置之度外 (치지도외)

置之度外(치지도외)

置之度外(zhìzhīdùwài)

置 둘 치 | 之 갈 지 | 度 법도 도, 헤아릴 탁, 살 택 | 外 바깥 외 |

'생각 밖에 둔다'라는 뜻으로, 내버려 두고서 상대를 하지 아니하는 것을 의미.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의 고사(故事)에서 유래.

give no thought to; have no regard for; not to take into consideration


유수(劉秀)가 왕망(王莽)을 멸하고 한나라를 재건하여 황제에 즉위하니, 그가 광무제이다. 그러나 즉위 초기에는 아직 중국을 완전히 평정하지는 못한 상태였으므로, 광무제에게 복종하지 않고 스스로 왕이라 칭하는 지방 세력들도 많았다. 광무제는 이로부터 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기본적인 통일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이로써 감숙(甘肅) 지방의 외효와 촉(蜀) 지방의 공손술(公孫述)이 양대 저항 세력으로 남게 되었다.

이때 외효가 표면상으로는 광무제에 대하여 스스로 신하라고 칭하고, 아들을 후한의 수도인 낙양(洛陽)에 보내어 벼슬을 하게 함으로써 귀순할 의사를 나타내었다. 광무제가 형세를 살펴 보니, 외효는 속마음이야 어찌 되었건 아들이 궁중에 인질로 잡혀 있는 셈이니 근심거리가 못 되었다. 또 공손술은 멀리 촉 지방에 있어 중원으로 공격해 올 힘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에 광무제는 오래 계속된 전쟁으로 피로해진 군대를 쉬게 하고 국력을 추스릴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휘하의 장수들에게 "외효와 공손술 두 사람은 당분간 내버려 두고 문제 삼지 말라(且當置此兩子於度外耳)"하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서 광무제는 충분히 휴식한 군대를 이끌고 외효와 공손술을 차례로 정벌함으로써 통일을 완성하였다.

이 고사는 《후한서(後漢書)》의 '외효공손술열전'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치지도외는 내버려 두고 문제로 삼지 않는다거나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後漢書(후한서) 卷13 隗囂公孫述列傳第三(외효공손술열전)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度外視(도외시) |

七顚八起 (칠전팔기)

七顚八起(칠전팔기)

七 일곱 칠 | 顚 엎드러질 전, 이마 전 | 八 여덟 팔 | 起 일어날 기 |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일어난다는 뜻으로, 여러 번 실패해도 굽히지 않고 다시 일어남.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선다는 뜻으로, 아무리 실패를 거듭해도 결코 포기하거나 굴하지 않고 계속 분투 노력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삼전사기·사전오기·오전육기·육전칠기·팔전구기라고도 쓰며, 모두 실패에 굽히지 않고 다시 분투 노력한다는 뜻이다.

백 번 꺾여도 굴하지 않는다는 뜻의 백절불굴(百折不屈)·백절불요(百折不搖), 어떠한 위력이나 무력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뜻의 위무불굴(威武不屈), 결코 휘지도 굽히지도 않는다는 뜻의 불요불굴(不撓不屈)도 칠전팔기와 뜻이 통한다.

그 밖에 견인불발(堅忍不拔:굳게 참고 견디어 마음을 빼앗기지 않음)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칠전팔기와 일맥상통한다. 아무리 넘어져도 다시 일어선다는 뜻으로 흔히 쓰는 '오뚝이 정신'도 칠전팔기와 같은 뜻이다.

七縱七擒 (칠종칠금, qīqínqīzòng)

七縱七擒(칠종칠금)

七擒七纵(qīqínqīzòng)

七 일곱 칠 | 縱 놓을 종 | 七 일곱 칠 | 擒 사로잡을 금 |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풀어준다는 뜻으로, 상대를 마음대로 다룸을 비유하거나 인내를 가지고 상대가 숙여 들어오기를 기다린다는 말.

As the legend goes,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Zhu Geliang arrested Menghuo seven times and set him free seven times, so that Menghuo was sincerely convinced, and never raised a rebellion again. This allusion indicates that somebody. is good at employing the proper strategy to convince others.

传说三国时诸葛亮南征孟获,捉了他七次,又放了他七次,才使孟获心服口服,不再背叛。后用这个典故指善于运用策略,使对方心悦诚服。

七顚八倒 (칠전팔도)

七顚八倒(칠전팔도)

七顚八倒(qīdiānbādǎo)

七 일곱 칠 | 顚 엎드러질 전, 이마 전 | 八 여덟 팔 | 倒 넘어질 도 |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엎어진다는 뜻으로, 어려운 고비를 많이 넘김을 가리키는 말.

