挺身而出(정신이출)
挺身而出[tǐngshēn'érchū]
挺 빼어날 정, 곧을 정 | 身 몸 신 | 而 말 이을 이 | 出 날 출, 단락 척 |
'몸을 펴 앞장서서 나아가다'라는 뜻으로, 어떤 일에 용감하게 앞장서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당(唐)나라의 무장 경군홍(敬君弘) 등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당(唐)나라의 개국황제인 당 고조(高祖) 이연(李淵)에게는 건성(建成), 세민(世民), 원길(元吉) 등 세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인 건성은 태자(太子)에 옹립되고 세민은 진왕(秦王)에, 원길은 제왕(齊王)에 봉하여졌다. 그러나 세민은 부친을 도와 당나라 건국에 많은 공을 세웠기 때문에, 그의 위엄과 명망은 세 아들들 가운데에서 가장 높았다.
태자 건성은 제위계승을 세민에게 빼앗기게 될까 두려워 원길과 연합하여 그를 죽이기로 하였다. 이를 눈치챈 세민은 심복인 방현령(房玄齡)과 대책을 상의하여 선수를 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현무문(玄武門)에 복병을 두고 건성이 입조(入朝)하기를 기다려 살해하고 원길도 함께 죽였다.
그러자 건성과 원길의 부하인 풍립(馮立)과 사숙방(謝叔方)이 정예 병사를 규합하여 세민을 공격하였다. 이때 경군홍이 현무문을 지키고 있었는데, 쌍방 간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구당서(舊唐書)》의 '경군홍전'에 따르면, 경군홍은 앞장서서 전투에 나섰다[君弘挺身出戰].
경군홍은 주위에서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사태의 변화를 살펴보고 병력이 모이기를 기다려 전열을 이룬 뒤에 싸워도 늦지 않다"라고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용맹스럽게 진군하여 적과 싸웠다. 나중에 태종(太宗)이 된 세민이 그의 공을 치하하며 좌둔위대장군(左屯衛大將軍)으로 삼았다.
또 《구오대사(舊五代史)》에 따르면, 당경사(唐景思)가 박주의 방어사로 있을 때 비적들이 성을 포위하여 공격하였다. 당경사는 전력으로 항거하였으나 며칠 뒤에 성이 함락되었다. 당경사는 앞장서서 나아가 싸웠으며[景思挺身而出], 인근 고을에 사람을 보내 수백 명의 원군을 얻어 마침내 비적들을 몰아내고 성을 되찾았다.
한편, 송(宋)나라 때 소동파(蘇東坡)가 지은 《유후론(留侯論)》에는 "필부는 모욕을 당하면 칼을 뽑아들고 일어나 온몸을 던져 싸우는데, 이는 참된 용기라고 할 수 없다[匹夫見辱, 拔劍而起, 挺身而鬪, 此不足爲勇也]"라는 말이 있다. 이러한 고사들에서 유래하여 정신이출은 어떤 위난한 일을 당하였을 때 용감하게 앞장서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舊唐書(구당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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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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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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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郞自大 (야랑자대)
夜郞自大(야랑자대)
夜 밤 야, 고을 이름 액 | 郞 사내 랑(낭) | 自 스스로 자 | 大 클 대, 큰 대, 클 태, 클 다 |
야랑이 스스로 크다한다는 뜻으로, 중국(中國) 한(漢)나라 때의 오랑캐 중(中)에서 야랑국이 가장 세력(勢力)이 강(强)하여 오만(傲慢)하였으므로, 용렬(庸劣)하거나 우매(愚昧)한 무리 중(中)에서 세력(勢力)이 있어 잘난 체하고 뽐냄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사기(史記)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의 이야기.
전국 시대가 종언을 고한 뒤 진(秦)나라가 통일 시대가 되고 다시 그 진나라가 망하여 한(漢)나라가 서고 나서도 중국 서남 지방은 뚜렷한 주인도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그것은 한나라가 북방의 강력한 오랑캐 흉노(匈奴)에 대처하느라 그쪽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지역의 부족들은 각각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그 10여 개의 집단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것이 귀주(貴州)의 야랑국(夜郞國)으로서 그 임금 다동(多同)은 야랑후(夜郞侯)를 자처하고 있었다. 아량국의 크기는 한나라의 현(縣)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다동은 자기 세력권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야랑국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인 줄 알았다. 그래서 어느 날 부하들을 이끌고 영지를 순시하다가 짐짓 이렇게 물었다.
“너희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
다동의 심중을 꿰뚫어보고 있는 부하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야 전하께서 다스리고 계신 이 야랑국이지 어디겠습니까.”
