騎虎之勢 (기호지세)

騎虎之勢(기호지세)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듯한 기세. 곧, 중도에서 그만둘 수 없는 형세를 말한다.

일단 호랑이 등에 올라타게 되면 도중에서 내리지 말아야 한다.내리게 되면 호랑이 밥이 되고 마니까. 그대로 호랑이와 함께 가는 곳까지 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남북조시대 북조 최후의 왕조인 北周(북주)의 宣帝(선제)가 죽자 재상자리에 있던 楊堅(양견)은 지금이야말로 이민족을 몰아내고 漢族(한족)이 천하를 되찾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한족인 그는 평소에 이민족에게 점령당하고 있는 것을 비통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판국에 선제가 죽었다.

선제의 아들이 어리고 똑똑하지 못함을 기화로 帝位(제위)를 양도받아 국호를 隋(수)라 일컫고 8년후에는 남조의 진을 멸망시켜 천하를 통일했다. 양견이 수의 文帝(문제)가 된 것이다. 이에 앞서 양견이 북주의 왕권을 빼앗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 뒷날 독고황후가 된 그의 부인이 사람을 보내어 이런 말을 전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이상 도중에서 내릴 수 없습니다(騎虎之勢 不得下虎). 도중에서 내린다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말 것이니까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호랑이와 함께 가야 합니다. 이미 큰 일을 도모한 이상 도중에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부디 목적을 달성하도록 노력해 주십시오』

이러한 아내의 말에 양견이 크게 고무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마침내 그는 수나라의 건국자가 되었다.

騎虎難下 (기호난하)

騎虎難下(기호난하)

騎 말탈 기 | 虎 범 호 | 難 어려울 난, 우거질 나 | 下 아래 하 |

호랑이를 타고 달리다가 도중(途中)에서 내릴 수 없다는 뜻으로, 무슨 일을 하다가 도중(途中)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形勢)를 이르는 말

Needs must when the devil drives


수서(隋書) 독고황후전(獨孤皇后傳)에는 수나라의 건국에 관한 대목이 있다.

남북조(南北朝)시기, 북주(北周)의 자사(刺史)인 양견(楊堅)은 북주 대사마 독고신(獨孤信)의 딸을 부인으로 맞았다. 독고신의 또 다른 딸은 주나라 명제(明帝)와 결혼하여 황후가 되었으며, 양견은 또 자신의 맏딸을 명제의 아들인 선제(宣帝)에게 시집보내어 황후가 되게 하였다.

서기 580년, 선제가 세상을 떠나자 8세된 정제(靜帝)가 자리를 계승하였다. 이때 양견은 정제를 보좌하며 쉽게 국가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의 아내 독고씨는 양견이 이미 조정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판단하여 그에게 제위를 차지하도록 종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라의 일이 이미 이렇게 된 바, 당신은 맹수의 등에 올라탄 것과 같으니, 내릴 수 없는 일입니다[大事已然, 騎獸之勢, 必不得下]."

581년 3월 정변(政變)을 일으킬 시기가 되었다고 확신한 양견은 마침내 정제를 죽이고 제위에 올랐으니, 그가 바로 수(隋)나라 문제(文帝)였다.

騎虎難下(Needs must when the devil drives)는 騎虎之勢라고도 하는데, 이는 이미 시작된 일을 중도에서 그만 둘 수 없음 을 비유한 말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騎虎之勢(기호지세) | 騎獸之勢(기수지세) |

耆婆扁鵲 (기파편작)

耆婆扁鵲(기파편작)

耆婆扁鹊(qí pó biǎn què)

耆 늙은이 기 | 婆 할미 파 | 扁 작을 편 | 鵲 까치 작


기파는 고대 인도의 명의(名醫)이고, 편작은 중국 전국시대의 명의.


기파는 석가의 제자로 후세에 장수(長壽)의 신, 의사의 조상이 된 사람인데, 이들 두 사람을 합하여 명의의 대표적인 예로 삼는다. '기파편작도 미치지 못하는 일'이라고 하면 어떠한 명의도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다는 뜻으로, 불가능한 일을 말한다.


관련 한자어

用管窺天(용관규천) |

企者不立 (기자불립)

企者不立(기자불립)

企 꾀할 기 | 者 놈 자 | 不 아닐 부, 아닐 불 | 立 설 립, 설 입, 자리 위 |

발꿈치를 드는 사람은 오래 서 있지 못한다.

[출전]
노자 24장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企者不立跨者不行(기자불립과자불행) |

企者不立跨者不行 (기자불립과자불행)

企者不立 跨者不行(기자불립 과자불행)

까치발로는 오래 서있지 못하고 가랑이를 한껏 벌려 걸으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 노자 도덕경

까치발로 멀리 볼 필요도 있고 큰 걸음으로 욕심을 내 볼 필요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자세, 즉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미로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2011년 금융기관의 리스크관리와 내실 경영을 강조하면 한 말.

杞憂 (기우)

杞憂(기우)

杞人之憂의 준말로 기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장래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


周王朝(주왕조)때 杞라는 조그마한 나라가 있었다. 이 杞나라에 한 사나이가 있었는데 이 사나이는 만약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면 몸둘 곳이 없어진다고 걱정하여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밥도 목으로 넘기질 못했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한 친구가 찾아와서 말해 주었다.

『여보게, 하늘이란 氣(기)가 쌓여서 이루어진 것에 지나지 않고 氣는 어디에나 있는 것이네. 우리가 몸을 구부렸다 폈다 하는 것도 언제나 하늘 속에서 하고 있는 것이니 하늘이 무너진다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네』

『하늘이 정말로 氣가 쌓여 이루어진 것이라면 해와 달과 별들이 떨어져 내려올 것이 아닌가』

『해나 달이나 별도 역시 氣가 쌓여 있는데다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떨어진다고 해도 사람이 다칠 염려는 없고 지금까지 그것들이 떨어져 내린 일이 없지 않은가』

『그건 그렇다치고 땅은 왜 꺼지지 않는가』

『땅이란 흙이 쌓이고 쌓여 사방이 꽉 차 있어서 아무리 뛰어다녀도 땅은 꺼지지 않고 그대로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땅이 꺼진다고 걱정할텐가』

친구의 설명을 들은 사나이는 비로소 마음이 놓여 크게 기뻐했다.

列子(열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하늘과 땅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도 잘못 말한 것이다. 무너진다든가 안 무너진다든가 하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삶은 죽음을 모르고 죽음은 삶을 모른다. 그런데 어찌 천지가 무너지고 않고를 우리가 마음속에 담아서 생각할 수 있겠는가』


동의어

杞人之憂(기인지우)

己欲立而立人 (기욕립이립인)

己欲立而立人(기욕립이립인)

무릇 인자(仁者)는 자신이 출세하고 싶으면 남을 먼저 출세하게 하고, 자신이 어떤 목표에 도달하려 한다면 남을 먼저 도달하게 한다.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유교에서 보는 윤리의 적극적 준칙.

출전: 논어 옹야편

旣往不咎 (기왕불구)

旣往不咎(기왕불구)

旣往不咎(jìwǎngbùjiù)

旣 이미 기, 쌀 희 | 往 갈 왕 | 不 아닐 불, 아닐 부 | 咎 허물 구, 큰 북 고 |

이미 지나간 일은 어찌할 도리(道理)가 없고, 오직 장래(將來)의 일만 잘 삼가야 한다는 말

成事不說, 遂事不諫, 旣往不咎。(성사불설수사불간기왕불구)

Things that are done, it is needless to speak about...things that are past, it is needless to blame.

[출전]
論語(논어) 八佾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不念舊惡(불념구악) |

近悅遠來 (근열원래)

近悅遠來(근열원래)

近 가까울 근, 어조사 기 | 悅 기쁠 열 | 遠 멀 원 | 來 올 래(내) |

부근(附近)에 있는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먼 곳의 사람들이 흠모(欽慕)하여 모여든다는 뜻으로, 德(덕)이 널리 미침을 이르는 말


논어 자로(子路)편의 이야기.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공자(孔子)는 열국(列國)을 주유(周遊)하였다. 위(衛), 조(曹), 송(宋), 정(鄭), 채(蔡) 등의 나라를 돌다가 당시 초(楚)나라에 속해 있던 섭읍(葉邑)에 이르렀다. 이 당시 초(楚)나라에는 심제량(沈諸梁)이라는 대부(大夫)가 있었는데, 그의 봉지(封地)가 섭읍이었으므로, 스스로 섭공(葉公)이라 했다.

섭공은 공자를 보고, 그에게 정(政) 에 대해 가르침을 청했다. 공자는 이 물음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은 언급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政)이란, 가까운 데서는 기뻐하고, 먼데서는 오는 것입니다[近者悅, 遠者來].

백성들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잘하면 가까운 곳의 백성들은 즐거워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백성들도 정치를 잘한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모여든다는 뜻이다.


출전

논어(論語) 자로(子路)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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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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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寄與補裨 (기여보비)

寄與補裨(기여보비)

이바지하여 돕고 부족함을 보태어 준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어려운 서민들의 모자라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채워준다는 자세로 능동적 복지사회를 구현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하며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


2011년 | 새해 사자성어

己所不慾勿施於人 (기소불욕물시어인)

己所不慾勿施於人(기소불욕물시어인)

己 자기 기 l 所 바 소 l 不 아니 불 l 欲 욕심 욕, 하고자 할 욕 l 勿 말 물 l 施 베풀 시 l 於 어조사 어 l 人 사람 인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르는 말.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라는 뜻으로, 자기 스스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공자(孔子:BC 552∼BC 479)의 가르침을 전하는 《논어(論語)》'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중국 춘추시대 위(衛)나라의 유학자 자공(子貢:BC 520?∼BC 456?)이 공자에게 "제가 평생 동안 실천할 수 있는 한 마디의 말이 있습니까[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하고 묻자,

공자는 "그것은 바로 용서의 '서(恕)'이다[其恕乎].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己所不欲勿施於人]"라고 말하였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다른 사람도 마땅히 하기 싫어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내가 상대편에게 굽실거리고 싶지 않으면 상대편도 나에게 굽실거리는 것을 바라지 말아야 하듯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며 용서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관련 명언

동의어·유의어

¶ 己所不欲,勿施於人。 (論語 衛靈公)
What you do not want done to yourself, do not do to others. (Wei Ling Gong, The Analects)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 (논어 위령공편)

¶ Do to others whatever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MATTHEW 7:12)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마태오 복음서 7:12)

¶ 自利利他,如鳥兩翼。 (華嚴經普賢行願品)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로우면 새의 양쪽 날개와 같다. (화엄경 보현행원품)

其善下之爲百谷王 (기선하지위백곡왕)

其善下之爲百谷王(기선하지위백곡왕)

자기자신을 낮추기 때문에 온갖 시냇물의 왕이 될 수 있다.

