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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虎類狗 (화호유구)

畵虎類狗(화호유구)

畵 그릴 화 | 虎 범 호 | 類 같을 류 | 狗 개 구 |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를 그린 꼴이 됨.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의 이야기다.

동한(東漢)시기,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은 마엄(馬嚴)과 마돈(馬敦)이라는 경박한 조카들을 훈계하기 위하여 '계형자엄돈서(誡兄子嚴敦書)'라는 편지를 썼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장점이나 단점을 비난한다거나, 국가의 대사(大事)를 함부로 말하는 것을 가장 싫어 한다. 나는 사람됨이 후덕하고 신중하며 청렴했던 산도현(山都縣)의 현령 용백고(龍伯高)와 의협심이 강한 월기사마(越騎司馬) 두계량(杜季良)을 존경하고 있지만, 너희들이 그들을 본받기는 바라지 않는다. 용백고처럼 되는지 못한다하더라도 조정의 신임을 받는 관리는 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너희들이 두계량을 본받는다면, 그와 같은 사람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천하의 경박한 사람이 될까 두렵다. 이는 마치 호랑이를 그리려다 도리어 개를 그린 것과 같기 때문이다[畵虎不成反類狗者也].

畵虎類狗란 서투른 솜씨로 큰일을 하려다가 도리어 일을 그르침을 비유한 말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각곡류목(刻鵠類鶩) | 화룡유구(畵龍類狗) | 화호불성반류구(畵虎不成反類狗) |

狐疑不決 (호의불결)

狐疑不決(호의불결)

狐 여우 호 | 疑 의심할 의, 안정할 응 | 不 아닐 불, 아닐 부 | 決 결단할 결, 빠를 혈 |

여우가 의심이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대하여 의심이 많아 결행(決行)하지 못함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진(晉)나라 때 곽연생(郭緣生)이 지은 술정기(述征記)의 이야기.

맹진(盟津)과 하진(河津)은 모두 황하(黃河)에 있는 나루터이다. 맹진은 지금의 중국 하남성 맹현(孟縣)에 있었으며, 하양도(河陽渡)라고도 하였다. 하진은 중국의 산서성 하진현(河津縣)에 있었다. 이 두 곳은 양자강보다는 좁고, 회하(淮河)나 제수(濟水)보다는 넓었다. 겨울이 되어 얼음이 얼면 두꺼운 곳은 몇 장(丈)에 달했으므로, 거마(車馬)들도 얼음 위로 통과할 수 있어 나룻배보다 편리하였다.

하지만 얼음이 막 얼기 시작할 때에, 사람들은 섣불리 건너지 못하고 먼저 여우들을 건너가게 하였다. 여우는 본시 영리한 동물로서 청각이 매우 뛰어났다. 여우는 얼음 위를 걸으면서도 이상한 소리가 나면 곧 얼음이 갈라지는 것을 예감하고 재빨리 강가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이렇게 여우가 강을 다 건너간 것을 확인하고나서야 안심하고 수레를 출발시켰던 것이다.

초(楚)나라의 굴원(屈原)은 '이소(離騷)'에서 "머뭇거리고 여우처럼 의심하는 내 마음이여, 스스로 가고파도 갈 수가 없네[心猶豫而狐疑兮, 欲自適而不可]"라고 읊었다.

또 《후한서(後漢書)》의 '유표전(劉表傳)'에 따르면, 원소(袁紹)가 조조(曺操)와 대치하고 있을 때 유표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이때, 유표는 여우처럼 의심하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한숭(韓嵩)을 조조에게 보내어 허와 실을 살피도록 하였다[表狐疑不斷, 乃遣嵩詣操, 觀望虛實]. 여기서 유래하여 호의불결은 의심이 많아서 어떤 일을 결행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술정기(述征記) | 이소(離騷) | 후한서(後漢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狐疑未決(호의미결)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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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合浦珠還 (합포주환)

合浦珠還(합포주환)

合 합할 합/쪽문 합, 홉 홉 | 浦 개 포 | 珠 구슬 주 | 還 돌아올 환, 돌 선 |

합포(合浦)에 구슬이 다시 돌아왔다는 뜻으로, 지방(地方) 장관(長官)이 선정(善政)을 베풂을 이르는 말. 중국의 한(漢)나라 때 맹상(孟嘗)이라는 관리의 고사(故事)에서 유래.


