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風良俗(미풍양속)
아름답고 좋은 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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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人計 (미인계, měirénjì)
美人計(미인계)
美人计(měirénjì)
美 아름다울 미 | 人 사람 인 | 計 셀 계 |
아름다운 여성을 미끼로 하여 사람을 꾀는 계략(計略).
三十六計(삼십육계) 敗戰計(패전계) 제31계 미인으로 유혹하다.
삼십일계부터 삼십육계까지는 '敗戰計(패전계)'로 묶여있다. 이는 이미 전쟁에서 승기를 바랄 수 없는 경우,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계략들이 모여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앞선 30가지의 계략들을 모두 시도해 보고, 그러고도 승기가 보이지 않을 경우에 쓰는 것이다. 무작정 도망치면서 '36계 줄행랑이 최고다'라는 식이 아니다.
원문에는 다음과 같이 풀이되어 있다.
"병력이 강한 적이라면, 장수에게 작용한다. 장수가 지혜로운 자라면, 정서적인 약점을 공략한다. 장수가 약하고 병사들의 사기가 흩어지면, 스스로 붕괴된다. 적의 약점에 편승하여 힘쓴다면, 아군에게 유리하게 전환할 수 있다.[兵强者,攻其將;將智者,伐其情.將弱兵頹,其勢自萎.利用御寇,順相保也.]"
미인계에 관한 사례는 많다. 고대로부터 하왕조를 멸망으로 몰고 간 말희, 은왕조를 망하게 한 달기, 주왕조를 망조들게 한 포사, 오나라를 망하게 한 서시, 동탁을 죽음으로 몰고간 초선, 당현종을 죽게 만든 양귀비 등 미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지도자 들에게 주색을 경계하기 위한 이야기로 많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살펴보자. 초한쟁패에서 끈질기게 항우에게 시비를 걸어, 결국엔 항우를 물리치고 漢(한)나라를 건국한 고조 유방, 한나라 내부를 어느 정도 정리하고 황제의 위에 오른 후, 흉노족 토벌에 나섰다. 항우와 유방이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흉노족은 묵특 선우에 의해 통일되었다. 그리고는 국경을 수시로 침입해 오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유방은 흉노족의 계략에 말려들어 작은 平城(평성)에서 40만 흉노군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적은 병력으로 성에 틀어박혀 꼼짝없이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진평이 계략을 내놓는다. 진평의 계략은 다음과 같다.
흉노의 장, 묵특은 여색을 아주 밝히는 자이다. 여자를 좋아하면서도 부인에게는 꼼짝을 못하고 잡혀 살았다. 그래서 진평은 화가에게 美人圖(미인도) 한 장을 그리게 하여, 보물과 함께 묵특의 부인에게 가지고 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묵특 선우께서 미인을 좋아한다 하시기에 미인을 바칠 생각인데, 마음에 드실지 몰라 먼저 그림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그림을 보시고 마음에 드신다면, 곧 본인을 보내드릴 터이니, 대왕께 여쭈어 주십시오."
그러자 묵특의 부인은 유방이 이 그림같이 꽃같은 미인을 바친다면 묵특의 총애를 잃을까 싶어, 묵특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또한 혹시 유방이 미인을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닌가 싶어 묵특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한나라를 친다고 해도 우리가 한나라에서 살수도 없는 일이니, 군사를 물리는게 좋을듯 하옵니다."
이에 묵특 선우는 그 말을 타당히 여겨, 군사를 돌렸다. 유방, 구사일생의 순간이었다.
겨우 살아 돌아온 유방이었으나, 흉노는 여전히 그의 골칫거리였다. 묵특 선우는 대군을 몰고 국경지대에 계속 침입해 왔던 것이다. 이에 유방은 군사를 일으키고자 진평과 유경에게 상의를 했다. 유경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천하를 평정하느라 너무 오랜 세월을 싸워왔습니다. 이제 다시 묵특을 무력으로 정벌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종실의 공주 한사람을 묵특에게 시집보내 화친을 맺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이에 유방은 유경의 계략에 따라 공주를 시집보내고, 매년 조공을 바치는 것을 조건으로 묵특과 화친을 맺게 된다. 묵특은 잠시 침략을 멈추었으나, 국경지대에서 흉노에게로 투항하는 자들은 계속 노략질을 하곤 했다.