以其善下之, 故能爲百谷王(이기선하지 고능위백곡왕)

[출전]
노자 66장

起死回生 (기사회생)

起死回生(기사회생)

起死回生 [qǐsǐhuíshēng]

起 일어날 기 | 死 죽을 사 | 回 돌아올 회 | 生 날 생 |

죽을 뻔하다가 다시 살아나다

to bring the dying back to life—(of doctor) excellent skill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나라 애공(哀公) 원년에, 오왕(吳王) 부차(夫差)는 3년 전 아버지 합려(闔閭)가 월왕(越王)에게 패사(敗死)당하였던 원수를 갚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었지만 월왕 구천(勾踐)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였다.

노(魯)나라의 좌구명(左丘明)이 저술한 것으로 전해지는 국어(國語) 오어(吳語) 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월(越)나라의 대부(大夫) 종(種)은 구천에게 오(吳)나라에 화약(和約)을 청하도록 했고, 구천은 이를 받아들여 대부 제계영(諸稽郢)에게 오나라로 가서 화평(和平)을 청하도록 했다. 그런데 부차가 이보다 앞서 오왕 합려를 죽게 하였음에도 월나라의 은혜를 베풀어 용서를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은, 죽은 사람을 일으켜 백골에 살을 붙임이로다[起死人而肉白骨也(기사인이육백골야)]. 내 어찌 하늘의 재앙을 잊지 못하고, 감히 군왕의 은혜를 잊겠는가?”오왕 부차는 월나라에 대하여 죽은 사람을 되살려 백골에 살을 붙인 것과 같은 큰 은혜를 베풀었던 것이다.


진(秦)나라 재상 여불위(呂不韋)가 시켜 편록(編錄)한 여씨춘추(呂氏春秋) 별류(別類)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노나라 사람 공손작이 말했다.

"나는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魯人公孫綽曰 我可活死人也(노인공손작왈 아가활사인야)]."

사람들이 방법을 물어보니, 공손작은 대답하였다.

"나는 반신불수를 고칠 수 있다[人問其方 我可治半身不隨(인문기방 아가치반신불수)]. 반신불수를 고치는 약을 배로 늘리면 그것으로 죽은 사람을 살릴 것’이다[治半身不隨之藥倍增 以是起死回生矣(치반신불수지약배증 이시기사회생의)].”

여기서 ‘기사회생’이라는 말이 유래되었으며, 이 말은 우리 주위에서도 자주 인용되고 있다.


사기(史記) 편작창공(扁鵲倉公)열전에는 춘추(春秋)시대의 명의(名醫) 진월인(秦越人)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진월인은 당시 의원(醫員)이었던 장상군(長桑君)으로부터 의술을 배워 천하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전설속의 신의(神醫)인 편작(扁鵲)이라 호칭하였다.

백성들을 치료해 주며 천하를 돌던 어느 날, 그는 괵나라를 지나면서 멀쩡하던 태자(太子)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왕의 부름으로 입궐하여 태자의 상태를 검사하였다. 태자는 정말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기절한 것뿐이었다. 진월인은 태자에게 침을 놓았다. 잠시 후, 태자가 깨어나자, 그에게 처방문을 써주었다. 그의 처방대로 치료를 받은 태자는 한 달도 못되어 건강을 회복하였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진월인이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다고 칭송하였다. 그러나 그는 말하였다.

"저는 죽은 사람을 살려 낼 수 없습니다. 저는 단지 그로 하여금 일어나게 할 수 있을 뿐입니다[越人非能生死人也. 越人能使之起耳]"

起死回生(Restoration of the dead to life) 이란 죽을 병에 걸렸다가 간신히 살아남을 뜻한다.


출전

국어(國語) | 여씨춘추(呂氏春秋) | 사기(史記)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九死一生(구사일생) | 百死一生(백사일생) |

己飢己溺 (기기기익)

己飢己溺(기기기익)

己 자기 기 | 飢 굶주릴 기 | 己 자기 기 | 溺 빠질 익(닉), 오줌 뇨(요), 약할 약 |

자기가 굶주리고 자기가 물에 빠진 듯이 생각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겨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함

요(堯)의 치세에 대해 황하의 범람이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요는 누군가에게 치수(治水)를 시키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때, 모두가 입을 모아 곤(鯀)을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요는 곤을 쓰는 것을 꺼렸지만 신하들이 곤보다 영리한 자가 없다고 했으므로, 요임금은 곤에게 치수의 임무를 맡겼다.

그러나 9년이 지나도 범람이 진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요는 곤을 대신해 순을 등용했다. 순이 곤이 치수한 모습을 시찰하고 있었는데, 곤은 우산에서 죽어 있었다.

사람들은 순이 곤을 죽인 것은 아닌가 의심했으므로 순은 곤의 아들인 우(禹)에게 이 일을 맡겼는데, 우는 13년후 치수에 성공하였다.

또한 직(稷)이라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농업을 좋아하여 항상 곡식의 종자를 모아 땅에 심었다. 후에는 간단한 농기구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농경지식을 전수해 주었다고 한다.

전국(戰國)시대, 맹자(孟子)는 말했다.

"우와 직과 안회는 같은 길을 걸었다. 우는 천하에 물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자신 때문에 물에 빠진 듯이 생각하였고, 직은 천하에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 때문에 굶주리는 듯이 여겼다(禹稷顔回同道 禹思天下有溺者 由己溺之也 稷思天下有飢者 由己飢之也). 이로 인해 그렇듯 급하게 행동했던 것이다. 우와 직과 안회는 그 처지를 바꾸더라도 다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제 같은 집안 사람으로서 싸우는 이가 있다면, 그를 구하는 데 비록 머리털을 풀어헤치고 갓을 동여맨 채 구하더라도 괜찮다."

맹자가 우와 직과 안회의 도(道)가 같음을 말하는 대목이다. 기기기익은 위의 글에서 유래한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우는 마치 자신이 치수(治水)를 잘못해 그 사람이 물에 빠진 것처럼 생각했고,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직은 마치 자신이 정치를 잘 못했기 때문에 굶주리는 것처럼 생각해 자신의 집 대문 앞을 지나더라도 집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급하게 행동했다는 말이다.

《맹자(孟子)》'이루하(離婁下)'의 '우직안회동도장(禹稷顔回同道章)'에 나오는 이야기다.

己飢己溺은 인익기익(人溺己溺), 인기기기(人飢己飢)라고도 하며, 지금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책임을 다함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己飢己溺(기기기익) | 人飢己飢(인기기기) | 人溺己溺(인익기익) |

氣高萬丈 (기고만장)

氣高萬丈(기고만장)

기운이 만장의 높이에 이른다. 지나치게 우쭐대거나 또는 화가 나다

騏麟之衰也 (기린지쇠야)

騏麟之衰也 (기린지쇠야)

骐麟之衰也(qílínzhīshuāiyě)

騏 준마 기 | 麟 기린 린,기린 인 | 之 갈 지 | 衰 쇠할 쇠,상옷 최,도롱이 사 | 也 이끼 야,어조사 야,잇달을 이 |


기린이 쇠약해지면 둔한 말이 먼저 간다는 말로, 젊었을 때의 패기와 지혜는 나이가 먹으면서 감소해짐을 비유하고 있다. 騏麟之衰也 또는 麒驥之衰也라고 한다.


전국시대의 세객 중 소진이라는 자가 있었다. 소진을 동주의 낙양 사람으로 귀곡 선생에게 학문을 배웠다. 그는 처음 본국을 떠나 수년 동안 유세하였으나 큰 곤란만 겪고 성과 없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때 그의 집안 식구들은 소진을 비웃으며 근본을 비리고 입과 혀끝만을 놀리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에 상심한 소진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책을 뒤적이다가 문득 선비가 글을 배우고도 존귀하고 영화로운 지위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병법에 관한 서적인 <주서>와 <음부>를 구해서 정독하고, 남의 마음을 알아내는 공부를 1년 동안 계속하였다. 그리고 그 당시 정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또다시 각 나라로 유세의 길을 떠났다. 그는 당시 주위의 다른 나라들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진나라에 대항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 방법으로는 진나라에게 위협받고 있는 여러 제후들끼리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그는 제나라 민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강대한 나라와 약소한 나라가 당하기 쉬운 재앙은 이렇습니다. 옛부터 '기린이 쇠약해지면 둔한 말이 먼저 가고[麒驥之衰也,駑馬先之], 맹분이 피곤하면 여자도 그를 이긴다[孟賁之倦也,女子勝之]'는 말이 전해 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걸음이 느린 둔한 말이나 연약한 부녀자의 체력과 기력으로 천리마[騏驥]와 장사를 이길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뒤에 일어나 알맞은 시기에 하늘의 힘을 빌렸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기린(騏麟)이란 목이 긴 기린(麒麟)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천리마를 말한다. 소진은 이 세상의 일은 욕심이 앞선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내려 준 때를 기다렸다가 실행에 옮겨야만 승리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출전]
戰國策(전국책) |


騏麟(기린,qílín)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상상(想像)의 말

麒麟(기린,qílín) ① 우제목(偶蹄目) 기린과에 딸린 동물(動物). ②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고대 전설 속의 동물. 사슴 모양에 뿔·꼬리·비늘 무늬의 가죽을 갖추었음. ③ 걸출한 인물(人物)

騏驥(기기,qíjì) ① 몹시 빨리 달리는 말. 준마. 천리마. ② 현인(賢人). 재능있는 사람.

