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尺童子(삼척동자)
키가 석 자에 지나지 않는 어린애. 곧, 철모르는 어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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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人行必有我師 (삼인행필유아사, sānrénxíngbìyǒuwǒshī)
三人行必有我師(삼인행필유아사)
三人行必有我师(sānrénxíng, bìyǒuwǒshī)
三 석 삼 | 人 사람 인 | 行 갈 행 | 必 반드시 필 | 有 있을 유 | 我 나 아 | 師 스승 사 |
세 사람이 같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뜻으로, 어디라도 자신이 본받을 만한 것은 있다는 말.
《논어(論語)》의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말이다. "세 사람이 길을 같이 걸어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살펴 스스로 고쳐야 한다[三人行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삼인행필유아사는 좋은 것은 좇고 나쁜 것은 고치니 좋은 것도 나의 스승이 될 수 있고, 나쁜 것도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음의 글을 보더라도 공자 자신도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내가 나면서부터 저절로 도를 아는 것이 아니라 옛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찾아 배워 알게 되었을 뿐이다[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
원문 해석도 반드시 어디를 갈 때만이 아니라 행동할 때도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뜻이며, 하찮은 것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근거 없는 말도 여러 사람이 하면 믿게 된다는 뜻의 삼인성시호(三人成市虎)와 대조를 이루는 고사성어이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孔子穿珠(공자천주) | 不恥下問(불치하문) |
대조어
三人成市虎(삼인성시호) |
논어,논어:술이편
論語,論語:述而篇
三人行必有我师(sānrénxíng, bìyǒuwǒshī)
三 석 삼 | 人 사람 인 | 行 갈 행 | 必 반드시 필 | 有 있을 유 | 我 나 아 | 師 스승 사 |
세 사람이 같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뜻으로, 어디라도 자신이 본받을 만한 것은 있다는 말.
《논어(論語)》의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말이다. "세 사람이 길을 같이 걸어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살펴 스스로 고쳐야 한다[三人行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삼인행필유아사는 좋은 것은 좇고 나쁜 것은 고치니 좋은 것도 나의 스승이 될 수 있고, 나쁜 것도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음의 글을 보더라도 공자 자신도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내가 나면서부터 저절로 도를 아는 것이 아니라 옛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찾아 배워 알게 되었을 뿐이다[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
원문 해석도 반드시 어디를 갈 때만이 아니라 행동할 때도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뜻이며, 하찮은 것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근거 없는 말도 여러 사람이 하면 믿게 된다는 뜻의 삼인성시호(三人成市虎)와 대조를 이루는 고사성어이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孔子穿珠(공자천주) | 不恥下問(불치하문) |
대조어
三人成市虎(삼인성시호) |
논어,논어:술이편
論語,論語:述而篇
三益之友 (삼익지우, sānyìzhīyǒu)
三益之友(삼익지우)
三益之友(sān yì zhī yǒu)
三 석 삼│ 益 더할 익, 넘칠 일│ 之 갈 지│ 友 벗 우
사귀어 이로운 세 부류(部類)의 벗으로서, 정직(正直)한 사람과 성실(誠實)한 사람과 견문(見聞)이 넓은 사람을 이름
유래
논어(論語)
Tag
관계│벗
三益之友(sān yì zhī yǒu)
三 석 삼│ 益 더할 익, 넘칠 일│ 之 갈 지│ 友 벗 우
사귀어 이로운 세 부류(部類)의 벗으로서, 정직(正直)한 사람과 성실(誠實)한 사람과 견문(見聞)이 넓은 사람을 이름
유래
논어(論語)
Tag
관계│벗
三人成市虎 (삼인성시호, sānrénchéngshìhǔ)
三人成市虎(삼인성시호)
三人成市虎(sān rén chéng shì hǔ)
三 석 삼 | 人 사람 인 | 成 이룰 성 | 市 시장 시 | 虎 범 호 |
세 명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곧이 믿게 된다는 뜻으로,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똑같이 하면 믿게 된다는 말.
