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斗酒百篇 (두주백편, dǒujiǔbǎipiān)

斗酒百篇(두주백편)

斗酒百篇(dǒujiǔbǎipiān)

斗 말 두,싸울 두,싸울 투,싸울 각 | 酒 술 주 | 百 일백 백 | 篇 책 편 |


술을 좋아하고 시를 잘 짓다.


말술을 마시는 동안에 시 백 편을 쓰다. 두보의 《飮中八仙歌》에서 “李白斗酒诗百篇,长安市上酒家眠”라는 시구에서 나온 말로, 이백이 술 마신 후에 시를 잘 지었음을 칭찬한 말임.

출전: 飮中八仙歌


관련 한시

飮中八仙歌(음중팔선가) |

男兒須讀五車書 (남아수독오거서)

男兒須讀五車書(남아수독오거서)

두보(杜甫)가 한 말로, 남자라면 다섯 수레 정도의 책은 읽어야 한다는 뜻.

擒賊擒王 (금적금왕, qínzéiqínwáng)

擒賊擒王(금적금왕)

擒贼擒王(qínzéiqínwáng)

擒 사로잡을 금 | 賊 도둑 적 | 擒 사로잡을 금 | 王 임금 왕 |


적을 사로잡으려면 우두머리부터 잡아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 또는 일을 함에 있어 핵심을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도 사용. 三十六計(삼십육계) 攻戰計(공전계) 제18계.


중국 성당시대(盛唐時代)의 시인 두보(杜甫:712∼770)의 《출새곡(出塞曲)》 에 실린 〈전출새 6수(前出塞六首)〉에 나오는 말이다.

挽弓當挽强
用箭當用長
射人先射馬
擒賊先擒王

활을 당기려면 강하게 당기고
화살을 쏘려면 멀리 쏘아야 한다
사람을 쏘려면 먼저 그 말을 쏘고
적을 잡으려면 먼저 그 왕을 잡아라

적의 장수를 잡으면 적의 전체 병력을 무너뜨릴 수 있으므로 싸움에서는 우두머리를 먼저 잡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신당서(新唐書)》 〈장순전(張巡傳)〉에는 다음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나라 숙종(肅宗:711∼762) 때 장순(張巡)과 윤자기(尹子奇)의 군대가 전투를 하였는데, 장순의 군대가 적을 공격하여 혼란에 빠뜨리고 장순은 윤자기를 죽이려 하였으나 얼굴을 몰랐다.

그래서 장순은 군사들에게 볏짚으로 만든 화살을 쏘게 하여 윤자기의 군사가 장순 군대의 화살이 모두 없어졌다고 윤자기에게 알리는 것을 보고 윤자기를 찾아낼 수 있었다. 장순은 부하 장수에게 진짜 화살을 쏘게 했는데, 윤자기의 왼쪽 눈을 맞히고 윤자기의 군대는 참패하였다. 장수를 잡으려면 먼저 그 말을 쏜다는 뜻으로 전투에서의 전술을 말한다.

擒賊擒王(금적금왕)은 三十六計(삼십육계) 攻戰計(공전계) 제18계에도 나온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적의 주력을 부수고 수령을 취하면 그 집단은 무너진다. 이는 용을 땅으로 끌어내는 것과 같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摧其堅,奪其魁。以解其體。龍戰在野,其道窮也。]"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사례를 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魏將 등애가 면죽을 함락하고, 제갈첨 부자가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後主 유선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위군은 금방이라도 성도로 들이닥칠 거리까지 와 있었다. 후주(後主) 유선은 급히 문무백관들을 모아 회의를 하나 의견들이 모두 갈팡질팡하여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남만으로 물러나자는 의견, 吳로 망명하자는 의견, 魏에 그냥 항복하자는 의견들이 난립하여 후주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튿날, 후주는 초주의 말을 따라 魏에 항복하려 하였다. 그 때 병풍 뒤에서 한 사람이 나오며 초주를 크게 꾸짖었다.

"구차하게 살아남으려는 이 썩어빠진 선비 놈아! 어찌 사직에 관한 일을 놓고 터무니 없는 말을 늘어놓느냐? 자고로 항복하는 천자가 어디 있더냐!"

후주가 보니 이는 다섯째 아들 북지왕 劉諶(유심)이었다. 후주의 일곱 아들 중 오직 유심만이 퐁명하고 영민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나약하고 착하기만 했다. 후주가 유심에게 말했다.

"지금 대신들이 모두 항복해야 한다고 하는데, 너는 온 성을 피로 물들일 생각이냐?"

"지난날 선제(유비)께서 살아계실 때 초주가 국정에 간여했사옵니까? 이제와서 주제넘게 국가대사를 논하면서 입을 열자마자 허튼 소리를 늘어놓으니 온당치 못하옵니다. 신이 보건데 성도에는 아직 수만 명의 군사가 있고, 강유가 거느리는 전군이 모두 검각에 있사옵니다. 만일 위군이 궁궐로 침입하려 한다는 것을 알면 반드시 구원하러 올 터이니 안팎에서 공격하면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옵니다. 어찌 썩어빠진 선비의 말만 듣고 가벼이 선제의 기업을 버리려 하시옵니까?"

그러나 후주는 끝내 유심의 말을 듣지 않고 위군에 항복하기로 하고, 항기를 올린다. 다음날 등애가 이끄는 위군이 몰려와서, 후주 및 문관과 무관들에게 벼슬을 내렸다. 그리고는 검각에 있는 강유에게 귀순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검각에서 이 소식을 들은 강유는 크게 놀라 할 말을 잃었다. 장하의 뭇 장수들은 이 말을 듣자 일제히 피가 거꾸로 치솟아 올라 눈을 부릅뜨고 어금니를 깨문채 수염과 머리털을 곤두세우고 칼을 뽑아 바윗돌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우리는 죽기로 싸우고 있는데 어째서 먼저 항복한다는 말이냐!"