孟賁(맹분,Mèng Bēn) 중국(中國) 제(齊)나라 때 역사(力士)의 이름


관련 한자어

참조어

麒驥之衰也(기기지쇠야) | 駑馬先之(노마선지) |


戰國策(전국책) : 卷十二•齊策五 |

謹賀新年 (근하신년)

근하신년 (謹賀新年)

謹 삼갈 근 | 賀 하례할 하 | 新 새 신 | 年 해 년(연), 아첨할 녕(영)

삼가 새해를 축하한다는 뜻으로, 새해의 복을 비는 인사말.


유의어

공하신년(恭賀新年) | 공하신희(恭賀新禧)

恭贺新禧(gōnghèxīnxǐ) | 新年快乐(xīnniánkuàilè)

金枝玉葉 (금지옥엽)

金枝玉葉(금지옥엽)

금으로 된 가지와 옥으로 된 잎. 귀한 자식이나 또는 왕족

近朱者赤近墨者黑 (근주자적근묵자흑, jìnzhūzhěchì jìnmòzhěhēi)

近朱者赤 近墨者黑(근주자적 근묵자흑)

近朱者赤,近墨者黑 (jìnzhūzhěchì, jìnmòzhěhēi)

近 가까울 근,어조사 기 | 朱 붉을 주 | 者 놈 자 | 赤 붉을 적 | 近 가까울 근,어조사 기 | 墨 먹 묵,교활할 미 | 者 놈 자 | 黑 검을 흑 |


①주사(朱砂)에 가까이 있는 사람은 (쉽게) 붉게 되고, 먹에 가까이 있는 사람은 (쉽게) 검게 된다. ②좋은 사람을 가까이 하면 좋게 변하고, 나쁜 사람과 가까이 하면 나쁘게 변한다. 객관적인 환경은 사람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다.


붉은 것을 가까이하면 자기 스스로도 붉게 물들고, 먹을 가까이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검어진다는 뜻으로, 착한 사람과 사귀면 착해지고 나쁜 사람과 사귈 경우에는 악해진다는 것을 말한다. 근주필적 근묵필치(近朱必赤 近墨必緇)라고도 한다.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한 말로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면 스승의 행실을 보고 배움으로써 자연스럽게 스승을 닮게 되고, 나쁜 무리와 어울리면 보고 듣는 것이 언제나 그릇된 것뿐이어서 자신도 모르게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일깨우는 고사성어이기도 하다.

중국 서진(西晉)의 문신이자 학자인 부현(傅玄, 217∼278)이 편찬한 《태자소부잠(太子少傅箴)》에 실려 있는 다음 구절에서 나온 성어이다.

'무릇 쇠와 나무는 일정한 형상이 없어 겉틀에 따라 모나게도 되고 둥글게도 된다. 또 틀을 잡아 주는 도지개가 있어 도지개에 따라 습관과 성질이 길러진다. 이런 까닭으로 붉은색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붉은색으로 물들고 먹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검어진다. 소리가 고르면 음향도 맑게 울리고 형상이 바르면 그림자도 곧아진다[故近朱者赤 近墨者黑 聲和則響淸 形正則影直].'

주변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한자성어로는 '귤화위지(橘化爲枳)·남귤북지(南橘北枳)',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마중지봉(麻中之蓬)·봉생마중(蓬生麻中)', '일부중휴(一傅衆咻)' 등이 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近朱者赤(근주자적) | 近墨者黑(근묵자흑) | 橘化爲枳(귤화위지) | 南橘北枳(남귤북지) | 孟母三遷之敎(맹모삼천지교) | 麻中之蓬(마중지봉) | 蓬生麻中(봉생마중) | 一傅衆咻(일부중휴) |


太子少傅箴(태자소부잠) | 傅玄(부현) |

擒賊擒王 (금적금왕, qínzéiqínwáng)

擒賊擒王(금적금왕)

擒贼擒王(qínzéiqínwáng)

擒 사로잡을 금 | 賊 도둑 적 | 擒 사로잡을 금 | 王 임금 왕 |


적을 사로잡으려면 우두머리부터 잡아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 또는 일을 함에 있어 핵심을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도 사용. 三十六計(삼십육계) 攻戰計(공전계) 제18계.


중국 성당시대(盛唐時代)의 시인 두보(杜甫:712∼770)의 《출새곡(出塞曲)》 에 실린 〈전출새 6수(前出塞六首)〉에 나오는 말이다.

挽弓當挽强
用箭當用長
射人先射馬
擒賊先擒王

활을 당기려면 강하게 당기고
화살을 쏘려면 멀리 쏘아야 한다
사람을 쏘려면 먼저 그 말을 쏘고
적을 잡으려면 먼저 그 왕을 잡아라

적의 장수를 잡으면 적의 전체 병력을 무너뜨릴 수 있으므로 싸움에서는 우두머리를 먼저 잡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신당서(新唐書)》 〈장순전(張巡傳)〉에는 다음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나라 숙종(肅宗:711∼762) 때 장순(張巡)과 윤자기(尹子奇)의 군대가 전투를 하였는데, 장순의 군대가 적을 공격하여 혼란에 빠뜨리고 장순은 윤자기를 죽이려 하였으나 얼굴을 몰랐다.

그래서 장순은 군사들에게 볏짚으로 만든 화살을 쏘게 하여 윤자기의 군사가 장순 군대의 화살이 모두 없어졌다고 윤자기에게 알리는 것을 보고 윤자기를 찾아낼 수 있었다. 장순은 부하 장수에게 진짜 화살을 쏘게 했는데, 윤자기의 왼쪽 눈을 맞히고 윤자기의 군대는 참패하였다. 장수를 잡으려면 먼저 그 말을 쏜다는 뜻으로 전투에서의 전술을 말한다.

擒賊擒王(금적금왕)은 三十六計(삼십육계) 攻戰計(공전계) 제18계에도 나온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적의 주력을 부수고 수령을 취하면 그 집단은 무너진다. 이는 용을 땅으로 끌어내는 것과 같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摧其堅,奪其魁。以解其體。龍戰在野,其道窮也。]"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사례를 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魏將 등애가 면죽을 함락하고, 제갈첨 부자가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後主 유선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위군은 금방이라도 성도로 들이닥칠 거리까지 와 있었다. 후주(後主) 유선은 급히 문무백관들을 모아 회의를 하나 의견들이 모두 갈팡질팡하여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남만으로 물러나자는 의견, 吳로 망명하자는 의견, 魏에 그냥 항복하자는 의견들이 난립하여 후주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튿날, 후주는 초주의 말을 따라 魏에 항복하려 하였다. 그 때 병풍 뒤에서 한 사람이 나오며 초주를 크게 꾸짖었다.

"구차하게 살아남으려는 이 썩어빠진 선비 놈아! 어찌 사직에 관한 일을 놓고 터무니 없는 말을 늘어놓느냐? 자고로 항복하는 천자가 어디 있더냐!"

후주가 보니 이는 다섯째 아들 북지왕 劉諶(유심)이었다. 후주의 일곱 아들 중 오직 유심만이 퐁명하고 영민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나약하고 착하기만 했다. 후주가 유심에게 말했다.

"지금 대신들이 모두 항복해야 한다고 하는데, 너는 온 성을 피로 물들일 생각이냐?"

"지난날 선제(유비)께서 살아계실 때 초주가 국정에 간여했사옵니까? 이제와서 주제넘게 국가대사를 논하면서 입을 열자마자 허튼 소리를 늘어놓으니 온당치 못하옵니다. 신이 보건데 성도에는 아직 수만 명의 군사가 있고, 강유가 거느리는 전군이 모두 검각에 있사옵니다. 만일 위군이 궁궐로 침입하려 한다는 것을 알면 반드시 구원하러 올 터이니 안팎에서 공격하면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옵니다. 어찌 썩어빠진 선비의 말만 듣고 가벼이 선제의 기업을 버리려 하시옵니까?"

그러나 후주는 끝내 유심의 말을 듣지 않고 위군에 항복하기로 하고, 항기를 올린다. 다음날 등애가 이끄는 위군이 몰려와서, 후주 및 문관과 무관들에게 벼슬을 내렸다. 그리고는 검각에 있는 강유에게 귀순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검각에서 이 소식을 들은 강유는 크게 놀라 할 말을 잃었다. 장하의 뭇 장수들은 이 말을 듣자 일제히 피가 거꾸로 치솟아 올라 눈을 부릅뜨고 어금니를 깨문채 수염과 머리털을 곤두세우고 칼을 뽑아 바윗돌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우리는 죽기로 싸우고 있는데 어째서 먼저 항복한다는 말이냐!"

강유는 원래 위나라의 장수였으나 제갈량에게 감복하여 제갈량의 제자가 되었다. 그 후 제갈량의 모든 병법을 전수받고, 제갈량의 사후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북벌을 이어가고 있었다. 위군을 이끄는 등애는 강유와 정면대결을 피하기 위해 검각을 지나지 않고 곧장 성도로 가서 後主(유선)에게 항복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금적금왕'이라 할 것이다.

이에 강유는 군사들을 달래고 한가지 계책을 생각해낸다.

강유는 즉시 위장 종회에게 항복했다. 종회는 강유를 흠모하고 있었기에 상빈으로 예우했다. 그리고 종회는 즉시 화살을 꺾으며 맹세하고 강유와 의형제를 맺었다. 그 때 위나라 조정에서는 등애와 종회의 공훈처리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이에 종회는 모함받는 등애를 붙잡고, 천하를 향한 야심을 드러냈다. 강유는 종회를 꾀어 촉을 재건할 계획을 세우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천명을 다하고 만다.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강유를 무시하고 항복해버린 '樂不思蜀(낙불사촉)'의 유선 때문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천수를 다하고 만 것이다.


관련 한시

전출새 6수(前出塞六首) |


관련 고사성어

樂不思蜀(낙불사촉) : 魏에 항복한 후주 유선이 사마소가 베푼 연회 자리에서, 사마소가 '서촉 생각이 나지 않소?' 라고 묻자 유선이 '이곳이 너무 즐거워 서촉의 생각은 나지 않나이다'라고 대답한 일에서 유래된 고사.

近者悅遠者來 (근자열원자래)

近者悅遠者來(근자열원자래)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에 섭공이라는 초나라 제후가 있었다. 백성이 날마다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떠나니 인구가 줄어들고, 세수가 줄어들어 큰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초조해진 섭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날마다 백성이 도망가니 천리장성을 쌓아서 막을까요?’

