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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百藥之長 (주백약지장)
酒百藥之長
- 班固, 漢書
The wine is the best of all medicines.
- Ban Gu (班固, 32-92), Book of Han (漢書)
술은 모든 약 中에 첫째 간다. [주백약지장(酒百藥之長)]
- 반고 (班固, Bān Gù, 32~92), 한서(漢書)
酒 술 주 | 百 일백 백, 힘쓸 맥 | 藥 약 약, 뜨거울 삭, 간 맞출 략(약) | 之 갈 지 | 長 길 장/어른 장 |
출전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狐疑不決 (호의불결)
狐疑不決(호의불결)
狐 여우 호 | 疑 의심할 의, 안정할 응 | 不 아닐 불, 아닐 부 | 決 결단할 결, 빠를 혈 |
여우가 의심이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대하여 의심이 많아 결행(決行)하지 못함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진(晉)나라 때 곽연생(郭緣生)이 지은 술정기(述征記)의 이야기.
맹진(盟津)과 하진(河津)은 모두 황하(黃河)에 있는 나루터이다. 맹진은 지금의 중국 하남성 맹현(孟縣)에 있었으며, 하양도(河陽渡)라고도 하였다. 하진은 중국의 산서성 하진현(河津縣)에 있었다. 이 두 곳은 양자강보다는 좁고, 회하(淮河)나 제수(濟水)보다는 넓었다. 겨울이 되어 얼음이 얼면 두꺼운 곳은 몇 장(丈)에 달했으므로, 거마(車馬)들도 얼음 위로 통과할 수 있어 나룻배보다 편리하였다.
하지만 얼음이 막 얼기 시작할 때에, 사람들은 섣불리 건너지 못하고 먼저 여우들을 건너가게 하였다. 여우는 본시 영리한 동물로서 청각이 매우 뛰어났다. 여우는 얼음 위를 걸으면서도 이상한 소리가 나면 곧 얼음이 갈라지는 것을 예감하고 재빨리 강가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이렇게 여우가 강을 다 건너간 것을 확인하고나서야 안심하고 수레를 출발시켰던 것이다.
초(楚)나라의 굴원(屈原)은 '이소(離騷)'에서 "머뭇거리고 여우처럼 의심하는 내 마음이여, 스스로 가고파도 갈 수가 없네[心猶豫而狐疑兮, 欲自適而不可]"라고 읊었다.
또 《후한서(後漢書)》의 '유표전(劉表傳)'에 따르면, 원소(袁紹)가 조조(曺操)와 대치하고 있을 때 유표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이때, 유표는 여우처럼 의심하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한숭(韓嵩)을 조조에게 보내어 허와 실을 살피도록 하였다[表狐疑不斷, 乃遣嵩詣操, 觀望虛實]. 여기서 유래하여 호의불결은 의심이 많아서 어떤 일을 결행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술정기(述征記) | 이소(離騷) | 후한서(後漢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狐疑未決(호의미결)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狐 여우 호 | 疑 의심할 의, 안정할 응 | 不 아닐 불, 아닐 부 | 決 결단할 결, 빠를 혈 |
여우가 의심이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대하여 의심이 많아 결행(決行)하지 못함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진(晉)나라 때 곽연생(郭緣生)이 지은 술정기(述征記)의 이야기.
맹진(盟津)과 하진(河津)은 모두 황하(黃河)에 있는 나루터이다. 맹진은 지금의 중국 하남성 맹현(孟縣)에 있었으며, 하양도(河陽渡)라고도 하였다. 하진은 중국의 산서성 하진현(河津縣)에 있었다. 이 두 곳은 양자강보다는 좁고, 회하(淮河)나 제수(濟水)보다는 넓었다. 겨울이 되어 얼음이 얼면 두꺼운 곳은 몇 장(丈)에 달했으므로, 거마(車馬)들도 얼음 위로 통과할 수 있어 나룻배보다 편리하였다.
하지만 얼음이 막 얼기 시작할 때에, 사람들은 섣불리 건너지 못하고 먼저 여우들을 건너가게 하였다. 여우는 본시 영리한 동물로서 청각이 매우 뛰어났다. 여우는 얼음 위를 걸으면서도 이상한 소리가 나면 곧 얼음이 갈라지는 것을 예감하고 재빨리 강가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이렇게 여우가 강을 다 건너간 것을 확인하고나서야 안심하고 수레를 출발시켰던 것이다.
초(楚)나라의 굴원(屈原)은 '이소(離騷)'에서 "머뭇거리고 여우처럼 의심하는 내 마음이여, 스스로 가고파도 갈 수가 없네[心猶豫而狐疑兮, 欲自適而不可]"라고 읊었다.
또 《후한서(後漢書)》의 '유표전(劉表傳)'에 따르면, 원소(袁紹)가 조조(曺操)와 대치하고 있을 때 유표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이때, 유표는 여우처럼 의심하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한숭(韓嵩)을 조조에게 보내어 허와 실을 살피도록 하였다[表狐疑不斷, 乃遣嵩詣操, 觀望虛實]. 여기서 유래하여 호의불결은 의심이 많아서 어떤 일을 결행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술정기(述征記) | 이소(離騷) | 후한서(後漢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狐疑未決(호의미결)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囫圇呑棗 (홀륜탄조)
囫圇呑棗(홀륜탄조)
囫 온전할 홀 | 圇 완전할 륜 | 呑 삼킬 탄 | 棗 대추 조 |
대추를 통째로 삼킨다는 뜻으로, 자세히 분석하지도 않고 뜻도 모른 채 받아들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주자어류(朱子語類) 논어(論語) 16편에는 도리란 조리가 분명한 일이지 뭉뚱그린 것이 아니다(不是 一物) 라는 말이 있다.
옛날에 과거시험에 번번이 낙방한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연회를 베풀어 손님을 초대하여 자신이 계속 과거시험에 낙방하는 원인에 대한 조언을 구하였다. 그는 술과 밥을 배불리 먹고 나서 손님들에게 과일을 대접하고는, 자신도 대추를 여러 개 먹었다. 손님 중에 의술에 정통한 사람이 있어 말했다.
"배를 생으로 먹으면 치아에는 좋지만 비장(脾臟)에는 좋지 않고, 반대로 대추는 비장에는 좋지만 치아에 해를 줄 수 있습니다."
번번이 낙방하던 사람은 이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러면 대추를 씹지 않고 통째로 삼켜 버리면 치아를 보호할 수 있을 뿐더러 비장에도 유익할 것이다."
그리고는 대추를 집어 통째로 삼켰다.
그러자 의술에 정통한 사람은 그에게 평소 연습한 문장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가 가져온 몇 편의 글을 읽어 보고 나서 말했다.
"시는 운률이 맞지 않고 문장도 조리에 맞지 않으며, 전고(典故)를 잘못 사용한 곳도 있고 원래의 뜻을 잘못 이해한 것도 있다. 대추를 통째로 삼키 듯 공부를 하였으니 번번이 낙방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또 《벽암록(碧巖錄)》에는 조주화상(趙州和尙)의 선문답에 대하여 "지혜로운 자는 자세하게 곱씹어 삼킬 것이요, 지혜롭지 못한 자는 대추를 통째로 삼키 듯이 할 것이다[若是知有底人, 細嚼來嚥, 若是不知有底人, 一似渾崙呑個棗]"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홀륜탄조는 사물을 흐리멍텅하게 이해하거나, 학문을 하면서 깊이 이해하지 않고 넘어가거나, 분석과 검토를 거치지 않고 남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주자어류(朱子語類)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鶻圇呑棗(골륜탄조) 새가 대추씨를 맛도 모르고 통째로 삼킨다 | 囫圇呑棗(홀륜탄조)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囫 온전할 홀 | 圇 완전할 륜 | 呑 삼킬 탄 | 棗 대추 조 |
대추를 통째로 삼킨다는 뜻으로, 자세히 분석하지도 않고 뜻도 모른 채 받아들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주자어류(朱子語類) 논어(論語) 16편에는 도리란 조리가 분명한 일이지 뭉뚱그린 것이 아니다(不是 一物) 라는 말이 있다.
옛날에 과거시험에 번번이 낙방한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연회를 베풀어 손님을 초대하여 자신이 계속 과거시험에 낙방하는 원인에 대한 조언을 구하였다. 그는 술과 밥을 배불리 먹고 나서 손님들에게 과일을 대접하고는, 자신도 대추를 여러 개 먹었다. 손님 중에 의술에 정통한 사람이 있어 말했다.
"배를 생으로 먹으면 치아에는 좋지만 비장(脾臟)에는 좋지 않고, 반대로 대추는 비장에는 좋지만 치아에 해를 줄 수 있습니다."
번번이 낙방하던 사람은 이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러면 대추를 씹지 않고 통째로 삼켜 버리면 치아를 보호할 수 있을 뿐더러 비장에도 유익할 것이다."
그리고는 대추를 집어 통째로 삼켰다.
그러자 의술에 정통한 사람은 그에게 평소 연습한 문장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가 가져온 몇 편의 글을 읽어 보고 나서 말했다.
