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罰百戒(일벌백계)
一罚百戒(yìfábǎijiè)
一 한 일 | 罰 벌할 벌 | 百 일백 백,힘쓸 맥 | 戒 경계할 계 |
한 사람을 벌주어 백 사람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한 가지 죄와 또는 한 사람을 벌(罰)줌으로써 여러 사람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킴
전국시대의 병법가 손자(孫子)는 이름이 무(武)로, 제(齊)나라 사람이다. 그가 병법(兵法)이라는 특기를 가지고 오왕(吳王) 합려를 만났다. 합려가 말했다. “그대의 병서는 나도 모두 읽었다. 실제로 군을 지휘해 보여주겠는가?” “좋습니다.” “여인들이라도 좋은가?” “좋습니다.” 합려는 궁녀 180명을 모았다. 손자는 이것을 2대(隊)로 나눈 뒤, 왕의 총희(寵姬) 두 사람을 각각 대장으로 삼았다. 그런 다음 나머지 궁녀들에게는 갈래진 창[戟]을 들게 하고 명령하였다. “앞으로 하면 가슴을 보고, 좌로 하면 왼손을 보고 우로 하면 오른손을 보고, 뒤로 하면 등을 보라.” 이렇게 군령을 선포하고 군고(軍鼓)를 쳐서 명령하자 궁녀들은 크게 웃을 뿐이었다. 손자가 말했다. “군령이 분명하지 않아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은 주장(主將)의 책임이다.” 다시 큰소리로 세 번 되풀이 하고 다섯 차례 설명하고 나서 군고를 쳐서 호령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크게 웃을 뿐이었다. 손자가 말했다. “군령이 분명하지 않아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은 주장의 책임이다. 그러나 이미 군령이 분명한 데도 따르지 않는 것은 대장의 책임이다.” 하고는 칼을 뽑아 두 총희를 베려고 하였다. 대 위에서 이것을 보고 있던 합려가 전령을 보내왔다. “장군의 용병술(用兵術)을 잘 알았다. 그들을 용서해 줄 수 없을까.” 손자가 말했다. “신이 이미 명령을 받아 장군이 되었습니다. 장군은 진중에 있는 한 임금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들을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침내 두 총희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리고는 차석의 시녀를 대장으로 삼았다. 다시 군고를 울리자 궁녀들은 수족처럼 움직이고 동작이 모두 규칙에 들어맞아 감히 소리지르는 사람 하나 없었다. 손자는 전령을 보내 왕에게 보고했다. “군병은 이미 정돈되었습니다. 몸소 열병하심이 어떠하올지. 왕의 명령이라면 물이면 물, 불이면 불 가운데라 할지라도 뛰어들 것입니다.” 합려가 말했다. “장군은 피로할테니 휴식을 위하여 숙사로 가라. 내려가서 볼 생각은 없다.” 손자가 말했다. “왕께서는 한갓 용병의 이론을 좋아하실 뿐, 실제로 응용하시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합려는 손자를 장군에 기용했다.
오나라가 서쪽으로는 초(楚)나라를 꺾고 북으로는 제나라, 진(晉)나라를 위협하여 명성을 제후 사이에 떨쳤는데, 손자의 힘이 컸다. 《사기(史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중 손자의 일화이다. 여기서 ‘일벌백계’는 ‘하나에게 본을 보임으로써 전체에게 경종을 울리는 방법’으로 쓰였다. 그리고 이런 방법은 고래로 무리를 통솔할 때 자주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것이 능력 없는 지휘자에게는 자칫 무리하게 이용되는 수도 있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罚一儆百(벌일경백,fáyījǐngbǎi) | 以一警百(이일경백) | 以一儆百(이일경백,yǐyījǐngbǎi) | 惩一戒百(징일계백,chéngyíjièbǎi) | 惩一儆百(징일경백,chéngyījǐngbǎi) | 惩一警百(징일경백,chéngyījǐngbǎi) | 懲一勵百(징일여백) |
泣斬馬謖(읍참마속) |
史記,사기,史記:孫子吳起列傳, 사기:손자오기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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圍魏救趙 (위위구조, wéiwèijiùzhào)
圍魏救趙(위위구조)
围魏救赵(wéi wèi jiù zhào)
圍 에워쌀 위,나라 국 | 魏 성씨 위,빼어날 외 | 救 구원할 구 | 趙 나라 조,찌를 조 |
위(魏)나라를 포위하여 조(趙)나라를 구원하다. 적의 후방 근거지를 포위 공격해서 공격해 온 적이 스스로 물러가게 하는 전술로 三十六計(삼십육계) 勝戰計(승전계) 제2계이기도 하다.
