會者定離 (회자정리)

會者定離(회자정리)

會 모일 회 | 者 놈 자 | 定 정할 정/이마 정 | 離 떠날 리(이) | 붙을 려(여), 교룡 치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마련이라는 말로, 인생(人生)의 무상(無常)함을 인간(人間)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이별(離別)의 아쉬움을 일컫는 말

출전: 유교경(遺敎經)


관련 한자어

유의어

生者必滅(생자필멸) | 無常轉變(무상전변)

상대어

去者必返(거자필반)


한탄 | 불교 | 유교경 | 遺敎經 |

膾炙人口 (회자인구)

膾炙人口(회자인구)

'회자'란 '고기에 회친 것과 구운 것'이란 뜻으로 널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말한다. 즉, 좋은 글귀가 여러 사람들에게 자주 인용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

橫說竪說 (횡설수설)

橫說竪說(횡설수설)

되는대로 조리가 없는 말을 마구 지껄이는 것

繪事後素 (회사후소)

繪事後素(회사후소)

繪 그림 회 | 事 일 사 | 後 뒤 후, 임금 후 | 素 본디 소, 흴 소 |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손질한 이후에 채색을 한다는 뜻으로, ①그림을 그릴 때 흰색을 제일 나중에 칠하여 딴 색을 한층 더 선명(鮮明)하게 함 ②사람은 좋은 바탕이 있은 뒤에 문식(文飾)을 더해야 함을 비유(比喩ㆍ譬喩)하여 이르는 말

[출전]
논어 팔일편

畵虎類狗 (화호유구)

畵虎類狗(화호유구)

畵 그릴 화 | 虎 범 호 | 類 같을 류 | 狗 개 구 |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를 그린 꼴이 됨.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의 이야기다.

동한(東漢)시기,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은 마엄(馬嚴)과 마돈(馬敦)이라는 경박한 조카들을 훈계하기 위하여 '계형자엄돈서(誡兄子嚴敦書)'라는 편지를 썼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장점이나 단점을 비난한다거나, 국가의 대사(大事)를 함부로 말하는 것을 가장 싫어 한다. 나는 사람됨이 후덕하고 신중하며 청렴했던 산도현(山都縣)의 현령 용백고(龍伯高)와 의협심이 강한 월기사마(越騎司馬) 두계량(杜季良)을 존경하고 있지만, 너희들이 그들을 본받기는 바라지 않는다. 용백고처럼 되는지 못한다하더라도 조정의 신임을 받는 관리는 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너희들이 두계량을 본받는다면, 그와 같은 사람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천하의 경박한 사람이 될까 두렵다. 이는 마치 호랑이를 그리려다 도리어 개를 그린 것과 같기 때문이다[畵虎不成反類狗者也].

畵虎類狗란 서투른 솜씨로 큰일을 하려다가 도리어 일을 그르침을 비유한 말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각곡류목(刻鵠類鶩) | 화룡유구(畵龍類狗) | 화호불성반류구(畵虎不成反類狗) |

和風暖陽 (화풍난양)

和風暖陽(화풍난양)

화창한 바람과 따뜻한 햇볕, 곧 좋은 날씨

畵中之餠 (화중지병)

畵中之餠(화중지병)

그림의 떡.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畵餠(화병) | 畵餠充飢(화병충기) | 畵中之餠(화중지병) |

華而不實 (화이부실)

華而不實(화이부실)

華 꽃 화, 빛날 화 | 而 말이을 이, 능히 능 | 不 아닐 부, 아닐 불 | 實 열매 실, 이를 지 |

꽃만 피고, 열매가 없다는 뜻으로, 언행(言行)이 일치(一致)하지 않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Flowery but bears no fruit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문공(文公) 5년조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기록되어 있다.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부(大夫) 양처보(陽處父)가 위(衛)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노(魯)나라의 영읍(寗邑)을 지나가게 되었다. 양처보는 그 곳의 한 객점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객점의 주인 영은 양처보의 인물됨에 반하여 그와 함께 갈 것을 결심하였다. 양처보의 동의를 얻은 후, 영은 아내에게 작별을 고하고 그와 함께 떠났다. 그런데 영은 온(溫) 땅에 이르자 생각을 바꾸어 집으로 돌아왔다.

영의 아내는 매우 이상하게 여겨 다시 돌아온 이유를 물었다. 이에 영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양처보는 성격이 지나치게 강경하고 편집적인 인물이오. 게다가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은 없으며, 쉽게 남을 불쾌하게 만들어 원망을 많이 사고 있소.[且華而不實,怨之所聚也]. 그를 따라갔다가는 이익을 얻기도 전에 재앙을 당할 것이 두려워 그냥 돌아온 것이오."

양처보는 이로부터 1년 뒤에 조성자(趙成子) 등과 함께 살해되었다. 이 고사는 《좌씨전》의 '문공(文公) 5년'조에 실려 있다.

또 한(漢)나라의 왕충(王充)이 지은 《논형(論衡)》에는 "무릇 사람은 문(文:형식)과 질(質:실질)로 이루어지는데, 사물은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실질적이지 못한 것이 있고, 실질적이지만 화려하지는 못한 것이 있다(夫人有文質乃成, 物有華而不實, 有實而不華者)"라는 구절이 있다. 역시 내실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다.

여기서 유래하여 화이부실은 화려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식물처럼 겉모습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이 없는 경우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우리나라 속담 가운데 '빛 좋은 개살구'라는 표현과 같은 의미이다.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

和而不同 (화이부동)

和而不同(화이부동)

남과 화목하게 지내지만 스스로 원칙을 굽히지 말자

교수신문에서 선정한 2009년 희망의 사자성어


2009년 | 희망의 사자성어 | 교수신문

花容月態 (화용월태, huāróngyuèmào)

花容月態(화용월태)

花容月貌(huāróngyuèmào)

花 꽃 화 | 容 얼굴 용 | 月 달 월 | 態 모습 태 |


'꽃다운 얼굴과 달 같은 자태(姿態)'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여자(女子)의 고운 자태(姿態)를 이르는 말

a lovely face and graceful carriage


관련 한자어

유의어

花顔月貌(화안월모) | 朱脣皓齒(주순호치) | 絶世美人(절세미인) | 絶世代美(절세대미) | 絶世佳人(절세가인) | 絶代佳人(절대가인) | 一顧傾城(일고경성) | 月態花容(월태화용) | 萬古絶色(만고절색) | 丹脣皓齒(단순호치) | 國香(국향) | 國色(국색) | 傾城之色(경성지색) | 傾城之美(경성지미) | 傾城(경성) | 傾國之色(경국지색) | 傾國(경국) |


미인

畵蛇添足 (화사첨족)

畵蛇添足(화사첨족)

뱀의 발. 뱀을 그리고 발을 그려 넣다. 있어도 쓸모없는 것 또는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공연스레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蛇足(사족)이라고도 한다.

花無十日紅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

花 꽃 화 | 無 없을 무 | 十 열 십 | 日 날 일 | 紅 붉을 홍, 상복 공 |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뜻으로, ①'한 번 성한 것이 얼마 못 가서 반드시 쇠하여짐'을 이르는 말 ②권세(權勢)나 세력(勢力)의 성(盛)함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權不十年(권불십년) | 物極必反(물극필반) | 물장즉노(物壯則老) 만물은 장성했다가는 쇠퇴하기 마련이다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달도 차면 기운다.

畵龍點睛 (화룡점정, huàlóngdiǎnjīng)

畵龍點睛(화룡점정)

畵龙点睛(huà lóng diǎn jīng)

그림 화 | 용 룡 | 점찍을 점 | 눈동자 정


그림을 그린 뒤 눈동자에 점을 찍다. 사물의 가장 요긴한 곳 또는 무슨 일을 함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끝내어 완성시킴을 이르는 말.

荒唐無稽 (황당무계)

荒唐無稽(황당무계)

말이나 행동이 너무나 허황되어 믿을 수가 없음.

換骨奪胎 (환골탈태)

換骨奪胎(환골탈태)

뼈대를 바꿔 끼고 태를 달리 쓰다.

원래는 古人(고인)이 지은 詩文(시문)의 뜻을 취해 어구나 結構(결구)만을 바꾸어 자기 작품인 것처럼 꾸미는 것을 가리켰다. 요즘은 용모나 차림새가 몰라보게 좋아졌을 때 많이 쓰는 표현이 되었다.

중국 書藝史(서예사)에서 蘇軾(소식) 米(미불) 蔡襄(채양)과 더불어 宋代四大家(송대사대가)를 이룬 黃庭堅(황정견)은 소식(蘇東坡․소동파)과 함께 北宋(북송)을 대표하는 시인이기도 했다. 황정견은 杜甫(두보)의 詩(시)를 두고 이렇게 평했다.

『두보의 붓에 걸리면 흔해빠진 경치도 금세 아름다운 풍광으로 변하는데 이것은 마치 연금술사가 한 알의 靈丹(영단)을 넣어서 황금으로 변화시키는 것과 같다』

그가 말한 영단이란 시인의 詩想(시상)을 가리키지만 道家(도가)에서는 이 영단을 먹여서 보통사람의 뼈를 仙骨(선골)로 바꾸는 것을 「換骨(환골)」이라고 한다. 「奪胎(탈태)」란 시인의 시상이 마치 아기가 어머니의 胎內(태내)에 있는 것과 같으므로 그 태를 나의 것으로 삼아 자기의 詩境(시경)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황정견은 이렇게 말한다.

『시의 뜻은 무궁하지만 사람에게 주어진 재능에는 한계가 있다. 한계가 있는 재주로 무궁한 뜻을 좇는다는 것은 陶淵明(도연명)이나 두보라 할지라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先人(선인)의 작품에서 뜻을 바꾸지 않고 말만 바꾸어 만드는 것을 「환골법」이라 하고 그 뜻을 본받아 그것을 조금 바꾸어 표현하는 것을 「탈태법」이라고 한다』

忽顯忽沒 (홀현홀몰)

忽顯忽沒(홀현홀몰)

忽 갑자기 홀 | 顯 나타날 현 | 忽 갑자기 홀 | 沒 빠질 몰 |

문득 나타났다가 문득 사라짐.

皓齒丹脣 (호치단순)

皓齒丹脣(호치단순)

皓 흴 호 | 齒 이 치 | 丹 붉을 단, 정성스러울 란(난) | 脣 입술 순, 꼭 맞을 민 |

붉은 입술과 흰 이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여자(女子)를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丹脣皓齒(단순호치) | 傾國之色(경국지색) |

護疾忌醫 (호질기의, hùjíjìyī)

護疾忌醫(호질기의)

护疾忌医(hù jí jì yī)

護 보호할 호 | 疾 병 질 | 忌 꺼릴 기 | 醫 의원 의 |


'병을 숨겨 의원에게 보이기를 꺼린다'라는 뜻으로, 잘못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

胡蝶之夢 (호접지몽, húdiézhīmèng)

胡蝶之夢(호접지몽)

胡蝶之梦(húdiézhīmèng)

胡 되 호,오랑캐 이름 호,수염 호 | 蝶 나비 접 | 之 갈 지 | 夢 꿈 몽 |


장자(莊子)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 꿈으로, ①현실(現實)과 꿈의 구별(區別)이 안 되는 것 ②인생(人生)의 덧없음의 비유(比喩)

昏定晨省 (혼정신성)

昏定晨省(혼정신성)

昏定晨省(hūndìngchénxǐng)

昏 어두울 혼, 힘쓸 민 | 定 정할 정, 이마 정 | 晨 새벽 신 | 省 살필 성, 덜 생 |

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問安)을 드린다는 뜻으로, 자식(子息)이 아침저녁으로 부모(父母)의 안부(安否)를 물어서 살핌을 이르는 말


《예기(禮記)》의 '곡례편(曲禮篇)'에 나오는 말로 ‘밤에 잘 때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 안녕하시기를 여쭙는다.’는 뜻의 ‘혼정(昏定)’과 ‘아침 일찍 일어나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의 안후(安候)를 살핀다.’는 뜻의 ‘신성(晨省)’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부모에 대한 공경을 바탕으로 한 행위가 곧 효, 또는 효행이다. 이 효사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륜의 가장 으뜸되는 덕목으로 중시되었다. 즉 ‘효는 백행지본(百行之本)’이라 하여 부모를 봉양하고, 공경하며, 복종하고, 조상에게 봉제사(奉祭祀)하는 일이 의무화되면서 효사상이 사회규범으로 굳어졌다.

