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刻畵無鹽 (각화무염, kèhuàwúyán)

刻畵無鹽(각화무염)

刻畵无盐(kè huà wú yán)

刻 새길 각 | 畵 그림 화 | 無 : 없을 무 | 鹽 소금 염


차이가 많이 나는 물건을 비교하거나 맞지 않는 비유를 이르는 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차이가 나거나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을 비유한 성어(成語)이다.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 제(齊)나라의 무염(無鹽)이라는 지방에 '종리 춘(鐘離春)'이라는 못생긴 여자가 살았다. 종리 춘은 선왕에게 제나라의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그 재능을 인정받아 무염군에 봉해져 황후가 되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월(越)나라의 미녀인 서시(西施)에 비유하여 못생긴 여자를 '무염'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무염은 고대 중국의 대표적 추녀(醜女)로 불리게 되었다.

《진서(晉書)》 〈주의전〉에 따르면, 진나라 원제 때 신하들이 주의를 악광(樂廣)과 같이 고결한 사람이라고 하자 주의는 스스로 악광과 비교될 수 없다면서 "어찌 무염에게 화장을 한다고 하여 갑자기 서시가 되겠는가[何乃刻畵無鹽 唐突西施也]"라고 말하면서 겸손함을 나타냈다고 전해진다. 얼굴이 못생긴 여자가 아무리 꾸며도 서시와 같은 미인이 될 수 없다는 뜻으로,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覺跌千里 (각질천리)

覺跌千里(각질천리)

큰 일을 그르치는 자를 깨닫게 하는 뜻.

刻舟求劍 (각주구검, kèzhōuqiújiàn)

刻舟求劍(각주구검)

刻舟求剑(kèzhōuqiújiàn)

刻 새길 각 | 舟 배 주 | 求 구할 구 | 劍 칼 검 |


가는 배에서 칼을 떨어뜨리고 떨어진 자리에 표시를 하였다가 배가 정박한 뒤에 칼을 찾는다는 뜻으로 융통성 없이 현실에 맞지 않는 낡은 생각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비유.


여씨춘추(呂氏春秋) 찰금편(察今篇)에는 융통성 없는 한 사나이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중국 전국(戰國)시대 초(楚)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다가 들고 있던 칼을 물 속에 빠뜨렸다. 그러자 그는 곧 칼을 빠뜨린 뱃전에 칼자국을 내어 표시를 해 두었다[遽刻其舟]. 이윽고 배가 언덕에 와 닿자 칼자국이 있는 뱃전 밑 물 속으로 뛰어들어 그 칼을 찾으려 했다[求劍]. 그러나 자신이 탔던 배는 칼을 빠뜨린 곳을 지나 계속 이동하여 왔으므로, 그곳에 칼이 있을 리 없었다.

刻舟求劍이란 뱃전에 새겨놓은 표시만을 믿고 물에 빠뜨린 칼을 찾으려함을 뜻한다. 이는 위와 같이 옛것을 지키다 시세의 추이도 모르고 눈앞에 보이는 하나만을 고집하는 처사를 비유한 말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 그 유래가 전한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守株待兎(수주대토) 요행만을 바라다, 융통성이 없다.

緣木求魚(연목구어) 연목구어, 방법이 틀려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呂氏春秋(여씨춘추) | 미련[stupidity] | 劍(검) |

各從其類 (각종기류)

各從其類(각종기류)

各 각각 각 | 從 좇을 종 | 其 그 기 | 類 무리 류, 무리 유, 치우칠 뢰, 치우칠 뇌 |

만물은 각기 같은 종류끼리 서로 따름.

유유상종과 같은 뜻으로, 우리말의 '끼리끼리 모인다'와 같은 표현이다. 《주역》문언(文言)편에 "하늘에 근본을 둔 것은 위와 친하고, 땅에 근본을 둔 것은 아래와 친하니, 이는 각자가 그 비슷한 것을 좇기 때문이다[本乎天者親上, 本乎地者親下, 則各從其類也]"라는 구절이 있다. 물각유주(物各有疇)나 물각유류(物各有類), 방이유취(方以類聚), 물이군분(物以群分), 각종기류(各從其類)는 모두 같은 의미이며, 물이유취로 많이 쓰인다.

[출전]
易經(역경) 文言(문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物各有疇(물각유주) | 物各有類(물각유류) | 方以類聚(방이유취) | 物以群分(물이군분) | 各從其類(각종기류) | 草綠同色(초록동색)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초록은 동색.
¶ 가재는 게 편이다.

