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起之秀(후기지수)
後 뒤 후, 임금 후 | 起 일어날 기 | 之 -의 지, 갈 지 | 秀 빼어날 수 |
후배(後輩) 중(中)의 뛰어난 인물(人物)을 이르는 말
세설신어 상예(賞譽)편의 이야기.
동진(東晋) 때, 왕침(王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미치광이 같은 행동은 어려서부터 소문이 나 있었다.
어느 날, 왕침이 삼촌인 범영(范寧)의 집에 갔는데, 마침 장현(張玄)이라는 사람이 와 있었다. 범영은 장현과 왕침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했다. 그러나 장현은 자리에 앉은채 왕침과는 인사도 하지 않았고, 왕침도 말을 하지 않고 나와버렸다. 범영은 왕침이 장현과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것을 꾸짖었다.
"저 사람은 학식이 높고 인품이 아주 훌륭한 사람이다. 그런데 너는 왜 인사를 하지 않았느냐?"
그러자 왕침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가 진정으로 저를 알고 싶어한다면, 스스로 저를 찾아올 것입니다."
범영은 왕침의 성격을 칭찬하며 말했다.
"너는 매우 희망이 있으니, 참으로 후배 중에서 뛰어난 인물이로다."
왕침은 말했다.
"삼촌 같으신 분이 안계셨다면, 이런 조카가 어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전해 들은 장현은 왕침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를 찾아왔다. 왕침도 그를 맞아들여 그들은 곧 좋은 친구가 되었다. 훗날 왕침은 형주자사(荊州刺史)를 맡아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여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後起之秀란 후배들 중의 우수한 인물 을 가리키는 말이다.
출전
세설신어 상예(賞譽)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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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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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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割席分坐 (할석분좌)
割席分坐(할석분좌)
割席分坐[gēxífēnzuò]
割 나눌 할, 벨 할 | 席 자리 석 | 分 나눌 분, 푼 푼 | 坐 앉을 좌 |
'자리를 잘라서 앉은 곳을 나누다'라는 뜻으로, 친구와 절교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한(漢)나라 말기의 관영(管寗)과 화흠(華歆)의 고사(故事)에서 유래
세설신어(世說新語) 덕행(德行)편에 실린 이야기다.
삼국시대, 위(魏)나라에 관녕(管寗)과 화흠(華歆)이라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어렸을 때 함께 공부하였지만, 성격은 크게 달랐다. 관영은 검소하고 학문을 즐겨 부귀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화흠은 언행이 가볍고 부귀영화를 흠모하였다.
한번은 두 사람이 함께 채소밭에서 김을 매는데 땅 속에서 금조각이 나왔다. 관영은 아무 일 없는 듯 호미질을 계속하였지만, 화흠은 그 금조각을 들고 나가 써 버렸다.
하루는 두 사람이 함께 한 돗자리를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때마침 멋있는 의관(衣冠)을 입은 높은 관리가 수레를 타고 지나갔다. 관녕은 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책을 읽었으나, 화흠은 곧 밖으로 나가 그 관리의 행차를 구경하고 돌아와서는 관영에게 그 행차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떠벌리며 부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
관녕은 화흠의 태도에 몹시 분노하였다. 그는 칼을 꺼내더니 함께 깔고 있던 돗자리를 반으로 자르고 따로 앉아, 자네는 이제 나의 친구가 아닐세 라고 말했다[寗割席分坐曰, 子非吾友也].
나중에 화흠은 한(漢)나라의 태수(太守)를 지내다가, 한때 오(吳)나라의 손책(孫策)의 휘하에서 일을 하였으며, 후에는 위나라의 조비(曹丕)를 도와 한나라를 찬탈하였다. 그러나 관녕은 위나라에서 내린 벼슬을 끝내 사양하였다.
割席分坐란 친한 사람과의 절교(絶交)를 비유한 말이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덕행(德行)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割席斷交(할석단교) | 割席絶交(할석절교) |
割席分坐[gēxífēnzuò]
割 나눌 할, 벨 할 | 席 자리 석 | 分 나눌 분, 푼 푼 | 坐 앉을 좌 |
'자리를 잘라서 앉은 곳을 나누다'라는 뜻으로, 친구와 절교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한(漢)나라 말기의 관영(管寗)과 화흠(華歆)의 고사(故事)에서 유래
세설신어(世說新語) 덕행(德行)편에 실린 이야기다.
삼국시대, 위(魏)나라에 관녕(管寗)과 화흠(華歆)이라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어렸을 때 함께 공부하였지만, 성격은 크게 달랐다. 관영은 검소하고 학문을 즐겨 부귀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화흠은 언행이 가볍고 부귀영화를 흠모하였다.
한번은 두 사람이 함께 채소밭에서 김을 매는데 땅 속에서 금조각이 나왔다. 관영은 아무 일 없는 듯 호미질을 계속하였지만, 화흠은 그 금조각을 들고 나가 써 버렸다.
하루는 두 사람이 함께 한 돗자리를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때마침 멋있는 의관(衣冠)을 입은 높은 관리가 수레를 타고 지나갔다. 관녕은 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책을 읽었으나, 화흠은 곧 밖으로 나가 그 관리의 행차를 구경하고 돌아와서는 관영에게 그 행차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떠벌리며 부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
관녕은 화흠의 태도에 몹시 분노하였다. 그는 칼을 꺼내더니 함께 깔고 있던 돗자리를 반으로 자르고 따로 앉아, 자네는 이제 나의 친구가 아닐세 라고 말했다[寗割席分坐曰, 子非吾友也].
나중에 화흠은 한(漢)나라의 태수(太守)를 지내다가, 한때 오(吳)나라의 손책(孫策)의 휘하에서 일을 하였으며, 후에는 위나라의 조비(曹丕)를 도와 한나라를 찬탈하였다. 그러나 관녕은 위나라에서 내린 벼슬을 끝내 사양하였다.
割席分坐란 친한 사람과의 절교(絶交)를 비유한 말이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덕행(德行)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割席斷交(할석단교) | 割席絶交(할석절교) |
鶴立鷄群 (학립계군)
鶴立鷄群(학립계군)
鶴 학 학, 흴 학 | 立 설 립(입), 자리 위 | 鷄 닭 계 | 群 무리 군 |
닭이 많은 곳에 학이 서 있다는 뜻으로, 눈에 띄게 월등(越等)함을 이르는 말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편의 이야기다.
서진(西晉) 초기,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었던 혜강의 아들 혜연조는 인물이 준수하고 차림이 의젓하였다. 그가 진나라 혜제(惠帝)인 마충(馬衷)의 시중(侍中)으로 있을 때, 도성(都城)에 변란이 발생하였다. 당시 혜연조는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궁으로 달려갔다. 궁문을 지키던 시위(侍衛)가 그를 향해 활을 쏘려고 하였다. 그때 시위관은 혜연조의 늠름하고 준수한 모습을 보고 활을 거두라고 명령하였다.
