

흉노 사신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위왕의 고상한 덕은 대단했습니다만, 칼을 들고 옆자리에 서있던 그 사람은 위풍이 당당하여 정말 영웅같았습니다.

위 무제는 이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흉노의 사신을 죽여 버렸다.

위 무제는 다름아닌 조조(曹操)인데, 그는 체구가 작았다고 한다. 代人捉刀란 사람을 대신하여 일을 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편(容止篇)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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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義名分 (대의명분)

大義名分(대의명분)

지켜야 할 큰 의리와 직분.

大義滅親 (대의멸친)

大義滅親(대의멸친)

국가나 사회의 대의를 위해서는 친족도 멸한다는 말로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족에 대한 정같은 것을 버린다는 뜻이다.


때는 춘추시대. 衛(위)나라 公子(공자)인 주우가 임금인 桓公(환공)을 죽이고 스스로 임금자리에 올랐다.

환공과 주우는 이복형제간인데 둘 다 후궁의 소생이었다. 위나라 대부 석작은 충의지사로 이름난 사람으로 일찍이 주우에게 역심이 있음을 알고 아들인 石厚(석후)가 주우와 가까이 지내지 못하도록 했으나 듣지 않았다. 석작은 환공이 왕위에 오르자 은퇴했지만 그가 우려했던 주우의 반역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반역이 성공하자 석후는 아버지인 석작에게 어떻게 하면 주우의 왕위를 굳힐 수 있겠는지를 물었다.

석작은 周(주)나라 天子(천자)의 허락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허락을 받기 위해서는 주나라 왕실과 친한 진공을 통해서 청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주우와 석후가 진나라로 떠나자 석작은 陳公(진공)에게 밀사를 보내어 이렇게 말하도록 했다.

『주군을 시해한 이 두사람을 잡아 처치해 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두사람은 위나라 책임자의 입회를 기다려 사형에 처해졌다. 석작은 君臣(군신)의 대의를 이룩하기 위해서 육친의 사사로운 정을 버린 것이다.

대의멸친과 비슷한 뜻을 가진 한자성어로 滅私奉公(멸사봉공)과 先公後私(선공후사)가 있다.

對牛彈琴 (Casting pearls before swine)

對牛彈琴 (Casting pearls before swine)

대우탄금(對牛彈琴)

對 to | 牛 the cow | 彈 to play | 琴 lute |

A long, long time ago, there was a lute player named Gong Ming Yi.

One day, while Gong was playing the lute outdoors, he saw a cow eating some grass.

"You are a lucky cow!" Gong thought. "Let me perform an exquisite piece of music for you!" he said to the cow.

Gong then closed his eyes and played his favorite tune. He was intoxicated by the melody and thought the cow would appreciate his generous offer. He opened his eyes and peeked at the cow.

The cow was not taking any heed of the elegant sounds. Instead, it kept its head down and continued to chew.

Gong couldn`t figure out why its response was not what he expected.

"Perhaps it didn`t like this music," Gong thought, so he changed the melody.

However, the cow still focused only on its meal regardless of how many pieces of music Gong played -- none of them caught the cow`s attention at all.

Gong was frustrated, but then decided to try something very different: the sound of a mosquito`s buzz.

The cow wagged its tail, pricked its ears and walked to Gong. It looked at him, lowered its head and continued to eat the grass.

The idiom refers to someone who speaks or writes without considering his or her audience.


References

Quotes·Quotations

Never try to teach a pig to sing. It's a waste of your time and annoys the pig. (Mark Twain)

對牛彈琴 (대우탄금)

대우탄금(對牛彈琴)

对牛弹琴(duìniútánqín)

對 대할 대 | 牛 소 우 | 彈 탄알 탄 | 琴 거문고 금 |

소에게 거문고를 들려준다는 말로,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참된 도리(道理)를 말해 주어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 홍명집(弘明集) 이혹론(理惑論)

大辯若訥 (대변약눌)

大辯若訥(대변약눌)

大 클 대, 큰 대, 클 태, 클 다 | 辯 말씀 변, 두루 미칠 편 | 若 같을 약, 반야 야 | 訥 말 더듬거릴 눌 |

가장 잘하는 말은 어눌하다.

大亂大治 (대란대치)

대란대치(大亂大治)

크게 어지럽혀야 크게 다스릴 수 있다는 말. 흔히 마오쩌둥이 한 말로 알고 있지만 실은 청나라 옹정제의 지배전략이었다. 정치에서 사용된 말이지만 정치에서만 대란대치가 필요한 게 아니다.

일상적인 삶에서도 대란대치가 필요하다. 가만 놔두면 안 된다. 녹슬고 곰팡이 핀다! 흔들어 깨우고 크게 뒤집어 일으켜야 한다. 그래야 삶의 생생한 돌기들이 일어나 진짜 자기 삶이 펼쳐진다.

大同小異 (대동소이, dàtóngxiǎoyì)

대동소이(大同小異)

大同小异(dàtóngxiǎoyì)

大 : 큰 대 | 同 : 한가지 동 | 小 : 작을 소 | 異 : 다를 이


크게 같고 작게 다르다는 말로, 크게 보면 서로 같지만 작게 보면 각각 다르다는 뜻.

《장자(莊子)》천하편(天下篇)에서 비롯된 말이다. 장자는 천하편에서 묵가(墨家)와 법가(法家) 등이 주장하는 논점을 밝혀 비판하고 도가의 철학을 선양한 다음, 뒷부분에 친구인 혜시(惠施)의 논리학을 소개하고 이에 자기 의견을 덧붙였다. 대동소이라는 말도 혜시의 말 가운데 나오는 것이다. 장자가 한 말은 다음과 같다.

