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進大成(동진대성)
同 한가지 동 | 進 나아갈 진, 선사 신 | 大 클 대, 큰 대, 클 태, 클 다 | 成 이룰 성 |
함께 나아가 크게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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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舟共濟 (동주공제)
同舟共濟 (동주공제)
같은 배를 타고 천(川)을 건넌다는 뜻으로 이해(利害)와 환란(患亂)을 같이 했다는 것을 뜻함.
회남자(淮南子) 병략훈(兵略訓)과 후한서(後漢書) 주목전(朱穆傳)에서 인용.
회남자:병략훈, 후한서:주목전
淮南子:兵略訓, 後漢書:朱穆傳
같은 배를 타고 천(川)을 건넌다는 뜻으로 이해(利害)와 환란(患亂)을 같이 했다는 것을 뜻함.
회남자(淮南子) 병략훈(兵略訓)과 후한서(後漢書) 주목전(朱穆傳)에서 인용.
회남자:병략훈, 후한서:주목전
淮南子:兵略訓, 後漢書:朱穆傳
同心同德 (동심동덕)
同心同德(동심동덕)
同心同德(tóngxīntóngdé)
同 한가지 동 | 心 마음 심 | 同 한가지 동 | 德 큰 덕, 덕 덕 |
사상과 행동이 완전히 일치하다. 한마음 한뜻이 되다. 같은 목표(目標)를 위해 일치단결(一致團結)된 마음을 갖다.
Be of one heart and one mind; referring to be in accordance with each other in both thinking and action.
서로 같은 마음으로 덕을 같이하는 일치단결한 마음을 말한다. 일심일덕(一心一德)이라고도 하며, 마음을 합쳐 서로 돕는다는 뜻의 동심합력(同心合力)·동심동력(同心同力)과도 비슷한 뜻이다. 《상서(尙書)》 '태서편(泰誓篇)'에 나오는 성어(成語)이다.
상(商)나라 말기, 중국 주(周)나라 문왕(文王) 희창(姬昌)의 아들 희발(姬發)은 아버지를 이어 무왕(武王:BC 1169?∼BC 1116)으로 즉위한 후, 포악한 은(殷:商)나라 주왕(紂王:BC 1154∼BC 1111)을 정벌하려고 군대를 이끌고 맹진(孟津)이라는 곳을 통해 황허강[黃河]을 건너 은나라의 도읍인 조가(朝歌)로 진격하였다.
그곳에서 무왕은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려고 조가성의 남쪽 들에서 진군의 선서식을 거행하였다. 그는 상나라 주왕의 죄상을 낱낱이 들어 밝히면서 단결하여 싸움에서 공을 세우자는 다음의 '태서(泰書)'를 발표하였다.
"주왕은 많은 군사와 관리를 거느리고 있을지라도 마음을 한데 합하지 못하였지만, 우리는 다함께 일치단결하여 하나의 목표로 마음과 덕을 같이 하고 있다 [予有亂臣十人, 同心同德]."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다같이 힘쓰고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출전
尙書(상서) 泰誓篇(태서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戮力同心(육력동심,lùlìtóngxīn) | 同心协力(동심협력,tóngxīnxiélì) | 一心一德(일심일덕) |
반의어·상대어
离心离德(이심이덕,líxīnlídé) 분열되다. 생각과 행동이 제각각이다. 반목〔불화〕하다. 마음이 모두 달라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다. 알력(軋轢)이 생기다. |
同心同德(tóngxīntóngdé)
同 한가지 동 | 心 마음 심 | 同 한가지 동 | 德 큰 덕, 덕 덕 |
사상과 행동이 완전히 일치하다. 한마음 한뜻이 되다. 같은 목표(目標)를 위해 일치단결(一致團結)된 마음을 갖다.
Be of one heart and one mind; referring to be in accordance with each other in both thinking and action.
