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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前燈火 (풍전등화)

風前燈火(풍전등화)

風 바람 풍 | 前 앞 전, 자를 전 | 燈 등 등 | 火 불 화 |

'바람 앞의 등불'이란 뜻으로, ①사물(事物)이 오래 견디지 못하고 매우 위급(危急)한 자리에 놓여 있음을 가리키는 말 ②사물(事物)이 덧없음을 가리키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風前燭火(풍전촉화) | 風前燈燭(풍전등촉) | 焦眉之急(초미지급) 눈썹이 타들어 갈 정도로 매우 위급함 | 一觸卽發(일촉즉발) 금방이라도 일이 크게 터질 듯한 아슬아슬한 상태 | 百尺竿頭(백척간두)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끝에 있는 것처럼 매우 위태로움 | 命在頃刻(명재경각) 거의 죽게 되어 숨이 곧 넘어갈 지경 | 累卵之危(누란지위) 포개 놓은 달걀처럼 몹시 위태로운 형세 | 累卵之勢(누란지세) | 危如累卵(위여누란) | 累碁(누기) | 進退兩難(진퇴양난) 이러기도 어렵고 저러기도 어려운 매우 난처한 처지 | 四面楚歌(사면초가) 사면이 모두 적으로 둘러싸여 매우 위급한 처지 | 進退維谷(진퇴유곡) | 危機一髮(위기일발) 눈앞에 닥친 위기 | 危如一髮(위여일발) | 如履薄氷(여리박빙)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형세 | 絶切絶命(절체절명) 몸도 목숨도 다 되어 살아날 길이 없게 된 막다른 처지 | 狼狽不堪(낭패불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처지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바람 앞의 등불.

投筆從戎 (투필종융)

投筆從戎(투필종융)

投 던질 투, 머무를 두 | 筆 붓 필 | 從 좇을 종 | 戎 병장기 융, 오랑캐 융 |

붓을 던지고 창을 쫓는다는 뜻으로, 학문(學問)을 포기(抛棄)하고 전쟁터(戰爭-)로 나아감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중국의 한(漢)나라 때 반초(班超)의 고사(故事)에서 유래

동한(東漢) 초, 반고(班固)와 반초(班超) 형제가 있었다. 반고(班固)는 한서(漢書)를 편찬하였고, 반초는 그의 동생이다.

반초는 큰 뜻을 품고 있어 사소한 일에는 개의치 않았으나, 속으로는 효성스럽고 근신하는 인물이었다. 집에 있을 때는 항상 근면하였으며, 힘든 노동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또 언변이 뛰어났고, 여러 서적을 두루 섭렵하였다. 그의 형 반고가 교서랑(校書郞)에 임명되어 어머니와 함께 낙양(洛陽)에으로 이주하였으나, 집안은 여전히 가난하여 관청에서 문서를 베껴 주는 일을 하여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당시 북방의 흉노들은 끊임없이 한나라의 북쪽 변경을 침입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반초는 관청에서 문서를 베껴 쓰는 일을 하다가 문득 붓을 던져 버리고 탄식하며 말하기를(嘗輟業投筆嘆曰) "대장부로서 지략이 없다면 마땅히 부개자(傅介子)와 장건(張騫)을 본받아 이역(異域)에서 공을 세워 봉후(封侯)의 자리를 얻어야지 어찌 붓과 벼루 사이에서 오래 지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부개자와 장건은 모두 서역(西域)에 출사하여 공을 세운 사람들이다. 주위에 있던 동료들이 그의 말을 비웃자 반초는 "소인배가 어찌 장사(壯士)의 뜻을 알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이후 반초는 31년 동안이나 서역에 머물면서 흉노의 지배를 받던 서역 국가들을 정복하는 등 한나라의 세력을 확장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 고사는 《후한서(後漢書)》의 반초전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투필종융은 문인 또는 학자가 글쓰기나 학문을 포기하고 종군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반초(班超)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기필종융(棄筆從戎)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焦眉之急 (초미지급)

焦眉之急(초미지급)

焦 탈 초 | 眉 눈썹 미 | 之 갈 지 | 急 급할 급 |

눈썹에 불이 붙은 것 같이 매우 위급(危急)한 상태(狀態)란 뜻으로, 매우 다급(多急)한 일이나 경우(境遇)를 비유(比喩ㆍ譬喩)한 말


눈썹이 타게 될 만큼 위급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오등회원(五燈會元)》에 나오는 말이다.