“혜시의 저술은 다방면에 걸쳐 다섯 수레나 되는데 그의 도는 복잡하고, 그가 말하는 바는 정곡을 잃었으며, 그의 생각은 만물에 걸쳐 있다. 그는 말했다. '지극히 커서 밖이 없는 것을 대일(大一)이라 하고, 지극히 작아서 속이 없는 것을 소일(小一)이라 한다. 두께가 없는 것은 쌓아올릴 수가 없지만, 그 크기는 천리나 된다. 하늘은 땅과 더불어 낮고, 산은 못[澤池]과 같이 평평하다. 해는 장차 중천에 뜨지만 장차 기울고, 만물은 장차 태어나지만 또한 장차 죽는다.

크게 보면 같다가도 작게 보면 다르니(大同而與小同異) 이것을 소동이(小同異)라 하고, 만물은 모두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니(萬物畢同畢異) 이것을 대동이(大同異)라 한다. 남쪽은 끝이 없음과 동시에 끝이 있고, 오늘 남쪽의 월(越)나라로 간 것은 어제 월나라에서 온 것이다. 꿰어 있는 고리도 풀 수가 있다. 나는 천하의 중심을 알고 있다. 연(燕)나라의 북쪽이며 월나라의 남쪽이 그 곳이다. 만물을 넓게 차별 없이 사랑하면 천지(天地)도 하나가 된다.’ 혜시는 자기가 천하를 달관한 자라고 자부하여, 이로써 여러 사람을 가르쳤다.”

혜시는 시간과 공간의 무한성, 만물이 필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상대성을 논한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대동소이란 상대적 관점에서 보이는 차이는 차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당(唐)나라의 "노동(盧同)과 마이(馬異)가 사귐을 맺은 시"에, '어제의 같음은 같음이 아니고, 다름은 다름이 아니다. 이것은 크게는 같고 작게는 다르다고 말한다' 고 있고, 주자(朱子)도 중용장구(中庸章句)를 쓰면서, '뜻은 大同小異하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오늘날에는 거의 비슷하다든지, 그게 그것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출전] 장자 천하편


유의어

難兄難弟(난형난제) |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

大器晩成 (대기만성)

大器晩成(대기만성)

大 클 대, 큰 대, 클 태, 클 다 | 器 그릇 기 | 晩 늦을 만 | 成 이룰 성 |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①크게 될 인물(人物)은 오랜 공적(功績)을 쌓아 늦게 이루어짐 ②또는, 만년(晩年)이 되어 성공(成功)하는 일을 이름

a late bloomer


노자 41장은 이렇게 말한다.

가장 큰 인물이 道(도)를 들으면 힘써 행하려고 노력한다. 중간쯤의 인물이 도를 들으면 그 도에 대한 믿음과 의심이 반반이다. 가장 못한 인물이 도를 들으면 一笑(일소)에 부치고 만다. 그들의 웃음을 살 정도가 아니면 진정한 도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옛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밝은 도는 어두운 것 같고 나아가는 도는 물러서는 것 같고 평탄한 도는 험한 것 같다. 최상의 덕은 골짜기와 같고 아주 흰 것은 더러운 것 같고 넓은 덕은 부족한 것 같고 변함없은 덕은 변하는 것 같다. 아주 큰 네모는 구석이 없으며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大器晩成].

三國志(삼국지)에도 大器晩成이 등장한다.

동한(東漢) 말년, 원소(袁紹)의 측근에 崔琰(최염)이라는 식객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무술을 좋아하여, 23세에야 논어 등을 공부하였다. 그는 처음 원소의 부하로 일했으나, 후에는 조조(曹操)의 휘하로 갔다. 최염은 당당한 풍채에 우렁찬 목소리를 갖고 있는 호걸풍의 인물로 인품도 좋아 曹操(조조)도 그를 총애하여 魏(위)나라의 상서(尙書)를 지내며 태자 옹립문제를 해결하여 공정한 관리로 인정받았다.

그런 최염에게 崔林(최림)이라는 사촌동생이 있었다. 최림은 사촌 형과 전혀 딴판이어서 외모도 시원치 않은 데다가 구변도 신통치 못해 출세와는 거리가 먼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일가 친척들도 최림은 눈 밖에 두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최염만은 달랐다.

"큰 종이나 큰 솥은 쉽게 만들어지는게 아니네.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대성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지. 내 아우도 그런 大器晩成형이니까 언젠가는 큰 인물이 될터이니 두고 보게나."

최염의 장담대로 최림은 나중에 크게 출세하여 天子(천자)를 보좌하는 三公(삼공)중의 한사람이 된다.


출전

노자(老子) |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최염(崔琰)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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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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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大巧若拙 (대교약졸)

大巧若拙(대교약졸)

大 클 대, 큰 대, 클 태, 클 다 | 巧 공교할 교 | 若 같을 약, 반야 야 | 拙 옹졸할 졸 |

①훌륭한 기교(技巧)는 도리어 졸렬(拙劣)한 듯함 ②아주 교묘(巧妙)한 재주를 가진 사람은 그 재주를 자랑하지 아니하므로 언뜻 보기엔 서투른 것 같다는 뜻

[출전]
노자

大觀小察 (대관소찰)

대관소찰(大觀小察)

크게 보고 작게 살핀다

待價而沽 (대가이고)

待價而沽(대가이고)

待 기다릴 대 | 價 값 가 | 而 말이을 이 | 沽 팔 고 |

높은 가격에 살 사람을 기다림

공자는 늘 현실정치에 참여하려던 꿈이 컸던 인물이다. 그러나 공자는 이러한 꿈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다. 학식과 재주를 겸비했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던 당시의 상황이 '論語(논어)·子罕(자한)' 짧은 글에 나와 소개하고자 한다.

春秋時代(춘추시대), 孔子(공자)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주장을 널리 알리려 했으나 자주 한계에 부딪쳤을 뿐 중용되지는 못했다.

한번은 학생이었던 子貢(자공)이 孔子에게 "만일 여기에 훌륭한 옥이 있다면 이를 괘 안에 보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좋은 가격을 내는 사람을 찾아 파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孔子가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지금 살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沽之哉! 沽之哉! 我待價者也)" 라고 대답했다. '待價而沽'는 이 고사에서 나왔다.

