壟斷(농단)
壟 언덕 농 | 斷 끊을 단 |
‘깎아지른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언덕’이란 뜻. 높은 언덕에 올라가 시장의 전체를 둘러보며 자기에게 유리한 이익을 독점하는 행위를 말한다.
'맹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옛날 시장이라는 것은(古之爲市者) 자신이 소유한 것을(以其所有) 소유하지 못한 사람과 바꾸는(易其所無者) 물물교환의 순수한 장소였다. 그래서 관리들은 물물교환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감독만 하면 되었다(有司者治之耳). 그런데 어느 날 교활하고 천박한 사나이가 나타나서(有賤丈夫焉) 시장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언덕을 찾아 위로 올라가(必求龍斷而登之) 시장의 좌우를 살펴보고 그 정보를 기반으로 시장의 이익을 독점하였다(以左右望而罔市利). 사람들은 모두 그를 천박하다고 생각하였고(人皆以爲賤) 그 때부터 시장의 이익을 독점하는 사람에게 세금을 거두게 된 것이다(故從而征之). 상인에게 세금을 걷게 된 이유는 바로 이런 천한 사나이에게서부터 시작되었다(征商自此賤丈夫始矣).’
출전
맹자(孟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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泥田鬪狗 (이전투구)
泥田鬪狗(이전투구)
泥 진흙 니 | 田 밭 전 | 鬪 싸울 투 | 狗 개 구 |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으로, 자기 이익을 위하여 볼썽사납게 싸우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옛날 우리나라의 8도 사람들에 대한 평가에서 유래되었다.
옛날 우리나라 8도의 사람들에 대한 특징을 4글자로 평가한 4자평(四字評)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에 따르면 경기도 사람들은 경중미인(鏡中美人), 곧 거울에 비친 미인과 같다. 충청도 사람들은 청풍명월(淸風明月), 곧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 같은 품성을 지녔다. 전라도 사람들은 풍전세류(風前細柳), 곧 바람에 하늘거리는 가는 버드나무와 같다.
경상도 사람들은 송죽대절(松竹大節), 곧 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곧은 절개가 특징이다. 강원도 사람들은 암하노불(岩下老佛), 곧 바위 아래 있는 늙은 부처와 같은 품성을 지녔다. 황해도 사람들의 특징은 춘파투석(春波投石), 곧 봄 물결에 돌을 던진 것과 같다. 평안도 사람들은 산림맹호(山林猛虎), 곧 산 속에 사는 사나운 호랑이와 같다. 마지막으로 함경도 사람들은 이전투구(泥田鬪狗), 곧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처럼 악착같다.
이 4자평은 조선 태조의 물음에 정도전(鄭道傳)이 답한 말이라고도 하는데, 함경도 출신인 태조가 함경도 사람의 특징이 이전투구라는 말을 듣고는 안색이 붉어졌다고 한다. 그러자 정도전은 함경도는 석전경우(石田耕牛), 곧 돌밭을 가는 소와 같은 우직한 품성도 지니고 있다고 말하여 태조의 기분을 누그려뜨렸다고 한다.
이처럼 이전투구는 원래는 함경도 사람의 강인하고 악착스러운 성격을 특징짓는 말로 사용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또는 명분이 서지 않는 일로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들처럼 볼썽사납게 다투는 모습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鏡中美人(경중미인) | 山林猛虎(산림맹호) | 石田耕牛(석전경우) | 松竹大節(송죽대절) | 岩下老佛(암하노불) | 泥田鬪狗(이전투구) | 淸風明月(청풍명월) | 春波投石(춘파투석) | 風前細柳(풍전세류) |
泥 진흙 니 | 田 밭 전 | 鬪 싸울 투 | 狗 개 구 |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으로, 자기 이익을 위하여 볼썽사납게 싸우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옛날 우리나라의 8도 사람들에 대한 평가에서 유래되었다.