금릉(金陵:지금의 난징)에 있는 장산(莊山)의 불혜선사(佛慧禪師)는 고승이다. 그의 수행은 당대의 어느 고승보다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한 그가 만년에 왕명을 받고 대상국 지혜선사라는 절에 주지승으로 임명되었다. 어명을 받고 그는 사문을 불러 모아 물었다.

"내가 왕명을 받들어 주지로 가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이곳에 눌러 앉아 불도에 정진함이 옳으냐?"

즉, 수도를 할 것인지 출세를 도모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대답(對答)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선사는 붓을 들어 명리(名利)를 초탈한 경지를 게(偈)로 썼다. 사르르 눈을 감더니 앉은 채 입적하여 사문을 놀라게 했다.

이 불혜선사가 살아 있을 때 사문으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고 답해 주었다. 어느 날 한 사문이 물었다.

"선사님, 이 세상(世上)에서 가장 다급한 상태가 많을 것입니다만, 어느 경지가 가장 다급합니까?"

"그것은 눈썹을 태우는 일이다.[火燒眉毛]"

원문대로 하면 화소미모(火燒眉毛)다. 그 말이 소미지급(燒眉之急)으로 되고, 그것이 다시 초미지급(焦眉之急)으로 변했다. 이와 같은 말로 '연미지급(燃眉之急)'이 있으며, '초미(焦眉)'만으로도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출전
五燈會元(오등회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風前燈火(풍전등화) | 風前燈燭(풍전등촉) | 焦眉之厄(초미지액) | 焦眉(초미) | 一觸卽發(일촉즉발) | 危如累卵(위여누란) | 燃眉之厄(연미지액) | 燃眉之急(연미지급) | 燃眉(연미) | 燒眉之急(소미지급) | 百尺竿頭(백척간두) | 累卵之危(누란지위) | 累卵之勢(누란지세) | 累碁(누기) | 焦眉之急(초미지급) |

天方地軸 (천방지축)

天方地軸(천방지축)

天 하늘 천 | 方 모 방, 본뜰 방, 괴물 망 | 地 땅 지 | 軸 굴대 축 |

하늘 방향이 어디이고 땅의 축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뜻으로, ①매우 급해서 허둥거리는 모습이나, ②어리석은 사람이 갈 바를 몰라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말함.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天方地方(천방지방) |

進退維谷 (진퇴유곡)

進退維谷(진퇴유곡)

进退维谷(jìntuìwéigǔ)

進 나아갈 진, 선사 신 | 退 물러날 퇴 | 維 벼리 유 | 谷 골 곡, 곡식 곡, 나라 이름 욕, 벼슬 이름 록(녹) |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하고 어찌할 수 없음.

to face with two equally undesirable alternatives; on the horns of a dilemma

[출전]
시경(詩經)

《诗经·大雅·桑柔》:"人亦有言,进退维谷。"(维:略相当于"是";谷:比喻困境)形容进退两难。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骑虎难下(qíhǔnánxià, 기호난하) | 進退兩難(진퇴양난, 进退两难, jìntuìliǎngnán) | 進退無路(진퇴무로) | 四面楚歌(사면초가) | 狼狽不堪(낭패불감) |

반대어·상대어

应付自如(yìngfùzìrú, 응부자여) |

進退兩難 (진퇴양난)

進退兩難(진퇴양난)

进退两难(jìntuìliǎngnán)

進 나아갈 진, 선사 신 | 退 물러날 퇴 | 兩 두 양(량), 냥 양(냥) | 難 어려울 난, 우거질 나 |

앞으로 나아가기도 어렵고 뒤로 물러나기도 어려움.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進退維谷(진퇴유곡, 进退维谷, jìntuìwéigǔ) | 進退無路(진퇴무로) | 四面楚歌(사면초가) | 狼狽不堪(낭패불감) | 骑虎难下(qíhǔnánxià, 기호난하) |

반의어·상대어

应付自如(yìngfùzìrú, 응부자여) |

朝不慮夕 (조불려석)

朝不慮夕(조불려석)

朝 아침 조, 고을 이름 주 | 不 아닐 불, 아닐 부 | 慮 생각할 려(여), 사실할 록(녹) | 夕 저녁 석, 한 움큼 사 |

형세(形勢)가 절박(切迫)하여 아침에 저녁 일을 헤아리지 못함. 곧, 당장의 걱정 때문에 다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음.