簞瓢陋巷 (단표누항)

簞瓢陋巷(단표누항)

도시락 표주박과 누추한 거리라는 뜻으로 소박한 시골 살림살이를 가리킴.

多情多感 (다정다감)

多情多感(다정다감)

애틋한 정도 많고, 느낌이나 생각이 많음.

多言數窮 (다언삭궁)

多言數窮(다언삭궁)

말이 많으면 자주 곤란(困難)한 처지(處地)에 빠짐

多言數窮 不如守中 (다언삭궁 불여수중)
말이 많으면 곤궁에 처하는 경우가 많으니 가슴에 품고만 있음만 못하다
- 老子 도덕경


참고어

구화지문(口禍之門), 사마난추(駟馬難追), 언비천리(言飛千里), 화종구출(禍從口出)

남아일언 중천금(男兒一言 重千金)

내어불미 거어하미(來語不美 去語何美), 장부일언 천년불개(丈夫一言千年不改)

丹脣皓齒 (단순호치, dānchúnhàochǐ)

丹脣皓齒(단순호치)

丹唇皓齿(dānchúnhàochǐ)

丹 붉을 단,정성스러울 란(난) | 脣 입술 순,꼭 맞을 민 | 皓 흴 호 | 齒 이 치 |


붉은 입술과 하얀 이란 뜻으로, ①여자(女子)의 아름다운 얼굴을 이르는 말 ②미인(美人)의 얼굴


하나라가 쇠퇴할 무렵 두 마리의 용이 왕궁의 뜰에 나타나, "우리는 포나라의 두 왕이다."하면서 용의 정기인 타액(唾液)을 토해놓고 사라졌다. 사람들이 점을 쳐 본 결과 보관해두면 길할 것이다[藏之吉]라는 점괘가 나와 사람들은 그것을 상자에 정성스럽게 받아 밀봉하고는 소중히 보관하였다. 그 상자는 천 년 동안이나 보관되었다.

그러나 은나라 여왕(厲王) 시대에 이르러 어떤 실수에 의해 상자가 마침내 열렸다. 그러자 상자 안에 있던 용의 침은 갑자기 검은 도마뱀[玄黿]으로 변하여 궁궐 안을 마구 기어다녔다. 이에 놀란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하다가 마침내 궁녀들을 모아 옷을 벗게 하고 큰 소리를 치도록 하였다. 그러자 도마뱀은 후원 쪽으로 도망쳐버렸다. 중국에서는 요사스런 동물을 쫓는 데에 벌거벗은 여인들이 동원되던 관습이 있었다.

벌거벗은 여인들의 고함 소리에 놀라 후원으로 도망치던 도마뱀은 때마침 후원을 지나가던 일곱 살 난 소녀와 마주쳤는데 그 소녀가 열 다섯이 되자 처녀의 몸인데도 자꾸만 배가 불러왔다. 이윽고 그녀가 애를 낳자 고민 끝에 아기를 강물에 띄워보냈다.

한편 당시에 거리에는 수상한 노래가 퍼지고 있었다.

뽕나무로 만든 활과
가느다란 풀줄기로 짠 화살통.
그것이 주나라를 망하게 하리라.

왕이 그 노래를 듣고는 명령을 내려 뽕나무로 만든 활과 풀줄기로 짠 화살통을 모두 없애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어느 시골의 활장수 부부가 뽕나무 활과 화살통을 가득 짊어진 채 서울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서울에 오자마자 포졸들에게 붙잡히게 되었는데 남편은 용케도 도망쳐서 10리 밖에까지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내달으니 거기서 마누라의 처절한 비명소리를 듣게 되었다.

눈물을 흘리며 강가로 가 몸을 던지려던 남편은 조그만 돗자리 위에 핏덩이 계집아이가 실려 떠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수백 마리의 새떼가 공중을 떠돌고 있었고, 그 중 수십 마리는 돗자리를 입으로 물어 사력을 다하며 계집아이가 물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남편이 돗자리를 건져 계집아이를 품에 안고 생각해 보니 갈 곳이 도무지 없었다. 그는 궁리 끝에 포나라[褒國]에 있는 친구에게로 가서 아이를 맡겼다. 그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났으며 용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음인지 용모가 빼어났다.

그 무렵 포나라 왕이 주 왕실에게 중죄를 지어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녀를 바치고 죄를 용서받게 되었는데 그 미녀가 바로 포사(褒姒,襃姒)였다.

주나라 유왕(幽王)은 포사에게 처음부터 빠져버렸다. 포사는 유왕의 총희가 되었으며, 아들 백복(伯服)을 낳았다. 그런데 포사는 웃음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포사를 웃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만이 유왕의 가장 큰 바램이 아닐 수 없었다. 별의별 일을 다 꾸며봤지만 그녀는 웃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그대가 웃을 수 있겠소?"

"저는 좋아하는 것이 없사옵니다. 다만 비단 찢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을 듯하옵니다."

유왕은 그날부터 매일 비단을 백 필씩 가져다가 팔 힘이 쎈 궁녀를 시켜 찢게 하였다. 그러나 포사는 웃지 않았다. 다만 뺨 부근이 희미하게 움직였을 뿐이었고 입술이 약간 벌어질 정도였다. 그래도 유왕은 뛸듯이 기뻤다. 매일 산더미같은 비단이 찢겨졌다. 궁중의 비단이 모두 없어지니 이제 제후들과 백성들에게서 징발해 계속 찢었다. 궁중에서는 매일 비단찢는 소리가 가득찼다.

그러던 어느날, 실수로 봉화대에 봉화가 올랐다. 봉화는 외적이나 반란군의 침입 등 위급할 때 올려 모든 군사를 왕궁으로 모이도록 하라는 신호이다.

"큰일났다. 빨리 왕궁으로 가자!"

