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狐假虎威 (호가호위)

狐假虎威(호가호위)

狐假虎威(hújiǎhǔwēi)

狐 여우 호 | 假 거짓 가, 멀 하, 이를 격 | 虎 범 호 | 威 위엄 위 |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으스댄다는 뜻으로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리는 것을 말한다.

the fox borrowing the awe of the tiger—to bully people by flaunting one's powerful connections; to browbeat others by virtue of one's powerful connections


전국 시대 중국의 남쪽 초나라에 소해휼(昭奚恤)이라는 재상(宰相)이 있었다. 북방의 나라들은 이 소해휼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초나라의 실권을 그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나라 선왕(宣王)은 북방의 나라들이 왜 소해휼을 두려워 하는지 이상하게 여겨 魏(위)나라 출신인 江乙(강을)이란 신하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위나라를 비롯한 북방의 여러나라가 우리 초나라 재상 昭奚恤(소해휼)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그게 정말이오?』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그들이 일개 재상에 지나지 않는 소해휼을 두려워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막강한 초나라의 힘때문이죠』

이렇게 말을 받은 강을은 평소 눈엣가시처럼 여겨온 소해휼을 모함하기 시작했다.

"호가호위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생긴 연유는 이렇습니다. 호랑이가 여우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잡아 먹히게 된 여우가 말했습니다. '잠깐 기다리게나. 이번에 나는 천제로부터 백수의 왕에 임명되었네. 만일 나를 잡아먹으면 천제의 명령(命令)을 어긴 것이 되어 천벌을 받을 것이야. 내 말이 거짓말이라 생각하거든 나를 따라와 봐. 나를 보면 어떤 놈이라도 두려워서 달아날 테니.'여우의 말을 듣고 호랑이는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과연 만나는 짐승마다 모두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짐승들은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를 보고 달아난 것이지만, 호랑이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북방의 제국이 소해휼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실은 소해휼의 배후에 있는 초나라의 군세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소해휼은 왕을 등에 업고 위세를 부리는 여우가 되고, 선왕은 소해휼이 훌륭해서 모두가 그를 두려워하는 줄로 알고 있는 어리석은 호랑이가 되고 만 셈이었다.

[출전]
전국책(戰國策)의 초책(楚策)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借虎威狐(차호위호) | 假虎威狐(가호위호)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an ass in a lion's skin
사자의 탈을 쓴 나귀

指鹿爲馬 (지록위마)

指鹿爲馬(지록위마)

指 가리킬 지 | 鹿 사슴 록(녹) | 爲 하 위, 할 위 | 馬 말 마 |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기다라는 뜻으로, ①고의로 진상을 가리고 억지를 써서 시비를 뒤바꿈 ②웃사람을 농락(籠絡)하여 권세(權勢)를 마음대로 함


秦(진)나라 始皇帝(시황제)는 죽기에 앞서 북쪽 변방을 지키고 있던 장자 扶蘇(부소)를 불러 장례식을 치르게 하라는 詔書(조서)를 남겼다. 그것은 바로 후계자로 지명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조서를 맡고 있던 환관 趙高(조고, ?∼208 BC)는 거짓 조서를 꾸며 부소를 죽이고 후궁 소생인 胡亥(호해)를 세워 2세 황제로 삼았다. 똑똑한 부소보다 어리석은 호해가 다루기 쉬울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호해는 천하(天下)의 모든 쾌락을 마음껏 즐기며 살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어리석었다고 한다.

조고는 호해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경쟁자인 승상 이사(李斯)를 비롯, 그밖에 많은 구신(舊臣)들을 죽이고 승상의 자리에 앉아 권력을 한 손에 쥐고 흔들었다.조고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황제의 자리마저 노렸다. 그러나 막상 擧事(거사)를 도모하려니 조정 대신들이 얼마나 자기를 따라줄지 궁금했고 그걸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어느날 조고는 호해에게 사슴 한마리를 바치면서 '폐하께 말을 헌상하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호해는 웃으며 '승상은 농담을 좀 심하게 하는 구려. 사슴을 가지고 말이라고 하다니[指鹿爲馬]'하면서 좌우의 신하들을 둘러 보았다.