이밀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는 재가하여 할머니 손에 자랐다. 그는 삼국시대 촉(蜀)나라에서 벼슬을 하다가 촉나라가 멸망하자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위(魏)나라를 멸하고 중원을 통일한 진(晉)나라 무제(武帝)는 그에게 태자세마(太子洗馬) 벼슬을 내려 조정으로 불러들이려 하였다.

이에 이밀은 "다만 조모 유씨가 해가 서산에 가까워져 희미해지는 것처럼 숨이 곧 끊어질 듯하니, 목숨이 위태로워 아침에 저녁 일을 알 수 없습니다(但以劉日薄西山, 氣息奄奄, 人命危淺, 朝不慮夕). 신은 조모가 없었더라면 오늘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며, 조모는 신이 없으면 여생을 마칠 수 없을 것이니, 조모와 손자 두 사람이 서로 목숨을 의지하는 까닭에 구차스럽게 폐하거나 멀리 갈 수 없습니다"라고 하며 간곡하게 사양하였다.

[인용]
이밀(李密), 진정표(陳情表)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朝不謀夕(조불모석) |

참조어

日薄西山(일박서산) '해가 서산에 가까워지다'라는 뜻으로, 늙어서 죽을 때가 가까워지거나 사물이 쇠망기에 접어든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한(漢)나라 때의 문인 양웅(揚雄)이 지은 '반이소(反離騷)'에서 유래. 이밀(李密)이 지은 '진정표(陳情表)'에도 사용. |

存亡之秋 (존망지추)

存亡之秋(존망지추)

存 있을 존 | 亡 망할 망, 없을 무 | 之 갈 지 | 秋 가을 추, 밀치 추 |

존속(存續)하느냐 멸망(滅亡)하느냐의 중대한 때. 절박한 위기를 비유하는 말이다. 秋(가을)는 수확기라는 뜻에서 중요한 때를 가리킨다.

a crisis ((pl. crises)); a critical moment.


《문선(文選)》에 실린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에서 나온 말.

劉備(유비)의 三顧草廬(삼고초려)로 蜀漢(촉한)의 재상이 된 諸葛亮(제갈량)은 비상한 능력을 발휘해 보잘것 없던 촉한을 일으켜 세워 魏(위) 吳(오)와 鼎立(정립)하는 삼국시대를 만들어낸다.

세월이 흘러 유비가 63세로 죽고 태자 劉禪(유선)이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유선은 17세의 어린 나이로 자질이 부족한데다 관우와 장비도 이미 죽은 촉한의 운명은 이제 제갈량의 두 어깨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제갈량은 전군을 이끌고 위나라 토벌에 나섰다. 출정에 앞서 그는 後主(후주) 유선에게 글을 올렸는데 이것이 저 유명한 「前出師表(전출사표)」다. 이 출사표는 제갈량이 그의 충성심을 토로한 명문장인데 그 첫대목은 이렇게 되어있다.

『先帝(선제․유비)께서는 한실(漢室) 부흥의 사업을 시작하셨지만 아직 그 반도 이루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지금 천하는 셋으로 나뉘었고 우리 益州(익주․촉한을 가리킴)는 피폐해 있습니다. 이는 진실로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요한 시기」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先帝創業未半 而中道崩 今天下三分 益州罷 此誠危急 存亡之秋也。선제창업미반 이중도붕조 금천하삼분 익주파폐 차성위급존망지추야]』

그러나 제갈량은 위나라와의 결전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다음해 다시 원정길에 올랐으나 五丈原(오장원)의 진중에서 병사하고 말았다. 촉한은 그 뒤 몇년을 버티다가 견디지 못하고 삼국 중에서 가장 먼저 멸망한 나라가 되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存亡之機(존망지기) | 危急存亡之秋(위급존망지추) |

轉禍爲福 (전화위복)

轉禍爲福(전화위복)

轉 구를 전 | 禍 재앙 화 | 爲 하 위, 할 위 | 福 복 복, 간직할 부 |

재앙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되다. 불행한 일이나 실패를 끊임없는 노력으로 잘 처리함으로써 거꾸로 행복의 계기로 삼는다는 말.