혜강의 친구이자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서 사도(司徒)의 직을 지냈던 왕융(王戎)은 사태가 수습된 뒤에 한 부하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날 혼란스러운 사람들 속에서, 혜연조의 크고 늠름한 모습은 마치 닭들의 무리속에 서 있는 학처럼 위풍이 있어서, 실로 사람으로 하여금 존경심을 갖게 하였습니다.
鶴立鷄群는 군계일학(群鷄一鶴) 이라고도 하며, 재능이나 풍채가 출중한 인물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고사성어고(故事成語考) |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出衆(출중) | 錐處囊中(추처낭중) | 錐囊(추낭) | 絶倫(절윤) | 白眉(백미) | 拔群(발군) | 囊中之錐(낭중지추) | 群鷄一鶴(군계일학) | 鷄群一鶴(계군일학) | 鷄群孤鶴(계군고학)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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鶴 학 학, 흴 학 | 立 설 립(입), 자리 위 | 鷄 닭 계 | 群 무리 군 |
닭이 많은 곳에 학이 서 있다는 뜻으로, 눈에 띄게 월등(越等)함을 이르는 말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편의 이야기다.
서진(西晉) 초기,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었던 혜강의 아들 혜연조는 인물이 준수하고 차림이 의젓하였다. 그가 진나라 혜제(惠帝)인 마충(馬衷)의 시중(侍中)으로 있을 때, 도성(都城)에 변란이 발생하였다. 당시 혜연조는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궁으로 달려갔다. 궁문을 지키던 시위(侍衛)가 그를 향해 활을 쏘려고 하였다. 그때 시위관은 혜연조의 늠름하고 준수한 모습을 보고 활을 거두라고 명령하였다.
혜강의 친구이자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서 사도(司徒)의 직을 지냈던 왕융(王戎)은 사태가 수습된 뒤에 한 부하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날 혼란스러운 사람들 속에서, 혜연조의 크고 늠름한 모습은 마치 닭들의 무리속에 서 있는 학처럼 위풍이 있어서, 실로 사람으로 하여금 존경심을 갖게 하였습니다.
鶴立鷄群는 군계일학(群鷄一鶴) 이라고도 하며, 재능이나 풍채가 출중한 인물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고사성어고(故事成語考) |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出衆(출중) | 錐處囊中(추처낭중) | 錐囊(추낭) | 絶倫(절윤) | 白眉(백미) | 拔群(발군) | 囊中之錐(낭중지추) | 群鷄一鶴(군계일학) | 鷄群一鶴(계군일학) | 鷄群孤鶴(계군고학)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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蒲柳之姿 (포류지자)
蒲柳之姿(포류지자)
蒲柳之姿[púliǔzhīzī]
蒲 부들 포 | 柳 버들 류(유) | 之 갈 지 | 姿 모양 자 |
갯버들 같은 모습이라는 뜻으로, 허약(虛弱)한 몸을 이르는 말
feel like a willow withering at the approach of autumn—suffer from poor health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편(言語篇)에 나오는 말로, '포류지질(蒲柳之質)'이라고도 한다.
고열(顧悅)은 동진(東晉) 사람으로 인품이 솔직하고 신의를 중히 여겼다. 343년에 은호(殷浩)가 건무장군(建武將軍)으로 양저우[揚州] 자사가 되자, 그는 고열을 차관으로 삼았다. 은호는 고열을 믿고 양저우 안의 모든 일을 그에게 맡겨 처리하게 했다. 고열은 그 신임에 감동하여 정무에 더욱 힘썼다. 이처럼 오랫동안 너무 과로한 탓에 고열은 건강을 해쳐 30대에 벌써 등이 굽고 머리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어느 날 간문제(簡文帝)가 자기와 같은 연배이면서도 머리가 하얗게 센 고열에게 '어째서 그렇게 나보다 먼저 백발이 되었는가'를 물었다.
고열은 다음과 같이 자신을 낮추어 대답했다.
"갯버들은 가을이 오면 먼저 잎이 떨어지고, 소나무와 잣나무는 서리를 맞고 더욱더 무성해지는 것과 같지요[蒲柳之姿 望秋而落 松栢之質 凌霜猶茂(포류지자 망추이락 송백지질 능상유무)]."
고열은 자신은 '포류지자(蒲柳之姿)', 간문제는 '송백지질(松栢之質)'에 현명하게 비유하면서, 황제의 건강한 모습에 신하인 자신은 먼저 시든다는 군신간의 예절까지 갖춘 멋진 대답을 했던 것이다. 고열은 몸이 허약해서 머리는 일찍 희어졌는지 몰라도 마음은 송백같이 곧아 권세에 아부하는 일이 없었다.
蒲柳란 물가에서 자라는 버들을 가리키며 수양(水楊) 또는 포양(蒲楊)이라고도 한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蒲柳之質(포류지질) |
반의어·상대어
松栢之質(송백지질) |
蒲柳之姿[púliǔzhīzī]
蒲 부들 포 | 柳 버들 류(유) | 之 갈 지 | 姿 모양 자 |
갯버들 같은 모습이라는 뜻으로, 허약(虛弱)한 몸을 이르는 말
feel like a willow withering at the approach of autumn—suffer from poor health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편(言語篇)에 나오는 말로, '포류지질(蒲柳之質)'이라고도 한다.
고열(顧悅)은 동진(東晉) 사람으로 인품이 솔직하고 신의를 중히 여겼다. 343년에 은호(殷浩)가 건무장군(建武將軍)으로 양저우[揚州] 자사가 되자, 그는 고열을 차관으로 삼았다. 은호는 고열을 믿고 양저우 안의 모든 일을 그에게 맡겨 처리하게 했다. 고열은 그 신임에 감동하여 정무에 더욱 힘썼다. 이처럼 오랫동안 너무 과로한 탓에 고열은 건강을 해쳐 30대에 벌써 등이 굽고 머리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어느 날 간문제(簡文帝)가 자기와 같은 연배이면서도 머리가 하얗게 센 고열에게 '어째서 그렇게 나보다 먼저 백발이 되었는가'를 물었다.
고열은 다음과 같이 자신을 낮추어 대답했다.
"갯버들은 가을이 오면 먼저 잎이 떨어지고, 소나무와 잣나무는 서리를 맞고 더욱더 무성해지는 것과 같지요[蒲柳之姿 望秋而落 松栢之質 凌霜猶茂(포류지자 망추이락 송백지질 능상유무)]."
고열은 자신은 '포류지자(蒲柳之姿)', 간문제는 '송백지질(松栢之質)'에 현명하게 비유하면서, 황제의 건강한 모습에 신하인 자신은 먼저 시든다는 군신간의 예절까지 갖춘 멋진 대답을 했던 것이다. 고열은 몸이 허약해서 머리는 일찍 희어졌는지 몰라도 마음은 송백같이 곧아 권세에 아부하는 일이 없었다.