후한서(後漢書) 맹상전(孟嘗傳)의 이야기.

중국 광서(廣西)지방의 합포(合浦)현은 지금의 광서장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합포현(合浦縣)의 북동쪽에 있는 지명이다. 합포는 농사는 잘 안 되었지만 바다에서 진주가 많이 채취되어, 주민들은 인근의 교지(交趾)와 진주를 교역하며 생활하였다. 합포에서 나는 진주는 둥글고 크며 빛깔이 순정하였으므로 사람들이 '합포주(合浦珠)'라고 부르며 귀하게 여겼다.

한(漢)나라 때, 합포군의 백성들은 모두 진주조개를 채취하여 생활을 하였으나, 합포에 부임한 관리들은 귀한 진주를 수탈하느라 주민들을 괴롭히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주민들은 진주를 캐 보아야 빼앗길 것이 뻔하므로 캐지 않게 되었고, 이리하여 채취량은 점점 줄어들었다. 양식을 바꿀 진주가 없어 주민들은 굶주림에 허덕였고, 굶어 죽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진주 조개들이 합포에서 살기 싫어 모두 월남땅으로 달아났네'라고 한탄하였다.

동한(東漢)의 순제(順帝)가 즉위하자, 곧 맹상을 합포의 태수로 파견하였다. 맹상은 먼저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불법행위를 엄단하여 진주 조개의 생산과 보호를 적극 지원하였다. 일년이 채 지나지 않아, 합포 바다에는 다시 진주 조개가 나타나고 생산량도 증가하였다. 이에 백성들은 모두 '떠났던 진주가 다시 돌아왔네[曾未踰歲, 去珠復還]'라고 말했다.

여기서 유래하여 합포주환은 물건이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오거나 떠나갔던 사람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 진귀한 물건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경우 등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순리열전(循吏列傳) | 후한서(後漢書) 맹상전(孟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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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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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一日千里 (일일천리)

一日千里(일일천리)

一日千里[yírìqiānlǐ]

一 한 일 | 日 해 일, 날 일 | 千 일천 천, 밭두둑 천, 그네 천 | 里 마을 리(이), 속 리(이) |

하루에 천 리(千里)를 달린다는 뜻으로, ①말이 매우 빨리 달림을 이르는 말 ②진보(進步)하는 것이 빠름 ③물이 급히 흐름 ④뛰어난 재능(才能)을 가진 사람


후한서(後漢書) 왕윤(王允)전의 이야기다.

왕윤은 동한(東漢)때의 인물로서, 헌제(獻帝) 재위 시기에 사도(司徒)를 지냈다. 그는 젊은 시절, 열심히 공부하고 무예를 연마하였다. 그와 동향(同鄕)인 곽림종(郭林宗)은 왕윤의 총명함과 학문하는 태도를 보고, 그를 칭찬하여 왕윤의 학문은 매우 빨리 발전하고 있는데[王生一日千里], 장차 제왕(帝王)을 보좌하여 대사(大事)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王佐才也]라고 하였다.

왕윤이 사도로 재임하던 때에, 동탁(董卓)은 전권을 잡고 방탕하고 도리를 모르는 포악한 생활을 하였다. 왕윤은 겉으로는 동탁에게 순종하였지만, 몰래 여포(呂布)를 부추겨 미인계로써 동탁을 죽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동탁의 부하인 이각(李 )과 곽사(郭 )에게 살해되고 말았으니, 그의 나이 56세.