나라의 모든 군사며 마차가 왕궁으로 모였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면서 사람과 말이 뒤엉키고, 수레는 서로 부딪히고 앞서온 군사들이 뒤에 온 군사들에게 고함을 치며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제후들은 맥이 빠져 자기들끼리 모여 수근거렸고 군사들은 투구를 땅바닥에 집어 던지면서 흥분하기도 하였다. 어떤 자들은 아예 길에서 주저앉아 잠을 자기도 하였다. 이러한 웃지 못할 광경이 한나절이나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결코 웃지 않았던 포사도 이 광경에 단순호치(丹脣皓齒)를 드러내며 웃었다. 꿈에 그리던 포사의 웃음이었다. 웃는 포사의 얼굴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유왕은 하늘도 땅도 그녀가 웃는 이 순간을 위해 생겨났다고 생각했다.

다음날부터 유왕은 매일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려산(驪山) 앞에 소집하였다. 처음에는 군사들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달려와 보면 왕궁의 높은 다락 위에서는 유왕과 포사가 내려보며 웃고 있었고 그런 일이 계속되자 그후에는 봉화가 올라도 움직이는 군사들이 없게 되었다.

뒤에 유왕은 왕비 신후(申后)와 태자 의구(宜臼)를 폐하고, 포사를 왕비로, 백복을 태자로 삼았다. 쫓겨난 왕비신후(申后)의 아버지 신후(申侯)는 격분하여 BC 771년 려(呂) 등의 나라와 연합하여 견융족(犬戎)과 함께 호경(鎬京)으로 대거 진공해왔다.

"봉화를 올려라!"

유왕은 다급하여 명령했다. 그러나 봉화가 올라도 단 한 명의 군사도 모이지 않았다. 유왕과 포사는 궁정을 빠져나가 도망쳤으나 얼마 가지 못하고 견융족에게 잡혀 유왕은 단칼에 베어졌다.

왕과 백복은 견융의 칼에 살해되어 서주는 멸망하였으며, 포사는 포로로 잡혀갔으며,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납치되어 견융의 여자가 되었다가 얼마 후 밤중에 도망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한다.


黿(원) ㉠ 자라 ㉡ 큰 자라 ㉢영원(蠑螈: 도룡뇽과에 속하는 양서류) ㉣별 이름

蠑螈(영원) ① 도롱뇽과에 딸린 동물(動物). 도롱뇽. 사사(蛇師). 사의(蛇醫). 수석척(水蜥蜴) ②도마뱀을 잘못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유의어

花容月態(화용월태) | 皓齒丹脣 호치단순 | 沈魚落雁 침어낙안 | 朱脣皓齒 주순호치 | 絶世美人 절세미인 | 絶世代美 절세대미 | 絶世佳人 절세가인 | 絶代佳人 절대가인 | 一顧傾城 일고경성 | 萬古絶色 만고절색 | 國香 국향 | 國色 국색 | 傾城之色 경성지색 | 傾城之美 경성지미 | 傾城 경성 | 傾國之色(경국지색) | 傾國(경국) |


史記(사기) : 周本紀(주본기) |

簞食瓢飮 (단사표음)

簞食瓢飮(단사표음)

도시락의 밥과 표주박의 물이라는 뜻으로 간소한 생활의 비유.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는 일생 동안 무려 3천 명의 제자를 두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는 자공(子貢)처럼 이재(理財)에 밝은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자로(子路)처럼 벼슬길에 나아가 성공한 사람도 있고, 안회(顔回)처럼 가난하지만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공자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제자는 안회였다. 공자는 제자들을 그 역량에 따라 평하고 그에 맞는 충고를 하곤 했지만, 안회에게만은 늘 칭찬을 잊지 않았다.

공자의 기대에 맞추어, 안회도 워낙 학문을 좋아하여 나이 29세에 벌써 백발이 되었다 한다. 자공이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聞一知十)'며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 사람도 바로 안회이다. 그러나 안회는 찢어지게 가난하여 끼니 거르기를 밥 먹 듯했으며 평생 찌게미조차 배불리 먹어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가난은 그의 수행과 학문 연구에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었다. 이런 안회를 보고 공자가 칭찬하였다. “어질도다, 안회여.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곳에 거처하며 산다면, 다른 사람은 그 근심을 견디어내지 못하거늘 안회는 즐거움을 잃지 않는구나.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 一簞食一瓢飮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사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즐거움을 잃지 않으므로 공자는 두 번이나 ‘어질도다 안회여.’라고 찬미한 것이다.

출전: 논어(論語)


관련 한자어

유의어(동의어)

一簞食一瓢飮(일단사일표음) |

多聞博識 (다문박식)

多聞博識(다문박식)

견문이 넓고 학식이 풍부한 것.

斷末魔 (단말마)

斷末魔(단말마)

말마는 인도말에서 온 것으로 숨이 끊어질 때의 고통 또는 임종을 가리킴.

螳螂捕蟬 (당랑포선, tánglángbǔchán)

螳螂捕蟬(당랑포선)

螳螂捕蟬(táng láng bǔ chán)

螳 사마귀 당 | 螂 사마귀 랑 | 捕 잡을 포 | 蟬 매미 선 |


눈앞의 욕심에만 눈이 어두워 덤비면 결국 큰 해를 입게 된다는 뜻.


전국시대 오나라 왕이 싸움을 무척 좋아하여 그의 강대한 병력을 믿고 이웃 나라를 침략했다. 그리하여 오나라는 끊일 사이 없는 전화 속에서 민생은 도탄에 빠질 지경이었다.

한번은 오왕이 또 초나라를 침공할 계획을 세우자 오나라 문무대신들은 당시의 정세로 보아 다시 출병을 하게 되면 오나라에 대단히 불리해질 것을 우려하여 오왕에게 계획을 취소하도록 극구 권하였다.

그러나 오왕은 본디 성격이 강직하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은 꼭 하고 마는 고집불통인지라 이러한 권유를 듣고 침략 계획을 스스로 포기하기는커녕 오히려 청천벽력 같은 명령을 내렸다.

"무릇 누구도 초나라 침공을 저지하는 자는 용서없이 모두 처단할 것이다."

