利用厚生 (이용후생)

利用厚生(이용후생)

利用厚生 [lìyònghòushēng]

利 이로울 리 | 用 쓸 용 | 厚 투터울 후 | 生 날 생 |

기구(器具)를 편리(便利)하게 쓰고 먹을 것 입을 것을 넉넉하게 하여 백성(百姓)의 생활(生活)을 나아지게 함


利用(이용)은 장인(匠人)이 그릇을 만들고 장사가 재물을 운반하는 것을 말하고 厚生(후생)은 옷을 입고 고기를 먹어 추위에 떨지 않고 굶주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상서(尙書) 우서(虞書)의 대우모(大禹謨)에는 우(禹)와 순(舜)임금과 익(益), 세 사람의 정치에 관한 대담이 기록되어 있다.

우는 순임금에게 말하길 임금이시여, 잘 생각하십시오. 덕으로만 옳은 정치를 할 수 있고, 정치는 백성을 보양(保養)하는데 있으니, 물·불·쇠·나무·흙 및 곡식들을 잘 다스리시고, 또 덕을 바로 잡고 쓰임을 이롭게 하며 삶을 두터이 함을 잘 조화시키십시오[正德利用厚生, 惟和]하고 하였다.

또한 춘추좌전(春秋左傳) 문공(文公) 7년조에도 수(水) 화(火) 금(金) 목(木) 토(土) 곡(穀)의 여섯가지가 나오는 것을 육부(六府)라 하고, 백성의 덕을 바르게 하는 정덕(正德)과, 백성들이 쓰고 하는데 편리하게 하는 이용(利用)과, 백성들의 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후생(厚生), 이것을 삼사라 이릅니다[正德利用厚生, 謂之三事]라는 대목이 보인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經世致用(경세치용) |

容或無怪 (용혹무괴)

容或無怪(용혹무괴)

혹시 그럴 수도 있으므로 괴이(怪異)할 것이 없음. 짐작하여 헤아릴만한 사정이 있는 것.

慾知未來先察已然 (욕지미래선찰이연)

慾知未來 先察已然 (욕지미래 선찰이연)

If you want to know the future, check the past first.

미래를 알려거든 먼저 지나간 일을 살펴보라.

- 明心寶鑑 省心篇上 (명심보감 성심편상)


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 George Orwell (조지 오웰, 1903-1950) 영국 작가

庸中佼佼 (용중교교)

庸中佼佼(용중교교)

庸中佼佼(yōngzhōngjiǎojiǎo)

庸 떳떳할 용,쓸 용 | 中 가운데 중 | 佼 예쁠 교 | 佼 예쁠 교 |

①아름다운 여인. ②범인(凡人) 중에서 좀 나은 자.

a giant among dwarfs


후한(後漢)의 시조 광무제(光武帝)가 서선(徐宣)의 사람됨을 평한 데서 연유함.

광무제는 후한의 초대 황제로 이름은 유수(劉秀)이며, 전한(前漢)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9세손이다. 그는 황제위에 올랐으나 적미(赤眉)를 비롯하여 왕망 때부터의 유적(流賊)들이 날뛰고 있어서 옥좌에 편히 앉아 있을 틈이 없었다. 광무제는 먼저 적미를 토벌하기로 했다. 적미는 유분자(劉盆子)를 황제로 추대하고 있었는데, 광무제는 등우(鄧禹)와 풍이(馮異)를 보냈으나 전세가 불리해져 그가 몸소 출진하여 가까스로 항복을 받아냈다. 광무제는 항복한 적미의 잔병 10여 만이 뤄양[洛陽]으로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대장 번숭(樊崇)이 유분자와 함께 웃통을 벗어 스스로를 벌하는 모습으로 항복해왔다. 광무제는 먼저 유분자에게 죄를 묻자, 유분자는 ‘만 번 죽어 마땅하나 제발 살려달라’고 했다. 이어 번숭에게 ‘아군의 실정을 보고 항복한 것을 혹시 후회하지 않는가’를 물었다. 이때 함께 항복한 그들의 승상인 서선은, 숭이 대답하기도 전에 머리를 땅에 내리치면서 “천만의 말씀입니다. 호구를 벗어나 자모의 품으로 돌아온 느낌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광무제는 다소 비웃듯이 “경은 철중쟁쟁(鐵中錚錚), 용중교교(庸中佼佼)한 자로군.”이라고 쌀쌀하게 말했다.