《한비자(韓非子)》의 〈내저설(內儲說)〉과 《전국책(戰國策)》의 〈위책 혜왕(魏策 惠王)〉에 나오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위(魏)나라 혜왕 때 일어난 일이다. 위나라는 외교 관례상 조(趙)나라에 인질로 태자와 그의 수행원을 보내야만 하였다. 태자의 수행원으로 중신 방총(龐蔥)이 선발되었다. 방총은 조나라의 도읍 한단으로 떠나기 전에 왕을 알현하고 왕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대화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첫 번째는 한 사람이, 두 번째는 두 사람이 연이어 말하더라도 왕은 믿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렇지만 세 번째로 세 사람이 와서 똑같은 말을 하면 믿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방총이 “시장에는 분명히 호랑이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세 사람이 연이어 똑같은 말을 하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됩니다[夫市之無虎明矣 然而三人言而成虎].”라고 하였다. 방총은 자신이 조나라로 떠난 이후 자신을 비방하는 자가 한둘이 아닐 것이니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였다. 왕은 어떤 중상이든지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방총이 조나라로 떠나자마자 방총을 비방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몇 년 후 인질로 간 태자는 풀려났으나 왕의 의심을 받은 방총은 귀국하지 못한 신세가 되었다. 방총은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왕에게 간언한 것이다.
근거 없는 말도 여러 사람이 하면 믿게 된다는 뜻이며, 유언비어로 진실을 숨기는 것을 비유할 때도 종종 사용된다. 동의어로 시유호(市有虎), 시호삼전(市虎三傳), 삼인언이성호(三人言而成虎)가 있다. 비슷한 한자 숙어로 증삼살인(曾參殺人:공자의 제자인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인데,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하면 믿을 수밖에 없다는 뜻), 십작목무부전(十斫木無不顚: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는 뜻으로,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도 같은 거짓말을 여러 번 듣게 되면 곧이 듣게 된다는 말) 등이 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
三人成市虎(삼인성시호) | 三人成虎(삼인성호) | 시유호(市有虎) | 시호삼전(市虎三傳) | 삼인언이성호(三人言而成虎) |
유의어
증삼살인(曾參殺人) | 십작목무부전(十斫木無不顚) |
대조어
三人行必有我師(삼인행필유아사) |
三人成市虎(sān rén chéng shì hǔ)
三 석 삼 | 人 사람 인 | 成 이룰 성 | 市 시장 시 | 虎 범 호 |
세 명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곧이 믿게 된다는 뜻으로,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똑같이 하면 믿게 된다는 말.
《한비자(韓非子)》의 〈내저설(內儲說)〉과 《전국책(戰國策)》의 〈위책 혜왕(魏策 惠王)〉에 나오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위(魏)나라 혜왕 때 일어난 일이다. 위나라는 외교 관례상 조(趙)나라에 인질로 태자와 그의 수행원을 보내야만 하였다. 태자의 수행원으로 중신 방총(龐蔥)이 선발되었다. 방총은 조나라의 도읍 한단으로 떠나기 전에 왕을 알현하고 왕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대화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첫 번째는 한 사람이, 두 번째는 두 사람이 연이어 말하더라도 왕은 믿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렇지만 세 번째로 세 사람이 와서 똑같은 말을 하면 믿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방총이 “시장에는 분명히 호랑이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세 사람이 연이어 똑같은 말을 하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됩니다[夫市之無虎明矣 然而三人言而成虎].”라고 하였다. 방총은 자신이 조나라로 떠난 이후 자신을 비방하는 자가 한둘이 아닐 것이니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였다. 왕은 어떤 중상이든지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방총이 조나라로 떠나자마자 방총을 비방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몇 년 후 인질로 간 태자는 풀려났으나 왕의 의심을 받은 방총은 귀국하지 못한 신세가 되었다. 방총은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왕에게 간언한 것이다.
근거 없는 말도 여러 사람이 하면 믿게 된다는 뜻이며, 유언비어로 진실을 숨기는 것을 비유할 때도 종종 사용된다. 동의어로 시유호(市有虎), 시호삼전(市虎三傳), 삼인언이성호(三人言而成虎)가 있다. 비슷한 한자 숙어로 증삼살인(曾參殺人:공자의 제자인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인데,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하면 믿을 수밖에 없다는 뜻), 십작목무부전(十斫木無不顚: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는 뜻으로,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도 같은 거짓말을 여러 번 듣게 되면 곧이 듣게 된다는 말) 등이 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
三人成市虎(삼인성시호) | 三人成虎(삼인성호) | 시유호(市有虎) | 시호삼전(市虎三傳) | 삼인언이성호(三人言而成虎) |
유의어
증삼살인(曾參殺人) | 십작목무부전(十斫木無不顚) |
대조어
三人行必有我師(삼인행필유아사) |
三人成虎 (삼인성호)
三人成虎(삼인성호)
三 석 삼 | 人 사람 인 | 成 이룰 성 | 虎 범 호 |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에는 위나라 혜왕(惠王)과 그의 대신 방총이 나눈 대화가 실려 있다. 방총은 태자를 수행하고 조(趙)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없는 사이에 자신을 중상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을 우려하여, 위 혜왕에게 몇 마디 아뢰게 된다.