대신들이 비록 오왕의 힘에 겨운 침략행위를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모두 목숨이 두려워 감히 진언하질 못했다. 이때 소유자라고 하는 대신이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고 여하간 오왕의 출병을 막고자 곰곰히 방책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그는 매일 아침 일찍 활과 화살을 들고 왕궁 후원에 나아가 배회하면서 아침 이슬로 그의 옷을 흠뻑 적시곤 하였다. 이렇게 사흘이 되던 날 과연 오왕의 주의를 끌게 되어 이상히 여긴 오왕이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이 하여 아침 일찍부터 옷을 적셔 놓으오?"

"신은 아침 일찍 뒤 화원에 와서 꾀꼬리를 잡으려다 그만 연못에 빠졌습니다. 비록 옷은 젖었지만 오히려 귀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라고 소유자가 대답했다.

오왕이 이 말을 듣자 놀람과 기쁨이 엇갈렸다. 놀라운 것은 꾀꼬리를 잡는데 무엇 때문에 귀중한 교훈을 받았으며 기쁜 것은 이 귀중한 교훈이 자신의 입신처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에서였다.

그리하여 오왕이 재촉하여 물었다.

"꾀꼬리를 잡는데 무슨 교훈을 얻었는지 그 사실을 상세히 아뢰렷다."

소유자는,

"조금전에 신이 이후원에 와서 새를 찾아 활솜씨를 시험해 보려 했는데, 갑자기 나무 위에서 매미 한 마리가 소리 높여 울더군요. 그래 머리를 들어 보니까 매미가 붙어 있는 바로 뒤에 사마귀 한 마리가 두 팔을 내어 밀고 막 매미에게 덮치려고 하고 잇지 않겠어요. 매미는 이를 모르고 있으니 틀림없이 아침 식사로 잡았다 생각했겠지요.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그 사마귀 뒤에는 꾀꼬리 한 마리가 묵묵히 앉아 있는데 그도 사마귀를 잡아먹으려고 온 정신을 기울여 주시하고 있더군요. 신은 그 때 활을 잡아당기고는 바로 쏘질 않았습니다. 사마귀가 팔을 뻗어 매미를 잡자 꾀꼬리가 확 덮쳐가 사마귀를 잡아 한 입에 넣어 막 삼키려는 찰라에 신이 꾀꼬리를 조준하여 활을 쏘니까 꾀꼬리가 맞고 땅으로 떨어지더군요.

사마귀와 꾀꼬리가 다같이 눈앞의 이익만을 탐내고 뒤의 화환은 꿈에도 생각지 않다가 그러한 결과가 생겼다고 신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막 달려가서 그 꾀꼬리를 주우려다 옆에 못이 있는 것을 모르고 발을 헛디디어 물에 빠지는 바람에 이렇게 온 몸이 물에 젖었습니다. 그때 제자신도 똑 같은 과오를 저질렀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얼마나 귀중한 교훈입니까?"

오왕이 듣고는 한참 무언가 깊이 생각하더니 소유자의 언중의 말뜻을 깨달아 초나라를 침공할 계획을 포기하였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螳螂窺蟬(당랑규선)│螳螂搏蟬(당랑박선, táng láng bó chán)│ 螳螂捕蟬(당랑포선, táng láng bǔ chán)│당랑재후(螳螂在後)

螳螂在後 (당랑재후, tánglángzàihòu)

螳螂在後(당랑재후)

螳螂在後(táng láng zài hòu)

螳 사마귀 당│螂 사마귀 랑│在 존재 재│後 뒤 후


사마귀가 뒤에 있다는 말로, 이익을 탐하여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 고사는 <한시외전(韓時外傳)>에서 나온다.

초장왕이 병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공격하려고 하면서 사대부들에게 이렇게 포고했다.

"감히 간언하는 자는 죽음이 있을 뿐 사면은 없다."

그러나 손숙오가 말했다.

"신은 채찍의 엄함을 두려워하여 아버지에게 감히 간언하지 못하는 자는 효자가 아니며, 부월의 형벌을 두려워하여 감히 군주에게 간언하지 못하는 자는 충신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신의 정원 안에 느티나무가 있는데, 그 위에 매미가 있습니다. 매미는 막 날개를 펴고 슬피 울며 맑은 이슬을 마시려고 하면서 사마귀가 뒤에서 목을 굽혀 먹으려 하고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사마귀는 매미를 먹으려고 하면서 참새가 뒤에서 목을 들고 쪼아 먹으려고 하는 것을 모릅니다.

참새는 사마귀를 먹으려고 하면서 어린아이가 아래에서 탄환을 장전하여 쏘려고 하는 것을 모릅니다. 어린아이는 참새에게 탄환을 쏘려고 하면서 앞에는 깊은 웅덩이가 있고 뒤에는 굴이 있는 것을 모릅니다.

이것은 모두 앞의 이익 때문에 뒤의 해로움을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유독 곤충의 무리만이 이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 역시 그러합니다. 지금 당신은 저쪽의 땅을 탐하는 것이 병사들을 즐겁게 하는 일인 줄 알고 있지만, 나라가 게으르지 않고 진나라가 안정된 것은 저의 힘인 것입니다."

초장왕은 이 말을 듣고 느끼는 바가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이익만을 탐하여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지 않고 돌진하면 그 이익보다 수백 배 큰 재앙이 닥칠 수 있다.

[출전] 한시외전(韓時外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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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어

螳螂窺蟬(당랑규선)│螳螂搏蟬(당랑박선, táng láng bó chán)│螳螂捕蟬(당랑포선, táng láng bǔ chán)│螳螂在後(당랑재후)

螳螂蟬蟬 (당랑박선, tánglángbóchán)

螳螂蟬蟬(당랑박선)

螳螂搏蝉(táng láng bó chán)

螳 사마귀 당│螂 사마귀 랑│蟬 잡을 박│蟬 매미 선


눈 앞의 이익에 어두워 뒤에 따를 걱정거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


장주(莊周)가 조릉(雕陵)이라는 밤나무밭 울타리 안을 거닐다가 문득 남쪽에서 이상하게 생긴 까치 한 마리가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 까치의 날개 넓이는 일곱 자였고, 눈의 직경이 한 치나 되었다. 까치는 장주의 이마에 닿았다가 밤나무 숲에 가서 멎었다. 장주는 혼잣말로 이렇게 말했다.

