諱疾忌醫(휘질기의)
諱 숨길 휘/꺼릴 휘 | 疾 병 질 | 忌 꺼릴 기 | 醫 의원 의 |
병을 숨기고 의원에게 보이기를 꺼린다는 뜻으로, 자신의 결점을 감추고 남의 충고를 듣지 않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한비자(韓非子)》의 유로(喩老)편과 《사기(史記)》의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에 실려 있다.
춘추시대, 채(蔡)나라에 편작(扁鵲)이라는 유명한 의원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채나라 환공(桓公)에게 말했다.
"대왕께서는 병이 나셨는데, 그 병은 피부에 있습니다. 지금 치료하시지 않으면 심해질 것입니다."
이에 채환공은 병이 없다면서 치료를 거절했다. 열흘 후, 편작은 채환공을 알현하고 그에게 병이 살 속까지 퍼져서 서둘러 치료하지 않으면 심각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환공이 이를 무시하며 몹시 불쾌해했다.
다시 열흘이 지나자, 편작은 채환공을 찾아가 병이 이미 내장에 이르렀으니,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하게 됩니다 라고 했다. 그러나 환공은 여전히 이를 무시하며 화를 냈다.
열흘 후, 편작은 환공을 찾아가 병이 이미 골수에 이르러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닷새 후, 채환공은 온몸에 고통을 느끼며 결국 죽고 말았다.
북송(北宋)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는 《통서(通書)》에서 "요즘 사람들은 잘못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바로잡아 주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병을 숨기면서 의원에게 보이지 않아 몸을 망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今人有過, 不喜人規, 如護疾而忌醫, 寧滅其身而無悟也]"라고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였다.
출전
한비자(韓非子) 유로(喩老) | 사기(史記)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 | 주자통서(周子通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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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어·유의어
護疾忌醫(호질기의)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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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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虎狼之國 (호랑지국)
虎狼之國(호랑지국)
虎 범 호 | 狼 이리 랑(낭) | 之 갈 지, -의 지 | 國 나라 국 |
호랑이와 이리의 나라라는 뜻으로, 포악(暴惡)하고 신의(信義)가 없는 강대국(强大國)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사기(史記) 굴원(屈原)열전의 이야기다.
전국시대에 진나라를 비롯하여 제(齊)·초(楚)·연(燕)·위(魏)·한(韓)·조(趙)의 7개국이 패권을 놓고 대립하였다. 진나라는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나라로서 나머지 6개국을 위협하였다. 남쪽 초(楚)나라도 그 위협을 피할 수는 없었다.
당시 초나라 회왕(懷王)의 대신(大臣)으로 있던 유명한 시인(詩人) 굴원은 제(齊)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고 간언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회왕은 진나라 장의(張儀)에게 속임을 당하였다. 이에 초 회왕은 진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오히려 크게 패하였다. 이듬해, 장의는 다시 초나라를 방문하여 초왕의 신하와 총비(寵妃)를 매수하고, 초왕을 설득하여 진나라와 형제지국의 관계를 맺었다.
얼마 후, 진나라 소왕(昭王)은 거짓으로 초나라와 통혼(通婚)을 청하며 회왕에게 만나자고 제의하였다. 회왕이 이를 곧이 듣고 진나라로 가려 하자, 굴원은 이것이 함정임을 주장하며 진나라는 호랑이와 같은 나라이므로 믿을 수 없으니, 가시지 않는게 좋습니다[秦, 虎狼之國, 不可信, 不如無行]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나라에 갔던 초왕은 결국 그곳에서 붙잡혀 죽고 말았다.
또 같은 전국시대에 소진(蘇秦)은 6개국을 돌아다니며 힘을 합쳐 진나라에 대적하여야 한다는 합종책(合從策)을 유세하였다. 그는 초나라에 가서 "무릇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사나운 나라로서 천하를 삼키려는 마음을 품고 있으므로 천하의 원수입니다[夫秦虎狼之國也, 有呑天下之心, 秦天下之仇讐也]"라고 하면서 위왕(威王)을 설득하였다. 이 고사는 《사기》의 〈소진열전〉과 《전국책(戰國策)》의 〈초책(楚策)〉편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호랑지국은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괴롭히는 포학한 강대국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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虎 범 호 | 狼 이리 랑(낭) | 之 갈 지, -의 지 | 國 나라 국 |
호랑이와 이리의 나라라는 뜻으로, 포악(暴惡)하고 신의(信義)가 없는 강대국(强大國)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사기(史記) 굴원(屈原)열전의 이야기다.
전국시대에 진나라를 비롯하여 제(齊)·초(楚)·연(燕)·위(魏)·한(韓)·조(趙)의 7개국이 패권을 놓고 대립하였다. 진나라는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나라로서 나머지 6개국을 위협하였다. 남쪽 초(楚)나라도 그 위협을 피할 수는 없었다.
당시 초나라 회왕(懷王)의 대신(大臣)으로 있던 유명한 시인(詩人) 굴원은 제(齊)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고 간언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회왕은 진나라 장의(張儀)에게 속임을 당하였다. 이에 초 회왕은 진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오히려 크게 패하였다. 이듬해, 장의는 다시 초나라를 방문하여 초왕의 신하와 총비(寵妃)를 매수하고, 초왕을 설득하여 진나라와 형제지국의 관계를 맺었다.
얼마 후, 진나라 소왕(昭王)은 거짓으로 초나라와 통혼(通婚)을 청하며 회왕에게 만나자고 제의하였다. 회왕이 이를 곧이 듣고 진나라로 가려 하자, 굴원은 이것이 함정임을 주장하며 진나라는 호랑이와 같은 나라이므로 믿을 수 없으니, 가시지 않는게 좋습니다[秦, 虎狼之國, 不可信, 不如無行]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나라에 갔던 초왕은 결국 그곳에서 붙잡혀 죽고 말았다.
또 같은 전국시대에 소진(蘇秦)은 6개국을 돌아다니며 힘을 합쳐 진나라에 대적하여야 한다는 합종책(合從策)을 유세하였다. 그는 초나라에 가서 "무릇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사나운 나라로서 천하를 삼키려는 마음을 품고 있으므로 천하의 원수입니다[夫秦虎狼之國也, 有呑天下之心, 秦天下之仇讐也]"라고 하면서 위왕(威王)을 설득하였다. 이 고사는 《사기》의 〈소진열전〉과 《전국책(戰國策)》의 〈초책(楚策)〉편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호랑지국은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괴롭히는 포학한 강대국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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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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汗流浹背 (한류협배)
汗流浹背(한류협배)
汗 땀 한, 현 이름 간 | 流 흐를 류(유) | 浹 두루 미칠 협, 적실 협 | 背 등 배, 배반할 배 |
'땀이 흘러 등을 적시다'라는 뜻으로, ①극도(極度)로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②힘든 일을 하여 땀으로 흠뻑 젖은 모습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사기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의 이야기.
서한(西漢)시기, 한문제(漢文帝)는 자신이 즉위할 수 있도록 도와 준 태위 주발(周勃)을 우승상으로, 진평(陳平)을 좌승상으로 삼았다.
문제는 국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자, 어느 날 조회에서 우승상 주발에게 물었다.
"일 년 동안 전국에서 옥사를 판결하는 건수가 얼마인가?"
주발은 또 모르겠다고 사죄하였는데, 식은땀이 흘러 등을 적셨으며 황제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였다[勃又謝不知, 汗出沾背, 愧不能對]. 문제가 진평에게 같은 질문을 하니, 진평은 그와 같은 세세한 수치는 실무자에게 물어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조리 있게 답변하였다. 주발은 자신의 기지나 응대하는 방법이 진평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는 병을 핑계로 승상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여기서 유래하여 한류협배는 식은땀이 등을 적실 정도로 몹시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또는 힘든 일을 하여 땀으로 흠뻑 젖은 모습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출전
사기(史記)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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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어·유의어
汗出沾背(한출첨배)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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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汗 땀 한, 현 이름 간 | 流 흐를 류(유) | 浹 두루 미칠 협, 적실 협 | 背 등 배, 배반할 배 |
'땀이 흘러 등을 적시다'라는 뜻으로, ①극도(極度)로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②힘든 일을 하여 땀으로 흠뻑 젖은 모습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사기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의 이야기.
서한(西漢)시기, 한문제(漢文帝)는 자신이 즉위할 수 있도록 도와 준 태위 주발(周勃)을 우승상으로, 진평(陳平)을 좌승상으로 삼았다.
문제는 국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자, 어느 날 조회에서 우승상 주발에게 물었다.
"일 년 동안 전국에서 옥사를 판결하는 건수가 얼마인가?"
주발은 또 모르겠다고 사죄하였는데, 식은땀이 흘러 등을 적셨으며 황제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였다[勃又謝不知, 汗出沾背, 愧不能對]. 문제가 진평에게 같은 질문을 하니, 진평은 그와 같은 세세한 수치는 실무자에게 물어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조리 있게 답변하였다. 주발은 자신의 기지나 응대하는 방법이 진평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는 병을 핑계로 승상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여기서 유래하여 한류협배는 식은땀이 등을 적실 정도로 몹시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또는 힘든 일을 하여 땀으로 흠뻑 젖은 모습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출전
사기(史記)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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汗出沾背(한출첨배)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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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取而代之 (취이대지)
取而代之(취이대지)
取而代之 [qǔ'érdàizhī]
取 가질 취 | 而 말 이을 이, 능히 능 | 代 대신할 대 | 之 갈 지 |
'취(取)하여 그것을 대신(代身)하다'라는 뜻으로, 어떤 사물(事物)로 다른 사물(事物)을 대체(代替)하거나 남의 지위(地位)나 직무(職務)를 빼앗아 자신(自身)이 대신(代身)하는 것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사기 항우본기(項羽本紀)의 이야기.