《사기(史記)》 열전편(列傳篇) '관안(管晏)열전'에 나온다. 관중(管仲)을 평하기를 다음과 같다고 하였다. “정치의 실재면에 있어, 번번이 화를 전환시켜 복으로 하고 실패를 전환시켜 성공으로 이끌었다. 어떤 사물에 있어서도 그 경중을 잘 파악하여 그 균형을 잃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리했다.”

전국시대 합종책(合從策)으로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제(齊), 초(楚)의 여섯 나라 재상을 겸임하였던 소진(蘇秦)도 《전국책(戰國策)》의 〈연책(燕策)〉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고 한다.

"옛날, 일을 잘 처리했던 사람은 화를 바꾸어 복이 되게 했고[轉禍爲福], 실패한 것을 바꾸어 공이 되게 하였다[因敗爲功]."

전국시대 말엽 蘇秦(소진)의 설득으로 강국 秦(진)나라에 대항하는 여섯나라의 合縱(합종), 다시 말하면 6국 동맹이 맺어져 소진은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하게 되었다. 그러나 齊(제) 魏(위) 두 나라가 진나라의 계략에 놀아나 趙(조)나라를 침으로써 잘 유지돼온 합종체제는 깨어져 버렸다. 때마침 燕(연)나라에서는 태자가 易王(이왕)이 되었는데 제나라는 또 이 정권교체의 혼란을 틈타서 연나라를 쳐 10개 성을 빼앗았다. 분개한 이왕은 소진을 불러들여 따졌다.

“우리 연나라는 그대가 주장한 합종책에 따랐을 뿐인데 이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소. 그대의 힘으로 빼앗긴 땅을 도로 찾아 주시오.” 소진은 곧바로 제나라로 가서 宣王(선왕)을 설득했다. “연나라 이왕은 진나라 혜왕의 사위입니다. 연나라 영토를 빼앗은 귀국은 앞으로 진나라와도 원수가 될 것이오.”

안색이 바뀌는 선왕을 보면서 소진은 말을 이었다. “예로부터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은 ‘재앙을 바꾸어 복을 만들었고(轉禍爲福) 실패를 성공으로 바꿔놓았다고 합니다. 빼앗은 땅을 즉각 연나라에 되돌려주는 것이 최선의 일처리 방식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연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진나라의 위세 때문에 땅을 돌려준 것으로 알고 진나라 왕도 기뻐할 것입니다.진 연 두나라와 친교를 맺게 되면 다른 왕들도 전하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약간의 땅을 버리고 천하를 얻는다면 이거야말로 覇王(패왕)의 業(업)이 아니겠습니까.” 선왕은 소진의 말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출전]
사기(史記):열전편(列傳篇):관안열전(管晏列傳) | 전국책(戰國策):연책(燕策)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禍轉爲福(화전위복) | 塞翁禍福(새옹화복) | 塞翁之馬(새옹지마) | 塞翁爲福(새옹위복) | 塞翁得失(새옹득실) | 反禍爲福(반화위복) | 轉禍爲福(전화위복) |

一觸卽發 (일촉즉발)

一觸卽發(일촉즉발)

一触即发(yíchùjífā)

一 한 일 | 觸 닿을 촉 | 卽 곧 즉 | 發 필 발 |

조금 건드리기만 해도 곧 폭발할 것 같은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형세.

may break out at any moment; be on the verge of breaking out; be triggered at any moment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風前燈火(풍전등화) | 風前燈燭(풍전등촉) | 焦眉之厄(초미지액) | 焦眉之急(초미지급) | 危如累卵(위여누란) | 燃眉之厄(연미지액) | 燒眉之急(소미지급) | 百尺竿頭(백척간두) | 累卵之危(누란지위) | 累卵之勢(누란지세) | 累碁(누기) |

吳牛喘月 (오우천월)

吳牛喘月(오우천월)