蒲柳란 물가에서 자라는 버들을 가리키며 수양(水楊) 또는 포양(蒲楊)이라고도 한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蒲柳之質(포류지질) |
반의어·상대어
松栢之質(송백지질) |
七步之才 (칠보지재, qībùzhīcái)
七步之才(칠보지재)
七步之才(qībùzhīcái)
七 일곱 칠 | 步 걸음 보 | 之 갈 지 | 才 재주 재 |
일곱 걸음을 옮기는 사이에 시를 지을 수 있는 재주라는 뜻으로, 아주 뛰어난 글재주를 이르는 말.
七步之才(qībùzhīcái)
七 일곱 칠 | 步 걸음 보 | 之 갈 지 | 才 재주 재 |
일곱 걸음을 옮기는 사이에 시를 지을 수 있는 재주라는 뜻으로, 아주 뛰어난 글재주를 이르는 말.
竹馬之友 (죽마지우, zhúmǎzhīyǒu)
竹馬之友(죽마지우)
竹马之友(zhúmǎ zhī yǒu)
竹 대 죽 | 馬 말 마 | 之 의 지 | 友 벗 우 |
죽마를 타던 옛 친구라는 뜻으로, 소꿉동무를 이르는 말.
《세설신어(世說新語)》〈품조편(品藻篇)〉과 《진서(晉書)》〈은호전(殷浩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진(晉)나라의 은호는 성품이 온후(溫厚)하였으며, 학문 또한 박학(博學)하였다. 젊어서 《노자(老子)》와 《역경(易經)》을 즐겨 읽었으며, 벼슬이 싫어 조상의 무덤을 십여 년째 지켰다. 그러나 당시 간문제(簡文帝)는 연거푸 공신을 잃는 변을 당해 현신(賢臣)을 찾던 중, 은일(隱逸)하던 은호에게 간청하였다. 결국 은호는 청을 이기지 못하고 건무장군(建武將軍) 양주자사(揚州刺史)가 되어 조정에 나아갔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촉(蜀)을 평정하고 돌아와 세력이 커지고 있던 환온(桓溫)을 견제하려던 간문제의 계책이었다. 결국 은호와 환온은 서로 반목하게 되었다. 왕희지(王羲之)가 나서서 둘 사이에 화해를 주선하였으나 은호가 거절하였다. 이 무렵, 5호16국(五胡十六國)의 하나인 후조(後趙)의 왕 석계룡(石季龍)이 죽자 호족(胡族) 간에 내분이 일어났다. 진나라는 이 기회를 이용해 중원을 회복하려 하였으며, 은호가 오주군사(五州軍事)로 출병하였다.
그러나 출병에 앞서 은호가 낙마를 하는 바람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대패하였다. 이것을 두고 환온이 은호를 규탄하는 상소를 올려 서인(庶人)에 강등시키고 변방으로 귀양을 보냈다. 그런 다음 환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은호는 어려서 나와 함께 죽마를 타고 놀던 친구다. 내가 죽마를 버리면 언제나 은호가 가지고 갔다. 그러니 그가 내 밑에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결국 은호는 변방의 귀양지에서 생을 마쳤다. 죽마는 대나무로 만든 말로, 아이들의 장난감이다. 죽마지우는 어릴 때의 친구, 즉 소꿉동무를 말한다.
이와 비슷한 말로 기죽지교(騎竹之交), 죽마지호(竹馬之好) 등이 있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竹馬故友(죽마고우) | 騎竹之交(기죽지교) | 竹馬之好(죽마지호)
참조어
肝膽相照(간담상조) |
芝蘭之交(지란지교) |
世說新語, 세설신어, 晉書, 진서, 벗[friend], 우정, 친구 |
竹马之友(zhúmǎ zhī yǒu)
竹 대 죽 | 馬 말 마 | 之 의 지 | 友 벗 우 |
죽마를 타던 옛 친구라는 뜻으로, 소꿉동무를 이르는 말.
《세설신어(世說新語)》〈품조편(品藻篇)〉과 《진서(晉書)》〈은호전(殷浩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진(晉)나라의 은호는 성품이 온후(溫厚)하였으며, 학문 또한 박학(博學)하였다. 젊어서 《노자(老子)》와 《역경(易經)》을 즐겨 읽었으며, 벼슬이 싫어 조상의 무덤을 십여 년째 지켰다. 그러나 당시 간문제(簡文帝)는 연거푸 공신을 잃는 변을 당해 현신(賢臣)을 찾던 중, 은일(隱逸)하던 은호에게 간청하였다. 결국 은호는 청을 이기지 못하고 건무장군(建武將軍) 양주자사(揚州刺史)가 되어 조정에 나아갔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촉(蜀)을 평정하고 돌아와 세력이 커지고 있던 환온(桓溫)을 견제하려던 간문제의 계책이었다. 결국 은호와 환온은 서로 반목하게 되었다. 왕희지(王羲之)가 나서서 둘 사이에 화해를 주선하였으나 은호가 거절하였다. 이 무렵, 5호16국(五胡十六國)의 하나인 후조(後趙)의 왕 석계룡(石季龍)이 죽자 호족(胡族) 간에 내분이 일어났다. 진나라는 이 기회를 이용해 중원을 회복하려 하였으며, 은호가 오주군사(五州軍事)로 출병하였다.
그러나 출병에 앞서 은호가 낙마를 하는 바람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대패하였다. 이것을 두고 환온이 은호를 규탄하는 상소를 올려 서인(庶人)에 강등시키고 변방으로 귀양을 보냈다. 그런 다음 환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은호는 어려서 나와 함께 죽마를 타고 놀던 친구다. 내가 죽마를 버리면 언제나 은호가 가지고 갔다. 그러니 그가 내 밑에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결국 은호는 변방의 귀양지에서 생을 마쳤다. 죽마는 대나무로 만든 말로, 아이들의 장난감이다. 죽마지우는 어릴 때의 친구, 즉 소꿉동무를 말한다.
이와 비슷한 말로 기죽지교(騎竹之交), 죽마지호(竹馬之好) 등이 있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竹馬故友(죽마고우) | 騎竹之交(기죽지교) | 竹馬之好(죽마지호)
참조어
肝膽相照(간담상조) |
芝蘭之交(지란지교) |
世說新語, 세설신어, 晉書, 진서, 벗[friend], 우정, 친구 |
煮豆燃豆萁 (자두연두기)
煮豆燃豆萁(자두연두기)
煮 삶을 자 | 豆 콩 두 | 燃 사를 연 | 豆 콩 두 | 萁 콩깍지 기 |
콩을 삶는 데 콩깍지를 태운다는 뜻으로, 골육인 형제가 서로 다투어 괴롭히고 죽이려 함을 비유한 말.