항우의 집안은 대대로 초(楚)나라의 장수를 지냈다. 항우는 어릴 때 글을 배웠으나 다 마치지 않았고, 검술을 배우는 것 또한 다 마치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숙부인 항량(項梁)이 화를 내자, 항우는 말했다.
"글은 자기 이름을 쓸 줄 아는 것으로 족하고, 검술은 한 사람을 대적하는 것이어서 배울 만한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니, 저는 만인(萬人)을 대적하는 것을 배우겠습니다"
그리하여 항량이 항우에게 병법을 가르쳤는데, 항우는 크게 기뻐하였으나 그 뜻만 대략 알고 나서는 역시 끝까지 배우려 들지 않았다.
항우가 20세 되던 해, 항량은 사람을 죽이고 항우와 함께 원수를 피하여 오중(吳中)에서 살았다. 오중에 있을 때, 시황제(始皇帝)가 회계산(會稽山)을 유람하고 절강(浙江)을 건너갔다. 항우는 항량과 함께 황제의 행차를 구경하면서 말했다.
"저 사람의 자리를 취하여 내가 대신할 것이다[彼可取而代也]"
항량은 깜짝 놀라 항우의 입을 막으며 "허튼 소리 하지 마라. 삼족이 멸하게 된다"라고 꾸짖었으나, 속으로는 항우가 범상치 않다고 생각하였다.
이 고사는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紀)〉편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취이대지는 항우의 경우처럼 남의 지위나 직무를 빼앗아 자신이 대신하거나, 이를 일반화하여 어떤 사물로 다른 사물을 대체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사기(史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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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取而代之 [qǔ'érdàizhī]
取 가질 취 | 而 말 이을 이, 능히 능 | 代 대신할 대 | 之 갈 지 |
'취(取)하여 그것을 대신(代身)하다'라는 뜻으로, 어떤 사물(事物)로 다른 사물(事物)을 대체(代替)하거나 남의 지위(地位)나 직무(職務)를 빼앗아 자신(自身)이 대신(代身)하는 것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사기 항우본기(項羽本紀)의 이야기.
항우의 집안은 대대로 초(楚)나라의 장수를 지냈다. 항우는 어릴 때 글을 배웠으나 다 마치지 않았고, 검술을 배우는 것 또한 다 마치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숙부인 항량(項梁)이 화를 내자, 항우는 말했다.
"글은 자기 이름을 쓸 줄 아는 것으로 족하고, 검술은 한 사람을 대적하는 것이어서 배울 만한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니, 저는 만인(萬人)을 대적하는 것을 배우겠습니다"
그리하여 항량이 항우에게 병법을 가르쳤는데, 항우는 크게 기뻐하였으나 그 뜻만 대략 알고 나서는 역시 끝까지 배우려 들지 않았다.
항우가 20세 되던 해, 항량은 사람을 죽이고 항우와 함께 원수를 피하여 오중(吳中)에서 살았다. 오중에 있을 때, 시황제(始皇帝)가 회계산(會稽山)을 유람하고 절강(浙江)을 건너갔다. 항우는 항량과 함께 황제의 행차를 구경하면서 말했다.
"저 사람의 자리를 취하여 내가 대신할 것이다[彼可取而代也]"
항량은 깜짝 놀라 항우의 입을 막으며 "허튼 소리 하지 마라. 삼족이 멸하게 된다"라고 꾸짖었으나, 속으로는 항우가 범상치 않다고 생각하였다.
이 고사는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紀)〉편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취이대지는 항우의 경우처럼 남의 지위나 직무를 빼앗아 자신이 대신하거나, 이를 일반화하여 어떤 사물로 다른 사물을 대체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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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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招搖過市 (초요과시)
招搖過市(초요과시)
招 부를 초, 지적할 교, 풍류 이름 소 | 搖 흔들 요 | 過 지날 과, 재앙 화 | 市 저자 시 |
남의 이목(耳目)을 끌도록 요란스럽게 하며 저자거리를 지나간다는 뜻으로, 허풍(虛風)을 떨며 요란(搖亂)하게 사람의 이목(耳目)을 끄는 것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의 이야기.
공자는 광(匡) 지역을 떠나 포(浦)땅에서 잠시 머문 뒤, 위(衛)나라에 와서 거백옥(거伯玉)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위나라 군주 영공(靈公)에게는 남자(南子)라는 부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사람을 보내 공자를 만나보고 싶다는 뜻을 전해 왔다.공자는 처음에는 사양하였으나, 남자가 거듭 사람을 보내 요청하자 하는 수 없이 만나러 갔다. 부인은 휘장 안에서 답례하였는데, 이때 허리에 찬 패옥(佩玉)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이러한 행동은 예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공자는 돌아와서 불만스러워하는 제자인 자로(子路)에게 말했다.
"나는 원래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기왕에 만났으니 이제는 예로 대해 주어야겠다. 만일 내가 잘못이라면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이다."
위나라에 머문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영공과 부인 남자는 함께 수레를 타고 행차하였다. 그런데 환관인 옹거는 수레에 함께 태우고, 공자에게는 뒷수레를 타고 따라오게 하면서 요란스레 저잣거리를 지나갔다[居衛月餘, 靈公與夫人同車, 宦者雍渠參乘, 出, 使孔子爲次乘, 招搖市過之].
이에 공자는 말했다.
"나는 덕(德)을 좋아하기를 색(色)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는 영공이 자신을 그와 같이 대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위나라를 떠나 조(曹)나라로 갔다.
여기서 유래하여 초요과시는 요란스러운 행차처럼 허장성세(虛張聲勢)로 떠들썩하게 남의 이목을 끄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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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招 부를 초, 지적할 교, 풍류 이름 소 | 搖 흔들 요 | 過 지날 과, 재앙 화 | 市 저자 시 |
남의 이목(耳目)을 끌도록 요란스럽게 하며 저자거리를 지나간다는 뜻으로, 허풍(虛風)을 떨며 요란(搖亂)하게 사람의 이목(耳目)을 끄는 것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의 이야기.
공자는 광(匡) 지역을 떠나 포(浦)땅에서 잠시 머문 뒤, 위(衛)나라에 와서 거백옥(거伯玉)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위나라 군주 영공(靈公)에게는 남자(南子)라는 부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사람을 보내 공자를 만나보고 싶다는 뜻을 전해 왔다.공자는 처음에는 사양하였으나, 남자가 거듭 사람을 보내 요청하자 하는 수 없이 만나러 갔다. 부인은 휘장 안에서 답례하였는데, 이때 허리에 찬 패옥(佩玉)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이러한 행동은 예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공자는 돌아와서 불만스러워하는 제자인 자로(子路)에게 말했다.
"나는 원래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기왕에 만났으니 이제는 예로 대해 주어야겠다. 만일 내가 잘못이라면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이다."
위나라에 머문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영공과 부인 남자는 함께 수레를 타고 행차하였다. 그런데 환관인 옹거는 수레에 함께 태우고, 공자에게는 뒷수레를 타고 따라오게 하면서 요란스레 저잣거리를 지나갔다[居衛月餘, 靈公與夫人同車, 宦者雍渠參乘, 出, 使孔子爲次乘, 招搖市過之].
이에 공자는 말했다.
"나는 덕(德)을 좋아하기를 색(色)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는 영공이 자신을 그와 같이 대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위나라를 떠나 조(曹)나라로 갔다.
여기서 유래하여 초요과시는 요란스러운 행차처럼 허장성세(虛張聲勢)로 떠들썩하게 남의 이목을 끄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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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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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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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舟中敵國 (주중적국)
舟中敵國(주중적국)
舟 배 주 | 中 가운데 중 | 敵 대적할 적, 다할 활 | 國 나라 국 |
배(舟) 속의 적국(敵國)이라는 뜻으로, 군주(君主)가 덕을 닦지 않으면,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것과 같이 이해(利害) 관계(關係)가 같은 사람들이라도, 적이 되는 수가 있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곧 자기편(自己便)이라도 갑자기 적이 될 수 있음을 이름
사기(史記) 손자오기(孫子吳起)열전의 이야기.
전국(戰國)시대, 오기는 위(衛)나라 사람으로, 문후(文侯)를 섬겨 진(秦)나라를 쳐서 5개의 성을 빼앗았다. 문후는 오기가 용병에 능하고 부하들에게도 신망을 얻고 있는 것을 알고 서하(西河)를 지켜 진나라와 한(韓)나라를 방어하게 하였다. 문후가 죽자 오기는 그의 아들 무후(武侯)를 섬겼다.
어느 날, 무후가 오기와 함께 배를 타고 서하(西河)를 둘러본 일이 있었다. 무후는 강의 중류에 이르러 오기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산과 강의 험난한 조망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이것이야말로 우리 위나라의 보배로다."
이에 오기는 다음과 같이 아뢰어 무후를 깨우쳤다.