공자는 이러한 효에 대해 그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제시하여 확고히 정착시켰다. 이 유교적인 효사상은 맹자에 와서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의무가 더욱 강조되었고, 한대(漢代)에 이르러 《효경(孝經)》에서 도덕의 근원, 우주의 원리로서 명문화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효사상이 가장 중요한 도덕규범으로 정착되자 자연히 효에 대한 행동상의 규범도 많아지게 되었다. 일종의 구체적인 실천방법으로, 먼저 부모를 대하는 얼굴가짐을 중시했다. 늘 부드러운 얼굴빛으로 부모를 섬겨 편안하게 해드려야 한다는 것으로,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 하여 ‘색난(色難)’이라 하였다. 또 부모의 잘못을 보면 간언은 하되 뜻은 거역하지 않으며, 살아 계실 때에는 정성으로 모시고 돌아가시면 3년간 부모의 평소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고 지켜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평소 일상생활 중에서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를테면 저녁에는 잠자리가 어떤지 직접 손을 넣어 확인해보고 아침에는 간밤에 잘 주무셨는지 여쭌 다음 부모의 안색을 주의깊게 살폈으니, 이것이 바로 ‘혼정신성’으로 부모를 모시는 기본 도리였던 것이다.

이 말은 겨울에는 따뜻하게[溫] 여름에는시원하게[淸] 해드리고, 밤에는 이부자리를 펴고[定] 아침에는 문안을 드린다[省]는 뜻의 '온청정성(溫淸定省)'이란 말과 뜻이 통한다. 또 부모를 섬기기는 데,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서늘하게 한다는 뜻의 '동온하청(冬溫夏凊)'이라는 말도 모두 《예기》에 나오는 말로서 그 뜻이 서로 통하는 말이다.

[출전]
예기(禮記)

그 외에 出必告 反必面(출필곡 반필면)이란 말도 있다. 밖으로 나갈 때에는 반드시 부모에게 가는 곳을 아뢰고 밖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반드시 부모를 뵙고 歸家(귀가)했음을 알린다는 뜻이다.

이런 행위는 孝(효)이전에 부모에 대한 예의의 기본이었다. 이것이 지금은 뒤집어져 있다. 밤늦게 혹은 새벽까지 이제나 저제나 하고 자식을 기다리느라 잠을 설치는 부모가 많다. 늦은 사유를 전화로라도 전해왔다면 그렇게 애타하지는 않는다.

세상은 변하고 價値觀(가치관)도 바뀐다. 어제의 正(정)이 오늘은 反(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부모에 대한 孝만큼은 절대로 뒤집을 수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 孝는 모든 행실의 근원이며 仁(인)을 행하는 근본이라고 先賢(선현)들은 입을 모아 가르쳐 왔다. 退溪 李滉(퇴계 이황)도 孝는 모든 善(선)의 으뜸이라고 했다.

人口(인구)에 膾炙(회자)되어온 효심을 담은 시 하나를 읊어보자.

父兮生我 母兮鞠我 (부혜생아 모혜국아)
哀哀父母 生我구勞 (애애부모 생아구로)
欲報之德 昊天罔極 (욕보지덕 호천망극)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시도다
어버이여 나를 낳고 기르느라 애쓰셨도다
그 은덕 갚고자 하건만 하늘 같아 다함이 없도다.

이 시는 明心寶鑑(명심보감) 孝行篇(효행편)에 나오지만 일찍이 공자가 엮은 詩經(시경)에 실려 있는 6개 시구를 재구성해 만든것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冬溫夏凊昏定晨省(동온하정혼정신성) | 出必告反必面(출필고반필면) | 朝夕定省(조석정성) | 定省(정성) | 反哺之孝(반포지효) | 反哺報恩(반포보은) |

紅一點 (홍일점)

紅一點(홍일점)

紅 붉을 홍, 상복 공 | 一 한 일 | 點 점 점, 시들 다 |

푸른 잎 가운데 한 송이의 꽃이 피어 있다는 뜻으로, ①여럿 속에서 오직 하나 이채를 띠는 것 ②또는 많은 남자(男子)들 사이에 끼어 있는 오직 하나 뿐인 여자(女子)

the only woman in the company


송(宋)나라 신종을 섬기면서, 이른 바 왕안석의 신법(新法)을 만들어 일거에 부국강병의 나라를 이룩해보고자 했다가, 사마광, 구양수, 정이천, 소식 등 유명한 학자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쳐 마침내 중도에서 좌절한 사람이 있다. 왕안석(王安石)이라는 이 사람은 그만 번민 끝에 68세를 일기로 하여 세상을 떠났는데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드는 문장가(文章家)의 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그 왕안석이 지은 석류시(石榴詩) 속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만록총중(萬綠叢中)에 홍일점(紅一點) 있도다.
사람을 움직이게하는 춘색(春色)은 많은들 무엇하리.

온통 녹색이 우거진 속에 피어있는 빨간 꽃 한 송이의 아름다움과 예쁨은 춘색의 으뜸이라고 추켜세운 내용의 시이다. 여기에 나온말이 '홍일점'이다. 당초에는 식물에 비유했던 것인데 요즈음에는 '많은 남성들 속에 섞인 한 명의 여성' 이란 뜻으로 흔히 쓰이고 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萬綠叢中紅一點(만록총중홍일점) | 一點紅(일점홍) |

반의어·상대어

靑一點(청일점) |

縞衣玄裳 (호의현상)

縞衣玄裳(호의현상)

縞 명주 호 | 衣 옷 의 | 玄 검을 현 | 裳 치마 상 |

① 흰 옷과 검은 치마. ② 소동파의 적벽부에 나오는 말로 학과 같은 깨끗함.

狐疑不決 (호의불결)

狐疑不決(호의불결)

狐 여우 호 | 疑 의심할 의, 안정할 응 | 不 아닐 불, 아닐 부 | 決 결단할 결, 빠를 혈 |

여우가 의심이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대하여 의심이 많아 결행(決行)하지 못함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진(晉)나라 때 곽연생(郭緣生)이 지은 술정기(述征記)의 이야기.

맹진(盟津)과 하진(河津)은 모두 황하(黃河)에 있는 나루터이다. 맹진은 지금의 중국 하남성 맹현(孟縣)에 있었으며, 하양도(河陽渡)라고도 하였다. 하진은 중국의 산서성 하진현(河津縣)에 있었다. 이 두 곳은 양자강보다는 좁고, 회하(淮河)나 제수(濟水)보다는 넓었다. 겨울이 되어 얼음이 얼면 두꺼운 곳은 몇 장(丈)에 달했으므로, 거마(車馬)들도 얼음 위로 통과할 수 있어 나룻배보다 편리하였다.

하지만 얼음이 막 얼기 시작할 때에, 사람들은 섣불리 건너지 못하고 먼저 여우들을 건너가게 하였다. 여우는 본시 영리한 동물로서 청각이 매우 뛰어났다. 여우는 얼음 위를 걸으면서도 이상한 소리가 나면 곧 얼음이 갈라지는 것을 예감하고 재빨리 강가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이렇게 여우가 강을 다 건너간 것을 확인하고나서야 안심하고 수레를 출발시켰던 것이다.

초(楚)나라의 굴원(屈原)은 '이소(離騷)'에서 "머뭇거리고 여우처럼 의심하는 내 마음이여, 스스로 가고파도 갈 수가 없네[心猶豫而狐疑兮, 欲自適而不可]"라고 읊었다.

또 《후한서(後漢書)》의 '유표전(劉表傳)'에 따르면, 원소(袁紹)가 조조(曺操)와 대치하고 있을 때 유표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이때, 유표는 여우처럼 의심하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한숭(韓嵩)을 조조에게 보내어 허와 실을 살피도록 하였다[表狐疑不斷, 乃遣嵩詣操, 觀望虛實]. 여기서 유래하여 호의불결은 의심이 많아서 어떤 일을 결행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술정기(述征記) | 이소(離騷) | 후한서(後漢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狐疑未決(호의미결)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浩然之氣 (호연지기)

浩然之氣(호연지기)

浩 넓을 호, 술 거를 고 | 然 그럴 연, 불탈 연 | 之 갈 지 | 氣 기운 기, 보낼 희 |

①하늘과 땅 사이에 넘치게 가득찬 넓고도 큰 원기 ②도의(道義)에 근거(根據)를 두고 굽히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바르고 큰 마음 ③공명정대(公明正大)하여 조금도 부끄럼 없는 용기(勇氣) ④사물이나 잡다(雜多)한 일에서 벗어난 자유(自由)로운 마음


孟子(맹자)의 제자 公孫丑(공손추)는 齊(제)나라 사람이었다. 어느날 스승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께서 제나라의 재상이 되시어 도를 행하신다면 제나라를 천하의 覇者(패자)로 만드실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마음을 한번 움직여 보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40이 넘어서부터는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 없네."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不動心․(부동심)]은 진정한 용기[勇]가 필요하네. 용기가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요체가 되지."

맹자(孟子)는 심중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어떠한 것이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대용(大勇)이라 했다.

"선생님의 부동심과 고자(告子)의 부동심과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고자는 제나라의 사상가로 맹자가 性善說(성선설)을 주창한데 반해 성악설을 내세운 사람이다.

"고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억지로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했어. 그러니까 신경을 쓰지 않음으로써 부동심을 얻으려고 했다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소극적이지. 그런데 나는 남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네[知言]. 그러니까 고자와 나의 부동심은 다르지. 게다가 나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고 있다네."

"그럼 호연지기란 무엇입니까?"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네.지언(知言)이란 편협한 말[詖辭(피사)], 음탕한 말[淫辭(음사)], 간사한 말[邪辭(사사)], 피하는 말[遁辭(둔사)]를 가려낼 수 있는 명(明)을 갖는 것이다. 또 호연지기는 평온하고 너그러운 화기(和氣)를 말하며, 기(氣)는 매우 광대하고 강건하며 올바르고 솔직한 것으로서 이것을 해치지 않도록 기르면, 천지간에 넘치는 우주 자연과 합일하는 경지다. 기는 의(義)와 도(道)를 따라 길러지며 이것을 잃으면 시들고 만다. 이것은 자신 속에 올바른 것을 쌓아 올림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다."

[출전]
맹자(孟子)의 공손추편(公孫丑篇)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浩氣(호기) | 正氣(정기) |

或躍在淵 (혹약재연)

或躍在淵(혹약재연)

或 장차 혹 | 躍 뛸 약 | 在 있을 재 | 淵 못 연 |

장차 크게 뛰려 하나 아직은 깊은 못 속에 있음. 이전보다 발전했지만 아직 안정되지 못한 상태

[출전]
주역

虎視耽耽 (호시탐탐)

虎視耽耽(호시탐탐)

虎视眈眈(hǔshìdāndān)

虎 범 호 | 視 볼 시 | 眈 노려볼 탐, 머리를 내밀고 볼 침 | 眈 노려볼 탐, 머리를 내밀고 볼 침 |

범이 먹이를 노린다는 뜻으로, ①'기회(機會)를 노리며 형세(形勢)를 살핌'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②날카로운 눈으로 가만히 기회(機會)를 노려보고 있는 모양(模樣)

to glare like a tiger ready to pounce on its prey—to eye with hostility; eye covetously

[출전]
역경(易經)

虎視馬走 (호시마주)

호시마주(虎視馬走)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보고 말처럼 힘차게 달린다

混水摸魚 (혼수모어, húnshuǐmōyú)

混水摸魚(혼수모어)

混水摸鱼(húnshuǐmōyú)

混 혼탁할 혼 | 水 물 수 | 摸 찾을 모 | 魚 물고기 어 |


물을 휘저어 물고기를 잡다. 혼란한 틈을 타서 한몫 보다. 혼란한 틈을 타서 정당하지 못한 이익을 챙기다.