잠시 생각하던 공자는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 여섯 글자를 남기고 떠났다.

錦衣還鄕 (금의환향, jǐnyīhuánxiāng)

錦衣還鄕(금의환향)

锦衣还鄕(jǐn yī huán xiāng)

錦 비단 금 | 衣 옷 의 | 還 돌아갈 환 | 鄕 고향 향 |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간다는 뜻의 고사성어.


'금의(錦衣)'는 화려하게 수놓은 '비단옷'이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왕이나 고관들이 입던 옷으로 출세의 상징이었다. 반면 평민들은 흰색의 베옷을 입었는데, 이것은 '포의(布衣)'라 하였다. 즉,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간다는 뜻으로, 출세하여 고향을 찾는 것을 뜻한다.


六朝(육조)시대 梁(양)나라의 유지린 이란 사람이 남군 태수로 승진했을 때 武帝(무제)는 이렇게 격려했다.
“그대의 모친은 연세가 많고 덕망도 높으니 ‘그대에게 비단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서(令卿衣錦還鄕․영경의금환향)’마음껏 효도를 할 수 있도록 해주겠노라.”

衣錦之榮(의금지영)이란 말도 있다. ‘비단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영예’니까 금의환향과 같은 뜻인데 宋(송)의 文豪(문호) 歐陽修(구양수)가 晝錦堂記(주금당기)란 글에서 쓴 것이다.


초(楚)나라와 한(漢)나라의 전쟁이 한창일 때의 이야기이다. 유방(劉邦)이 먼저 진(秦)나라의 도읍인 함양(咸陽)을 차지하자, 화가 난 항우(項羽)가 대군을 몰고 홍문(鴻門)까지 진격하였다. 이때 유방은 장량(張良)과 범증(范增)의 건의로 순순히 항우에게 함양을 양보하였다.

함양에 입성한 항우는 유방과는 대조적으로 아방궁을 불태우는가 하면 궁중의 금은보화를 마구 약탈하고 궁녀들을 겁탈했으며, 시황제(始皇帝)의 묘까지 파헤쳤다. 항우는 스스로 망쳐놓은 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향인 팽성(彭城)에 도읍을 정하려 하였다.

신하들은 항우가 예로부터 패왕(覇王)의 땅이었던 함양을 버리고 보잘것없는 팽성으로 도읍을 옮기겠다고 하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때 간의대부(諫議大夫) 한생(韓生)이 간언했지만 항우는 오히려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길거리에서 '부귀하여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면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라는 노래가 떠돌고 있다고 하더군. 이건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야. 그러니 어서 길일(吉日)을 택하여 천도하도록 하라."

그래도 한생이 간언을 그치지 않자, 항우는 그를 기름이 끓는 가마 속에 넣어 죽이고 말았다. 하지만 이 노래는 항우가 천하의 요새인 함양에 있는 한 유방이 승리할 수 없으므로 항우를 함양에서 내쫓기 위해 장량이 퍼뜨린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함양을 싫어했던 항우는 그 노래가 하늘의 뜻이라고 판단하여 마침내 팽성으로 천도하게 되었다.

결국 항우는 함양을 차지한 유방에게 해하(垓下)에서 크게 패함으로써 천하를 넘겨주고 만다. '금의환향'으로 자신의 공덕을 고향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는 하였지만 천하를 잃고 만 셈이다. 출전은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記)>이다.

[유래] 史記(사기) : 項羽本紀(항우본기)


관련 한자어

유의어

衣锦还乡(yījǐnhuánxiāng) 衣 옷 의, 锦 비단 금, 还 돌 선, 乡 시골 향 | 衣锦荣归(yījǐnróngguī) 衣 옷 의, 锦 비단 금, 荣 꽃 영, 归 돌아갈 귀 | 衣錦之榮의금지영)

반의어

錦衣夜行(금의야행) |

참조어

沐猴而冠(목후이관,mùhóu'érguàn) |


Tag

史記(사기) : 項羽本紀(항우본기) |

錦衣玉食 (금의옥식)

錦衣玉食(금의옥식)

비단옷과 흰 쌀밥. 호사스런 생활

錦衣夜行 (금의야행, jǐnyīyèxíng)

錦衣夜行(금의야행)

锦衣夜行(jǐnyī yèxíng)

錦 비단 금 | 衣 옷 의 | 夜 밤 야 | 行 다닐 행 |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간다는 뜻의 고사성어.


항우(項羽)가 한 말로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를 보면, 항우가 진(秦)나라를 쳐부수고 유명한 아방궁(阿房宮)을 비롯하여 모든 궁전을 모조리 불지른 다음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자, 부하 한 사람이 말하기를 “이곳 진나라 땅은 사방이 험한 산으로 막히고 땅이 기름지니 여기에 도읍을 정하면 천하를 잡을 수가 있습니다.”라고 권하였으나 항우는 불탄 그곳이 싫었고, 또 고향에 돌아가 뽐내고 싶은 마음에서 “부귀를 하고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마치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누가 알아 줄 사람이 있겠는가(富貴不歸故鄕 如衣繡夜行 誰知之者)”라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 여기에는 의수야행(衣繡夜行)이라고 쓰여 있고 《한서(漢書)》에는 의금(衣錦)야행이라 쓰여 있는데, 이것이 나중에 변하여 금의야행이 되었다고 한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衣繡夜行(의수야행) | 衣錦夜行(의금야행) |

반의어

錦衣還鄕(금의환향) |

金玉滿堂 (금옥만당, jīnyùmǎntáng)

金玉滿堂(금옥만당)

金玉满堂(jīnyù mǎntáng)

金 쇠 금,성씨 김 | 玉 구슬 옥 | 滿 찰 만 | 堂 집 당 |


금옥관자(金玉貫子)가 집에 가득하다는 뜻으로, 어진 신하(臣下)가 조정(朝廷)에 가득함을 비유(比喩)해 이르는 말이다. 금옥영실(金玉盈室)과 같은 뜻이다.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제9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쥐고 있으면서도 더 채우는 것은 그만두는 것만 못하다. 두드려서 날카롭게 만들면 오래 가지 못한다. 금옥관자가 방 안에 가득하더라도 그것을 지킬 수 없고, 부귀하여 교만해지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된다. 공을 이루었으면 그만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길이다."

持而盈之 不如其已 추而銳之 不可長保 金玉萬堂 莫之能守 富貴而驕 自遺其咎 功遂身退 天之道

금옥만당은 여기서 유래하였다. 금은보화가 방 안에 가득하다는 말로, 여기서는 아무리 많은 재물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뜻으로 쓰였다. '만(滿)'은 '영(盈)'과, '당(堂)'은 '실(室)'과 뜻이 같아 금옥영실로도 쓴다. 뒤에 어진 신하가 조정에 가득함을 비유하는 말로 뜻이 커졌다.


참조

金玉(jīnyù) 금과 옥. 진귀한 보물 |

满堂(mǎntáng) 장소 전체. 대청 안에 가득하다. |


道德經(도덕경) |

琴瑟之樂 (금실지락)

琴瑟之樂(금실지락)

부부 사이의 다정하고 화목한 즐거움.

克世拓道 (극세척도)

克世拓道(극세척도)

克 이길 극 | 世 인간 세, 대 세 | 拓 넓힐 척, 주울 척, 박을 탁 | 道 길 도 |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 길을 개척한다

金蟬脫殼 (금선탈각, jīnchántuōqiào)

金蟬脫殼(금선탈각)

金蝉脱壳(jīnchántuōqiào)

金 쇠 금,성씨 김 | 蟬 매미 선 | 脫 벗을 탈,기뻐할 태 | 脱(tuō) 부탁할 탁,벗을 탈 | 殼 껍질 각,내려칠 각,구역질 하는 모양 학 |


매미가 허물을 벗다.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도망치다.


三十六計(삼십육계) 混戰計(혼전계) 제21계. 매미나 뱀은 껍질을 남겨두고 그대로 탈피한다.겉으로는 아무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여서 적으로 하여금 감히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 뒤로 군사를 빼내 도망치거나 다른 곳에 군사를 사용하는 것이다.

원문의 풀이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진지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기세도 줄이지 않아야, 우군의 의심을 막고 적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이동을 숨기고 적을 오판하게 한다.[存其形,完其勢;友不疑,敵不動.巽而止蠱.]"

예를 하나 살펴보자. 三國志演義 이야기이다. '연의' 내용의 거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이 부분은 바로 공명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화이기도 하다.

魏를 치기 위해 마지막으로 오장원(五丈原)에 둔치고 결전을 위해 사마의를 계속 도발하던 공명은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고,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뜨게 될 것을 예감한다. 그리하여 공명은 자신의 사후처리를 준비하여 일체의 대사는 양의에게 맡기고, 군사에 관한 것은 백약(강유)에게 맡겼다. 그리고 위연에 대한 대비책도.

한편 대치하던 위군의 하후패는 군사를 이끌고 오장원으로 와보니 촉군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급히 돌아가 사마의에게 보고했다.
"촉군은 모두 물러갔사옵니다."
"제갈량이 정말 죽었구나! 빨리 추격해야겠다."
"도독께서 가벼이 추격하셔서는 아니되옵니다. 편장에게 먼저 가보게 하소서."
"아니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가봐야겠다."

끝내 군사를 이끌고 두 아들(사마사와 사마소)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오장원으로 달려나와 촉군 영채로 돌진했다. 과연 한 사람도 없었다. 사마의는 두 아들에게 뒤를 따르도록 하고는 먼저 군사를 이끌고 촉군을 쫓아갔다. 산 밑으로 가다보니 멀지 않은 곳에 촉군이 보였다. 그래서 사마의는 기세 좋게 쫓아갔다. 갑자기 산 뒤편에서 쿵하는 포소리가 들리고, 함성이 크게 올랐다. 물러가던 촉군이 갑자기 뒤돌아 달려들며 깃발을 흔들고 북을 쳐댔다. 숲 사이로 큰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는데, 깃폭에는 한승상무후제갈량(漢丞相武侯諸葛亮)이라고 쓰여 있었다.