"만약 어떤이가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을 한다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위 혜왕은 "그걸 누가 믿겠는가?"라고 하였다. 방총이 다시 "다른 사람이 또 와서 같은 말을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왕은 "그렇다면 반신반의하게 될 것이네."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방총이 "세 사람째 와서 똑같은 말을 한다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라고 하자 왕은 곧 "과인은 그것을 믿겠네."라고 하였다. 이에 방총은 "시장에 호랑이가 없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한다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으로 되어 버립니다.[三人言而成虎]"라고 말하면서, 그는 자신을 중상모략하는 자들의 말을 듣지 않기를 청하였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
三人成市虎(삼인성시호) | 三人成虎(삼인성호) | 시유호(市有虎) | 시호삼전(市虎三傳) | 삼인언이성호(三人言而成虎) |
유의어
증삼살인(曾參殺人) | 십작목무부전(十斫木無不顚) |
三 석 삼 | 人 사람 인 | 成 이룰 성 | 虎 범 호 |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에는 위나라 혜왕(惠王)과 그의 대신 방총이 나눈 대화가 실려 있다. 방총은 태자를 수행하고 조(趙)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없는 사이에 자신을 중상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을 우려하여, 위 혜왕에게 몇 마디 아뢰게 된다.
"만약 어떤이가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을 한다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위 혜왕은 "그걸 누가 믿겠는가?"라고 하였다. 방총이 다시 "다른 사람이 또 와서 같은 말을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왕은 "그렇다면 반신반의하게 될 것이네."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방총이 "세 사람째 와서 똑같은 말을 한다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라고 하자 왕은 곧 "과인은 그것을 믿겠네."라고 하였다. 이에 방총은 "시장에 호랑이가 없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한다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으로 되어 버립니다.[三人言而成虎]"라고 말하면서, 그는 자신을 중상모략하는 자들의 말을 듣지 않기를 청하였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
三人成市虎(삼인성시호) | 三人成虎(삼인성호) | 시유호(市有虎) | 시호삼전(市虎三傳) | 삼인언이성호(三人言而成虎) |
유의어
증삼살인(曾參殺人) | 십작목무부전(十斫木無不顚) |
三十六計走爲上策 (삼십육계주위상책)
三十六計走爲上策(삼십육계주위상책)
三十六计,走为上策(sānshíliùjì, zǒuwéishàngcè)
三 석 삼 | 十 열 십 | 六 여섯 륙 | 計 꾀 계 | 走 달아날 주 | 爲 할 위 | 上 위 상 | 策 계책 책 |
서른여섯 가지 계책 가운데 도망가는 것이 제일 좋은 계책이라는 뜻으로, 상황이 불리할 때는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
송(宋) 나라 사마광(司馬光:1019~1086)이 지은 《자치통감(資治通鑑)》 141권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남북조시대 제(齊)나라 제5대 황제 명제(明帝) 때 일어난 일이다. 명제는 고제(高帝)의 사촌 형제인데, 고제의 증손(제3, 4대 황제)들을 죽이고 황제위를 빼앗았다. 그는 황제에 즉위한 이후 반란과 보복이 두려워 자기를 반대한 형제와 조카 14명을 살해한 것은 물론 자기 주위 사람들마저도 자신에게 반대하면 여지없이 죽였다. 그뿐만 아니라 와병 중에도 왕족을 10여 명이나 죽였다. 명제의 가차없는 살해 행위에 회계(會稽) 지방 태수(太守) 왕경칙(王敬則)은 개국 공신인데도 생명의 위협을 느껴 먼저 군사를 일으켰다. 왕경칙은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건강(建康:지금의 난징)을 향해 진격하였는데, 도중에 명제의 학정(虐政)에 불만을 가진 농민들이 가세하여 군사가 10만 명으로 늘어났다. 왕경칙은 출정한 지 10여 일 만에 건강과 흥성성(興盛城)을 함락하는 등 그의 기세는 파죽지세였다.