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하다. 《사기·손자오기열전(史記·孫子吳起列傳)》에서, 위나라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 공격하자, 제(齊)나라가 위나라의 수도를 공격하여 위나라의 군대로 하여금 철군하게 함으로써 조나라를 구원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삼십육계 원문에는 다음과 같은 해설이 붙어있다.
"모여있는 적보다는 분산되어 있는 적을 쳐야 유리하고, 적의 강점보다는 적의 약점을 공격해야 한다.[共敵不如分敵,敵陽不如敵陰.]"
사례를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이야기는 이렇다.
戰國時代. 孫子(손자)라 불리운 孫武(손무)의 후손이며, 또한 그 자신도 孫子(손자)로 불리우는 손빈의 이야기이다. 손빈은 동문수학하던 방연의 초청으로 위나라에 오나, 그 재능을 시기한 방연의 계략에 빠져 다리를 잘리는 형벌을 받게 된다. 이후 제나라로 도망쳐 오게 된다.
한편 위나라의 위혜왕은 방연에게 '조나라에 빼앗긴 中山땅을 되찾아 오라'고 명한다. 이에 방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산은 위나라에서는 멀고 조나라와 가까우니, 차라리 가까운 조나라 땅을 그만큼 빼앗는 것이 낫습니다. 가까운 한단 땅을 빼앗도록 하겠습니다."
마침내 방연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한단 땅을 포위했다. 그러자 조나라 왕은 제나라에 구원을 청했다.
"위나라 군사가 우리나라로 쳐들어 왔습니다. 우리나라를 도와주시면 중산 땅을 바치겠습니다."
이에 제위왕은 손빈을 대장으로 삼으려 하나, 손빈이 사양하여 전기를 대장으로 삼고 손빈을 군사로 삼았다. 전기가 군사를 거느리고 한단 땅으로 속히 출진하려 하자, 손빈이 만류했다.
"우리가 지금 한단 땅에 가 보아야, 이미 함락된 뒤일 것이오. 그러니 우리는 군사를 거느리고 조나라에 들어서며, 위나라 양릉 땅을 치러 간다는 소문을 내야 하오. 그러면 방연은 양릉을 지키기 위해 돌아올 것이오. 우리는 그 때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을 치면 되오."
이에 전기는 군사를 거느리고 출진했다.
한단성의 군사들은 제나라의 구원병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제나라 군사는 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방연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방연이 막 항복문서를 받는데 세작(첩자)이 들어와 아뢴다.
"제나라 장수 전기가 우리나라 양릉 땅을 치러 가는 중입니다."
"만일 양릉 땅을 잃으면 수도가 위태로워진다. 속히 돌아가야겠구나."
이에 방연은 황급히 양릉 땅으로 출발했다.
위나라 군사가 계릉 땅 20리 밖에 이르렀을 때 제나라 군사와 만났다. 손빈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으므로 위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이것이 바로 '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한다'는 '圍魏救趙' 이다.
관련한자
참조어
孫龐鬪智(손방투지) |
史記, 사기, 史記:孫子吳起列傳, 사기:손자오기열전, 三十六計, 삼십육계, 三十六計:勝戰計, 삼십육계:승전계
围魏救赵(wéi wèi jiù zhào)
圍 에워쌀 위,나라 국 | 魏 성씨 위,빼어날 외 | 救 구원할 구 | 趙 나라 조,찌를 조 |
위(魏)나라를 포위하여 조(趙)나라를 구원하다. 적의 후방 근거지를 포위 공격해서 공격해 온 적이 스스로 물러가게 하는 전술로 三十六計(삼십육계) 勝戰計(승전계) 제2계이기도 하다.
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하다. 《사기·손자오기열전(史記·孫子吳起列傳)》에서, 위나라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 공격하자, 제(齊)나라가 위나라의 수도를 공격하여 위나라의 군대로 하여금 철군하게 함으로써 조나라를 구원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삼십육계 원문에는 다음과 같은 해설이 붙어있다.
"모여있는 적보다는 분산되어 있는 적을 쳐야 유리하고, 적의 강점보다는 적의 약점을 공격해야 한다.[共敵不如分敵,敵陽不如敵陰.]"
사례를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이야기는 이렇다.
戰國時代. 孫子(손자)라 불리운 孫武(손무)의 후손이며, 또한 그 자신도 孫子(손자)로 불리우는 손빈의 이야기이다. 손빈은 동문수학하던 방연의 초청으로 위나라에 오나, 그 재능을 시기한 방연의 계략에 빠져 다리를 잘리는 형벌을 받게 된다. 이후 제나라로 도망쳐 오게 된다.