여기서 ‘철중쟁쟁’은 ‘용중교교’와 함께 대응을 이루어 ‘보통 사람 중에서 조금 나은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용중교교’란 ‘범인(凡人) 중에서 좀 나은 자’라는 뜻으로 ‘철중쟁쟁’과 함께 그만그만한 자 중에서 조금 나은 자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광무제는 통찰력이 있는 인재라면 시세의 추이를 보고 벌써 귀순했을 것이고, 대세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라면 아직도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고 버티고 있을 것이므로, 서선이 항복한 시기가 결코 이른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항복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어리석은 자에 비하면 그래도 조금 낫다고 본 것이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卷13 유분자전(劉盆子傳)


관련 한자어

참조어

庸中佼佼(용중교교) | 鐵中錚錚(철중쟁쟁) |

窈窕淑女 (요조숙녀)

窈窕淑女(요조숙녀)


말과 행실이 얌전한 여자

用意周到 (용의주도)

用意周到(용의주도)

마음의 준비가 두루 미쳐 빈틈이 없음.

龍躍雲進 (용약운진)

龍躍雲進(용약운진)

龍 용 용, 용 룡, 언덕 농, 언덕 롱, 얼룩 망, 은총 총 | 躍 뛸 약, 빨리 달릴 적 | 雲 구름 운 | 進 나아갈 진, 선사 신 |

영웅이 풍운을 좇아 일어남을 비유한 말.

欲速不達 (욕속부달)

欲速不達(욕속부달)

欲 하고자 할 욕 | 速 빠를 속 | 不 아닐 부, 아닐 불 | 達 통달할 달, 다다를 달 |

①빨리 하고자 하면 도달(到達)하지 못함 ②어떤 일을 급(急)하게 하면 도리어 이루지 못함


논어(論語) 자로(子路)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공자(孔子)의 제자로 자하(子夏)가 있다. 그는 본명(本名)이 복상(卜商)이며 자하(子夏)는 그의 자(字)이다. 공자(孔子)의 문하(門下) 10철(哲)의 한 사람이다.

자하(子夏)가 노(魯)나라 거보(莒父)의 수령(守令)이 되어 스승께 고을을 다스리는 방도(方道ㆍ方途)를 묻자, 공자(孔子)는 일러주었다.

"공적을 올리려고 일을 속히 하려고 서둘지 말고, 조그만 이득(利得)을 탐내어 보지 말아야 한다. 속히 서둘면 도리어 달성(達成)하지 못하고, 조그만 이득(利得)을 탐내면 큰일을 이루지 못하는 법이다.[(無欲速 無見小利 欲速則不達 見小利則大事不成 무욕속 무견소리 욕속즉부달 견소리즉대사불성)]"

欲速이란 빠르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얼른 성과를 올리려는 성급한 마음을 말한 것이며, 欲速不達이란 서두르면 도리어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정책의 實效(실효)가 빨리 나타나기를 안달하지 말고 遠大(원대)한 계획을 세웠으면 눈앞의 작은 이익을 노리지 말라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우리 말에는 급할수록 천천히 라는 표현이 있고, 영어에는 'Haste makes waste'나 'More haste, less speed'라는 말이 있다. 이들은 모두 사람들의 조급한 심리를 경계한 표현들이다.


출전

논어(論語)의 자로편(子路篇)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欲速不達欲巧反拙(욕속부달욕교반졸) |




樂山樂水 (요산요수)

樂山樂水(요산요수)

산과 물을 좋아함.

龍蛇飛騰 (용사비등)

龍蛇飛騰(용사비등)

용이 하늘로 날아 오르는 것 같은 힘찬 글씨.

龍頭蛇尾 (용두사미)

龍頭蛇尾(용두사미)

용의 머리에 뱀의 꼬리. 처음은 旺盛(왕성)하지만 끝이 부진한 형상을 비유한 말이다.