형제간에 서로 다투고 서로 죽이려 하는 것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이 말은 조식(曹植)이 지은 '칠보지시(七步之詩)'에서 유래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편(文學篇)〉에 전한다.
삼국지(三國志)의 영웅 조조(曹操)는 맏아들 조비와 셋째 아들 조식과 더불어 문장이 뛰어나 삼조(三曹)라 하여 건안문학(建安文學)을 꽃피운 문사였다. 이 가운데 조식은 뛰어난 문재(文才)로 조조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조조가 맏아들 조비를 젖히고 이 조식에게 제위를 넘길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따라서 조비에게는 항상 조식을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다. 제위는 결국 조비에게 돌아가서 위(魏)나라의 문제가 되었으나 이러한 마음은 계속되었다.
어느 날 조비는 조식을 불러 일곱 자국을 내딛는 동안 시를 한 수 지으라 하였다. 만약 그러지 못할 경우 국법으로 처리하겠다고 하였다. 조식은 그 즉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읊어 조비가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했다.
煮豆燃豆萁 (자두연두기) 콩을 삶는데 콩깍지를 때니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콩이 솥 안에 있어 운다.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본래 이들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는데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서로 삶기를 어찌하여 급하게 구는가.
이후 사람들은 형제간에 서로 다투는 것을 두고는 흔히 이 고사를 인용하였다. 그리고 아주 뛰어난 문학적 재능이 있는 사람은 칠보지재(七步之才)라 불렀으며, 뛰어난 문학 작품을 칠보시(七步詩)라 하였다. 이와 유사한 말로 골육상쟁(骨肉相爭)이 있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煮豆燃萁(자두연기) | 骨肉相爭(골육상쟁) |
참조어
七步之才(칠보지재, qībùzhīcái) | 下筆成文(하필성문) | 下笔成章(xiàbǐchéngzhāng) | 才占八斗(재점팔두) |
관련 한시
七步之詩(칠보지시) |
세설신어, 世說新語, 세설신어:문학편, 世說新語:文學篇, 조식, 曹植 |
煮 삶을 자 | 豆 콩 두 | 燃 사를 연 | 豆 콩 두 | 萁 콩깍지 기 |
콩을 삶는 데 콩깍지를 태운다는 뜻으로, 골육인 형제가 서로 다투어 괴롭히고 죽이려 함을 비유한 말.
형제간에 서로 다투고 서로 죽이려 하는 것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이 말은 조식(曹植)이 지은 '칠보지시(七步之詩)'에서 유래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편(文學篇)〉에 전한다.
삼국지(三國志)의 영웅 조조(曹操)는 맏아들 조비와 셋째 아들 조식과 더불어 문장이 뛰어나 삼조(三曹)라 하여 건안문학(建安文學)을 꽃피운 문사였다. 이 가운데 조식은 뛰어난 문재(文才)로 조조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조조가 맏아들 조비를 젖히고 이 조식에게 제위를 넘길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따라서 조비에게는 항상 조식을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다. 제위는 결국 조비에게 돌아가서 위(魏)나라의 문제가 되었으나 이러한 마음은 계속되었다.
어느 날 조비는 조식을 불러 일곱 자국을 내딛는 동안 시를 한 수 지으라 하였다. 만약 그러지 못할 경우 국법으로 처리하겠다고 하였다. 조식은 그 즉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읊어 조비가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했다.
煮豆燃豆萁 (자두연두기) 콩을 삶는데 콩깍지를 때니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콩이 솥 안에 있어 운다.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본래 이들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는데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서로 삶기를 어찌하여 급하게 구는가.
이후 사람들은 형제간에 서로 다투는 것을 두고는 흔히 이 고사를 인용하였다. 그리고 아주 뛰어난 문학적 재능이 있는 사람은 칠보지재(七步之才)라 불렀으며, 뛰어난 문학 작품을 칠보시(七步詩)라 하였다. 이와 유사한 말로 골육상쟁(骨肉相爭)이 있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煮豆燃萁(자두연기) | 骨肉相爭(골육상쟁) |
참조어
七步之才(칠보지재, qībùzhīcái) | 下筆成文(하필성문) | 下笔成章(xiàbǐchéngzhāng) | 才占八斗(재점팔두) |
관련 한시
七步之詩(칠보지시) |
세설신어, 世說新語, 세설신어:문학편, 世說新語:文學篇, 조식, 曹植 |
一木難支 (일목난지)
一木難支(일목난지)
一 한 일 | 木 나무 목 | 難 어려울 난 | 支 지탱할 지 |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유의경(劉義慶)이 쓴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편(任誕篇)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실려 있다.
위(魏)나라 명제(明帝)의 사위인 임개(任愷)는 가충(賈充)이라는 사람과의 불화로 그만 면직당하고 말았다. 그는 권세를 잃게 되자, 자신을 돌보지 않고 무절제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에 어떤 사람이 임개의 친구인 화교(和嶠)에게 말하길 "당신은 어찌 친구인 임개의 방탕함을 보고도 구하지 않고 좌시만 하는거요?"라고 물었다.
중서령(中書令)을 지냈던 화교는 "임개의 방탕은 마치 북하문(北夏門)이 무너질 때와 같아서 나무 기둥 하나로 떠받쳐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오(非一木所能支)."라고 대답하였다.
一木難支는 一柱難支(일주난지)라고도 하는데, 이는 큰 집이 무너지는 것을 나무 기둥 하나로 떠받치지 못하듯 이미 기울어지는 대세를 혼자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음 을 비유한 것이다.
一 한 일 | 木 나무 목 | 難 어려울 난 | 支 지탱할 지 |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유의경(劉義慶)이 쓴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편(任誕篇)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실려 있다.
위(魏)나라 명제(明帝)의 사위인 임개(任愷)는 가충(賈充)이라는 사람과의 불화로 그만 면직당하고 말았다. 그는 권세를 잃게 되자, 자신을 돌보지 않고 무절제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에 어떤 사람이 임개의 친구인 화교(和嶠)에게 말하길 "당신은 어찌 친구인 임개의 방탕함을 보고도 구하지 않고 좌시만 하는거요?"라고 물었다.
중서령(中書令)을 지냈던 화교는 "임개의 방탕은 마치 북하문(北夏門)이 무너질 때와 같아서 나무 기둥 하나로 떠받쳐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오(非一木所能支)."라고 대답하였다.
一木難支는 一柱難支(일주난지)라고도 하는데, 이는 큰 집이 무너지는 것을 나무 기둥 하나로 떠받치지 못하듯 이미 기울어지는 대세를 혼자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음 을 비유한 것이다.