강유는 원래 위나라의 장수였으나 제갈량에게 감복하여 제갈량의 제자가 되었다. 그 후 제갈량의 모든 병법을 전수받고, 제갈량의 사후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북벌을 이어가고 있었다. 위군을 이끄는 등애는 강유와 정면대결을 피하기 위해 검각을 지나지 않고 곧장 성도로 가서 後主(유선)에게 항복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금적금왕'이라 할 것이다.

이에 강유는 군사들을 달래고 한가지 계책을 생각해낸다.

강유는 즉시 위장 종회에게 항복했다. 종회는 강유를 흠모하고 있었기에 상빈으로 예우했다. 그리고 종회는 즉시 화살을 꺾으며 맹세하고 강유와 의형제를 맺었다. 그 때 위나라 조정에서는 등애와 종회의 공훈처리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이에 종회는 모함받는 등애를 붙잡고, 천하를 향한 야심을 드러냈다. 강유는 종회를 꾀어 촉을 재건할 계획을 세우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천명을 다하고 만다.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강유를 무시하고 항복해버린 '樂不思蜀(낙불사촉)'의 유선 때문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천수를 다하고 만 것이다.


관련 한시

전출새 6수(前出塞六首) |


관련 고사성어

樂不思蜀(낙불사촉) : 魏에 항복한 후주 유선이 사마소가 베푼 연회 자리에서, 사마소가 '서촉 생각이 나지 않소?' 라고 묻자 유선이 '이곳이 너무 즐거워 서촉의 생각은 나지 않나이다'라고 대답한 일에서 유래된 고사.

古稀 (고희)

古稀(고희)

杜甫 詩의 人生七十古來稀에서 나온 말로 일흔 살을 가리킴.

蓋棺事定 (개관사정)

蓋棺事定(개관사정)

盖棺事定 (gàiguānshìdìng)

蓋 덮을 개 | 棺 널 관 | 事 일 사 | 定 정할 정 |


사람의 일이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뜻. 또는 관 뚜껑을 덮고 일을 정(定)한다는 뜻으로, 사람은 죽고 난 뒤에라야 올바르고 정당(正當)한 평가(評價)를 할 수 있다는 말.


원래 관의 뚜껑을 덮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오늘의 충신이 내일은 역적이 되고, 이제까지 걸식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는 수도 있다. 따라서 사람의 운명이란 죽은 후에라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두보(杜甫)가 쓰촨성[四川省] 동쪽 쿠이저우[夔州]의 깊은 산골로 낙배해 있을 때 친구의 아들인 소혜(蘇徯)가 유배되어 그곳에 와서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두보가 보다 못하여 지어 보낸 《군불견(君不見)》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길 가에 버려진 못을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부러져 넘어진 오동나무를/ 백년되어 죽은 나무가 거문고로 만들어지며 / 조그만 물웅덩이 속에도 큰 용이 숨어 있을 수 있네. / 장부는 관 뚜껑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결정되는 법이네(蓋棺事始定) / 그대는 다행히도 아직 늙지 않았거늘.....

이 시를 읽은 소혜는 후에 그곳을 떠나 호남 땅에서 설객(說客)이 되었다고 한다.

蓋棺事定이란 죽어서 관의 뚜껑을 덮은 후에라야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결정된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죽은 이의 업적을 찬양하기도 하고, 생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盖棺论定 (개관론정, gàiguānlùndìng)한 사람의 일생의 공과(功過)와 시비(是非)는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최종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 사람이 죽기 전에는 그 사람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내릴수 없다.
Only when a man is dead can he be judged.


관련 한시

君不見 (군불견) 杜甫 (두보) |


杜甫 (두보) | 君不見 (군불견) |

家書萬金 (가서만금)

가서만금(家書萬金)

家 집 가, 여자 고 | 書 글 서 | 萬 일만 만 | 金 쇠 금, 성씨 김 |

타국(他國)이나 타향(他鄕)에 살 때는 고향(故鄕) 가족(家族)의 편지(便紙)가 더없이 반갑고, 그 소식(消息)의 값이 황금(黃金) 만 냥보다 더 소중(所重)하다는 말. 가서저만금(家書抵萬金)의 준말


여행 중에 가인(家人)으로부터 서신을 받으면 그 기쁨이 만금을 얻는 데 해당한다.

시성(詩聖)인 당(唐)나라 두보(杜甫 712∼770, 字:子美, 號:少陵)의 '춘망(春望)'이라는 시(詩)에 나오는 구절.

國破山河在 (국파산하재)
春城草木深 (춘성초목심)
感時和賤淚 (감시화천루)
恨別鳥驚心 (한별조경심)

烽火連三月 (봉화연삼월)
家書抵萬金 (가서저만금)
白頭搔更短 (백두소경단)
渾欲不勝簪 (혼욕불승잠)

나라는 망했어도 산하는 남아있고,
성에 봄이 오니 초목이 우거졌구나.
시절을 느껴 꽃에 눈물을 뿌리고,
이별을 한스러워하니 새 소리에도 놀란다.

봉화불은 삼 개월이나 계속 피고 있고,
집에서 온 편지는 만금에 해당하는구나.
대머리 긁어서 더욱 빠지고,
상투를 하고자 하나 비녀를 이기지 못하는구나.

유명한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붙잡혀서 이듬해(757년) 탈주했다. 수도 장안(長安)에 구속된 몸이 되었을 때, 전란으로 심하게 황폐해진 장안의 봄을 아파해서 만든 저 유명한 시 가운데 한 구절. 家書는 아내 혹은 가족으로부터의 편지.


출전

두보 춘망시(春望詩)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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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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