"국가의 보배가 되는 것은 임금의 덕일뿐, 지형의 험난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옛날 삼묘씨(三苗氏)의 나라는 동정호(洞庭湖)의 왼쪽을 끼고 팽려호를 오른쪽으로 끼고 있었으나, 임금이 덕의(德義)를 닦지 않았기 때문에 우왕(禹王)에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이 살던 곳은 왼쪽에 황하(黃河)와 제수(濟水)가 흐르고, 오른쪽에 태산(泰山)과 화산(華山)이 솟아 있으며, 남쪽으로 이궐(伊闕)이라는 깎아지른 절벽과 북쪽으로 양장산(羊腸山)을 면하고 있어 험준함을 자랑하였지만 정치가 어질지 못하여 탕(湯) 임금에게 추방당하고 말았습니다.
또 은(殷)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의 거처는 왼쪽에 맹문산(孟門山)이 있고, 오른쪽에 상산(常山)이 있었으며, 남쪽으로는 황하가 도도하게 흘러 험준하였지만 역시 정치를 행함에 덕이 없어 결국 무왕(武王)에게 살해당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살펴보건대 나라의 보배는 덕에 있는 것이지 지세의 험준함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군주께서 덕을 닦지 않으신다면 이 배 안에 함께 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적국의 편이 될 것입니다[若君不修德, 舟中之人盡爲敵國也]."
舟中敵國이란 친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이탈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권65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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舟 배 주 | 中 가운데 중 | 敵 대적할 적, 다할 활 | 國 나라 국 |
배(舟) 속의 적국(敵國)이라는 뜻으로, 군주(君主)가 덕을 닦지 않으면,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것과 같이 이해(利害) 관계(關係)가 같은 사람들이라도, 적이 되는 수가 있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곧 자기편(自己便)이라도 갑자기 적이 될 수 있음을 이름
사기(史記) 손자오기(孫子吳起)열전의 이야기.
전국(戰國)시대, 오기는 위(衛)나라 사람으로, 문후(文侯)를 섬겨 진(秦)나라를 쳐서 5개의 성을 빼앗았다. 문후는 오기가 용병에 능하고 부하들에게도 신망을 얻고 있는 것을 알고 서하(西河)를 지켜 진나라와 한(韓)나라를 방어하게 하였다. 문후가 죽자 오기는 그의 아들 무후(武侯)를 섬겼다.
어느 날, 무후가 오기와 함께 배를 타고 서하(西河)를 둘러본 일이 있었다. 무후는 강의 중류에 이르러 오기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산과 강의 험난한 조망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이것이야말로 우리 위나라의 보배로다."
이에 오기는 다음과 같이 아뢰어 무후를 깨우쳤다.
"국가의 보배가 되는 것은 임금의 덕일뿐, 지형의 험난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옛날 삼묘씨(三苗氏)의 나라는 동정호(洞庭湖)의 왼쪽을 끼고 팽려호를 오른쪽으로 끼고 있었으나, 임금이 덕의(德義)를 닦지 않았기 때문에 우왕(禹王)에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이 살던 곳은 왼쪽에 황하(黃河)와 제수(濟水)가 흐르고, 오른쪽에 태산(泰山)과 화산(華山)이 솟아 있으며, 남쪽으로 이궐(伊闕)이라는 깎아지른 절벽과 북쪽으로 양장산(羊腸山)을 면하고 있어 험준함을 자랑하였지만 정치가 어질지 못하여 탕(湯) 임금에게 추방당하고 말았습니다.
또 은(殷)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의 거처는 왼쪽에 맹문산(孟門山)이 있고, 오른쪽에 상산(常山)이 있었으며, 남쪽으로는 황하가 도도하게 흘러 험준하였지만 역시 정치를 행함에 덕이 없어 결국 무왕(武王)에게 살해당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살펴보건대 나라의 보배는 덕에 있는 것이지 지세의 험준함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군주께서 덕을 닦지 않으신다면 이 배 안에 함께 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적국의 편이 될 것입니다[若君不修德, 舟中之人盡爲敵國也]."
舟中敵國이란 친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이탈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권65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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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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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飯千金 (일반천금)
一飯千金(일반천금)
一 한 일 | 飯 밥 반 | 千 일천 천, 밭두둑 천, 그네 천 | 金 쇠 금, 성씨 김 |
한 끼의 식사(食事)에 천금같은 은혜(恩惠)가 들어 있다는 뜻으로, 조그만 은혜(恩惠)에 크게 보답(報答)함을 이르는 말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열전의 이야기.
한신(韓新)이 무명의 서민이었을 때, 집안이 가난한데다가 별 재간도 없어서 항상 남에게 얹혀 먹고 사는 신세였다. 이렇다보니 그를 싫어 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일찍이 남창(南昌)의 한 마을의 촌장 집에서 자주 밥을 얻어 먹었는데, 여러 달씩이나 신세를 진적도 있었다. 한신을 귀찮게 여기던 촌장의 아내는 아침 밥을 지어 몰래 먹어 치우곤 하였다.
어느 날, 한신은 회수(淮水)에서 낚시질을 하다가, 마침 물가에서 무명을 표백하고 있던 노파들을 보았다. 그들 중 한 노파가 굶주린 한신의 모습을 보고 수십 일동안 그에게 밥을 먹여 주었다. 이에 한신은 크게 감동하여 언젠가 반드시 후하게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한신은 초왕(楚王)에 봉하여진 뒤, 고향 회음에 와서 자신에게 밥을 주었던 노파를 찾아 천금을 주고, 촌장에게는 일백전의 돈을 주었다.
출전
사기(史記) 淮陰侯傳(회음후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일반은(一飯恩) | 일반지은(一飯之恩) | 일반천금(一飯千金)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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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一 한 일 | 飯 밥 반 | 千 일천 천, 밭두둑 천, 그네 천 | 金 쇠 금, 성씨 김 |
한 끼의 식사(食事)에 천금같은 은혜(恩惠)가 들어 있다는 뜻으로, 조그만 은혜(恩惠)에 크게 보답(報答)함을 이르는 말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열전의 이야기.
한신(韓新)이 무명의 서민이었을 때, 집안이 가난한데다가 별 재간도 없어서 항상 남에게 얹혀 먹고 사는 신세였다. 이렇다보니 그를 싫어 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일찍이 남창(南昌)의 한 마을의 촌장 집에서 자주 밥을 얻어 먹었는데, 여러 달씩이나 신세를 진적도 있었다. 한신을 귀찮게 여기던 촌장의 아내는 아침 밥을 지어 몰래 먹어 치우곤 하였다.
어느 날, 한신은 회수(淮水)에서 낚시질을 하다가, 마침 물가에서 무명을 표백하고 있던 노파들을 보았다. 그들 중 한 노파가 굶주린 한신의 모습을 보고 수십 일동안 그에게 밥을 먹여 주었다. 이에 한신은 크게 감동하여 언젠가 반드시 후하게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한신은 초왕(楚王)에 봉하여진 뒤, 고향 회음에 와서 자신에게 밥을 주었던 노파를 찾아 천금을 주고, 촌장에게는 일백전의 돈을 주었다.
출전
사기(史記) 淮陰侯傳(회음후전) |
관련 한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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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은(一飯恩) | 일반지은(一飯之恩) | 일반천금(一飯千金)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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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日暮途遠 (일모도원, rìmùtúyuǎn)
日暮途遠(일모도원)
日暮途远(rìmùtúyuǎn)
日 날 일 | 暮 저물 모 | 途 길 도 | 遠 멀 원 |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할 일은 많지만 시간이 없음을 비유하는 말.
춘추시대의 오자서(伍子胥)는 초(楚)나라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오사(伍奢)는 태자 건(建)의 태부(太傅)였고, 비무기(費無忌)는 소부(少傅)로 있었으나 성품이 간교하였다. 비무기는 태자를 배신하고 진(秦)에서 데려온 여자를 평왕(平王)에게 권하고 아첨하여 신임을 얻었다. 그 후, 태자의 보복이 두려워 태자를 참소하였다. 여자에게 빠져 버린 왕은 비무기의 말만 곧이듣고 왕자를 변방으로 추방하였다. 또 왕은 태자가 반기를 든다는 거짓말을 믿고 이번엔 태부 오사를 꾸짖었는데, 오사는 도리어 왕의 그릇됨을 간하였다. 이 때문에 오사는 유폐되었다. 이번에는 오사의 두 아들의 보복이 두려워진 비무기는 태자의 음모는 그 두 아들의 보복이라 참언하였다. 그 때문에 오사의 맏아들은 잡혀 죽고, 둘째 아들 오자서(伍子胥)는 오(吳)나라로 도망갔다.
그때부터 오자서는 복수를 다짐하였다. 오왕과 공자 광(光)을 만난 오자서는 공자가 왕위를 탐하여 자객을 구함을 알고 전제(專諸)라는 자객을 천거하였다. 이 때에 초나라는 평왕이 죽고 비무기가 평왕에 천거한 여자의 소생 진(軫)이 소왕(昭王)으로 등극했다. 그 후 내분으로 비무기는 피살되고, 내분을 틈타 초를 치던 오왕은 전제의 칼에 죽고, 공자 광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곧 오황 합려(闔閭)다.
마침내 오나라의 행인(行人 : 외교통상부 장관에 해당하는 관직)이 된 오자서는 오왕 합려를 설득해 초나라를 공격하였다. 오자서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를 공격해 수도를 함락시켰지만, 원수인 평왕은 이미 죽고 없었다. 그 후계자 소왕(昭王)의 행방 또한 묘연해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 시신을 꺼내 300번이나 채찍질을 가한 후에야 그만두었다. 산중으로 피한 친구 신포서(申包胥)가 오자서의 행동을 지적하며, “일찍이 평왕의 신하로서 왕을 섬겼던 그대가 지금 그 시신을 욕되게 하였으니, 이보다 더 천리(天理)에 어긋난 일이 또 있겠는가?”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오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해는 지고 갈 길은 멀어,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吾日暮途遠 故倒行而逆施之].”