한편 위나라의 위혜왕은 방연에게 '조나라에 빼앗긴 中山땅을 되찾아 오라'고 명한다. 이에 방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산은 위나라에서는 멀고 조나라와 가까우니, 차라리 가까운 조나라 땅을 그만큼 빼앗는 것이 낫습니다. 가까운 한단 땅을 빼앗도록 하겠습니다."
마침내 방연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한단 땅을 포위했다. 그러자 조나라 왕은 제나라에 구원을 청했다.
"위나라 군사가 우리나라로 쳐들어 왔습니다. 우리나라를 도와주시면 중산 땅을 바치겠습니다."
이에 제위왕은 손빈을 대장으로 삼으려 하나, 손빈이 사양하여 전기를 대장으로 삼고 손빈을 군사로 삼았다. 전기가 군사를 거느리고 한단 땅으로 속히 출진하려 하자, 손빈이 만류했다.
"우리가 지금 한단 땅에 가 보아야, 이미 함락된 뒤일 것이오. 그러니 우리는 군사를 거느리고 조나라에 들어서며, 위나라 양릉 땅을 치러 간다는 소문을 내야 하오. 그러면 방연은 양릉을 지키기 위해 돌아올 것이오. 우리는 그 때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을 치면 되오."
이에 전기는 군사를 거느리고 출진했다.
한단성의 군사들은 제나라의 구원병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제나라 군사는 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방연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방연이 막 항복문서를 받는데 세작(첩자)이 들어와 아뢴다.
"제나라 장수 전기가 우리나라 양릉 땅을 치러 가는 중입니다."
"만일 양릉 땅을 잃으면 수도가 위태로워진다. 속히 돌아가야겠구나."
이에 방연은 황급히 양릉 땅으로 출발했다.
위나라 군사가 계릉 땅 20리 밖에 이르렀을 때 제나라 군사와 만났다. 손빈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으므로 위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이것이 바로 '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한다'는 '圍魏救趙' 이다.
관련한자
참조어
孫龐鬪智(손방투지) |
史記, 사기, 史記:孫子吳起列傳, 사기:손자오기열전, 三十六計, 삼십육계, 三十六計:勝戰計, 삼십육계:승전계
孫龐鬪智 (손방투지, sūnpángdòuzhì)
孫龐鬪智(손방투지)
孙庞斗智(sūn páng dòu zhì)
孫 손자 손 | 龐 어지러울 방 | 鬪 싸울 투 | 智 지혜 지 |
'손빈(孫矉)과 방연(龐涓)이 지혜를 다투다'라는 뜻으로, 대등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지모를 다하여 경쟁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전국시대의 손빈과 방연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손빈과 방연은 귀곡자(鬼谷子)의 문하에서 함께 병법을 배웠다. 방연은 위(魏)나라 혜왕(慧王)에게 기용되어 부근의 약소 국가들을 정벌하는 공을 세웠다. 제나라 사람인 손빈은 그 재능이 방연보다 한 수 위였다. 혜왕도 손빈의 명성을 듣고 있었으므로, 동문수학한 방연에게 그를 초빙하도록 하였다.
방연은 손빈의 재능을 시기하여, 혜왕에게 손빈이 제나라와 밀통한다고 모함하였다. 손빈은 슬개골을 잘리는 형벌을 당하고, 얼굴에는 죄수임을 나타내는 문자가 새겨졌다. 얼마 뒤 손빈은 위나라를 방문한 제나라 사신들에게 구출되어 제나라로 돌아왔다. 제나라의 대장 전기(田忌)는 위왕(威王)에게 손빈을 천거하였다.
354년에 위나라가 조(趙)나라를 공격하자, 조나라는 제나라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위왕은 전기와 손빈을 각각 대장과 군사(軍師)로 삼아 군대를 파견하였다. 손빈은 조나라를 공격하는 데 병력을 투입하여 방비가 허술해진 위나라의 수도 대량(大梁)을 공격하였다. 그리고는 방연이 조나라 공격을 중단하고 철수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공격하여 대승하였다. '위위구조(圍魏救趙: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하다)'라는 고사성어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341년에 위나라는 한(韓)나라를 침공하였다. 제나라 선왕(宣王)은 한나라의 구원 요청을 받고 전기와 손빈을 파견하였다. 손빈은 이번에도 한나라를 구하러 가지 않고 위나라를 공격하였다. 위나라가 대군을 보냈을 때 제나라 군대는 이미 물러간 뒤였다. 방연이 제나라 군대가 머물렀던 곳을 살펴보니 병사들이 솥에 밥을 지어 먹은 흔적이 족히 10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튿날에는 솥의 숫자가 5만 명으로 줄어 있었고, 그 다음 날에는 2만 명으로 줄어 있었다.