서로 같은 마음으로 덕을 같이하는 일치단결한 마음을 말한다. 일심일덕(一心一德)이라고도 하며, 마음을 합쳐 서로 돕는다는 뜻의 동심합력(同心合力)·동심동력(同心同力)과도 비슷한 뜻이다. 《상서(尙書)》 '태서편(泰誓篇)'에 나오는 성어(成語)이다.
상(商)나라 말기, 중국 주(周)나라 문왕(文王) 희창(姬昌)의 아들 희발(姬發)은 아버지를 이어 무왕(武王:BC 1169?∼BC 1116)으로 즉위한 후, 포악한 은(殷:商)나라 주왕(紂王:BC 1154∼BC 1111)을 정벌하려고 군대를 이끌고 맹진(孟津)이라는 곳을 통해 황허강[黃河]을 건너 은나라의 도읍인 조가(朝歌)로 진격하였다.
그곳에서 무왕은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려고 조가성의 남쪽 들에서 진군의 선서식을 거행하였다. 그는 상나라 주왕의 죄상을 낱낱이 들어 밝히면서 단결하여 싸움에서 공을 세우자는 다음의 '태서(泰書)'를 발표하였다.
"주왕은 많은 군사와 관리를 거느리고 있을지라도 마음을 한데 합하지 못하였지만, 우리는 다함께 일치단결하여 하나의 목표로 마음과 덕을 같이 하고 있다 [予有亂臣十人, 同心同德]."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다같이 힘쓰고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출전
尙書(상서) 泰誓篇(태서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戮力同心(육력동심,lùlìtóngxīn) | 同心协力(동심협력,tóngxīnxiélì) | 一心一德(일심일덕) |
반의어·상대어
离心离德(이심이덕,líxīnlídé) 분열되다. 생각과 행동이 제각각이다. 반목〔불화〕하다. 마음이 모두 달라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다. 알력(軋轢)이 생기다. |
東山再起 (동산재기)
東山再起(동산재기)
東 동녘 동 | 山 뫼 산 | 再 두 재 | 起 일어날 기 |
동산(動産)에서 다시 일어난다는 뜻으로, 은퇴(隱退)한 사람이나 실패(失敗)한 사람이 재기(再起)하여 다시 세상(世上)에 나옴을 뜻함
사안(謝安)은 허난성 진군(陳郡) 양하(陽夏) 태생으로 동진(東晉) 최대의 명문 출신이다. 젊었을 때부터 재능과 식견이 뛰어나 조정에서 불렀으나 매번 사양하고 초야에 묻혀 살았다. 당시의 정치(政治) 상황이 출사(出仕)하기에 알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회계군의 동산(東山)에 집을 짓고, 아름다운 그 곳의 산수에 묻혀 왕희지(王羲之)ㆍ지둔(支遁) 등과 어울리며 시를 짓고 술을 마시는 등 풍류를 즐겼다. 양주자사(揚州刺史) 유영(庾永)이 그의 평판을 듣고 몇 번이고 출사를 청하자 마지못해 한 달 남짓 관직에 있었지만 곧 사임하고 돌아와 버렸다. 주위 사람들이 서운하게 여기자 사안은 "지금의 상황으로는 관직에 그대로 머무는 것이 신상에 해로울 것 같다."고 답하며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문벌 세력이 서로 다투고 북쪽에서는 전진(前秦)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나이 40에 이르러, 문벌 세력을 제압한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환온(桓溫)이 청하자, 마침내 그의 휘하에 들어가 이부상서(吏部尙書)의 요직에까지 진급했다. 그러나 환온이 제위를 넘보려 하자 이를 저지하고, 그 공으로 효무제(孝武帝)가 즉위한 후에는 재상(宰相)이 되었다. 당시 북쪽에서는 전진 왕 부견(符堅)이 산시, 쓰촨, 후베이 일대를 장악하고 세력을 뽐내고 있었다. 환온이 죽자, 부견은 100만 대군을 이끌고 동진을 향해 남하하기 시작했다. 사안은 아우 사석(謝石)과 형의 아들 사현(謝玄), 그리고 유뇌지(劉牢之) 등을 앞세워 비수(底水)에서 전진군을 크게 무찔렀다.