人琴俱亡 (인금구망)
人琴俱亡(인금구망)
人琴俱亡[rénqínjùwáng]
人 사람 인 | 琴 거문고 금 | 俱 함께 구, 갖출 구 | 亡 죽을 망, 없을 무 |
사람의 죽음을 몹시 슬퍼함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The man and his lute are both dead (a lament for the death of a friend).
세설신어(世說新語) 상서(傷逝)편에는 죽음에 대한 애상(哀傷)을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동진(東晉)의 유명한 서예가인 왕희지(王羲之)의 다섯째 아들 왕휘지(王徽之 : 字는 子猷)와 일곱째 아들 왕헌지(王獻之 : 字는 子敬) 형제가 모두 병에 걸렸다. 동생인 자경이 먼저 세상(世上)을 떠나자 형 자요는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찌 자경의 소식은 없는 것입니까? 그 얘가 이미 죽은 게 아닙니까?"
그러나 자요는 조금도 슬퍼하거나 울지는 않았다.
자요는 즉시 수레를 타고 동생의 빈소로 달려가서는 동생의 관(棺) 위에 올라가 동생이 평소에 좋아하던 거문고를 꺼내들고 타보았으나 거문고가 소리를 내지 않자, 이를 내던지며 한참동안이나 애통해 했다.
"자경아, 자경아, 너와 거문고가 함께 죽었구나[子敬, 子敬, 人琴俱亡]"
한 달쯤 지나 형 자요도 그만 세상을 떠났다.
人琴俱亡은 인금병절(人琴幷絶)이라고도 하며,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哀悼)의 정(情)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상서(傷逝) | 晋書(진서)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睹物思人(도물사인, dǔwùsīrén) | 人琴幷絶(인금병절) | 人琴之歎(인금지탄) |
반의어·상대어
无动于衷(무동우충, wúdòngyúzhōng) |
人琴俱亡[rénqínjùwáng]
人 사람 인 | 琴 거문고 금 | 俱 함께 구, 갖출 구 | 亡 죽을 망, 없을 무 |
사람의 죽음을 몹시 슬퍼함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The man and his lute are both dead (a lament for the death of a friend).
세설신어(世說新語) 상서(傷逝)편에는 죽음에 대한 애상(哀傷)을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동진(東晉)의 유명한 서예가인 왕희지(王羲之)의 다섯째 아들 왕휘지(王徽之 : 字는 子猷)와 일곱째 아들 왕헌지(王獻之 : 字는 子敬) 형제가 모두 병에 걸렸다. 동생인 자경이 먼저 세상(世上)을 떠나자 형 자요는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찌 자경의 소식은 없는 것입니까? 그 얘가 이미 죽은 게 아닙니까?"
그러나 자요는 조금도 슬퍼하거나 울지는 않았다.
자요는 즉시 수레를 타고 동생의 빈소로 달려가서는 동생의 관(棺) 위에 올라가 동생이 평소에 좋아하던 거문고를 꺼내들고 타보았으나 거문고가 소리를 내지 않자, 이를 내던지며 한참동안이나 애통해 했다.
"자경아, 자경아, 너와 거문고가 함께 죽었구나[子敬, 子敬, 人琴俱亡]"
한 달쯤 지나 형 자요도 그만 세상을 떠났다.
人琴俱亡은 인금병절(人琴幷絶)이라고도 하며,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哀悼)의 정(情)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상서(傷逝) | 晋書(진서)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睹物思人(도물사인, dǔwùsīrén) | 人琴幷絶(인금병절) | 人琴之歎(인금지탄) |
반의어·상대어
无动于衷(무동우충, wúdòngyúzhōng) |
吳牛喘月 (오우천월)
吳牛喘月(오우천월)
吳 나라이름 오, 성씨 오, 큰소리칠 화 | 牛 소 우 | 喘 숨찰 천 | 月 달 월 |
더운 오나라의 소는 달만 보고도 해인 줄 알고 지레 겁을 먹어 숨을 헐떡거린다는 데서 나온 말.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편(言語編)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진(晋)의 2대 황제인 혜제 때 사마염(司馬炎)의 상서령(尙書令)으로 만분(滿奮)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무제 때에는 전부터 발명되었던 유리를 창문에 이용하고 있었으나, 유리는 당시 보석처럼 귀중한 물건이어서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어느 날 만분이 무제와 같이 앉아 있는데 마침 북쪽 창이 훤히 비치는 유리병풍으로 둘러처져 있었다. 원래 기질이 약해 조금만 바람을 쐬도 감기에 자주 걸려 바람을 두려워했던 만분은, 틈이 없어 바람이 새지 않는데도 난색을 표했다. 왕이 이를 보고 웃자 만분은 말했다.
“남쪽 오(吳)나라의 물소들은 더위를 매우 싫어하여, 여름이 되면 물속에 들어가 놀거나 나무 그늘에서 쉬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입니다. 어쩌다 밤에 밝은 달을 보게 되면 그것이 태양인줄 알고 곧 숨을 헐떡이게 됩니다. 저는 마치 남쪽의 소가 달만 보아도 헐떡이는 것과 같습니다[臣猶吳牛 見月而喘].”
평생 유리창을 본 적이 없는 그가 휑하니 뚫린 북쪽창을 보고 겁을 먹는 것을 보고 내막을 아는 왕이 그것을 보고 웃자, 황공해진 만분이 왕에게 자신을 오나라의 소에게 비유한 것이다. 같은 의미로 쓰이는 우리 속담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보아도 놀란다’가 있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편(言語編)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懲羹吹虀(징갱취제) | 傷弓之鳥(상궁지조) | 傷弓之鳥(상국지조) | 驚弓之鳥(경궁지조)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보아도 놀란다 (한국속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吳 나라이름 오, 성씨 오, 큰소리칠 화 | 牛 소 우 | 喘 숨찰 천 | 月 달 월 |
더운 오나라의 소는 달만 보고도 해인 줄 알고 지레 겁을 먹어 숨을 헐떡거린다는 데서 나온 말.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편(言語編)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진(晋)의 2대 황제인 혜제 때 사마염(司馬炎)의 상서령(尙書令)으로 만분(滿奮)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무제 때에는 전부터 발명되었던 유리를 창문에 이용하고 있었으나, 유리는 당시 보석처럼 귀중한 물건이어서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어느 날 만분이 무제와 같이 앉아 있는데 마침 북쪽 창이 훤히 비치는 유리병풍으로 둘러처져 있었다. 원래 기질이 약해 조금만 바람을 쐬도 감기에 자주 걸려 바람을 두려워했던 만분은, 틈이 없어 바람이 새지 않는데도 난색을 표했다. 왕이 이를 보고 웃자 만분은 말했다.
“남쪽 오(吳)나라의 물소들은 더위를 매우 싫어하여, 여름이 되면 물속에 들어가 놀거나 나무 그늘에서 쉬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입니다. 어쩌다 밤에 밝은 달을 보게 되면 그것이 태양인줄 알고 곧 숨을 헐떡이게 됩니다. 저는 마치 남쪽의 소가 달만 보아도 헐떡이는 것과 같습니다[臣猶吳牛 見月而喘].”