惑世誣民 (혹세무민)

惑世誣民(혹세무민)

惑 미혹할 혹 | 世 인간 세, 대 세 | 誣 속일 무 | 民 백성 민 |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이는 일.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欺世盗名(qīshìdàomíng) |

虎死留皮人死留名 (호사유피인사유명)

虎死留皮人死留名(호사유피인사유명)

虎 범 호 | 死 죽을 사 | 留 머무를 유(류) | 皮 가죽 피 | 人 사람 인 | 死 죽을 사 | 留 머무를 유(류) | 名 이름 명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으로, 사람은 죽어서 명예를 남겨야 함을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人在名虎在皮(인재명호재피) | 豹死留皮(표사유피) | 豹死留皮人死留名(표사유피인사유명) | 虎死留皮(호사유피)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인생은 다만 백 년이다.

虎死留皮 (호사유피)

虎死留皮(호사유피)

虎死留皮(hǔsǐliúpí)

虎 범 호 | 死 죽을 사 | 留 머무를 유(류) | 皮 가죽 피 |

범이 죽으면 가죽을 남김.


당나라가 멸망하고 오대(五代)가 교체하던 시기에 양(梁)나라에 왕언장(王彦章)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성품이 우직하고 곧이곧대로인 그는 싸움에 나갈때면 항상 쇠창을 들고 용감(勇敢)히 덤벼들어서 별명이 왕철창(王鐵槍)이었다.그런데 산서(山西)에 있던 진(秦)나라가 국호를 후당(後唐)으로 바꾸고 양나라로 쳐들어왔다. 이때 왕언장도 출전했으나 크게 패해 파면까지 당했다. 그 후 후당이 다시 침입했을 때 재기용되었으나 이번에는 그만 포로가 되고 말았다. 후당의 임금이 왕언장의 용맹무쌍함을 높이 사 귀순할 것을 종용하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아침에는 양나라를 섬기고 저녁에는 진(秦)나라를 섬기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오."진노한 임금은 그에게 사형을 내렸고, 그는 마치 자신이 살아 생전 늘 입버릇처럼 한 말에 따르기라도 하듯이 의연한 자세로 죽음의 길을 갔다. 그는 평소 속담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즐겼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한 나라의 장수로서 명예를 소중히 여긴 왕언장이 행동(行動)은 의롭다 할 만하다.

[출전]
오대사(五代史)의 왕언장전(王彦章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豹死留皮(표사유피) | 人死留名(인사유명) |

好事多魔 (호사다마)

好事多魔(호사다마)

好 좋을 호 | 事 일 사 | 多 많을 다 | 魔 마귀 마 |

좋은 일에는 방해되는 일이 많다.

The good comes with the bad.


호사다방(好事多妨:좋은 일에는 방해가 많이 따른다)이라고도 한다. 魔는 磨라고도 쓴다. 이 말이 사용된 예로는 중국 청(淸)나라 때 조설근(曹雪芹)이 지은 《홍루몽(紅樓夢)》에 "그런 홍진 세상에 즐거운 일들이 있지만 영원히 의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물며 또 '미중부족 호사다마(美中不足 好事多魔:옥에도 티가 있고, 좋은 일에는 탈도 많다)'라는 여덟 글자는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순식간에 또 즐거움이 다하고 슬픈 일이 생기며, 사람은 물정에 따라 바뀌지 않는 법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또 금(金)나라 때 동해원(董解元)이 지은 《서상(西廂)》에 "참으로 이른바 좋은 시기는 얻기 어렵고, 좋은 일을 이루려면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眞所謂佳期難得, 好事多磨)"라는 구절이 있다. 좋은 일이 오래 계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호몽부장(好夢不長:좋은 꿈은 오래 가지 않는다)과 같은 의미이다.

[출전]
조설근(曹雪芹, Cao Xueqin), 홍루몽(紅樓夢, Dream of the Red Chamber)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鰣魚多骨(시어다골) | 好事多魔(호사다마) | 好事多妨(호사다방) |

鴻門宴 (홍문연, Hóngményàn)

鸿门宴(홍문연,Hóngményàn)

鸿门宴(Hóngményàn)

鴻 기러기 홍 | 門 문 문 | 宴 잔치 연 |


초청객을 모해할 목적으로 차린 주연(酒宴).

毫毛斧柯 (호모부가)

毫毛斧柯(호모부가)

毫毛斧柯(háomáofǔkē)

毫 터럭 호 | 毛 터럭 모 | 斧 도끼 부 | 柯 가지 가 |

수목(樹木)을 어릴 때 베지 않으면 마침내 도끼를 사용(使用)하는 노력(努力)이 필요(必要)하게 된다는 뜻으로, 화(禍)는 미세(微細)할 때에 예방(豫防)해야 함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로 쓰임

[출전]
전국책(戰國策)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 개가 겨를 먹다가 말경에는 쌀을 먹는다.

囫圇呑棗 (홀륜탄조)

囫圇呑棗(홀륜탄조)

囫 온전할 홀 | 圇 완전할 륜 | 呑 삼킬 탄 | 棗 대추 조 |

대추를 통째로 삼킨다는 뜻으로, 자세히 분석하지도 않고 뜻도 모른 채 받아들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주자어류(朱子語類) 논어(論語) 16편에는 도리란 조리가 분명한 일이지 뭉뚱그린 것이 아니다(不是 一物) 라는 말이 있다.

옛날에 과거시험에 번번이 낙방한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연회를 베풀어 손님을 초대하여 자신이 계속 과거시험에 낙방하는 원인에 대한 조언을 구하였다. 그는 술과 밥을 배불리 먹고 나서 손님들에게 과일을 대접하고는, 자신도 대추를 여러 개 먹었다. 손님 중에 의술에 정통한 사람이 있어 말했다.

"배를 생으로 먹으면 치아에는 좋지만 비장(脾臟)에는 좋지 않고, 반대로 대추는 비장에는 좋지만 치아에 해를 줄 수 있습니다."

번번이 낙방하던 사람은 이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러면 대추를 씹지 않고 통째로 삼켜 버리면 치아를 보호할 수 있을 뿐더러 비장에도 유익할 것이다."

그리고는 대추를 집어 통째로 삼켰다.

그러자 의술에 정통한 사람은 그에게 평소 연습한 문장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가 가져온 몇 편의 글을 읽어 보고 나서 말했다.

"시는 운률이 맞지 않고 문장도 조리에 맞지 않으며, 전고(典故)를 잘못 사용한 곳도 있고 원래의 뜻을 잘못 이해한 것도 있다. 대추를 통째로 삼키 듯 공부를 하였으니 번번이 낙방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또 《벽암록(碧巖錄)》에는 조주화상(趙州和尙)의 선문답에 대하여 "지혜로운 자는 자세하게 곱씹어 삼킬 것이요, 지혜롭지 못한 자는 대추를 통째로 삼키 듯이 할 것이다[若是知有底人, 細嚼來嚥, 若是不知有底人, 一似渾崙呑個棗]"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홀륜탄조는 사물을 흐리멍텅하게 이해하거나, 학문을 하면서 깊이 이해하지 않고 넘어가거나, 분석과 검토를 거치지 않고 남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주자어류(朱子語類)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鶻圇呑棗(골륜탄조) 새가 대추씨를 맛도 모르고 통째로 삼킨다 | 囫圇呑棗(홀륜탄조)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紅爐點雪 (홍로점설)

紅爐點雪(홍로점설)

紅 붉을 홍, 상복 공 | 爐 화로 로(노) | 點 점 점, 시들 다 | 雪 눈 설 |

①뜨거운 불길 위에 한 점 눈을 뿌리면 순식간에 녹듯이 사욕(邪慾)이나 의혹(疑惑)이 일시에 꺼져 없어지고 마음이 탁 트여 맑음을 일컫는 말 ②크나큰 일에 작은 힘이 조금도 보람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紅爐上一點雪(홍로상일점설) | 漢江投石(한강투석) | 以卵投石(이란투석) | 以卵擊石(이란격석) | 杯水輿薪(배수여신) | 杯水救車(배수구거) | 杯水車薪(배수거신) |

虎狼之國 (호랑지국)

虎狼之國(호랑지국)

虎 범 호 | 狼 이리 랑(낭) | 之 갈 지, -의 지 | 國 나라 국 |

호랑이와 이리의 나라라는 뜻으로, 포악(暴惡)하고 신의(信義)가 없는 강대국(强大國)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사기(史記) 굴원(屈原)열전의 이야기다.

전국시대에 진나라를 비롯하여 제(齊)·초(楚)·연(燕)·위(魏)·한(韓)·조(趙)의 7개국이 패권을 놓고 대립하였다. 진나라는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나라로서 나머지 6개국을 위협하였다. 남쪽 초(楚)나라도 그 위협을 피할 수는 없었다.

당시 초나라 회왕(懷王)의 대신(大臣)으로 있던 유명한 시인(詩人) 굴원은 제(齊)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고 간언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회왕은 진나라 장의(張儀)에게 속임을 당하였다. 이에 초 회왕은 진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오히려 크게 패하였다. 이듬해, 장의는 다시 초나라를 방문하여 초왕의 신하와 총비(寵妃)를 매수하고, 초왕을 설득하여 진나라와 형제지국의 관계를 맺었다.

얼마 후, 진나라 소왕(昭王)은 거짓으로 초나라와 통혼(通婚)을 청하며 회왕에게 만나자고 제의하였다. 회왕이 이를 곧이 듣고 진나라로 가려 하자, 굴원은 이것이 함정임을 주장하며 진나라는 호랑이와 같은 나라이므로 믿을 수 없으니, 가시지 않는게 좋습니다[秦, 虎狼之國, 不可信, 不如無行]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나라에 갔던 초왕은 결국 그곳에서 붙잡혀 죽고 말았다.

또 같은 전국시대에 소진(蘇秦)은 6개국을 돌아다니며 힘을 합쳐 진나라에 대적하여야 한다는 합종책(合從策)을 유세하였다. 그는 초나라에 가서 "무릇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사나운 나라로서 천하를 삼키려는 마음을 품고 있으므로 천하의 원수입니다[夫秦虎狼之國也, 有呑天下之心, 秦天下之仇讐也]"라고 하면서 위왕(威王)을 설득하였다. 이 고사는 《사기》의 〈소진열전〉과 《전국책(戰國策)》의 〈초책(楚策)〉편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호랑지국은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괴롭히는 포학한 강대국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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虎口餘生 (호구여생)

虎口餘生(호구여생)

虎 범 호 | 口 입 구 | 餘 남을 여 | 生 날 생 |

큰 위험에서 목숨을 구함을 비유한 말.

life spared from the mouth of a tiger

송(宋)나라 때, 호주(湖州)에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주태(朱泰)라는 사람이 있었다. 집안이 가난한 탓에 산에서 나무를 해다 백리 밖에 있는 저자에 내다 팔아 겨우 몇 푼의 돈을 마련하여 생활하였다. 어느 날, 주태가 산에 올라 나무를 하고 있었는데, 큰 호랑이가 나타나 그를 물고 갔다. 주태는 호랑이게 물려 가면서도 죽을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내가 죽는 것은 상관없지만, 늙으신 어머니는 어찌 할꼬.