[출전]
주자어록(朱子語類)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十顚九倒(십전구도) |

沈魚落雁 (침어낙안)

沈魚落雁(침어낙안)

沈 잠길 침, 성씨 심 | 魚 물고기 어 | 落 떨어질 낙(락) | 雁 기러기 안 |

고기를 물 속으로 가라앉게 하고 기러기를 땅으로 떨어지게 할 만큼 아름다운 여자


진(晉)나라 헌공(獻公)의 애인 여희(麗姬)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녀를 보면 그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물고기는 물 속으로 깊이 숨어버리고 기러기는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대열에서 떨어졌다[沈魚落雁]'고 하고, 또 '환한 달은 구름 뒤로 모습을 감추고 꽃은 부끄러워 시들었다[閉月羞花:폐월수화]'고 여희의 미모를 극찬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다음은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이야기로 설결(齧缺)과 왕예(王倪)의 문답을 에피소드의 형식을 빌려 왕예의 말로 기록하고 있다.

"백성들은 소와 돼지고기를 먹고, 큰 사슴과 사슴은 풀을 먹고, 지네는 뱀을 달게 여기고, 새나 까마귀는 쥐를 즐겨 먹는다. 이 네 가지는 모두 올바른 맛을 알고 있다. 원숭이는 편저라는 추한 원숭이를 암컷으로 쫓고, 큰 사슴은 사슴과 더불어 교미하고,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더불어 논다. '모장과 여희'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여기는 바이다. 물고기는 그들을 보면 깊이 들어가고, 새는 그들을 보면 높이 날고, 큰 사슴과 사슴은 그녀들을 보면 결단코 도망갈 것이다. 이 네 가지 중 누가 천하의 올바른 색(色)을 알겠는가? 내가 보건대 인의(仁義)의 끝과 옳고 그른 것의 한계가 뒤섞여 혼란하다. 내 어찌 능히 그 구별을 알랴!" 여기서 '모장과 여희'의 이야기가 나오고, '물고기는 그들을 보면 깊이 들어가고, 새는 그들을 보면 높이 난다'는 구절에서 '침어낙안'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장자》에 나오는 이 말은 최대의 미인을 나타내는 뜻으로 쓰인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미인으로 보이는 것이라 해도 물고기와 새에게는 단지 두려운 존재일 뿐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출전]
莊子(장자) 齊物論(제물론)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傾國之色(경국지색) | 丹脣皓齒(단순호치) | 沈魚落雁(침어낙안) |

針小棒大 (침소봉대)

針小棒大(침소봉대)

針 바늘 침 | 小 작을 소 | 棒 막대 봉 | 大 클 대, 큰 대, 클 태, 클 다 |

바늘 만한 것을 몽둥이 만하다고 말함이란 뜻으로, 곧, 작은 일을 크게 과장(誇張)하여 말함을 이름

七步成詩 (칠보성시)

七步成詩(칠보성시)

七 일곱 칠 | 步 걸음 보 | 成 이룰 성 | 詩 시 시 |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文學)편에는 위(魏) 문제(文帝)인 조비(曹丕)와 그의 동생인 동아왕(東阿王) 조식(曹植) 간에 일어난 고사가 실려 있다.

문제는 동아왕에게 일곱 걸음을 떼는 사이에 시를 지으라고 하면서(文帝嘗令東阿王七步作詩), 못지을 경우에는 국법으로 다스리겠다고 하였다. 동아왕은 대답을 마치자 마자 한 수의 시를 지었다.

콩을 삶아 콩국을 끓이고 콩물을 짜서 즙을 만드네. 콩깍지는 솥 아래서 불에 타고 콩은 솥 안에서 눈물짓네. 본시 같은 뿌리에서 생겨났건만 서로 지저댐이 어찌 이리도 급할까!

문제는 조식의 이 시를 듣고 몹시 부끄러웠다고 한다.

조조(曹操)와 그의 큰 아들인 조비, 셋째 아들인 조식은 중국 문학에서 삼조(三曹)라 칭하는 유명한 문장가들이다. 이들 중 조식의 시재(詩才)가 특히 뛰어났기 때문에, 조비는 천자(天子)가 된 후에도 조식에 대한 시기심이 변하지 않았다.

조비는 조식이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그를 죽일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어서 이러한 시를 짓게 했던 것이다. 七步成詩는 문재(文才)가 민첩함 을 말하며, 칠보재(七步才)란 글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七步才(칠보재) | 七步之才(칠보지재) |

七步之才 (칠보지재, qībùzhīcái)

七步之才(칠보지재)

七步之才(qībùzhīcái)

七 일곱 칠 | 步 걸음 보 | 之 갈 지 | 才 재주 재 |


일곱 걸음을 옮기는 사이에 시를 지을 수 있는 재주라는 뜻으로, 아주 뛰어난 글재주를 이르는 말.