吳 나라이름 오, 성씨 오, 큰소리칠 화 | 牛 소 우 | 喘 숨찰 천 | 月 달 월 |

더운 오나라의 소는 달만 보고도 해인 줄 알고 지레 겁을 먹어 숨을 헐떡거린다는 데서 나온 말.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편(言語編)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진(晋)의 2대 황제인 혜제 때 사마염(司馬炎)의 상서령(尙書令)으로 만분(滿奮)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무제 때에는 전부터 발명되었던 유리를 창문에 이용하고 있었으나, 유리는 당시 보석처럼 귀중한 물건이어서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어느 날 만분이 무제와 같이 앉아 있는데 마침 북쪽 창이 훤히 비치는 유리병풍으로 둘러처져 있었다. 원래 기질이 약해 조금만 바람을 쐬도 감기에 자주 걸려 바람을 두려워했던 만분은, 틈이 없어 바람이 새지 않는데도 난색을 표했다. 왕이 이를 보고 웃자 만분은 말했다.

“남쪽 오(吳)나라의 물소들은 더위를 매우 싫어하여, 여름이 되면 물속에 들어가 놀거나 나무 그늘에서 쉬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입니다. 어쩌다 밤에 밝은 달을 보게 되면 그것이 태양인줄 알고 곧 숨을 헐떡이게 됩니다. 저는 마치 남쪽의 소가 달만 보아도 헐떡이는 것과 같습니다[臣猶吳牛 見月而喘].”

평생 유리창을 본 적이 없는 그가 휑하니 뚫린 북쪽창을 보고 겁을 먹는 것을 보고 내막을 아는 왕이 그것을 보고 웃자, 황공해진 만분이 왕에게 자신을 오나라의 소에게 비유한 것이다. 같은 의미로 쓰이는 우리 속담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보아도 놀란다’가 있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편(言語編)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懲羹吹虀(징갱취제) | 傷弓之鳥(상궁지조) | 傷弓之鳥(상국지조) | 驚弓之鳥(경궁지조)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보아도 놀란다 (한국속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城下之盟 (성하지맹)

城下之盟(성하지맹)

城下之盟[chéngxiàzhīméng]

城 재 성 | 下 아래 하 | 之 갈 지 | 盟 맹세 맹 |

수도(首都)의 성 밑까지 적군(敵軍)의 공격(攻擊)을 받아 할 수 없이 강화(講和)를 맹세(盟誓)하고 굳게 약속(約束)한다는 뜻으로, 대단히 굴욕적(屈辱的)인 강화(講和)나 항복(降伏)을 이르는 말


춘추좌전(春秋左傳) 환공 12년조(桓公十二年條)의 이야기.

“그 계책을 따르니 교(絞)의 사람들은 초나라의 인부 30명을 사로잡았다. 이튿날에는 교의 사람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나서서 초나라 인부들을 쫓아 산 속으로 달려갔다. 초나라 군사들이 그 북문을 지키고 산 아래에 숨어 있었으므로 교의 사람들은 대패하여 성 아래에서 맹세하고 돌아갔다[從之 絞人獲三十人 明日絞人爭出 驅楚役徒於山中 楚人坐其北門 而覆諸山下 大敗之 爲城下之盟而還].”

춘추시기, 초(楚)나라 군대가 교(絞)나라를 침공하여 교나라 도읍의 남대문에 이르렀다. 교나라 군사들은 성문을 굳게 닫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초나라 군대는 몇 차례 공격을 시도하였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이에 초나라의 장군 굴하(屈瑕)는 무왕(武王)에게 한 가지 계책을 제시하고 즉시 실행에 옮겼다.

이튿날, 초나라는 수십명의 병사들을 나뭇꾼으로 변장시켜 성곽 주변의 산에서 나무를 하는 척하게 하였다. 교나라의 군인들은 그들을 즉시 잡아와, 득의만만해 하였다. 이튿날, 초나라의 같은 작전에 속아 넘어간 교나라 군사들이 그들을 잡으러 성문을 열고 나오자, 미리 매복해있던 초나라 군사들은 교나라 도성을 포위하며, 총공격을 해들어왔다. 교나라는 순식간에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되자, 도성 아래에서 굴욕적인 맹약을 맺고 초나라의 속국이 되고 말았다.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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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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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起死回生 (기사회생)

起死回生(기사회생)

起死回生 [qǐsǐhuíshēng]

起 일어날 기 | 死 죽을 사 | 回 돌아올 회 | 生 날 생 |

죽을 뻔하다가 다시 살아나다

to bring the dying back to life—(of doctor) excellent skill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나라 애공(哀公) 원년에, 오왕(吳王) 부차(夫差)는 3년 전 아버지 합려(闔閭)가 월왕(越王)에게 패사(敗死)당하였던 원수를 갚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었지만 월왕 구천(勾踐)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였다.

