抱頭鼠竄(포두서찬)
抱头鼠窜(bàotóushǔcuàn)
抱 안을 포 | 頭 머리 두 | 鼠 쥐 서 | 竄 숨을 찬 |
매우 낭패(狼狽)하여 급히 도망(逃亡)침을 비유한 말.
한(漢)나라 초엽, 한나라 왕 유방(劉邦)이 대장 한신(韓信)에게 제(齊)나라를 공격하라고 명하자, 제나라 왕 전광(田廣)은 초나라 항우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항우는 대장 용차(龍且)에게 20만 대군을 주어 구원에 나서도록 하였는데, 한신에게 크게 패하여 용차는 죽고 전광은 도망하였다.
제나라 땅이 평정되자, 유방은 한신을 제왕(齊王)에 봉하고, 계속하여 초나라로 진격하라고 하였다. 당시, 괴통이라고 하는 범양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한신에게 유방을 배반하여 독립하라고 권유하였다.
그러자 한신은 그에게 말했다.
"한나라 왕이 나를 이렇게 후히 대접해 주는데, 내가 어찌 배은망덕(背恩忘德:은혜를 잊고 도리어 배반함)할 수 있겠소?"
괴통이 말을 이었다.
"장군께서는 유방을 너무 믿고 있는데, 장차 그에게 큰 속임을 당할 것입니다. 장이(張耳)와 진여(陳餘)는 본시 친한 친구였지만, 상황이 변하자 진여는 군대를 빌어 장이를 공격하였습니다. 공격을 받은 장이는 머리를 감싸고 쥐처럼 도망하여 한나라 왕에게 귀순하였습니다. [常山王奉頭鼠竄, 以歸漢王 (상산왕봉두서찬, 이귀한왕)]. ... 이처럼 서로 목을 내놓을 만큼 절친했던 친구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장군께서 만약 유방이 장군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리라고 믿으신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출전: 한서열전(漢書列典)-괴통전(괴通傳)]
또, 삼국지연의 6회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손견이 원술과 만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들어온다. 그는 호뢰관에 어떤 장수가 말을 타고 와서 손견을 보고 싶어한다고 전한다. 원술과 헤어진 후 진지로 가보니 바로 동탁의 심복 이각(李傕)이었다. 손견은 물었다.
"어이하여 왔소?"
이각은 말한다. 동탁이 딸을 손견의 아들에게 시집 보내려 한다고. 이에 손견은 크게 노한다.
그러자 이각은 놀란 쥐처럼 머리를 감싼 채 돌아가 손견이 이렇게 무례하다며 전했다.
李傕抱頭鼠竄,回見董卓,說孫堅如此無禮。
[출전: 삼국지연의-第六回:焚金闕董卓行凶 匿玉璽孫堅背約]
관련 한자어
유의어
狼奔豕突(lángbēnshǐtū) 이리처럼 내달리고 멧돼지처럼 돌진하다. 악인들이 이리저리 날뛰며 제멋대로 나쁜 짓을 저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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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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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雀掘鼠 (라작굴서)
羅雀掘鼠(라작굴서)
그물 라 | 참새 작 | 팔 굴 | 쥐 서 |
그물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는다는 뜻으로, 최악의 상태에 이르러 어찌할 방법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 羅雀掘鼠(나작굴서)
그물 라 | 참새 작 | 팔 굴 | 쥐 서 |
그물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는다는 뜻으로, 최악의 상태에 이르러 어찌할 방법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 羅雀掘鼠(나작굴서)
羅雀掘鼠 (나작굴서)
羅雀掘鼠(나작굴서)
그물 라 | 참새 작 | 팔 굴 | 쥐 서 |
그물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는다는 뜻으로, 최악의 상태에 이르러 어찌할 방법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新唐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당(唐)나라 현종(玄宗)의 통치 말기, 장순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충직한 신하였을 뿐만 아니라 재주도 많고 무인답게 담력 또한 컸으며 대의가 분명한 그런 인물이었다. 정치가 부패하자 변방의 안록산(安祿山)은 군대를 일으켜 당나라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서시 756년, 진원(眞源) 현령 장순(張巡)은 군대를 동원하여 안록산 토벌에 나섰다. 이듬해, 안록산의 아들 안경서(安慶緖)는 윤자기(尹子琦)를 보내 십만 대군으로 장순을 맹렬히 공격하였다.
