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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後藥方文 (사후약방문)

死後藥方文(사후약방문)

死 죽을 사 | 後 뒤 후 | 藥 약 약 | 方 모 방 | 文 글월 문 |

사람이 죽은 뒤에 약을 짓는다는 뜻으로, 일을 그르친 뒤에 아무리 뉘우쳐야 이미 늦었다는 말

the day after the fair; the doctor after death.


한자어

반의어·상대어

有備無患(유비무환)

참조어

만시지탄(晩時之歎)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 도둑맞고 사립문 고친다.

死灰復燃 (사회부연)

死灰復燃(사회부연)

死 죽을 사 | 灰 재 회 | 復 다시 부, 회복할 복, 돌아올 복 | 燃 탈 연, 불사를 연 |

다 탄 재가 다시 불이 붙었다는 뜻으로, ①세력(勢力)을 잃었던 사람이 다시 세력(勢力)을 잡음 ②혹은 곤경(困境)에 처해 있던 사람이 훌륭하게 됨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사그라진 재에 다시 불이 붙었다'라는 뜻으로, 잃었던 권세(權勢)를 다시 찾거나 어려움에 처했던 사람이 다시 훌륭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싸움에 패하였다가 다시 쳐들어오거나 어떤 일에 실패한 뒤 힘을 쌓아 그 일에 다시 착수한다는 의미의 '권토중래(捲土重來)'와 비슷한 말이다. 사마 천(司馬遷)이 저술한 《사기(史記)》 '한장유열전(韓長孺列傳)'에서 유래한 성어(成語)이다.

중국 전한시대(前漢時代) 문제(文帝:재위 BC 180∼BC 157)의 둘째 아들인 양(梁)나라 효왕(孝王) 때의 관리 한안국(韓安國:자는 長孺)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그는 효왕과 한나라 효경제 사이의 불화를 해결하여 관직에 올랐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훗날, 그는 법을 어겨서 감옥에 갇혔다. 당시의 옥사쟁이 전갑(田甲)이 한안국을 모욕함으로써 한안국은 "다 타버린 재에서도 다시 불길이 살아나지 않는가[死灰獨不復燃(然)乎]"라고 하며 잃어버린 권력과 세력을 다시 찾겠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전갑은 "다시 불이 타면 오줌을 싸서 꺼겠다[然卽溺之]"라고 하면서 한안국을 비웃었다. [연(然)은 연(燃)과 통용]

얼마 후, 양나라에 내사(內史) 자리가 비게 되었다. 한나라에서는 사신을 보내 한안국을 양나라의 내사로 임명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한안국은 곧 석방되어 다시 높은 관직에 올랐다. 이 소식을 들은 전갑은 놀라 달아나 버렸다. 한안국은 전갑이 관직에 복귀하지 않으면 일족을 멸하겠다라고 포고했다. 벌벌 떨며 자수해 온 전갑에게 한안국은 웃으면서 말했다.

"오줌을 누어 보아라. 너희 같은 무리들은 문책할 가치조차 없느니라."

세력을 잃은 사람이 다시 활동하거나 득세(得勢)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한장유열전(韓長孺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捲土重來(권토중래)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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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事必歸正 (사필귀정)

事必歸正(사필귀정)

모든 일은 반드시 정리로 돌아감을 이르는 말.


경계

四通五達 (사통오달)

四通五達(사통오달)

사방으로 막힘 없이 통함.

社稷之臣 (사직지신)

社稷之臣(사직지신)

사직(왕조)을 지탱할 만한 신하.

四知 (사지)

四知(사지)

四 넉 사 | 知 알 지 |

두 사람만의 사이일지라도 하늘과 땅, 나와 상대편(相對便)이 다 알고 있다는 뜻으로, 비밀(秘密)은 언젠가는 반드시 탄로(綻露)나게 마련임을 이르는 말


後漢(후한)의 楊震(양진)은 그의 해박한 지식과 淸廉潔白(청렴결백)으로 關西公子(관서공자)라는 칭호를 들었다고 한다.

