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護疾忌醫 (호질기의, hùjíjìyī)

護疾忌醫(호질기의)

护疾忌医(hù jí jì yī)

護 보호할 호 | 疾 병 질 | 忌 꺼릴 기 | 醫 의원 의 |


'병을 숨겨 의원에게 보이기를 꺼린다'라는 뜻으로, 잘못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

絶長補短 (절장보단)

絶長補短(절장보단)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에 보태어 부족함을 채운다

신세계 유통산업연구소는 백화점과 대형마트, 온라인몰 등 2010년 유통업계가 전반적으로 유례없는 성장세를 보인 것은 각 업태가 가지는 장점으로 부족한 것을 메웠기 때문이라고 밝히며 이 같은 뜻의 ‘절장보단’을 핵심 키워드로 뽑음


2010년 | 올해의 사자성어 | 유통

藏頭露尾 (장두노미)

藏頭露尾(장두노미)

藏 감출 장 | 頭 머리 두 | 露 이슬 노 | 尾 꼬리 미

쫓기던 타조가 머리는 숨겼지만 꼬리는 숨기지 못한 모습을 뜻하는 말로 진실을 숨겨두려 하지만 실마리는 만천하에 드러나 있음

自欺欺人 (자기기인)

自欺欺人(자기기인)

自 스스로 자 | 欺 속일 기 | 欺 속일 기 | 人 사람 인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인다. 자신도 믿지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남까지 속이는 행위를 비유

교수신문에서 선정한 2007년 올해의 사자성어


2007년 | 올해의 사자성어 | 교수신문

離合集散 (이합집산)

離合集散(이합집산)

離 떠날 이(리), 붙을 여(려), 교룡 치 | 合 합할 합 쪽문 합, 홉 홉 | 集 모을 집 | 散 흩을 산

헤어지고 합치고,다시모이고 또다시 흩어짐.

右往左往 (우왕좌왕)

右往左往(우왕좌왕)

右 오른쪽 우, 도울 우 | 往 갈 왕 | 左 왼 좌 | 往 갈 왕

중심을 잡지 못하고 사방으로 왔다 갔다 함

교수신문에서 선정한 2003년 올해의 사자성어


2003년 | 올해의 사자성어 | 교수신문

五理霧中 (오리무중)

五理霧中(오리무중)

五 다섯 오 | 理 다스릴 리(이) | 霧 안개 무 | 中 가운데 중

5리나 되는 짙은 안개 속에 있다는 뜻. 짙은 안개 속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무슨 일에 대해 갈피를 못잡고 알 길이 없음을 일컫는 말.

掩耳盜鐘 (엄이도종)

掩耳盜鐘(엄이도종)

掩 가릴 엄 | 耳 귀 이, 팔대째 손자 잉 | 盜 도둑 도 | 鐘 쇠북 종 |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라는 뜻으로, ①자기(自己)만 듣지 않으면 남도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행동(行動), ②자기 잘못은 생각 않고 남의 비판을 듣기 싫어 함 ③결코 넘어가지 않을 얕은 수로 남을 속이려 한다는 말


중국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의 승상 여불위가 문객들을 동원해 만든 우화집 ‘여씨춘추’에서 나오는 말이다.

진(晉)나라 육경(六經)중의 한 사람인 범씨(范氏)는 중행씨(中行氏)와 함께 다른 네 사람에 의해 망하게 되었다. 범씨가 망하자 혼란(混亂)을 틈타 범씨의 종을 훔치러 들어온 자가 있었다. 하지만 종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망치로 깨서 가져가려고 종을 쳤더니 소리가 크게 울려 퍼져 다른 사람이 올까 두려워 자신의 귀를 막았다는 일화다.

중국 송나라 유학자 주희는 이 일화를 인용해 “종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리는 것이 두려워 자신의 귀를 막는 짓은 지도자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출전
呂氏春秋(여씨춘추) 呂不韋(여불위)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掩耳偸鈴(엄이투령) | 掩耳盜鈴(엄이도령) | 掩耳盜鐘(엄이도종) | 掩目捕雀(엄목포작) |

上火下澤 (상화하택)

上火下澤(상화하택)

上 윗 상 | 火 불 화 | 下 아래 하 | 澤 못 택, 풀 석, 전국술역, 별이름 탁

위에는 불, 아래는 못. 서로 이반하고 분열하는 현상

교수신문에서 선정한 2005년 올해의 사자성어


2005년 | 올해의 사자성어 | 교수신문

旁岐曲逕 (방기곡경)

旁岐曲逕(방기곡경)

샛길과 굽은 골목을 다니듯 정당한 방법을 피하고 억지스럽게 지내다

교수신문에서 2009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 남과 화목하게 지내지만 스스로 원칙을 굽히지 말자며 시작했으나, 샛길과 굽은 골목을 다니듯 정당한 방법을 피하고 억지스럽게 지내왔다는 반성.


