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干將莫耶 (간장막야)

干將莫耶(간장막야)

干将莫耶(Gān Jiàng Mò Yé)

干 방패 간 | 將 장수 장 | 莫 없을 막 | 耶 어조사 야 |


중국 춘추(春秋)시대 간장이 만든 두 자루의 명검(名劍).


간장은 오(吳)나라 도장(刀匠)의 이름이고 막야는 그의 아내인데, 임금 합려(闔閭, 闔廬, 재위 BC 515~BC 496)의 청으로 간장이 칼을 만들 때 막야는 그녀의 머리털과 손톱을 쇠와 함께 가마에 넣고 달구어서 명검 두 자루를 만들었다. 음양법(陰陽法)에 의하여 양으로 된 칼을 간장, 음으로 된 칼을 막야라고 이름지었는데, 이것이 전의(轉義)되어 명검을 일컫게 되었다.


참조

干将(gànjiàng) 1.수완가. 민완가(敏腕家). 인재.

干将(gānjiàng) 1.간장. 중국 춘추 시대 전설 속의 보검(寶劍). 주조한 사람의 이름이 '干将'인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주로 '莫邪(mòyé)'와 함께 쓰임. 2.보검. 명검.


검 | 도검 | 춘추시대 | 합려(闔閭) |

看雲步月 (간운보월)

看雲步月(간운보월)

객지에서 집생각을 하고 달밤에 멀리 구름을 바라보며 거님

姦雄 (간웅)

姦雄(간웅)

간사한 지혜가 있는 사람

間於齊楚 (간어제초)

間於齊楚(간어제초)

제(齊)나라와 초(楚)나라 사이라는 뜻으로, 힘이 강한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괴로움을 이르는 말


맹자(孟子) '양혜왕장구편(梁惠王章句篇)'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성어(成語)이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등(滕)나라는 면적이 매우 작았으나, 등나라 근처에 있는 제나라와 초나라는 큰 나라였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위협을 받은 등나라는 제나라와 친밀하게 지낼 수도 없고 초나라와 가까이하기도 어려웠다. 제나라와 초나라 가운데 한쪽과 친하게 지내면 서로 트집을 잡았기 때문에 등나라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딱한 처지였다.

전국시대의 맹자가 등나라의 왕 문공(文公)을 찾아왔을 때, 문공은 맹자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제나라와 초나라의 사이에 위치한 작은 나라인 우리 등나라는 제나라와 초나라 중 어느 나라를 섬겨야 합니까?[滕 小國也 間於齊楚 事齊乎 事楚乎]."

출전
맹자(孟子):양혜왕장구편(梁惠王章句篇)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鯨戰蝦死(경전하사) | 事齊事楚(사제사초) |

干城之材 (간성지재)

干城之材(간성지재)

방패와 성같은 구실을 하는 인재. 국방의 책임을 다할 장수감

竿頭之勢 (간두지세)

竿頭之勢(간두지세)

어려움이 극도에 달하여 꼼짝 못하게 됨. 대막대기의 맨 끝에 선 것 같다는 뜻

肝膽楚越 (간담초월)

肝膽楚越(간담초월)

肝 간 간 | 膽 쓸개 담 | 楚 나라이름 초, 회초리 초 | 越 나라이름 월, 넘을 월, 부들자리 활 |

보는 관점에 따라 비슷해 보이는 것이라도 전혀 다르고, 가까운 것이라도 멀리 보인다는 말임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에 실린 공자(孔子)의 말 가운데 '뜻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간과 쓸개도 초나라와 월나라 같으며[肝膽楚越也], 뜻이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만물도 모두 하나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또한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유협(劉-)이 지은 문심조룡(文心雕龍) 비흥(比興)편에는 '물체가 비록 멀리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합치고 보면 간과 쓸개처럼 가까운 사이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간담(肝膽)이란 본시 관계가 매우 가까운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회남자(淮南子) 숙진편(-眞篇)에서는 肝膽胡越(간담호월)이라 하였는데, 肝膽楚越과 같은 표현이다. ‘楚’와 ‘越’은 모두 남쪽에 있는 나라이므로 ‘멀다’는 비유가 성립되지 않으므로, ≪淮南子(회남자)≫에서 莊子(장자)가 말한 ‘楚’를 ‘胡’로 바꾼 것이다.

이는 간과 쓸개의 거리가 초나라와 월나라의 관계처럼 멀다라는 뜻이며, 비록 거리상으로는 서로 가까이 있지만 마치 매우 멀리 있는 것 같이 보이는 경우를 비유한 것이다.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도 입장에 따라서는 멀어 질 수도 있고, 또 서로 다른 관계가 있는 것일지라도 형편에 따라서는 가까워질 수 있다.


출전

장자(莊子) 제5 덕충부(德充符) |

노(魯)나라에 월형(월刑)을 당해 발이 잘린 왕태(王 馬+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덕망은 공자와 비교될 정도였다. 공자의 제자인 상계(常季)가 공자에게 물었다.

“신체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왕태을 따르는 사람들이 빈 마음으로 찾아 갔다가 가득 차서 돌아온다고 하니 그에게는 말하지 않는 가르침이 있어서 비록 눈에 보이는 가르침이 없어도 마음으로 느껴 이루어지는 걸까요? 그는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

魯有兀者王태, 從之遊者, 與仲尼相若. 常季問於仲尼曰: 王태,兀者也. 從之遊者, 與夫子中分魯. 立不敎, 坐不議. 虛而往, 實而歸. 固有不言之敎, 無形而心成者邪? 是何人也?