노(魯)나라의 좌구명(左丘明)이 저술한 것으로 전해지는 국어(國語) 오어(吳語) 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월(越)나라의 대부(大夫) 종(種)은 구천에게 오(吳)나라에 화약(和約)을 청하도록 했고, 구천은 이를 받아들여 대부 제계영(諸稽郢)에게 오나라로 가서 화평(和平)을 청하도록 했다. 그런데 부차가 이보다 앞서 오왕 합려를 죽게 하였음에도 월나라의 은혜를 베풀어 용서를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은, 죽은 사람을 일으켜 백골에 살을 붙임이로다[起死人而肉白骨也(기사인이육백골야)]. 내 어찌 하늘의 재앙을 잊지 못하고, 감히 군왕의 은혜를 잊겠는가?”오왕 부차는 월나라에 대하여 죽은 사람을 되살려 백골에 살을 붙인 것과 같은 큰 은혜를 베풀었던 것이다.


진(秦)나라 재상 여불위(呂不韋)가 시켜 편록(編錄)한 여씨춘추(呂氏春秋) 별류(別類)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노나라 사람 공손작이 말했다.

"나는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魯人公孫綽曰 我可活死人也(노인공손작왈 아가활사인야)]."

사람들이 방법을 물어보니, 공손작은 대답하였다.

"나는 반신불수를 고칠 수 있다[人問其方 我可治半身不隨(인문기방 아가치반신불수)]. 반신불수를 고치는 약을 배로 늘리면 그것으로 죽은 사람을 살릴 것’이다[治半身不隨之藥倍增 以是起死回生矣(치반신불수지약배증 이시기사회생의)].”

여기서 ‘기사회생’이라는 말이 유래되었으며, 이 말은 우리 주위에서도 자주 인용되고 있다.


사기(史記) 편작창공(扁鵲倉公)열전에는 춘추(春秋)시대의 명의(名醫) 진월인(秦越人)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진월인은 당시 의원(醫員)이었던 장상군(長桑君)으로부터 의술을 배워 천하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전설속의 신의(神醫)인 편작(扁鵲)이라 호칭하였다.

백성들을 치료해 주며 천하를 돌던 어느 날, 그는 괵나라를 지나면서 멀쩡하던 태자(太子)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왕의 부름으로 입궐하여 태자의 상태를 검사하였다. 태자는 정말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기절한 것뿐이었다. 진월인은 태자에게 침을 놓았다. 잠시 후, 태자가 깨어나자, 그에게 처방문을 써주었다. 그의 처방대로 치료를 받은 태자는 한 달도 못되어 건강을 회복하였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진월인이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다고 칭송하였다. 그러나 그는 말하였다.

"저는 죽은 사람을 살려 낼 수 없습니다. 저는 단지 그로 하여금 일어나게 할 수 있을 뿐입니다[越人非能生死人也. 越人能使之起耳]"

起死回生(Restoration of the dead to life) 이란 죽을 병에 걸렸다가 간신히 살아남을 뜻한다.


출전

국어(國語) | 여씨춘추(呂氏春秋) | 사기(史記)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九死一生(구사일생) | 百死一生(백사일생) |

捲土重來 (권토중래)

捲土重來(권토중래)

捲 거둘 권, 말 권 | 土 흙 토, 뿌리 두, 쓰레기 차 | 重 무거울 중, 아이 동 | 來 올 래(내) |

흙먼지를 날리며 다시 온다는 뜻으로, ①한 번 실패(失敗)에 굴하지 않고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남 ②패한 자가 세력(勢力)을 되찾아 다시 쳐들어옴 ③한번 실패(失敗)하고 나서 다시 그 일에 도전(挑戰)함


漢(한)나라의 劉邦(유방)과 천하를 다툰 楚(초)나라의 項羽(항우)는 비극적인 최후를 마침으로써 문학의 소재로도 곧잘 등장한다.