"시는 운률이 맞지 않고 문장도 조리에 맞지 않으며, 전고(典故)를 잘못 사용한 곳도 있고 원래의 뜻을 잘못 이해한 것도 있다. 대추를 통째로 삼키 듯 공부를 하였으니 번번이 낙방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또 《벽암록(碧巖錄)》에는 조주화상(趙州和尙)의 선문답에 대하여 "지혜로운 자는 자세하게 곱씹어 삼킬 것이요, 지혜롭지 못한 자는 대추를 통째로 삼키 듯이 할 것이다[若是知有底人, 細嚼來嚥, 若是不知有底人, 一似渾崙呑個棗]"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홀륜탄조는 사물을 흐리멍텅하게 이해하거나, 학문을 하면서 깊이 이해하지 않고 넘어가거나, 분석과 검토를 거치지 않고 남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주자어류(朱子語類)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鶻圇呑棗(골륜탄조) 새가 대추씨를 맛도 모르고 통째로 삼킨다 | 囫圇呑棗(홀륜탄조)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幸災樂禍 (행재요화)
幸災樂禍(행재요화)
幸 다행 행 | 災 재앙 재 | 樂 좋아할 요, 즐길 락(낙), 노래 악 | 禍 재앙 화 |
남이 재화(災禍)를 입음을 보고 좋아함
출전
顔氏家訓(안씨가훈)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낙화행재(樂禍幸災) | 幸災樂禍(행재낙화) | 幸災樂禍(행재락화) | 幸災樂禍(행재요화)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幸 다행 행 | 災 재앙 재 | 樂 좋아할 요, 즐길 락(낙), 노래 악 | 禍 재앙 화 |
남이 재화(災禍)를 입음을 보고 좋아함
출전
顔氏家訓(안씨가훈)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낙화행재(樂禍幸災) | 幸災樂禍(행재낙화) | 幸災樂禍(행재락화) | 幸災樂禍(행재요화)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幸災樂禍 (행재낙화)
幸災樂禍(행재낙화)
幸 다행 행 | 災 재앙 재 | 樂 좋아할 요, 즐길 락(낙), 노래 악 | 禍 재앙 화 |
'재앙을 다행으로 여기고 즐거워한다'라는 뜻으로, 남의 불행을 즐기는 이기적인 태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춘추시대의 경정(慶鄭)과 자퇴(子頹)와 관련된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좌전(左傳) 희공(僖公) 14년조의 이야기.
경정의 고사에서 유래된 '행재'와 자퇴의 고사에서 유래된 '낙화'가 합쳐진 고사성어이다.
춘추시대, 진(晋)나라에 내란이 발생하자 공자 이오(夷吾)는 진(秦)나라로 도망하였다. 이오는 귀국하기 전에 다섯 성을 진(秦)나라에 감사의 대가로 주기로 하였으나, 진(晋)의 군주, 즉 혜공(惠公)에 즉위하자 생각을 바꾸었다.
기원전 647년, 진(晉)나라 혜공(惠公) 때 큰 흉년이 들었다. 진(秦)나라 진혜왕은 지난 날의 일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대부 백리해(百里奚)의 권유로 진(晋)나라에 양식을 보내 주었다.
이듬해에는 거꾸로 진(秦)나라에 흉년이 들어 진(晉)나라로부터 식량을 사들이고자 하였으나, 진(晉)나라는 지난 해의 고마움을 잊은 듯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大夫)인 경정만은 혜공에게 말하면서, 식량을 팔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은혜를 저버리면 외로운 처지가 될 것이며, 남의 재앙을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어질지 못한 일입니다[背施無親, 幸災不仁]"
그러나 혜공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분노한 진(秦)나라는 결국 군사를 일으켜 진(晉)나라를 공격하였고, 혜공은 포로의 신세가 되었다. 이 고사는 《좌씨전(左氏傳)》의 '희공(僖公) 14년'조에 실려 있으며, '행재'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춘추시대 주(周)나라의 장왕(莊王)은 애첩과의 사이에서 자퇴라는 아들을 얻었다. 장왕이 죽은 뒤에 희왕에 이어 혜왕(惠王)이 왕위에 올랐다. 혜왕 때 대신들이 반란을 일으켜 혜왕을 몰아내고 자퇴를 꼭두각시 왕으로 내세웠다. 음탕하고 어리석은 자퇴는 매일 대신들과 음주가무에 빠져 지냈다.
정(鄭)나라의 려왕이 이 소식을 듣고 괵숙에게 "때를 가리지 않고 슬픔과 즐거움을 나타내면 재앙이 반드시 닥친다고 들었다. 지금 자퇴가 가무를 즐기느라 피곤한 줄을 모르는 것은 재앙을 즐기는 짓이다(哀樂失時, 殃咎必至. 今王子頹歌舞不倦, 樂禍也)"라고 말하였다. 이 고사는 《좌씨전》의 '장공(莊公) 20년'조에 실려 있으며, '낙화'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이 두 가지 고사에서 유래하여 행재낙화는 남의 불행을 함께 슬퍼하기는커녕 즐거워하는 그릇된 행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낙화행재(樂禍幸災)라고도 한다.
출전
좌씨전(左氏傳) 희공(僖公) 14년 | 좌씨전(左氏傳) 장공(莊公) 20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낙화행재(樂禍幸災) | 幸災樂禍(행재낙화) | 幸災樂禍(행재락화) | 幸災樂禍(행재요화)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幸 다행 행 | 災 재앙 재 | 樂 좋아할 요, 즐길 락(낙), 노래 악 | 禍 재앙 화 |
'재앙을 다행으로 여기고 즐거워한다'라는 뜻으로, 남의 불행을 즐기는 이기적인 태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춘추시대의 경정(慶鄭)과 자퇴(子頹)와 관련된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좌전(左傳) 희공(僖公) 14년조의 이야기.
경정의 고사에서 유래된 '행재'와 자퇴의 고사에서 유래된 '낙화'가 합쳐진 고사성어이다.
춘추시대, 진(晋)나라에 내란이 발생하자 공자 이오(夷吾)는 진(秦)나라로 도망하였다. 이오는 귀국하기 전에 다섯 성을 진(秦)나라에 감사의 대가로 주기로 하였으나, 진(晋)의 군주, 즉 혜공(惠公)에 즉위하자 생각을 바꾸었다.
기원전 647년, 진(晉)나라 혜공(惠公) 때 큰 흉년이 들었다. 진(秦)나라 진혜왕은 지난 날의 일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대부 백리해(百里奚)의 권유로 진(晋)나라에 양식을 보내 주었다.
이듬해에는 거꾸로 진(秦)나라에 흉년이 들어 진(晉)나라로부터 식량을 사들이고자 하였으나, 진(晉)나라는 지난 해의 고마움을 잊은 듯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大夫)인 경정만은 혜공에게 말하면서, 식량을 팔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은혜를 저버리면 외로운 처지가 될 것이며, 남의 재앙을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어질지 못한 일입니다[背施無親, 幸災不仁]"
그러나 혜공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분노한 진(秦)나라는 결국 군사를 일으켜 진(晉)나라를 공격하였고, 혜공은 포로의 신세가 되었다. 이 고사는 《좌씨전(左氏傳)》의 '희공(僖公) 14년'조에 실려 있으며, '행재'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춘추시대 주(周)나라의 장왕(莊王)은 애첩과의 사이에서 자퇴라는 아들을 얻었다. 장왕이 죽은 뒤에 희왕에 이어 혜왕(惠王)이 왕위에 올랐다. 혜왕 때 대신들이 반란을 일으켜 혜왕을 몰아내고 자퇴를 꼭두각시 왕으로 내세웠다. 음탕하고 어리석은 자퇴는 매일 대신들과 음주가무에 빠져 지냈다.
정(鄭)나라의 려왕이 이 소식을 듣고 괵숙에게 "때를 가리지 않고 슬픔과 즐거움을 나타내면 재앙이 반드시 닥친다고 들었다. 지금 자퇴가 가무를 즐기느라 피곤한 줄을 모르는 것은 재앙을 즐기는 짓이다(哀樂失時, 殃咎必至. 今王子頹歌舞不倦, 樂禍也)"라고 말하였다. 이 고사는 《좌씨전》의 '장공(莊公) 20년'조에 실려 있으며, '낙화'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이 두 가지 고사에서 유래하여 행재낙화는 남의 불행을 함께 슬퍼하기는커녕 즐거워하는 그릇된 행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낙화행재(樂禍幸災)라고도 한다.
출전
좌씨전(左氏傳) 희공(僖公) 14년 | 좌씨전(左氏傳) 장공(莊公) 20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낙화행재(樂禍幸災) | 幸災樂禍(행재낙화) | 幸災樂禍(행재락화) | 幸災樂禍(행재요화)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合浦珠還 (합포주환)
合浦珠還(합포주환)
合 합할 합/쪽문 합, 홉 홉 | 浦 개 포 | 珠 구슬 주 | 還 돌아올 환, 돌 선 |
합포(合浦)에 구슬이 다시 돌아왔다는 뜻으로, 지방(地方) 장관(長官)이 선정(善政)을 베풂을 이르는 말. 중국의 한(漢)나라 때 맹상(孟嘗)이라는 관리의 고사(故事)에서 유래.
후한서(後漢書) 맹상전(孟嘗傳)의 이야기.
중국 광서(廣西)지방의 합포(合浦)현은 지금의 광서장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합포현(合浦縣)의 북동쪽에 있는 지명이다. 합포는 농사는 잘 안 되었지만 바다에서 진주가 많이 채취되어, 주민들은 인근의 교지(交趾)와 진주를 교역하며 생활하였다. 합포에서 나는 진주는 둥글고 크며 빛깔이 순정하였으므로 사람들이 '합포주(合浦珠)'라고 부르며 귀하게 여겼다.