동산재기란 이와 같이 사안이 동산에 은거하다가 관계에 나가 크게 성공한 것을 가리키던 말로, 오늘날에는 한번 실패했던 사람이 재기에 성공한 경우에까지 이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출전
晉書(진서) 謝安傳(사안전)
東 동녘 동 | 山 뫼 산 | 再 두 재 | 起 일어날 기 |
동산(動産)에서 다시 일어난다는 뜻으로, 은퇴(隱退)한 사람이나 실패(失敗)한 사람이 재기(再起)하여 다시 세상(世上)에 나옴을 뜻함
사안(謝安)은 허난성 진군(陳郡) 양하(陽夏) 태생으로 동진(東晉) 최대의 명문 출신이다. 젊었을 때부터 재능과 식견이 뛰어나 조정에서 불렀으나 매번 사양하고 초야에 묻혀 살았다. 당시의 정치(政治) 상황이 출사(出仕)하기에 알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회계군의 동산(東山)에 집을 짓고, 아름다운 그 곳의 산수에 묻혀 왕희지(王羲之)ㆍ지둔(支遁) 등과 어울리며 시를 짓고 술을 마시는 등 풍류를 즐겼다. 양주자사(揚州刺史) 유영(庾永)이 그의 평판을 듣고 몇 번이고 출사를 청하자 마지못해 한 달 남짓 관직에 있었지만 곧 사임하고 돌아와 버렸다. 주위 사람들이 서운하게 여기자 사안은 "지금의 상황으로는 관직에 그대로 머무는 것이 신상에 해로울 것 같다."고 답하며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문벌 세력이 서로 다투고 북쪽에서는 전진(前秦)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나이 40에 이르러, 문벌 세력을 제압한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환온(桓溫)이 청하자, 마침내 그의 휘하에 들어가 이부상서(吏部尙書)의 요직에까지 진급했다. 그러나 환온이 제위를 넘보려 하자 이를 저지하고, 그 공으로 효무제(孝武帝)가 즉위한 후에는 재상(宰相)이 되었다. 당시 북쪽에서는 전진 왕 부견(符堅)이 산시, 쓰촨, 후베이 일대를 장악하고 세력을 뽐내고 있었다. 환온이 죽자, 부견은 100만 대군을 이끌고 동진을 향해 남하하기 시작했다. 사안은 아우 사석(謝石)과 형의 아들 사현(謝玄), 그리고 유뇌지(劉牢之) 등을 앞세워 비수(底水)에서 전진군을 크게 무찔렀다.
동산재기란 이와 같이 사안이 동산에 은거하다가 관계에 나가 크게 성공한 것을 가리키던 말로, 오늘날에는 한번 실패했던 사람이 재기에 성공한 경우에까지 이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출전
晉書(진서) 謝安傳(사안전)
同床異夢 (동상이몽)
同床異夢(동상이몽)
같은 잠자리에 누워 자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꾼다. 행동은 같이 하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의미.
삼성경제연구소의 곽수종, 최명해 수석연구원은 서로의 전략적 불신을 확인했다는 의미에서 2010년 미국과 중국관계를 표현하는 한자성어로 선정
같은 잠자리에 누워 자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꾼다. 행동은 같이 하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의미.
삼성경제연구소의 곽수종, 최명해 수석연구원은 서로의 전략적 불신을 확인했다는 의미에서 2010년 미국과 중국관계를 표현하는 한자성어로 선정
同病相憐 (동병상련)
同病相憐(동병상련)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걱정한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동정하고 돕는다는 뜻.