사마의의 낯빛이 흑색으로 변했다. 두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니 중군의 상장 수십명이 사륜거를 에워싸고 나왔는데, 수레 위에는 제갈량이 단정히 앉아있었다. 사마의가 소스라치게 놀라 말했다.
"제갈량이 아직 살아 있구나! 내가 그의 계략에 말려들어 너무 깊이 쫓아왔다!"
위군은 혼비백산하여 뿔뿔이 흩어졌다.

사마의는 50여리를 한달음에 달아났다. 겨우 진정시키고 군사를 정비하여, 제갈량이 정말 죽었고 수레 위에 앉아있던 것은 제갈량의 조각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속은 것을 안 사마의는 곧 촉군을 추격하려 하였으나 이미 촉군은 멀리 물러난 후였다.

그리하여 저 유명한 '죽은 제갈량이 산 중달(사마의)를 도망치게 했다(死諸葛走生仲達)'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그러나 이 부분은 연의에서 만들어낸 허구이다.


관련 한자어

脫자가 들어가는 고사성어

脫兎之勢(탈토지세) 우리를 빠져 도망(逃亡)하는 토끼의 기세(氣勢)라는 뜻으로, 매우 신속(迅速)하고 민첩(敏捷)함을 이르는 말

脫帽露頂(탈모노정) 모자를 벗어서 정수리를 드러낸다는 뜻으로, 예의(禮儀)에 구애(拘碍)되지 않음을 이르는 말

脫網就淵(탈망취연) 물고기가 그물에서 벗어나 연못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으로, 다행(多幸)히 재난(災難)을 면하고 기뻐함을 비유(比喩)해 이르는 말

脫身逃走(탈신도주) 몸을 빼쳐서 달아남

金石之約 (금석지약)

金石之約(금석지약)

쇠와 돌 같은 언약. 곧, 변함없고 굳은 언약

金石之交 (금석지교)

金石之交(금석지교)

쇠나 돌과 같이 굳은 사귐.

今昔之感 (금석지감)

今昔之感(금석지감)

예와 이제와의 변한 차이에서 일어나는 느낌

金石盟約 (금석맹약)

金石盟約(금석맹약)

굳게 맹세한 약속.

錦上添花 (금상첨화)

錦上添花(금상첨화)

비단 위의 꽃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

金迷紙醉 (금미지취)

金迷紙醉(금미지취)

金 쇠 금 | 迷 미혹할 미 | 紙 종이 지 | 醉 취할 취 |

금종이에 정신이 미혹(迷惑)되고 취한다는 뜻으로, 사치스런 생활(生活)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송(宋)나라의 도곡(陶谷)이 편찬한 청이록(淸異錄)이라는 책에 나오는 당나라 말엽의 명의(名醫)인 맹부(孟斧)의 이야기다.

그는 독창(毒瘡) 치료에 뛰어나서, 자주 황궁에 들어가 소종(昭宗) 황제(皇帝)의 병을 진료했다. 차츰 황제(皇帝)를 진료하는 시간과 횟수가 많아지자, 그는 황궁내의 실내 장식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다.

훗날 맹부는 사천(四川)지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는 황궁을 모방하여 자신의 거처를 장식했는데, 방안의 기물들을 모두 금종이로 포장했다. 창문을 통하여 햇빛이 비칠 때면, 방안은 온통 금빛으로 가득하여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어느 날, 한 친구(親舊)가 그를 방문했다 돌아가면서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방에서 잠시 쉬었는데, 그만 금종이에 정신이 미혹되고 취해 버렸다네.'[此室暫憩, 令人金迷紙醉]


출전

청이록(淸異錄)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金迷紙醉(금미지취) | 紙醉金迷(지취금미) |

近墨者黑 (근묵자흑)

近墨者黑 (근묵자흑)

먹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손이 검어지듯이 나쁜 사람과 가까이하지 말라는 뜻.

金蘭之契 (금란지계)

金蘭之契(금란지계)

다정한 친구 사이의 정의(征衣)

金石牢約 (금석뇌약)

金石牢約(금석뇌약)

金 쇠 금, 성씨 김 | 石 돌 석 | 牢 우리 뇌(뢰) | 約 맺을 약, 부절 요, 기러기발 적 |

금과 돌같은 굳은 언약(言約)이라는 뜻으로, 서로 언약(言約)함이 매우 굳음을 비유(比喩ㆍ譬喩)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金石牢約(금석뇌약) | 金石盟約(금석맹약) | 金石相約(금석상약) | 金石之約(금석지약) |

克己復禮 (극기복례)

克己復禮(극기복례)

사욕을 누르고 예를 쫓도록 한다

「논어」의 「顔淵篇(안연편)」을 보면 이런 대목이 실려 있다. 어느 날 공자의 수제자인 안연이 仁(인)에 대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기를 극복하여 禮(예)를 행함이 仁이다. 단 하루 스스로 이겨서 예를 행하면 천하가 仁으로 돌아올 것이다. 인을 실천하는 것은 자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지 남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克己復禮爲人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人由己 而由人乎哉․극기복례위인 일일극기복례 천하귀인언 위인유기 이유인호재)』

안연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극기복례할 수 있는 細目(세목)으로는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공자의 대답은 이랬다.
『禮가 아니면 보지도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도 말라』

이런 가르침을 받고 안연은 공자에게 말했다.
『제가 비록 불민하오나 반드시 이 말씀을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자의 중심사상은 仁이고 인과 禮의 관계를 가르친 대목인데 논어 가운데서도 白眉(백미)의 하나로 꼽힌다. 克己는 도덕생활의 기본이다. 私慾(사욕) 私心(사심)에서 벗어나 이를 이기는게 극기다. 禮는 사욕과 사심을 억제하는 규율이며 극기가 있어야 예의 실천이 가능하다는 공자의 가르침은 지금도 백번 옳다.

金科玉條 (금과옥조)

金科玉條(금과옥조)

금이나 옥같이 귀중한 법칙이나 규정

根固枝榮 (근고지영)

根固枝榮(근고지영)

根 뿌리 근 | 固 굳을 고 | 枝 가지 지, 육손이 기 | 榮 영화 영, 꽃 영 |

뿌리가 튼튼해야 가지가 무성(茂盛)하다는 뜻을 나타냄

橘化爲枳 (귤화위지, júhuàwéizhǐ)

橘化爲枳(귤화위지)

橘化为枳(júhuàwéizhǐ)

橘 귤 귤 | 化 될 화,잘못 와 | 爲 하 위,할 위 | 枳 탱자 지,탱자 기 |


강남(江南)의 귤을 강북(江北)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사람도 환경(環境)에 따라 기질(氣質)이 변한다는 말


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강남에 심은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로 되듯이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비유한 고사이다.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안영(晏嬰:晏子는 경칭)은 중국 역사상 드물게 보는 명 재상(宰相)이다. 세 명의 왕(靈公·莊公·景公) 밑에서 재상을 지냈지만 절검(節儉)과 역행(力行)으로 일관하였다. 그는 재상이 된 뒤에도 밥상에는 고기 반찬을 올리지 않았고 아내에게는 비단옷을 입히지 않았고, 조정에 들어가면 임금께서 묻는 말에 대답하되 묻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았으며, 스스로의 품행을 조심하였다. 또한 유창(流暢)한 달변(達辯)과 임기응변(臨機應變)으로도 유명하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해, 초(楚)나라의 영왕(靈王)이 그를 초청하였다. 초(楚)나라 영왕은 인사말을 끝내기가 바쁘게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소? 하필 경(卿)과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낸 이유가 뭐요?" 안영의 키가 작은 것을 비웃는 말이었다. 초나라 왕은 당시 제나라를 우습게 보았기 때문에 이런 심한 농담을 함부로 해댔다. 안영은 서슴지 않고 태연히 대답하였다. "그 까닭은 이러하옵니다. 우리 나라에선 사신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에 맞게 사람을 골라서 보내는 관례가 있습니다. 즉,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보내고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보내는데, 신(臣)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초나라로 오게 된 것이옵니다."

안영의 능수능란(能手能爛)한 말솜씨에 기세가 꺾인 영왕은 은근히 부아가 끓어올랐는데, 마침 그 앞으로 포리(捕吏)가 제나라 사람인 죄인을 끌고 가자 영왕은 안영에게 들으라고 큰소리로 죄인의 죄명을 밝힌 다음, "제나라 사람은 도둑질을 잘하는군."

안영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가 듣기로는 귤이 회남(淮南)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淮北)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고 들었습니다[嬰聞之 橘生淮南則爲橘 生于淮北爲枳(영문지 귤생회남즉위귤 생우회북위지)]. 잎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과실의 맛은 다릅니다[葉徒相似 其實味不同(엽도상사 기실미부동)]. 그러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물과 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所以然者何 水土異也(소이연자하 수토이야)]. 지금 백성들 중 제나라에서 나고 성장한 자는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나라로 들어오면 도둑질을 합니다. 초나라의 물과 땅이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잘하게 하는 것입니다."

왕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성인(聖人)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고 하오. 과인(寡人)이 오히려 부끄럽군요." 제나라 출신의 죄수를 안영에게 보여 줌으로써 안영의 명성을 눌러 보려던 초왕의 계획은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참조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南橘北枳(남귤북지) | 江南橘化爲枳(강남귤화위지) |


晏子春秋(안자춘추) : 卷六 內篇雜下第六 |

歸馬放牛 (귀마방우)

歸馬放牛(귀마방우)

歸 돌아갈 귀, 돌려 보낼 귀 | 馬 말 마 | 放 놓을 방 | 牛 소 우 |

'주(周)나라 무왕이 은(殷)나라를 정벌(征伐)한 뒤, 전쟁(戰爭)에 쓴 마소를 놓아주었다'는 옛일에서 온 말로, 다시는 전쟁(戰爭)을 하지 않음이라는 말


중국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은 목야전투(牧野戰鬪)에서 주왕(紂王)의 대군을 쳐부수어 은(殷)나라를 멸망시켰다. 은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온 무왕이 전쟁에 사용한 말과 소를 놓아 주었다는 고사(故事)에서 유래하였다.