各自爲政 (각자위정)

各自爲政(각자위정)

各 각각 각 | 自 스스로 자 | 爲 하 위, 할 위 | 政 정사 정, 칠 정 |

저마다 스스로 정치(政治)를 한다는 뜻으로, 각각(各各)의 사람들이 자기(自己) 마음대로 한다면 전체(全體)와의 조화(調和)나 타인(他人)과의 협력(協力)을 생각하기 어렵게 된다는 뜻


기원전 722년부터 기원전 481년까지를 다룬 역사서 《좌씨전(左氏傳)》 평전(評傳)에 있는 글이다.

좌씨전(左氏傳) 선공(宣公) 2년에 따르면, 춘추시대 송(宋)나라와 진(晉)나라가 서로 협력하였기 때문에 송나라와 초(楚)나라는 사이가 벌어졌다. 이에 초(楚)나라 장왕(莊王)은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동맹국인 정(鄭)나라로 하여금 송나라를 치게 하였다.

정나라 목공(穆公)은 즉시 출병했다. 정나라와의 결전을 하루 앞두고 송나라의 대장 화원(華元)은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식사 때 특별히 양고기를 지급하였다. 군사들은 모두 크게 기뻐하며 맛있게 먹었지만 화원의 마차를 모는 양짐(羊斟)만은 이 양고기를 먹지 못하였다. 한 부장(副將)이 그 까닭을 묻자 화원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마차를 모는 사람에게까지 양고기를 먹일 필요는 없네. 마차부는 전쟁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말일세."

이튿날 양군의 접전이 시작되었다. 화원은 양짐이 모는 마차 위에서 지휘를 하였다. 송나라와 정나라의 군사가 모두 잘 싸워 쉽게 승패가 나지 않자 화원이 양짐에게 명령하였다.

"마차를 적의 병력이 허술한 오른쪽으로 돌려라."

그러나 양짐은 반대로 정나라 병력이 밀집해 있는 왼쪽으로 마차를 몰았다. 당황한 화원이 방향을 바꾸라고 소리치자 양짐은 말했다.

"어제 양고기를 군사들에게 먹인 것은 장군의 판단에 따라 한 일이지만 오늘의 이 일은 나의 생각대로 한 것입니다[疇昔之羊 子爲政 今日之事 我爲政]"

그는 곧바로 정나라 군사가 모여 있는 곳으로 마차를 몰았기 때문에 화원은 결국 정나라 군사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대장이 포로가 된 것을 본 송나라 군사는 전의(戰意)를 잃고 전열(戰列)이 무너졌다. 그 결과 250여 명의 군사가 사로잡히고 사공(司空:토지와 민사를 맡아보는 관원)까지 포로가 되었다. 정나라 군사는 모두 460량의 병거(兵車)를 포획하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송나라의 대패는 바로 양짐이 화원의 지휘에 따르지 않고 '각자위정'했기 때문이다.

군자들의 혹평처럼 양짐은 ‘그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나라를 패망하게 하고 백성들을 죽게 만든(以其私憾 敗國殄民)’ 것이다. 융통성이 부족하고 아집이 강하여 전체적인 균형을 생각하지 못해 결국 국가의 대사를 그르치게 만든 것이다.

비단 군사행동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나 사회의 경영에 있어 전체로서의 조화나 개개의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경영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었지만 결과가 이렇게 심각한 경우는 늘 존재해 왔던 것이다.


출전

좌씨전(左氏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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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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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4급 사자성어 |

角者無齒 (각자무치)

角者無齒(각자무치)

角 뿔 각, 사람 이름 록(녹), 꿩 우는 소리 곡 | 者 놈 자 | 無 없을 무 | 齒 이 치 |

뿔이 있는자는 이가 없다는 말. 한 사람이 모든 재주나 복을 겸하지 못함을 이름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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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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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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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4급 사자성어 |

各自圖生 (각자도생)

各自圖生(각자도생)

各 각각 각 | 自 스스로 자 | 圖 그림 도 | 生 날 생 |

사람은 제각기 살아갈 방법(方法)을 도모(圖謀)함

各人各色 (각인각색)

各人各色(각인각색)

각 사람이 제각기 다름

刻骨痛恨 (각골통한)

刻骨痛恨 (각골통한)

뼈에 사무치도록 마음속 깊이 맺힌 원한.

刻鵠類鶩 (각곡유목)

刻鵠類鶩(각곡유목)

따오기를 그리려다 이루지 못하여 집오리와 비슷하게 된다 함의 뜻

刻骨難忘 (각골난망)

刻骨難忘 (각골난망)

뼈에 새겨질 만큼 잊기 어렵다. 커다란 은혜를 입은 것을 잊지 않고 있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