"저건 대체 무슨 새일까? 날개는 큰데 높이 날지 못하고 눈은 크나 보지 못하다니!"

그리고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재빨리 다가가 활을 쥐고 그 새를 쏘려 했다. 그러다 문득 보니, 매미 한 마리가 시원한 나무 그늘에 멎어 제 몸을 잊은 듯 울고 있었고, 바로 곁에는 정신이 팔려 스스로의 몸을 잊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긴 까치는 이 기회에 사마귀를 노리면서 정신이 팔려 제 몸을 잊고 있었다. 장주는 이 꼴을 보고 깜짝 놀라서 이렇게 외쳤다.

"아, 모든 사람이란 본래 서로 해를 끼치고, 이(利 )와 해(害 )는 서로를 불러들이고 있구나!"

그리고는 활을 내버리고 도망쳐 나왔다. 그때 밤나무 밭지기가 쫓아와 장주가 밤을 훔친 줄로 알고 꾸짖었다.

장주는 집에 돌아온 뒤 석 달 동안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제자 인저(藺咀)가 와서 물었다.

"선생님께선 요즘 무슨 일로 언짢으십니까?" 장주는 대답했다.

"나는 외물(外物)에 사로잡혀 내 몸을 잊고 있었다. 흙탕물을 보느라고 맑은 못을 잊듯이, 외물에 사로잡혀 자연의 대도(大道)를 놓치고 있었다. 나는 또 선생님으로부터 '속세에 들어가면 그 속세를 따르라'는 말을 들었는데도, 이번에 조릉을 거닐며 내 몸을 잊었고 이상한 까치는 내 이마에 닿았다가 밤나무 숲에서 노닐며 그 몸을 잊었으며, 나는 밤나무 밭지기로 부터 꾸지람을 듣고 모욕을 당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언짢은 것이다."

[출전] 장자(莊子) 산목(山木)


관련 한자어

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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螳螂拒轍 (당랑거철)

螳螂拒轍(당랑거철)

사마귀가 앞다리를 벌리고 수레바퀴를 막는다는 말로, 제 분수도 모르고 강정에게 덤벼든다는 뜻.


앞다리를 치켜들고 상대방에게 달려드는 품이 마치 도끼를 휘두르는 모습과 비슷해서 螳螂之斧(당랑지부)라고도 한다.

齊(제)나라의 莊公(장공)이 사냥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벌레 한마리가 앞다리를 휘두르며 장공이 탄 수레에 덤벼 들었다.

『그놈 기세 한 번 대단하군. 도대체 저것이 무슨 벌레냐』

마부가 대답했다.

『사마귀라는 벌레입니다. 저놈은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지 물러설 줄은 모르는 놈입니다. 자기 힘은 생각지도 않고 오직 적에게 덤벼들기만 한답니다』

장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벌레가 만약 인간이었다면 분명 천하에 비할 바 없는 용사가 되었을 것이다』

장공은 사마귀가 다치지 않게 수레를 돌려 피하여 가게 했다.

당랑거철이란 말은 「莊子(장자)」에도 나온다.

『사마귀는 앞다리를 벌리고 수레바퀴에 대들면서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자기 능력을 과신하기 때문이다.이런 것은 경계하고 삼가야 할 일이다』

螳螂窺蟬 (당랑규선, tánglángkuīchán)

螳螂窺蟬(당랑규선)

螳螂窥蝉(táng láng kuī chán)

螳 사마귀 당 | 螂 사마귀 랑 | 窺 엿볼 규 | 蟬 매미 선 |


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려고 엿본다는 말로, 눈 앞의 이익에 어두워 뒤에 따를 걱정거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


전한(前漢) 때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說苑)》정간(正諫)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당랑포선(螳螂捕蟬)이라고도 한다. 《장자(莊子)》 산목편(山木篇)에 나오는 당랑박선(螳螂搏蟬)이나,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오는 당랑재후(螳螂在後)라는 말이 모두 같은 뜻이다.

춘추시대 말기 오왕(吳王) 부차(夫差)는 월나라 공략에 성공한 후 자만에 빠져 간신 백비의 중상을 믿고 상국(相國:재상) 오자서(伍子胥)를 죽였으며, 월(越)나라에서 보내 온 미인 서시(西施)와 유락 생활에 탐닉하였다. 월의 구천이 와신상담 재기를 노린다는 것을 아는 중신들이 간하여도 막무가내였다.

어느 날 아침 태자 우(友)는 젖은 옷을 입고 활을 든 채 부차를 만났다. “너는 아침부터 무엇을 그리 허둥대느냐?” 부차가 묻자, 우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침에 정원에 갔더니 높은 나뭇가지에 매미가 앉아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 뒤를 보니 사마귀 한 마리가 매미를 잡아먹으려고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홀연 참새[黃雀] 한 마리가 날아와서 그 사마귀를 먹으려고 노리는데, 사마귀는 통 기미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참새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습니다. 그런데 그만 활 쏘는 데 정신이 팔려 웅덩이 속으로 빠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옷을 이렇게 적신 것입니다. 천하에는 이런 예가 부지기수입니다. 이를테면 제나라는 까닭없이 노나라를 쳐서 그 땅을 손에 넣고 기뻐했지만, 우리 오나라에게 그 배후를 공격받고 대패했듯이 말입니다.”

부차는 말을 듣자마자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너는 오자서가 못다한 충고를 할 셈이냐? 이제 그런 소리는 신물이 난다.”

충심에서 우러난 간언을 듣지 않은 부차는 결국 월나라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고, 그 자신은 자결하였다.