《상서(尙書)》 무성편(武成篇)의 '군대를 줄이고 문화를 발전시키며 말은 화산의 남쪽으로 돌려 보내고 소는 도림의 들에 풀어놓아 준다[偃武修文 歸馬于華山之陽 放牛于桃林之野]'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전쟁중에 쓴 말과 소를 산과 들판으로 놓아 보내어 수레나 쟁기를 끌게 하는 것으로 전쟁이 끝나고 태평한 세상을 말한다.


출전

상서(尙書) 무성편(武成篇)

貴鵠賤鷄 (귀곡천계)

貴鵠賤鷄(귀곡천계)

먼 데 있는 것을 귀히 여기고 가까운 것을 천천히 여기는 인정.

龜鑑 (귀감)

龜鑑(귀감)

행위의 기준이 되는 것. 사물의 거울 본보기가 되는 것.

捲土重來 (권토중래)

捲土重來(권토중래)

捲 거둘 권, 말 권 | 土 흙 토, 뿌리 두, 쓰레기 차 | 重 무거울 중, 아이 동 | 來 올 래(내) |

흙먼지를 날리며 다시 온다는 뜻으로, ①한 번 실패(失敗)에 굴하지 않고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남 ②패한 자가 세력(勢力)을 되찾아 다시 쳐들어옴 ③한번 실패(失敗)하고 나서 다시 그 일에 도전(挑戰)함


漢(한)나라의 劉邦(유방)과 천하를 다툰 楚(초)나라의 項羽(항우)는 비극적인 최후를 마침으로써 문학의 소재로도 곧잘 등장한다.

초한(楚漢)이 천하를 다투던 때, 항우는 해하(垓下)에서 한나라의 포위를 빠져 나와 천신만고 끝에 오강(烏江)까지 퇴각하였다. 오강의 정장(亭長)은 항우를 위해 배를 한 척 준비해 놓고 그에게 강을 건너라고 했다. 그러난 항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거절했다. 그는 살아남은 20여명의 병사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대세를 반전시키지 못하고 31년의 생애를 자결로 마쳤다.

항우가 죽은 지 1,00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烏江(오강)을 여행하던 당나라 말기의 시인 杜牧(두목)은 옛날 그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항우를 애석해하며 제오강정(題烏江亭)이라는 시 한수를 읊는다.

勝敗兵家不可期 (승패불가병가기)
包羞忍恥是男兒 (포수인치시남아)
江東子弟多豪傑 (강동자제다재준)
捲土重來未可知 (권토중래미가지)

승패는 兵家(병가)도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니
부끄러움을 삭이면서 참는 자가 남아로다
강동의 자제들 가운데는 호걸들이 많지만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쳐들어올지 아직은 모르겠네

더 쉽게 풀이하면 「승패는 병법의 전문가도 장담할 수 없는데 당신은 남자답게 한때의 수치를 참아야 했다.게다가 강동땅엔 호걸도 많은데 왜 힘을 길러 권토중래하지 않았는가」가 된다.


출전

두목(杜牧)제오강정(題烏江亭)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死灰復燃(사회부연)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勸善懲惡 (권선징악)

勸善懲惡 (권선징악)

착한 일을 권하고 나쁜 일을 벌해야 한다

勸上搖木 (권상요목)

勸上搖木 (권상요목)

나무 위에 오르라 권하고는 오르자마자 아래서 흔들어 댐.

權不十年 (권불십년)

權不十年 (권불십년)

권세는 십 년을 가지 못한다

權謀術數 (권모술수)

權謀術數(권모술수)

임시 변통의 지혜가 많은 수단

苟合取容 (구합취용)

苟合取容(구합취용)

苟合取容(gǒuhéqǔróng)

苟 진실로 구,구차할 구 | 合 합할 합,쪽문 합,홉 홉 | 取 가질 취 | 容 얼굴 용 |


무원칙적으로〔분별 없이〕 부화하여〔영합하여〕 남의 환심을 사다.

유래: 한서(漢書)


관련 글

報任少卿書(보임소경서) 司馬遷(사마천)

...
四者無一遂(사자무일수) : 이 네 가지 중에 한 가지도 성취하지 못하고
苟合取容(구합취용) : 남의 비위나 맞추고 영합해서
無所短長之效(무소단장지효) : 아무런 공로도 세우지 못한 것이
可見如此矣(가견여차의) : 이와 같습니다
...


Tag

아첨

九重深處 (구중심처)

九重深處(구중심처)

궁궐을 가리킴.

窮鳥入懷 (궁조입회)

窮鳥入懷(궁조입회)

窮 다할 궁, 궁할 궁 | 鳥 새 조, 땅 이름 작, 섬 도 | 入 들 입 | 懷 품을 회 |

쫓기던 새가 사람의 품안으로 날아든다는 뜻으로, 사람이 궁하면 적에게도 의지(依支)한다는 말

[출전]
안씨가훈(顔氏家訓)

君子固窮 (군자고궁)

君子固窮(군자고궁)

君 임금 군 | 子 아들 자 | 固 굳을 고 | 窮 궁할 궁 |

군자는 어렵고 궁핍할 때 더 굳고 심지가 깊어진다는 뜻.


논어(論語)에 보면 군자(君子)는 어려울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강해지는 사람이라 하고(君子固窮), 소인(小人)은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포기하고 넘쳐버리는 사람(小人窮濫)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와 세상을 주유(周遊)할 때 진(陳)나라에서 최악의 위기상황을 맞이하였다. 제자들은 아무 것도 먹지 못하여 대부분 병이 들었고 몸을 일으킬 힘조차 없었다. 이런 궁한 상황에서 공자의 다혈질 제자 자로(子路)는 공자를 만나 이렇게 따졌다.

“선생님! 군자도 이렇게 궁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까?”

자로의 이 물음 속에는 공자를 믿고 따르는 아무 죄 없는 제자들이 왜 이런 힘든 상황에 처해야 하는지를 공자에게 따져 묻는 것이었다. 공자의 대답은 아주 간단하였다.

“군자는 어려울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사람이다(君子固窮). 그러나 소인은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곧 원칙을 버리고 넘치게 되지(小人窮斯濫).”

공자의 이 말 속에는 어려움 속에 대처하는 두 가지 인간의 전형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논리가 있다.

어려움(窮), 그 상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 상황에 대처하는 사람의 정신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출전

논어

九折羊腸 (구절양장)

九折羊腸(구절양장)

꼬불꼬불한 길.

求田問舍 (구전문사)

求田問舍(구전문사)

국가 대사에는 뜻이 없고 자기 목전의 이익에만 마음을 씀.

君子坦蕩蕩小人長戚戚 (군자탄탕탕소인장척척)

君子坦蕩蕩 小人長戚戚(군자탄탕탕 소인장척척)

君 임금 군 | 子 아들 자 | 坦 평탄할 탄, 너그러울 탄 | 蕩 방탕할 탕 | 小 작을 소 | 人 사람 인 | 長 | 길 장, 어른 장 | 戚 친척 척, 근심할 척, 재촉할 촉 |

군자는 마음이 평탄하며 넓고, 소인은 항상 걱정이 많다.

[출처]
論語(논어) 述而(술이)


관련 한자어

참조어

君子與小人(군자여소인) |

群雄割據 (군웅할거)

群雄割據 (군웅할거)

여러 영웅이 세력을 얻기 위해 겨루고 있는 상태를 두고 하는 말.

九牛一毛 (구우일모)

九牛一毛(구우일모)

九 아홉 구 | 牛 소 우 | 一 한 일 | 毛 털 모 |


아홉 마리의 소 가운데서 뽑은 털 하나. 수에도 들지 않을 만큼 하찮은 것을 형용하는 데 쓰는 말이다.


前漢(전한) 武帝(무제) 때 5천의 군사를 이끌고 흉노 토벌에 나섰던 李陵(이릉)장군은 열 배가 넘는 적을 맞아 10여 일을 싸웠으나 끝내 패하고 말았다. 이듬해 무제는 전사한 줄만 알고 있던 이릉이 흉노에게 투항해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진노한 그는 이릉 일족을 참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신하 중 누구 하나 이릉을 변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만 司馬遷(사마천)만이 대담 솔직하게 이릉의 무고함을 直言(직언)했다.

『이릉은 적은 수의 군사로 적의 수만 병력을 맞아 용감하게 싸웠지만 援軍(원군)은 오지 않고 내부에서 적과 내통한 자가 있어 패한 겁니다. 이릉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흉노에게 투항한 것도 필시 훗날을 노린 苦肉策(고육책)일 것입니다』

사마천의 말에 더욱 격노한 무제는 그를 옥에 가두고 생식기를 자르는 형벌인 宮刑(궁형)에 처했다.

사마천은 친구 任安(임안)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에 당시의 참담했던 심경을 이렇게 썼다.

『내가 사형을 당했다해도 그것은 「아홉 마리 소 가운데에서 터럭 하나 없어지는 것과 같을 뿐(九牛亡一毛)」이니 땅강아지나 개미 따위와 내가 뭣이 다를까』

사마천이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참으며 목숨을 부지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史記(사기)」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기」를 끝내지 않고 두 눈을 감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滄海一滴(창해일적) | 大海一滴(대해일적) | 大海一粟(대해일속) | 九牛一毛(구우일모) | 滄海一粟(창해일속) |

窮餘之策 (궁여지책)

窮餘之策(궁여지책)

궁박한 끝에 나는 한 계책

求之於勢 (구지어세)

求之於勢(구지어세)

기세에서 구하다. 개개인이 아닌 전체적인 기세가 중요함을 이르는 말

故善戰者 求之於勢 不責之於人 故能擇人而任勢(고선전자 구지어세 불책지어인 고능택인이임세)

고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전쟁의 승패를 기세에서 구하지 병사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따라서 능력있는 자를 택하여 기세를 돋운다.

[출전] 손자병법

九十春光 (구십춘광)

九十春光(구십춘광)

봄이 석달 동안

救世濟民 (구세제민)

救世濟民(구세제민)

救 구원할 구 | 世 인간 세, 대 세 | 濟 건널 제 | 民 백성 민 |

세상(世上)을 구(救)하고 민생(民生)을 구제(救濟)함

九死一生 (구사일생)

九死一生(구사일생)

아홉 번 죽을 고비에서 한 목숨 살다. 곧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겪고 겨우 살아난다는 뜻.