一日千里 라는 말은 본시 사기(史記) 진본기(秦本紀)에 나온다. 기록에 의하면, 서주(西周)시대 주나라 목왕(穆王)의 휘하에 조보(造父)라는 마부가 있었는데, 그가 모는 말은 하
루에 천리길을 달릴 수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一日千里 란 본시 말이 매우 빠르게 달리는 것을 뜻하였으나, 지금은 진보나 발전의 속도가 매우 빠름 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왕윤(王允)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日新月异[rìxīnyuèyì, 일신월이] 나날이 새로워지다. |

반의어·상대어

一成不变[yìchéngbúbiàn, 일성불변] 법이 한번 정해지면 고칠 수 없다. 고정불변하다. 옛 것을 고수하여 잘 고치려 하지 않다. |

遼東之豕 (요동지시)

遼東之豕(요동지시)

遼 멀 요(료) | 東 동녘 동 | 之 -의 지, 갈 지 | 豕 돼지 시 |

견문(見聞)이 넓지 못한 사람이 신기(神奇)하게 여기고 떠드는 것이 알고 보면 별 것 아닌 흔한 것인 경우(境遇)에 쓰이는 말


후한서(後漢書) 주부(朱浮)전의 이야기.

후한 광무제(光武帝)가 낙양에 도읍한 지 얼마 안 되어 천하(天下)는 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고 곳곳에서 스스로 왕임을 자처하는 자가 많았을 때, 대장군 주부(朱浮)는 많은 곡창을 개방하여 백성(百姓)에게 고루 나누어주려고 했다.

이때에 광무제를 도와 공을 세워 교만해진 어양(漁陽) 태수 팽총(彭寵)은 천하(天下)가 아직 불안하니 군량미를 확보(確保)해 두어야 한다며 곡창 개방을 반대하는 한편, 암암리에 모반의 계획을 추진해 나가고 있었다. 이를 안 주부는 낙양에 이 사실을 알렸는데, 이것을 알게 된 팽총이 노하여 주부를 치려고 군사를 일으키자, 주부는 팽총에게 글을 보내어 "그대는 태수로서 군량만을 아끼고 있으나, 나는 조정의 적을 토벌하는 중임을 맡고 있기 때문에 현사(賢士)를 필요(必要)로 하고 있다. 이는 바로 나라의 일이다. 내가 없는 사실을 천자께 보고했다고 생각하면 천자 앞에 나가 아뢰어도 좋다. 그대는 오만하게도 공이 크다고 여기는가? 옛날, 요동에서 머리가 흰 돼지 새끼가 태어나자, 이는 특이하다고 여겨 왕에게 바치려고 강동까지 가 보니, 그곳 돼지가 모두 희어서 부끄러워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만일 그대의 공을 조정에서 논하게 되면 저 요동의 돼지에 불과 할 것이다."하고 꾸짖었다.

그러나 팽총은 모반하여 연왕(燕王)이라 칭하다가 2년 후 토벌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遼東豕(요동시)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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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梁上君子 (양상군자)

梁上君子 (양상군자)

梁 들보 양(량) | 上 윗 상 | 君 임금 군 | 子 아들 자 |

들보 위의 군자라는 뜻으로, ① 도둑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 ② 천장의 쥐

a thief, a burglar, a robber

擧案齊眉 (거안제미)

擧案齊眉(거안제미)

举案齐眉(jǔ àn qí méi)。

擧 들 거 | 案 책상 안 | 齊 가지런할 제, 재계할 재, 옷자락 자, 자를 전 | 眉 눈썹 미 |

밥상을 눈썹 높이로 들어 공손(恭遜)히 남편(男便) 앞에 가지고 간다는 뜻으로, 남편(男便)을 깍듯이 공경(恭敬)함을 일컫는 말


후한서(後漢書) 양홍전(梁鴻傳)의 이야기다.