2009년 | 올해의 사자성어 | 교수신문

密雲不雨 (밀운불우)

密雲不雨(밀운불우)

密 빽빽할 밀 | 雲 구름 운 | 不 아닐 불 | 雨 비 우

짙은 구름이 가득 끼었으나 비가 내리지 않는다.

교수신문에서 선정한 2006년 올해의 사자성어


2006년 | 올해의 사자성어 | 교수신문

倒行逆施 (도행역시)

도행역시(倒行逆施)

倒 거꾸로 할 도 | 行 행할 행 | 逆 거스를 역 | 施 베풀 시 |

차례(次例)를 거꾸로 시행(施行)한다는 뜻으로, 곧 도리(道理)에 순종(順從)하지 않고 일을 행(行)하며 상도(常道)를 벗어나서 일을 억지로 함을 뜻


춘추 시대 초(楚)나라에 오자서(伍子胥)란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 오사(伍奢)는 왕자의 스승이고 형 역시 관직에 있었는데, 비무기(費無忌)라는 간신배의 모략에 걸려 아버지와 형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자기 목숨도 위태롭다고 본 오자서는 깊은 원한을 품고 멀리 도망치기로 했다. 그런데 도중에 친구인 신포서(申包胥)를 만나게 되었다.

“자네 어디로 가는 건가?”

“동쪽 오(吳)나라로 갈까 하네. 지금은 힘이 없어 달아나지만, 이놈의 나라를 멸하여 원수를 갚을 테니 두고 보게.”

오자서의 심정을 이해하는 신포서는 깊은 동정을 표하는 한편, 좋은 말로 다독거렸다.

“자네 마음을 내가 왜 못 헤아리겠는가. 하지만 원한을 슬기롭게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참된 선비일세. 더군다나 사적인 감정으로 자기 나라를 뒤엎겠다는 발상은 듣기에도 거북하네 그려.”

그렇지만 뼈저린 원한에 불타는 오자서의 귀에 그 말이 제대로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언성이 높아졌고, 끝내 친구가 마음을 돌리지 않음에 화가 난 신포서는 얼굴을 붉혔다.

“좋아. 자네가 정 초나라를 멸하겠다면 어디 해 보게나! 나는 역으로 기필코 구해 보이고 말 테니.”

이런 언쟁으로 두 사람은 우정을 깨뜨리고 결별하게 되었다.

양자강을 따라 고생고생 끝에 오나라로 간 오자서는 공자(公子) 광(光)을 사귀었다. 그리하여 광이 사촌 아우인 요(僚)임금을 시해하고 왕위를 찬탈할 때 적극 협조하여 출세의 기회를 잡았다. 이렇게 하여 등극한 오왕이 역사상으로 유명한 합려(闔閭)인데, 특출한 자질을 발휘하여 두각을 나타낸 오자서는 대부(大夫)가 되어 조정 일을 좌지우지하는 실력자로 올라섰다. 그는 합려에게 초나라를 정벌하자고 기회 있을 때마다 설득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왕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한 오자서는 정벌군의 선두에 서서 고국인 초나라로 향했다.

진격에 진격을 거듭한 오나라 군대는 마침내 초나라 도읍인 영(郢)에 들이닥쳤고, 별다른 대비도 없었던 초나라는 난리가 났다. 이때는 이미 평왕이 죽고 소왕(昭王)이 후사를 잇고 있었는데, 소왕은 혼비백산하여 도성을 버리고 달아나 버렸다. 도성을 점령하긴 했으나 살아 있는 평왕에게 직접 복수할 수 없게 된 오자서는 무덤을 파헤쳐 유해를 끌어내어 마구 채찍질을 했고[掘墓鞭屍(굴묘편시)], 그러고도 모자라 뼈를 짓찧어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이 정도로는 내 아버님과 형님의 원한을 풀기에 모자란다. 원수의 아들 놈을 붙들어 죽여야만 끝나는 것이다.”

오자서는 이렇게 부르짖으며 부하들로 하여금 소왕을 추적하라고 명령했다. 그때 옛 친구 신포서의 편지가 날아왔다. 행동이 너무 잔혹하지 않느냐고 꾸짖고, 그 정도에서 그쳐 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오자서는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기 때문에[日暮途遠(일모도원)] 도리에 어긋나는 줄 알면서도 부득이하게 순리에 거슬러 행동했다[倒行逆施(도행역시)]’고 거절했다.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고 판단한 신포서는 북쪽 진(秦)나라에 달려가 애공(哀公)을 붙들고 눈물로 구원군을 요청했고, 그 애소에 감복한 애공은 마침내 출병을 허락했다.

“진나라가 끼어들겠다고? 좋다! 어디 맛을 보여 주지.”