한(漢)나라 때, 합포군의 백성들은 모두 진주조개를 채취하여 생활을 하였으나, 합포에 부임한 관리들은 귀한 진주를 수탈하느라 주민들을 괴롭히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주민들은 진주를 캐 보아야 빼앗길 것이 뻔하므로 캐지 않게 되었고, 이리하여 채취량은 점점 줄어들었다. 양식을 바꿀 진주가 없어 주민들은 굶주림에 허덕였고, 굶어 죽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진주 조개들이 합포에서 살기 싫어 모두 월남땅으로 달아났네'라고 한탄하였다.
동한(東漢)의 순제(順帝)가 즉위하자, 곧 맹상을 합포의 태수로 파견하였다. 맹상은 먼저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불법행위를 엄단하여 진주 조개의 생산과 보호를 적극 지원하였다. 일년이 채 지나지 않아, 합포 바다에는 다시 진주 조개가 나타나고 생산량도 증가하였다. 이에 백성들은 모두 '떠났던 진주가 다시 돌아왔네[曾未踰歲, 去珠復還]'라고 말했다.
여기서 유래하여 합포주환은 물건이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오거나 떠나갔던 사람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 진귀한 물건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경우 등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순리열전(循吏列傳) | 후한서(後漢書) 맹상전(孟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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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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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合 합할 합/쪽문 합, 홉 홉 | 浦 개 포 | 珠 구슬 주 | 還 돌아올 환, 돌 선 |
합포(合浦)에 구슬이 다시 돌아왔다는 뜻으로, 지방(地方) 장관(長官)이 선정(善政)을 베풂을 이르는 말. 중국의 한(漢)나라 때 맹상(孟嘗)이라는 관리의 고사(故事)에서 유래.
후한서(後漢書) 맹상전(孟嘗傳)의 이야기.
중국 광서(廣西)지방의 합포(合浦)현은 지금의 광서장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합포현(合浦縣)의 북동쪽에 있는 지명이다. 합포는 농사는 잘 안 되었지만 바다에서 진주가 많이 채취되어, 주민들은 인근의 교지(交趾)와 진주를 교역하며 생활하였다. 합포에서 나는 진주는 둥글고 크며 빛깔이 순정하였으므로 사람들이 '합포주(合浦珠)'라고 부르며 귀하게 여겼다.
한(漢)나라 때, 합포군의 백성들은 모두 진주조개를 채취하여 생활을 하였으나, 합포에 부임한 관리들은 귀한 진주를 수탈하느라 주민들을 괴롭히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주민들은 진주를 캐 보아야 빼앗길 것이 뻔하므로 캐지 않게 되었고, 이리하여 채취량은 점점 줄어들었다. 양식을 바꿀 진주가 없어 주민들은 굶주림에 허덕였고, 굶어 죽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진주 조개들이 합포에서 살기 싫어 모두 월남땅으로 달아났네'라고 한탄하였다.
동한(東漢)의 순제(順帝)가 즉위하자, 곧 맹상을 합포의 태수로 파견하였다. 맹상은 먼저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불법행위를 엄단하여 진주 조개의 생산과 보호를 적극 지원하였다. 일년이 채 지나지 않아, 합포 바다에는 다시 진주 조개가 나타나고 생산량도 증가하였다. 이에 백성들은 모두 '떠났던 진주가 다시 돌아왔네[曾未踰歲, 去珠復還]'라고 말했다.
여기서 유래하여 합포주환은 물건이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오거나 떠나갔던 사람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 진귀한 물건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경우 등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순리열전(循吏列傳) | 후한서(後漢書) 맹상전(孟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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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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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汗流浹背 (한류협배)
汗流浹背(한류협배)
汗 땀 한, 현 이름 간 | 流 흐를 류(유) | 浹 두루 미칠 협, 적실 협 | 背 등 배, 배반할 배 |
'땀이 흘러 등을 적시다'라는 뜻으로, ①극도(極度)로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②힘든 일을 하여 땀으로 흠뻑 젖은 모습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사기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의 이야기.
서한(西漢)시기, 한문제(漢文帝)는 자신이 즉위할 수 있도록 도와 준 태위 주발(周勃)을 우승상으로, 진평(陳平)을 좌승상으로 삼았다.
문제는 국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자, 어느 날 조회에서 우승상 주발에게 물었다.
"일 년 동안 전국에서 옥사를 판결하는 건수가 얼마인가?"
주발은 또 모르겠다고 사죄하였는데, 식은땀이 흘러 등을 적셨으며 황제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였다[勃又謝不知, 汗出沾背, 愧不能對]. 문제가 진평에게 같은 질문을 하니, 진평은 그와 같은 세세한 수치는 실무자에게 물어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조리 있게 답변하였다. 주발은 자신의 기지나 응대하는 방법이 진평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는 병을 핑계로 승상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여기서 유래하여 한류협배는 식은땀이 등을 적실 정도로 몹시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또는 힘든 일을 하여 땀으로 흠뻑 젖은 모습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출전
사기(史記)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汗出沾背(한출첨배)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汗 땀 한, 현 이름 간 | 流 흐를 류(유) | 浹 두루 미칠 협, 적실 협 | 背 등 배, 배반할 배 |
'땀이 흘러 등을 적시다'라는 뜻으로, ①극도(極度)로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②힘든 일을 하여 땀으로 흠뻑 젖은 모습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사기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의 이야기.
서한(西漢)시기, 한문제(漢文帝)는 자신이 즉위할 수 있도록 도와 준 태위 주발(周勃)을 우승상으로, 진평(陳平)을 좌승상으로 삼았다.
문제는 국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자, 어느 날 조회에서 우승상 주발에게 물었다.
"일 년 동안 전국에서 옥사를 판결하는 건수가 얼마인가?"
주발은 또 모르겠다고 사죄하였는데, 식은땀이 흘러 등을 적셨으며 황제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였다[勃又謝不知, 汗出沾背, 愧不能對]. 문제가 진평에게 같은 질문을 하니, 진평은 그와 같은 세세한 수치는 실무자에게 물어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조리 있게 답변하였다. 주발은 자신의 기지나 응대하는 방법이 진평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는 병을 핑계로 승상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여기서 유래하여 한류협배는 식은땀이 등을 적실 정도로 몹시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또는 힘든 일을 하여 땀으로 흠뻑 젖은 모습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출전
사기(史記)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汗出沾背(한출첨배)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投筆從戎 (투필종융)
投筆從戎(투필종융)
投 던질 투, 머무를 두 | 筆 붓 필 | 從 좇을 종 | 戎 병장기 융, 오랑캐 융 |
붓을 던지고 창을 쫓는다는 뜻으로, 학문(學問)을 포기(抛棄)하고 전쟁터(戰爭-)로 나아감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중국의 한(漢)나라 때 반초(班超)의 고사(故事)에서 유래
동한(東漢) 초, 반고(班固)와 반초(班超) 형제가 있었다. 반고(班固)는 한서(漢書)를 편찬하였고, 반초는 그의 동생이다.
반초는 큰 뜻을 품고 있어 사소한 일에는 개의치 않았으나, 속으로는 효성스럽고 근신하는 인물이었다. 집에 있을 때는 항상 근면하였으며, 힘든 노동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또 언변이 뛰어났고, 여러 서적을 두루 섭렵하였다. 그의 형 반고가 교서랑(校書郞)에 임명되어 어머니와 함께 낙양(洛陽)에으로 이주하였으나, 집안은 여전히 가난하여 관청에서 문서를 베껴 주는 일을 하여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당시 북방의 흉노들은 끊임없이 한나라의 북쪽 변경을 침입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반초는 관청에서 문서를 베껴 쓰는 일을 하다가 문득 붓을 던져 버리고 탄식하며 말하기를(嘗輟業投筆嘆曰) "대장부로서 지략이 없다면 마땅히 부개자(傅介子)와 장건(張騫)을 본받아 이역(異域)에서 공을 세워 봉후(封侯)의 자리를 얻어야지 어찌 붓과 벼루 사이에서 오래 지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부개자와 장건은 모두 서역(西域)에 출사하여 공을 세운 사람들이다. 주위에 있던 동료들이 그의 말을 비웃자 반초는 "소인배가 어찌 장사(壯士)의 뜻을 알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이후 반초는 31년 동안이나 서역에 머물면서 흉노의 지배를 받던 서역 국가들을 정복하는 등 한나라의 세력을 확장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 고사는 《후한서(後漢書)》의 반초전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투필종융은 문인 또는 학자가 글쓰기나 학문을 포기하고 종군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반초(班超)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기필종융(棄筆從戎)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投 던질 투, 머무를 두 | 筆 붓 필 | 從 좇을 종 | 戎 병장기 융, 오랑캐 융 |
붓을 던지고 창을 쫓는다는 뜻으로, 학문(學問)을 포기(抛棄)하고 전쟁터(戰爭-)로 나아감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중국의 한(漢)나라 때 반초(班超)의 고사(故事)에서 유래
동한(東漢) 초, 반고(班固)와 반초(班超) 형제가 있었다. 반고(班固)는 한서(漢書)를 편찬하였고, 반초는 그의 동생이다.