그는 계속 소리치면서 호랑이의 이빨에서 벗어 나려고 몸부림쳤다. 그를 물고 달리던 호랑이도 이제껏 이런 상황을 본 적이 없었던 터라 깜짝 놀라서, 입을 벌려 주태를 놓아 주고는, 오히려 허둥지둥 도망치고 말았다.

간신히 목숨을 구한 주태가 부상당한 채 집으로 돌아 오자,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그를 위로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돈과 물건을 가지고 와서 그를 도와 주었다.

호구(虎口)에서 살아 돌아온 주태는 그후 주호잔(朱虎殘)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狐假虎威 (호가호위)

狐假虎威(호가호위)

狐假虎威(hújiǎhǔwēi)

狐 여우 호 | 假 거짓 가, 멀 하, 이를 격 | 虎 범 호 | 威 위엄 위 |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으스댄다는 뜻으로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리는 것을 말한다.

the fox borrowing the awe of the tiger—to bully people by flaunting one's powerful connections; to browbeat others by virtue of one's powerful connections


전국 시대 중국의 남쪽 초나라에 소해휼(昭奚恤)이라는 재상(宰相)이 있었다. 북방의 나라들은 이 소해휼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초나라의 실권을 그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나라 선왕(宣王)은 북방의 나라들이 왜 소해휼을 두려워 하는지 이상하게 여겨 魏(위)나라 출신인 江乙(강을)이란 신하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위나라를 비롯한 북방의 여러나라가 우리 초나라 재상 昭奚恤(소해휼)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그게 정말이오?』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그들이 일개 재상에 지나지 않는 소해휼을 두려워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막강한 초나라의 힘때문이죠』

이렇게 말을 받은 강을은 평소 눈엣가시처럼 여겨온 소해휼을 모함하기 시작했다.

"호가호위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생긴 연유는 이렇습니다. 호랑이가 여우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잡아 먹히게 된 여우가 말했습니다. '잠깐 기다리게나. 이번에 나는 천제로부터 백수의 왕에 임명되었네. 만일 나를 잡아먹으면 천제의 명령(命令)을 어긴 것이 되어 천벌을 받을 것이야. 내 말이 거짓말이라 생각하거든 나를 따라와 봐. 나를 보면 어떤 놈이라도 두려워서 달아날 테니.'여우의 말을 듣고 호랑이는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과연 만나는 짐승마다 모두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짐승들은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를 보고 달아난 것이지만, 호랑이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북방의 제국이 소해휼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실은 소해휼의 배후에 있는 초나라의 군세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소해휼은 왕을 등에 업고 위세를 부리는 여우가 되고, 선왕은 소해휼이 훌륭해서 모두가 그를 두려워하는 줄로 알고 있는 어리석은 호랑이가 되고 만 셈이었다.

[출전]
전국책(戰國策)의 초책(楚策)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借虎威狐(차호위호) | 假虎威狐(가호위호)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an ass in a lion's skin
사자의 탈을 쓴 나귀

胡蝶夢 (호접몽)

胡蝶夢 (호접몽)

胡(호) 나비, 오랑캐 | 蝶(접) 나비 | 夢(몽) 꿈

호접몽은 '나비의 꿈'이라는 뜻으로 사물과 자기와의 구별을 잊은 것. 바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심경(心境)을 말하는 것

糊口之策 (호구지책)

糊口之策 (호구지책)

糊口之策 [ húkǒuzhīcè ]

糊 풀칠할 호, 죽 호 | 口 입 구 | 之 갈 지 | 策 꾀 책, 채찍 책 |

입에 풀칠하다라는 뜻으로, 겨우 먹고 살아가는 방책(方策)


초(楚)나라의 호구(狐丘)에 사는 한 영감이 손숙오(孫叔敖)에게 말했다.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원망의 대상이 있습니다. 혹시 그걸 아십니까?" "무슨 말씀이신가요?" "사람들은 직위가 높은 사람을 투기하고, 임금은 벼슬이 높은 사람을 미워하며, 녹을 많이 받는 사람은 세인의 원망을 듣습니다."그러자 손숙오가 이렇게 말했다. "저의 직위가 올라갈수록 저의 뜻은 낮추고, 제 벼슬이 높아질수록 저의 마음을 작게 가지며, 저의 녹이 많아질수록 베풀기를 넓게 한다면 이 세 가지 원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겠지요?"세월이 흘러 손숙오는 병이 들어 죽어갈 때 아들에게 이렇게 훈계했다. "임금님은 나를 자주 봉(封)하려 했지만 내가 받지 않았다. 내가 죽으면 임금께서는 분명 네게 땅을 봉해 주실 것인즉 너는 절대 이로운 땅을 받지 말아라. 초나라와 월나라 사이에 침구라는 지방이 있으니 이곳은 이롭지도 않고 명성이 아주 나쁘다. 초나라 사람들은 귀신을 믿고 월나라 사람들은 상서를 믿으니 오래도록 차지 할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다."손숙오가 죽자 임금은 과연 기름지고 아름다운 지방을 그의 아들에게 분봉하려 했으나 그의 아들은 부친의 유언대로 이를 사양하고 침구 지방을 받아 그곳에서 자손들이 오래도록 살았다.

[출전]
열자(列子)의 설부편說符篇)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糊口策(호구책) | 糊口之方(호구지방) | 糊口之計(호구지계) | 口食之計(구식지계) |

孑孑單身 (혈혈단신)

孑孑單身(혈혈단신)

孑 외로울 혈 | 孑 외로울 혈 | 單 홑 단, 오랑캐 이름 선 | 身 몸 신, 나라 이름 건 |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홀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單獨一身(단독일신) | 孤獨單身(고독단신)

懸河雄辯 (현하웅변)

懸河雄辯(현하웅변)

懸 달 현 | 河 물 하 | 雄 수컷 웅 | 辯 말씀 변, 두루 미칠 편 |

현하구변.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懸河之辯(현하지변) | 懸河口辯(현하구변) |

懸河口辯 (현하구변)

懸河口辯(현하구변)

懸 달 현 | 河 물 하 | 口 입 구 | 辯 말씀 변, 두루 미칠 편 |

흐르는 물과 같이 거침없이 술술 나오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懸河之辯(현하지변) | 懸河雄辯(현하웅변) |

螢窓雪案 (형창설안)

螢窓雪案(형창설안)

螢 반딧불 형 | 窓 창 창, 굴뚝 총 | 雪 눈 설 | 案 책상 안 |

반딧불이 비치는 창과 눈에 비치는 책상(冊床)이라는 뜻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학문(學問)에 힘씀을 비유(比喩ㆍ譬喩)한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螢雪之功(형설지공) | 車螢孫雪(차형손설) | 車胤聚螢(차윤취형) | 車胤盛螢(차윤성형) | 孫康映雪(손강영설) |

螢雪之功 (형설지공)

螢雪之功(형설지공)

萤雪之功(yíngxuězhīgōng)

螢 반딧불 형 | 雪 눈 설 | 之 갈 지 | 功 공 공 |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工夫)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


후진(後晉)의 이한(李瀚)이 지은 《몽구(蒙求)》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진(晉)나라의 차윤(車胤)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전한 노력가로 공부를 열심히 했으나 집안이 가난해 등불을 켜는 데 사용하는 기름조차 없었다. 소년은 밤에도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끝에 엷은 명주 주머니를 벌레통처럼 만들어 그 속에 반디를 수십 마리 집어넣어 거기서 나오는 빛으로 책을 비추어 읽었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한 끝에 상서랑(尙書郞 또는 吏部尙書)이라는 중앙 정부의 고급 관리로 출세했다.

또 같은 시대에 손강(孫康)이라는 소년은 어릴 때부터 악한 무리들과 사귀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으나 역시 집안이 가난해 등불을 켤 기름을 살 수가 없었다. 소년은 궁리 끝에, 겨울날 추위를 견디며 창으로 몸을 내밀고 쌓인 눈에 반사되는 달빛을 의지해 책을 읽었다. 그 결과 어사대부(御史大夫)라는 관원을 단속하는 관청의 장관이 되었다.

이 고사에서 비롯되어 어려운 처지에서 공부하는 것을 '형설지공' 또는 단순히 '형설'이라고 한다. 또 공부하는 서재를 형창설안(螢窓雪案)이라고도 한다.

[유래]
晉書(진서) : 卷83 : 車胤 | 蒙求(몽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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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어·유의어

螢窓雪案(형창설안) | 車螢孫雪(차형손설) | 车萤孙雪(chēyíngsūnxuě) | 車胤聚螢(차윤취형) | 車胤盛螢(차윤성형) | 孫康映雪(손강영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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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書(진서) : 卷83 : 車胤 | 蒙求(몽구) |

衡無心輕重自見 (형무심경중자현)

衡無心輕重自見(형무심경중자현)

衡 저울대 형, 가로 횡 | 無 없을 무 | 心 마음 심 | 輕 가벼울 경 | 重 무거울 중, 아이 동 | 自 스스로 자 | 見 볼 견, 뵈올 현 |

저울대는 무심해서 경중이 절로 드러난다.


[출전]

木几冗談(목궤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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鏡無心姸媸自見(경무심연치자현) | 衡無心輕重自見(형무심경중자현) | 衡無心輕重自見 鏡無心姸媸自見(형무심경중자현 경무심연치자현) |

懸頭刺股 (현두자고)

懸頭刺股(현두자고)

懸 달 현 | 頭 머리 두 | 刺 찌를 자, 찌를 척, 수라 라(나), 비방할 체 | 股 넓적다리 고 |

상투를 천장에 달아매고, 송곳으로 허벅다리를 찔러서 잠을 깨운다는 뜻으로, 학업(學業)에 매우 힘씀을 이르는 말


漢(한)나라의 孫敬(손경)은 洛陽(낙양)의 대학에 있을 때 공부에만 매달렸다. 공부하다가 졸음이 와서 고개가 숙여지지 못하도록 자신의 머리를 대들보에 끈으로 매달아 놓고(懸頭) 책을 읽었다.

전국시대 遊說家(유세가)로 유명한 蘇秦(소진)은 책을 읽는데 졸음이 오면 송곳을 가져다가 자신의 넓적다리를 찔렀다(刺股). 어떨 때는 흘러내린 피가 발뒤꿈치까지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출전]
초국선현전(楚國先賢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刺股懸梁(자고현량) | 懸頭刺股(현두자고) | 懸梁刺股(현량자고) |

虛虛實實 (허허실실)

虛虛實實(허허실실)

虛 빌 허 | 虛 빌 허 | 實 열매 실, 이를 지 | 實 열매 실, 이를 지 |

허(虛)를 찌르고 실(實)을 꾀하는 계책(計策)으로 싸우는 모양(模樣)을 이르는 말로써, ①계략(計略)이나 수단(手段)을 써서 서로 상대방(相對方)의 약점을 비난(非難)하여 싸움 ②허실을 살펴서 상대방(相對方)의 동정(動靜)을 알아냄을 이르는 말

虛張聲勢 (허장성세)

虛張聲勢(허장성세)

虛 빌 허 | 張 베풀 장 | 聲 소리 성 | 勢 형세 세 |

헛되이 목소리의 기세(氣勢)만 높인다는 뜻으로, 실력(實力)이 없으면서도 허세만 부림.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號曰百萬(호왈백만) | 空城計(공성계) |

虛心坦懷 (허심탄회)

虛心坦懷(허심탄회)

虛 빌 허 | 心 마음 심 | 坦 평탄할 탄, 너그러울 탄 | 懷 품을 회 |

마음에 아무런 거리낌없이 솔직한 태도로 일에 임함.