평생 유리창을 본 적이 없는 그가 휑하니 뚫린 북쪽창을 보고 겁을 먹는 것을 보고 내막을 아는 왕이 그것을 보고 웃자, 황공해진 만분이 왕에게 자신을 오나라의 소에게 비유한 것이다. 같은 의미로 쓰이는 우리 속담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보아도 놀란다’가 있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편(言語編)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懲羹吹虀(징갱취제) | 傷弓之鳥(상궁지조) | 傷弓之鳥(상국지조) | 驚弓之鳥(경궁지조)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보아도 놀란다 (한국속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阿堵物 (아도물)
아도물(阿堵物)
阿 언덕 아 | 賭 걸 도 | 物 만물 물
이 물건이라는 말로, 돈을 가리킨다. 중국 진(晉),송(宋)의 속어로, 돈을 달리 이르는 말.
위진시대(魏晉時代) 왕이보(王夷甫)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 사람인 왕융의 사촌동생이다. 왕이보는 성격이 고아하여 세속적인 일보다는 청담(淸談)하기를 좋아하였다. 이런 성격 탓인지, 흉노가 진나라 도읍 낙양(落陽)을 쳐들어왔을 때도 싸움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왕이보의 아내는 재주가 낮고 성격이 강퍅했으며 재물을 모으는 일을 크나큰 기쁨으로 알고 사는 그런 여자였다. 게다가 남편의 일에 간섭이 심했다. 왕이보는 이를 근심만 했지 어떻게 막을 길이 없었다. 이 때 왕이보와 같은 고향 출신인 유주자사 이양이 서울에서 유협을 이끌고 있었다. 왕이보의 아내도 이양만은 두려워했다.
그래서 왕이보는 아내를 달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나만 당신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양도 역시 당신의 하는 일을 지나치다고 보고 있소."
한번은 왕이보가 한번도 입으로 '돈'자를 내뱉어 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돈만 좋아하는 아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자, 부인을 이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여종을 시켜서 그가 잠든 사이 돈을 가져다가 침대 둘레에 뿌려 막아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왕이보는 잠에서 깨어 보니 돈에 막혀 나갈 수 없게 되자, 여종을 불러 소리쳤다.
"어서 이 물건(阿堵物)을 치워라!"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규잠(規箴) 편
阿 언덕 아 | 賭 걸 도 | 物 만물 물
이 물건이라는 말로, 돈을 가리킨다. 중국 진(晉),송(宋)의 속어로, 돈을 달리 이르는 말.
위진시대(魏晉時代) 왕이보(王夷甫)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 사람인 왕융의 사촌동생이다. 왕이보는 성격이 고아하여 세속적인 일보다는 청담(淸談)하기를 좋아하였다. 이런 성격 탓인지, 흉노가 진나라 도읍 낙양(落陽)을 쳐들어왔을 때도 싸움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왕이보의 아내는 재주가 낮고 성격이 강퍅했으며 재물을 모으는 일을 크나큰 기쁨으로 알고 사는 그런 여자였다. 게다가 남편의 일에 간섭이 심했다. 왕이보는 이를 근심만 했지 어떻게 막을 길이 없었다. 이 때 왕이보와 같은 고향 출신인 유주자사 이양이 서울에서 유협을 이끌고 있었다. 왕이보의 아내도 이양만은 두려워했다.
그래서 왕이보는 아내를 달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나만 당신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양도 역시 당신의 하는 일을 지나치다고 보고 있소."
한번은 왕이보가 한번도 입으로 '돈'자를 내뱉어 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돈만 좋아하는 아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자, 부인을 이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여종을 시켜서 그가 잠든 사이 돈을 가져다가 침대 둘레에 뿌려 막아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왕이보는 잠에서 깨어 보니 돈에 막혀 나갈 수 없게 되자, 여종을 불러 소리쳤다.
"어서 이 물건(阿堵物)을 치워라!"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규잠(規箴) 편
望梅解渴 (망매해갈)
望梅解渴(망매해갈)
望 바랄 망 | 梅 매화나무 매 | 解 풀 해 | 渴 목마를 갈 |
세설신어(世說新語) 가휼(假譎)편에는 조조(曹操)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위(魏)나라 문제(文帝)의 일화가 실려 있다.
동한(東漢) 말엽에, 조조는 군대를 통솔하여 장수(張繡)를 정벌하러 나섰다. 행군 도중 날씨가 너무 더워 병사들은 지치고 심한 갈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마실 물을 찾지 못해 진군을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조는 한참 생각하다가 묘책이 떠올랐는지 병사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외쳤다. 조금나 더 가면 앞에 큰 매화나무 숲이 있다[前有大梅林]. 열매도 많이 달려 있는데, 그 맛은 달고도 새콤하다. 이제 갈증을 풀 수 있을 것이다[可以解渴].
병사들은 매화가 있다는 말에 입안에 곧 침이 돌았다. 모두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전진하였는데, 얼마가지 않아 물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望梅解渴(매실을 생각하며 갈증을 풀다)은 望梅止渴(망매지갈), 梅林解渴(매림해갈)이라고도 한다. 이는 공상으로 잠시 동안의 평안과 위안을 얻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望梅解渴(망매해갈) | 望梅止渴(망매지갈) | 梅林解渴(매림해갈) |
望 바랄 망 | 梅 매화나무 매 | 解 풀 해 | 渴 목마를 갈 |
세설신어(世說新語) 가휼(假譎)편에는 조조(曹操)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위(魏)나라 문제(文帝)의 일화가 실려 있다.
동한(東漢) 말엽에, 조조는 군대를 통솔하여 장수(張繡)를 정벌하러 나섰다. 행군 도중 날씨가 너무 더워 병사들은 지치고 심한 갈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마실 물을 찾지 못해 진군을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조는 한참 생각하다가 묘책이 떠올랐는지 병사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외쳤다. 조금나 더 가면 앞에 큰 매화나무 숲이 있다[前有大梅林]. 열매도 많이 달려 있는데, 그 맛은 달고도 새콤하다. 이제 갈증을 풀 수 있을 것이다[可以解渴].
병사들은 매화가 있다는 말에 입안에 곧 침이 돌았다. 모두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전진하였는데, 얼마가지 않아 물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望梅解渴(매실을 생각하며 갈증을 풀다)은 望梅止渴(망매지갈), 梅林解渴(매림해갈)이라고도 한다. 이는 공상으로 잠시 동안의 평안과 위안을 얻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望梅解渴(망매해갈) | 望梅止渴(망매지갈) | 梅林解渴(매림해갈) |
道傍苦李 (도방고리)
道傍苦李(도방고리)
道 길 도 | 傍 곁 방 | 苦 쓸 고, 땅 이름 호 | 李 오얏 리(이), 성씨 리(이) |
길가에 있는 쓴 자두 열매라는 뜻으로, ①남에게 버림받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또는, ②많은 사람이 무시하는 것은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는 뜻.