전국시대 楚(초)나라에 시인이자 정치가로 유명한 屈原(굴원)이 있었다. 박학다식하고 변론에 뛰어나 많은 활약을 했으나 말년에는 失意(실의)의 나날을 보내다 멱라수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굴원은 왕의 듣고 보는 것이 총명하지 못하고 참소와 아첨이 왕의 밝음을 가로막는 것을 근심하고 비통해 하면서 장편의 시를 지어 울분을 토로했는데 이 시가 유명한 「離騷(이소)」다. 이 「이소」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길게 한숨 쉬고 눈물을 닦으며 인생에 어려움 많음을 슬퍼하노라.… 「비록 아홉 번 죽을지라도 오히려 후회하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雖九死 猶未其悔․수구사 유미기회)」

여기에 나오는 「九死」에 대해 劉良注(유양주)는 더 명확한 풀이를 했다.
최악의 처지에 서게 되고 어떠한 재난을 만나 「십중팔구 살아날 길이 없다고 하더라도 회한은 없다(雖九死無一生 未足悔恨․수구사무일생 미족회한)」

여기서 九死一生이란 말이 나왔다.

이와 비슷한 말에 「起死回生(기사회생)」이 있다. 다 죽어가던 목숨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이다.

「呂氏春秋(여씨춘추)」에 이런 대목이 보인다.

『노나라에 공손작이란 자가 있었는데 「나는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가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반신불수를 고칠 수가 있다. 반신불수를 고치는 약을 두 배로 늘리면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도 있다(起死回生)」』

口尙乳臭 (구상유취)

口尙乳臭 (구상유취)

입에서 젖내가 날 만큼 말이나 하는 짓이 유치하다는 말.


어느 여름날 김삿갓이 한 마을을 지나는데 시골 선비들이 개를 잡아놓고 詩會(시회)를 열고 있었다. 한쪽 귀퉁이에 앉아 술 한잔을 얻어마시던 김삿갓에게는 시랍시고 지어놓은 시가 같잖게 여겨졌다.

그냥 보고 지나친다면 김삿갓이 아니다. "구상유취로군"하고 내뱉었것다.

구상유취라면 口尙乳臭,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뜻. 유치함을 얕잡아 이르는 말 아닌가. 좌중의 視線(시선)이 소리를 낸 꾀죄죄한 행색의 김삿갓에게 꽂혔다.

"방금 뭐라고 했소?"

험악한 표정을 한 한 참석자가 금방 쥐어박을 듯이 말했다. 김삿갓이 능청스럽게 받았다.

"개초상에 선비들이 모여있다(狗喪儒聚, 구상유취)고 한 내 말이 뭐가 잘못됐단 말이오?"

재치있게 받아넘긴 김삿갓에게 돌아온 건 몽둥이가 아니고 새로 잘 차린 술상이었다던가.누가 지어낸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뜻글자인 漢字(한자)가 동원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우스갯소리다.

한자를 모르고서는 이같은 말장난에 아예 웃을 수도 없다.

軍師父一體 (군사부일체)

軍師父一體 (군사부일체)

임금 스승 아버지의 은혜는 같다는 뜻

毆槃捫燭 (구반문촉, ōupánménzhú)

毆槃捫燭(구반문촉)

殴盘扪烛(ōupánménzhú)

毆 때릴 구 | 槃 쟁반 반 | 捫 어루만질 문 | 燭 촛불 촉 |


장님이 쟁반을 두드리고 초를 어루만져 본 것만 가지고 태양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확실하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함부로 논하거나 말하지 말라는 것을 빗댄 한자성어이다. 군맹무상(群盲撫象)과 뜻이 통한다.


북송(北宋) 때의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쓴〈일유(日喩)〉에서 유래하였다. 태어나면서 장님인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태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어떤 사람에게 물으니, 구리 쟁반처럼 생겼다고 대답하였다. 소경은 집으로 돌아와 쟁반을 두드려 보고 그 소리를 기억해 두었다. 다른 날 길을 가다가 종소리를 듣고는 쟁반을 두드릴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하자, 종을 태양이라고 하였다.

어떤 이가 다시 태양은 촛불처럼 빛을 낸다고 하자, 손으로 초를 어루만져 보고는 그 생김새를 기억해 두었다. 뒷날 우연히 피리를 만져보고는 초와 생김새가 비슷했으므로 이번에는 피리를 태양이라고 하였다.

구반문촉이란 말은 이 우화에서 생겼다. 장님은 태양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남의 말만 듣고 지레짐작으로 쟁반·종·초를 태양으로 단정하였다. 하지만 이 셋은 태양의 실체와는 전혀 다르다. 사람들이 들으면 배꼽 잡고 웃을 일인데도, 장님은 이를 태연하게 진리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남의 말만 곧이 듣고서 그것이 마치 사실이나 진리인 듯 여겨 어리석음을 자초하지 말라고 경계하는 한자성어가 바로 구반문촉이다. 섣부른 판단, 불확실한 일, 맹목적인 믿음 등이 모두 경계 대상에 포함된다. 군맹모상(群盲摸象)·군맹무상(群盲撫象)·군맹평상(群盲評象)·맹인모상(盲人摸象)과도 뜻이 통한다.

[유래]
日喩(일유) |


관련 한자어

유의어

群盲評象(군맹평상) | 群盲撫象(군맹무상) |


Tag

日喩(일유) | 蘇東坡(소동파) |

狗尾續貂 (구미속초)

狗尾續貂(구미속초)

훌륭한 것에 하찮은 것이 뒤를 잇는 것

口蜜腹劍 (구밀복검)

口蜜腹劍(구밀복검)

口蜜腹剑 [kǒumìfùjiàn]

口 입 구 | 蜜 꿀 밀 | 腹 배 복 | 劍 칼 검 |

입에는 꿀을 바르고 있지만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다. 곧 겉으로는 꿀같이 달콤하게 말하지만 속으로는 해칠 생각을 하고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honey-mouthed and dagger-hearted—a cruel heart under the cover of sugar-coated words; hypocritical and malignant


楊貴妃(양귀비)를 寵愛(총애)한 황제로 이름난 唐(당)나라 玄宗(현종)때 李林甫(이임보)라는 재상이 있었다. 그는 황제의 일가 친척인데다 宦官(환관)에게 뇌물을 바쳐 출세한 인물로 궁정을 활보하는 權臣(권신)이었다.

그는 또 아첨하는 재주가 있어서, 권세 있는 인물들과 자주 접촉하고, 황제의 주변 인물들에게도 많은 뇌물을 주어 황제의 언행을 항상 파악하여, 황제의 기분에 맞게 처세할 수 있었다.

언제나 현종의 측근에 있으면서 인사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조정의 누구도 이임보를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그는 19년 동안이나 안전하게 재상의 자리에 있으며, 위세를 떨쳤다. 그가 죽은 뒤 반란을 일으켜 당나라를 한때 亡國(망국)의 벼랑까지 몰고갔던 安祿山(안록산)도 두려워 할 정도였다.

그는 현종에게 盲從(맹종)하며 아첨하는 한편 올바른 말을 하는 충신들을 陰害(음해)하여 멀리 내쫓거나 죽음에 이르도록 했다.

어느날 현종이 이임보에게 물었다.

“嚴挺之(엄정지)는 지금 어디에 있지.그에게 중책을 맡기고 싶은데.”

엄정지는 강직한 신하로 중앙에서 요직을 맡고 있다가 이임보에게 밉보여 지방으로 쫓겨나 태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날 저녁 엄정지의 아우를 불러들인 이임보는 이렇게 말했다.

“황제께서 자네 형님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칭찬하시네.틀림없이 금명간 높은 벼슬을 주실거니까 일단 병치료차 장안에 돌아왔다고 상소문을 쓰도록 연락하게.”

긴급연락을 받은 엄정지는 현종에게 상소문을 올리자 이임보는 그걸 들고 현종에게 가서 말했다.

“전에 말씀하신 엄정지의 상소문이 올라왔습니다만 나이도 많은데다 중병에 걸린 모양이니 중임은 맡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황제는 이임보의 말에 따랐고 술수에 말려든 걸 알게 된 엄정지는 화병으로 죽고 말았다.

조정의 벼슬아치들은 이렇게 수군거렸다.

“이임보는 입에 꿀을 바르고 말하지만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다[李林甫口有蜜, 腹有劍].”


출전

당서(唐書)


관련 한자

참조어

口有蜜腹有劒(구유밀복유검) | 面從腹背(면종복배) | 笑裏藏刀(소리장도) | 笑中刀(소중도) | 笑中有劍(소중유검) | 笑中有刀(소중유도) | 羊頭狗肉(양두구육) | 陽奉陰違(양봉음위) | 羊質虎皮(양질호피) | 表裏不同(표리부동) | 包藏禍心(포장화심) |

掘墓鞭屍 (굴묘편시, juémùbiānshī)

掘墓鞭屍(굴묘편시)

掘墓鞭尸(juémùbiānshī)

堀 굴 굴 | 墓 무덤 묘 | 鞭 채찍 편 | 屍 주검 시 |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을 한다는 뜻으로, 통쾌한 복수나 지나친 행동을 일컫는 말.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자서(伍子胥)의 고사에서 나왔는데, 그는 초(禁)나라 평왕(平王)의 태자 건(建)의 태부(太傅)요 충신이었던 오사(伍奢)의 아들이었다. 평왕이 건의 소부(少傅)였던 비무기(費無忌)의 참언으로 태자를 죽이려 하고 오사를 감옥에 가두었다. 비무기는 평왕을 부추겨 오사를 인질로 삼아 그의 큰아들 오상(伍尙)과 오자서를 불러들여 죽임으로써 후환을 없애고자 하였다. 오상은 이것이 함정인 줄 알면서도 부름에 따라 아버지와 함께 살해되었으나 오자서는 복수를 기약하며 오나라로 망명하였다.

송(宋)나라와 정(鄭)나라를 거쳐 오(吳)나라로 간 오자서는 합려(闔閭)를 보좌하여 오나라를 강국으로 키웠다. BC 506년 오나라가 초나라를 함락시킨 뒤, 오자서는 평왕의 아들 소왕(昭王)을 잡으려 하였으나 이미 도망친 뒤였다. 평왕은 생전에 이미 그의 보복을 예견하고 자신의 무덤을 깊은 연못 속에 만들고 묘의 조성작업에 종사한 일꾼 500명을 모두 죽여 버린 까닭에 무덤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작업에 종사했다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노인이 알려주어, 자서는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에 채찍질을 300번 함으로써 복수하였는데, 굴묘편시(掘墓鞭屍)는 여기서 유래된 고사성어이다.