解弦更張 (해현경장)

解弦更張(해현경장)

解 풀 해 | 弦 시위 현 | 更 고칠 경, 다시 갱 | 張 베풀 장 |

'거문고의 줄을 바꾸어 매다'라는 뜻으로, 느슨해진 것을 긴장하도록 다시 고치거나 사회적·정치적으로 제도를 개혁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한(漢)나라 때 동중서(董仲舒)가 무제(武帝)에게 올린 현량대책(賢良對策)에서 유래되었다.


개현경장(改弦更張)·개현역장(改弦易張)·해현역철(解弦易轍)·개현역철(改弦易轍)·개현역조(改弦易調)라고도 한다. 동중서는 이름난 유학자로 어려서부터 《춘추(春秋)》를 공부하였고, 경제(景帝) 때 박사(博士)가 되었다. 경제를 이어 즉위한 무제는 국사를 운영하면서 수시로 동중서에게 자문을 구하였다. 무제가 널리 인재를 등용하려 하자, 동중서는 '원광원년거현량대책(元光元年擧賢良對策)'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지금 한나라는 진나라의 뒤를 계승하여 썩은 나무와 똥이 뒤덮인 담장과 같아서 잘 다스리려고 해도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지경입니다. (중략) 이를 비유하자면 거문고를 연주할 때 소리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심해지면 반드시 줄을 풀어서 고쳐 매어야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竊譬之琴瑟不調, 甚者必解而更張之, 乃可鼓也]. 마찬가지로 정치도 행하여지지 않는 경우가 심해지면 반드시 옛것을 새롭게 변화하여 개혁하여야만 제대로 다스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줄을 바꿔야 하는데도 바꾸지 않으면 훌륭한 연주가라 하더라도 조화로운 소리를 낼 수 없으며, 개혁하여야 하는데도 실행하지 않으면 대현(大賢)이라 하더라도 잘 다스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출전]
漢書(한서) 董仲舒傳(동중서전)

여기서 유래하여 해현경장은 주로 사회적·정치적 개혁을 의미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조선시대 말기에 발생한 갑오경장(甲午更張:갑오개혁)의 명칭도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解弦易轍(해현역철) | 改弦易轍(개현역철) | 改弦易調(개현역조) | 改弦易張(개현역장) | 改弦更張(개현경장) |

幸災樂禍 (행재요화)

幸災樂禍(행재요화)

幸 다행 행 | 災 재앙 재 | 樂 좋아할 요, 즐길 락(낙), 노래 악 | 禍 재앙 화 |

남이 재화(災禍)를 입음을 보고 좋아함


출전

顔氏家訓(안씨가훈)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낙화행재(樂禍幸災) | 幸災樂禍(행재낙화) | 幸災樂禍(행재락화) | 幸災樂禍(행재요화)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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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幸災樂禍 (행재낙화)

幸災樂禍(행재낙화)

幸 다행 행 | 災 재앙 재 | 樂 좋아할 요, 즐길 락(낙), 노래 악 | 禍 재앙 화 |

'재앙을 다행으로 여기고 즐거워한다'라는 뜻으로, 남의 불행을 즐기는 이기적인 태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춘추시대의 경정(慶鄭)과 자퇴(子頹)와 관련된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좌전(左傳) 희공(僖公) 14년조의 이야기.

경정의 고사에서 유래된 '행재'와 자퇴의 고사에서 유래된 '낙화'가 합쳐진 고사성어이다.

춘추시대, 진(晋)나라에 내란이 발생하자 공자 이오(夷吾)는 진(秦)나라로 도망하였다. 이오는 귀국하기 전에 다섯 성을 진(秦)나라에 감사의 대가로 주기로 하였으나, 진(晋)의 군주, 즉 혜공(惠公)에 즉위하자 생각을 바꾸었다.

기원전 647년, 진(晉)나라 혜공(惠公) 때 큰 흉년이 들었다. 진(秦)나라 진혜왕은 지난 날의 일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대부 백리해(百里奚)의 권유로 진(晋)나라에 양식을 보내 주었다.

이듬해에는 거꾸로 진(秦)나라에 흉년이 들어 진(晉)나라로부터 식량을 사들이고자 하였으나, 진(晉)나라는 지난 해의 고마움을 잊은 듯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大夫)인 경정만은 혜공에게 말하면서, 식량을 팔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은혜를 저버리면 외로운 처지가 될 것이며, 남의 재앙을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어질지 못한 일입니다[背施無親, 幸災不仁]"

그러나 혜공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분노한 진(秦)나라는 결국 군사를 일으켜 진(晉)나라를 공격하였고, 혜공은 포로의 신세가 되었다. 이 고사는 《좌씨전(左氏傳)》의 '희공(僖公) 14년'조에 실려 있으며, '행재'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춘추시대 주(周)나라의 장왕(莊王)은 애첩과의 사이에서 자퇴라는 아들을 얻었다. 장왕이 죽은 뒤에 희왕에 이어 혜왕(惠王)이 왕위에 올랐다. 혜왕 때 대신들이 반란을 일으켜 혜왕을 몰아내고 자퇴를 꼭두각시 왕으로 내세웠다. 음탕하고 어리석은 자퇴는 매일 대신들과 음주가무에 빠져 지냈다.

정(鄭)나라의 려왕이 이 소식을 듣고 괵숙에게 "때를 가리지 않고 슬픔과 즐거움을 나타내면 재앙이 반드시 닥친다고 들었다. 지금 자퇴가 가무를 즐기느라 피곤한 줄을 모르는 것은 재앙을 즐기는 짓이다(哀樂失時, 殃咎必至. 今王子頹歌舞不倦, 樂禍也)"라고 말하였다. 이 고사는 《좌씨전》의 '장공(莊公) 20년'조에 실려 있으며, '낙화'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이 두 가지 고사에서 유래하여 행재낙화는 남의 불행을 함께 슬퍼하기는커녕 즐거워하는 그릇된 행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낙화행재(樂禍幸災)라고도 한다.


출전

좌씨전(左氏傳) 희공(僖公) 14년 | 좌씨전(左氏傳) 장공(莊公) 20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낙화행재(樂禍幸災) | 幸災樂禍(행재낙화) | 幸災樂禍(행재락화) | 幸災樂禍(행재요화)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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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解衣推食 (해의추식)

解衣推食(해의추식)

解衣推食 [jiěyītuīshí]

解 풀 해 | 衣 옷 의 | 推 옮을 추, 밀 추, 밀 퇴 | 食 밥 식, 먹을 식, 먹이 사, 사람 이름 이 |

옷을 벗어주고 음식(飮食)을 밀어준다라는 뜻으로, 남에게 은혜(恩惠)를 베푸는 것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열전의 이야기.

한신(韓信)은 본시 초나라 항우(項羽) 밑에서 말단 군관을 지냈으나, 항우가 자신을 크게 써주지 않자 유방(劉邦)에게 귀순하였다. 유방은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를 대장으로 임명하였다. 한신이 군대를 이끌고 제(齊)나라를 공격했을 때, 제나라는 초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항우는 부하 장수 용저(龍且)에게 20만 대군을 이끌고 제나라를 돕게 하였다. 그러나 한신은 초나라 군대를 대파하고 제왕(齊王)에 봉하여졌다. 한신의 능력에 두려움을 느낀 항우는 무섭(武涉)이라는 세객(說客)을 보내어 한신으로 하여금 한나라로부터 독립하여 초·한·제의 세 나라로 천하를 삼분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자 한신은 그의 말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과거 내가 내가 항왕(항우)을 섬길 때는 낭중(郞中)에 불과하여 창을 들고 문지기 노릇을 하였소. 내 계책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므로 초나라를 배반하고 한나라에 귀순한 것이오. 이제 한왕(유방)은 내게 장군의 인수(印綬)를 내리고 수만의 병력을 맡겼으며, 자기 옷을 벗어 내게 입혀 주고 자기 밥을 나누어 주었으며, 내 계책을 받아들였으므로 내가 여기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이오[漢王授我上將軍印, 予我數萬衆, 解衣衣我, 推食食我, 言聽計用, 故吾得以至於此]. 무릇 남이 나를 깊이 신뢰하는데 내가 그를 배신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니 설령 죽더라도 뜻을 바꿀 수는 없소."

여기서 유래하여 해의추식은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을 벗어 주고, 자기 밥을 나누어 줄 정도로 다른 사람을 각별히 친절하게 대하거나 돌보아 주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추식해의(推食解衣)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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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海翁好鷗 (해옹호구, hǎiwēnghǎoōu)

海翁好鷗(해옹호구)

海翁好鸥(hǎiwēnghǎoōu)

海 바다 해 | 翁 늙은이 옹 | 好 좋을 호 | 鷗 갈매기 구 |


갈매기를 좋아하는 바닷가 노인이라는 뜻으로, 친하게 지내던 새도 막상 잡으려고 하면 그것을 알고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데서 야심(野心)이나 위험(危險)을 알아차리면 누구라도 접근(接近)하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

解語花 (해어화, jiěyǔhuā)

解語花(해어화)

解语花(jiěyǔhuā)

解 풀 해 | 語 말씀 어 | 花 꽃 화 |


'말을 아는 꽃'이라는 뜻으로, ①'미녀(美女)'를 일컫는 말 ②'기생(妓生)'을 달리 이르는 말

行不由徑 (행불유경)

行不由徑(행불유경)

行 다닐 행, 항렬 항 | 不 아닐 불, 아닐 부 | 由 말미암을 유, 여자의 웃는 모양 요 | 徑 지름길 경, 길 경 |

길을 가는 데 지름길을 취하지 아니하고 큰길로 간다는 뜻으로, 행동(行動)을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함을 비유(比喩ㆍ譬喩)함


논어(論語) 옹야(雍也)편의 이야기.

자유(子遊)는 공자의 제자로 공문십철(孔門十哲)에 속하며, 자하(子夏)와 더불어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가 노(魯)나라에서 벼슬하여 무성(武城)의 재상으로 임명되었을 때의 일이다. 공자는 사랑하는 제자가 벼슬을 하게 되자, 일하는 모습도 볼 겸 축하도 할 겸해서 직접 무성으로 찾아갔다.

공자는 자유에게 물었다.

"일을 잘하려면 좋은 협력자가 필요하다. 네게도 아랫사람 중에 훌륭한 인물이 필요할 텐데, 그래 쓸만한 인물이 있느냐?"

그러자 자유가 대답하였다.

"예, 안심하십시오. 성은 담대(澹臺), 이름은 멸명(滅明)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훌륭한 인물로, 언제나 천하의 대도를 갈 뿐, 결코 지름길이나 뒤안길을 가지 않습니다[行不由徑]. 공적인 일이 아니면 저의 방에 찾아 오는 일이 없습니다. 정말 존경할 만한 훌륭한 인물입니다."

공자는 기뻐하며 훌륭한 인물은 소중히 대하라며 제자를 격려했다.

徑은 지름길이나 샛길을 뜻한다. 行不由徑이란 지름길이나 샛길을 가지 않고 떳떳하게 큰 길로 가는 것이니, 이는 곧 눈 앞의 이익을 탐하지 않고 정정 당당한 방법으로 일을 처리함을 비유한 말이다.

여기서 행불유경(行不由徑)이란 말이 나왔으며, 군자는 큰길을 택해서 간다는 뜻의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이란 말과 뜻이 통하는 말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君子大路行(군자대로행) | 行不由徑(행불유경) |

海不讓水 (해불양수)

海不讓水(해불양수)

海 바다 해 | 不 닐 불,아닐 부 | 讓 사양할 양 | 水 물 수 |

바다는 어떠한 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여 거대한 대양을 이룬다는 뜻으로, 모든 사람을 차별않고 포용할 수 있다는 뜻.

중국 고문 중 명문으로 손꼽히는 ‘간축객서(諫逐客書)’의 ‘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이라는 말에 나온다.