遼東之豕 (요동지시)

遼東之豕(요동지시)

遼 멀 요(료) | 東 동녘 동 | 之 -의 지, 갈 지 | 豕 돼지 시 |

견문(見聞)이 넓지 못한 사람이 신기(神奇)하게 여기고 떠드는 것이 알고 보면 별 것 아닌 흔한 것인 경우(境遇)에 쓰이는 말


후한서(後漢書) 주부(朱浮)전의 이야기.

후한 광무제(光武帝)가 낙양에 도읍한 지 얼마 안 되어 천하(天下)는 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고 곳곳에서 스스로 왕임을 자처하는 자가 많았을 때, 대장군 주부(朱浮)는 많은 곡창을 개방하여 백성(百姓)에게 고루 나누어주려고 했다.

이때에 광무제를 도와 공을 세워 교만해진 어양(漁陽) 태수 팽총(彭寵)은 천하(天下)가 아직 불안하니 군량미를 확보(確保)해 두어야 한다며 곡창 개방을 반대하는 한편, 암암리에 모반의 계획을 추진해 나가고 있었다. 이를 안 주부는 낙양에 이 사실을 알렸는데, 이것을 알게 된 팽총이 노하여 주부를 치려고 군사를 일으키자, 주부는 팽총에게 글을 보내어 "그대는 태수로서 군량만을 아끼고 있으나, 나는 조정의 적을 토벌하는 중임을 맡고 있기 때문에 현사(賢士)를 필요(必要)로 하고 있다. 이는 바로 나라의 일이다. 내가 없는 사실을 천자께 보고했다고 생각하면 천자 앞에 나가 아뢰어도 좋다. 그대는 오만하게도 공이 크다고 여기는가? 옛날, 요동에서 머리가 흰 돼지 새끼가 태어나자, 이는 특이하다고 여겨 왕에게 바치려고 강동까지 가 보니, 그곳 돼지가 모두 희어서 부끄러워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만일 그대의 공을 조정에서 논하게 되면 저 요동의 돼지에 불과 할 것이다."하고 꾸짖었다.

그러나 팽총은 모반하여 연왕(燕王)이라 칭하다가 2년 후 토벌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遼東豕(요동시)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欲擒姑縱 (욕금고종, yùqíngùzòng)

欲擒姑縱(욕금고종)

欲擒故纵(yùqíngùzòng)

欲 하고자 할 욕 | 擒 사로잡을 금 | 姑 연고 고 | 縱 세로 종,바쁠 총


三十六計(삼십육계) 攻戰計(공전계) 제16계. 더 큰 것을 잡기 위해 일부러 놓아주다. 더욱 제압하기 위해 일부러 느슨하게 하다.

leave somebody at large the better to apprehend him; allow somebody more latitude first to keep a tighter rein on him afterwards

想要捉住他,故意先放开他,使他不加戒备;比喻为了更好地控制而故意先放松一步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풀어주다. 여러가지로 사용될 수 있는 계략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완전포위로 공격하면 적도 필사적으로 반격한다. 도망칠 수 있게 하면 적의 기세도 줄어든다. 너무 빈틈없이 공각하지 마라. 적의 기세가 줄어들 때 기다렸다가 공격하면 큰 희생없이 승리할 수 있다. 기다릴 줄 알아야 놓치지 않을 변화가 있다.[逼則反兵,走則減勢.緊隨勿迫,累其力氣,消其斗志,散而後擒,兵不血刃.需,有孚,光.]"

이는 즉 '막다른 길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는 뜻이다.

孫子兵法(손자병법)에서도 九變(구변) 편에서, "...포위할 때는 꼭 한 쪽을 비워두어야 한다..." 라고 하고 있다. 도망갈 길이 완전히 막히면 당연히 죽음을 각오하고 반격해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망갈 곳을 비워두면 적은 도망갈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미리 비워둔 곳으로 적이 도망할 때 공격하면 쉽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례를 살펴보자.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서도 아주 유명한 일화이다.