오자서의 친구 신포서(申包胥)가 이 소문을 듣고, "그대의 그러한 복수방법은 지나친 게 아닌가…"라고 책하였다. 그러자 오자서는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어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답하였는데, 여기서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되었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日暮途遠(일모도원) | 心腹之患(심복지환) | 吴市吹箫(오시취소,Wúshìchuīxiāo) |


史記(사기) : 伍子胥列傳(오자서열전) | 伍子胥(오자서) |

苟命徒生 (구명도생)

苟命徒生(구명도생)

구차스럽게 목숨만 보전함

軍令泰山 (군령태산)

軍令泰山(군령태산)

군대의 명령은 태산같이 무거움.

鞠躬盡力 (국궁진력)

鞠躬盡力(국궁진력)

鞠 공 국, 국문할 국, 궁궁이 궁 | 躬 몸 궁 | 盡 다할 진 | 力 힘 력(역) |

존경(尊敬)하는 마음으로, 몸을 낮춰 온힘을 다한다는 뜻을 나타냄

救國干城 (구국간성)

救國干城(구국간성)

나라를 구하여 지키는 믿음직한 군인이나 인물

九曲肝腸 (구곡간장)

九曲肝腸(구곡간장)

굽이굽이 서린 창자라는 뜻으로, 깊은 마음속 또는 시름이 쌓인 마음속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群鷄一鶴 (군계일학)

鷄群一鶴(계군일학) | 群鷄一鶴(군계일학) |

群鸡一鹤(qúnjīyíhè)

群 무리 군 | 鷄 닭 계 | 一 한 일 | 鶴 학 학,흴 학 |


무리 지어 있는 닭 가운데 있는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여러 평범(平凡)한 사람들 가운데 있는 뛰어난 한 사람을 이르는 말


위진시대(魏晉時代)에는 혼란스러운 세상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 문학과 노장(老莊)의 사상, 음악 등 청담(淸談)을 담론하며 세월을 보내던 선비가 적지 않았다. 이들 중 대표적인 인물은 죽림칠현(竹林七賢)으로 불리는 일곱 명의 선비 완적(阮籍)·완함(阮咸)·혜강(嵆康)·산도(山濤)·왕융(王戎)·유령(劉伶)·상수(尙秀) 등이다.

이들 가운데 혜강은 특히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는데, 무고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을 당하였다. 당시 그에게 열살박이 아들 혜소(嵆紹)가 있었다. 혜소는 장성하자 혜강의 친구 중 한 사람인 산도가 혜소를 무제(武帝:265~290)에게 천거하며 이렇게 말했다.

"《서경(書經)》 〈강고편(康誥篇)〉에 보면, 아버지와 자식간의 죄는 서로 연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혜소는 비록 혜강의 아들이지만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부 극결(郤缺)에 뒤지지 않을 만큼 총명합니다. 그를 비서랑(秘書郞)으로 임명하십시오." 무제는 "경(卿)이 천거(薦擧)하는 사람이라면 승(丞)이라도 능히 감당할 것이오"라고 흔쾌히 허락하였다. 이리하여 혜소는 비서랑보다 한 계급 위인 비서승에 임명되었다.

《진서(晉書)》 〈혜소전(嵆紹傳)〉에, 혜소가 낙양(洛陽)으로 가던 날,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이가 다음 날 왕융에게 "어제 구름같이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서 궁궐로 들어가는 혜소를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의젓하고 늠름하여 마치 닭의 무리 속에 있는 한 마리의 학 같았습니다[昂昂然如野鶴之在雞群]"라고 하였다.

그러자 왕융은 말했다. "혜소의 아버지는 그보다 더 뛰어났었다네. 자네는 그의 부친을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일세." 왕융의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혜소는 부친만은 못하지만, 상당히 뛰어난 인물이었다. 여기서 '계군일학'이란 말이 나왔으며 이 뜻은 학립계군(鶴立鷄群)·군계일학(群鷄一鶴)·계군고학(鷄群孤鶴) 등과 같이 통용된다. 혜소는 나중에 시중(侍中)으로 승진하여 혜제(惠帝) 곁에서 직언(直言)을 올리는 몸이 되어 올바르고 곧게 처신하였다고 한다.

팔왕의 난이 한창일 때 혜제는 이를 진압하려고 군병을 일으켰으나 전세가 불리하여 피란을 가게 되었다. 혜소가 부름을 받아 당도하였을 때는 혜제의 군이 이미 패하였을 때였다. 해소는 백관 시위가 모두 도망해 버린 곳에서 홀로 의관을 바로하고, 창과 칼이 불꽃을 일으키는 어차 앞에서 몸으로 혜제를 감싸며 지키다가, 적의 화살에 맞아 혜제의 어의(御依)를 선혈로 물들였다. 난이 끝난 뒤, 근시(近侍)들이 의복을 빨려 하자 혜제는 “이것은 혜소가 흘린 충의의 피이다. 씻어 없애지 마라" 하였다 한다.

[유래] 晉書(진서) : 忠義 |


관련 한자어

유의어

鶴立鷄群(학립계군) | 出衆(출중) | 錐處囊中(추처낭중) | 錐囊(추낭) | 絶倫(절윤) | 穎脫而出(영탈이출) | 穎脫(영탈) | 白眉(백미) | 拔群(발군) | 囊中之錐(낭중지추) | 鷄群鶴(계군학) | 鷄群一鶴(계군일학) | 鷄群孤鶴(계군고학) |

出類拔萃(출류발췌) 무리 가운데 특출나게 뛰어난 사람을 이르는 한자성어 |

庸中佼佼(용중교교,yōngzhōngjiǎojiǎo) 평범한 사람 중의 비범한 사람. 군계일학(群鷄一鶴) |


Tag

晉書(진서) : 忠義 | 出衆(출중) | 혜소(嵆紹) |

敎學相長 (교학상장)

敎學相長(교학상장)

남을 가르치거나 남에게 배우는 것이나 모두 나의 학업을 증진시킨다는 말.

狡兎三窟 (교토삼굴)

狡兎三窟(교토삼굴)

토끼가 위난을 막기 위해 지혜롭게 3개의 굴을 만드는 꾀를 지녔다는 뜻

2010년 말 구제역 확산으로 방역체계의 중요성을 절감한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교토삼굴이란 말로 2011년 직원들의 위기 대응 의식을 일깨움.


2011년 | 새해 사자성어

膠柱鼓瑟 (교주고슬)

膠柱鼓瑟(교주고슬)

변통성이 없음.

敎子採薪 (교자채신)

敎子採薪(교자채신)

敎 가르칠 교 | 子 아들 자 | 採 캘 채, 풍채 채 | 薪 섶 신 |

자식에게 땔나무 캐오는 법을 가르치라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장기적(長期的)인 안목을 갖고 근본적인 처방에 힘씀을 이르는 말


당나라 임신사(林愼思)가 지은 ‘속맹자(續孟子)’에 나오는 고사다.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나라의 어떤 아버지가 하루는 아들에게 땔나무를 해 오라면서 "너는 여기서부터 백 보 떨어진 곳 있는 나무를 먼저 해오겠느냐? 아니면 힘이 들더라도 백 리 떨어진 곳에 있는 나무를 먼저 오겠느냐?"고 물었다.

아들은 당연히 "백 보 떨어진 곳의 나무를 먼저 해 오겠다"고 대답(對答)했다.

그런 대답(對答)에 아버지는 “네가 가까운 곳으로 가겠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곳은 언제든지 해 올 수 있다. 그러나 백 리 떨어진 곳에 있는 나무는 다른 사람이 먼저 해 갈지도 모르니, 그곳의 땔감부터 가져와야 우리 집 근처의 땔감이 남아 있지 않겠니?"라고 말했다.

뜻을 이해한 아들은 땔나무를 하러 먼 곳으로 떠났다.

출전

속맹자(續孟子)

敎外別傳 (교외별전)

敎外別傳(교외별전)

석가 일대의 언설교(言說敎)외에 석존이 마음으로써 따로 심원한 듯을 전하여준 일.

驕兵必敗 (교병필패)

驕兵必敗(교병필패)

싸움에서 이기고 뽐내는 자는 반드시 패한다

家無擔石 (가무담석)

家無擔石(가무담석)

家 집 가, 여자 고 | 無 없을 무 | 擔 멜 담 | 石 돌 석 |

석(石)은 한 항아리, 담(擔)은 두 항아리의 뜻으로, 집에 조금도 없다는 말로, 집에 재물(財物)의 여유(餘裕)가 조금도 없음

담(擔)은 손 수(手)에 이를 첨(詹)을 짝지어 놓은 글자. 손이 닿는 곳에 짊어져야 할 물건이 있다는 뜻에서 '책임지다', '떠맡다'는 의미로 사용


한나라 유방의 휘하에 한신이라는 유능한 장수가 있었다. 그는 벼슬 없이 초야에 묻혀 살 때 집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家無擔石] 정도로 가난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빌붙어 살았다.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고 벼슬을 할 수 있도록 추천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한신이 회음현에 살 때 그는 친구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곤 했다. 이를 귀찮게 여긴 친구의 부인은 새벽에 밥을 해 먹고 그에게는 아침을 주지 않았다. 그 정도로 그는 회음현에서 거지 취급을 받았다. 이를 불쌍하게 여긴 빨래터의 한 아낙이 굶주린 한신에게 밥을 주었다. 이에 감동한 한신이 그 아낙에게 성공하여 은혜를 갚겠다고 하자, 아낙은 입에 풀칠도 못하는 사내가 불쌍하여 밥을 주는데 무슨 보답을 원하겠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한신은 훗날 초나라의 왕이 되었고 권력의 중심에 섰다.

이때부터 가무담석은 '매우 가난하다'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출전

사기(史記) 회음후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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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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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4급 사자성어 |

蛟龍得水 (교룡득수)

교룡득수(蛟龍得水)

좋은 기회를 얻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