장자는 이 일화를 ‘모든 사물은 본래 서로 해를 끼치는 것이며, 이(利)와 해(害)는 서로가 서로를 불러들이는 것’이라는 비유로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소탐대실(小貪大失)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출전]
說苑(설원) : 正諫 |


黃雀 ①꾀꼬리. 黃鶯兒(황앵아). ②참새. 依人雀(의인작). 賓雀(빈작).


관련 한자어

유의어

螳螂窺蟬(당랑규선) | 螳螂搏蟬(당랑박선, táng láng bó chán) | 螳螂捕蟬(당랑포선, táng láng bǔ chán) | 螳螂在後(당랑재후) |


說苑(설원) : 正諫 |

單刀直入 (단도직입)

單刀直入(단도직입)

한 자루의 칼만 들고 들어간다. 긴 말을 늘어놓지 않고 바로 본론에 들어간다

當同伐異 (당동벌이)

當同伐異(당동벌이)

當 마땅 당 | 同 한가지 동 | 伐 칠 벌 | 異 다를 이

옳고 그름의 여하간에 한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다른 무리의 사람을 무조건 배격하는 것을 이르는 말.

《후한서(後漢書)》 당동전(黨同傳)에서 비롯된 말이다.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통일하고 강력한 중앙 집권화를 이룩한 이래 중국의 권력은 오직 황제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자연히 황제를 둘러싼 친위 집단이 권력을 농단하게 되었는데, 그 중심을 이룬 것이 환관과 외척 세력이었다. 또 한(漢)나라 때에는 유교를 국교로 하여 유학을 공부한 선비 집단이 성장하였다. 그런데 왕망(王莽)이 제위를 찬탈하자 선비들은 초야로 피해 청의(淸議)를 일삼고, 자연스럽게 명망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뜻을 같이하는 무리들이 모였다. 이를 당인(黨人)이라 한다.

후한 때에는 화제(和帝) 이후 역대 황제가 모두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다. 그래서 황태후가 섭정이 되고, 이 과정에서 황태후의 친인척인 외척들이 실권을 잡게 되었다. 그러나 후일 장성한 황제는 이들의 전횡을 탐탁치 않게 여겨 자신의 친위 세력을 키우고 이들을 제거해 나가는데, 그 중심이 된 세력이 바로 환관이었다.

환관들은 신분 상승의 욕구 때문에 스스로 거세한 사람들이었으므로 집단의 결속력이 유달리 강하고, 사회적 책임이나 정치적 경륜보다는 자신들의 이해에 민감하였다. 따라서 이들이 권력을 쥐면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게 마련이었다. 유교적 교양을 쌓은 예비 관료 집단인 선비들이 환관의 농단으로 국정이 문란하고 풍속이 타락해 가는 것을 방관만 하고 있을 리 없었다.

이들도 명망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모여 전국적으로 방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비 집단과 외척, 환관 세력이 서로 물고 물리는 정권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옳고 그름을 떠나 다른 집단을 무조건 배격하는 것은 예상되는 일이었다. 이를 가리키는 말이 당동벌이이다.

좁게는 당고(黨錮)의 옥(獄) 이후 이응(李膺)을 중심으로 한 당인들이 유교적 지식 계급 이외의 세력을 적대시하던 사실을 가리키기도 한다. 전한은 외척이 망쳤고, 후한은 환관이 망쳤다고 한다. 후한 말에 이르러 환관들은 외척과 선비 집단을 철저히 탄압하고, 그 결과로 지식인 관료 집단인 선비 집단이 황실을 버림으로써 후한이 자멸하게 되었다.

多讀多作多商量 (다독다작다상량, duōdúduōzuòduōshāngliang)

多讀多作多商量(다독다작다상량)

多读多作多商量(duōdú duōzuò duōshāngliang)

多 많을 다 | 讀 읽을 독,구절 두 | 多 많을 다 | 作 지을 작 | 多 많을 다 | 商 상의할 상 | 量 헤아릴 량 |


三多(sānduō). 많이 보고[看], 많이 지으며[做], 많이 생각한다[商量]는 뜻으로, 중국(中國)의 구양수(歐陽脩)가 글을 잘 짓는 비결(秘訣)로서 이른 말.

永叔謂為文有三多:看多、做多、商量多也。(後山詩話, 宋 陳師道著)

「三多」與「三上」:歐陽脩說:「為文有三多:看多、做多、商量多也。」意思是:多看書,學習別人的寫作經驗;多練習寫作,在寫作中提升能力;多與別人商量、研究,虛心求教,努力把文章寫得完美。又說:「余平生所作文章,多在『三上』:乃馬上、枕上、廁上也。」意思是:他常常利用外出的路程上、就寢前以及上廁所的時候,把握時間構思文章。

후대에 오며, 많이 읽고[讀], 많이 지으며[作], 많이 생각한다는 말로 바뀌었다. 또한, 혹자는 多聞多讀多想量(다문다독다상량) 또는 多聞多讀多商量(다문다독다상량)이라고도 한다.


참조 한자어

多聞多讀多想量(다문다독다상량) | 多聞多讀多商量(다문다독다상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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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山詩話 | 歐陽修(구양수) | 歐陽永叔(구양영숙) |

膽大心小 (담대심소)

膽大心小(담대심소)

담력은 크게 가지되 마음은 작게 한다

多多益善 (다다익선)

多多益善(다다익선)

多多益善[duōduōyìshàn]

多 많을 다 | 多 많을 다 | 益 더할 익, 넘칠 일 | 善 착할 선 |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The more, the better.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열전에는 한신(韓信)에 관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진(秦)나라 말기, 전국 각지에서 진나라에 반항하는 세력들이 봉기하였다. 한신은 먼저 항우(項羽)의 휘하로 들어갔으나 중용(重用)되지 못하자, 다시 유방(劉邦)의 휘하로 옮겼다.