진서(晉書) 왕융전(王戎傳)과 육조시대 송(宋)나라 유의경(劉義慶)이 지은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오는 이야기.
동진(東晉)의 왕융(王戎, 서기 234-305년)은 노장사상에 심취하여 예교(禮敎)를 방패로 권세를 잡으려는 세태에 저항하였다. 평생을 죽림에 묻혀 유유자적하며 청담(淸談)을 즐겨 완적(阮籍), 혜강(嵆康) 등과 함께 죽림칠현으로 불렸다. 이러한 왕융이 일곱 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그는 동네의 아이들과 놀다가 문득 길가의 자두나무에 가지가 휘어지게 많은 자두가 달려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은 그것을 따려고 앞다투어 그 나무로 달려갔으나, 왕융만은 그 자리에 가만 있었다.
그때 길을 가던 어떤 사람이 왕융에게 물었다.
"얘야, 너는 왜 따러가지 않고 서 있는 거냐?"
그러자 왕융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무가 길 가에 있는데도 열매가 저렇게 많이 달려있다는 것은 틀림없이 써서 먹지 못하는 자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들이 그 자두를 따서 맛을 보니 과연 왕융의 말처럼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일로 사람들은 왕융의 영민함을 칭찬하면서도 일면 두려워하였다 한다.
도방고리란 이와 같이 쓸 데가 없어 버림받는다는 뜻에서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모두가 버리는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는 뜻으로까지 쓰이고 있다.
출전
진서(晉書) | 세설신어(世說新語) |
道 길 도 | 傍 곁 방 | 苦 쓸 고, 땅 이름 호 | 李 오얏 리(이), 성씨 리(이) |
길가에 있는 쓴 자두 열매라는 뜻으로, ①남에게 버림받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또는, ②많은 사람이 무시하는 것은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는 뜻.
진서(晉書) 왕융전(王戎傳)과 육조시대 송(宋)나라 유의경(劉義慶)이 지은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오는 이야기.
동진(東晉)의 왕융(王戎, 서기 234-305년)은 노장사상에 심취하여 예교(禮敎)를 방패로 권세를 잡으려는 세태에 저항하였다. 평생을 죽림에 묻혀 유유자적하며 청담(淸談)을 즐겨 완적(阮籍), 혜강(嵆康) 등과 함께 죽림칠현으로 불렸다. 이러한 왕융이 일곱 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그는 동네의 아이들과 놀다가 문득 길가의 자두나무에 가지가 휘어지게 많은 자두가 달려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은 그것을 따려고 앞다투어 그 나무로 달려갔으나, 왕융만은 그 자리에 가만 있었다.
그때 길을 가던 어떤 사람이 왕융에게 물었다.
"얘야, 너는 왜 따러가지 않고 서 있는 거냐?"
그러자 왕융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무가 길 가에 있는데도 열매가 저렇게 많이 달려있다는 것은 틀림없이 써서 먹지 못하는 자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들이 그 자두를 따서 맛을 보니 과연 왕융의 말처럼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일로 사람들은 왕융의 영민함을 칭찬하면서도 일면 두려워하였다 한다.
도방고리란 이와 같이 쓸 데가 없어 버림받는다는 뜻에서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모두가 버리는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는 뜻으로까지 쓰이고 있다.
출전
진서(晉書) | 세설신어(世說新語) |
代人捉刀 (대인착도)
代人捉刀(대인착도)
代人捉刀(dàirénzhuōdāo)
代 대신할 대 | 人 사람 인 | 捉 잡을 착 | 刀 칼 도 |
남을 대신(代身)하여 일을 함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편의 이야기다.
위(魏)나라 무제(武帝) 때, 흉노(匈奴)의 사신이 위 무제를 만나러 왔다. 위 무제는 자신의 키가 작고 풍채가 초라하여 사신들에게 위풍을 보이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에 위무제는 대신(大臣) 최계각(崔季珪)으로 하여금 흉노의 사신을 접견하게 하고, 자신은 칼을 잡고 시위(侍衛)처럼 서있었다[帝自捉刀立牀頭].
최계각은 본시 큰 몸집에 짙은 눈썹과 큰 눈으로 풍채가 당당하고 위엄있었으며, 우렁찬 목소리에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흉노의 접견을 마친 후, 위 무제는 몰래 사람을 보내어 흉노의 사신이 위 무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 보게 하였다.
흉노 사신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위왕의 고상한 덕은 대단했습니다만, 칼을 들고 옆자리에 서있던 그 사람은 위풍이 당당하여 정말 영웅같았습니다.
위 무제는 이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흉노의 사신을 죽여 버렸다.
위 무제는 다름아닌 조조(曹操)인데, 그는 체구가 작았다고 한다. 代人捉刀란 사람을 대신하여 일을 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편(容止篇)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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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人捉刀(dàirénzhuōdāo)
代 대신할 대 | 人 사람 인 | 捉 잡을 착 | 刀 칼 도 |
남을 대신(代身)하여 일을 함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편의 이야기다.
위(魏)나라 무제(武帝) 때, 흉노(匈奴)의 사신이 위 무제를 만나러 왔다. 위 무제는 자신의 키가 작고 풍채가 초라하여 사신들에게 위풍을 보이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에 위무제는 대신(大臣) 최계각(崔季珪)으로 하여금 흉노의 사신을 접견하게 하고, 자신은 칼을 잡고 시위(侍衛)처럼 서있었다[帝自捉刀立牀頭].
최계각은 본시 큰 몸집에 짙은 눈썹과 큰 눈으로 풍채가 당당하고 위엄있었으며, 우렁찬 목소리에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흉노의 접견을 마친 후, 위 무제는 몰래 사람을 보내어 흉노의 사신이 위 무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 보게 하였다.
흉노 사신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위왕의 고상한 덕은 대단했습니다만, 칼을 들고 옆자리에 서있던 그 사람은 위풍이 당당하여 정말 영웅같았습니다.
위 무제는 이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흉노의 사신을 죽여 버렸다.
위 무제는 다름아닌 조조(曹操)인데, 그는 체구가 작았다고 한다. 代人捉刀란 사람을 대신하여 일을 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편(容止篇)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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難兄難弟 (난형난제, nánxiōngnándì)
難兄難弟(난형난제)
难兄难弟(nán xiōng nán dì)
難 어려울 난 | 兄 맏 형 | 難 어려울 난 | 弟 아우 제 |
양자(兩者) 중에 어느 편이 낫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 쓰이는 말.