반초는 큰 뜻을 품고 있어 사소한 일에는 개의치 않았으나, 속으로는 효성스럽고 근신하는 인물이었다. 집에 있을 때는 항상 근면하였으며, 힘든 노동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또 언변이 뛰어났고, 여러 서적을 두루 섭렵하였다. 그의 형 반고가 교서랑(校書郞)에 임명되어 어머니와 함께 낙양(洛陽)에으로 이주하였으나, 집안은 여전히 가난하여 관청에서 문서를 베껴 주는 일을 하여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당시 북방의 흉노들은 끊임없이 한나라의 북쪽 변경을 침입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반초는 관청에서 문서를 베껴 쓰는 일을 하다가 문득 붓을 던져 버리고 탄식하며 말하기를(嘗輟業投筆嘆曰) "대장부로서 지략이 없다면 마땅히 부개자(傅介子)와 장건(張騫)을 본받아 이역(異域)에서 공을 세워 봉후(封侯)의 자리를 얻어야지 어찌 붓과 벼루 사이에서 오래 지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부개자와 장건은 모두 서역(西域)에 출사하여 공을 세운 사람들이다. 주위에 있던 동료들이 그의 말을 비웃자 반초는 "소인배가 어찌 장사(壯士)의 뜻을 알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이후 반초는 31년 동안이나 서역에 머물면서 흉노의 지배를 받던 서역 국가들을 정복하는 등 한나라의 세력을 확장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 고사는 《후한서(後漢書)》의 반초전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투필종융은 문인 또는 학자가 글쓰기나 학문을 포기하고 종군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반초(班超)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기필종융(棄筆從戎)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彈冠相慶 (탄관상경)
彈冠相慶(탄관상경)
彈 탄알 탄 | 冠 갓 관 | 相 서로 상 | 慶 경사 경 |
벼슬하게 된 것을 서로 축하(祝賀)함을 비유한 말
한서(漢書) 왕길전(王吉傳)의 이야기.
서한(西漢) 시기, 낭야(琅야; 지금의 산동 제성)에 왕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였고, 품행이 단정하였다. 선제(宣帝)의 휘하에서 관리를 지내면서도 항상 밤 늦도록 책을 읽었다. 그의 아내는 매일 밤참으로 대추를 내놓았다.
어느 날, 왕길은 아내가 옆집 대추나무에서 그 대추를 몰래 따냈음을 알고, 그녀를 내쫓아버렸다. 이웃사람들은 그에게 아내를 다시 데려오라고 했지만, 그는 옆집 사람이 대추를 수확한 다음에 아내를 데려 오겠다고 했다. 왕길은 황제들에게 몇 차례 글을 올려 그들의 향락 행위와 조정의 일에 대하여 간언하였다. 이 일로 그는 큰 벼슬을 하게 되었는데, 그의 고향 친구인 공우는 이 소식을 듣고, 마침내 자기에게도 벼슬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자기 모자의 먼지를 툭툭 털면서 벼슬에 나아갈 준비를 하였다.
출전
한서(漢書) 권72 열전(列傳)제42 왕길전(王吉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활용도 ★ |
彈 탄알 탄 | 冠 갓 관 | 相 서로 상 | 慶 경사 경 |
벼슬하게 된 것을 서로 축하(祝賀)함을 비유한 말
한서(漢書) 왕길전(王吉傳)의 이야기.
서한(西漢) 시기, 낭야(琅야; 지금의 산동 제성)에 왕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였고, 품행이 단정하였다. 선제(宣帝)의 휘하에서 관리를 지내면서도 항상 밤 늦도록 책을 읽었다. 그의 아내는 매일 밤참으로 대추를 내놓았다.
어느 날, 왕길은 아내가 옆집 대추나무에서 그 대추를 몰래 따냈음을 알고, 그녀를 내쫓아버렸다. 이웃사람들은 그에게 아내를 다시 데려오라고 했지만, 그는 옆집 사람이 대추를 수확한 다음에 아내를 데려 오겠다고 했다. 왕길은 황제들에게 몇 차례 글을 올려 그들의 향락 행위와 조정의 일에 대하여 간언하였다. 이 일로 그는 큰 벼슬을 하게 되었는데, 그의 고향 친구인 공우는 이 소식을 듣고, 마침내 자기에게도 벼슬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자기 모자의 먼지를 툭툭 털면서 벼슬에 나아갈 준비를 하였다.
출전
한서(漢書) 권72 열전(列傳)제42 왕길전(王吉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 활용도 ★ |
出爾反爾 (출이반이)
出爾反爾(출이반이)
出 날 출, 단락 척 | 爾 너 이 | 反 돌이킬 반, 돌아올 반, 어려울 번, 삼갈 판 | 爾 너 이 |
자신(自身)에게서 나온 것은 자신(自身)에게로 돌아감
맹자 양혜왕(梁惠王) 하편에 나오는 이야기.
전국시대 추나라는 노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하였다. 추나라 목공은 자신의 잘못된 정치를 반성하지 않고, 병사들과 백성들이 결사적으로 싸우지 않아 패하였다면서 그들을 탓하였다. 가르침을 청하는 목공에게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흉년과 기근이 든 해에 추나라의 백성들 중에는 노약자들이 도랑에 빠져 죽고, 젊은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는데, 그 수효가 천명에 가깝습니다. 한편 관리들은 왕의 창고에는 곡식과 물자가 가득 차 있었는데도 이 사실을 왕께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윗사람이 교만하여 아랫사람들을 잔인하게 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증자는 경계할지라. 너에게서 나간 것은 너에게로 돌아오느니라[出乎爾者, 反乎爾者也]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자기들이 당한 것을 다시 갚았던 것이니, 왕께서는 그들을 탓하지 마십시오."
출전
孟子(맹자) 梁惠王(양혜왕)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出爾反爾(출이반이) | 出乎爾者反乎爾(출호이자반호이) | 出乎爾反乎爾(출호이반호이) | 因果應報(인과응보) | 因果報應(인과보응)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出 날 출, 단락 척 | 爾 너 이 | 反 돌이킬 반, 돌아올 반, 어려울 번, 삼갈 판 | 爾 너 이 |
자신(自身)에게서 나온 것은 자신(自身)에게로 돌아감
맹자 양혜왕(梁惠王) 하편에 나오는 이야기.
전국시대 추나라는 노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하였다. 추나라 목공은 자신의 잘못된 정치를 반성하지 않고, 병사들과 백성들이 결사적으로 싸우지 않아 패하였다면서 그들을 탓하였다. 가르침을 청하는 목공에게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흉년과 기근이 든 해에 추나라의 백성들 중에는 노약자들이 도랑에 빠져 죽고, 젊은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는데, 그 수효가 천명에 가깝습니다. 한편 관리들은 왕의 창고에는 곡식과 물자가 가득 차 있었는데도 이 사실을 왕께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윗사람이 교만하여 아랫사람들을 잔인하게 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증자는 경계할지라. 너에게서 나간 것은 너에게로 돌아오느니라[出乎爾者, 反乎爾者也]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자기들이 당한 것을 다시 갚았던 것이니, 왕께서는 그들을 탓하지 마십시오."
출전
孟子(맹자) 梁惠王(양혜왕)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出爾反爾(출이반이) | 出乎爾者反乎爾(출호이자반호이) | 出乎爾反乎爾(출호이반호이) | 因果應報(인과응보) | 因果報應(인과보응)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叱石成羊 (질석성양)
叱石成羊(질석성양)
叱 꾸짖을 질 | 石 돌 석 | 成 이룰 성 | 羊 양 양 |
바위를 양으로 바꾼다는 뜻으로 신기한 기술이나 괴이한 현상을 비유
To turn rocks into sheep by shouting
신선전(神仙傳)의 이야기.
옛날 황씨 성을 가진 형제가 있었다. 형의 이름은 황초기(黃初起)이고, 동생은 황초평(黃初平)이었다. 황초평이 14세가 되던 해, 하루는 산에서 양을 먹이고 있는데, 갑자기 한 도사(道士)가 나타났다. 도사는 초평을 제자로 삼고자 금화산의 한 동굴로 그를 데리고 갔다. 도사는 초평에게 신기한 재주를 가르쳐 주었다.
형인 황기초는 양치러 나간 동생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사방으로 찾아 나섰다. 몇일 후 산 꼭대기에 올라서야 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초평은 동생에게 물었다.
"양들은 모두 어디에 있느냐?"
황초평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동쪽 산 위에 있다고 대답했다. 형은 급히 양을 찾으러 달려 갔만, 그곳에는 양은 없고 흰 바위 하나만 있었다.
동생인 황초평은 자신을 원망하는 형과 함께 동쪽 산으로 갔다. 그는 흰 바위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양들아, 일어나라!"
흰 바위는 순식간에 수만 마리의 양들로 변하였다. 叱石成羊이란 신기한 기술이나 괴이한 현상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신선전(神仙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叱 꾸짖을 질 | 石 돌 석 | 成 이룰 성 | 羊 양 양 |
바위를 양으로 바꾼다는 뜻으로 신기한 기술이나 괴이한 현상을 비유
To turn rocks into sheep by shouting
신선전(神仙傳)의 이야기.
옛날 황씨 성을 가진 형제가 있었다. 형의 이름은 황초기(黃初起)이고, 동생은 황초평(黃初平)이었다. 황초평이 14세가 되던 해, 하루는 산에서 양을 먹이고 있는데, 갑자기 한 도사(道士)가 나타났다. 도사는 초평을 제자로 삼고자 금화산의 한 동굴로 그를 데리고 갔다. 도사는 초평에게 신기한 재주를 가르쳐 주었다.
형인 황기초는 양치러 나간 동생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사방으로 찾아 나섰다. 몇일 후 산 꼭대기에 올라서야 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초평은 동생에게 물었다.
"양들은 모두 어디에 있느냐?"