**월:足+월=발 벨 월. **태:馬+台= 둔마 태.

공자가 말했다.

“그는 성인이다. 나도 진작 한번 가서 뵈려 했으나 기회가 없어 못 갔을 뿐이다. 나도 장차 그를 스승으로 모시려 하거늘, 하물며 나만 못한 사람에 있어서랴! 그리고 어찌 다만 노나라뿐이겠느냐? 나는 장차 천하를 이끌고 그를 따를 작정이다.”

仲尼曰: 夫子, 聖人也. 丘也, 直後而未往耳. 丘將以爲師, 而況不若丘者乎! 奚假魯國, 丘將引天下而與從之.

“그는 을자이면서도 버젓이 선생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보통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는데, 그런 사람의 마음 쓰는 법은 대체 어떠한 것입니까?”

常季曰: 彼, 兀者也, 而王先生. 其與庸, 亦遠矣. 若然者, 其用心也, 獨若之何?

“죽고 삶이 큰 일이기는 하나 그것으로써 그의 마음을 흔들지 못할 것이요, 하늘과 당이 뒤집히고 무너져도 또한 그것으로써 그를 놀라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진리를 밝게 알아서 사물과 더불어 움직임이 없고, 사물의 변화를 운명에 맡겨 두어 도의 중심을 지키고 있다.”

仲尼曰: 死生亦大矣, 而不得與之變. 雖天地覆墜, 亦裝不與之遺. 審乎無假,而不與物遷, 命物之化, 而守其宗也.

“무슨 말씀입니까?”

常季曰: 何謂也?

“모든 것을 다른 점으로 보면 간과 쓸개도 초나라와 월나라처럼 멀지만, 같은 점으로 보면 만물은 모두 하나이니라. 이렇듯 하나로 보는 사람은 귀와 눈의 즐거움을 벗어나서 마음을 덕의 조화 속에 노닐게 한다. 만물이 하나임을 볼 뿐이요, 그것의 득실은 보지 않는다. 그래서 왕태는 자신의 발을 잃음을 마치 한 덩이 흙이 떨어진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仲尼曰: 自其異者視之, 肝膽楚越也. 自其同者視之, 萬物皆一也. 夫若然者, 且不知耳目之所宜. 而遊心乎德之和, 物視其所一, 而不見其所喪. 視喪其足, 猶遺土也.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肝膽楚越(간담초월) | 肝膽胡越(간담호월) [회남자(淮南子)] |

肝膽相照 (간담상조)


肝膽相照 (간담상조)

肝胆相照 (gāndǎnxiāngzhào)

肝 간 간 | 膽 쓸개 담 | 相 서로 상 | 照 비출 조 |


서로가 마음속을 툭 털어놓고 숨김없이 친하게 사귄다는 뜻.


간담(肝膽)은 간과 담낭(膽囊)으로, 마음속 깊숙한 곳을 가리킨다. 《고사경림(故事瓊林)》에 보면 “간담을 상조(相照)하니, 이런 것을 복심지우(腹心之友)라고 한다. 의기(意氣)가 서로 불평(不平)을 하니 이것을 구두지교(口頭之交)라 한다”고 하였고, 《한서(漢書)》의 〈노온서전(路溫舒傳)〉에 “간담을 피력(披瀝)한다”라는 말이 있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披肝沥胆 (피간역담, pīgānlìdǎn) 배를 갈라 담즙을 똑똑 떨어뜨리다. 충성을 다하다. 속을 터놓고 대하다.

赤胆忠心 (적담충심, chìdǎnzhōngxīn) 일편단심이다.

반의어

勾心斗角 (구심투각, gōuxīndòujiǎo) 암투를 벌이다.

참조어

竹馬之友 (죽마지우) | 芝蘭之交 (지란지교) |


Tag

故事瓊林 (고사경림) | 漢書 (한서) | 벗 | 우정 | 친구 |

肝腦塗地 (간뇌도지)

肝腦塗地(간뇌도지)

肝 간 간 | 腦 뇌 뇌 | 塗 칠할 도 | 地 땅 지 |

몸의 간과 머리의 뇌가 흙에 범벅이 되었다.(여지없이 패하다)


肝腦塗地(간과 뇌가 흙과 범벅이 되다) 란 전란(戰亂) 중의 참혹한 죽음을 형용한 말이다.

사기(史記) 유경열전(劉敬列傳)에는 한(漢)나라 고조(高祖)와 유경의 대화가 실려 있다. 유경은 고조에게 폐하께서는 촉땅과 한을 석권하고, 항우와 싸워 요충지를 차지하도록까지 대전(大戰) 70회, 소전(小戰) 40회를 치렀습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간과 골이 땅바닥을 피칠하게 되었고, 아버지와 자식이 들판에서 해골을 드러내게 된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使天下之民, 肝腦塗地, 父子暴骨中野, 不可勝數]라고 하였다.

유경은 덕치(德治)가 이루어졌던 주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한나라 고조는 많은 전쟁을 치르며 땅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발생할 반발세력의 저항이나 외부의 침략을 예상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고조에게 옛 진나라의 요충지인 함양(咸陽)을 도읍으로 정하도록 충고하였던 것이다.

艱難辛苦 (간난신고)

艱難辛苦(간난신고)

갖은 고초를 겪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