사기(史記)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의 이야기이다. ‘일모도원’이란 여기서 나온 말이다. 오자서의 이 행위는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논리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후대로 오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출전
사기(史記)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日暮途窮(일모도궁) |
반의어·상대어
|
참조어
掘墓鞭屍(굴묘편시) | 心腹之患(심복지환) | 吴市吹箫(오시취소, Wúshìchuīxiāo)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日暮途远(rìmùtúyuǎn)
日 날 일 | 暮 저물 모 | 途 길 도 | 遠 멀 원 |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할 일은 많지만 시간이 없음을 비유하는 말.
춘추시대의 오자서(伍子胥)는 초(楚)나라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오사(伍奢)는 태자 건(建)의 태부(太傅)였고, 비무기(費無忌)는 소부(少傅)로 있었으나 성품이 간교하였다. 비무기는 태자를 배신하고 진(秦)에서 데려온 여자를 평왕(平王)에게 권하고 아첨하여 신임을 얻었다. 그 후, 태자의 보복이 두려워 태자를 참소하였다. 여자에게 빠져 버린 왕은 비무기의 말만 곧이듣고 왕자를 변방으로 추방하였다. 또 왕은 태자가 반기를 든다는 거짓말을 믿고 이번엔 태부 오사를 꾸짖었는데, 오사는 도리어 왕의 그릇됨을 간하였다. 이 때문에 오사는 유폐되었다. 이번에는 오사의 두 아들의 보복이 두려워진 비무기는 태자의 음모는 그 두 아들의 보복이라 참언하였다. 그 때문에 오사의 맏아들은 잡혀 죽고, 둘째 아들 오자서(伍子胥)는 오(吳)나라로 도망갔다.
그때부터 오자서는 복수를 다짐하였다. 오왕과 공자 광(光)을 만난 오자서는 공자가 왕위를 탐하여 자객을 구함을 알고 전제(專諸)라는 자객을 천거하였다. 이 때에 초나라는 평왕이 죽고 비무기가 평왕에 천거한 여자의 소생 진(軫)이 소왕(昭王)으로 등극했다. 그 후 내분으로 비무기는 피살되고, 내분을 틈타 초를 치던 오왕은 전제의 칼에 죽고, 공자 광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곧 오황 합려(闔閭)다.
마침내 오나라의 행인(行人 : 외교통상부 장관에 해당하는 관직)이 된 오자서는 오왕 합려를 설득해 초나라를 공격하였다. 오자서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를 공격해 수도를 함락시켰지만, 원수인 평왕은 이미 죽고 없었다. 그 후계자 소왕(昭王)의 행방 또한 묘연해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 시신을 꺼내 300번이나 채찍질을 가한 후에야 그만두었다. 산중으로 피한 친구 신포서(申包胥)가 오자서의 행동을 지적하며, “일찍이 평왕의 신하로서 왕을 섬겼던 그대가 지금 그 시신을 욕되게 하였으니, 이보다 더 천리(天理)에 어긋난 일이 또 있겠는가?”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오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해는 지고 갈 길은 멀어,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吾日暮途遠 故倒行而逆施之].”
사기(史記)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의 이야기이다. ‘일모도원’이란 여기서 나온 말이다. 오자서의 이 행위는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논리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후대로 오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출전
사기(史記)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日暮途窮(일모도궁)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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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어
掘墓鞭屍(굴묘편시) | 心腹之患(심복지환) | 吴市吹箫(오시취소, Wúshìchuīxiāo)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一鳴驚人 (일명경인)
一鳴驚人(일명경인)
一 한 일 | 鳴 울 명 | 驚 놀랄 경 | 人 사람 인 |
한 번 울면 사람을 놀래킨다는 뜻으로, 한 번 시작(始作)하면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程度)의 대사업(大事業)을 이룩함을 이르는 말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중국 전국시대 齊(제)나라의 重臣(중신) 순우곤은 학자이면서도 익살과 辯舌(변설)로 소문난 인물. 학문은 雜學(잡학)에 지나지 않는다는 혹평을 듣기도 했지만 孟子(맹자)와 논전을 벌일 만큼 상당한 데가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몸집도 보잘것 없고 천한 신분 출신이지만 출세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섬긴 威王(위왕)은 30세가 채 안되는 젊은 나이에 즉위하였다. 그러나 그러나 그는 국사를 등한시 하여 매일 주연을 벌였으며, 이로써 밤을 새는 일 또한 잦았다. 조정(朝廷)에 나갈 시각에야 겨우 잠자리에 들기도 하여, 신하들도 왕을 깨우는 것을 삼갔다. 이렇게 3년이 지나자 자연히 국정은 혼란스러웠고, 국경 분쟁도 생겨 나라의 꼴이 안팎으로 엉망이 되어갔다. 뜻있는 신하들은 이대로 두면 나라가 망할 것을 염려했지만, 감히 왕에게 간(諫)할 엄두는 내지 못하였다.
이때 대부(大夫) 순우곤이 왕을 배알하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나라에는 큰 새가 한 마리 있습니다. 3년간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무슨 새인지 아십니까?” 왕은 순우곤의 말뜻을 알았다. 왕은 순우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새가 비록 날지 않지만, 한 번 날면 하늘을 가린다. 또한 우는 법이 없지만, 한 번 울면 천하가 놀란다[此鳥不飛則已 一飛沖天 不鳴則已 一鳴驚人].” 순우곤이 물러나자, 왕은 술잔을 내던졌다.
다음날 왕은 신하들과 함께 국내를 순시하였다. 먼저 즉묵(卽墨)에 갔다. 논밭이 잘 경작되어 있었으며, 작황도 순조로워 백성의 얼굴이 여유로웠다. 왕은 즉묵의 대부를 불러, “이만큼 잘하는데 그대를 비난하는 소리가 높은 것은, 내 측근에게 뇌물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고 1만 호의 봉토를 주었다. 다음에 간 아(阿)는 논밭이 황폐하고 백성의 얼굴 또한 어두웠다. 왕이 대부를 불러 꾸짖었다. “이런데도 그대를 칭찬하는 소리가 내 귀가 따갑도록 들리는 것은 내 측근에게 뇌물을 보내고 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돌아온 왕은 전국 72현의 현령을 소집하여 신상필벌을 하였다. 특히 아의 대부는 그 죄를 물어 솥에 삶아 죽이는 팽형(烹刑)에 처하고, 그를 칭찬한 자도 같은 죄로 처단하였다. 그 뒤로 제나라는 잘 다스려지고 백성의 생활도 안정되었다. 또 위(魏)나라를 공격해 토지를 할양받았다. ‘일명경인’이란 여기서 나온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龍駒鳳雛(용구봉추) | 三年不飛又不鳴(삼년불비우불명) | 三年不飛不鳴(삼년불비불명) | 三年不蜚不鳴(삼년불비불명) | 三年不蜚(삼년불비) | 不飛不鳴(불비불명) | 不蜚不鳴(불비불명)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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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一 한 일 | 鳴 울 명 | 驚 놀랄 경 | 人 사람 인 |
한 번 울면 사람을 놀래킨다는 뜻으로, 한 번 시작(始作)하면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程度)의 대사업(大事業)을 이룩함을 이르는 말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중국 전국시대 齊(제)나라의 重臣(중신) 순우곤은 학자이면서도 익살과 辯舌(변설)로 소문난 인물. 학문은 雜學(잡학)에 지나지 않는다는 혹평을 듣기도 했지만 孟子(맹자)와 논전을 벌일 만큼 상당한 데가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몸집도 보잘것 없고 천한 신분 출신이지만 출세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섬긴 威王(위왕)은 30세가 채 안되는 젊은 나이에 즉위하였다. 그러나 그러나 그는 국사를 등한시 하여 매일 주연을 벌였으며, 이로써 밤을 새는 일 또한 잦았다. 조정(朝廷)에 나갈 시각에야 겨우 잠자리에 들기도 하여, 신하들도 왕을 깨우는 것을 삼갔다. 이렇게 3년이 지나자 자연히 국정은 혼란스러웠고, 국경 분쟁도 생겨 나라의 꼴이 안팎으로 엉망이 되어갔다. 뜻있는 신하들은 이대로 두면 나라가 망할 것을 염려했지만, 감히 왕에게 간(諫)할 엄두는 내지 못하였다.
이때 대부(大夫) 순우곤이 왕을 배알하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나라에는 큰 새가 한 마리 있습니다. 3년간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무슨 새인지 아십니까?” 왕은 순우곤의 말뜻을 알았다. 왕은 순우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새가 비록 날지 않지만, 한 번 날면 하늘을 가린다. 또한 우는 법이 없지만, 한 번 울면 천하가 놀란다[此鳥不飛則已 一飛沖天 不鳴則已 一鳴驚人].” 순우곤이 물러나자, 왕은 술잔을 내던졌다.