진평은 거짓 미인계를 써서 유방을 살렸고, 유경은 진짜 미인계를 써서 흉노와 화친을 맺은 것이다.
美人计(měirénjì)
美 아름다울 미 | 人 사람 인 | 計 셀 계 |
아름다운 여성을 미끼로 하여 사람을 꾀는 계략(計略).
三十六計(삼십육계) 敗戰計(패전계) 제31계 미인으로 유혹하다.
삼십일계부터 삼십육계까지는 '敗戰計(패전계)'로 묶여있다. 이는 이미 전쟁에서 승기를 바랄 수 없는 경우,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계략들이 모여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앞선 30가지의 계략들을 모두 시도해 보고, 그러고도 승기가 보이지 않을 경우에 쓰는 것이다. 무작정 도망치면서 '36계 줄행랑이 최고다'라는 식이 아니다.
원문에는 다음과 같이 풀이되어 있다.
"병력이 강한 적이라면, 장수에게 작용한다. 장수가 지혜로운 자라면, 정서적인 약점을 공략한다. 장수가 약하고 병사들의 사기가 흩어지면, 스스로 붕괴된다. 적의 약점에 편승하여 힘쓴다면, 아군에게 유리하게 전환할 수 있다.[兵强者,攻其將;將智者,伐其情.將弱兵頹,其勢自萎.利用御寇,順相保也.]"
미인계에 관한 사례는 많다. 고대로부터 하왕조를 멸망으로 몰고 간 말희, 은왕조를 망하게 한 달기, 주왕조를 망조들게 한 포사, 오나라를 망하게 한 서시, 동탁을 죽음으로 몰고간 초선, 당현종을 죽게 만든 양귀비 등 미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지도자 들에게 주색을 경계하기 위한 이야기로 많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살펴보자. 초한쟁패에서 끈질기게 항우에게 시비를 걸어, 결국엔 항우를 물리치고 漢(한)나라를 건국한 고조 유방, 한나라 내부를 어느 정도 정리하고 황제의 위에 오른 후, 흉노족 토벌에 나섰다. 항우와 유방이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흉노족은 묵특 선우에 의해 통일되었다. 그리고는 국경을 수시로 침입해 오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유방은 흉노족의 계략에 말려들어 작은 平城(평성)에서 40만 흉노군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적은 병력으로 성에 틀어박혀 꼼짝없이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진평이 계략을 내놓는다. 진평의 계략은 다음과 같다.
흉노의 장, 묵특은 여색을 아주 밝히는 자이다. 여자를 좋아하면서도 부인에게는 꼼짝을 못하고 잡혀 살았다. 그래서 진평은 화가에게 美人圖(미인도) 한 장을 그리게 하여, 보물과 함께 묵특의 부인에게 가지고 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묵특 선우께서 미인을 좋아한다 하시기에 미인을 바칠 생각인데, 마음에 드실지 몰라 먼저 그림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그림을 보시고 마음에 드신다면, 곧 본인을 보내드릴 터이니, 대왕께 여쭈어 주십시오."
그러자 묵특의 부인은 유방이 이 그림같이 꽃같은 미인을 바친다면 묵특의 총애를 잃을까 싶어, 묵특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또한 혹시 유방이 미인을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닌가 싶어 묵특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한나라를 친다고 해도 우리가 한나라에서 살수도 없는 일이니, 군사를 물리는게 좋을듯 하옵니다."
이에 묵특 선우는 그 말을 타당히 여겨, 군사를 돌렸다. 유방, 구사일생의 순간이었다.