후한(後漢)의 양진(楊震)이 왕밀(王密)을 추천하여 왕밀이 창읍령(昌邑令)이 되었는데, 양진이 동래 태수(東萊太守)로 부임할 때 昌邑(창읍)에서 묵게 되었다. 그러자, 王密(왕밀)이 밤에 찾아와서 10금을 내밀며 뇌물로 바쳤다. 양진은 좋은 말로 타이르며 거절했다.

“나는 당신을 정직한 사람으로 믿어 왔는데, 당신은 나를 이렇게 대한단 말인가.”

왕밀은 말했다.

“지금은 밤중이라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자 양진이 나무랐다.

“아무도 모르다니,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아는데[天知地知子知我知] 어째서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한단 말인가.”

여기에서 사지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훗날 양진은 삼공(三公)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지만, 환관과 황제의 유모인 왕성의 청탁을 거절했다가 모함을 받게 되자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였다. 四知 란 天知地知子知我知를 가리키는 말이며, 세상에는 비밀이 있을 수 없음을 뜻한다. 四知 와 비슷한 서양식 표현으로는 영어의 'Walls have ears'라는 속담을 들 수 있다.


출전

십팔사략(十八史略) 양진전(楊震傳)


관련 속담

Walls have ears.


관련 한시

應過數粒食 得近四知金(응과수립식 득근사지금)
두어 술 밥이 내 분수에 응당 과분하나니, 어찌 넷이나 알고 있는 돈을 가까이 하리오.

- 두보(杜甫) 풍질주중복침서회정호남친우36운(風疾舟中伏枕書懷呈湖南親友三十六韻)

所寶惟金 楊震四知之說(소보유금 양진사지지설)
값진 것이 오직 금이로되 양진은 사지의 설을 말했네.

- 무명씨(無名氏) 기욕개동유현자절지부(嗜欲皆同惟賢者節之賦)

蛇足 (사족)

蛇足(사족)

뱀의 발. 뱀을 그리고 발을 그려 넣다. 있어도 쓸모없는 것 또는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공연스레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畵蛇添足(화사첨족)이라고도 한다.

事齊事楚 (사제사초)

事齊事楚(사제사초)

제(齊)나라도 섬기고 초(楚)나라도 섬긴다라는 뜻으로, 양쪽의 중간에서 난처한 경우를 이르는 말.


맹자(孟子) '양혜왕장구편(梁惠王章句篇)'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성어(成語)로 양쪽 사이에서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지도 못하여 난감한 상황을 말한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등(滕)나라는 면적이 매우 작았으나, 등나라 근처에 있는 제나라와 초나라는 큰 나라였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위협을 받은 등나라는 제나라와 친밀하게 지낼 수도 없고 초나라와 가까이하기도 어려웠다. 제나라와 초나라 가운데 한쪽과 친하게 지내면 서로 트집을 잡았기 때문에 등나라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딱한 처지였다.

전국시대의 맹자가 등나라의 왕 문공(文公)을 찾아왔을 때, 문공은 맹자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제나라와 초나라의 사이에 위치한 작은 나라인 우리 등나라는 제나라와 초나라 중 어느 나라를 섬겨야 합니까?[滕 小國也 間於齊楚 事齊乎 事楚乎]."

출전
맹자(孟子):양혜왕장구편(梁惠王章句篇)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間於齊楚(간어제초) | 鯨戰蝦死(경전하사) | 事齊事楚(사제사초) |

事人如天 (사인여천)

事人如天(사인여천)

동학사상(東學思想)으로 사람 대하기를 하늘같이 떠받들라는 말.

似而非 (사이비)

似而非(사이비)

似而非[sì'érfēi]

似 닮을 사 | 而 말 이을 이, 능히 능 | 非 아닐 비, 비방할 비 |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하지만 근본적(根本的)으로는 아주 다른 것


《맹자(孟子)》의 '진심편(盡心篇)'과 《논어(論語)》의 '양화편(陽貨篇)'에 나오는 말이다.

어느 날 맹자에게 제자 만장(萬章)이 찾아와 물었다.