다음날 왕은 신하들과 함께 국내를 순시하였다. 먼저 즉묵(卽墨)에 갔다. 논밭이 잘 경작되어 있었으며, 작황도 순조로워 백성의 얼굴이 여유로웠다. 왕은 즉묵의 대부를 불러, “이만큼 잘하는데 그대를 비난하는 소리가 높은 것은, 내 측근에게 뇌물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고 1만 호의 봉토를 주었다. 다음에 간 아(阿)는 논밭이 황폐하고 백성의 얼굴 또한 어두웠다. 왕이 대부를 불러 꾸짖었다. “이런데도 그대를 칭찬하는 소리가 내 귀가 따갑도록 들리는 것은 내 측근에게 뇌물을 보내고 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돌아온 왕은 전국 72현의 현령을 소집하여 신상필벌을 하였다. 특히 아의 대부는 그 죄를 물어 솥에 삶아 죽이는 팽형(烹刑)에 처하고, 그를 칭찬한 자도 같은 죄로 처단하였다. 그 뒤로 제나라는 잘 다스려지고 백성의 생활도 안정되었다. 또 위(魏)나라를 공격해 토지를 할양받았다. ‘일명경인’이란 여기서 나온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龍駒鳳雛(용구봉추) | 三年不飛又不鳴(삼년불비우불명) | 三年不飛不鳴(삼년불비불명) | 三年不蜚不鳴(삼년불비불명) | 三年不蜚(삼년불비) | 不飛不鳴(불비불명) | 不蜚不鳴(불비불명)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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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夜郞自大 (야랑자대)
夜郞自大(야랑자대)
夜 밤 야, 고을 이름 액 | 郞 사내 랑(낭) | 自 스스로 자 | 大 클 대, 큰 대, 클 태, 클 다 |
야랑이 스스로 크다한다는 뜻으로, 중국(中國) 한(漢)나라 때의 오랑캐 중(中)에서 야랑국이 가장 세력(勢力)이 강(强)하여 오만(傲慢)하였으므로, 용렬(庸劣)하거나 우매(愚昧)한 무리 중(中)에서 세력(勢力)이 있어 잘난 체하고 뽐냄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사기(史記)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의 이야기.
전국 시대가 종언을 고한 뒤 진(秦)나라가 통일 시대가 되고 다시 그 진나라가 망하여 한(漢)나라가 서고 나서도 중국 서남 지방은 뚜렷한 주인도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그것은 한나라가 북방의 강력한 오랑캐 흉노(匈奴)에 대처하느라 그쪽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지역의 부족들은 각각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그 10여 개의 집단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것이 귀주(貴州)의 야랑국(夜郞國)으로서 그 임금 다동(多同)은 야랑후(夜郞侯)를 자처하고 있었다. 아량국의 크기는 한나라의 현(縣)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다동은 자기 세력권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야랑국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인 줄 알았다. 그래서 어느 날 부하들을 이끌고 영지를 순시하다가 짐짓 이렇게 물었다.
“너희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
다동의 심중을 꿰뚫어보고 있는 부하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야 전하께서 다스리고 계신 이 야랑국이지 어디겠습니까.”
흐뭇해진 다동은 눈 앞의 높은 산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세상에 저 산보다 더 높은 산이 있을까?”
“저렇게 높은 산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윽고 흐르는 물가에 다다랐다. 강이라 하기에는 뭣하고 큰 시내라고 함이 적당한 물이었다. 다동이 다시 물었다.
“이 물보다 더 넓고 긴 물이 있을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런 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아첨의 소리를 곧이곧대로 들은 다동은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의 임금이라 생각하고는 기고만장했다.
한나라 무제(武帝) 때인 기원전 122년, 인도(印度)로 가던 사신 일행이 야랑국에 들렀다. 오랫동안 중국과 사실상 교류가 끊어진 상태였으므로, 다동은 중국의 소식을 알 수 있는 기회다 싶어 반겨 맞아 환대했다. 한창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 다동이 사신을 보고 물었다.
“공께서 보시기에 이 나라가 어떤 것 같소? 중국과 견주어 어느 쪽이 크다고 생각하오?”
사신은 기가 막혀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 한나라에는 군(郡)이 수십 개나 되고, 그 군 하나만 해도 이곳 야랑국보다 몇 배는 큽니다.”
그 말을 들은 다동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고, 지금까지 자기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는가를 깨달았다. 그는 나중에 남월(南粤)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 진압에 적극 협력한 공으로 무제로부터 왕의 작호를 하사받고 완전한 한나라 신하가 되었다.
출전
사기(史記)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坐井觀天(좌정관천) | 井中之蛙(정중지와) | 井中蛙(정중와) | 井中視星(정중시성) | 井中觀天(정중관천) | 井底之蛙(정저지와) | 井底蛙(정저와) | 坎中之蛙(감중지와)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夜 밤 야, 고을 이름 액 | 郞 사내 랑(낭) | 自 스스로 자 | 大 클 대, 큰 대, 클 태, 클 다 |
야랑이 스스로 크다한다는 뜻으로, 중국(中國) 한(漢)나라 때의 오랑캐 중(中)에서 야랑국이 가장 세력(勢力)이 강(强)하여 오만(傲慢)하였으므로, 용렬(庸劣)하거나 우매(愚昧)한 무리 중(中)에서 세력(勢力)이 있어 잘난 체하고 뽐냄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사기(史記)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의 이야기.
전국 시대가 종언을 고한 뒤 진(秦)나라가 통일 시대가 되고 다시 그 진나라가 망하여 한(漢)나라가 서고 나서도 중국 서남 지방은 뚜렷한 주인도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그것은 한나라가 북방의 강력한 오랑캐 흉노(匈奴)에 대처하느라 그쪽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지역의 부족들은 각각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그 10여 개의 집단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것이 귀주(貴州)의 야랑국(夜郞國)으로서 그 임금 다동(多同)은 야랑후(夜郞侯)를 자처하고 있었다. 아량국의 크기는 한나라의 현(縣)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다동은 자기 세력권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야랑국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인 줄 알았다. 그래서 어느 날 부하들을 이끌고 영지를 순시하다가 짐짓 이렇게 물었다.
“너희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
다동의 심중을 꿰뚫어보고 있는 부하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야 전하께서 다스리고 계신 이 야랑국이지 어디겠습니까.”
흐뭇해진 다동은 눈 앞의 높은 산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세상에 저 산보다 더 높은 산이 있을까?”
“저렇게 높은 산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윽고 흐르는 물가에 다다랐다. 강이라 하기에는 뭣하고 큰 시내라고 함이 적당한 물이었다. 다동이 다시 물었다.
“이 물보다 더 넓고 긴 물이 있을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런 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아첨의 소리를 곧이곧대로 들은 다동은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의 임금이라 생각하고는 기고만장했다.
한나라 무제(武帝) 때인 기원전 122년, 인도(印度)로 가던 사신 일행이 야랑국에 들렀다. 오랫동안 중국과 사실상 교류가 끊어진 상태였으므로, 다동은 중국의 소식을 알 수 있는 기회다 싶어 반겨 맞아 환대했다. 한창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 다동이 사신을 보고 물었다.
“공께서 보시기에 이 나라가 어떤 것 같소? 중국과 견주어 어느 쪽이 크다고 생각하오?”
사신은 기가 막혀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 한나라에는 군(郡)이 수십 개나 되고, 그 군 하나만 해도 이곳 야랑국보다 몇 배는 큽니다.”
그 말을 들은 다동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고, 지금까지 자기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는가를 깨달았다. 그는 나중에 남월(南粤)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 진압에 적극 협력한 공으로 무제로부터 왕의 작호를 하사받고 완전한 한나라 신하가 되었다.
출전
사기(史記)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坐井觀天(좌정관천) | 井中之蛙(정중지와) | 井中蛙(정중와) | 井中視星(정중시성) | 井中觀天(정중관천) | 井底之蛙(정저지와) | 井底蛙(정저와) | 坎中之蛙(감중지와)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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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死灰復燃 (사회부연)
死灰復燃(사회부연)
死 죽을 사 | 灰 재 회 | 復 다시 부, 회복할 복, 돌아올 복 | 燃 탈 연, 불사를 연 |
다 탄 재가 다시 불이 붙었다는 뜻으로, ①세력(勢力)을 잃었던 사람이 다시 세력(勢力)을 잡음 ②혹은 곤경(困境)에 처해 있던 사람이 훌륭하게 됨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사그라진 재에 다시 불이 붙었다'라는 뜻으로, 잃었던 권세(權勢)를 다시 찾거나 어려움에 처했던 사람이 다시 훌륭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싸움에 패하였다가 다시 쳐들어오거나 어떤 일에 실패한 뒤 힘을 쌓아 그 일에 다시 착수한다는 의미의 '권토중래(捲土重來)'와 비슷한 말이다. 사마 천(司馬遷)이 저술한 《사기(史記)》 '한장유열전(韓長孺列傳)'에서 유래한 성어(成語)이다.
중국 전한시대(前漢時代) 문제(文帝:재위 BC 180∼BC 157)의 둘째 아들인 양(梁)나라 효왕(孝王) 때의 관리 한안국(韓安國:자는 長孺)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그는 효왕과 한나라 효경제 사이의 불화를 해결하여 관직에 올랐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훗날, 그는 법을 어겨서 감옥에 갇혔다. 당시의 옥사쟁이 전갑(田甲)이 한안국을 모욕함으로써 한안국은 "다 타버린 재에서도 다시 불길이 살아나지 않는가[死灰獨不復燃(然)乎]"라고 하며 잃어버린 권력과 세력을 다시 찾겠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전갑은 "다시 불이 타면 오줌을 싸서 꺼겠다[然卽溺之]"라고 하면서 한안국을 비웃었다. [연(然)은 연(燃)과 통용]
얼마 후, 양나라에 내사(內史) 자리가 비게 되었다. 한나라에서는 사신을 보내 한안국을 양나라의 내사로 임명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한안국은 곧 석방되어 다시 높은 관직에 올랐다. 이 소식을 들은 전갑은 놀라 달아나 버렸다. 한안국은 전갑이 관직에 복귀하지 않으면 일족을 멸하겠다라고 포고했다. 벌벌 떨며 자수해 온 전갑에게 한안국은 웃으면서 말했다.