겨우 살아 돌아온 유방이었으나, 흉노는 여전히 그의 골칫거리였다. 묵특 선우는 대군을 몰고 국경지대에 계속 침입해 왔던 것이다. 이에 유방은 군사를 일으키고자 진평과 유경에게 상의를 했다. 유경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천하를 평정하느라 너무 오랜 세월을 싸워왔습니다. 이제 다시 묵특을 무력으로 정벌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종실의 공주 한사람을 묵특에게 시집보내 화친을 맺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이에 유방은 유경의 계략에 따라 공주를 시집보내고, 매년 조공을 바치는 것을 조건으로 묵특과 화친을 맺게 된다. 묵특은 잠시 침략을 멈추었으나, 국경지대에서 흉노에게로 투항하는 자들은 계속 노략질을 하곤 했다.
진평은 거짓 미인계를 써서 유방을 살렸고, 유경은 진짜 미인계를 써서 흉노와 화친을 맺은 것이다.
難兄難弟 (난형난제, nánxiōngnándì)
難兄難弟(난형난제)
难兄难弟(nán xiōng nán dì)
難 어려울 난 | 兄 맏 형 | 難 어려울 난 | 弟 아우 제 |
양자(兩者) 중에 어느 편이 낫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 쓰이는 말.
형 노릇 하기도 어렵고 동생 노릇 하기도 어렵다는 뜻으로, 양자(兩者) 중에 어느 편이 낫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 사용된다. 《세설신어·덕행(世說新語·德行)》에 나오는 말이다.
동한(東漢)시기, 영천(潁川)의 허(許)지방에 진식(陳寔)이라는 유명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고 매사에 공정하였다. 그는 생활이 검소하여 집안에 하인을 두지 않았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의 이름은 기(紀)이고 자(字)는 원방(元方)이었으며, 작은 아들은 이름이 담(湛)이고 자(字)는 계방(季方)이었다. 이들 또한 모두 명망이 드높은 인물들이었다.
진원방(陳元方)의 아들 장문(長文)과 그의 사촌, 즉 원방의 동생 계방(季方)의 아들 효선(孝先)이, 서로 자기 아버지의 공덕이 더 훌륭하다고 주장하다가 결말이 나지 않으므로 할아버지인 진식(陳寔)에게 가서, 이에 대한 판정을 내려주실 것을 호소하였다. 그러자 진식은 "원방도 형 되기가 어렵고 계방도 동생 되기가 어렵다[元方難爲兄 季方難爲弟]"라고 대답하였다고 한 데서 유래한 고사성어이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덕행(德行)
관련 한자어
유의어
莫上莫下(막상막하) |
구분
难兄难弟(nànxiōngnàndì) |
难兄难弟(nán xiōng nán dì)
難 어려울 난 | 兄 맏 형 | 難 어려울 난 | 弟 아우 제 |
양자(兩者) 중에 어느 편이 낫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 쓰이는 말.
형 노릇 하기도 어렵고 동생 노릇 하기도 어렵다는 뜻으로, 양자(兩者) 중에 어느 편이 낫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 사용된다. 《세설신어·덕행(世說新語·德行)》에 나오는 말이다.
동한(東漢)시기, 영천(潁川)의 허(許)지방에 진식(陳寔)이라는 유명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고 매사에 공정하였다. 그는 생활이 검소하여 집안에 하인을 두지 않았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의 이름은 기(紀)이고 자(字)는 원방(元方)이었으며, 작은 아들은 이름이 담(湛)이고 자(字)는 계방(季方)이었다. 이들 또한 모두 명망이 드높은 인물들이었다.
진원방(陳元方)의 아들 장문(長文)과 그의 사촌, 즉 원방의 동생 계방(季方)의 아들 효선(孝先)이, 서로 자기 아버지의 공덕이 더 훌륭하다고 주장하다가 결말이 나지 않으므로 할아버지인 진식(陳寔)에게 가서, 이에 대한 판정을 내려주실 것을 호소하였다. 그러자 진식은 "원방도 형 되기가 어렵고 계방도 동생 되기가 어렵다[元方難爲兄 季方難爲弟]"라고 대답하였다고 한 데서 유래한 고사성어이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덕행(德行)
관련 한자어
유의어
莫上莫下(막상막하) |
구분
难兄难弟(nànxiōngnàndì) |
難兄難弟 (난형난제, nànxiōngnàndì)
難兄難弟(난형난제)
难兄难弟, nàn xiōng nàn dì
難 어려울 난 | 兄 맏 형 | 難 어려울 난 | 弟 아우 제
고난이나 재난을 함께한 사람. 생사고락을 함께한 사람. 함께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 서로 같은 곤경에 처한 사람.