"한 마을 사람들이 향원(鄕原:사이비 군자)을 모두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면 그가 어디를 가더라도 훌륭한 사람일 터인데 유독 공자만 그를 '덕(德)을 해치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이유가 무엇인지요."

맹자는 대답했다.

"그를 비난하려고 하여도 비난할 것이 없고, 일반 풍속에 어긋남도 없다. 집에 있으면 성실한 척하고 세상에서는 청렴결백한 것 같아 모두 그를 따르며,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지만 요(堯)와 순(舜)과 같은 도(道)에 함께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덕을 해치는 사람'이라 한 것이다."

그래도 만장이 별로 납득하는 것 같지 않자, 맹자는 말을 이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사이비한 것을 미워한다[孔子曰 惡似而非者]'라고 하셨다. '사이비는, 외모는 그럴듯하지만 본질은 전혀 다른, 즉 겉과 속이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며, 선량해 보이지만 실은 질이 좋지 못하다.' 공자가 사이비를 미워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강아지풀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곡식의 싹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말만 잘하는 것을 미워하는 이유는 정의를 어지럽힐까봐 걱정스러워서이며, 말 많은 것을 미워하는 이유는 신의를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고, 정(鄭)나라의 음란한 음악을 미워하는 이유는 아악(雅樂)을 더럽힐까 두려워서이고, 자줏빛을 미워하는 이유는 붉은빛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며, 향원(鄕原)을 미워함은 그가 덕을 어지럽힐까봐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향원이란 고을 안에서 점잖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머리에 든 학문도 없으면서 있는 척, 어질고 점잖은 척 위장술에 능하여 외견상으로는 훌륭한 사람으로 보여 사회적 영향력도 제법이지만, 이들은 자기 결점을 감추는 데 능하다.

이처럼 공자는 인의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겉만 번지르르하고 처세술에 능한 사이비를 '덕을 해치는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에 미워한 것이다.

원말은 사시이비(似是而非) 또는 사이비자(似而非者)이다.


출전

맹자(孟子) 진심장하(盡心章下)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似是而非(사시이비) | 似而非者(사이비자) | 同床各夢(동상각몽) | 口有蜜腹有劒(구유밀복유검) | 口蜜腹劍(구밀복검) | 表裏不同(표리부동) | 羊質虎皮(양질호피) | 陽奉陰違(양봉음위) | 羊頭狗肉(양두구육) | 笑中有劍(소중유검) | 笑面虎(소면호) | 笑裏藏刀(소리장도) | 面從腹背(면종복배) | 同床異夢(동상이몽) |

士爲知己者死女爲悅己者容 (사위지기자사여위열기자용)

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사위지기자사, 여위열기자용)

士 선비 사 | 爲 할 위 | 知 알 지 | 己 몸 기 | 者 놈 자 | 死 죽을 사 | 女 여자 여(녀) | 爲 할 위 | 悅 기쁠 열 | 己 몸 기 | 者 놈 자 | 容 얼굴 용 |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신을 기쁘게 하는 사람을 위해 꾸민다.

진(晉)의 예양(豫讓)이 한 말.


출전

史記(사기) 刺客列傳(자객열전) | 史記(사기) 豫讓傳(예양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士爲知己者死(사위지기자사)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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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어

國士報之(국사보지) | 國士遇之國士報之(국사우지국사보지) | 周公握髮(주공악발) 주공이 젖은 머리를 쥐다. 천하의 어진 인재를 잃지 않으려고 아랫사람이라도 정성으로 맞이하는 윗사람의 겸손한 행동 | 지음(知音) 음률을 이해해 주는 친구, 참된 친구 |


중요도·활용도

四書之經 (사서지경)

四書之經(사서지경)

사서의 경전. 사서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의 네 가지 책.

沙上樓閣 (사상누각)

沙上樓閣(사상누각)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헛된 일의 비유.