당시 장순에게는 겨우 삼 천명의 병력 뿐으로 수적으로 열세였다. 윤자기의 군대는 어떤 때에는 하루에 20여 차례나 공격을 해 왔지만, 장순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웠다. 윤자기의 군대는 수적으로는 우세하였지만, 성(城)을 함락하지 못하며, 몇 달 동안 대치하게 되었다. 장순은 몇 달 동안 구원군을 기다렸지만 그들이 오지 않자, 성 안의 식량과 풀이 다 바닥날 상황이었다. 형세가 급박하게 변하자 장순은 부하 남제운(南霽雲)을 보내 포위망을 뚫고 임회(臨淮) 태수 하란진명(賀蘭進明)에게 위급한 소식을 알렸다. 그러나 임회태수는 장순의 명성을 시기하여, 그들의 위급함을 보고도 구원병을 보내지 않았다.
윤자기는 강공(强攻)으로는 성을 함락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방법을 바꾸어 장순에게 투항을 권유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장순은 이에 굴하지 않고, 쉴새 없이 공격해 오는 적들을 모두 물리쳤다. 얼마 후, 성안의 식량이 점점 줄어들자, 군인들은 매일 한 수저의 쌀만을 먹었다. 이에 장순은 먹을 것을 확보하기 위하여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심지어는 그물을 쳐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으며, 갑옷과 활에 붙어있는 소가죽을 삶아서 굶주림을 달래라고 하였다(至羅雀掘鼠, 煮鎧弩以食).
장순은 지휘관의 입장에서 자식같은 병사들의 몸부림을 안타깝게 여겨 자기 아내를 죽여 국을 끓여서 병사들에게 먹이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상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악화되어 갔고, 더 이상 성을 고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마침내 성으로 진격해 들어오는 반란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장순이 항복을 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항복을 요구하는 반란군들을 향해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고는 청청병력 같은 소리로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반란군은 그 자리에서 그의 목을 베었다.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장순의 부하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의 죽음과 바꾼 충성심에 새삼 고개를 떨구게 되었다.
그물 라 | 참새 작 | 팔 굴 | 쥐 서 |
그물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는다는 뜻으로, 최악의 상태에 이르러 어찌할 방법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新唐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당(唐)나라 현종(玄宗)의 통치 말기, 장순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충직한 신하였을 뿐만 아니라 재주도 많고 무인답게 담력 또한 컸으며 대의가 분명한 그런 인물이었다. 정치가 부패하자 변방의 안록산(安祿山)은 군대를 일으켜 당나라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서시 756년, 진원(眞源) 현령 장순(張巡)은 군대를 동원하여 안록산 토벌에 나섰다. 이듬해, 안록산의 아들 안경서(安慶緖)는 윤자기(尹子琦)를 보내 십만 대군으로 장순을 맹렬히 공격하였다.
당시 장순에게는 겨우 삼 천명의 병력 뿐으로 수적으로 열세였다. 윤자기의 군대는 어떤 때에는 하루에 20여 차례나 공격을 해 왔지만, 장순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웠다. 윤자기의 군대는 수적으로는 우세하였지만, 성(城)을 함락하지 못하며, 몇 달 동안 대치하게 되었다. 장순은 몇 달 동안 구원군을 기다렸지만 그들이 오지 않자, 성 안의 식량과 풀이 다 바닥날 상황이었다. 형세가 급박하게 변하자 장순은 부하 남제운(南霽雲)을 보내 포위망을 뚫고 임회(臨淮) 태수 하란진명(賀蘭進明)에게 위급한 소식을 알렸다. 그러나 임회태수는 장순의 명성을 시기하여, 그들의 위급함을 보고도 구원병을 보내지 않았다.
윤자기는 강공(强攻)으로는 성을 함락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방법을 바꾸어 장순에게 투항을 권유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장순은 이에 굴하지 않고, 쉴새 없이 공격해 오는 적들을 모두 물리쳤다. 얼마 후, 성안의 식량이 점점 줄어들자, 군인들은 매일 한 수저의 쌀만을 먹었다. 이에 장순은 먹을 것을 확보하기 위하여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심지어는 그물을 쳐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으며, 갑옷과 활에 붙어있는 소가죽을 삶아서 굶주림을 달래라고 하였다(至羅雀掘鼠, 煮鎧弩以食).
장순은 지휘관의 입장에서 자식같은 병사들의 몸부림을 안타깝게 여겨 자기 아내를 죽여 국을 끓여서 병사들에게 먹이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상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악화되어 갔고, 더 이상 성을 고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마침내 성으로 진격해 들어오는 반란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장순이 항복을 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항복을 요구하는 반란군들을 향해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고는 청청병력 같은 소리로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반란군은 그 자리에서 그의 목을 베었다.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장순의 부하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의 죽음과 바꾼 충성심에 새삼 고개를 떨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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