行百里者半於九十 (행백리자반어구십)

行百里者 半於九十(행백리자 반어구십)

백리를 가고자 하는 자는 구십리가 반이라는 말로 마무리가 중요함을 뜻함.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진(秦) 무왕(武王)의 교만함을 걱정한 신하가 '시경(詩經)'을 인용하여 충고한 데서 비롯된 말로 '백 리를 가려는 사람은 구십 리를 가고서 이제 절반쯤 왔다고 여긴다'는 뜻이다. 무슨 일이든 마무리가 중요하고 어려우므로 끝마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는 뜻을 나타내는 성어(成語)이며, ‘행백리자반구십(行百里者半九十)’, ‘행백리자반어구십(行百里者半於九十)’, ‘행백리자반구십리(行百里者半九十里)’라고도 한다.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진(秦) 무왕(武王, 재위 BC 310~BC 307)은 나라의 세력이 강성해지자 점차 자만심에 빠지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자 주(周) 난왕(赧王) 8년(기원전 307년)에 한 신하가 무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신(臣)은 왜 대왕이 제(齊)와 초(楚) 두 나라를 가벼이 여기고 한(韓)을 업신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왕자(王者)는 싸움에 이겨도 교만하지 않고, 패자(覇者)는 맹주가 되어도 쉽게 분노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기고도 교만하지 않기에 이웃나라가 복종하는 법입니다. 지금 대왕은 위(魏), 조(趙) 두 나라를 얻은 것에 만족하여 제(齊)를 잃은 것을 너무 가벼이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의양(宜陽) 싸움에서 승리한 뒤 초(楚)와의 국교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쉽게 분노를 드러낸 것입니다. 교만과 분노는 패왕(覇王)이 지녀야 할 바가 아닙니다.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시경(詩經)>에 ‘처음은 누구나 잘하지만 끝을 잘 마무리하는 사람은 적다(靡不有初 鮮克有終)’는 말이 있습니다. 선왕(先王)들은 시작과 끝을 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역사에는 처음에는 잘하다가도 끝마무리를 잘하지 못해 멸망한 경우가 많습니다. 춘추시대 말기 진(晉)에서 공경(公卿)들의 세력다툼이 일어났을 때 지백(智伯) 요(瑤)는 범(范)과 중행(中行)을 물리치고 조양자(趙襄子)를 진양(晋陽)에 몰아넣고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한(韓), 위(魏), 조(趙)의 연합군에게 멸망되어 비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오왕(吳王) 부차(夫差)도 회계(會稽)에서 월왕(越王) 구천(句踐)에게 항복을 받고 애릉(艾陵)에서 제(齊)를 대파하였지만, 황지(黃池)의 회맹(會盟)에서 송(宋)에 무례하게 굴다가 결국 구천(句踐)에게 사로잡혀 간수(干隨)에서 죽었습니다. 양혜왕(梁惠王)도 초(楚)와 제(齊) 두 나라를 물리치고, 조(趙)와 한(韓) 두 나라의 군사를 제압한 뒤 12제후(諸侯)를 이끌고 맹진(孟津)에서 천자(天子)에게 조회(朝會)하였지만, 결국 태자 신(申)은 죽고 자신은 제(齊)로 끌려가 억류되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공(功)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시작은 잘했지만 끝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그러한 종말을 맞이한 것입니다.

지금 대왕은 의양(宜陽)에서 승리하고 삼천(三川) 일대를 점령하면서 제후들로 하여금 감히 대항하지 못하게 하였고, 한(韓)과 초(楚) 두 나라의 군사들이 감히 진격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만일 대왕이 마무리만 잘하면 삼왕[三王, 중국 고대의 세 임금인 하(夏)의 우왕(禹王), 상(商)의 탕왕(湯王), 주(周)의 문왕(文王)을 가리킨다]과 나란히 사왕(四王)으로 칭송되고, 오백[五伯, 춘추 오패(五覇)를 가리킨다]이 육백(六伯)으로 되어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멸망의 화를 입을 것입니다. 신(臣)은 제후(諸侯)들과 선비들이 장차 대왕을 오왕(吳王) 부차(夫差)나 지백(智伯) 요(瑤)처럼 여기게 될까 두렵습니다. <시경(詩經)>에서는 ‘1백리를 가는 사람은 90리를 절반으로 여긴다[행백리자 반어구십(行百里者 半於九十)]’고 했습니다. 이는 마무리의 어려움을 말한 것입니다.

지금 대왕과 초왕(楚王)은 교만(驕慢)한 기색이 뚜렷합니다. 신(臣)이 생각건대 천하의 패업은 제후들의 선택에 따라 초(楚) 아니면 진(秦)이 반드시 병화(兵禍)를 입는 것으로 마무리될 것입니다. 진(秦), 위(魏), 초(楚), 한(韓) 네 나라의 병력은 균형을 이루고 있어 다시 싸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齊)와 송(宋) 두 나라가 저울추의 역할을 하게 되어 이들을 먼저 손에 넣는 쪽이 공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행백리자반구십’이란 말이 비롯되었으며, 일을 마치기 전에 교만하지 말고 끝마무리를 잘 지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나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이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행백리자반구십’은 마무리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성어(成語)라고 할 수 있다.


참조어

事貴作始 成功之半(사귀작시 성공지반)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을 한문으로 번역한 것

杏林春滿 (행림춘만)

杏林春滿(행림춘만)

杏 살구나무 행 | 林 수풀 림 | 春 봄 춘 | 滿 찰 만 |

'살구나무 숲(행림)에 봄이 가득하다'라는 뜻으로, 의술이 고명함을 칭송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동봉(董奉)과 관련된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Full apricot trees in spring


진(晋)나라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 동봉(董奉)편의 이야기다.

삼국(三國)시대, 오(吳)나라에 동봉이라는 명의(名醫)가 있었다. 그는 예장(豫章) 지방의 여산(廬山) 밑에 살면서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었다.

그의 집은 진찰 받으러 온 사람들로 하루 종일 붐볐으나, 그는 다른 의사들과는 달리 환자들로부터 치료비를 받지 않고, 완치된 후에는 살구나무를 심게 하였다. 중병이었던 사람은 다섯 그루, 병이 가벼웠던 사람은 한 그루를 심게 하였다. 몇 년후, 그의 집은 수십만 그루의 살구나무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그 살구나무 숲을 동선행림(董仙杏林)이라 했다.

동봉은 뭇 짐승들로 하여금 행림 안에서 놀게 하고 자신을 대신하여 행림을 지키게 하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살구가 익으면 곡식 한 바가지를 살구 한 바가지로 바꾸어 가되, 자신에게 알릴 필요는 없으며 자율적으로 하라고 일렀다. 때로 반 그릇의 쌀을 놓고 한 그릇의 살구를 슬쩍 따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럴 때면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포효하여 놀래켰다. 욕심 많은 사람은 허둥지둥 도망가느라 바가지에서 쌀을 적지 않게 흘리게 마련이었는데, 집에 돌아가서 살펴보면 살구의 양이 자신이 가지고 갔던 쌀의 양과 똑같았다.

동봉은 해마다 살구를 팔아 곡식으로 바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어느 날, 동봉은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는데, 인간 세상에 300여 년이나 머물렀으나 승천할 때 그의 용모는 30여 세의 젊음을 유지하였다. 杏林春滿이란 의술이 고명(高明)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葛洪(갈홍) 神仙傳(신선전) 董奉篇(동봉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杏林春暖(행림춘난) 행림에 봄이 따뜻하다 | 譽滿杏林(예만행림) 행림에 명예가 가득하다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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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害群之馬 (해군지마)

害群之馬(해군지마)

중국 고전 ‘장자’에 나오는 고사성어다. 황제가 현명한 목동에게 나라를 잘 다스리는 방법을 묻자 목동이 “‘말(言)을 듣지 않는 말(馬)’만 없애도 말 무리 전체가 편안해진다”고 답한데서 유래했다.

下筆成文 (하필성문, xiàbǐchéngwén)

下筆成文(하필성문)

下笔成文(xiàbǐchéngwén)

下 아래 하 | 筆 붓 필 | 成 이룰 성 | 文 글월 문 |


'붓을 들어 쓰기만 하면 문장이 이루어진다'라는 뜻으로, 뛰어난 글재주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시인 조식(曹植)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合浦珠還 (합포주환)

合浦珠還(합포주환)

合 합할 합/쪽문 합, 홉 홉 | 浦 개 포 | 珠 구슬 주 | 還 돌아올 환, 돌 선 |

합포(合浦)에 구슬이 다시 돌아왔다는 뜻으로, 지방(地方) 장관(長官)이 선정(善政)을 베풂을 이르는 말. 중국의 한(漢)나라 때 맹상(孟嘗)이라는 관리의 고사(故事)에서 유래.


후한서(後漢書) 맹상전(孟嘗傳)의 이야기.

중국 광서(廣西)지방의 합포(合浦)현은 지금의 광서장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합포현(合浦縣)의 북동쪽에 있는 지명이다. 합포는 농사는 잘 안 되었지만 바다에서 진주가 많이 채취되어, 주민들은 인근의 교지(交趾)와 진주를 교역하며 생활하였다. 합포에서 나는 진주는 둥글고 크며 빛깔이 순정하였으므로 사람들이 '합포주(合浦珠)'라고 부르며 귀하게 여겼다.

한(漢)나라 때, 합포군의 백성들은 모두 진주조개를 채취하여 생활을 하였으나, 합포에 부임한 관리들은 귀한 진주를 수탈하느라 주민들을 괴롭히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주민들은 진주를 캐 보아야 빼앗길 것이 뻔하므로 캐지 않게 되었고, 이리하여 채취량은 점점 줄어들었다. 양식을 바꿀 진주가 없어 주민들은 굶주림에 허덕였고, 굶어 죽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진주 조개들이 합포에서 살기 싫어 모두 월남땅으로 달아났네'라고 한탄하였다.

동한(東漢)의 순제(順帝)가 즉위하자, 곧 맹상을 합포의 태수로 파견하였다. 맹상은 먼저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불법행위를 엄단하여 진주 조개의 생산과 보호를 적극 지원하였다. 일년이 채 지나지 않아, 합포 바다에는 다시 진주 조개가 나타나고 생산량도 증가하였다. 이에 백성들은 모두 '떠났던 진주가 다시 돌아왔네[曾未踰歲, 去珠復還]'라고 말했다.

여기서 유래하여 합포주환은 물건이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오거나 떠나갔던 사람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 진귀한 물건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경우 등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순리열전(循吏列傳) | 후한서(後漢書) 맹상전(孟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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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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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含哺鼓腹 (함포고복)

含哺鼓腹(함포고복)

含哺鼓腹(hánbǔgǔfù)

음식(飮食)을 먹으며 배를 두드린다라는 뜻으로, 천하(天下)가 태평(太平)하여 즐거운 모양(模樣)

출전
십팔사략(十八史略)

涸澤之蛇 (학택지사)

涸澤之蛇(학택지사)

涸 마를 학 | 澤 못 택 | 之 갈 지 | 蛇 뱀 사 |

물 마른 연못의 뱀. 남을 교묘히 이용하여 함께 이익을 얻는 일.


한비자 설림(說林)편에 나오는 물이 말라버린 어느 연못에 사는 뱀의 이야기.

어느 여름 날 가뭄에 연못의 물이 말라버렸다. 그 속에 사는 뱀들은 다른 연못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이 때 연못에 사는 작은 뱀이 나서서 큰 뱀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앞장서고 내가 뒤 따라 가면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보통 뱀인 줄 알고 죽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저를 당신의 등에 태우고 가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은 조그만 내가 당신처럼 큰 뱀이 떠받드는 것을 보고 나를 아주 신성한 뱀, 즉 신군(神君)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워 아무런 해도 안 끼치고 오히려 떠받들 것입니다."

큰 뱀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뱀들은 당당히 사람들이 많은 길로 이동하였다.