오자서는 투지를 불태우며 이번에는 창끝을 진나라에 겨누었다. 그런데 이때 오나라 국내에 반란이 일어났다. 다급해진 오자서는 진나라와의 결전과 소왕 추적을 포기하고 회군을 서둘렀다. 그리하여 오나라에 돌아오자마자 반란군을 격파해 급한 불은 껐지만, 그를 신임한 합려가 죽고 공자인 부차(夫差)가 왕위를 계승하면서 그의 입지는 눈에 띄게 약화되어 갔다.

부차는 타국 출신으로 자기네 나라에 들어와서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오자서를 평소부터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왕권을 쥐게 되자 그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것이다. 오자서를 시기하던 백비(佰嚭)가 갖은 험담으로 중상모략하자, 부차는 그 말을 전적으로 믿고 오자서로 하여금 자결하도록 명령했다.

“아하, 세상 이치란 결국 이런 것인가!”

오자서는 여전히 해소하지 못한 채 자결하고 말았다.


출전

史記(사기) 伍子胥傳(오자서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倒行(도행) |

참조어

掘墓鞭屍(굴묘편시) | 倒行逆施(도행역시) | 日暮途遠(일모도원) |

當同伐異 (당동벌이)

當同伐異(당동벌이)

當 마땅 당 | 同 한가지 동 | 伐 칠 벌 | 異 다를 이

옳고 그름의 여하간에 한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다른 무리의 사람을 무조건 배격하는 것을 이르는 말.

《후한서(後漢書)》 당동전(黨同傳)에서 비롯된 말이다.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통일하고 강력한 중앙 집권화를 이룩한 이래 중국의 권력은 오직 황제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자연히 황제를 둘러싼 친위 집단이 권력을 농단하게 되었는데, 그 중심을 이룬 것이 환관과 외척 세력이었다. 또 한(漢)나라 때에는 유교를 국교로 하여 유학을 공부한 선비 집단이 성장하였다. 그런데 왕망(王莽)이 제위를 찬탈하자 선비들은 초야로 피해 청의(淸議)를 일삼고, 자연스럽게 명망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뜻을 같이하는 무리들이 모였다. 이를 당인(黨人)이라 한다.

후한 때에는 화제(和帝) 이후 역대 황제가 모두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다. 그래서 황태후가 섭정이 되고, 이 과정에서 황태후의 친인척인 외척들이 실권을 잡게 되었다. 그러나 후일 장성한 황제는 이들의 전횡을 탐탁치 않게 여겨 자신의 친위 세력을 키우고 이들을 제거해 나가는데, 그 중심이 된 세력이 바로 환관이었다.

환관들은 신분 상승의 욕구 때문에 스스로 거세한 사람들이었으므로 집단의 결속력이 유달리 강하고, 사회적 책임이나 정치적 경륜보다는 자신들의 이해에 민감하였다. 따라서 이들이 권력을 쥐면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게 마련이었다. 유교적 교양을 쌓은 예비 관료 집단인 선비들이 환관의 농단으로 국정이 문란하고 풍속이 타락해 가는 것을 방관만 하고 있을 리 없었다.

이들도 명망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모여 전국적으로 방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비 집단과 외척, 환관 세력이 서로 물고 물리는 정권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옳고 그름을 떠나 다른 집단을 무조건 배격하는 것은 예상되는 일이었다. 이를 가리키는 말이 당동벌이이다.

좁게는 당고(黨錮)의 옥(獄) 이후 이응(李膺)을 중심으로 한 당인들이 유교적 지식 계급 이외의 세력을 적대시하던 사실을 가리키기도 한다. 전한은 외척이 망쳤고, 후한은 환관이 망쳤다고 한다. 후한 말에 이르러 환관들은 외척과 선비 집단을 철저히 탄압하고, 그 결과로 지식인 관료 집단인 선비 집단이 황실을 버림으로써 후한이 자멸하게 되었다.

擧世皆濁 (거세개탁)

擧世皆濁(거세개탁)

擧 들 거 | 世 세상 세 | 皆 다 개 | 濁 흐릴 탁 |

온 세상이 다 흐림.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음.

'거세개탁'은 초(楚)나라의 충신 굴원이 지은 '漁父辭(어부사)'에 실린 고사성어다.

초나라 忠臣(충신) 屈原(굴원)이 간신의 모함을 입고 벼슬에서 쫓겨나와 강가를 거닐며 憔悴(초췌)한 모습으로 시를 읊고 있는데 고기잡이 영감이 배를 저어 지나다가 그가 굴원인 것을 알고, 어찌하여 이 꼴이 되었느냐면서 안타까워 까닭을 물었다. 굴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온 세상이 흐려 있는데 나만이 홀로 맑고 뭇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이 홀로 깨어 있다. 그래서 쫓겨난 것이다[擧世皆濁 我獨法 衆人皆濁 我獨醒(거세개탁 아독법 중인개탁 아독성)].”

온 세상이 혼탁한 가운데서는 홀로 맑게 깨어있기가 쉽지 않고, 깨어있다고 해도 세상과 화합하기 힘든 처지를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