이때 병석에 누워 있던 명제 대신에 정사를 돌보고 있던 태자 소보권(蕭寶卷)은 건강과 흥성성의 함락 소식을 듣자 피난 준비를 서둘렀다. 소보권의 피난 소식을 들은 왕경칙은 “단(檀) 장군의 36가지 계책 가운데 도망치는 것이 제일 상책이니 너희 부자는 어서 도망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檀公三十六策 走爲上策 計汝父子唯有走耳].”라고 자신 있게 충고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당당한 왕경칙도 결국 제나라 군사에게 포위되어 참수당하였다.
승산 없는 싸움은 피하는 것이 병법의 기본이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말이 있듯이 상황이 불리하면 일단 후퇴하였다가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지혜로운 군사적인 전술이다. 삼십육계주위상책도 전세가 매우 불리하면 일단 작전상 후퇴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책이라는 뜻이다. 단 장군은 남북조시대 남조 최초의 왕조인 송(宋) 무제(武帝)의 건국을 도운 명장 단도제(檀道濟)로, 북위(北魏)와 싸울 때 전세가 불리하면 잘 도망쳤다고 한다. 동의어는 삼십육계주위상계(三十六計走爲上計)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三十六計走爲上計(삼십육계주위상계) | 三十六計走爲上策(삼십육계주위상책) | 走爲上(주위상) | 走爲上計(주위상계) |
走爲上策(주위상책) |
三十六计,走为上策(sānshíliùjì, zǒuwéishàngcè)
三 석 삼 | 十 열 십 | 六 여섯 륙 | 計 꾀 계 | 走 달아날 주 | 爲 할 위 | 上 위 상 | 策 계책 책 |
서른여섯 가지 계책 가운데 도망가는 것이 제일 좋은 계책이라는 뜻으로, 상황이 불리할 때는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
송(宋) 나라 사마광(司馬光:1019~1086)이 지은 《자치통감(資治通鑑)》 141권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남북조시대 제(齊)나라 제5대 황제 명제(明帝) 때 일어난 일이다. 명제는 고제(高帝)의 사촌 형제인데, 고제의 증손(제3, 4대 황제)들을 죽이고 황제위를 빼앗았다. 그는 황제에 즉위한 이후 반란과 보복이 두려워 자기를 반대한 형제와 조카 14명을 살해한 것은 물론 자기 주위 사람들마저도 자신에게 반대하면 여지없이 죽였다. 그뿐만 아니라 와병 중에도 왕족을 10여 명이나 죽였다. 명제의 가차없는 살해 행위에 회계(會稽) 지방 태수(太守) 왕경칙(王敬則)은 개국 공신인데도 생명의 위협을 느껴 먼저 군사를 일으켰다. 왕경칙은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건강(建康:지금의 난징)을 향해 진격하였는데, 도중에 명제의 학정(虐政)에 불만을 가진 농민들이 가세하여 군사가 10만 명으로 늘어났다. 왕경칙은 출정한 지 10여 일 만에 건강과 흥성성(興盛城)을 함락하는 등 그의 기세는 파죽지세였다.
이때 병석에 누워 있던 명제 대신에 정사를 돌보고 있던 태자 소보권(蕭寶卷)은 건강과 흥성성의 함락 소식을 듣자 피난 준비를 서둘렀다. 소보권의 피난 소식을 들은 왕경칙은 “단(檀) 장군의 36가지 계책 가운데 도망치는 것이 제일 상책이니 너희 부자는 어서 도망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檀公三十六策 走爲上策 計汝父子唯有走耳].”라고 자신 있게 충고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당당한 왕경칙도 결국 제나라 군사에게 포위되어 참수당하였다.
승산 없는 싸움은 피하는 것이 병법의 기본이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말이 있듯이 상황이 불리하면 일단 후퇴하였다가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지혜로운 군사적인 전술이다. 삼십육계주위상책도 전세가 매우 불리하면 일단 작전상 후퇴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책이라는 뜻이다. 단 장군은 남북조시대 남조 최초의 왕조인 송(宋) 무제(武帝)의 건국을 도운 명장 단도제(檀道濟)로, 북위(北魏)와 싸울 때 전세가 불리하면 잘 도망쳤다고 한다. 동의어는 삼십육계주위상계(三十六計走爲上計)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三十六計走爲上計(삼십육계주위상계) | 三十六計走爲上策(삼십육계주위상책) | 走爲上(주위상) | 走爲上計(주위상계) |
走爲上策(주위상책) |
三歲之習至于八十 (삼세지습지우팔십)
三歲之習至于八十(삼세지습지우팔십)
三 석 삼 | 歲 해 세 | 之 갈 지 | 習 익힐 습 | 至 이를 지, 덜렁대는 모양 질 | 于 어조사 우, 이지러질 휴 | 八 여덟 팔 | 十 열 십 |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習性(습성)은 고치기 어렵다는 뜻. 어릴 때부터 버릇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말.