황초평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동쪽 산 위에 있다고 대답했다. 형은 급히 양을 찾으러 달려 갔만, 그곳에는 양은 없고 흰 바위 하나만 있었다.
동생인 황초평은 자신을 원망하는 형과 함께 동쪽 산으로 갔다. 그는 흰 바위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양들아, 일어나라!"
흰 바위는 순식간에 수만 마리의 양들로 변하였다. 叱石成羊이란 신기한 기술이나 괴이한 현상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신선전(神仙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酒酸不售 (주산불수)
酒酸不售(주산불수)
酒 술 주 | 酸 실 산 | 不 아닐 불 | 售 팔 수 |
술이 시어지면 팔리지 않음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우상(外儲說右上)편의 이야기.
춘추시기, 송(宋)나라에 술을 만들어 파는 장씨(莊氏)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되를 속이지도 않고 손님에게도 매우 친절했으며, 술 빚는 솜씨 또한 훌륭했다. 뿐만 아니라 술집임을 알리는 깃발까지 높이 세워 두었다. 그러나 술이 팔리지 않아서 언제나 쉬어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장씨는 이를 이상하게 여겨 양천(楊-)이라는 유식한 노인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노인의 답은 이러했다.
"바로 당신 집의 개가 너무 사납기 때문이오."
장씨는 술장사와 개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양천이라는 노인은 다시 설명하였다.
"사나운 개가 술 사러 오는 사람들을 보고 짖어대고, 특히 아이들이 술 심부름을 왔다가 놀라 달아나는 판인데, 누가 감히 술을 사러 오겠소? 그러니 술이 시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오."
酒酸不袋란 경영 방법이 좋지 않거나 일처리가 잘못 되었음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우상(外儲說右上)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狗猛酒酸(구맹주산) | 狗惡酒酸(구악주산)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酒 술 주 | 酸 실 산 | 不 아닐 불 | 售 팔 수 |
술이 시어지면 팔리지 않음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우상(外儲說右上)편의 이야기.
춘추시기, 송(宋)나라에 술을 만들어 파는 장씨(莊氏)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되를 속이지도 않고 손님에게도 매우 친절했으며, 술 빚는 솜씨 또한 훌륭했다. 뿐만 아니라 술집임을 알리는 깃발까지 높이 세워 두었다. 그러나 술이 팔리지 않아서 언제나 쉬어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장씨는 이를 이상하게 여겨 양천(楊-)이라는 유식한 노인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노인의 답은 이러했다.
"바로 당신 집의 개가 너무 사납기 때문이오."
장씨는 술장사와 개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양천이라는 노인은 다시 설명하였다.
"사나운 개가 술 사러 오는 사람들을 보고 짖어대고, 특히 아이들이 술 심부름을 왔다가 놀라 달아나는 판인데, 누가 감히 술을 사러 오겠소? 그러니 술이 시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오."
酒酸不袋란 경영 방법이 좋지 않거나 일처리가 잘못 되었음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우상(外儲說右上)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狗猛酒酸(구맹주산) | 狗惡酒酸(구악주산)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一飯千金 (일반천금)
一飯千金(일반천금)
一 한 일 | 飯 밥 반 | 千 일천 천, 밭두둑 천, 그네 천 | 金 쇠 금, 성씨 김 |
한 끼의 식사(食事)에 천금같은 은혜(恩惠)가 들어 있다는 뜻으로, 조그만 은혜(恩惠)에 크게 보답(報答)함을 이르는 말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열전의 이야기.
한신(韓新)이 무명의 서민이었을 때, 집안이 가난한데다가 별 재간도 없어서 항상 남에게 얹혀 먹고 사는 신세였다. 이렇다보니 그를 싫어 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일찍이 남창(南昌)의 한 마을의 촌장 집에서 자주 밥을 얻어 먹었는데, 여러 달씩이나 신세를 진적도 있었다. 한신을 귀찮게 여기던 촌장의 아내는 아침 밥을 지어 몰래 먹어 치우곤 하였다.
어느 날, 한신은 회수(淮水)에서 낚시질을 하다가, 마침 물가에서 무명을 표백하고 있던 노파들을 보았다. 그들 중 한 노파가 굶주린 한신의 모습을 보고 수십 일동안 그에게 밥을 먹여 주었다. 이에 한신은 크게 감동하여 언젠가 반드시 후하게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한신은 초왕(楚王)에 봉하여진 뒤, 고향 회음에 와서 자신에게 밥을 주었던 노파를 찾아 천금을 주고, 촌장에게는 일백전의 돈을 주었다.
출전
사기(史記) 淮陰侯傳(회음후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일반은(一飯恩) | 일반지은(一飯之恩) | 일반천금(一飯千金)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一 한 일 | 飯 밥 반 | 千 일천 천, 밭두둑 천, 그네 천 | 金 쇠 금, 성씨 김 |
한 끼의 식사(食事)에 천금같은 은혜(恩惠)가 들어 있다는 뜻으로, 조그만 은혜(恩惠)에 크게 보답(報答)함을 이르는 말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열전의 이야기.
한신(韓新)이 무명의 서민이었을 때, 집안이 가난한데다가 별 재간도 없어서 항상 남에게 얹혀 먹고 사는 신세였다. 이렇다보니 그를 싫어 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일찍이 남창(南昌)의 한 마을의 촌장 집에서 자주 밥을 얻어 먹었는데, 여러 달씩이나 신세를 진적도 있었다. 한신을 귀찮게 여기던 촌장의 아내는 아침 밥을 지어 몰래 먹어 치우곤 하였다.
어느 날, 한신은 회수(淮水)에서 낚시질을 하다가, 마침 물가에서 무명을 표백하고 있던 노파들을 보았다. 그들 중 한 노파가 굶주린 한신의 모습을 보고 수십 일동안 그에게 밥을 먹여 주었다. 이에 한신은 크게 감동하여 언젠가 반드시 후하게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한신은 초왕(楚王)에 봉하여진 뒤, 고향 회음에 와서 자신에게 밥을 주었던 노파를 찾아 천금을 주고, 촌장에게는 일백전의 돈을 주었다.
출전
사기(史記) 淮陰侯傳(회음후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일반은(一飯恩) | 일반지은(一飯之恩) | 일반천금(一飯千金)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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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一鳴驚人 (일명경인)
一鳴驚人(일명경인)
一 한 일 | 鳴 울 명 | 驚 놀랄 경 | 人 사람 인 |
한 번 울면 사람을 놀래킨다는 뜻으로, 한 번 시작(始作)하면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程度)의 대사업(大事業)을 이룩함을 이르는 말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중국 전국시대 齊(제)나라의 重臣(중신) 순우곤은 학자이면서도 익살과 辯舌(변설)로 소문난 인물. 학문은 雜學(잡학)에 지나지 않는다는 혹평을 듣기도 했지만 孟子(맹자)와 논전을 벌일 만큼 상당한 데가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몸집도 보잘것 없고 천한 신분 출신이지만 출세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섬긴 威王(위왕)은 30세가 채 안되는 젊은 나이에 즉위하였다. 그러나 그러나 그는 국사를 등한시 하여 매일 주연을 벌였으며, 이로써 밤을 새는 일 또한 잦았다. 조정(朝廷)에 나갈 시각에야 겨우 잠자리에 들기도 하여, 신하들도 왕을 깨우는 것을 삼갔다. 이렇게 3년이 지나자 자연히 국정은 혼란스러웠고, 국경 분쟁도 생겨 나라의 꼴이 안팎으로 엉망이 되어갔다. 뜻있는 신하들은 이대로 두면 나라가 망할 것을 염려했지만, 감히 왕에게 간(諫)할 엄두는 내지 못하였다.
이때 대부(大夫) 순우곤이 왕을 배알하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나라에는 큰 새가 한 마리 있습니다. 3년간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무슨 새인지 아십니까?” 왕은 순우곤의 말뜻을 알았다. 왕은 순우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새가 비록 날지 않지만, 한 번 날면 하늘을 가린다. 또한 우는 법이 없지만, 한 번 울면 천하가 놀란다[此鳥不飛則已 一飛沖天 不鳴則已 一鳴驚人].” 순우곤이 물러나자, 왕은 술잔을 내던졌다.