옛날 우리나라 8도의 사람들에 대한 특징을 4글자로 평가한 4자평(四字評)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에 따르면 경기도 사람들은 경중미인(鏡中美人), 곧 거울에 비친 미인과 같다. 충청도 사람들은 청풍명월(淸風明月), 곧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 같은 품성을 지녔다. 전라도 사람들은 풍전세류(風前細柳), 곧 바람에 하늘거리는 가는 버드나무와 같다.
경상도 사람들은 송죽대절(松竹大節), 곧 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곧은 절개가 특징이다. 강원도 사람들은 암하노불(岩下老佛), 곧 바위 아래 있는 늙은 부처와 같은 품성을 지녔다. 황해도 사람들의 특징은 춘파투석(春波投石), 곧 봄 물결에 돌을 던진 것과 같다. 평안도 사람들은 산림맹호(山林猛虎), 곧 산 속에 사는 사나운 호랑이와 같다. 마지막으로 함경도 사람들은 이전투구(泥田鬪狗), 곧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처럼 악착같다.
이 4자평은 조선 태조의 물음에 정도전(鄭道傳)이 답한 말이라고도 하는데, 함경도 출신인 태조가 함경도 사람의 특징이 이전투구라는 말을 듣고는 안색이 붉어졌다고 한다. 그러자 정도전은 함경도는 석전경우(石田耕牛), 곧 돌밭을 가는 소와 같은 우직한 품성도 지니고 있다고 말하여 태조의 기분을 누그려뜨렸다고 한다.
이처럼 이전투구는 원래는 함경도 사람의 강인하고 악착스러운 성격을 특징짓는 말로 사용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또는 명분이 서지 않는 일로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들처럼 볼썽사납게 다투는 모습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鏡中美人(경중미인) | 山林猛虎(산림맹호) | 石田耕牛(석전경우) | 松竹大節(송죽대절) | 岩下老佛(암하노불) | 泥田鬪狗(이전투구) | 淸風明月(청풍명월) | 春波投石(춘파투석) | 風前細柳(풍전세류) |
累卵之危 (누란지위)
累卵之危(누란지위)
포개어 놓은 달걀의 위험. 아주 위태롭다
戰國時代(전국시대)에는 세 치의 혀(舌)만으로 입신출세를 노리고 이 나라 저 나라를 遊說(유세)하며 돌아다니는 자들이 있었다.이들은 말을 잘했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謀士(모사)요 策士(책사)였는데 縱橫家(종횡가)라고 불렸다.
魏(위)나라의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난 范雎(범저)도 이 종횡가가 되고자 뜻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中大夫(중대부) 벼슬을 하고 있던 須賈(수가)를 섬기게 되었다. 수가가 사신으로 齊(제)나라에 가게 되었을 때 범저는 從者(종자)로서 따라갔다.
제나라에 머무는 동안 범저가 오히려 모시고 간 수가보다 인기가 더 좋았으므로 수가는 매우 불쾌하게 여겨 귀국하자마자 재상 위제에게 범저가 위나라의 비밀을 제나라에 누설했다고 보고했다.
모함을 당한 범저는 호되게 매질을 당한 끝에 멍석에 둘둘 말려져 변소에 내팽개쳐졌다. 나중에 脫獄(탈옥)에 성공한 범저는 정안평이라는 사람에게 몸을 의탁했다. 이름까지 張祿(장록)으로 바꾸고 위나라를 탈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위나라에 온 秦(진)나라 사신 왕계와 몰래 접촉한 정안평이 그에게 장록을 추천했다. 은밀히 장록을 데리고 진나라로 돌아간 왕계는 소양왕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위나라의 장록선생은 천하의 외교가입니다. 선생은 진나라의 정치를 「계란을 쌓아놓은 것처럼 위태로운 처지(累卵之危)」라고 평하며 자기를 등용해주면 무사태평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수레에 태워 모셔왔습니다』
포개어 놓은 달걀의 위험. 아주 위태롭다
戰國時代(전국시대)에는 세 치의 혀(舌)만으로 입신출세를 노리고 이 나라 저 나라를 遊說(유세)하며 돌아다니는 자들이 있었다.이들은 말을 잘했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謀士(모사)요 策士(책사)였는데 縱橫家(종횡가)라고 불렸다.