[출전]
이담속찬(耳談續纂)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 제 버릇 개 못 준다.
三 석 삼 | 歲 해 세 | 之 갈 지 | 習 익힐 습 | 至 이를 지, 덜렁대는 모양 질 | 于 어조사 우, 이지러질 휴 | 八 여덟 팔 | 十 열 십 |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習性(습성)은 고치기 어렵다는 뜻. 어릴 때부터 버릇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말.
[출전]
이담속찬(耳談續纂)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 제 버릇 개 못 준다.
三夫二君一子 (삼부이군일자, sānfūèrjūnyìzǐ)
三夫二君一子(삼부이군일자)
三夫二君一子(sānfū èrjūn yìzǐ)
三 석 삼 | 夫 지아비 부 | 二 두 이 | 君 임금 군 | 一 하나 일 | 子 아들 자 |
세 명의 남편과 두 명의 임금과 한 명의 아들
경국지색에 빼놓을 수 없는 여인이 또 있다. 바로 하희(夏姬)이다. 하희는 춘추시대 정나라 목공의 딸로 진(陳)나라 대부 하어숙의 미망인이었다. 그녀는 자그마치 세 명의 남편과 두 명의 임금과 한 명의 아들 (三夫二君一子 삼부이군일자)을 죽게 만들었으며 한 나라와 두 명의 대신을 멸망시킨 희대의 요부였다.
그녀는 결혼하기 전에도 자기의 친오빠인 정나라 영공과 정을 통했고 또 재상 자공과도 통정하였다. 이 불륜의 삼각관계가 불씨가 되어 마침내 영공은 자공에게 죽음을 당했다. 하희가 진(陳)나라에 시집온 후 아들 하나를 낳고 남편 하어숙은 그만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러나 '하희는 세 번씩이나 젊어졌다.'는 말이 후세에 전해질 정도로 하희의 미색은 뛰어났을 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그녀의 요염미는 더해졌던 것이었다.
우선 하희는 정나라의 왕이었던 영공과 눈이 맞아 남몰래 정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영공뿐 아니라 공령, 의행보라는 두 사람의 대부도 각기 하희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세 사람은 하희의 속옷을 얻어 그것을 조정의 회의 석상에 까지 입고 나와 서로 자랑할 정도였다.
어느날 영공은 하희의 아들이며 대부인 징서를 앞에 놓고 두 사람의 대부를 비아냥댔다.
"징서의 얼굴이 아무래도 자네들을 닮았네 그려."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왕님을 쏙 빼어 닮았습니다."
그리고는 세 사람은 키득거렸다.
징서는 매우 불쾌해 졌다. 그래서 그는 큰 활을 들고 마굿간 문 옆에 숨어 기다리다가 영공이 돌아갈 때 쏘아 죽이고 말았다. 공령과 의행보는 그대로 초나라로 도망쳤고 영공의 태자도 진(晋)나라로 피했다. 그리하여 징서는 스스로 왕임을 자처하게 되었다.
이듬해 초나라 장왕은 영공 암살의 죄상을 들어 군사를 일으켜 징서를 토벌하고 주살하였으며 정나라를 초나라에 복속시켰다. 이때 장왕은 하희와 환락의 하룻밤을 보낸 후 그녀를 소실로 삼고자 했으나 대부 무신이 말렸다.
"하희는 상서롭지 못한 여인입니다. 그녀가 정나라에 있을 때 오빠인 영공과 그리고 재상 자공과 동시에 정을 통해 마침내 영공이 비명횡사 했습니다. 그리고 시집와서도 남편을 요절하게 만들었고 또한 세 사람과 정을 통해 그로 말미암아 나라까지 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천하에 미인이 도처에 깔려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이 음란하고 상서롭지 못한 여자를 취하려 하십니까?"
그러자 왕이 단념하였다.