治大國若烹小鮮 (치대국약팽소선)

治大國若烹小鮮(치대국약팽소선)

治 다스릴 치, 강 이름 이 | 大 클 대, 큰 대, 클 태, 클 다 | 國 나라 국 | 若 같을 약, 반야 야 | 烹 삶을 팽 | 小 작을 소 | 鮮 고울 선, 생선 선 |

약팽소선(若烹小鮮).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무엇이든 가만히 두면서 지켜보는 것이 가장 좋은 정치란 뜻

Govern a great powers as you would cook a small fish. - It is the best politics to keep hands off.

[출전]
老子(노자) 道德經(도덕경)


관련 인물

老子(노자, Lao-tzu, 604 BC-?)


유의어

若烹小鮮(약팽소선) |

枕戈待旦 (침과대단)

枕戈待旦(침과대단)

枕 벨 침 | 戈 창 과 | 待 기다릴 대 | 旦 아침 단 |

'창을 베고 자면서 아침을 기다린다'라는 뜻으로, 항상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는 군인의 자세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의 진(晉)나라 때 유곤(劉琨)과 조적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남북조시대의 진나라 때 유곤과 조적은 모두 성격이 활달하고 의협(義俠)을 중시하는 지사(志士)들이었다. 그 무렵 진나라는 표면상으로는 아직 중원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유곤과 조적은 함께 밤 늦도록 국가의 형세를 논하였고, 한밤중에 닭 울음소리를 경계 삼아(당시에는 닭이 밤에 우는 것을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무술을 연마하였다.

나중에 유곤은 조적이 조정에 중용되어 외적을 물리치는 공을 세웠다는 소식을 들었다. 유곤은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나는 창을 베개 삼아 잠을 자며 아침이 되기를 기다리면서 오랑캐 무리를 몰아내는 데 뜻을 두었으며, 늘 조적 선생이 나보다 먼저 공을 세우게 될까 염려하였다[吾枕戈待旦, 志梟逆虜, 常恐祖生先吾着鞭]"라고 하였다. 먼저 공을 세우는 것을 비유하는 선착편(先着鞭)이라는 고사성어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이 고사는 《진서(晉書)》의 유곤전(劉琨傳)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침과대단은 군무(軍務)에 전념하여 편안히 잠을 자지 못하는 경우나 항상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는 군인의 자세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비슷한 표현으로 침과대적(枕戈待敵:창을 베고 적을 기다림), 침과좌갑(枕戈坐甲:창을 베고 갑옷을 깔고 앉음), 침과이대(枕戈以待:창을 베고 기다림), 침과침갑(枕戈寢甲:창을 베고 갑옷을 입고 잠을 잠) 등이 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枕戈待旦(침과대단) | 침과대적(枕戈待敵) | 침과이대(枕戈以待) | 침과좌갑(枕戈坐甲) | 침과침갑(枕戈寢甲) |

驟雨不終日 (취우불종일)

驟雨不終日(취우불종일)

取而代之 (취이대지)

取而代之(취이대지)

取而代之 [qǔ'érdàizhī]

取 가질 취 | 而 말 이을 이, 능히 능 | 代 대신할 대 | 之 갈 지 |

'취(取)하여 그것을 대신(代身)하다'라는 뜻으로, 어떤 사물(事物)로 다른 사물(事物)을 대체(代替)하거나 남의 지위(地位)나 직무(職務)를 빼앗아 자신(自身)이 대신(代身)하는 것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사기 항우본기(項羽本紀)의 이야기.

항우의 집안은 대대로 초(楚)나라의 장수를 지냈다. 항우는 어릴 때 글을 배웠으나 다 마치지 않았고, 검술을 배우는 것 또한 다 마치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숙부인 항량(項梁)이 화를 내자, 항우는 말했다.

"글은 자기 이름을 쓸 줄 아는 것으로 족하고, 검술은 한 사람을 대적하는 것이어서 배울 만한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니, 저는 만인(萬人)을 대적하는 것을 배우겠습니다"

그리하여 항량이 항우에게 병법을 가르쳤는데, 항우는 크게 기뻐하였으나 그 뜻만 대략 알고 나서는 역시 끝까지 배우려 들지 않았다.