"오줌을 누어 보아라. 너희 같은 무리들은 문책할 가치조차 없느니라."
세력을 잃은 사람이 다시 활동하거나 득세(得勢)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한장유열전(韓長孺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捲土重來(권토중래)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死 죽을 사 | 灰 재 회 | 復 다시 부, 회복할 복, 돌아올 복 | 燃 탈 연, 불사를 연 |
다 탄 재가 다시 불이 붙었다는 뜻으로, ①세력(勢力)을 잃었던 사람이 다시 세력(勢力)을 잡음 ②혹은 곤경(困境)에 처해 있던 사람이 훌륭하게 됨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사그라진 재에 다시 불이 붙었다'라는 뜻으로, 잃었던 권세(權勢)를 다시 찾거나 어려움에 처했던 사람이 다시 훌륭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싸움에 패하였다가 다시 쳐들어오거나 어떤 일에 실패한 뒤 힘을 쌓아 그 일에 다시 착수한다는 의미의 '권토중래(捲土重來)'와 비슷한 말이다. 사마 천(司馬遷)이 저술한 《사기(史記)》 '한장유열전(韓長孺列傳)'에서 유래한 성어(成語)이다.
중국 전한시대(前漢時代) 문제(文帝:재위 BC 180∼BC 157)의 둘째 아들인 양(梁)나라 효왕(孝王) 때의 관리 한안국(韓安國:자는 長孺)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그는 효왕과 한나라 효경제 사이의 불화를 해결하여 관직에 올랐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훗날, 그는 법을 어겨서 감옥에 갇혔다. 당시의 옥사쟁이 전갑(田甲)이 한안국을 모욕함으로써 한안국은 "다 타버린 재에서도 다시 불길이 살아나지 않는가[死灰獨不復燃(然)乎]"라고 하며 잃어버린 권력과 세력을 다시 찾겠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전갑은 "다시 불이 타면 오줌을 싸서 꺼겠다[然卽溺之]"라고 하면서 한안국을 비웃었다. [연(然)은 연(燃)과 통용]
얼마 후, 양나라에 내사(內史) 자리가 비게 되었다. 한나라에서는 사신을 보내 한안국을 양나라의 내사로 임명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한안국은 곧 석방되어 다시 높은 관직에 올랐다. 이 소식을 들은 전갑은 놀라 달아나 버렸다. 한안국은 전갑이 관직에 복귀하지 않으면 일족을 멸하겠다라고 포고했다. 벌벌 떨며 자수해 온 전갑에게 한안국은 웃으면서 말했다.
"오줌을 누어 보아라. 너희 같은 무리들은 문책할 가치조차 없느니라."
세력을 잃은 사람이 다시 활동하거나 득세(得勢)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한장유열전(韓長孺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捲土重來(권토중래)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負荊請罪 (To beg forgiveness)
負荊請罪 (To beg forgiveness)
During the Warring States Period (B.C. 403-221) in the kingdom of Zhao, there was a general named Lian Po who held an important position at court.
One day, he found himself losing his popularity because of Lin Xiang Ru - another gentleman who was made a high-ranking official after retrieving the jade intact from the kingdom of Qin.
Lian believed it was unjust, so he often told people: "You know what, Lin Xiang Ru is good at pleasing the king and that`s how he made his title. Shame on him! I swear that if I meet him, I will insult him on his face!"
Lian`s condemnation was soon heard by Lin, so he tried to keep away from Lian.
One day, Lin went out with his subordinates and saw Lian from the distance; he immediately turned his vehicle around to avoid meeting Lian. However, his subordinates weren`t happy about this at all. They felt that Lin was being too cowardly.
"Why do you have to be afraid of him," asked one of his subordinates.
"I`m not even afraid of the king of Qin, so would I be afraid of Lian? If Lian and I have a conflict, do you think Qin will take this opportunity to invade our country?" said Lin. "At the moment, the security of our country is my priority."
The next day, Lian paid a visit to Lin. He had a thorn on his bare shoulder and said to Lin: "I overheard your conversation yesterday ... I`m an idiot. I`m shallow. Now, I understand how great you are!"
Since then, Lian and Lin became the closest friends.
* The idiom is used to describe a person who asks for forgiveness.
Translation
부형청죄(負荊請罪)
부(負):to carry
형(荊):thorn
청(請):to request
죄(罪):guilt
During the Warring States Period (B.C. 403-221) in the kingdom of Zhao, there was a general named Lian Po who held an important position at court.
One day, he found himself losing his popularity because of Lin Xiang Ru - another gentleman who was made a high-ranking official after retrieving the jade intact from the kingdom of Qin.
Lian believed it was unjust, so he often told people: "You know what, Lin Xiang Ru is good at pleasing the king and that`s how he made his title. Shame on him! I swear that if I meet him, I will insult him on his face!"
Lian`s condemnation was soon heard by Lin, so he tried to keep away from Lian.
One day, Lin went out with his subordinates and saw Lian from the distance; he immediately turned his vehicle around to avoid meeting Lian. However, his subordinates weren`t happy about this at all. They felt that Lin was being too cowardly.
"Why do you have to be afraid of him," asked one of his subordinates.
"I`m not even afraid of the king of Qin, so would I be afraid of Lian? If Lian and I have a conflict, do you think Qin will take this opportunity to invade our country?" said Lin. "At the moment, the security of our country is my priority."
The next day, Lian paid a visit to Lin. He had a thorn on his bare shoulder and said to Lin: "I overheard your conversation yesterday ... I`m an idiot. I`m shallow. Now, I understand how great you are!"
Since then, Lian and Lin became the closest friends.
* The idiom is used to describe a person who asks for forgiveness.
Translation
부형청죄(負荊請罪)
부(負):to carry
형(荊):thorn
청(請):to request
죄(罪):guilt
負荊請罪 (부형청죄)
負荊請罪(부형청죄)
負 질 부 | 荊 가시나무 형 | 請 청할 청 | 罪 허물 죄 |
가시 나무를 등(等)에 지고 때려 주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認定)하고 사죄(謝罪)하는 것을 의미(意味)함
사기(史記) 염파인상여(廉頗藺相如)열전의 이야기.
중국 전국(戰國)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인상여와 염파라는 신하를 두었다. 이들의 명성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인상여는 조나라의 보물인 화씨지벽을 진나라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낸 인물로, 이로부터 '완벽(完璧)'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되었다. 또 민지의 회합에서 혜문왕이 진나라 소양왕의 위협에 수모를 당할 상황에 처하였을 때, 인상여가 지모를 발휘하여 이를 막아냄으로써 조나라의 위엄을 지켰다. 인상여는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상경(上卿)에 임명되었다.
대장군 염파는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인상여가 더 높은 지위에 오른 데 불만을 품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나는 성을 공격하고 들에서 싸워 큰 공을 세웠다. 인상여는 입을 놀린 일밖에 한 일이 없는데 나보다 윗자리에 앉다니. 내 어찌 그런 자 밑에 있을 수 있겠는가. 언제고 그를 만나면 반드시 망신을 주고 말리라"
이 말을 듣고 나서부터 인상여는 일부러 염파를 피하였다. 그러자 인상여가 염파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염파는 이를 알고 득의양양하였다. 인상여는 이에 대하여 "나는 진나라 왕의 위세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인데, 어찌 염파를 두려워하겠는가? 지금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침범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두 호랑이가 싸우게 된다면 어느 한 쪽은 다치거나 죽기 마련이다. 내가 염파를 피해 다니는 이유는 나라의 위급함이 먼저이고 사사로운 일은 나중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염파가 이 말을 전해 듣고는 잘못을 깨우쳐 '웃통을 벗고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肉袒負荊]' 인상여를 찾아가서는 "비천한 놈이 장군의 넓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였으니 벌을 주시오"라고 사죄하였다. 인상여는 염파를 환대하였고, 이로부터 두 사람은 생사를 같이하는 '문경지교'를 맺게 되었다.
이 고사는 《사기》의 '염파인상여열전'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부형청죄(또는 육단부형)는 남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육단부형(肉袒負荊)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負 질 부 | 荊 가시나무 형 | 請 청할 청 | 罪 허물 죄 |
가시 나무를 등(等)에 지고 때려 주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認定)하고 사죄(謝罪)하는 것을 의미(意味)함
사기(史記) 염파인상여(廉頗藺相如)열전의 이야기.
중국 전국(戰國)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인상여와 염파라는 신하를 두었다. 이들의 명성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인상여는 조나라의 보물인 화씨지벽을 진나라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낸 인물로, 이로부터 '완벽(完璧)'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되었다. 또 민지의 회합에서 혜문왕이 진나라 소양왕의 위협에 수모를 당할 상황에 처하였을 때, 인상여가 지모를 발휘하여 이를 막아냄으로써 조나라의 위엄을 지켰다. 인상여는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상경(上卿)에 임명되었다.