관련 한자어
구분
难兄难弟(nánxiōngnándì)
难兄难弟, nàn xiōng nàn dì
難 어려울 난 | 兄 맏 형 | 難 어려울 난 | 弟 아우 제
고난이나 재난을 함께한 사람. 생사고락을 함께한 사람. 함께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 서로 같은 곤경에 처한 사람.
관련 한자어
구분
难兄难弟(nánxiōngnándì)
亂臣賊子 (난신적자)
亂臣賊子(난신적자)
亂 어지럽힐 란 | 臣 신하 신 | 賊 해칠 적 | 子 아들 자 |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신하와 어버이를 해치는 자식.
孟子 등문공(藤文公) 하편에는 맹자의 제자인 공도자가 제기한 논쟁에 관한 맹자의 답변이 실려 있다. 맹자는 자신이 논쟁을 피하지 않는 이유를 인의(仁義)의 실천을 위한 것으로 설명하였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공자가 춘추를 완성하자 나라를 어지럽히는 무리들은 두려워 하였다[孔子成春秋而亂臣賊子懼]라는 구절이 나온다.
후한서 '동탁전(董卓傳)'에도 너희들은 반역하여 천자를 핍박하니, 역적들중에도 이제껏 너희같은 자들은 없었다[亂臣賊子未有如汝者]라는 구절이 보인다.
亂 어지럽힐 란 | 臣 신하 신 | 賊 해칠 적 | 子 아들 자 |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신하와 어버이를 해치는 자식.
孟子 등문공(藤文公) 하편에는 맹자의 제자인 공도자가 제기한 논쟁에 관한 맹자의 답변이 실려 있다. 맹자는 자신이 논쟁을 피하지 않는 이유를 인의(仁義)의 실천을 위한 것으로 설명하였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공자가 춘추를 완성하자 나라를 어지럽히는 무리들은 두려워 하였다[孔子成春秋而亂臣賊子懼]라는 구절이 나온다.
후한서 '동탁전(董卓傳)'에도 너희들은 반역하여 천자를 핍박하니, 역적들중에도 이제껏 너희같은 자들은 없었다[亂臣賊子未有如汝者]라는 구절이 보인다.
難得糊塗 (난득호도)
難得糊塗(난득호도)
難 어려울 난 | 得 얻을 득 | 糊 풀 호 | 塗 진흙도
(어리석은데 총명한척 하기도 어렵지만) 총명한데 어리석어 보이기는 (더욱) 힘들다는 뜻. 뛰어난 사람이 때로는 바보처럼 위장하여 풍랑이 많은 세상에서 살아사는 도가적 삶의 처세술을 보여주는 의미.
It's difficult to be careless all the time; wise people rarely get confused, but sometimes it's better to pretend to be bewildered.
중국 청대의 유명한 화가 겸 서예가 정섭(鄭燮, 1693-1765, 호: 板橋)이 쓴 말. 자신을 본 모습을 숨기고 일을 도모하는 것을 뜻한다. 중국인들이 매우 좋아하는 어구로서 속과 겉이 다른 중국인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어느날 정판교는 정묵이라는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가옥의 담장에 문제로 이웃과 소송이 붙었으니 편지를 써서 흥화현 지현에게 부탁이었다. 정판교는 서신을 다 읽고 다음과 같이 시를 써서 회신했다.
“천리나 편지를 보낸 것이 담장 하나 때문인가? 그에게 몇 자를 양보하면 또 어떤가? 만리장성은 아직도 남아 있는데 어찌 진시황은 보이질 않겠는가.”