魏(위)나라의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난 范雎(범저)도 이 종횡가가 되고자 뜻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中大夫(중대부) 벼슬을 하고 있던 須賈(수가)를 섬기게 되었다. 수가가 사신으로 齊(제)나라에 가게 되었을 때 범저는 從者(종자)로서 따라갔다.
제나라에 머무는 동안 범저가 오히려 모시고 간 수가보다 인기가 더 좋았으므로 수가는 매우 불쾌하게 여겨 귀국하자마자 재상 위제에게 범저가 위나라의 비밀을 제나라에 누설했다고 보고했다.
모함을 당한 범저는 호되게 매질을 당한 끝에 멍석에 둘둘 말려져 변소에 내팽개쳐졌다. 나중에 脫獄(탈옥)에 성공한 범저는 정안평이라는 사람에게 몸을 의탁했다. 이름까지 張祿(장록)으로 바꾸고 위나라를 탈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위나라에 온 秦(진)나라 사신 왕계와 몰래 접촉한 정안평이 그에게 장록을 추천했다. 은밀히 장록을 데리고 진나라로 돌아간 왕계는 소양왕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위나라의 장록선생은 천하의 외교가입니다. 선생은 진나라의 정치를 「계란을 쌓아놓은 것처럼 위태로운 처지(累卵之危)」라고 평하며 자기를 등용해주면 무사태평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수레에 태워 모셔왔습니다』
屢見不鮮 (누견불선)
屢見不鮮(누견불선)
屢 여러 누(루) | 見 볼 견, 뵈올 현 | 不 아닐 불, 아닐 부 | 鮮 고울 선, 생선 선 |
자주 대하니 신선함이 없다는 뜻으로, 너무 자주 보아 전혀 새롭지 않음
사기 역생육가( 生陸賈)열전의 이야기. 초한(楚漢)이 천하를 다투던 때, 한나라의 유방(劉邦)을 수행하며 세객(說客)으로 있던 육가(陸賈)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방이 죽은 후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였다. 육가는 월(越)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받은 두 개의 보물자루를 천 금을 받고 팔아, 자식들에게 2백 금씩을 나눠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보검(寶劍)을 차고,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탄 채 하인 10명을 거느리고 다녔다. 어느 날, 육가는 자식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내가 너희들 집에 들르거든 너희들은 하인들과 말에게도 음식을 주어야 하며, 10일간 지내고 다음 집으로 갈 것이다. 그러다 내가 죽게 되거든 바로 그 집에서 나의 보검, 수레와 말, 그리고 하인들은 갖도록 하여라. 여러 군데 들르다 보면 1년 중 너희들 집에 들르는 것은 두세 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너무 자주 보면 새롭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역생육가열전(酈生陸賈列傳)
屢 여러 누(루) | 見 볼 견, 뵈올 현 | 不 아닐 불, 아닐 부 | 鮮 고울 선, 생선 선 |
자주 대하니 신선함이 없다는 뜻으로, 너무 자주 보아 전혀 새롭지 않음
사기 역생육가( 生陸賈)열전의 이야기. 초한(楚漢)이 천하를 다투던 때, 한나라의 유방(劉邦)을 수행하며 세객(說客)으로 있던 육가(陸賈)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방이 죽은 후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였다. 육가는 월(越)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받은 두 개의 보물자루를 천 금을 받고 팔아, 자식들에게 2백 금씩을 나눠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보검(寶劍)을 차고,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탄 채 하인 10명을 거느리고 다녔다. 어느 날, 육가는 자식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내가 너희들 집에 들르거든 너희들은 하인들과 말에게도 음식을 주어야 하며, 10일간 지내고 다음 집으로 갈 것이다. 그러다 내가 죽게 되거든 바로 그 집에서 나의 보검, 수레와 말, 그리고 하인들은 갖도록 하여라. 여러 군데 들르다 보면 1년 중 너희들 집에 들르는 것은 두세 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너무 자주 보면 새롭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역생육가열전(酈生陸賈列傳)
老益壯 (노익장)
老益壯(노익장)
老 늙을 노(로) | 益 더할 익, 넘칠 일 | 壯 장할 장 |
①나이는 들었으나 기력(氣力)은 더욱 좋아짐 ②또는, 그런 사람
old but vigorous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동한(東漢)시기, 부풍군(扶風郡) 무릉현(茂陵縣)에 부풍군의 독우(督郵)를 지낸 마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느 날 군 태수의 명령으로 죄인들을 장안(長安)으로 압송하게 되었다. 그는 죄수들의 형편을 동정하여 그만 도중에서 그들을 풀어주고, 자신은 관직을 버리고 변방으로 도망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조정으로부터 대사면(大赦免)을 받고, 과거의 일을 다시 추궁 당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곳에서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지으며 항상 열심히 일하였다. 몇년 지나지 않아 풍성한 수확을 거두고 가축들도 그 수효가 많아져서, 그는 매우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변방으로 도망온 사람들에게 자주 "대장부가 뜻을 세웠으면, 생활이 궁핍할수록 그 의지를 굳게 하고, 나이가 들수록 그 정신을 왕성하게 해야한다[大丈夫爲者 窮當益堅 老當益壯]"라고 말했다.