초한(楚漢)이 천하를 다투던 때, 항우는 해하(垓下)에서 한나라의 포위를 빠져 나와 천신만고 끝에 오강(烏江)까지 퇴각하였다. 오강의 정장(亭長)은 항우를 위해 배를 한 척 준비해 놓고 그에게 강을 건너라고 했다. 그러난 항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거절했다. 그는 살아남은 20여명의 병사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대세를 반전시키지 못하고 31년의 생애를 자결로 마쳤다.

항우가 죽은 지 1,00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烏江(오강)을 여행하던 당나라 말기의 시인 杜牧(두목)은 옛날 그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항우를 애석해하며 제오강정(題烏江亭)이라는 시 한수를 읊는다.

勝敗兵家不可期 (승패불가병가기)
包羞忍恥是男兒 (포수인치시남아)
江東子弟多豪傑 (강동자제다재준)
捲土重來未可知 (권토중래미가지)

승패는 兵家(병가)도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니
부끄러움을 삭이면서 참는 자가 남아로다
강동의 자제들 가운데는 호걸들이 많지만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쳐들어올지 아직은 모르겠네

더 쉽게 풀이하면 「승패는 병법의 전문가도 장담할 수 없는데 당신은 남자답게 한때의 수치를 참아야 했다.게다가 강동땅엔 호걸도 많은데 왜 힘을 길러 권토중래하지 않았는가」가 된다.


출전

두목(杜牧)제오강정(題烏江亭)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死灰復燃(사회부연)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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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孤立無援 (고립무원)

孤立無援(고립무원)

孤 외로울 고 | 立 설 립(입), 자리 위 | 無 없을 무 | 援 도울 원 |

고립(孤立)되어 도움을 받을 데가 없음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四顧無親(사고무친) | 四顧無人(사고무인) | 無援孤立(무원고립) | 孤城落日(고성낙일) | 孤立無依(고립무의) |

堅壁淸野 (견벽청야)

堅壁淸野(견벽청야)

堅 굳을 견 | 壁 벽 벽 | 淸 맑을 청 | 野 들 야, 변두리 여, 농막 서 |

성벽을 견고(堅固)히 지키고, 들의 작물(作物)을 거두거나 가옥(家屋)을 철거(撤去)하여 쳐들어오는 적에게 양식(糧食)이나 쉴 곳의 편의(便宜)를 주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우세(優勢)한 적에 대(對)한 작전(作戰) 수단(手段)을 말함


중국에서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해온 방어전술의 하나이다. 해자(垓子)를 깊이 파고 성벽의 수비를 견고히 하는 한편, 들어 있는 모든 곡식을 모조리 성내로 걷어들여 공격해 오는 적의 군량미 조달에 타격을 입히는 전법으로, 이러한 전법은 우세한 적에 대한 수단으로 흔히 약자가 사용한다. 청태조(淸太祖) 누르하치의 공격을 영원성(寧遠城)을 사수(死守)함으로써 패퇴시켰던 원숭환(袁崇煥)의 견벽청야 작전은 유명하다.

《삼국지(三國志)》의 순욱전(筍彧傳)에, 위(魏)의 조조(曹操)가 영주의 복양에 진을 치고 있는 여포(呂布)를 강하게 공격하였으나 여포는 무리한 싸움을 피하고 지구전(持久戰)으로 맞섰다. 이때 서주목사(徐州牧使) 도겸(陶謙)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조조는 서주를 빼앗기 위해 군사를 돌리려 하였다. 그러나 명참모 순욱이 이 작전을 말렸다.

“도겸이 죽으면서 서주의 인심이 동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깔보는 것은 금물입니다. 지금은 보리를 걷어들일 때이므로 서주에서는 주민을 총동원해 보리를 성내로 걷어들이고 성벽을 다져 전쟁 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견벽청야’이므로 우리의 공격은 먹혀들지 않을 것이며 만일 이때 여포가 이틈을 노려 공격해 온다면 그때는 끝장입니다.”

견벽청야 전술을 모를 리 없는 순욱이 조조에게 진언하고, 조조는 서주탈환 작전을 취소하고 여포공략에 힘을 쏟아 결국에는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출전

三國志(삼국지) 荀彧傳(순욱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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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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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4급 사자성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