항우가 20세 되던 해, 항량은 사람을 죽이고 항우와 함께 원수를 피하여 오중(吳中)에서 살았다. 오중에 있을 때, 시황제(始皇帝)가 회계산(會稽山)을 유람하고 절강(浙江)을 건너갔다. 항우는 항량과 함께 황제의 행차를 구경하면서 말했다.

"저 사람의 자리를 취하여 내가 대신할 것이다[彼可取而代也]"

항량은 깜짝 놀라 항우의 입을 막으며 "허튼 소리 하지 마라. 삼족이 멸하게 된다"라고 꾸짖었으나, 속으로는 항우가 범상치 않다고 생각하였다.

이 고사는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紀)〉편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취이대지는 항우의 경우처럼 남의 지위나 직무를 빼앗아 자신이 대신하거나, 이를 일반화하여 어떤 사물로 다른 사물을 대체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사기(史記)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取捨 (취사)

取捨(취사)

取 가질 취 | 捨 버릴 사 |

취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鐵面皮 (철면피)

鐵面皮(철면피)

鐵 쇠 철 | 面 낯 면, 밀가루 면 | 皮 가죽 피 |

쇠처럼 두꺼운 낯가죽이라는 뜻으로, 뻔뻔스럽고 염치(廉恥)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


송(宋)나라 손광헌(孫光憲)이 쓴 북몽쇄언(北蒙鎖言)에 나오는 이야기.

왕광원(王光遠)이란 진사(進士)가 있었다. 그는 학식과 재능이 뛰어나 진사시험에도 합격했으나 출세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했다. 그는 권세있는 사람들에게 줄을 대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아부를 계속했다.

하루는 어떤 고관이 술에 취해 매를 들고 그에게 말했다.

"내가 그대를 때린다면 어찌하겠는가?"

왕광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저항하지 않겠소."

그러자 그 권세가는 마구 매질을 하기 시작했다. 동석했던 사람들이 모두 비아냥거렸다.

"자네는 어찌 수모를 모르나? 많은 사람 앞에서 그런 모욕을 당하고 가만히 있을 수야 없지 않은가?"

그러나, 광원은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말했다.

"높은 사람들에게 잘 보여서 손해볼 게 없잖아?"

이로부터 광원의 얼굴은 두텁기가 열 겹의 철갑(鐵甲)과 같다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출전

북몽쇄언(北蒙鎖言)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厚顔無恥(후안무치) | 厚颜无耻[hòuyánwúchǐ] | 剝面皮(박면피) | 面皮厚(면피후) | 面張牛皮(면장우피) | 面帳牛皮(면장우피) | 寡廉鮮恥(과렴선치) | 强顔(강안) | 厚脸皮(hòuliǎnpí)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吹毛求疵 (취모구자)

吹毛求疵(취모구자)

吹毛求疵[chuīmáoqiúcī]

吹 불 취 | 毛 털 모 | 求 구할 구 | 疵 허물 자, 노려볼 제, 앓을 새 |

터럭을 불어 헤쳐 그 속의 허물을 찾으려 한다는 뜻으로, 남의 조그만 잘못도 샅샅이 찾아냄을 이르는 말

pick a hole in one's coat


한비자(韓非子) 대체(大體)편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현명한 군주는 지혜로써 마음을 더럽히지 않으며, 사리를 추구함으로써 몸을 더럽히지 않는다. 또한 법술에 의해 국가의 어지러움을 다스리고 상벌에 의해 시비를 분별하며, 저울에 의해 물건의 경중(輕重)을 분명하게 하고, 그리하여 하늘의 법칙에 역행하지 않으며 사람의 본성을 상하게 하지도 않는다. 터럭을 불어 남의 작은 흠을 찾으려 하지 않으며[不吹毛而求小疵], 때를 씻어 알기 힘든 상처를 발견하지 않는다[不洗垢而察難知].

吹毛求疵(pick a hole in one's coat)는 취모구하(吹毛求瑕) 또는 취모멱자(吹毛覓疵)라고도 한다. 疵는 병(病)이나 흠, 결점, 과실 등을 뜻하며, 瑕는 옥의 티, 허물, 잘못 등을 뜻한다. 또 覓은 눈위에 손을 올리고 자세히 살펴 보는 것을 뜻하니, 吹毛求疵란 고의로 남의 잘못을 들춰냄 을 비유한 말이다. 이는 입으로 털을 불어가며 혹시 보이지 않는 곳에 작은 흠이라도 없는지 살피는 야박한 행동을 나타낸 것이다.