형 노릇 하기도 어렵고 동생 노릇 하기도 어렵다는 뜻으로, 양자(兩者) 중에 어느 편이 낫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 사용된다. 《세설신어·덕행(世說新語·德行)》에 나오는 말이다.
동한(東漢)시기, 영천(潁川)의 허(許)지방에 진식(陳寔)이라는 유명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고 매사에 공정하였다. 그는 생활이 검소하여 집안에 하인을 두지 않았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의 이름은 기(紀)이고 자(字)는 원방(元方)이었으며, 작은 아들은 이름이 담(湛)이고 자(字)는 계방(季方)이었다. 이들 또한 모두 명망이 드높은 인물들이었다.
진원방(陳元方)의 아들 장문(長文)과 그의 사촌, 즉 원방의 동생 계방(季方)의 아들 효선(孝先)이, 서로 자기 아버지의 공덕이 더 훌륭하다고 주장하다가 결말이 나지 않으므로 할아버지인 진식(陳寔)에게 가서, 이에 대한 판정을 내려주실 것을 호소하였다. 그러자 진식은 "원방도 형 되기가 어렵고 계방도 동생 되기가 어렵다[元方難爲兄 季方難爲弟]"라고 대답하였다고 한 데서 유래한 고사성어이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덕행(德行)
관련 한자어
유의어
莫上莫下(막상막하) |
구분
难兄难弟(nànxiōngnàndì) |
难兄难弟(nán xiōng nán dì)
難 어려울 난 | 兄 맏 형 | 難 어려울 난 | 弟 아우 제 |
양자(兩者) 중에 어느 편이 낫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 쓰이는 말.
형 노릇 하기도 어렵고 동생 노릇 하기도 어렵다는 뜻으로, 양자(兩者) 중에 어느 편이 낫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 사용된다. 《세설신어·덕행(世說新語·德行)》에 나오는 말이다.
동한(東漢)시기, 영천(潁川)의 허(許)지방에 진식(陳寔)이라는 유명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고 매사에 공정하였다. 그는 생활이 검소하여 집안에 하인을 두지 않았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의 이름은 기(紀)이고 자(字)는 원방(元方)이었으며, 작은 아들은 이름이 담(湛)이고 자(字)는 계방(季方)이었다. 이들 또한 모두 명망이 드높은 인물들이었다.
진원방(陳元方)의 아들 장문(長文)과 그의 사촌, 즉 원방의 동생 계방(季方)의 아들 효선(孝先)이, 서로 자기 아버지의 공덕이 더 훌륭하다고 주장하다가 결말이 나지 않으므로 할아버지인 진식(陳寔)에게 가서, 이에 대한 판정을 내려주실 것을 호소하였다. 그러자 진식은 "원방도 형 되기가 어렵고 계방도 동생 되기가 어렵다[元方難爲兄 季方難爲弟]"라고 대답하였다고 한 데서 유래한 고사성어이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덕행(德行)
관련 한자어
유의어
莫上莫下(막상막하) |
구분
难兄难弟(nànxiōngnàndì) |
傾箱倒篋 (경상도협)
傾箱倒篋(경상도협)
傾 기울 경 | 箱 상자 상 | 倒 넘어질 도 | 篋 상자 협 |
광주리를 기울이고 상자를 엎는다는 뜻으로, 가진 것을 남김없이 다 내놓아 극진히 환대함을 이르는 말
세설신어(世說新語) 현원(賢媛)편의 이야기.
진(晋)나라 때, 태위(太尉)인 치감(郗鑒)은 자신의 딸을 매우 예뻐하였다. 그는 사도(司徒)인 왕도(王道)의 아들과 조카들이 모두 훌륭하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청혼하고자 했다. 중매인은 왕씨 집안의 젊은이들을 살펴 본 후, 치감에게 말했다.
"왕씨댁의 자제들은 매우 훌륭하였습니다만, 한 자제는 배를 드러낸 채 침상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훗날 잠을 잤던 이 젊은이가 치감의 사위가 되었는데, 그는 왕도의 조카로서 후세에 이름을 날린 서예가 왕희지(王羲之)였다. 왕희지는 처남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사안(謝安)과 사만(謝萬) 등과는 마음이 잘 맞았다.
한번은 왕희지의 아내가 친정에 다니러 와서 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씨 집안 사람들은 사안과 사만이 오면 광주리를 다 쏟아[傾筐倒庋] 음식을 차려 맞이하면서도, 너희들이 오면 평상시 처럼 대접하니 다음부터 번거롭게 왕씨 댁에 내왕하지 않도록 해라."
王右軍郗夫人謂二弟司空、中郎曰:「王家見二謝,傾筐倒庋;見汝輩來,平平爾。汝可無煩復往。」世說新語 賢媛第十九
이 이야기에서 유래하여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다 내놓는다든가, 말을 숨기지 않고 다 하는 것을 일러 경광도협(傾筐倒篋)이라고 한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현원(賢媛) 第十九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傾筐倒庋(경광도기) | 傾筐倒篋(경광도협) |
중요도·활용도
傾 기울 경 | 箱 상자 상 | 倒 넘어질 도 | 篋 상자 협 |
광주리를 기울이고 상자를 엎는다는 뜻으로, 가진 것을 남김없이 다 내놓아 극진히 환대함을 이르는 말
세설신어(世說新語) 현원(賢媛)편의 이야기.
진(晋)나라 때, 태위(太尉)인 치감(郗鑒)은 자신의 딸을 매우 예뻐하였다. 그는 사도(司徒)인 왕도(王道)의 아들과 조카들이 모두 훌륭하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청혼하고자 했다. 중매인은 왕씨 집안의 젊은이들을 살펴 본 후, 치감에게 말했다.
"왕씨댁의 자제들은 매우 훌륭하였습니다만, 한 자제는 배를 드러낸 채 침상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훗날 잠을 잤던 이 젊은이가 치감의 사위가 되었는데, 그는 왕도의 조카로서 후세에 이름을 날린 서예가 왕희지(王羲之)였다. 왕희지는 처남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사안(謝安)과 사만(謝萬) 등과는 마음이 잘 맞았다.
한번은 왕희지의 아내가 친정에 다니러 와서 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씨 집안 사람들은 사안과 사만이 오면 광주리를 다 쏟아[傾筐倒庋] 음식을 차려 맞이하면서도, 너희들이 오면 평상시 처럼 대접하니 다음부터 번거롭게 왕씨 댁에 내왕하지 않도록 해라."
王右軍郗夫人謂二弟司空、中郎曰:「王家見二謝,傾筐倒庋;見汝輩來,平平爾。汝可無煩復往。」世說新語 賢媛第十九
이 이야기에서 유래하여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다 내놓는다든가, 말을 숨기지 않고 다 하는 것을 일러 경광도협(傾筐倒篋)이라고 한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현원(賢媛) 第十九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傾筐倒庋(경광도기) | 傾筐倒篋(경광도협) |
중요도·활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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