四分五裂 (사분오열)

四分五裂(사분오열)

四分五裂 [sìfēnwǔliè]

四 넉 사 | 分 나눌 분, 푼 푼 | 五 다섯 오 | 裂 찢을 열(렬) |

넷으로 나뉘고 다섯으로 쪼개진다는 말로 몇 갈래로 분열한다는 뜻. 천하가 몹시 어지러움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전국시대 중엽 蘇秦(소진)과 張儀(장의)가 한창 활약하던 때의 일이다. 소진은 合縱(합종)을 외치며 6개국이 동맹하여 동쪽진출을 노리는 秦(진)에 대항할 것을 설득했다. 장의는 連衡(연횡)을 부르짖으며 여섯나라가 한결같이 진을 따르는 것이 이롭다고 주장하며 돌아다녔다.

위나라의 재상이 된 장의는 위나라 애왕에게 합종을 포기하고 연횡책을 따를 것을 설득했다. 그때의 辯舌(변설).

『위나라는 사방 천리도 되지 않고 군대도 30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사방이 편평하여 제후들이 사방에서 쳐들어온다해도 요충지가 될 큰 산이 없습니다. 위나라의 지세는 원래가 전쟁터입니다. 위나라가 남쪽의 초나라와 연합하고 동쪽의 제나라와 연합하지 않으면 제나라가 위나라의 동쪽을 공격할 것입니다. 동쪽의 제나라와 연합하고 북쪽의 조나라와 연합하지 않으면 조나라가 북쪽을 공격할 것입니다. 서쪽의 한나라와 연합하지 않으면 한나라가 서쪽을 공격할 것이며 남쪽의 초나라와 가까이 하지 않으면 초나라가 남쪽을 공격해 올 것입니다. 이것이 사분오열의 길(道)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장의는 이어 합종책의 허점을 지적한다. 진나라와 연합해 함께 초나라를 쳐서 절반씩 나누어 갖자고 설득했다. 별수없이 애왕은 진나라와 화친을 맺었다.


출전

전국책(戰國策)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三分五裂(삼분오열) | 支离破碎[zhīlípòsuì, 지리멸렬] |

邪不犯正 (사불범정)

邪不犯正(사불범정)

사악한 것은 바른 것을 범하지 못함.

駟不及舌 (사불급설)

駟不及舌(사불급설)

駟 사마 사 | 不 아닐 불, 아닐 부 | 及 미칠 급 | 舌 혀 설 |

네 마리 말이 끄는 빠른 수레도 사람의 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뜻으로, 소문(所聞)은 빨리 퍼지므로 말조심하라는 말


논어(論語) 안연(顔淵)편에는 경솔한 말을 경계한 대목이 있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에게 위(衛)나라 대부(大夫)인 극자성(棘子成)이 물었다.

"군자는 바탕만 있으면 되었지 문(文)이 왜 필요합니까?"

그러자 자공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안타깝습니다. 그대의 말씀은 군자의 말씀입니다.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도 혀에 미치지 못합니다[夫子之說君子也, 駟不及舌]. 문(文)이 질(質)과 같고 질(質)이 문(文)과 같다면,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이 개나 양의 가죽과 같다는 것입니까?"

위에 나온 質(질)은 소박한 인간의 본성을 말하고, 文(문)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예의범절 등 외면치레를 나타낸다.

송(宋)나라 구양수(歐陽修)의 필설(筆說)에도 한 마디의 말이라도 한번 입을 떠나면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로도 쫓기 어렵다[一言旣出, 駟馬難追]라는 대목이 있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경계의 말은 예부터 많이 전해지고 있다.

≪詩經(시경)≫ 大雅(대아) 抑篇(억편)에 나오는, “흰 구슬의 이지러진 것은 오히려 갈 수 있지만 이 말의 이지러진 것은 어찌할 수 없다”도 그 예이다.

唐(당)나라 명재상 馮道(풍도)는 그의 [舌詩(설시)]에서 “입은 화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라고 했다.

駟不及舌(A word, once uttered, is beyond recall) 은 駟馬難追(Four horses can't overtake it -- a spoken word) 라고도 하는데, 이는 말을 신중하게 해야함을 비유한 표현이다.


출전

논어(論語) 안연(顔淵)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口是禍門(구시화문) | 口禍之門(구화지문) |



上兵伐謀 (상병벌모)

上兵伐謀(상병벌모)

上 윗 상 | 兵 병사 병 | 伐 칠 벌 | 謀 꾀 모 |

교묘한 전략으로 적을 공격하는 것이 상책이란 뜻.