출전

한비자(韓非子) 대체편(大體篇)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취멱(吹覓) | 吹毛求瑕(취모구하) | 吹毛覓疵(취모멱자) | 취모색자(吹毛索疵) | 취색(吹索) | 취세(吹洗) |

出乎爾反乎爾 (출호이반호이)

출호이반호이(出乎爾反乎爾)

出 날 출 | 乎 어조사 호 | 爾 너 이 | 反 되돌릴 반 | 乎 어조사 호 | 爾 너 이 |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는 뜻으로, 앙경화복(殃慶禍福)이 모두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온다는 말.


맹자(孟子)의 양혜왕(梁惠王) 하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추(鄒)나라의 목공(穆公)이 노(魯)나라와의 전투 중에 백성들이 보여 준 비협조적인 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맹자에게 "우리 추나라와 노나라가 싸울 때 상관이 서른세 명이나 죽었는데, 백성들은 한 명도 죽은 사람이 없습니다. 상관이 죽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던 그들을 모두 처벌하자니 수가 너무 많고, 그냥 두자니 윗사람 죽는 것을 미운 놈 바라보듯 할 것이니 이를 어쩌면 좋겠습니까?" 하고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맹자는, "흉년이나 재난이 든 해에 늙은이와 어린이는 굶어 죽고 젊은 장정들은 사방으로 살길을 찾아 떠난 수가 몇천 명입니다. 그때 임금의 창고에는 곡식과 재물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도 백성을 구제할 대책을 세우지 않고 보고만 있었습니다. 이것은 윗사람이 직무에 태만하여 아랫사람을 죽게 만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증자(曾子)의 말을 인용하여 일깨우고 있다. "일찍이 증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 네게서 나간 것은 네게로 돌아오는 것이니라[戒之戒之 出乎爾者 反乎爾者也].'라고 하셨습니다. 백성들은 이제야 자기네들이 당했던 것을 되갚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그들을 허물치 마십시오. 임금께서 어진 정치를 베푸신다면 백성들은 윗사람에게 친하게 대할 것이고 윗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것입니다."

맹자는 증자의 '출호이반호이(出乎爾反乎爾)'를 인용하여 자기가 뿌린 씨는 자기가 거두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임을 말하면서, 목공에게 백성들의 불충을 탓하기 전에 먼저 어진 정치를 베풀어 덕으로써 백성들을 감화시킬 것을 권고하였다.


출전

孟子(맹자) 梁惠王(양혜왕)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出爾反爾(출이반이) | 出乎爾者反乎爾(출호이자반호이) | 出乎爾反乎爾(출호이반호이) | 因果應報(인과응보) | 因果報應(인과보응)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推賢讓能 (추현양능)

推賢讓能(추현양능)

推 옮을 추 | 賢 어질 현 | 讓 사양할 양 | 能 능할 능 |

어진 사람이나 유능(有能)한 사람을 받들어 지위(地位)를 양보(讓步)해 준다는 뜻.


「주관(周官)」이란 「주나라의 관리」라는 뜻으로, 주나라 성왕(成王)이 조정의 관리들에게 훈시한 말을 사관이 기록하여 놓은 것이다. 다음은 인사(人事) 문제에 관한 훈계 중의 한 대목이다.

“ .... 지위(地位)가 높아지면 자기도 모르게 교만해지고, 록(祿)이 많으면 자기도 모르게 사치해 진다. 공손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며 속이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항상 덕을 쌓으면 마음이 편안하여 날로 아름답고, 거짓을 지으면 마음이 수고로워 날로 옹졸해 진다. 높은 지위에도 위태롭게 생각하여 두렵지 않게 해야 하며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한다. 어진 이를 밀어주고 능력 있는 이에게 관직을 양보하면, 모든 관리들이 화합할 것이다[推賢讓能, 庶官乃和]. 화합하지 못하면 정사(政事)는 어지러워질 것이고, 추천 받은 이가 그 직위를 감당할 수 있으면, 그것은 그대들의 능력이지만 추천 받은 자들이 적임자가 아니라면 그것은 그대들이 소임(所任)을 다 하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

位不期驕,祿不期侈。恭儉惟德,無載爾偽。作德心逸日休,作偽心勞日拙。居寵思危,罔不惟畏,弗畏入畏。推賢讓能,庶官乃和,不和政厖。舉能其官,惟爾之能,稱匪其人,惟爾不任。


출전

서경 제4편 주서(周書) 제22장 주관(周官)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任賢使能(임현사능) | 任賢用能(임현용능) |

春風秋雨 (춘풍추우)

春風秋雨(춘풍추우)

春 봄 춘, 움직일 준 | 風 바람 풍 | 秋 가을 추, 밀치 추 | 雨 비 우 |

봄철에 부는 바람과 가을에 내리는 비. 곧 지나가는 세월을 가리키는 말.