그리고 나중에 어리석기도 어렵다는 뜻의 난득호도(難得糊塗)란 글과 손해보는 것이 복을 받는 것이라는 뜻의 흘휴시복(吃虧是福)라는 두 개의 큰 글자를 써서 보냈다고 한다.
“난득호도(難得糊塗)”란 글에 대하여 정판교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聰明難,糊塗難,(총명난, 호도난)
由聰明轉入 糊塗更難。(유총명전입 호도갱난)
放一著 退一步,當下心安,(방일착 퇴일보, 당하안심)
非圖後來 福報也。(비도후래복보야)
총명하기도 어렵고, 어리석기도 어렵다.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게 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생각을 놓고 한 걸음 물러서면, 그 순간 마음은 편해진다.
뜻하지 않고 있노라면 후에 복으로써 보답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흘휴시복(吃虧是福)”이라는 글자에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고 한다.
滿者損之機 (만자손지기)
虧者盈之漸。(휴자영지점)
損於己則盈於彼。(손어기즉영어피)
各得心情之半。(각득심정지반)
而得我心安卽平 (이득아심안즉평)
且安福卽在時矣。(차안복즉재시의)
가득 차면 덜어지게 되어 있고
비어 있으면 점점 차게 되어 있다.
자기가 손해 보면 다른 사람이 이익을 본다.
그러면 각자 심정의 절반씩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을 얻게 되니,
어찌 바로 복을 받은 때가 아니겠는가.
難 어려울 난 | 得 얻을 득 | 糊 풀 호 | 塗 진흙도
(어리석은데 총명한척 하기도 어렵지만) 총명한데 어리석어 보이기는 (더욱) 힘들다는 뜻. 뛰어난 사람이 때로는 바보처럼 위장하여 풍랑이 많은 세상에서 살아사는 도가적 삶의 처세술을 보여주는 의미.
It's difficult to be careless all the time; wise people rarely get confused, but sometimes it's better to pretend to be bewildered.
중국 청대의 유명한 화가 겸 서예가 정섭(鄭燮, 1693-1765, 호: 板橋)이 쓴 말. 자신을 본 모습을 숨기고 일을 도모하는 것을 뜻한다. 중국인들이 매우 좋아하는 어구로서 속과 겉이 다른 중국인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어느날 정판교는 정묵이라는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가옥의 담장에 문제로 이웃과 소송이 붙었으니 편지를 써서 흥화현 지현에게 부탁이었다. 정판교는 서신을 다 읽고 다음과 같이 시를 써서 회신했다.
“천리나 편지를 보낸 것이 담장 하나 때문인가? 그에게 몇 자를 양보하면 또 어떤가? 만리장성은 아직도 남아 있는데 어찌 진시황은 보이질 않겠는가.”
그리고 나중에 어리석기도 어렵다는 뜻의 난득호도(難得糊塗)란 글과 손해보는 것이 복을 받는 것이라는 뜻의 흘휴시복(吃虧是福)라는 두 개의 큰 글자를 써서 보냈다고 한다.
“난득호도(難得糊塗)”란 글에 대하여 정판교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聰明難,糊塗難,(총명난, 호도난)
由聰明轉入 糊塗更難。(유총명전입 호도갱난)
放一著 退一步,當下心安,(방일착 퇴일보, 당하안심)
非圖後來 福報也。(비도후래복보야)
총명하기도 어렵고, 어리석기도 어렵다.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게 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생각을 놓고 한 걸음 물러서면, 그 순간 마음은 편해진다.
뜻하지 않고 있노라면 후에 복으로써 보답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흘휴시복(吃虧是福)”이라는 글자에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고 한다.
滿者損之機 (만자손지기)
虧者盈之漸。(휴자영지점)
損於己則盈於彼。(손어기즉영어피)
各得心情之半。(각득심정지반)
而得我心安卽平 (이득아심안즉평)
且安福卽在時矣。(차안복즉재시의)
가득 차면 덜어지게 되어 있고
비어 있으면 점점 차게 되어 있다.
자기가 손해 보면 다른 사람이 이익을 본다.
그러면 각자 심정의 절반씩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을 얻게 되니,
어찌 바로 복을 받은 때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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