대장군 염파는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인상여가 더 높은 지위에 오른 데 불만을 품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나는 성을 공격하고 들에서 싸워 큰 공을 세웠다. 인상여는 입을 놀린 일밖에 한 일이 없는데 나보다 윗자리에 앉다니. 내 어찌 그런 자 밑에 있을 수 있겠는가. 언제고 그를 만나면 반드시 망신을 주고 말리라"
이 말을 듣고 나서부터 인상여는 일부러 염파를 피하였다. 그러자 인상여가 염파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염파는 이를 알고 득의양양하였다. 인상여는 이에 대하여 "나는 진나라 왕의 위세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인데, 어찌 염파를 두려워하겠는가? 지금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침범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두 호랑이가 싸우게 된다면 어느 한 쪽은 다치거나 죽기 마련이다. 내가 염파를 피해 다니는 이유는 나라의 위급함이 먼저이고 사사로운 일은 나중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염파가 이 말을 전해 듣고는 잘못을 깨우쳐 '웃통을 벗고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肉袒負荊]' 인상여를 찾아가서는 "비천한 놈이 장군의 넓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였으니 벌을 주시오"라고 사죄하였다. 인상여는 염파를 환대하였고, 이로부터 두 사람은 생사를 같이하는 '문경지교'를 맺게 되었다.
이 고사는 《사기》의 '염파인상여열전'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부형청죄(또는 육단부형)는 남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육단부형(肉袒負荊)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怒髮衝冠 (노발충관)
怒髮衝冠(노발충관)
怒 성낼 노(로) | 髮 터럭 발 | 衝 찌를 충, 뒤얽힐 종 | 冠 갓 관 |
노한 머리털이 관을 추켜 올린다는 뜻으로, 몹시 성낸 모양(模樣)을 이르는 말
중국 전한(前漢)의 역사가인 사마 천(司馬遷:BC 145?∼BC 86?)이 저술한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오는 이야기.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이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는 귀중한 보물을 갖게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은 화씨벽을 차지하려는 욕심에 혜문왕에게 진나라의 15성(城)과 바꾸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혜문왕은 화씨벽을 주더라도 15성을 얻지 못한채 속을 것만 같고, 그렇다고 주지 않으면 진나라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 걱정되었다.
혜문왕은 인상여를 사신으로 임명하여 진나라에 보냈다. 소양왕이 큰 나라의 위세를 부리며 성을 내주지 않고 인상여가 가져간 화씨지벽을 빼앗으려 하자 인상여는 진나라 소양왕의 무례한 행동을 크게 꾸짖었는데, '매우 분노하여 머리카락이 곤두서 갓이 벗어질 정도였다[怒髮上衝冠]'고 전해진다.
송나라 흥화군(興化軍) 선유(仙遊) 사람인 임예(林豫)는 신종(神宗) 희녕(熙寧) 9년(1076) 진사(進士)가 되었다. 일찍이 통리군(通利軍)을 맡아 소식(蘇軾) 형제와 친하게 사귀었다. 소철(蘇轍)이 폄적(貶謫)되자 그가 사(詞)를 지어 보냈는데, 그 안에 “화난 머리카락이 관을 뚫었고, 비장한 마음은 돌에 비긴만 하네.[怒髮衝冠 壯心比石]”란 구절이 있었다.
출전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怒發大發(노발대발) | 怒髮上衝冠(노발상충관) | 노발충천(怒髮衝天)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怒 성낼 노(로) | 髮 터럭 발 | 衝 찌를 충, 뒤얽힐 종 | 冠 갓 관 |
노한 머리털이 관을 추켜 올린다는 뜻으로, 몹시 성낸 모양(模樣)을 이르는 말
중국 전한(前漢)의 역사가인 사마 천(司馬遷:BC 145?∼BC 86?)이 저술한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오는 이야기.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이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는 귀중한 보물을 갖게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은 화씨벽을 차지하려는 욕심에 혜문왕에게 진나라의 15성(城)과 바꾸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혜문왕은 화씨벽을 주더라도 15성을 얻지 못한채 속을 것만 같고, 그렇다고 주지 않으면 진나라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 걱정되었다.
혜문왕은 인상여를 사신으로 임명하여 진나라에 보냈다. 소양왕이 큰 나라의 위세를 부리며 성을 내주지 않고 인상여가 가져간 화씨지벽을 빼앗으려 하자 인상여는 진나라 소양왕의 무례한 행동을 크게 꾸짖었는데, '매우 분노하여 머리카락이 곤두서 갓이 벗어질 정도였다[怒髮上衝冠]'고 전해진다.
송나라 흥화군(興化軍) 선유(仙遊) 사람인 임예(林豫)는 신종(神宗) 희녕(熙寧) 9년(1076) 진사(進士)가 되었다. 일찍이 통리군(通利軍)을 맡아 소식(蘇軾) 형제와 친하게 사귀었다. 소철(蘇轍)이 폄적(貶謫)되자 그가 사(詞)를 지어 보냈는데, 그 안에 “화난 머리카락이 관을 뚫었고, 비장한 마음은 돌에 비긴만 하네.[怒髮衝冠 壯心比石]”란 구절이 있었다.
출전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怒發大發(노발대발) | 怒髮上衝冠(노발상충관) | 노발충천(怒髮衝天)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家無擔石 (가무담석)
家無擔石(가무담석)
家 집 가, 여자 고 | 無 없을 무 | 擔 멜 담 | 石 돌 석 |
석(石)은 한 항아리, 담(擔)은 두 항아리의 뜻으로, 집에 조금도 없다는 말로, 집에 재물(財物)의 여유(餘裕)가 조금도 없음
담(擔)은 손 수(手)에 이를 첨(詹)을 짝지어 놓은 글자. 손이 닿는 곳에 짊어져야 할 물건이 있다는 뜻에서 '책임지다', '떠맡다'는 의미로 사용
한나라 유방의 휘하에 한신이라는 유능한 장수가 있었다. 그는 벼슬 없이 초야에 묻혀 살 때 집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家無擔石] 정도로 가난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빌붙어 살았다.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고 벼슬을 할 수 있도록 추천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한신이 회음현에 살 때 그는 친구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곤 했다. 이를 귀찮게 여긴 친구의 부인은 새벽에 밥을 해 먹고 그에게는 아침을 주지 않았다. 그 정도로 그는 회음현에서 거지 취급을 받았다. 이를 불쌍하게 여긴 빨래터의 한 아낙이 굶주린 한신에게 밥을 주었다. 이에 감동한 한신이 그 아낙에게 성공하여 은혜를 갚겠다고 하자, 아낙은 입에 풀칠도 못하는 사내가 불쌍하여 밥을 주는데 무슨 보답을 원하겠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한신은 훗날 초나라의 왕이 되었고 권력의 중심에 섰다.
이때부터 가무담석은 '매우 가난하다'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출전
사기(史記) 회음후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4급 사자성어 |
家 집 가, 여자 고 | 無 없을 무 | 擔 멜 담 | 石 돌 석 |
석(石)은 한 항아리, 담(擔)은 두 항아리의 뜻으로, 집에 조금도 없다는 말로, 집에 재물(財物)의 여유(餘裕)가 조금도 없음
담(擔)은 손 수(手)에 이를 첨(詹)을 짝지어 놓은 글자. 손이 닿는 곳에 짊어져야 할 물건이 있다는 뜻에서 '책임지다', '떠맡다'는 의미로 사용
한나라 유방의 휘하에 한신이라는 유능한 장수가 있었다. 그는 벼슬 없이 초야에 묻혀 살 때 집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家無擔石] 정도로 가난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빌붙어 살았다.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고 벼슬을 할 수 있도록 추천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한신이 회음현에 살 때 그는 친구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곤 했다. 이를 귀찮게 여긴 친구의 부인은 새벽에 밥을 해 먹고 그에게는 아침을 주지 않았다. 그 정도로 그는 회음현에서 거지 취급을 받았다. 이를 불쌍하게 여긴 빨래터의 한 아낙이 굶주린 한신에게 밥을 주었다. 이에 감동한 한신이 그 아낙에게 성공하여 은혜를 갚겠다고 하자, 아낙은 입에 풀칠도 못하는 사내가 불쌍하여 밥을 주는데 무슨 보답을 원하겠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한신은 훗날 초나라의 왕이 되었고 권력의 중심에 섰다.
이때부터 가무담석은 '매우 가난하다'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출전
사기(史記) 회음후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4급 사자성어 |
曲學阿世 (곡학아세)
曲學阿世(곡학아세)
曲学阿世(qūxué ēshì)。
曲 굽을 곡, 누룩 곡 | 學 배울 학, 가르칠 교, 고지새 할 | 阿 언덕 아, 호칭 옥 | 世 인간 세, 대 세 |
학문(學問)을 굽히어 세상(世上)에 아첨(阿諂)한다는 뜻으로, 정도(正道)를 벗어난 학문(學問)으로 세상(世上) 사람에게 아첨(阿諂)함을 이르는 말
사기 유림열전(儒林列傳)의 이야기.
중국 한나라 황제(皇帝)인 경제(景帝)가 즉위하여 천하(天下)의 선비를 찾다가 산동에 사는 원고생(轅固生)이란 90세의 노 시인을 등용(登用ㆍ登庸)하기로 했다.