전국시대 楚(초)나라의 소부라는 벼슬을 하고 있던 비무기의 모함으로 아버지와 형이 죽음을 당하자 伍子胥(오자서)는 복수를 맹세하고 吳(오)나라로 몸을 피했다.
7년 뒤 오자서는 왕위를 노리는 공자 光(광)을 도와 왕을 弑害(시해)하고 그를 왕위에 앉혔다. 광은 임금이 되자 오왕 闔閭(합려)라 칭하고 오자서에게는 대부 벼슬을 주어 중용하고 나라 일을 자문했다. 오자서가 반역에 적극 가담한 것은 광의 힘을 빌려 아버지와 형의 원수를 갚으려는 의도에서였다.
어느날 초나라에서 백비라는 망명객이 찾아왔다. 그 역시 비무기의 모함으로 아버지가 죽음을 당한 처지였다. 오자서는 그를 합려에게 천거하여 대부가 되게 했다. 그러자 피리라는 중신이 오자서에게 따졌다.
『백비의 눈은 매와 같고 걸음걸이는 범을 닮았소. 그것은 살인할 惡相(악상)이오. 그런 그를 딱 한번 보고 그토록 신임하시는 이유가 뭐요』
오자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와 내가 같은 원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오. 왜 何上歌(하상가)에도 있지 않소.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기고 (同病相憐) 같은 근심을 가진 사람끼리 서로 돌보아주네(同憂相救․동우상구)라고』
9년뒤 오자서와 백비는 합려를 도와 초나라를 깨뜨리고 원수를 갚았다. 그러나 그 뒤 피리가 본대로 백비는 오자서에게 은혜를 원수로 갚고 만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걱정한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동정하고 돕는다는 뜻.
전국시대 楚(초)나라의 소부라는 벼슬을 하고 있던 비무기의 모함으로 아버지와 형이 죽음을 당하자 伍子胥(오자서)는 복수를 맹세하고 吳(오)나라로 몸을 피했다.
7년 뒤 오자서는 왕위를 노리는 공자 光(광)을 도와 왕을 弑害(시해)하고 그를 왕위에 앉혔다. 광은 임금이 되자 오왕 闔閭(합려)라 칭하고 오자서에게는 대부 벼슬을 주어 중용하고 나라 일을 자문했다. 오자서가 반역에 적극 가담한 것은 광의 힘을 빌려 아버지와 형의 원수를 갚으려는 의도에서였다.
어느날 초나라에서 백비라는 망명객이 찾아왔다. 그 역시 비무기의 모함으로 아버지가 죽음을 당한 처지였다. 오자서는 그를 합려에게 천거하여 대부가 되게 했다. 그러자 피리라는 중신이 오자서에게 따졌다.
『백비의 눈은 매와 같고 걸음걸이는 범을 닮았소. 그것은 살인할 惡相(악상)이오. 그런 그를 딱 한번 보고 그토록 신임하시는 이유가 뭐요』
오자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와 내가 같은 원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오. 왜 何上歌(하상가)에도 있지 않소.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기고 (同病相憐) 같은 근심을 가진 사람끼리 서로 돌보아주네(同憂相救․동우상구)라고』
9년뒤 오자서와 백비는 합려를 도와 초나라를 깨뜨리고 원수를 갚았다. 그러나 그 뒤 피리가 본대로 백비는 오자서에게 은혜를 원수로 갚고 만다.
東問西答 (동문서답)
東問西答(동문서답)
東 동녘 동 | 問 물을 문 | 西 서녘 서 | 答 대답 답 |
동쪽을 묻는데 서쪽을 대답한다는 뜻으로, 묻는 말에 대한 전혀 엉뚱한 대답(對答)을 함.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問東答西(문동답서) |
東 동녘 동 | 問 물을 문 | 西 서녘 서 | 答 대답 답 |
동쪽을 묻는데 서쪽을 대답한다는 뜻으로, 묻는 말에 대한 전혀 엉뚱한 대답(對答)을 함.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問東答西(문동답서) |
東道主 (동도주)
동도주(東道主)
東(동녘 동) 道(길 도) 主(주인 주)
동쪽으로 가는 데 길을 안내(案內)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주인(主人) 또는 주인의 역할(役割)을 하는 사람을 비유하는말.