동한(東漢)시대, 집은 가난하지만 절개가 곧은 양홍(梁鴻)이란 학자가 있었다. 그는 일찍 부모를 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태학(太學)을 마쳐 많은 학식을 갖추었다. 그러나 그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들에서 돼지를 기르며 살았다.

그런데 맹(孟)씨라는 사람의 집에 다 자란 딸 맹광(孟光)이 있었는데, 그녀는 뚱뚱한 몸매에 시커먼 얼굴, 게다가 힘은 장사였다. 그녀의 부모가 그녀에게 결혼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묻자, 그녀는 '양홍(梁鴻)같은 훌륭한 분이 아니면 시집을 가지 않겠다'라고 대답했다.

이 소식을 들은 양홍(梁鴻)은 이 처녀에게 청혼을 하여 결혼을 했다. 결혼 후 며칠이 지나도 잠자리를 같이 아니하자 색시가 궁금하여 그 이유를 물었다.

양홍(梁鴻)이 대답(對答)하기를 "내가 원했던 부인은 비단옷 입고 진한 화장을 한 여자가 아니라 누더기 옷을 입고 깊은 산 속에서 살 수 있는 그런 여자였소."라고 했다. 그러자 색시는 "이제 당신의 마음을 알았으니 당신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라고 대답(對答)했다.

그 후로 그녀는 화장도 하지 않고 산골 농부의 차림으로 양홍(梁鴻)과 산 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베를 짜면서 생활했다. 양홍(梁鴻)은 농사짓는 틈틈이 시를 지어 친구(親舊)들에게 보냈는데, 왕실을 비방하는 시가 발각되어 오(吳)나라로 건너가 고백통이라는 병문가의 방앗간지기가 되어 지냈다. 그러나 양홍(梁鴻)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내는 밥상을 눈썹 위까지 들어올려 남편에게 공손하게 바쳤다고 한다. [不敢于鴻前仰視, 擧案齊眉] 고백통은 양홍(梁鴻) 내외를 보통으로 보지 않고 그들을 도왔고, 양홍(梁鴻)은 수십 편의 책을 저술할 수가 있었다.

擧案齊眉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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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水馬龍(거수마룡)

車水馬龍(거수마룡)

車 수레 거, 수레 차 | 水 물 수 | 馬 말 마 | 龍 용 룡(용), 언덕 롱(농), 얼룩 망, 은총 총 |

수레는 흐르는 물과 같고 말의 움직임은 하늘을 오르는 용과 같다는 뜻으로, 수레와 말의 왕래(往來)가 많아 매우 떠들석한 상황(狀況). 즉, 행렬(行列)이 성대(盛大)한 모양(模樣)을 말함


흐르는 물이나 길게 늘어진 용처럼 거마의 왕래가 잦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람의 행차가 장관을 이루는 모습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마후기(馬后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중국 한나라 명제의 비인 마후는 후한(後漢)의 장군 마원(馬援)의 딸로서 명제의 아들인 장제 때 황태후가 되었다. 장제는 마후가 낳은 자식이 아니었으나 황태후를 존중하고 마후의 외삼촌들에게 관직을 주려고 하였는데, 간사한 신하들은 동의했으나 마후는 이를 거부하였다.

마후는 장제에게 "친정에 가니 외삼촌들은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였고 하인들도 내 마부에 비길 수 없이 화려한 옷차림이었습니다. 집에 찾아오는 손님은 얼마나 많은지 '수레는 물흐르는 듯하였으며 말은 용이 헤엄치는 것과 같았습니다[車如流水馬如遊龍].' 그들의 사치함을 깨우쳐주지는 못하고 어찌 관작을 내리려고 합니까?"하고 말하였다.

마후의 말에서 유래한 성어(成語)로, 수많은 수레와 말들이 끊임없이 오가면서 장관을 이루는 성대한 행렬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마후기(馬后記)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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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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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