중신들은 그의 등용(登用ㆍ登庸)을 반대했으나, 끝내 경제(景帝) 임금은 그를 등용(登用ㆍ登庸)한다. 그는 강직한 성품과 학문으로 왕자의 스승을 지냈으나 병 때문에 물러났다.
무제(武帝)가 즉위하자, 원고생은 9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게 되었는데, 아첨을 일삼는 관리들은 그가 너무 늙었다며 헐뜯었다. 원고생이 조정의 부름을 받았을 때, 같이 등용(登用ㆍ登庸)된 소장 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역시 산동 사람으로 공손홍(公孫弘)이라고 했다. 공손홍은 원고생을 깔보고 무시했으나, 개의치 아니하고 공손홍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다.
"지금은 학문(學問)의 정도(正道)가 어지러워져 속설이 유행하여 전통적 학문(學問)이 결국은 사설로 인하여 본연의 모습이 사라지고 말 것이오. 당신은 학문(學問)을 좋아하고 젊으니 선비로써 올바른 학문(學問)을 세상(世上)에 널리 펼쳐주기 바라오. 자신이 믿는 학설을 굽혀(曲學), 이 세상(世上) 속물들에게 아첨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되오.[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
이 말을 들은 공손홍은 고매한 학식과 인격을 갖춘 원고생에게 지난 잘못을 사죄하고 제자가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이로 인하여 전해지는 말이 바로 곡학아세이다.
출전
사기(史記)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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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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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활용도 ★★★
曲学阿世(qūxué ēshì)。
曲 굽을 곡, 누룩 곡 | 學 배울 학, 가르칠 교, 고지새 할 | 阿 언덕 아, 호칭 옥 | 世 인간 세, 대 세 |
학문(學問)을 굽히어 세상(世上)에 아첨(阿諂)한다는 뜻으로, 정도(正道)를 벗어난 학문(學問)으로 세상(世上) 사람에게 아첨(阿諂)함을 이르는 말
사기 유림열전(儒林列傳)의 이야기.
중국 한나라 황제(皇帝)인 경제(景帝)가 즉위하여 천하(天下)의 선비를 찾다가 산동에 사는 원고생(轅固生)이란 90세의 노 시인을 등용(登用ㆍ登庸)하기로 했다.
중신들은 그의 등용(登用ㆍ登庸)을 반대했으나, 끝내 경제(景帝) 임금은 그를 등용(登用ㆍ登庸)한다. 그는 강직한 성품과 학문으로 왕자의 스승을 지냈으나 병 때문에 물러났다.
무제(武帝)가 즉위하자, 원고생은 9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게 되었는데, 아첨을 일삼는 관리들은 그가 너무 늙었다며 헐뜯었다. 원고생이 조정의 부름을 받았을 때, 같이 등용(登用ㆍ登庸)된 소장 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역시 산동 사람으로 공손홍(公孫弘)이라고 했다. 공손홍은 원고생을 깔보고 무시했으나, 개의치 아니하고 공손홍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다.
"지금은 학문(學問)의 정도(正道)가 어지러워져 속설이 유행하여 전통적 학문(學問)이 결국은 사설로 인하여 본연의 모습이 사라지고 말 것이오. 당신은 학문(學問)을 좋아하고 젊으니 선비로써 올바른 학문(學問)을 세상(世上)에 널리 펼쳐주기 바라오. 자신이 믿는 학설을 굽혀(曲學), 이 세상(世上) 속물들에게 아첨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되오.[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
이 말을 들은 공손홍은 고매한 학식과 인격을 갖춘 원고생에게 지난 잘못을 사죄하고 제자가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이로 인하여 전해지는 말이 바로 곡학아세이다.
출전
사기(史記)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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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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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활용도 ★★★
高陽酒徒 (고양주도)
高陽酒徒(고양주도)
高 높을 고 | 陽 볕 양 | 酒 술 주 | 徒 무리 도 |
술을 좋아하여 제멋대로 행동(行動)하는 사람을 비유(比喩ㆍ譬喩)
사기(史記) 역생육가(酈生陸賈)열전의 이야기.
진(秦)나라 말기, 유방(劉邦)은 패현(沛縣)에서 군대를 일으켜 진류(陳留)현의 교외에 주둔하였다. 당시 진류현의 고양이라는 시골에는 역이기(酈食其)라는 한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책 읽기를 좋아하였으나, 일정한 생업을 갖지는 못했다.
역이기는 유방의 휘하로 들어가고자 했는데, 유방이 유생(儒生)들을 싫어하여 그들이 찾아오면 관(冠)을 벗겨서 거기에 오줌을 누고 욕을 퍼붓는다는 말을 듣었다. 역이기는 심사숙고한 후 대책을 마련하여 유방을 만나러 갔다. 유방은 유생이 찾아왔다는 말에 크게 노하여 유생 따위는 만날 시간이 없다 라고 하였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역이기는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고양땅의 술꾼이지 유생이 아니오[吾高陽酒徒. 非儒人也]
시위의 보고를 받은 유방은 발을 씻다말고, 맨발로 나가 역이기를 맞았다. 그후 역이기는 유방을 도와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高陽酒徒란 술을 좋아하여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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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 높을 고 | 陽 볕 양 | 酒 술 주 | 徒 무리 도 |
술을 좋아하여 제멋대로 행동(行動)하는 사람을 비유(比喩ㆍ譬喩)
사기(史記) 역생육가(酈生陸賈)열전의 이야기.
진(秦)나라 말기, 유방(劉邦)은 패현(沛縣)에서 군대를 일으켜 진류(陳留)현의 교외에 주둔하였다. 당시 진류현의 고양이라는 시골에는 역이기(酈食其)라는 한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책 읽기를 좋아하였으나, 일정한 생업을 갖지는 못했다.
역이기는 유방의 휘하로 들어가고자 했는데, 유방이 유생(儒生)들을 싫어하여 그들이 찾아오면 관(冠)을 벗겨서 거기에 오줌을 누고 욕을 퍼붓는다는 말을 듣었다. 역이기는 심사숙고한 후 대책을 마련하여 유방을 만나러 갔다. 유방은 유생이 찾아왔다는 말에 크게 노하여 유생 따위는 만날 시간이 없다 라고 하였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역이기는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고양땅의 술꾼이지 유생이 아니오[吾高陽酒徒. 非儒人也]
시위의 보고를 받은 유방은 발을 씻다말고, 맨발로 나가 역이기를 맞았다. 그후 역이기는 유방을 도와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高陽酒徒란 술을 좋아하여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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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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鷄口牛後 (계구우후)
鷄口牛後(계구우후)
鷄 닭 계 | 口 입 구 | 牛 소 우 | 後 뒤 후 |
큰 조직의 말석을 차지하기보다 작은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는 편이 낫다는 뜻.
Better be the head of an ass than the tail of a horse.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에는 전국(戰國)시대의 모사(謀士) 소진의 일화가 실려 있다. 소진은 합종책(合從策)으로 입신(立身)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진(秦)나라 혜왕, 조(趙)나라의 재상인 봉양군 등을 만나 보았으나 환영 받지 못하였다.
그는 다시 연(燕)나라로 가서 문후(文侯)를 만나, 연나라가 조(趙)나라와 맹약을 맺어 진나라에 대항해야한다는 합종의 계획을 말하였다. 문후의 후한 사례에 고무된 소진은 얼마 후 한(韓)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그는 한나라의 선혜왕(宣惠王)을 만나 진나라를 섬기지 말 것을 권고하며 다음과 같이 유세하였다.
이번 기회에 남북으로 연합하는 합종책으로써 진나라의 동진(東進)을 막아보십시오. 옛말에 차라리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말라[寧爲鷄口無爲牛後]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선혜왕은 소진의 권유를 받아 들였다. 나머지 다섯 나라들도 그에게 설복되었으며, 결국 소진은 6국의 재상을 겸임하게 되었다.
출전
전국책(戰國策) 한책(韓策) | 사기(史記) 소진전(蘇秦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반의어·상대어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닭의 볏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마라.
¶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낫다.
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鷄 닭 계 | 口 입 구 | 牛 소 우 | 後 뒤 후 |
큰 조직의 말석을 차지하기보다 작은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는 편이 낫다는 뜻.
Better be the head of an ass than the tail of a horse.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에는 전국(戰國)시대의 모사(謀士) 소진의 일화가 실려 있다. 소진은 합종책(合從策)으로 입신(立身)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진(秦)나라 혜왕, 조(趙)나라의 재상인 봉양군 등을 만나 보았으나 환영 받지 못하였다.
그는 다시 연(燕)나라로 가서 문후(文侯)를 만나, 연나라가 조(趙)나라와 맹약을 맺어 진나라에 대항해야한다는 합종의 계획을 말하였다. 문후의 후한 사례에 고무된 소진은 얼마 후 한(韓)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그는 한나라의 선혜왕(宣惠王)을 만나 진나라를 섬기지 말 것을 권고하며 다음과 같이 유세하였다.
이번 기회에 남북으로 연합하는 합종책으로써 진나라의 동진(東進)을 막아보십시오. 옛말에 차라리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말라[寧爲鷄口無爲牛後]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선혜왕은 소진의 권유를 받아 들였다. 나머지 다섯 나라들도 그에게 설복되었으며, 결국 소진은 6국의 재상을 겸임하게 되었다.
출전
전국책(戰國策) 한책(韓策) | 사기(史記) 소진전(蘇秦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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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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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닭의 볏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마라.
¶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낫다.
중요도·활용도
4급 사자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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