老益壯(Live to agreen old age)이란 나이는 비록 많지만 그 활동과 정신이 더욱 강성해짐을 나타내는 말이다.
출전
後漢書(후한서) 마원전(馬援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老當益壯(노당익장) | 老当益壮(lǎodāngyìzhuàng) | 老益壯(노익장) |
老 늙을 노(로) | 益 더할 익, 넘칠 일 | 壯 장할 장 |
①나이는 들었으나 기력(氣力)은 더욱 좋아짐 ②또는, 그런 사람
old but vigorous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동한(東漢)시기, 부풍군(扶風郡) 무릉현(茂陵縣)에 부풍군의 독우(督郵)를 지낸 마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느 날 군 태수의 명령으로 죄인들을 장안(長安)으로 압송하게 되었다. 그는 죄수들의 형편을 동정하여 그만 도중에서 그들을 풀어주고, 자신은 관직을 버리고 변방으로 도망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조정으로부터 대사면(大赦免)을 받고, 과거의 일을 다시 추궁 당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곳에서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지으며 항상 열심히 일하였다. 몇년 지나지 않아 풍성한 수확을 거두고 가축들도 그 수효가 많아져서, 그는 매우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변방으로 도망온 사람들에게 자주 "대장부가 뜻을 세웠으면, 생활이 궁핍할수록 그 의지를 굳게 하고, 나이가 들수록 그 정신을 왕성하게 해야한다[大丈夫爲者 窮當益堅 老當益壯]"라고 말했다.
老益壯(Live to agreen old age)이란 나이는 비록 많지만 그 활동과 정신이 더욱 강성해짐을 나타내는 말이다.
출전
後漢書(후한서) 마원전(馬援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老當益壯(노당익장) | 老当益壮(lǎodāngyìzhuàng) | 老益壯(노익장) |
勞而無功 (노이무공)
勞而無功(노이무공)
勞 일할 노(로) | 而 말 이을 이, 능히 능 | 無 없을 무 | 功 공 공
①애를 썼으나 공이 없음 ②얻은 것 없이 헛수고만 함
온갖 애를 썼으나 아무런 보람이 없다는 뜻으로 '도로무공(徒勞無功)'이라고도 한다.
'莊子(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옛날과 지금이란 물과 육지나 같은 게 아닙니까. 주나라와 노나라는 배와 수레나 같은 게 아닙니까[古今非水陸與 周魯非舟車與(고금비수륙여 주노비주차여]? 지금 주나라의 방식을 노나라에 행하려 한다는 것은 마치 육지에서 배를 밀고 가려는 것과 같습니다[今蘄行周於魯 是猶推舟於陸也(금기행주어노 시유추주어육야)]. 수고롭기만 했지 아무런 성과도 없을 것이며 자신에게 반드시 재앙이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勞而無功 身必有殃(노이무공 신필유앙)]."