다음날 왕은 신하들과 함께 국내를 순시하였다. 먼저 즉묵(卽墨)에 갔다. 논밭이 잘 경작되어 있었으며, 작황도 순조로워 백성의 얼굴이 여유로웠다. 왕은 즉묵의 대부를 불러, “이만큼 잘하는데 그대를 비난하는 소리가 높은 것은, 내 측근에게 뇌물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고 1만 호의 봉토를 주었다. 다음에 간 아(阿)는 논밭이 황폐하고 백성의 얼굴 또한 어두웠다. 왕이 대부를 불러 꾸짖었다. “이런데도 그대를 칭찬하는 소리가 내 귀가 따갑도록 들리는 것은 내 측근에게 뇌물을 보내고 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돌아온 왕은 전국 72현의 현령을 소집하여 신상필벌을 하였다. 특히 아의 대부는 그 죄를 물어 솥에 삶아 죽이는 팽형(烹刑)에 처하고, 그를 칭찬한 자도 같은 죄로 처단하였다. 그 뒤로 제나라는 잘 다스려지고 백성의 생활도 안정되었다. 또 위(魏)나라를 공격해 토지를 할양받았다. ‘일명경인’이란 여기서 나온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龍駒鳳雛(용구봉추) | 三年不飛又不鳴(삼년불비우불명) | 三年不飛不鳴(삼년불비불명) | 三年不蜚不鳴(삼년불비불명) | 三年不蜚(삼년불비) | 不飛不鳴(불비불명) | 不蜚不鳴(불비불명)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一 한 일 | 鳴 울 명 | 驚 놀랄 경 | 人 사람 인 |
한 번 울면 사람을 놀래킨다는 뜻으로, 한 번 시작(始作)하면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程度)의 대사업(大事業)을 이룩함을 이르는 말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중국 전국시대 齊(제)나라의 重臣(중신) 순우곤은 학자이면서도 익살과 辯舌(변설)로 소문난 인물. 학문은 雜學(잡학)에 지나지 않는다는 혹평을 듣기도 했지만 孟子(맹자)와 논전을 벌일 만큼 상당한 데가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몸집도 보잘것 없고 천한 신분 출신이지만 출세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섬긴 威王(위왕)은 30세가 채 안되는 젊은 나이에 즉위하였다. 그러나 그러나 그는 국사를 등한시 하여 매일 주연을 벌였으며, 이로써 밤을 새는 일 또한 잦았다. 조정(朝廷)에 나갈 시각에야 겨우 잠자리에 들기도 하여, 신하들도 왕을 깨우는 것을 삼갔다. 이렇게 3년이 지나자 자연히 국정은 혼란스러웠고, 국경 분쟁도 생겨 나라의 꼴이 안팎으로 엉망이 되어갔다. 뜻있는 신하들은 이대로 두면 나라가 망할 것을 염려했지만, 감히 왕에게 간(諫)할 엄두는 내지 못하였다.
이때 대부(大夫) 순우곤이 왕을 배알하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나라에는 큰 새가 한 마리 있습니다. 3년간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무슨 새인지 아십니까?” 왕은 순우곤의 말뜻을 알았다. 왕은 순우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새가 비록 날지 않지만, 한 번 날면 하늘을 가린다. 또한 우는 법이 없지만, 한 번 울면 천하가 놀란다[此鳥不飛則已 一飛沖天 不鳴則已 一鳴驚人].” 순우곤이 물러나자, 왕은 술잔을 내던졌다.
다음날 왕은 신하들과 함께 국내를 순시하였다. 먼저 즉묵(卽墨)에 갔다. 논밭이 잘 경작되어 있었으며, 작황도 순조로워 백성의 얼굴이 여유로웠다. 왕은 즉묵의 대부를 불러, “이만큼 잘하는데 그대를 비난하는 소리가 높은 것은, 내 측근에게 뇌물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고 1만 호의 봉토를 주었다. 다음에 간 아(阿)는 논밭이 황폐하고 백성의 얼굴 또한 어두웠다. 왕이 대부를 불러 꾸짖었다. “이런데도 그대를 칭찬하는 소리가 내 귀가 따갑도록 들리는 것은 내 측근에게 뇌물을 보내고 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돌아온 왕은 전국 72현의 현령을 소집하여 신상필벌을 하였다. 특히 아의 대부는 그 죄를 물어 솥에 삶아 죽이는 팽형(烹刑)에 처하고, 그를 칭찬한 자도 같은 죄로 처단하였다. 그 뒤로 제나라는 잘 다스려지고 백성의 생활도 안정되었다. 또 위(魏)나라를 공격해 토지를 할양받았다. ‘일명경인’이란 여기서 나온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龍駒鳳雛(용구봉추) | 三年不飛又不鳴(삼년불비우불명) | 三年不飛不鳴(삼년불비불명) | 三年不蜚不鳴(삼년불비불명) | 三年不蜚(삼년불비) | 不飛不鳴(불비불명) | 不蜚不鳴(불비불명)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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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一丘之貉 (일구지학)
一丘之貉(일구지학)
一 한 일 | 丘 언덕 구 | 之 어조사 지, -의 지 | 狢 오소리 학 |
'한 언덕의 오소리'라는 뜻으로, 구별하기 어려운 같은 부류 또는 한통속의 나쁜 무리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한(漢)나라 선제(宣帝) 때의 양운과 관련된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한서(漢書) 양창전(楊敞傳)의 이야기.
양운은 한(漢)나라 소제(昭帝) 때 승상을 지냈던 양창의 둘째 아들이며 사기(史記)의 저자인 사마천(司馬遷)의 외손자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젊은 나이에 조정에서 요직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의 결점 또한 용납하지 않았으며, 젊은 나이에 큰 명성을 누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한 태도를 드러냄으로써 남의 미움을 사기도 하였다.
양운은 특히 선제가 가장 총애하는 태복(太僕) 벼슬의 대장락(戴長樂)과 사이가 나빴다. 한번은 대장락이 누군가로부터 고소를 당하자 양운을 의심하였다. 그래서 대장락도 양운을 비방하는 글을 선제에게 올렸는데, 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양운은 흉노에서 항복한 자들로부터 선우(單于)가 살해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못난 군주는 대신(大臣)이 나라를 다스릴 방책을 잘 계획하여도 채용하지 않으니 스스로 자기 몸을 둘 곳을 없게 만든다. 이는 마치 진(秦)나라 때 소인을 기용하고 충신을 주살하여 멸망에 이른 것과 같으니, 대신을 신임하였더라면 진나라가 지금까지 존속되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어리석은 군주는 한 언덕에 모여 사는 오소리와 다를 바 없다[古與今如一丘之狢]'라고 하였습니다. 양운은 망령되게도 망국의 예를 들어 현재를 비방하였으니 신하된 도리가 아닙니다."
이를 본 선제를 화를 내며 양운을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양운과 대장락 모두 면직시켰다. 양운은 고향으로 돌아와,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답답함을 호소했는데, 이 사실이 한나라 선제에게 발각되어, 결국 허리를 절단하는 형벌에 처해졌다.
여기서 유래하여 일구지학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서로 다를 바 없는 똑같은 부류, 한통속의 나쁜 무리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한서(漢書) 양창전(楊敞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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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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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一 한 일 | 丘 언덕 구 | 之 어조사 지, -의 지 | 狢 오소리 학 |
'한 언덕의 오소리'라는 뜻으로, 구별하기 어려운 같은 부류 또는 한통속의 나쁜 무리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한(漢)나라 선제(宣帝) 때의 양운과 관련된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한서(漢書) 양창전(楊敞傳)의 이야기.
양운은 한(漢)나라 소제(昭帝) 때 승상을 지냈던 양창의 둘째 아들이며 사기(史記)의 저자인 사마천(司馬遷)의 외손자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젊은 나이에 조정에서 요직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의 결점 또한 용납하지 않았으며, 젊은 나이에 큰 명성을 누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한 태도를 드러냄으로써 남의 미움을 사기도 하였다.
양운은 특히 선제가 가장 총애하는 태복(太僕) 벼슬의 대장락(戴長樂)과 사이가 나빴다. 한번은 대장락이 누군가로부터 고소를 당하자 양운을 의심하였다. 그래서 대장락도 양운을 비방하는 글을 선제에게 올렸는데, 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양운은 흉노에서 항복한 자들로부터 선우(單于)가 살해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못난 군주는 대신(大臣)이 나라를 다스릴 방책을 잘 계획하여도 채용하지 않으니 스스로 자기 몸을 둘 곳을 없게 만든다. 이는 마치 진(秦)나라 때 소인을 기용하고 충신을 주살하여 멸망에 이른 것과 같으니, 대신을 신임하였더라면 진나라가 지금까지 존속되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어리석은 군주는 한 언덕에 모여 사는 오소리와 다를 바 없다[古與今如一丘之狢]'라고 하였습니다. 양운은 망령되게도 망국의 예를 들어 현재를 비방하였으니 신하된 도리가 아닙니다."
이를 본 선제를 화를 내며 양운을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양운과 대장락 모두 면직시켰다. 양운은 고향으로 돌아와,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답답함을 호소했는데, 이 사실이 한나라 선제에게 발각되어, 결국 허리를 절단하는 형벌에 처해졌다.
여기서 유래하여 일구지학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서로 다를 바 없는 똑같은 부류, 한통속의 나쁜 무리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한서(漢書) 양창전(楊敞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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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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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一髮千鈞 (일발천균)
一髮千鈞(일발천균)
一 한 일 | 髮 터럭 발 | 千 일천 천 | 鈞 서른 근 균 |
한 가닥의 머리털로 천균, 즉 만 근(斤)이나 되는 무거운 물건을 매어 끈다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일을 이르는 말.
한서(漢書) 매승(枚乘)전의 이야기.
서한(西漢) 시기, 매승이라는 유명한 문인이 있었는데, 그는 사부(辭賦)에 능했다. 그는 오왕(吳王) 유비(劉 )의 휘하에서 낭중(朗中)을 지내며, 오왕이 모반하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하나의 비유를 들어 오왕에게 모반을 포기하도록 권고하였다.
한 가닥의 머리카락에 매달린 삼만근 무게의 물건이 위는 그 끝을 모를 높은 곳에 매달려 있고, 아랫부분은 바닥이 없는 깊은 못에 드리워져 있다고 합시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상황이 극히 위태롭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만약 윗부분이 끊긴다면 다시 이을 수 없으며, 아랫부분이 깊은 못으로 떨어진다면 다시 끌어올릴 수 없습니다. 왕께서 모반하시려는 것은 바로 한 가닥의 머리카락에 매다린 것처럼 위험한 일입니다.