방연은 제나라 병사들이 탈영하여 줄어든 것이라 믿고, 이 틈에 제나라를 섬멸하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추격하였다. 마릉(馬陵)에 이르러 방연이 병사들을 독려하여 진군하는데, 앞에 나무가 쓰러져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방연이 살펴보니 거기에는 "방연이 이 나무 아래서 죽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방연은 즉시 후퇴하려 하였으나 사방에서 제나라 군대가 공격해 왔다. 제나라 군대의 솥 숫자가 줄어든 것은 방연이 경계심을 풀고 공격해 오도록 유도한 손빈의 책략이었던 것이다. 방연은 퇴로가 끊기자 자결하였다.
이 고사는 《사기》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손방투지는 재능이 비슷한 사람이 계책을 써서 기량을 겨루거나,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원수가 되어 생사를 다투는 일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史記(사기):孫子吳起列傳(손자오기열전)
관련 한자
참조어
圍魏救趙(위위구조) |
손빈, 방연, 사기, 사기:손자오기열전
孫矉, 龐涓, 史記, 史記:孫子吳起列傳
孙庞斗智(sūn páng dòu zhì)
孫 손자 손 | 龐 어지러울 방 | 鬪 싸울 투 | 智 지혜 지 |
'손빈(孫矉)과 방연(龐涓)이 지혜를 다투다'라는 뜻으로, 대등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지모를 다하여 경쟁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전국시대의 손빈과 방연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손빈과 방연은 귀곡자(鬼谷子)의 문하에서 함께 병법을 배웠다. 방연은 위(魏)나라 혜왕(慧王)에게 기용되어 부근의 약소 국가들을 정벌하는 공을 세웠다. 제나라 사람인 손빈은 그 재능이 방연보다 한 수 위였다. 혜왕도 손빈의 명성을 듣고 있었으므로, 동문수학한 방연에게 그를 초빙하도록 하였다.
방연은 손빈의 재능을 시기하여, 혜왕에게 손빈이 제나라와 밀통한다고 모함하였다. 손빈은 슬개골을 잘리는 형벌을 당하고, 얼굴에는 죄수임을 나타내는 문자가 새겨졌다. 얼마 뒤 손빈은 위나라를 방문한 제나라 사신들에게 구출되어 제나라로 돌아왔다. 제나라의 대장 전기(田忌)는 위왕(威王)에게 손빈을 천거하였다.
354년에 위나라가 조(趙)나라를 공격하자, 조나라는 제나라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위왕은 전기와 손빈을 각각 대장과 군사(軍師)로 삼아 군대를 파견하였다. 손빈은 조나라를 공격하는 데 병력을 투입하여 방비가 허술해진 위나라의 수도 대량(大梁)을 공격하였다. 그리고는 방연이 조나라 공격을 중단하고 철수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공격하여 대승하였다. '위위구조(圍魏救趙: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하다)'라는 고사성어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341년에 위나라는 한(韓)나라를 침공하였다. 제나라 선왕(宣王)은 한나라의 구원 요청을 받고 전기와 손빈을 파견하였다. 손빈은 이번에도 한나라를 구하러 가지 않고 위나라를 공격하였다. 위나라가 대군을 보냈을 때 제나라 군대는 이미 물러간 뒤였다. 방연이 제나라 군대가 머물렀던 곳을 살펴보니 병사들이 솥에 밥을 지어 먹은 흔적이 족히 10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튿날에는 솥의 숫자가 5만 명으로 줄어 있었고, 그 다음 날에는 2만 명으로 줄어 있었다.
방연은 제나라 병사들이 탈영하여 줄어든 것이라 믿고, 이 틈에 제나라를 섬멸하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추격하였다. 마릉(馬陵)에 이르러 방연이 병사들을 독려하여 진군하는데, 앞에 나무가 쓰러져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방연이 살펴보니 거기에는 "방연이 이 나무 아래서 죽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방연은 즉시 후퇴하려 하였으나 사방에서 제나라 군대가 공격해 왔다. 제나라 군대의 솥 숫자가 줄어든 것은 방연이 경계심을 풀고 공격해 오도록 유도한 손빈의 책략이었던 것이다. 방연은 퇴로가 끊기자 자결하였다.
이 고사는 《사기》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손방투지는 재능이 비슷한 사람이 계책을 써서 기량을 겨루거나,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원수가 되어 생사를 다투는 일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史記(사기):孫子吳起列傳(손자오기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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