사람들은 큰 뱀이 작은 뱀을 떠받드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하고 뱀들을 건들지 않았고, 결국 뱀들은 목적지까지 아무런 장애도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제(齊)나라 리더였던 전성자(田成子)가 위기에 빠져 정치적 목적으로 연(燕)나라로 갈 때 그의 부하였던 치이자피(鴟夷子皮)란 사람이 이 학택지사의 고사를 들어 자신이 모시던 전성자를 설득할 때 나온 이야기이다.

그는 이렇게 설득하였다.

"주군은 훌륭하시지만 저는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당신을 따른다면 남들은 당연한 일로 생각하겠지만, 주군처럼 훌륭하신 분이 저를 받들고 따르신다면 세상 사람들은 저의 지위를 짐작 못하고 모두 융숭한 대접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같이 훌륭한 사람이 받드는 사람에 대한 나의 신분은 상상이 안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성자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결국 이들 일행이 연나라에 들어갈 때 가는 곳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출전

한비자 설림(說林)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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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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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涸轍鮒魚 (학철부어)

涸轍鮒魚(학철부어)

涸 마를 후, 마를 학 | 轍 바퀴 자국 철 | 鮒 붕어 부 | 魚 물고기 어 |

수레바퀴 자국의 고인물에 있는 붕어라는 뜻으로, 몹시 곤궁(困窮)하거나 위급(危急)한 처지(處地)에 있는 사람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a fish in a dry rut-in extremities


장자(莊子) 외물(外物)편에는 다음과 같은 비유가 실려있다.

장주(莊周:장자)는 집이 가난하였다. 그래서 감하후(監河侯)에게 곡식을 빌리러 갔다. 장주에게 감하후가 말하였다.

"장차 내 봉읍(封邑)에서 사금을 받아들이려 하는데, 그것을 받아서 삼백 금쯤 꾸어 주겠소."

이에 장주가 화를 내며 안색을 고치고 말하였다.

"내 어제 이리로 올 때, 도중에 누가 부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수레바퀴 자국의 고인 물 속에 붕어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내가 그놈을 보고, '붕어야, 왜 그러느냐'하자, 붕어가 말하기를, '저는 동해의 파신(波臣)입니다. 어디서 한 말이나 한 되쯤 되는 물을 가져다가 저를 살려 주실 수 없겠습니까?'하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좋다. 나는 지금 남쪽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로 가서 시장[西江]의 물을 터놓아 너를 맞아가게 하겠다. 그래도 되겠느냐?'하였죠. 그러자 붕어가 화를 내고 안색을 고치며 말하기를, '저는 제가 있어야 할 물을 잃어, 지금 있을 곳이 없습니다. 저는 단지 한 말이나 한 되쯤 되는 물만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일찌감치 건어물(乾魚物) 가게로 가셔서 저를 찾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 속의 붕어와의 대화를 빌려, 부질없는 의문에 관심을 두지 말고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책을 마련하는 것이 인생의 제일의(第一義)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먼 물은 가까운 불을 끄지 못한다는 것과 같은 몹시 고단하고 옹색함에 대한 비유이다. 이 말은 철부지급(轍鮒之急), 학철지부(涸轍之鮒)라고도 한다.


출전

박택편(泊宅編), 장자(莊子) 외물편(外物篇)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枯魚之肆(고어지사) | 轍鮒之急(철부지급) | 涸轍鮒魚(학철부어) | 涸轍之鮒(학철지부) |

閒中眞味 (한중진미)

閒中眞味(한중진미)

한가한 가운데 깃드는 참된 멋

合從連衡 (합종연횡)

합종연횡 (合從連衡)

合 합할 합, 쪽문 합, 홉 홉 | 從 좇을 종 | 連 잇닿을 연 | 衡 저울대 형, 가로 횡 |


① 전국시대(戰國時代)에 행(行)해졌던 최강국인 진(秦)과 연(燕)·제(齊)·초(楚)·한(韓)·위(魏)·조(趙)의 6국 사이의 외교(外交)방식(方式)으로 합종책(合從策)과 연횡책(連衡策)을 말함 ② 약자(弱者)끼리 세로로 연합(聯合)하여 강자(强者)에게 대항(對抗)하거나, 약자(弱者)들이 가로로 나란히 서서 강자(强者)와 화해(和解)함


소진(蘇秦)의 합종설(合從說)과 장의(張儀)의 연횡설(連衡說), 곧 전국(戰國) 시대(時代)의 군사(軍事) 동맹(同盟)의 형태(形態)에서 유래.

BC 4세기 말 여러 나라를 유세하고 있던 소진(蘇秦)은 우선 연에게, 이어서 다른 5국에게 '진 밑에서 쇠꼬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닭의 머리가 되자'고 설득하여, 한위조연초제(韓魏趙燕楚齊) 6국을 종적(縱的)으로 연합시켜 서쪽의 강대한 진나라와 대결할 공수동맹을 맺도록 하였다. 이것을 합종(合從:從은 縱)이라 한다.

소진은 자신이 거쳐온 조나라를 시작으로 한, 위, 제, 초를 차례로 유세해 최종적으로 6국 동맹이라는 합종의 마지막 수순을 완성하였다. 소진 자신은 6국의 공동재상이 되어 각국을 돌며 강대국 진나라에 공동으로 맞서는 전략을 설파하고 다듬어 나갔다. 합종은 1강 독주체제를 막기 위한 전략이지만, 나머지 6국이 기본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예측불허의 변수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와해될 수 있는 심각한 취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뒤에 위나라 장의(張儀)는 합종은 일시적 허식에 지나지 않으며 진을 섬겨야 한다고, 6국을 돌며 연합할 것을 설득하여 진이 6국과 개별로 횡적 동맹을 맺는 데 성공하였다. 이것을 연횡(連衡:衡은 橫)이라고 한다.

장의의 연횡론은 진나라의 동방에 횡으로 늘어서 있는 6국을 각개 겨파해 최종적으로 천하를 통일한다는 전략이다. 철두철미하게 합종에 대응하는 전략으로 6국의 동맹을 와해시키는 것을 최종 목표로 했다. 장의의 연횡은 지극히 현실적인 전략이며, 궁극적으로는 6국의 소멸을 전제로 한 힘의 논리 그 자체였다.

결국 진은 합종을 타파한 뒤 6국을 차례로 멸망시켜 중국을 통일하였다.

[출전]
사기(史記) |


사기(史記) |

項莊舞劍意在沛公 (항장무검의재패공)

項莊舞劍 意在沛公(항장무검 의재패공)

项庄舞剑 意在沛公(XiàngZhuāngwǔjiàn yìzàiPèigōng)

項 목 항 | 莊 장엄할 장 | 舞 춤출 무 | 劍 칼 검 | 意 뜻 의 | 在 있을 재 | 沛 성한 모양 패 | 公 함께 공 |


다른 의도가 있다. 목적은 다른 데 있다.

汗牛充棟 (한우충동)

汗牛充棟(한우충동)

汗牛充栋(hànniúchōngdòng)

汗 땀 한, 현 이름 간 | 牛 소 우 | 充 채울 충 | 棟 마룻대 동 |

책이 매우 많음. 수레에 실어 운반(運搬)하면 소가 땀을 흘리게 되고, 쌓아올리면 들보에 닿을 정도(程度)의 양이라는 뜻으로, 장서(藏書)가 많음을 이르는 말

too many books to make the ox sweat or to fill the house to the rafters—an immense number of books


당나라의 명문가로 알려진 유종원(柳宗元)이 같은 시대의 역사학자 육문통을 위해 쓴 묘표(墓表)에 있는 말이다. 묘표란 죽은 사람의 사적과 덕행(德行)을 기리는 문장으로 돌에 새겨 무덤 앞에 세우는 것이다. "공자(孔子) '춘추'의 해석을 둘러싸고 1000명의 학자가 온갖 주석을 하고 있지만, 비뚤어진 해석이나 다른 학파에 대한 비난, 공격만이 눈에 띈다. 더욱이 그런 패거리들의 저작만이 세상(世上)에 횡행하고.「其爲書 處則充棟宇 出則汗牛馬 그 저서(著書)나 장서의 엄청남이란, 소장하면 건물을 꽉 메우고, 꺼내어 운반하게 되면 수레를 끄는 마소도 그 무게에 땀을 흘릴 정도다」라는 상태다. 한편 공자(孔子)의 본뜻에 합치한 학설은 세상(世上)에 묻힌 채로 있다."그는 학문계의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하고 한탄했다.

[출전]
유종원(柳宗元)의 육문통(陸文通) 묘표(墓表)


관련 한자어

같은 뜻을 가진 한자어 (유의어)

五車(오거) | 五車書(오거서) | 五車之書(오거지서) | 充棟(충동)


독서 |

下石上臺 (하석상대)

下石上臺(하석상대)

임시변통으로 이리저리 둘러 맞춤.

割席分坐 (할석분좌)

割席分坐(할석분좌)

割席分坐[gēxífēnzuò]

割 나눌 할, 벨 할 | 席 자리 석 | 分 나눌 분, 푼 푼 | 坐 앉을 좌 |

'자리를 잘라서 앉은 곳을 나누다'라는 뜻으로, 친구와 절교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한(漢)나라 말기의 관영(管寗)과 화흠(華歆)의 고사(故事)에서 유래


세설신어(世說新語) 덕행(德行)편에 실린 이야기다.

삼국시대, 위(魏)나라에 관녕(管寗)과 화흠(華歆)이라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어렸을 때 함께 공부하였지만, 성격은 크게 달랐다. 관영은 검소하고 학문을 즐겨 부귀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화흠은 언행이 가볍고 부귀영화를 흠모하였다.

한번은 두 사람이 함께 채소밭에서 김을 매는데 땅 속에서 금조각이 나왔다. 관영은 아무 일 없는 듯 호미질을 계속하였지만, 화흠은 그 금조각을 들고 나가 써 버렸다.

하루는 두 사람이 함께 한 돗자리를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때마침 멋있는 의관(衣冠)을 입은 높은 관리가 수레를 타고 지나갔다. 관녕은 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책을 읽었으나, 화흠은 곧 밖으로 나가 그 관리의 행차를 구경하고 돌아와서는 관영에게 그 행차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떠벌리며 부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

관녕은 화흠의 태도에 몹시 분노하였다. 그는 칼을 꺼내더니 함께 깔고 있던 돗자리를 반으로 자르고 따로 앉아, 자네는 이제 나의 친구가 아닐세 라고 말했다[寗割席分坐曰, 子非吾友也].

나중에 화흠은 한(漢)나라의 태수(太守)를 지내다가, 한때 오(吳)나라의 손책(孫策)의 휘하에서 일을 하였으며, 후에는 위나라의 조비(曹丕)를 도와 한나라를 찬탈하였다. 그러나 관녕은 위나라에서 내린 벼슬을 끝내 사양하였다.

割席分坐란 친한 사람과의 절교(絶交)를 비유한 말이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덕행(德行)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割席斷交(할석단교) | 割席絶交(할석절교) |

鶴首苦待 (학수고대)

鶴首苦待 (학수고대)

학의 목처럼 길게 늘여 기다린다는 뜻으로, 몹시 기다림

含沙射影 (함사사영)

含沙射影(함사사영)

含沙射影[hánshā-shèyǐng]

含 머금을 함 | 沙 모래 사, 봉황 사, 목 쉴 사 | 射 쏠 사, 벼슬 이름 야, 맞힐 석, 싫어할 역 | 影 그림자 영 |

'모래를 머금어 그림자를 쏜다'라는 뜻으로, 몰래 남을 공격(攻擊)하거나 비방(誹謗)하여 해(害)치는 것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to attack someone by innuendo; to make insinuations


동한(東漢)시대 서기 100년경에 허신(許愼)이 편찬한 설문해자(說文解字)의 훼부(-部)에는 전설 중의 괴물을 뜻하는 역(蜮, yù)이라는 글자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해설에 따르면, 역 이라는 괴물은 자라(鼈별)의 모습인데 다리는 셋 뿐이고, 입김을 쏘아 사람을 해친다고 한다.