'荀子(순자)' 정명편에는 "어리석은 사람의 말은 막연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고, 번잡하고 통일이 없으며 시끄럽게 떠들어대기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말은 하지만 요령이 없고, 몹시 애는 쓰지만 공이 없다"고 하였다.
'관자(管子)'의 형세편에도 "옳지 못한 것에 편들지 말라. 능하지 못한 것을 강제하지 말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르지 말라. 이와 같은 것을 가리켜 수고롭기만 하고 공이 없다고 말한다"고 하였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勞而無功(노이무공) | 萬事休矣(만사휴의) | 徒勞無益(도로무익) | 徒勞無功(도로무공) |
勞 일할 노(로) | 而 말 이을 이, 능히 능 | 無 없을 무 | 功 공 공
①애를 썼으나 공이 없음 ②얻은 것 없이 헛수고만 함
온갖 애를 썼으나 아무런 보람이 없다는 뜻으로 '도로무공(徒勞無功)'이라고도 한다.
'莊子(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옛날과 지금이란 물과 육지나 같은 게 아닙니까. 주나라와 노나라는 배와 수레나 같은 게 아닙니까[古今非水陸與 周魯非舟車與(고금비수륙여 주노비주차여]? 지금 주나라의 방식을 노나라에 행하려 한다는 것은 마치 육지에서 배를 밀고 가려는 것과 같습니다[今蘄行周於魯 是猶推舟於陸也(금기행주어노 시유추주어육야)]. 수고롭기만 했지 아무런 성과도 없을 것이며 자신에게 반드시 재앙이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勞而無功 身必有殃(노이무공 신필유앙)]."
'荀子(순자)' 정명편에는 "어리석은 사람의 말은 막연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고, 번잡하고 통일이 없으며 시끄럽게 떠들어대기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말은 하지만 요령이 없고, 몹시 애는 쓰지만 공이 없다"고 하였다.
'관자(管子)'의 형세편에도 "옳지 못한 것에 편들지 말라. 능하지 못한 것을 강제하지 말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르지 말라. 이와 같은 것을 가리켜 수고롭기만 하고 공이 없다고 말한다"고 하였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勞而無功(노이무공) | 萬事休矣(만사휴의) | 徒勞無益(도로무익) | 徒勞無功(도로무공) |
路遙知馬力日久見人心 (노요지마력일구견인심)
路遙知馬力,日久見人心(노요지마력 일구견인심)
路 길 로, 길 노, 울짱 락, 울짱 낙 | 遙 멀 요 | 知 알 지 | 馬 말 마 | 力 힘 력, 힘 역 | 日 날 일 | 久 오랠 구 | 見 볼 견, 뵈올 현 | 人 사람 인 | 心 마음 심 |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세월이 흘러야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은 같이 살아 보아야 알고, 말은 타 보아야 안다.
A Long Road Tests a Horse’s Strength
출전
명심보감(明心寶鑑) 교우편(交友篇)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
路 길 로, 길 노, 울짱 락, 울짱 낙 | 遙 멀 요 | 知 알 지 | 馬 말 마 | 力 힘 력, 힘 역 | 日 날 일 | 久 오랠 구 | 見 볼 견, 뵈올 현 | 人 사람 인 | 心 마음 심 |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세월이 흘러야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은 같이 살아 보아야 알고, 말은 타 보아야 안다.
A Long Road Tests a Horse’s Strength
출전
명심보감(明心寶鑑) 교우편(交友篇)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
鹿死誰手 (녹사수수)
鹿死誰手(녹사수수)
鹿 사슴 녹(록) | 死 죽을 사 | 誰 누구 수 | 手 손 수 |
사슴이 누구의 손에 죽는가라는 뜻으로, 승패(勝敗)를 결정(決定)하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 말
진서(晉書) 석륵재기하(石勒載記下)에 나오는 이야기다.
서진(西晉)말기, 중국 5호16국(五胡十六國)의 하나인 후조(後趙)의 제1대 황제 석륵(石勒:재위 319∼333)은 재간이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에 대하여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석륵은 외국의 사신들을 연회에 초대하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자, 석륵은 신하인 서광(徐光)에게 말했다.