번성을 공략하던 관우는 여몽의 계략에 빠져 형주를 잃고, 후방을 맡겼던 미방과 부사인의 배반으로 위태로운 처지에 있었다. 관평의 조언에 따라, 그나마의 패잔병들을 이끌고 麥城(맥성)으로 들어가 군사들을 둔쳤다. 그리고는 上庸(상용)에 있는 유봉과 맹달에게 요화를 보내 구원을 청했다. 하지만 유봉과 맹달은 이 청을 무시하고, 요화는 분통을 터뜨리며 멀리 성도(촉의 수도)로 가서 유비에게 직접 구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번성에 있던 관우는 구원병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으나 소식은 오지 않고, 성안의 양식도 떨어져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이 때 吳에서 제갈근이 와서 관우에게 항복을 권하나, 관우는 이를 거절한다. 그리고는 제갈근을 죽이려는 관평을 말리고 제갈근을 돌려보낸다. 이에 吳主 손권은 크게 탄식하고, 부하에게 점을 쳐보게 한다. 나온 괘는 地水師卦(지수사괘)였다. 그리고 卦辭(괘사)는 '현무가 나타나니 주작이 멀리 달아난다'고 하였다. 이에 손권이 관우가 도망치지 않을까 염려하나, 여몽은 크게 웃는다.

"관우는 군사가 적으니 반드시 대로를 따라 도망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맥성 북쪽에 험준한 소로가 하나 있는데, 그 길로 달아날 것이 분명하옵니다. 정예병 5천을 맥성 북쪽 20리쯤에 매복시켜 두었다가 그들을 뒤에서 치게 하면, 그들은 오직 도망칠 마음 뿐이니 임저로 달아날 것이 분명하옵니다. 이 때 임저에 정예병 5백을 임저에 숨겨 두었다가 덮치면 관우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군사를 보내 맥성을 포위하되, 북문만은 남겨 두고 그들이 달아나도록 해야겠습니다."

관우는 서천으로 돌아가 군사를 이끌고 와서 실지를 회복하라는 조루의 말에 따라 서천으로 탈출할 길을 모색한다. 그러다가 마침 북문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 길로 탈출하려 하나 왕보가 말린다.

"소로에는 매복이 있을 터이니 대로로 가셔야 하옵니다."

하지만, 관우는 '매복이 있다 한들 내가 무엇을 겁내겠는가'라고 하며 북문으로 나선다. 하지만 여몽의 계략대로 매복에 걸려 관우와 관평 부자는 吳軍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이렇게 맥성에서 관우를 붙잡은 여몽의 계략이 바로 기본적인 '욕금고종'이라 할 수 있다.

뒷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손권이 끈질기게 관우에게 항복을 권하지만 관우는 끝끝내 버티다가 아들 관평과 함께 목이 잘리고 만다. 여포를 거쳐 관우가 타던 적토마는 손권이 마충에게 주었으나 며칠 동안 여물을 먹지 않다가 끝내 굶어죽고 말았다.

한편 손권은 관우를 죽이고 형주를 차지한 공을 치하하고자 잔치를 벌였다. 손권이 여몽의 공을 치하하며 직접 잔에 술을 따라 여몽에게 주었다. 여몽은 술잔을 받아 마시려 하다가 갑자기 술잔을 집어던지고 손권의 멱살을 조르며 큰 소리로 꾸짖었다.

"파란 눈에 수염 붉은 쥐새끼야! 나를 알아 보겠느냐!"

주위의 장수들이 크게 놀라 말리려 하였다. 여몽은 손권을 밀어 넘어뜨리고 성큼성큼 걸어가 손권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나는 황건적을 무찌른 이후 30여년 동안 천하를 주름잡아 오다가 이제 하루 아침에 너희들의 간계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나는 살아서 너의 고기를 씹지 못하고 죽었으니 당장 여가놈(여몽)의 혼을 잡아가겠다. 나는 바로 한수정후 관운장이다."

이에 손권은 크게 놀라, 황망히 좌우를 거느리고 큰 절을 올렸다. 여몽은 땅에 거꾸러지더니 七竅(칠규 : 두 눈, 두 콧구멍, 두 귀, 입의 일곱구멍)로 피를 쏟으며 죽었다.

正史에 따르면, 여몽은 병으로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를 나관중의 이처럼 '관우의 혼령에 의해 죽는 것'으로 극화시켰다.