이번에는 장군 자반이 그녀를 달라고 했지만 무신이 역시 제지시켰다. 그후 연윤(連尹) 벼슬에 있던 양로가 하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양로 역시 전쟁에 나가 죽었고 그 아들 흑요가 그녀를 범하여 데리고 살게 되었다. 이때 평소에 하희를 탐내왔던 무신이 꾀를 내어 결국 하희를 데리고 진(晋)나라로 도망쳐 같이 살았다. 그러자 장군 자반이 크게 화를 내어 흑요를 죽이고 무신의 가족들을 몰살시켜 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무신은 복수를 결심하고 스스로 오나라로 가서 강력한 군대를 길러 틈만 있으면 초나라를 침략하였다. 드디어 오나라는 진(晋)나라와 힘을 합해 초나라를 공격, 대승을 거두게 되었는데 초나라 왕은 한쪽 눈을 실명하였고 홧김에 장군 자반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 모두가 하희라는 한 요부로부터 비롯된 일이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傾國之色(경국지색) |
三夫二君一子(sānfū èrjūn yìzǐ)
三 석 삼 | 夫 지아비 부 | 二 두 이 | 君 임금 군 | 一 하나 일 | 子 아들 자 |
세 명의 남편과 두 명의 임금과 한 명의 아들
경국지색에 빼놓을 수 없는 여인이 또 있다. 바로 하희(夏姬)이다. 하희는 춘추시대 정나라 목공의 딸로 진(陳)나라 대부 하어숙의 미망인이었다. 그녀는 자그마치 세 명의 남편과 두 명의 임금과 한 명의 아들 (三夫二君一子 삼부이군일자)을 죽게 만들었으며 한 나라와 두 명의 대신을 멸망시킨 희대의 요부였다.
그녀는 결혼하기 전에도 자기의 친오빠인 정나라 영공과 정을 통했고 또 재상 자공과도 통정하였다. 이 불륜의 삼각관계가 불씨가 되어 마침내 영공은 자공에게 죽음을 당했다. 하희가 진(陳)나라에 시집온 후 아들 하나를 낳고 남편 하어숙은 그만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러나 '하희는 세 번씩이나 젊어졌다.'는 말이 후세에 전해질 정도로 하희의 미색은 뛰어났을 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그녀의 요염미는 더해졌던 것이었다.
우선 하희는 정나라의 왕이었던 영공과 눈이 맞아 남몰래 정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영공뿐 아니라 공령, 의행보라는 두 사람의 대부도 각기 하희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세 사람은 하희의 속옷을 얻어 그것을 조정의 회의 석상에 까지 입고 나와 서로 자랑할 정도였다.
어느날 영공은 하희의 아들이며 대부인 징서를 앞에 놓고 두 사람의 대부를 비아냥댔다.
"징서의 얼굴이 아무래도 자네들을 닮았네 그려."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왕님을 쏙 빼어 닮았습니다."
그리고는 세 사람은 키득거렸다.
징서는 매우 불쾌해 졌다. 그래서 그는 큰 활을 들고 마굿간 문 옆에 숨어 기다리다가 영공이 돌아갈 때 쏘아 죽이고 말았다. 공령과 의행보는 그대로 초나라로 도망쳤고 영공의 태자도 진(晋)나라로 피했다. 그리하여 징서는 스스로 왕임을 자처하게 되었다.
이듬해 초나라 장왕은 영공 암살의 죄상을 들어 군사를 일으켜 징서를 토벌하고 주살하였으며 정나라를 초나라에 복속시켰다. 이때 장왕은 하희와 환락의 하룻밤을 보낸 후 그녀를 소실로 삼고자 했으나 대부 무신이 말렸다.
"하희는 상서롭지 못한 여인입니다. 그녀가 정나라에 있을 때 오빠인 영공과 그리고 재상 자공과 동시에 정을 통해 마침내 영공이 비명횡사 했습니다. 그리고 시집와서도 남편을 요절하게 만들었고 또한 세 사람과 정을 통해 그로 말미암아 나라까지 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천하에 미인이 도처에 깔려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이 음란하고 상서롭지 못한 여자를 취하려 하십니까?"
그러자 왕이 단념하였다.