"그대가 보기에 나는 이전의 어느 제왕(帝王)과 비교될 것 같소?"
서광은 공손하게 대답하였다.
"폐하의 지모(智謀)와 무용(武勇)은 모두 한(漢)나라 고조(高祖)인 유방(劉邦:재위 BC 202∼BC 195)을 능가합니다."
석륵은 이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그대의 말은 너무 지나치오. 내가 만약 한나라 고조를 만났더라면, 나는 기꺼이 그의 부하가 되어, 그의 지휘를 받으며 한신이나 팽월 같은 장군들과 실력을 겨루었을 것이오. 만약 한나라의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를 만났더라면, 나는 그와 함께 중원(中原)에서 함께 말을 달리며 재간을 겨루어, 사슴이 누구의 손에 죽는지를 알지 못하였을 것이오[未知鹿死誰手]."
양쪽의 실력이 비슷해 누가 이길지 모를 정도로 미리 승부를 짐작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지위나 정권을 사슴에 비유하였는데, 천하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라는 뜻에서 제위의 다툼을 비유하는 중원축록(中原逐鹿)과 비슷한 말이다.
출전
진서(晉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角逐(각축) | 中原逐鹿(중원축록) | 逐鹿(축록) |
鹿 사슴 녹(록) | 死 죽을 사 | 誰 누구 수 | 手 손 수 |
사슴이 누구의 손에 죽는가라는 뜻으로, 승패(勝敗)를 결정(決定)하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 말
진서(晉書) 석륵재기하(石勒載記下)에 나오는 이야기다.
서진(西晉)말기, 중국 5호16국(五胡十六國)의 하나인 후조(後趙)의 제1대 황제 석륵(石勒:재위 319∼333)은 재간이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에 대하여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석륵은 외국의 사신들을 연회에 초대하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자, 석륵은 신하인 서광(徐光)에게 말했다.
"그대가 보기에 나는 이전의 어느 제왕(帝王)과 비교될 것 같소?"
서광은 공손하게 대답하였다.
"폐하의 지모(智謀)와 무용(武勇)은 모두 한(漢)나라 고조(高祖)인 유방(劉邦:재위 BC 202∼BC 195)을 능가합니다."
석륵은 이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그대의 말은 너무 지나치오. 내가 만약 한나라 고조를 만났더라면, 나는 기꺼이 그의 부하가 되어, 그의 지휘를 받으며 한신이나 팽월 같은 장군들과 실력을 겨루었을 것이오. 만약 한나라의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를 만났더라면, 나는 그와 함께 중원(中原)에서 함께 말을 달리며 재간을 겨루어, 사슴이 누구의 손에 죽는지를 알지 못하였을 것이오[未知鹿死誰手]."
양쪽의 실력이 비슷해 누가 이길지 모를 정도로 미리 승부를 짐작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지위나 정권을 사슴에 비유하였는데, 천하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라는 뜻에서 제위의 다툼을 비유하는 중원축록(中原逐鹿)과 비슷한 말이다.
출전
진서(晉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角逐(각축) | 中原逐鹿(중원축록) | 逐鹿(축록) |
路逢狹處難回避 (노봉협처난회피)
路逢狹處難回避(노봉협처난회피)
길 좁은 곳에서 원수를 만나면 피하기 어렵다는 뜻.
景行錄 曰, 恩義 廣施。人生何處不相逢。讐怨 莫結。路逢狹處 難回避。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라. 인생이 어느 곳에서든지 서로 만나지 않으랴? 원수와 원한을 맺지 말라. 길 좁은 곳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렵다"라고 경행록에 나와있다.
관련 속담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
경행록, 명심보감, 명심보감:계선편, 원수
景行錄, 明心寶鑑, 明心寶鑑:繼善篇
길 좁은 곳에서 원수를 만나면 피하기 어렵다는 뜻.
景行錄 曰, 恩義 廣施。人生何處不相逢。讐怨 莫結。路逢狹處 難回避。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라. 인생이 어느 곳에서든지 서로 만나지 않으랴? 원수와 원한을 맺지 말라. 길 좁은 곳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렵다"라고 경행록에 나와있다.