손자는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을 최상의 전략으로 보았다. “상책의 용병은 적의 계략을 공격하는 것이며, 그 차선은 적의 외교관계를 공격하는 것이며, 그 다음 정책은 군대를 공격하는 것이며, 그 아래의 정책은 성을 공격하는 것이다[上兵伐謀, 其次伐交, 其次伐兵, 其下攻城].” 여기서 손자는 ‘벌모’ ‘벌교’ ‘벌병’ ‘공성’의 순서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밑의 단계로 내려갈수록 희생만 커지고 성과가 없어진다. 이는 손자가 말한 ‘비전(非戰)’ ‘비공(非攻)’ ‘비구(非久)’의 삼비(三非) 원칙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아군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적의 침략 의도를 꺾는 용병법이다.

‘벌모’란 상대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때로는 위협하고 때로는 이간질하고 때로는 유혹하는 등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모략을 의미한다. 사방이 제후국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튼튼한 연맹을 맺는 ‘벌교’ 역시 ‘벌모’ 못지않게 중요하다. ‘벌교’란 다른 제후국들이 아군의 전술에 대응하는 데 급급하게 만들어 이쪽의 틈은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군의 외교전술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전쟁을 결정하면 성문을 걸어 잠그고 통행증을 폐기하여 적국의 사절이 외교적인 접근을 못하게 하기도 했다. 외교가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말도 있듯 승리의 보조수단으로 외교의 중요성을 설파한 것이다.

손자는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벌병(伐兵)을 외교 다음의 대응책으로 삼았고 피해는 크되 효과를 내기는 어려운 공성(攻城)을 최하위에 두었다. 성을 오르는 병사들을 ‘의부(蟻附)’, 즉 개미떼로 비유하면서 무능한 장수가 병사들을 하찮은 미물로 여기고 치르는 무모한 전쟁법이라고 보았다. 손자가 ‘모공’ 편 첫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완전한 승리란 ‘나라를 온전하게(全國)’ 유지하면서 이기는 것이지 ‘나라를 파괴하는(破國)’것은 차선책인 것이다.

최소의 비용, 최대의 효과란 단지 용병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적용되어야 하는 최상의 비책인 셈이다.


출전

孫子(손자) 孫武(손무)


관련 한자어

上兵伐謀(상병벌모) | 其次伐交(기차벌교) | 其次伐兵(기차벌병) | 其下攻城(기하공성) |


참조

上兵[shàngbīng] (군사를 쓰는 데 있어서의) 상책(上策). 상계(上計). 상수(上數).

徙木之信 (사목지신)


徙木之信(사목지신)

徙 옮길 사 | 木 나무 목 | 之 갈 지 | 信 믿을 신 |

사기(史記) 상군열전(商君列傳)은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정치가인 상앙(商鞅, ?~BC338)의 법령 시행에 관한 일화가 실려 있다.

상앙은 새로운 법을 정하였으나, 백성들이 이를 믿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는 세 길이나 되는 나무를 남문(南門)에 세우고 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十金을 주겠다고 포고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를 이상하게 여겨 감히 옮기지 않았다. 상앙이 다시 五十金을 내걸자, 한 사나이가 나타나 그것을 북문으로 옮겼다. 상앙은 즉시 그에게 상금을 주어 거짓이 아님을 내보였다. 이렇게 하여 신법을 공포하였는데, 일년후 백성들이 그 법령의 불편한 점을 고하며 도성으로 몰려왔다. 이때 태자(太子)가 그 법을 어겼다. 상앙은 법이 잘 지켜지지 않은 것이 상류층 사람들이 범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태자의 보좌관과 그의 스승을 처형하였다. 이후 백성들은 기꺼이 법령을 준수하게 되었던 것이다.