이번에는 장군 자반이 그녀를 달라고 했지만 무신이 역시 제지시켰다. 그후 연윤(連尹) 벼슬에 있던 양로가 하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양로 역시 전쟁에 나가 죽었고 그 아들 흑요가 그녀를 범하여 데리고 살게 되었다. 이때 평소에 하희를 탐내왔던 무신이 꾀를 내어 결국 하희를 데리고 진(晋)나라로 도망쳐 같이 살았다. 그러자 장군 자반이 크게 화를 내어 흑요를 죽이고 무신의 가족들을 몰살시켜 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무신은 복수를 결심하고 스스로 오나라로 가서 강력한 군대를 길러 틈만 있으면 초나라를 침략하였다. 드디어 오나라는 진(晋)나라와 힘을 합해 초나라를 공격, 대승을 거두게 되었는데 초나라 왕은 한쪽 눈을 실명하였고 홧김에 장군 자반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 모두가 하희라는 한 요부로부터 비롯된 일이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傾國之色(경국지색) |
三顧草廬 (삼고초려, sāngùmáolú)
三顧草廬(삼고초려)
三顾茅庐(sāngùmáolú)
三 석 삼 | 顧 돌아볼 고 | 草 풀 초 | 廬 농막집 려,창 자루 로 |
유비(劉備)가 제갈공명(諸葛孔明)을 세 번이나 찾아가 군사(軍師)로 초빙(招聘)한 데서 유래(由來)한 말로, ①임금의 두터운 사랑을 입다라는 뜻 ②인재(人材)를 맞기 위(爲)해 참을성 있게 힘씀.
《삼국지(三國志)》의 〈촉지 제갈량전(蜀志 諸葛亮傳)〉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後漢) 말기 관우(關羽:?~219)·장비(張飛:166?~221)와 의형제를 맺고 무너져 가는 한(漢)나라의 부흥을 위해 애를 쓴 유비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세월을 허송하며 탄식하였다. 유비는 유표(劉彪)에게 몸을 맡기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관우와 장비 같은 용맹무쌍한 장수를 두고도 조조(曹操)에게 여러 차례 당하였다. 유비는 그 이유가 유효 적절한 전술을 발휘할 지혜로운 참모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유능한 참모를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유비는 유표의 부하인 채모의 계략을 피하려다 길을 잃고, 우연히 은사(隱士)인 사마휘(司馬徽)를 만나게 된다. 사마휘에게 유능한 책사를 천거해 달라고 부탁하자 사마휘는 "복룡(伏龍)과 봉추(鳳雛) 가운데 한 사람만 얻어도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라고 말하였다. "대체 복룡은 누구고, 봉추는 누구입니까?" 그러나 사마휘는 말을 흐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 후 제갈 량의 별명이 복룡이란 것을 안 유비는 복룡인 제갈 량을 맞으러 관우·장비와 함께 예물을 싣고 양양(襄陽)에 있는 그의 초가집으로 찾아갔으나 제갈량은 집에 없었다.
며칠 후 또 찾아갔으나 역시 출타하고 없었다. "전번에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이거, 너무 무례하지 않습니까? 듣자니 그 자는 아직 나이도 젊다던데..." "그까짓 제갈 공명이 뭔데. 형님, 이젠 다시 찾아오지 마십시오." 마침내 동행했던 관우와 장비의 불평이 터지고 말았다. "다음엔 너희들은 따라오지 말아라." 관우와 장비가 극구 만류하는데도 유비는 단념하지 않고 세 번째 방문길에 나섰고, 그 때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이때 제갈 량은 27세, 유비는 47세였다.
제갈 량은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여 초가집에서 손수 농사를 지으며 은거하고 있었으나, 유비의 정성에 감복하여 그를 돕기로 결심하였다. 유비는 제갈 량을 얻은 이후 자신과 제갈 량의 사이를 수어지교(水魚之交: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은 사이)라며 기뻐하였다. 훗날 제갈량은 《출사표(出師表)》에서 유비의 지극한 정성에 대하여 "비천한 신을 싫어하지 않고 외람되게도 몸을 낮추어 제 초가집을 세 번씩이나 찾아 주어 당시의 상황을 물으셨습니다. 이 일로 저는 감격하여 선제께서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라고 감사하였다.
여기서 유래하여 삼고지례는 유비가 초가집을 세 번이나 찾아가 제갈 량을 감복시켜 자신을 돕게 하였던 것처럼 유능한 인재를 얻기 위하여 진심으로 예를 갖추어 맞이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줄여서 삼고(三顧)라고도 하고, 삼고지례(三顧之禮) 또는 초려삼고(草廬三顧)라고도 한다.