관련 속담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
경행록, 명심보감, 명심보감:계선편, 원수
景行錄, 明心寶鑑, 明心寶鑑:繼善篇
怒髮衝冠 (노발충관)
怒髮衝冠(노발충관)
怒 성낼 노(로) | 髮 터럭 발 | 衝 찌를 충, 뒤얽힐 종 | 冠 갓 관 |
노한 머리털이 관을 추켜 올린다는 뜻으로, 몹시 성낸 모양(模樣)을 이르는 말
중국 전한(前漢)의 역사가인 사마 천(司馬遷:BC 145?∼BC 86?)이 저술한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오는 이야기.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이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는 귀중한 보물을 갖게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은 화씨벽을 차지하려는 욕심에 혜문왕에게 진나라의 15성(城)과 바꾸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혜문왕은 화씨벽을 주더라도 15성을 얻지 못한채 속을 것만 같고, 그렇다고 주지 않으면 진나라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 걱정되었다.
혜문왕은 인상여를 사신으로 임명하여 진나라에 보냈다. 소양왕이 큰 나라의 위세를 부리며 성을 내주지 않고 인상여가 가져간 화씨지벽을 빼앗으려 하자 인상여는 진나라 소양왕의 무례한 행동을 크게 꾸짖었는데, '매우 분노하여 머리카락이 곤두서 갓이 벗어질 정도였다[怒髮上衝冠]'고 전해진다.
송나라 흥화군(興化軍) 선유(仙遊) 사람인 임예(林豫)는 신종(神宗) 희녕(熙寧) 9년(1076) 진사(進士)가 되었다. 일찍이 통리군(通利軍)을 맡아 소식(蘇軾) 형제와 친하게 사귀었다. 소철(蘇轍)이 폄적(貶謫)되자 그가 사(詞)를 지어 보냈는데, 그 안에 “화난 머리카락이 관을 뚫었고, 비장한 마음은 돌에 비긴만 하네.[怒髮衝冠 壯心比石]”란 구절이 있었다.
출전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怒發大發(노발대발) | 怒髮上衝冠(노발상충관) | 노발충천(怒髮衝天)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怒 성낼 노(로) | 髮 터럭 발 | 衝 찌를 충, 뒤얽힐 종 | 冠 갓 관 |
노한 머리털이 관을 추켜 올린다는 뜻으로, 몹시 성낸 모양(模樣)을 이르는 말
중국 전한(前漢)의 역사가인 사마 천(司馬遷:BC 145?∼BC 86?)이 저술한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오는 이야기.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이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는 귀중한 보물을 갖게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은 화씨벽을 차지하려는 욕심에 혜문왕에게 진나라의 15성(城)과 바꾸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혜문왕은 화씨벽을 주더라도 15성을 얻지 못한채 속을 것만 같고, 그렇다고 주지 않으면 진나라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 걱정되었다.
혜문왕은 인상여를 사신으로 임명하여 진나라에 보냈다. 소양왕이 큰 나라의 위세를 부리며 성을 내주지 않고 인상여가 가져간 화씨지벽을 빼앗으려 하자 인상여는 진나라 소양왕의 무례한 행동을 크게 꾸짖었는데, '매우 분노하여 머리카락이 곤두서 갓이 벗어질 정도였다[怒髮上衝冠]'고 전해진다.
송나라 흥화군(興化軍) 선유(仙遊) 사람인 임예(林豫)는 신종(神宗) 희녕(熙寧) 9년(1076) 진사(進士)가 되었다. 일찍이 통리군(通利軍)을 맡아 소식(蘇軾) 형제와 친하게 사귀었다. 소철(蘇轍)이 폄적(貶謫)되자 그가 사(詞)를 지어 보냈는데, 그 안에 “화난 머리카락이 관을 뚫었고, 비장한 마음은 돌에 비긴만 하네.[怒髮衝冠 壯心比石]”란 구절이 있었다.
출전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怒發大發(노발대발) | 怒髮上衝冠(노발상충관) | 노발충천(怒髮衝天)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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