徙木之信이란 약속을 반드시 실천에 옮긴다는 것을 뜻하며, 移木之信(이목지신)이라고도 한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徙木之信(사목지신) | 移木之信(이목지신) |

四面楚歌 (사면초가)

四面楚歌(사면초가)

사방에서 楚(초)나라 노래가 들려온다는 말로 궁지에 몰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킨다.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벌인 5년전쟁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전쟁 초기와는 반대로 형세는 이미 항우에게 아주 불리하게 되어 있었다. 항우는 유방에게 강화를 청하여 鴻口(홍구)를 기점으로 천하를 兩分(양분)했다. 홍구의 서쪽은 한나라가 차지하고 동쪽을 초나라가 차지하기로 한 것이다. 강화가 성립되자 항우는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돌아갔다.유방도 서쪽으로 돌아가려 하자 참모인 장량과 진평이 진언했다.

『지금이야말로 한나라와 초나라 세력의 優劣(우열)은 분명합니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이리하여 유방은 말머리를 돌려 항우를 추격하게 되었다.해하까지 쫓겨온 항우의 군사는 여기에 성벽을 쌓은 다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미 군량도 거의 바닥이 난데다가 병력마저 반으로 줄어 있었다. 게다가 한나라 군사는 성을 몇 겹으로 포위한 상태였다. 그런데 밤이 되자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들리는 것이었다. 항우는 크게 당황해하면서 말했다.

『한나라 군사가 이미 초나라를 정복했단 말인가. 초나라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많은가』

이것은 한나라에 항복한 초나라 병사들에게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해 항우와 그의 군사들의 戰意(전의)를 잃게 하려고 한 장량의 술책이었다. 여기에서 사면초가란 주변에는 적군뿐이어서 고립상태에 빠진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司馬昭之心 (사마소지심, SīmǎZhāozhīxīn)

司馬昭之心(사마소지심)

司马昭之心(SīmǎZhāozhīxīn)

司 맡을 사 | 馬 말 마 | 昭 밝을 소 | 之 갈 지 | 心 마음 심 |


'사마소의 마음'이라는 말로, 권력을 빼앗으려는 야심을 비유하거나 그러한 야심이 빤히 드러나 보인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고사성어이다. 《삼국지》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사마소는 위나라의 권신 사마의(司馬懿)의 아들이다. 사마의가 죽은 뒤에 위나라의 실권은 아들 사마사(司馬師)에게 이어졌다. 사마사가 죽은 뒤에 그의 동생인 사마소가 권력을 장악하였는데, 그는 황제인 조모의 권위를 무시하였다.

한번은 조모가 사마소를 진공(晋公)에 봉하고 구석(九錫)을 하사하였으나, 사마소는 이를 비웃으며 받지 않았다. 구석이란 황제가 총애하거나 공로가 있는 신하에게 내리는 9가지 은전으로, 거마(車馬)·의복·악기·주호(朱戶)·납폐(納陛)·호분(虎賁)·궁시(弓矢)·도끼·거창을 말한다. 이를 거절한 것은 곧 황제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요, 그가 황제의 자리를 노리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었다.

분노한 조모는 3명의 근신(近臣)들에게 "사마소의 마음은 길을 가는 사람들도 다 안다(司馬昭之心, 路人皆知). 내 더 이상 참을 수 없으니 사마소를 쳐야겠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근신들 가운데 2명이 즉시 이 사실을 사마소에게 고해 바쳤다. 조모는 위병들을 이끌고 사마소의 거소로 쳐들어갔으나, 결국 사마소의 손에 죽고 말았다.

이후 사마소는 조환을 허수아비 황제로 내세웠고, 사마소의 아들 사마염(司馬炎)은 조환을 몰아낸 뒤 국호를 진(晋)이라 고치고 황제가 되었다. 이 고사는 《삼국지》 〈위서(魏書)〉편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사마소지심은 권력 따위를 탈취하려는 음모와 야심이나 음흉한 심보가 다 드러났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司马昭之心, 路人皆知(SīmǎZhāozhīxīn, lùrénjiēzhī)
1.사마소의 야심은 길을 가는 사람조차 모두 다 안다.
2.야심이 분명하여 누구나 다 안다. 야심이 뻔히 들여다보이다. 모르는 사람이 없다. 드러난 음모와 야심.


三國志:卷04:程昱傳孫曉附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