[출전]
三國志(Sānguózhì):蜀志(촉지):諸葛亮傳(제갈량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
三顧(삼고) | 草廬三顧(초려삼고) | 三顧之禮(삼고지례) |
참조어
猶魚有水(유어유수) | 魚水親(어수친) | 魚水之親(어수지친) | 水魚之親(수어지친) | 魚水之交(어수지교) | 水魚之交(수어지교) | 水魚(수어) | 君臣水魚(군신수어) |
삼국지, 삼국지:촉지, 삼국지:촉지:제갈량전
三國志, 三國志:蜀志, 三國志:蜀志:諸葛亮傳
三顾茅庐(sāngùmáolú)
三 석 삼 | 顧 돌아볼 고 | 草 풀 초 | 廬 농막집 려,창 자루 로 |
유비(劉備)가 제갈공명(諸葛孔明)을 세 번이나 찾아가 군사(軍師)로 초빙(招聘)한 데서 유래(由來)한 말로, ①임금의 두터운 사랑을 입다라는 뜻 ②인재(人材)를 맞기 위(爲)해 참을성 있게 힘씀.
《삼국지(三國志)》의 〈촉지 제갈량전(蜀志 諸葛亮傳)〉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後漢) 말기 관우(關羽:?~219)·장비(張飛:166?~221)와 의형제를 맺고 무너져 가는 한(漢)나라의 부흥을 위해 애를 쓴 유비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세월을 허송하며 탄식하였다. 유비는 유표(劉彪)에게 몸을 맡기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관우와 장비 같은 용맹무쌍한 장수를 두고도 조조(曹操)에게 여러 차례 당하였다. 유비는 그 이유가 유효 적절한 전술을 발휘할 지혜로운 참모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유능한 참모를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유비는 유표의 부하인 채모의 계략을 피하려다 길을 잃고, 우연히 은사(隱士)인 사마휘(司馬徽)를 만나게 된다. 사마휘에게 유능한 책사를 천거해 달라고 부탁하자 사마휘는 "복룡(伏龍)과 봉추(鳳雛) 가운데 한 사람만 얻어도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라고 말하였다. "대체 복룡은 누구고, 봉추는 누구입니까?" 그러나 사마휘는 말을 흐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 후 제갈 량의 별명이 복룡이란 것을 안 유비는 복룡인 제갈 량을 맞으러 관우·장비와 함께 예물을 싣고 양양(襄陽)에 있는 그의 초가집으로 찾아갔으나 제갈량은 집에 없었다.
며칠 후 또 찾아갔으나 역시 출타하고 없었다. "전번에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이거, 너무 무례하지 않습니까? 듣자니 그 자는 아직 나이도 젊다던데..." "그까짓 제갈 공명이 뭔데. 형님, 이젠 다시 찾아오지 마십시오." 마침내 동행했던 관우와 장비의 불평이 터지고 말았다. "다음엔 너희들은 따라오지 말아라." 관우와 장비가 극구 만류하는데도 유비는 단념하지 않고 세 번째 방문길에 나섰고, 그 때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이때 제갈 량은 27세, 유비는 47세였다.
제갈 량은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여 초가집에서 손수 농사를 지으며 은거하고 있었으나, 유비의 정성에 감복하여 그를 돕기로 결심하였다. 유비는 제갈 량을 얻은 이후 자신과 제갈 량의 사이를 수어지교(水魚之交: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은 사이)라며 기뻐하였다. 훗날 제갈량은 《출사표(出師表)》에서 유비의 지극한 정성에 대하여 "비천한 신을 싫어하지 않고 외람되게도 몸을 낮추어 제 초가집을 세 번씩이나 찾아 주어 당시의 상황을 물으셨습니다. 이 일로 저는 감격하여 선제께서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라고 감사하였다.
여기서 유래하여 삼고지례는 유비가 초가집을 세 번이나 찾아가 제갈 량을 감복시켜 자신을 돕게 하였던 것처럼 유능한 인재를 얻기 위하여 진심으로 예를 갖추어 맞이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줄여서 삼고(三顧)라고도 하고, 삼고지례(三顧之禮) 또는 초려삼고(草廬三顧)라고도 한다.
[출전]
三國志(Sānguózhì):蜀志(촉지):諸葛亮傳(제갈량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
三顧(삼고) | 草廬三顧(초려삼고) | 三顧之禮(삼고지례) |
참조어
猶魚有水(유어유수) | 魚水親(어수친) | 魚水之親(어수지친) | 水魚之親(수어지친) | 魚水之交(어수지교) | 水魚之交(수어지교) | 水魚(수어) | 君臣水魚(군신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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