진(晉) 헌공의 아들 중이는 19년 동안 각 나라를 떠돌다가, 정(鄭)나라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정나라는 그에게 극히 비우호적인 대접을 하여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다. 중이는 귀국하여 왕위에 오르자, 복수를 하기 위해 진(秦)나라와 연합하여 정나라를 공격하였다. 때는 기원전 627년 9월.
눈앞에 적들이 밀어닥치자 정 문공(文公)은 겁을 먹고 대신들을 불러모아 대책을 논의하였다. 대부 질지호(佚之狐)가 먼저 의견을 내놓았다.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만약 촉지무(燭之武)를 보내어 진(秦)나라 군주를 만나게 한다면, 진나라는 철군할 것 같습니다."
촉지무는 언변(言辯)이 뛰어나고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여태껏 조정에서 크게 쓰이지 못해 불만이 많았다. 촉지무는 정 문공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맡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정 문공은 계속하여 그를 설득하였다.
"내가 일찍이 그대를 중용하지 않다가, 이제야 다급하게 그대에게 이 일을 맡기고자 하니, 이는 나의 잘못이오."
촉지무는 불만이 다소 풀렸다. 밤이 되자 촉지무는 밧줄을 타고 성을 빠져나가 진나라 진영으로 향했다. 그러나 진나라 병사들이 그를 막자, 촉지무는 성벽에 밧줄로 자신의 몸을 묶은 채 대성통곡하기 시작하였다. 진나라 병사들은 하는 수 없이 그를 진나라 목공에게 데려 갔다.
"너는 왜 그리 울었더냐?"
"저는 정나라의 멸망 때문에 통곡을 하였으며, 진나라에 대해서는 슬픔을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진(秦)과 진(晉)의 대군이 우리 정나라를 포위하고 공격을 하니 정나라는 망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정나라는 진(秦)나라와 영토가 붙어있지 않습니다.
진(秦)나라는 서쪽에, 정나라는 동쪽에 있으며 그 가운데는 진(晉)나라가 막고 있습니다. 때문에 정나라가 망한 뒤에 영토는 진(晉)나라로 병합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진(晉)나라의 국력은 점차 강대해질 것이고, 진나라는 상대적으로 약해질 것입니다. 진나라는 무엇 때문에 남의 세력은 키워주면서 자신의 힘은 줄이는 것입니까? 만약 저희 정나라를 그대로 두시고 동쪽 진출의 길 안내역으로 삼으시고. 사신(使臣)들의 왕래에 부족한 물자를 공급하게 하신다면, 진(秦)나라 입장에서도 손해됨이 없을 것입니다(若舍鄭以爲東道主, 行李之往來, 供其乏困, 君亦無所害)."
진(秦)나라 목공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이를 좋아하며 즉각 군대를 철수하는 한편, 기자(杞子), 봉손(逢孫), 양손(揚孫) 등 사람을 남겨두어 정나라 도읍의 방위를 돕게 하였다. 얼마 후에는 진(晉)나라 군대도 그곳을 떠났다.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僖公 30年條
東(동녘 동) 道(길 도) 主(주인 주)
동쪽으로 가는 데 길을 안내(案內)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주인(主人) 또는 주인의 역할(役割)을 하는 사람을 비유하는말.
진(晉) 헌공의 아들 중이는 19년 동안 각 나라를 떠돌다가, 정(鄭)나라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정나라는 그에게 극히 비우호적인 대접을 하여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다. 중이는 귀국하여 왕위에 오르자, 복수를 하기 위해 진(秦)나라와 연합하여 정나라를 공격하였다. 때는 기원전 627년 9월.