한고조 유방은 宿敵(숙적)인 항우를 무찌르고 천하를 통일하자 지금까지 자기를 위해 몸바쳐 일해 온 사람들이 모두 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韓信(한신)을 누구보다도 강력한 라이벌로 여겼고 자기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방은 論功行賞(논공행상)에서 楚王(초왕)으로 봉했던 한신을 전에 항우의 부하였던 종리매를 숨겨주었다는 구실로 왕위를 박탈하고 淮陰侯(회음후)로 좌천시켜 도읍에 있게 했다.

어느 날 고조는 한신과 여러 장군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고조가 말했다.

『그런데 짐은 대체 어느 정도의 군사를 거느리는 장수감으로 보이나』
『글쎄요, 폐하께서는 한 십만명쯤은 거느리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 그럼 그대는 얼마나 거느릴 수 있겠는가』
『저는 다다익선으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臣多多而益善耳]』

한신의 대답에 고조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그대가 어찌하여 짐의 밑에 있단 말인가』

한신이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그 까닭은 이렇습니다. 폐하께서는 군사의 장수는 되실 수 없어도 장수의 장수는 되실 수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신이 폐하를 받들게 된 것입니다』


출전

사기(史記)의 회음후전(淮陰侯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多多益辦(다다익판) |

多難興邦 (다난흥방)

多難興邦(다난흥방)

多 많을 다 | 難 어려울 난 | 興 일어날 흥 | 邦 나라 방 |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나서 나라를 부흥하게 한다는 뜻.


많은 어려운 일을 겪고서야 나라를 일으킨다는 뜻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러모로 노력해야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 진(晉)나라 무제(武帝:재위 265∼290)의 아들인 혜제(惠帝:재위 290∼306) 때 진나라는 '팔왕(八王)의 난' 등으로 혼란하였다. 이 시기를 틈타 진나라의 지배를 받은 북방 민족들이 독립하여 나라를 세우고 쳐들어와 회제(懷帝)와 민제(愍帝)가 살해되고, 진나라는 중원에서 양쯔강[揚子江] 이남으로 나라를 옮겨 동진(東晉)이라고 불렀다.

조적(祖逖)과 유곤(劉琨)을 비롯한 장군들은 군사를 이끌고 북방지역 정벌을 하였으며, 좌승상 사마 예(司馬睿)에게 《권진표(勸進表)》를 올리고 제위를 계승하여 나라 일을 맡도록 청하였다. 다음의 《권진표》 가운데 나오는 구절에서 유래한 성어(成語)이다.

"많은 재난이나 어려움은 우리에게 나라를 부흥시키고 공고히하도록 격려해주며, 깊은 근심은 황제로 하여금 정세를 정확하게 보고 새로운 결심을 하게 해준다[或多難以固邦國 或殷憂以啓聖明]."

그뒤 사마 예는 동진의 제1대 황제인 원제(元帝:재위 317∼322)로 즉위하였으며 북벌을 결정하지 못하고 조적과 유곤을 의심하여 유곤을 살해하자, 조적은 그 울분으로 죽었다. 동진은 317년 건업(建業:南京)을 국도로 진왕조를 재건한 뒤 공제(恭帝) 때인 419년에 유유(劉裕)에게 멸망하였다.

이와 같이 수많은 고난이 사람들에게 나라를 부흥시킬 수 있도록 격려한다는 것을 말한다.

斷機之戒 (단기지계)

斷機之戒(단기지계)

면학에의 훈계.

多岐亡羊 (다기망양)

多岐亡羊(다기망양)


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길을 잃었다는 뜻으로, ①학문(學問)의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 진리(眞理)를 찾기 어려움 ②방침(方針)이 많아 할 바를 모르게 됨. 곧 본 뜻이나 목적을 망각하고 지엽적이고 단편적인 것에 집착하게 되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말.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사상가(思想家)로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주장했던 양자(楊子)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어느날, 양자의 이웃집 양 한 마리가 도망쳤다. 이웃집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양자의 집 하인들까지 총동원되어 양을 찾으러 나섰다. 이런 소동을 보고 양자가 물었다.

"양 한 마리를 찾는데 쫓아가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은가?"
"워낙 갈림길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게 하인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모두들 기진맥진해 돌아와서 말했다.

"갈림길을 지나면 또 갈림길이어서 양이 어느 길로 도망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단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 양은 찾았느냐?" "갈림길이 하도 많아서 그냥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양을 못 찾았단 말이냐?"

"예, 갈림길에 또 갈림길이 있는지라 양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통 알 길이 없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양자는 우울한 얼굴로 그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물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제자인 맹손양(孟孫陽)은 스승의 고민을 알지 못하고 선배 제자인 심도자(心都子)에게 양자가 침묵하는 까닭을 물었다.

심도자의 대답은 이랬다.

"큰 길은 갈림길이 많아서 양을 놓쳐 버리고(多岐亡羊) 학문하는 사람은 방법이 많기 때문에 본성을 잃고 마네. 학문이란 원래 근본은 하나였는데 그 끝은 이같이 달라지게 되네. 그러므로 하나인 근본으로 되돌아가게 되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는 게 선생님의 생각이시네. 그런데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이라네."

근본을 도외시(度外視)하고 지엽적인 것에 몰두하게 되면 아무런 소득이 없거나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유래: 列子(열자)


관련 한자어

유의어

望洋之歎(망양지탄) |


列子(열자) |

斷金之交 (단금지교)

斷金之交(단금지교)

친구 사이의 사귀는 정이 두텁고 깊은 것.

斷金之契 (단금지계)

斷金之契(단금지계)

극히 친밀한 우정(友情)

堂狗風月 (당구풍월)

堂狗風月(당구풍월)

서당 개 삼년에 풍월한다.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도 그 부문에 함께 끼여 오래 있으면 어느덧 영향을 입어 다소나마 알게 된다는 뜻

☞ 堂狗三年吠風月(당구삼년폐풍월)

堂狗三年吠風月 (당구삼년폐풍월)

堂狗三年吠風月(당구삼년폐풍월)

서당개 삼년에 풍월을 읊는다.

☞ 堂狗風月(당구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