조고는 정색을 하고 나섰다 “이건 분명히 말입니다. 믿지 못하시겠으면 여기 있는 대신들에게 물어보십시오.” 호해의 물음에 조고를 두려워하는 대신들은 말이 맞다고 했고 몇몇은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분명하게 사슴이라고 대답하는 용기있는 신하도 더러 있었다.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터무니없는 죄를 씌워 모두 죽여버렸다. 그러자 조정에는 조고의 뜻에 거스르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게 되었다.

그러나 천하(天下)는 오히려 혼란(混亂)에 빠졌다. 각처에서 진(秦)나라 타도의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중 항우와 유방(劉邦)의 군사가 도읍 함양(咸陽)을 향해 진격(進擊)해 오자 조고는 호해를 죽이고 부소의 아들 자영(子孀)을 세워 3세 황제(皇帝)로 삼았다(B.C. 207). 그러나 이번에는 조고 자신이 자영에게 주살 당하고 말았다.

[출전]
사기(史記):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以鹿爲馬(이록위마) |

不寒而慄 (불한이율)

不寒而慄(불한이율)

不 아닐 불, 아닐 부 | 寒 찰 한 | 而 말 이을 이, 능히 능 | 慄 떨릴 율(률) |

춥지 아니한데 공포에 떨린다는 뜻으로, 포악(暴惡)한 정치로 백성(百姓)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이르는 말

Trembling without being cold. Shiver up and down your spine.


사기(史記) 혹리(酷吏)열전에는 혹독한 관리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한(漢)나라 무제(武帝)는 중앙 집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지방호족 세력을 억압하는 정책을 채용하였다. 당시, 의종(義縱)이라는 사람은 왕태후의 총애를 받은 누님의 덕택으로 현령과 도위를 지내다가, 남양 태수를 거쳐 다시 정양 태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는 남양태수로 재임하면서, 도위(都尉)였던 영성(寧成)의 일가를 죽인 바 있어, 이미 법 집행이 엄격하기로 유명하였다. 그는 정양 태수로 부임하자, 정양군 내의 호족세력을 평정한 후, 2백여명의 범죄자들을 체포하였다. 동시에 그는 사적(私的)으로 감옥에 드나들며 죄인들을 면회한 사람들을 죄수 탈옥 기도죄로 구속하였다. 의종은 이자들은 사형수들을 탈옥시키려 하였다라고 판결하고, 그 날 중으로 4백여 명을 전원 죽였다.

이후 군내의 호족들과 백성들은 춥지 않아도 벌벌 떨었으며[其後郡中不寒而慄], 교활한 자들은 알아서 관리에게 협력하여 공무를 도왔다.

不寒而慄(Trembling without being cold)은 몹시 두려운 상황을 형용한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

擧措失當 (거조실당)

擧措失當(거조실당)

擧 들 거 | 措 둘 조, 섞을 착, 잡을 책, 찌를 척 | 失 잃을 실, 놓을 일 | 當 마땅 당 |

모든 조치(措置)가 정당(正當)하지 않음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의 이야기다.

진시황 26년, 즉 기원전 221년 진(秦)나라는 6국을 멸하고 천하(天下)를 통일했다. 진시황은 곧이어 전국을 36개 군(郡)으로 나누고 도량형(度量衡)을 통일했다. 이듬해, 진시황은 위덕(威德)을 선양하기 위하여 천하(天下)를 돌기 시작했다.

기원전 219년, 진시황은 태산(泰山)에서 제사를 지내고, 다시 남쪽으로 낭야산(琅邪山)에 올랐다. 이곳에서 진시황은 낭야대를 쌓고, 비석을 세워 자신의 공덕(功德)과 진(秦)나라 왕조의 덕정(德政)을 담은 비문(碑文)을 새겼다.

다음은 비문에 나오는 대목이다.

憂恤黔首, 朝夕不懈. 除疑定法, 咸知所辟. 方伯分職, 諸治經易. 擧錯必當, 莫不如畵.

'진시황께서는 백성(百姓)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조석(朝夕)으로 게으름을 피지 않으시고, 의혹을 제거하고 법령을 제정하시니 백성(百姓)들이 모두 법으로 금한 일을 피할 줄 알게 되었다. 지방 장관의 직무가 나뉘어서 모든 정무의 시행이 용이(容易)해지고, 모든 조치가 타당하여 바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출전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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