秋風落葉 (추풍낙엽)

秋風落葉(추풍낙엽)

秋 가을 추, 밀치 추 | 風 바람 풍 | 落 떨어질 낙(락) | 葉 잎 엽, 땅 이름 섭, 책 접 |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落葉)이라는 뜻으로, 세력(勢力) 따위가 갑자기 기울거나 시듦을 이르는 말

春雉自鳴 (춘치자명)

春雉自鳴(춘치자명)

春 봄 춘, 움직일 준 | 雉 꿩 치, 짐승 이름 사, 땅 이름 이, 키 작을 개 | 自 스스로 자 | 鳴 울 명 |

봄의 꿩이 스스로 운다는 말로 ①묻지도 요구하지도 않은 말을 발언함 ②제 허물을 스스로 드러내어 화를 자초함.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自鳴得意(자명득의) | 春雉自鳴(춘치자명) |

반의어·상대어

自怨自艾(자원자애)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책망하고 수양에 힘쓴다 |

春秋筆法 (춘추필법)

春秋筆法(춘추필법)

春 봄 춘, 움직일 준 | 秋 가을 추, 밀치 추 | 筆 붓 필 | 法 법 법 |

①5경의 하나인 『춘추(春秋)』와 같이 비판(批判)의 태도(態度)가 썩 엄정(嚴正)함을 이르는 말 ②대의 명분(名分)을 밝혀 세우는 사필(史筆)의 준엄(峻嚴)한 논법(論法)


이 말은 《춘추》의 문장에는 공자(孔子)의 역사비판이 나타나 있다고 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중국의 경서(經書) 《춘추》와 같은 비판적인 태도로 오직 객관적인 사실에만 입각하여 기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명 '춘추직필(春秋直筆)'이라고도 한다.

《춘추》는 중국 고대의 사서(史書)로 춘추시대 노(魯)나라 은공(隱公) 초년(BC 722)부터 애공(哀公) 14년(BC 481)에 이르기까지 12대 242년간의 연대기이다. 《맹자(孟子)》에 따르면 기원전 5세기 초에 공자가 엮은 것으로 전해진다. 노나라 242년간의 사적에 대하여 간결한 사실(史實)을 적고, 선악을 논하고 대의명분을 밝혀 그것으로써 천하 후세의 존왕(尊王)의 길을 가르쳐 천하의 질서를 유지하려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표현법이 '춘추의 필법'으로 일컬어졌으며, '춘추삼전(春秋三傳)'으로 불리는 《공양전(公羊傳)》 《곡량전(穀梁傳)》 《좌씨전(左氏傳)》의 세 주석서가 바로 그것으로, 편년체(編年體) 서술의 시조로 평가된다.

공자는 춘추시대 말기의 사람으로 노나라 태생이다. 그가 살던 시대는 하극상과 약육강식이 만연했던 시대였다. 공자는 그 시대의 혼란상을 보면서 저마다 자기 직분을 잃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여 '임금은 임금, 신하는 신하, 부모는 부모,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라고 말하여 각자의 직분을 지켜야 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과거를 거울 삼아 기강이 무너진 천하를 바로잡아야겠다는 취지로 《춘추》를 집필하게 되었다. 사건을 기록하는 기사(記事), 직분을 바로잡는 정명(正名), 칭찬과 비난을 엄격히 하는 포폄(褒貶)의 원칙을 세워, 여기에 어긋나는 것은 철저히 배격했으며, 오직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하여 자신의 판단에 따라 집필하였다.

특히 선왕(先王)의 업적을 평가할 때에도 이 원칙은 예외없이 지켜졌다. 오직 정사(正史)를 기록한다는 신념으로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버텨 편년체의 효시인 《춘추》를 완성했다. 여기에서 비롯하여 대의명분을 좇아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하여 준엄하게 기록하는 논법을 '춘추필법'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와 유사한 의미로 '동호지필(董狐之筆)'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사관인 동호(董狐)가 당시의 사실을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직필함을 일컫는 말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董狐之筆(동호지필) |


참조

春秋(춘추) | 公羊傳(공양전) | 穀梁傳(곡량전) | 左氏傳(좌씨전) |

出爾反爾 (출이반이)

出爾反爾(출이반이)

出 날 출, 단락 척 | 爾 너 이 | 反 돌이킬 반, 돌아올 반, 어려울 번, 삼갈 판 | 爾 너 이 |

자신(自身)에게서 나온 것은 자신(自身)에게로 돌아감


맹자 양혜왕(梁惠王) 하편에 나오는 이야기.