눈앞에 적들이 밀어닥치자 정 문공(文公)은 겁을 먹고 대신들을 불러모아 대책을 논의하였다. 대부 질지호(佚之狐)가 먼저 의견을 내놓았다.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만약 촉지무(燭之武)를 보내어 진(秦)나라 군주를 만나게 한다면, 진나라는 철군할 것 같습니다."
촉지무는 언변(言辯)이 뛰어나고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여태껏 조정에서 크게 쓰이지 못해 불만이 많았다. 촉지무는 정 문공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맡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정 문공은 계속하여 그를 설득하였다.
"내가 일찍이 그대를 중용하지 않다가, 이제야 다급하게 그대에게 이 일을 맡기고자 하니, 이는 나의 잘못이오."
촉지무는 불만이 다소 풀렸다. 밤이 되자 촉지무는 밧줄을 타고 성을 빠져나가 진나라 진영으로 향했다. 그러나 진나라 병사들이 그를 막자, 촉지무는 성벽에 밧줄로 자신의 몸을 묶은 채 대성통곡하기 시작하였다. 진나라 병사들은 하는 수 없이 그를 진나라 목공에게 데려 갔다.
"너는 왜 그리 울었더냐?"
"저는 정나라의 멸망 때문에 통곡을 하였으며, 진나라에 대해서는 슬픔을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진(秦)과 진(晉)의 대군이 우리 정나라를 포위하고 공격을 하니 정나라는 망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정나라는 진(秦)나라와 영토가 붙어있지 않습니다.
진(秦)나라는 서쪽에, 정나라는 동쪽에 있으며 그 가운데는 진(晉)나라가 막고 있습니다. 때문에 정나라가 망한 뒤에 영토는 진(晉)나라로 병합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진(晉)나라의 국력은 점차 강대해질 것이고, 진나라는 상대적으로 약해질 것입니다. 진나라는 무엇 때문에 남의 세력은 키워주면서 자신의 힘은 줄이는 것입니까? 만약 저희 정나라를 그대로 두시고 동쪽 진출의 길 안내역으로 삼으시고. 사신(使臣)들의 왕래에 부족한 물자를 공급하게 하신다면, 진(秦)나라 입장에서도 손해됨이 없을 것입니다(若舍鄭以爲東道主, 行李之往來, 供其乏困, 君亦無所害)."
진(秦)나라 목공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이를 좋아하며 즉각 군대를 철수하는 한편, 기자(杞子), 봉손(逢孫), 양손(揚孫) 등 사람을 남겨두어 정나라 도읍의 방위를 돕게 하였다. 얼마 후에는 진(晉)나라 군대도 그곳을 떠났다.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僖公 30年條
東家食西家宿 (동가식서가숙)
東家食西家宿 (동가식서가숙)
‘東家食西家宿’ 고사는 ‘동쪽 집에서 먹고 서쪽 집에서 잔다.’는 뜻
본래 고사는 ‘욕심이 지나친 탐욕스러운 사람’의 의미로 표현된 것이지만, 현대에서는 보통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면서 얻어먹고 사는 경우나 혹은 주소가 일정하지 않은 사람을 비유해서 활용되어 ‘바람을 맞으며 밥을 먹고 이슬을 맞으며 잠을 잔다’는 ‘風餐露宿(풍찬노숙)’과 유사한 의미로도 사용.
하지만 고사의 유래로 접근해서 보면 자기 정체성을 버리고 이익을 위해 휩쓸리는 저속한 인간의 속성을 비판하는 속뜻이 본래 고사가 주장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당(唐)나라 고종(高宗)의 명으로 구양순(歐陽詢)이 저술한 일종의 백과사전식 저서인 《예문유취(藝文類聚)》에 출전을 두고 있는데, 송(宋)나라때 이방이라는 사람이 지은 역시 일종의 백과사전류의 서적인《천평어람(天平御覽)》에도 실려있는 고사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옛날 제나라에 한 처녀가 있었다. 그녀에게 두 집안에서 함께 청혼이 들어왔다. 그런데 동쪽 집 총각은 못 생겼으나 부자였고, 서쪽 집 총각은 인물이 출중했지만 가난했다. 난처해져 결정을 못한 처녀의 부모는 딸에게 의중을 물어 시집갈 곳을 정하려 하였다.