충고를 받아 들이지 않자, 매승은 오나라를 떠나 양(梁)나라로 가서 양효왕의 문객이 되었다. 그후 오왕은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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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一髮引千鈞(일발인천균)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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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一 한 일 | 髮 터럭 발 | 千 일천 천 | 鈞 서른 근 균 |
한 가닥의 머리털로 천균, 즉 만 근(斤)이나 되는 무거운 물건을 매어 끈다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일을 이르는 말.
한서(漢書) 매승(枚乘)전의 이야기.
서한(西漢) 시기, 매승이라는 유명한 문인이 있었는데, 그는 사부(辭賦)에 능했다. 그는 오왕(吳王) 유비(劉 )의 휘하에서 낭중(朗中)을 지내며, 오왕이 모반하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하나의 비유를 들어 오왕에게 모반을 포기하도록 권고하였다.
한 가닥의 머리카락에 매달린 삼만근 무게의 물건이 위는 그 끝을 모를 높은 곳에 매달려 있고, 아랫부분은 바닥이 없는 깊은 못에 드리워져 있다고 합시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상황이 극히 위태롭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만약 윗부분이 끊긴다면 다시 이을 수 없으며, 아랫부분이 깊은 못으로 떨어진다면 다시 끌어올릴 수 없습니다. 왕께서 모반하시려는 것은 바로 한 가닥의 머리카락에 매다린 것처럼 위험한 일입니다.
충고를 받아 들이지 않자, 매승은 오나라를 떠나 양(梁)나라로 가서 양효왕의 문객이 되었다. 그후 오왕은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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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一髮引千鈞(일발인천균)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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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餘桃啗君 (여도담군)
餘桃啗君(여도담군)
餘 남을 여 | 桃 복숭아 도 | 啗 먹일 담 | 君 임금 군 |
먹다 남은 복숭아를 임금에게 먹인다는 뜻으로, 처음에는 좋게 보여 사랑 받던 것이 나중에는 도리어 화근(禍根)이 됨을 이르는 말
한비자(韓非子) 세난(說難)편의 이야기.
춘추시기, 위(衛)나라에 미자하(彌子瑕)라는 미소년이 있어 영공(靈公)의 총애를 받았다.
미자하(彌子瑕)는 어느 날 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허락도 없이 왕 전용 수레를 타고 황궁을 빠져 나왔다. 당시 위나라의 법에는 함부로 왕의 수레를 탄 사람은 발목을 자르는 월형에 처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국왕은 용서하였다.
"그는 효자여서 어머니를 위하여 발을 잘리는 형벌도 잊어버렸구나."
그 후, 어느 날 미자하는 국왕과 함께 과수원을 거닐다가, 그 맛이 너무 좋아서 먹다만 복숭아 반쪽을 왕에게 줬다. 이에 왕은 칭찬하였다.
"반쪽 복숭아를 먹으면서도 나를 끔찍하게 생각하는구나. 자신이 먹을 단맛을 잊고서 나를 주다니."
하지만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왕은 미자하의 모든 행동이 눈에 거슬리기만 하였다. 결국 왕은 그를 꾸짖으며, 처벌했다.
"이놈은 언젠가 몰래 내 수레를 탔고, 또 먹다가 남은 복숭아를 나에게 먹였다."
餘桃啖君이란 사랑과 미움, 기쁨과 분노가 늘 변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한비자(韓非子) 세난(說難)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여도지죄(餘桃之罪) | 餘桃啗君(여도담군) | 이여도담군(以餘桃啗君)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餘 남을 여 | 桃 복숭아 도 | 啗 먹일 담 | 君 임금 군 |
먹다 남은 복숭아를 임금에게 먹인다는 뜻으로, 처음에는 좋게 보여 사랑 받던 것이 나중에는 도리어 화근(禍根)이 됨을 이르는 말
한비자(韓非子) 세난(說難)편의 이야기.
춘추시기, 위(衛)나라에 미자하(彌子瑕)라는 미소년이 있어 영공(靈公)의 총애를 받았다.
미자하(彌子瑕)는 어느 날 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허락도 없이 왕 전용 수레를 타고 황궁을 빠져 나왔다. 당시 위나라의 법에는 함부로 왕의 수레를 탄 사람은 발목을 자르는 월형에 처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국왕은 용서하였다.
"그는 효자여서 어머니를 위하여 발을 잘리는 형벌도 잊어버렸구나."
그 후, 어느 날 미자하는 국왕과 함께 과수원을 거닐다가, 그 맛이 너무 좋아서 먹다만 복숭아 반쪽을 왕에게 줬다. 이에 왕은 칭찬하였다.
"반쪽 복숭아를 먹으면서도 나를 끔찍하게 생각하는구나. 자신이 먹을 단맛을 잊고서 나를 주다니."
하지만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왕은 미자하의 모든 행동이 눈에 거슬리기만 하였다. 결국 왕은 그를 꾸짖으며, 처벌했다.
"이놈은 언젠가 몰래 내 수레를 탔고, 또 먹다가 남은 복숭아를 나에게 먹였다."
餘桃啖君이란 사랑과 미움, 기쁨과 분노가 늘 변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한비자(韓非子) 세난(說難)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여도지죄(餘桃之罪) | 餘桃啗君(여도담군) | 이여도담군(以餘桃啗君)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量體裁衣 (양체재의)
量體裁衣(양체재의)
量 헤아릴 양(량) | 體 몸 체 | 裁 마를 재 | 衣 옷 의 |
몸에 맞게 옷을 고친다는 뜻으로, 일의 처한 형편(形便)에 따라 적합(適合)하게 일을 처리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
남제서(南齊書) 장융전(張融傳)의 이야기.
남북조 시대, 남제(南齊)에 글재주가 좋은 장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가 사광(思光)으로, 소도성(蕭道成:훗날 남제의 태조)의 막하로 들어가 벼슬이 사도우장사(司徒右長史)에 이르렀다. 그는 비록 요직에 있었지만 평소 생활은 검소하였으며, 항상 오래되고 낡은 의복을 입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나라 태조는 사람을 시켜 자신이 입던 옷을 장융에게 보냈다. 당시 황제가 자신이 입던 옷을 하사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상이었다. 제나라 태조는 옷을 보내면서 친서(親書)도 함께 보냈는데, 태조는 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이 입고 다니는 옷이 낡은 것을 보니 참으로 검소하게 생활하는 것을 알 수 있소. 그러나 경과 같은 고위 관리가 남루한 옷을 입고 다니니 조정의 명망이 훼손될까 염려스럽고, 백성들로부터 과인이 경을 천하게 대우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소. 지금 오래된 옷을 한 벌 보내니, 오래되었다고는 하지만 새옷보다 나을 것이오. 짐이 입던 옷인데, 경의 몸에 맞게 줄여서 고쳐 놓도록 하였소[是吾所著, 已令裁減稱卿之體]."
여기서 유래하여 양체재의는 몸에 잘 맞도록 옷을 지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제 상황이나 처한 형편에 따라 적합하게 일을 처리하여야 함을 의미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남제서(南齊書) 장융전(張融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稱體裁衣(칭체재의)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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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量 헤아릴 양(량) | 體 몸 체 | 裁 마를 재 | 衣 옷 의 |
몸에 맞게 옷을 고친다는 뜻으로, 일의 처한 형편(形便)에 따라 적합(適合)하게 일을 처리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
남제서(南齊書) 장융전(張融傳)의 이야기.
남북조 시대, 남제(南齊)에 글재주가 좋은 장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가 사광(思光)으로, 소도성(蕭道成:훗날 남제의 태조)의 막하로 들어가 벼슬이 사도우장사(司徒右長史)에 이르렀다. 그는 비록 요직에 있었지만 평소 생활은 검소하였으며, 항상 오래되고 낡은 의복을 입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나라 태조는 사람을 시켜 자신이 입던 옷을 장융에게 보냈다. 당시 황제가 자신이 입던 옷을 하사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상이었다. 제나라 태조는 옷을 보내면서 친서(親書)도 함께 보냈는데, 태조는 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이 입고 다니는 옷이 낡은 것을 보니 참으로 검소하게 생활하는 것을 알 수 있소. 그러나 경과 같은 고위 관리가 남루한 옷을 입고 다니니 조정의 명망이 훼손될까 염려스럽고, 백성들로부터 과인이 경을 천하게 대우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소. 지금 오래된 옷을 한 벌 보내니, 오래되었다고는 하지만 새옷보다 나을 것이오. 짐이 입던 옷인데, 경의 몸에 맞게 줄여서 고쳐 놓도록 하였소[是吾所著, 已令裁減稱卿之體]."
여기서 유래하여 양체재의는 몸에 잘 맞도록 옷을 지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제 상황이나 처한 형편에 따라 적합하게 일을 처리하여야 함을 의미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남제서(南齊書) 장융전(張融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稱體裁衣(칭체재의)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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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羊頭狗肉 (양두구육)
羊頭狗肉(양두구육)
羊頭狗肉[yángtóugǒuròu]
羊 양 양 | 頭 머리 두 | 狗 개 구 | 肉 고기 육, 둘레 유 |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懸羊頭賣狗肉(현양두매구육)”의 줄임말. ①겉은 훌륭해 보이나 속은 그렇지 못한 것②겉과 속이 서로 다름③말과 행동(行動)이 일치(一致)하지 않음
crying out wine and selling vinegar, using a better name to sell inferior goods, all outside show, making an extravagant advertisement
안자춘추(晏子春秋) 내편(內篇)의 이야기.