또한, 유비의 양아들인 유봉은 이 사건 때문에 유비에게 죽게 되고, 맹달은 위나라로 망명한다. 후에 맹달은 제갈량과 손을 잡고 위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키려 하나, 사마의에게 당하고 만다.

또다른 예를 살펴보자면, 제갈량(諸葛亮)의 '七縱七擒(칠종칠금)'을 들 수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북벌을 단행하기 전에 후방을 튼튼히 하기 위해 남만평정에 나서게 된 제갈량은 그들을 초전에 크게 무찌르고 남만왕 맹획(孟獲)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를 죽이지 않고 '병사들을 모아 다시 도전하라'며 풀어준다. 이에 주위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라지만, 제갈량은 개의치 않는다. 맹획은 다시 병사들을 모아 도전해 오고, 또 사로잡힌다. 하지만 이번에도 제갈량은 맹획을 풀어준다.

이렇게 잡았다가 풀어주기를 일곱 번. 마침내 맹획은 제갈량의 큰 지혜와 덕에 감복하여 항복한다. 제갈량은 맹획을 죽이고 촉한의 관리를 두기는 쉬운 일이지만, 그렇게 하면 현지인들의 반란이 빈번할 것으로 예상하여 그들을 감화시켜 마음으로부터 복속하도록 한 것이었다. 이렇게 제갈량이 맹획을 일곱번 잡았다가 일곱번 놓아준 것을 '七縱七擒(칠종칠금)'이라 한다.

이것 또한 '욕금고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한자어

반의어

打草驚蛇(타초경사) |

참조어

七縱七擒(칠종칠금,qīqínqīzòng) |

用管窺天 (용관규천, yòngguǎnkuītiān)

用管窺天(용관규천)

用管窥天(yòngguǎnkuītiān)

用 쓸 용 | 管 대롱 관,주관할 관 | 窺 엿볼 규 | 天 하늘 천 |


대롱을 통(通)해 하늘을 살핀다는 뜻으로, 소견(所見)이나 견문(見聞)이 좁음을 이르는 말

欲窮千里目更上一層樓 (욕궁천리목갱상일층루)

欲窮千里目更上一層樓(욕궁천리목갱상일층루)

천리 밖을 보고 싶어 다시 한 층 누각에 오르다. 중국 한시의 한 대목.

欲蓋彌彰 (욕개미창)

欲蓋彌彰(욕개미창)

欲 하고자 할 욕 | 蓋 덮을 개 | 彌 널리 미 | 彰 밝힐 창 |

'덮고자 하면 더욱 드러난다'라는 뜻으로, 잘못을 감추려 할수록 오히려 더욱 드러나게 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좌씨전(左氏傳)》에서 유래되었다.

공자는 《춘추》에서 노(魯)나라 소공(昭公) 31년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였는데, 그 가운데 "겨울에 흑굉이 남 땅을 가지고 투항하였다(冬, 黑肱以濫來奔)"라는 구절이 있다. 주나라의 대부 흑굉이 노나라에 항복함으로써 그가 다스리던 남 땅도 노나라의 영토가 된 일을 기록한 것이다. 《좌씨전》은 이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춘추》의 필법에 따르면 원래 흑굉처럼 지위가 낮은 사람과 자잘한 일들은 기록하지 않지만, 이 일이 기록된 것은 노나라의 영토가 변동된 것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름을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음이 이와 같으니, 이름이 나더라도 나지 않음만 못한 경우가 있다. 땅을 지니고 군주를 배반한 일에 대하여는 그 사람의 지위가 낮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그 땅과 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여야 한다. 이는 불의를 행한 기록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움직일 때 예를 생각하고, 이익을 위하여 어긋나지 않으며, 의로움에 후회할 행동은 하지 않는 법이다. 어떤 이는 명성을 추구하였으나 기록하지 않고, 어떤 이는 잘못을 덮으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였으니, 이는 불의한 사람을 징벌하기 위함이다[或求名而不得, 或欲蓋而名章, 懲不義也]."

의롭지 않은 일이나 그러한 행위를 한 사람은 흑굉처럼 지위가 낮더라도 후세에 교훈을 삼기 위하여 기록하였다는 말이다. 이 고사는 《좌씨전》의 '소공 31년' 조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욕개미창은 허물은 감출수록 더욱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