전국시대 추나라는 노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하였다. 추나라 목공은 자신의 잘못된 정치를 반성하지 않고, 병사들과 백성들이 결사적으로 싸우지 않아 패하였다면서 그들을 탓하였다. 가르침을 청하는 목공에게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흉년과 기근이 든 해에 추나라의 백성들 중에는 노약자들이 도랑에 빠져 죽고, 젊은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는데, 그 수효가 천명에 가깝습니다. 한편 관리들은 왕의 창고에는 곡식과 물자가 가득 차 있었는데도 이 사실을 왕께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윗사람이 교만하여 아랫사람들을 잔인하게 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증자는 경계할지라. 너에게서 나간 것은 너에게로 돌아오느니라[出乎爾者, 反乎爾者也]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자기들이 당한 것을 다시 갚았던 것이니, 왕께서는 그들을 탓하지 마십시오."


출전

孟子(맹자) 梁惠王(양혜왕)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出爾反爾(출이반이) | 出乎爾者反乎爾(출호이자반호이) | 出乎爾反乎爾(출호이반호이) | 因果應報(인과응보) | 因果報應(인과보응)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墜茵落溷 (추인낙혼)

墜茵落溷(추인낙혼)

坠茵落溷(zhuìyīnluòhùn)

墜 떨어질 추 | 茵 자리 인 | 落 떨어질 락 | 溷 뒷간 혼 |


나뭇잎이 방석 위에도 떨어지고 똥통 위에도 떨어진다. 사람이 때를 잘 만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타혼표인(墮溷飄茵) 또는 추혼표인(墜溷飄茵)이라고도 한다. 중국 남조(南朝)시대에 범진(范縝)이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경학(經學)에 능통하고 부귀와 권세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성행하던 불교를 반대하여 남제(南齊)의 경릉왕(竟陵王) 소자량(蕭子良)과 논쟁을 벌였다. 왕이 인과(因果)에 대한 생각을 묻자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사람의 삶을 나무에 핀 꽃에 비유하자면, 동시에 한 가지에서 피고 같은 꼭지에서 열리지만 바람이 불어 떨어질 때는 어떤 것은 주렴의 휘장에 스치어 방석 위에 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것은 울타리 담장에 걸려 뒷간에 떨어지기도 합니다(人之生譬如一樹花, 同發一枝, 俱開一蒂, 隨風而墮, 自有簾幌墜於茵席之上, 自有關籬牆落於糞溷之側). 방석 위에 떨어진 것은 전하와 같은 경우이고, 뒷간에 떨어진 것은 소관과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귀하고 천함이 비록 길이 다르긴 하지만 여기에 과연 무슨 인과가 있겠습니까?"

곧, 왕은 때를 잘 만나 왕이 되었고, 자신은 때를 만나지 못하여 낮은 신분에 처하게 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고사(故事)는 《양서》의 〈유림전·범진전〉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추인낙혼은 때를 잘 만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음을, 나아가 사람의 운명에 따라 처지가 확 달라지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동의어

墮溷飄茵(타혼표인) | 墜溷飄茵(추혼표인) |


Tag

양서 | 유림전·범진전 |

忠言逆耳 (충언역이)

忠言逆耳(충언역이)

忠言逆耳(zhōngyánnì'ěr)

忠 충성 충 | 言 말씀 언, 화기애애할 은 | 逆 거스릴 역 | 耳 귀 이, 팔대째 손자 잉 |

좋은 말은 귀에 듣기 거슬림.

Candid advice that grates on the ear; honest exhortations may be unpleasant to the ear.

[출전]
공자가어(孔子家語), 史記(사기) 淮南王傳(회남왕전)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良藥苦口(양약고구) |

秋扇 (추선)

秋扇(추선)

가을철의 부채라는 뜻으로, 남자의 사랑을 잃은 여자나 철이 지나서 쓸모없이 된 물건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春 봄 춘, 움직일 준 | 來 올 래(내) | 不 아닐 불, 아닐 부 | 似 닮을 사 | 春 봄 춘, 움직일 준 |

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라는 뜻으로, 자신(自身)의 처지(處地)를 비관(悲觀)함. 전한시대 왕소군과 관련된 시구.


王昭君(왕소군)을 두고 지은 詩(시) 가운데 있는 글귀다. 왕소군은 前漢(전한) 元帝(원제)의 宮女(궁녀)로 이름은 嬙(장)이었고, 소군은 그의 字(자)였다. 그녀는 絶世(절세)의 美人(미인)이었으나 흉노와의 和親(화친)정책에 의해 흉노왕에게 시집을 가게 된 不運(불운)한 여자였다. 그 여자를 두고 지은 동방규의 시에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이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이 시구에서 ‘秋來不似秋(추래불사추)’, ‘冬來不似冬(동래불사동)’라는 말이 나왔다.