“지적해서 말하기가 어렵거든, 좌우 중 한쪽 어깨를 벗어서 우리가 알게 하거라..”
그러자 딸은 문득 양쪽 어깨를 모두 벗어 버리고는 놀라서 그 까닭을 묻는 부모에게 이렇게 말했다.
“낮엔 동쪽 집에 가서 먹고, 밤엔 서쪽 집에 가서 자려고 해요."
원문
齊人有女. 二人求見, 東家子醜而富, 西家子好而貧. 父母疑而不能決, 問其女, 定所欲適, "難指斥言者, 偏袒, 令我知之." 女便兩袒1). 怪問其故, 云 "欲東家食西家宿."
藝文類聚
주1) 偏袒(편단): 한쪽 어깨를 벗다. 불가의 법의를 우견편단(右肩偏袒)하거나, 상례(喪禮)에서 상주가 偏袒하는 사례가 있음.
http://hanja.pe.kr/han_2/h2_40.htm
‘東家食西家宿’ 고사는 ‘동쪽 집에서 먹고 서쪽 집에서 잔다.’는 뜻
본래 고사는 ‘욕심이 지나친 탐욕스러운 사람’의 의미로 표현된 것이지만, 현대에서는 보통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면서 얻어먹고 사는 경우나 혹은 주소가 일정하지 않은 사람을 비유해서 활용되어 ‘바람을 맞으며 밥을 먹고 이슬을 맞으며 잠을 잔다’는 ‘風餐露宿(풍찬노숙)’과 유사한 의미로도 사용.
하지만 고사의 유래로 접근해서 보면 자기 정체성을 버리고 이익을 위해 휩쓸리는 저속한 인간의 속성을 비판하는 속뜻이 본래 고사가 주장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당(唐)나라 고종(高宗)의 명으로 구양순(歐陽詢)이 저술한 일종의 백과사전식 저서인 《예문유취(藝文類聚)》에 출전을 두고 있는데, 송(宋)나라때 이방이라는 사람이 지은 역시 일종의 백과사전류의 서적인《천평어람(天平御覽)》에도 실려있는 고사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옛날 제나라에 한 처녀가 있었다. 그녀에게 두 집안에서 함께 청혼이 들어왔다. 그런데 동쪽 집 총각은 못 생겼으나 부자였고, 서쪽 집 총각은 인물이 출중했지만 가난했다. 난처해져 결정을 못한 처녀의 부모는 딸에게 의중을 물어 시집갈 곳을 정하려 하였다.
“지적해서 말하기가 어렵거든, 좌우 중 한쪽 어깨를 벗어서 우리가 알게 하거라..”
그러자 딸은 문득 양쪽 어깨를 모두 벗어 버리고는 놀라서 그 까닭을 묻는 부모에게 이렇게 말했다.
“낮엔 동쪽 집에 가서 먹고, 밤엔 서쪽 집에 가서 자려고 해요."
원문
齊人有女. 二人求見, 東家子醜而富, 西家子好而貧. 父母疑而不能決, 問其女, 定所欲適, "難指斥言者, 偏袒, 令我知之." 女便兩袒1). 怪問其故, 云 "欲東家食西家宿."
藝文類聚
주1) 偏袒(편단): 한쪽 어깨를 벗다. 불가의 법의를 우견편단(右肩偏袒)하거나, 상례(喪禮)에서 상주가 偏袒하는 사례가 있음.
http://hanja.pe.kr/han_2/h2_4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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