춘추(春秋)시대 제(齊)나라 靈公(영공)은 좀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다름아니라 예쁜 여자에게 남자 옷을 입혀놓고 觀賞(관상)하는 일인데 궁중에 있는 미인들을 붙잡아 男裝(남장)을 시키곤 좋아했다. 이같은 작태는 궁중에만 머물지 않고 민간에까지 퍼져 제나라 거리 거리에는 남장한 미녀들로 넘쳐났다. 이에 놀란 영공이 궁중밖에서는 여자가 남장을 못하도록 엄한 禁令(금령)을 내렸다. 그러나 자신은 여전히 남장여인을 보며 즐겼으니 금령은 있으나 마나였다. 그런데도 영공은 금령이 지켜지지 않는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답답해진 영공은 그 이유를 재상인 晏子(안자)에게 물어보았다. 안자의 대답은 이러했다.
"전하께서는 궁중에서만 여자에게 남장을 하게 허락하시면서 백성들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양의 머리를 문에다 내걸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猶懸牛首于門而賣馬肉于內也] 전하께서는 어째서 궁중에서만 남장하는 것을 금하지 않습니까. 궁중에서도 금한다면 밖에서 남장하는 여자는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영공은 안자의 말을 듣고 궁중에서도 남장을 못하도록 했다.그러자 한 달이 못되어 제나라 전국에서 남장하는 여자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본시 소머리와 말고기였던 것이 후에는 양머리(羊頭)와 개고기(狗肉)로 바뀌었다.
출전
안자춘추(晏子春秋) 내편(內篇) | 항언록(恒言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羊頭狗肉(양두구육) | 懸羊頭賣狗肉(현양두매구육) | 懸羊頭賣馬脯(현양두매마포) | 현우수매마육(懸牛首賣馬肉) |
表裏不同(표리부동) | 羊質虎皮(양질호피) | 笑中有劍(소중유검) | 笑面虎(소면호) | 笑裏藏刀(소리장도) | 似而非者(사이비자) | 似而非(사이비) | 似是而非(사시이비) | 面從腹背(면종복배) | 同床異夢(동상이몽) | 同床各夢(동상각몽) | 口有蜜腹有劒(구유밀복유검) | 口蜜腹劍(구밀복검)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Cry up wine and sell vinegar
포도주 대신 식초 팔기
중요도 ★
羊頭狗肉[yángtóugǒuròu]
羊 양 양 | 頭 머리 두 | 狗 개 구 | 肉 고기 육, 둘레 유 |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懸羊頭賣狗肉(현양두매구육)”의 줄임말. ①겉은 훌륭해 보이나 속은 그렇지 못한 것②겉과 속이 서로 다름③말과 행동(行動)이 일치(一致)하지 않음
crying out wine and selling vinegar, using a better name to sell inferior goods, all outside show, making an extravagant advertisement
안자춘추(晏子春秋) 내편(內篇)의 이야기.
춘추(春秋)시대 제(齊)나라 靈公(영공)은 좀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다름아니라 예쁜 여자에게 남자 옷을 입혀놓고 觀賞(관상)하는 일인데 궁중에 있는 미인들을 붙잡아 男裝(남장)을 시키곤 좋아했다. 이같은 작태는 궁중에만 머물지 않고 민간에까지 퍼져 제나라 거리 거리에는 남장한 미녀들로 넘쳐났다. 이에 놀란 영공이 궁중밖에서는 여자가 남장을 못하도록 엄한 禁令(금령)을 내렸다. 그러나 자신은 여전히 남장여인을 보며 즐겼으니 금령은 있으나 마나였다. 그런데도 영공은 금령이 지켜지지 않는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답답해진 영공은 그 이유를 재상인 晏子(안자)에게 물어보았다. 안자의 대답은 이러했다.
"전하께서는 궁중에서만 여자에게 남장을 하게 허락하시면서 백성들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양의 머리를 문에다 내걸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猶懸牛首于門而賣馬肉于內也] 전하께서는 어째서 궁중에서만 남장하는 것을 금하지 않습니까. 궁중에서도 금한다면 밖에서 남장하는 여자는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영공은 안자의 말을 듣고 궁중에서도 남장을 못하도록 했다.그러자 한 달이 못되어 제나라 전국에서 남장하는 여자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본시 소머리와 말고기였던 것이 후에는 양머리(羊頭)와 개고기(狗肉)로 바뀌었다.
출전
안자춘추(晏子春秋) 내편(內篇) | 항언록(恒言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羊頭狗肉(양두구육) | 懸羊頭賣狗肉(현양두매구육) | 懸羊頭賣馬脯(현양두매마포) | 현우수매마육(懸牛首賣馬肉) |
表裏不同(표리부동) | 羊質虎皮(양질호피) | 笑中有劍(소중유검) | 笑面虎(소면호) | 笑裏藏刀(소리장도) | 似而非者(사이비자) | 似而非(사이비) | 似是而非(사시이비) | 面從腹背(면종복배) | 同床異夢(동상이몽) | 同床各夢(동상각몽) | 口有蜜腹有劒(구유밀복유검) | 口蜜腹劍(구밀복검)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Cry up wine and sell vinegar
포도주 대신 식초 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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蕭規曹隨 (소규조수)
蕭規曹隨(소규조수)
蕭 쓸쓸할 소, 맑은대쑥 소 | 規 법 규 | 曹 무리 조, 성씨 조 | 隨 따를 수, 게으를 타 |
'소하(蕭何:?∼BC 193)가 제정한 법규를 조참(曹參:?∼BC 190)이 따른다'라는 뜻으로, 예전부터 사람들이 쓰던 제도(制度)를 그대로 따르거나 이어 나가는 것을 이르는 말
진(秦)나라 말, 소하(蕭何)는 한(漢)나라의 고조(高祖) 유방(劉邦:재위 BC 202∼BC 195)을 도와 반진(反秦)의 의거를 일으켰다. 그는 한신(韓信:?∼BC 196), 장량(張良:?∼BC 168), 조참과 함께 한나라의 개국공신으로 유방이 천하를 평정하고 한 왕조를 세우는데 공을 세웠으며, 흔히들 한신(韓信), 장량(張良) 등과 더불어 한흥삼걸(漢興三杰) 이라 부른다.
기원전 206년, 유방이 진(秦)나라의 수도 셴양(咸陽)을 공격할 때, 병사들은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납치하는데 정신이 없었지만, 소하는 상부(相府)로 달려가서 지도와 법령 등 중요한 문건들을 수습했다.
훗날, 소하는 재상(宰相)이 되자, 이미 확보한 진나라의 문헌과 자료들을 토대로 전국의 지리나 풍토, 민심 등을 파악하여, 한나라의 법령과 제도를 제정하였다.
당시 유방의 수하에는 조참(曹參)이라는 모사(謀士)가 있었다. 그는 유방의 동향 사람으로서 소하와도 관계가 매우 좋았으므로, 사람들은 두 사람을 소조(蕭曹)라고 불렀다. 소하의 추천으로 승상된 조참은 모든 정책과 법령을 고치지 않고, 소하가 결정해 놓은 것을 따라[蕭規曹隨] 계속 집행하였다.
전한(前漢) 말기의 학자 양웅(楊雄:BC 53∼AD 18)이 지은 《법언(法言)》 연건편(淵騫篇)에는 "소하가 만들어 정한 법규를 조참이 그대로 따랐다[蕭也規 曹也隨]"라고 기록되어 있다.
출전
법언(法言)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蕭 쓸쓸할 소, 맑은대쑥 소 | 規 법 규 | 曹 무리 조, 성씨 조 | 隨 따를 수, 게으를 타 |
'소하(蕭何:?∼BC 193)가 제정한 법규를 조참(曹參:?∼BC 190)이 따른다'라는 뜻으로, 예전부터 사람들이 쓰던 제도(制度)를 그대로 따르거나 이어 나가는 것을 이르는 말
진(秦)나라 말, 소하(蕭何)는 한(漢)나라의 고조(高祖) 유방(劉邦:재위 BC 202∼BC 195)을 도와 반진(反秦)의 의거를 일으켰다. 그는 한신(韓信:?∼BC 196), 장량(張良:?∼BC 168), 조참과 함께 한나라의 개국공신으로 유방이 천하를 평정하고 한 왕조를 세우는데 공을 세웠으며, 흔히들 한신(韓信), 장량(張良) 등과 더불어 한흥삼걸(漢興三杰) 이라 부른다.
기원전 206년, 유방이 진(秦)나라의 수도 셴양(咸陽)을 공격할 때, 병사들은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납치하는데 정신이 없었지만, 소하는 상부(相府)로 달려가서 지도와 법령 등 중요한 문건들을 수습했다.
훗날, 소하는 재상(宰相)이 되자, 이미 확보한 진나라의 문헌과 자료들을 토대로 전국의 지리나 풍토, 민심 등을 파악하여, 한나라의 법령과 제도를 제정하였다.
당시 유방의 수하에는 조참(曹參)이라는 모사(謀士)가 있었다. 그는 유방의 동향 사람으로서 소하와도 관계가 매우 좋았으므로, 사람들은 두 사람을 소조(蕭曹)라고 불렀다. 소하의 추천으로 승상된 조참은 모든 정책과 법령을 고치지 않고, 소하가 결정해 놓은 것을 따라[蕭規曹隨] 계속 집행하였다.
전한(前漢) 말기의 학자 양웅(楊雄:BC 53∼AD 18)이 지은 《법언(法言)》 연건편(淵騫篇)에는 "소하가 만들어 정한 법규를 조참이 그대로 따랐다[蕭也規 曹也隨]"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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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언(法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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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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