출전

동방규(東方叫)의 소군원(昭君怨)


관련 인물

왕소군(王昭君) |

出奇制勝 (Making a surprise move)

Making a surprise move

During the Warring States Period (B.C. 403-221) in China, there was a general called Le Yi in the state of Yan, who was appointed to invade the state of Qi. As Le was a master of stratagem, he soon seized more than 70 cities of the country in a short period of time, but somehow just left out two cities called Mo Cheng and Lu Cheng.

Tian Shan was a brilliant commander in the state of Qi, who was determined to fight back and retrieved his country`s land. Tian certainly understood the challenge he had faced after all - the state of Yan was a very powerful country and there was only a little chance that Tian and his people could win the victory. However, the patriot was not willing to give up but immediately mobilized his people to fight back when Mo Cheng was overrun with Yan soldiers.

Tian came up with several strategies. He first assigned some folk to spread rumors that General Le in Yan disrespected his emperor. As soon as the rumors were fully circulated and heard by the emperor, Le was dismissed from the court as Tian expected. The commander then took an opportunity to attack Yan.

He assembled thousand cows, tied razor-sharp blades in their horns together with soaked reeds at their tails. One night at the Yan`s military camp, Tian and 5,000 soldiers stood behind the cows and lit a fire on the reeds. The cows sprinted to Yan soldiers and killed most of them. Tian, ultimately, helped Qi to win the victory and got back their lost lands.

Translation:

출기제승(出奇制勝)

출기出奇):surprise

제(制):prevail

승(勝):victory

出奇制勝 (출기제승)

出奇制勝(출기제승)

出 날 출, 단락 척 | 奇 기특할 기, 의지할 의 | 制 절제할 제/지을 제 | 勝 이길 승 |

기묘한 계략(計略)을 써서 승리함


사기(史記) 전단(田單)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전국시대, 제(齊)나라 민왕(湣王)은 교만하고 향락을 즐겨 국사를 돌보지 않았다. 이웃한 연(燕)나라의 국왕은 대장군 악의(樂毅)에게 명하여 제나라를 격파하고 전국을 평정하였다. 도망한 민왕은 거성(거城)과 즉묵(卽墨)에서 몸을 보전하고 있었다. [及燕使樂毅伐破齊,齊湣王出奔, 已而保莒城.]

연나라의 대군이 즉묵성을 포위하자, 즉묵의 대부는 나와 싸우다가 죽었다. 이에 성안의 사람들은 민왕의 먼 친척인 전단을 장군으로 뽑았다. 잔단은 용병술이 뛰어났으므로 성을 막아낼 수 있었다. [燕引兵東圍即墨,即墨大夫出與戰,敗死. 城中相與推 田單,曰: 安平之戰,田單宗人以鐵籠得全,習兵. 立以為將軍,以即墨距燕.]

그후 연나라의 소왕의 뒤를 이어 혜왕(惠王)이 즉위했다는 사실을 안 전단은 간첩을 보내어 악의와 혜왕을 이간질하였다. 그 결과 연왕은 악의 대신 기겁(騎劫)을 보냈다. 기겁의 학대를 받은 연나라 군대는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전단은 이 틈을 노려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는 한밤중에 꼬리에 횃불을 단 소들을 이용하여 연나라 군대를 크게 물리쳤다.

사마천은 손자(孫子)의 말을 인용하여 전단의 용병술을 묘사하였다.

전쟁이란 정면으로 대치하여 싸우나, 유격(遊擊)인 기병(奇兵)을 가지고 이기는 것이다. 전쟁을 잘하는 자는 기병을 쓰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兵以正合, 以奇勝. 善之者, 出奇無窮]. 기습과 정공(正攻)이 돌고 도는 것이 마치 고리가 끝이 없는 것과 같다. [太史公曰: 兵以正合,以奇勝. 善之者,出奇無窮. 奇正還相生,如環之無端.]

出奇制勝이란 특출한 전략을 이용하여 승리함을 뜻한다.


출전

史記(사기) | 손자(孫子) 제5 병세(兵勢) |

築基堅礎 (축기견초)

築基堅礎(축기견초)

집을 지을 때 기둥을 세우는 것에 앞서 집터부터 굳건히 다져 천년 세월에도 기울지 않는 집을 지어야 한다. 황해도 곡산부사로 재직하던 다산이 정당(政堂·고을의 정사를 살피는 집)을 지을 때 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