청대(淸代)의 왕균(王筠)이라는 학자는 이 或자에 대하여 비교적 상세하게 주석을 달았다.

'역(蜮, yù)'은 단호(短狐 또는 短弧)·사공(射工)·사영(射影)·축영충(祝影蟲)·구창(拘槍)·수호(水狐)·수노(水弩)라고도 한다. 전설상의 동물로 등은 딱딱한 껍질로 되어 있고 머리에는 뿔이 있다. 날개가 있어 날 수 있다. 눈은 없으나 귀는 매우 밝다. 크기는 원숭이 만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래다고 하는 괴물로 사람들이 만나길 두려워했다.

진(晉)나라 때 간보(干寶)가 지은 《수신기(搜神記)》에 따르면, '역'은 강물에 살며, 입에 모래를 머금고 있다가 사람에게 내뿜을 수 있다[能含沙射人]. 사람이 그 모래에 맞으면 몸의 근육이 당기고 두통과 함께 열이 나는데, 심하면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사람들이 '역'을 잡아 살펴보니, 몸 속에서 모래와 돌이 나왔다고 한다.

역시 진나라 때 갈홍(葛洪)이 지은 《포박자(抱朴子)》에 따르면, '역'의 입 안에는 활처럼 생긴 것이 가로로 걸쳐 있다. 사람 소리를 들으면 입 안에 머금고 있는 것을 숨기운에 담아 화살처럼 쏘는데, 몸에 맞은 사람은 즉시 부스럼이 나고, 그림자에 맞더라도 병이 나지만 즉시 부스럼이 나지는 않는다[如聞人聲, 緣口中物如角弩, 以氣爲矢, 則因水而射人, 中人身者卽發瘡, 中影者亦病而不卽發瘡]고 하였다.

장화(張華)가 지은 《박물지(博物志)》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함사사영은 암암리에 남을 공격하거나 비방하는 일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수신기(搜神記), 설문해자(說文解字)

下馬碑 (하마비)

下馬碑(하마비)

下 아래 하 | 馬 말 마 | 碑 비석 비 |

그 앞을 지날 때에는 신분의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알린 푯돌

조선시대 종묘와 궐문 앞에 세워 놓은 비석으로 말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은 누구든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하마비는 또 왕이나 장군, 고관, 성현들의 출생지나 무덤앞에 세워 놓기도 했는데 이들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였다고 한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하마비 앞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라는 뜻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大小人員皆下馬(대소인원개하마) |

鶴立鷄群 (학립계군)

鶴立鷄群(학립계군)

鶴 학 학, 흴 학 | 立 설 립(입), 자리 위 | 鷄 닭 계 | 群 무리 군 |

닭이 많은 곳에 학이 서 있다는 뜻으로, 눈에 띄게 월등(越等)함을 이르는 말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편의 이야기다.

서진(西晉) 초기,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었던 혜강의 아들 혜연조는 인물이 준수하고 차림이 의젓하였다. 그가 진나라 혜제(惠帝)인 마충(馬衷)의 시중(侍中)으로 있을 때, 도성(都城)에 변란이 발생하였다. 당시 혜연조는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궁으로 달려갔다. 궁문을 지키던 시위(侍衛)가 그를 향해 활을 쏘려고 하였다. 그때 시위관은 혜연조의 늠름하고 준수한 모습을 보고 활을 거두라고 명령하였다.

혜강의 친구이자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서 사도(司徒)의 직을 지냈던 왕융(王戎)은 사태가 수습된 뒤에 한 부하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날 혼란스러운 사람들 속에서, 혜연조의 크고 늠름한 모습은 마치 닭들의 무리속에 서 있는 학처럼 위풍이 있어서, 실로 사람으로 하여금 존경심을 갖게 하였습니다.

鶴立鷄群는 군계일학(群鷄一鶴) 이라고도 하며, 재능이나 풍채가 출중한 인물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고사성어고(故事成語考) |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出衆(출중) | 錐處囊中(추처낭중) | 錐囊(추낭) | 絶倫(절윤) | 白眉(백미) | 拔群(발군) | 囊中之錐(낭중지추) | 群鷄一鶴(군계일학) | 鷄群一鶴(계군일학) | 鷄群孤鶴(계군고학)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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汗流浹背 (한류협배)

汗流浹背(한류협배)

汗 땀 한, 현 이름 간 | 流 흐를 류(유) | 浹 두루 미칠 협, 적실 협 | 背 등 배, 배반할 배 |

'땀이 흘러 등을 적시다'라는 뜻으로, ①극도(極度)로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②힘든 일을 하여 땀으로 흠뻑 젖은 모습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사기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의 이야기.

서한(西漢)시기, 한문제(漢文帝)는 자신이 즉위할 수 있도록 도와 준 태위 주발(周勃)을 우승상으로, 진평(陳平)을 좌승상으로 삼았다.

문제는 국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자, 어느 날 조회에서 우승상 주발에게 물었다.

"일 년 동안 전국에서 옥사를 판결하는 건수가 얼마인가?"

주발은 또 모르겠다고 사죄하였는데, 식은땀이 흘러 등을 적셨으며 황제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였다[勃又謝不知, 汗出沾背, 愧不能對]. 문제가 진평에게 같은 질문을 하니, 진평은 그와 같은 세세한 수치는 실무자에게 물어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조리 있게 답변하였다. 주발은 자신의 기지나 응대하는 방법이 진평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는 병을 핑계로 승상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여기서 유래하여 한류협배는 식은땀이 등을 적실 정도로 몹시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또는 힘든 일을 하여 땀으로 흠뻑 젖은 모습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출전

사기(史記)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汗出沾背(한출첨배)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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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亢龍有悔 (항룡유회)

亢龍有悔(항룡유회)

亢 오를 항 | 龍 용 룡 | 有 있을 유 | 悔 뉘우칠 회 |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이 내려갈 길밖에 없음을 후회한다는 뜻으로, 부귀영달이 극도에 달한 사람은 쇠퇴할 염려가 있으므로 행동을 삼가야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또는 욕심에 한계가 없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말은 《주역(周易)》 건괘(乾卦)의 육효(六爻)의 뜻을 설명한 '효사(爻辭)'에 나오는 말이다. 《주역》의 건괘는 용이 승천하는 기세로 왕성한 기운이 넘치는 남성적인 기상을 표현하고 있다. 《주역》에서는 특히 이 기운을 다루는 데 신중을 기하여 이 운세를 단계별로 용에 비유하고 있다. 그 첫 단계가 잠룡(潛龍)으로, 연못 깊숙이 잠복해 있는 용은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으므로 덕을 쌓으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다음은 현룡(現龍)으로, 땅 위로 올라와 자신을 드러내어 덕을 만천하에 펴서 군주의 신임을 받게 되니, 곧 때를 얻어 정당한 지위에 있으면서 중용의 도와 선을 행하며 덕을 널리 펴서 백성을 감화시키는 것이다. 그 다음은 비룡(飛龍)으로, 하늘을 힘차게 나는 용은 본 괘의 극치로서 제왕의 지위에 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여 절정의 경지에 이른 용이 바로 항룡(亢龍)인 것이다. 항룡은 하늘 끝까지 다다른 용으로, 곧 '승천한 용'인 셈이다. 그 기상이야 한없이 뻗쳐 좋지만 결국 하늘에 닿으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자(孔子)는 "항룡은 너무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존귀하나 지위가 없고, 너무 높아 교만하기 때문에 자칫 민심을 잃게 될 수도 있으며, 남을 무시하므로 보필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항룡의 지위에 오르면 후회하기 십상이므로, 이것이 바로 '항룡유회'라는 것이다. 즉, 일을 할 때에는 적당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지 무작정 밀고 나가다가는 오히려 일을 망치게 된다는 말이다. 요컨대 건괘는 변화에 순응할 것과 지위가 높을수록 겸손을 잃지 말 것을 강조하여, 스스로 분수를 알고 만족하는 삶이 양생에 이롭다는 교훈을 준다. 다음은 이러한 교훈을 잘 일깨워주는 이야기이다.

이사(李斯)는 진(秦)나라 때의 정치가로 시황제를 섬겨 재상이 된 사람이다. 그의 일족은 모두가 고위고관에 올라 최고의 권세와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어느 날, 이사가 축하연을 베푼 자리에 조정의 문무백관이 모두 참석해 축사를 올렸다. 그러자 이사는 깊이 탄식하며 "나는 일찍이 스승 순자(荀子)로부터 매사에 성(盛)함을 금하라고 가르침을 받았는데, 오늘날 우리 일족은 부귀와 영예가 모두 극도에 이르렀다. 달도 차면 기울듯이 영속을 기할 수 없는 법. 앞으로 나에게 닥쳐올 일이 두렵다"라고 말했다. 과연 그가 염려한 대로 그의 일족은 조고(趙高)의 참소로 몰살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한편, 항룡유회의 교훈을 일찍 깨닫고 지극한 영예를 스스로 멀리해 조용한 만년을 보낸 지혜로운 사람도 있다. 장량(張良)은 전한(前漢)의 고조(高祖)를 도와 공을 세운 개국공신이었다. 천하를 평정한 고조는 한나라 황실의 안녕을 위하여 전쟁에 공로가 있었던 여러 장수를 차례로 주살하여 뒷날의 걱정거리를 없앴다. 고조의 이러한 의중을 살핀 장량은 일체의 영예와 권력을 마다하고 시골에 운둔하는 삶을 선택하여 고조를 안심시키고 천수를 누렸다.

夏爐冬扇 (하로동선)

하로동선(夏爐冬扇)

夏 여름 하 | 爐 화로 로 | 冬 겨울 동 | 扇 부채 선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 곧 격이나 철에 맞지 않거나 쓸데 없는 사물을 비유하는 말.

邯鄲學步 (한단학보)

邯鄲學步(한단학보)

邯 땅 이름 감, 조나라 도읍 한 | 鄲 조나라 도읍 단 | 學 배울 학, 가르칠 교, 고지새 할 | 步 걸음 보 |

한단(邯鄲)에서 걸음걸이를 배운다는 뜻으로, 자기(自己)의 본분(本分)을 버리고 함부로 남의 흉내를 내다가 두 가지다 잃음을 이르는 말


장자(莊子) 추수(秋水)편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국(戰國)시대, 조(趙)나라의 한단(邯鄲) 사람들의 걷는 모습이 특별히 멋있었다고 한다. 연(燕)나라의 수릉(壽陵)이라는 곳에 살고 있던 한 청년은 한단 사람들의 걷는 모습을 배우기 위해 직접 한단에 갔다. 그는 매일 한단의 거리에서 사람들이 걷는 모습을 보면서 따라 하였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는 원래의 걷는 방법을 버리고, 걷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로 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한걸음 한걸음 발을 뗄 때마다, 발을 어떻게 들고 또 어떻게 놓는 지를 생각해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다리의 조화와 걸음의 폭 등에 대해서도 주의해야만 했다. 이렇다보니 그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몹시 힘이 들었다. 몇 달이 지났지만, 그는 한단 사람들의 걷는 법을 배울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원래 걷는 법마저도 잊어버리게 되었다. 결국, 그는 네발로 기어서 자기 나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邯鄲學步는 한단지보(邯鄲之步)라고도 하는데, 이는 자신의 본분을 잊고 남의 흉내를 내면 양쪽을 다 잃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장자(莊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邯鄲之步(한단지보) |

邯鄲之夢 (한단지몽)

邯鄲之夢 (한단지몽)

인간의 일생이란 한바탕의 꿈과 같이 허무함을 비유

割股啖腹 (할고담복)

割股啖腹(할고담복)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먹인다는 뜻으로, 결국 제 살을 깎아먹어 제 손해가 된다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