흐뭇해진 다동은 눈 앞의 높은 산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세상에 저 산보다 더 높은 산이 있을까?”
“저렇게 높은 산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윽고 흐르는 물가에 다다랐다. 강이라 하기에는 뭣하고 큰 시내라고 함이 적당한 물이었다. 다동이 다시 물었다.
“이 물보다 더 넓고 긴 물이 있을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런 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아첨의 소리를 곧이곧대로 들은 다동은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의 임금이라 생각하고는 기고만장했다.
한나라 무제(武帝) 때인 기원전 122년, 인도(印度)로 가던 사신 일행이 야랑국에 들렀다. 오랫동안 중국과 사실상 교류가 끊어진 상태였으므로, 다동은 중국의 소식을 알 수 있는 기회다 싶어 반겨 맞아 환대했다. 한창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 다동이 사신을 보고 물었다.
“공께서 보시기에 이 나라가 어떤 것 같소? 중국과 견주어 어느 쪽이 크다고 생각하오?”
사신은 기가 막혀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 한나라에는 군(郡)이 수십 개나 되고, 그 군 하나만 해도 이곳 야랑국보다 몇 배는 큽니다.”
그 말을 들은 다동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고, 지금까지 자기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는가를 깨달았다. 그는 나중에 남월(南粤)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 진압에 적극 협력한 공으로 무제로부터 왕의 작호를 하사받고 완전한 한나라 신하가 되었다.
출전
사기(史記)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坐井觀天(좌정관천) | 井中之蛙(정중지와) | 井中蛙(정중와) | 井中視星(정중시성) | 井中觀天(정중관천) | 井底之蛙(정저지와) | 井底蛙(정저와) | 坎中之蛙(감중지와)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夜 밤 야, 고을 이름 액 | 郞 사내 랑(낭) | 自 스스로 자 | 大 클 대, 큰 대, 클 태, 클 다 |
야랑이 스스로 크다한다는 뜻으로, 중국(中國) 한(漢)나라 때의 오랑캐 중(中)에서 야랑국이 가장 세력(勢力)이 강(强)하여 오만(傲慢)하였으므로, 용렬(庸劣)하거나 우매(愚昧)한 무리 중(中)에서 세력(勢力)이 있어 잘난 체하고 뽐냄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사기(史記)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의 이야기.
전국 시대가 종언을 고한 뒤 진(秦)나라가 통일 시대가 되고 다시 그 진나라가 망하여 한(漢)나라가 서고 나서도 중국 서남 지방은 뚜렷한 주인도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그것은 한나라가 북방의 강력한 오랑캐 흉노(匈奴)에 대처하느라 그쪽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지역의 부족들은 각각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그 10여 개의 집단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것이 귀주(貴州)의 야랑국(夜郞國)으로서 그 임금 다동(多同)은 야랑후(夜郞侯)를 자처하고 있었다. 아량국의 크기는 한나라의 현(縣)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다동은 자기 세력권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야랑국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인 줄 알았다. 그래서 어느 날 부하들을 이끌고 영지를 순시하다가 짐짓 이렇게 물었다.
“너희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
다동의 심중을 꿰뚫어보고 있는 부하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야 전하께서 다스리고 계신 이 야랑국이지 어디겠습니까.”
흐뭇해진 다동은 눈 앞의 높은 산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세상에 저 산보다 더 높은 산이 있을까?”
“저렇게 높은 산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윽고 흐르는 물가에 다다랐다. 강이라 하기에는 뭣하고 큰 시내라고 함이 적당한 물이었다. 다동이 다시 물었다.
“이 물보다 더 넓고 긴 물이 있을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런 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아첨의 소리를 곧이곧대로 들은 다동은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의 임금이라 생각하고는 기고만장했다.
한나라 무제(武帝) 때인 기원전 122년, 인도(印度)로 가던 사신 일행이 야랑국에 들렀다. 오랫동안 중국과 사실상 교류가 끊어진 상태였으므로, 다동은 중국의 소식을 알 수 있는 기회다 싶어 반겨 맞아 환대했다. 한창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 다동이 사신을 보고 물었다.
“공께서 보시기에 이 나라가 어떤 것 같소? 중국과 견주어 어느 쪽이 크다고 생각하오?”
사신은 기가 막혀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 한나라에는 군(郡)이 수십 개나 되고, 그 군 하나만 해도 이곳 야랑국보다 몇 배는 큽니다.”
그 말을 들은 다동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고, 지금까지 자기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는가를 깨달았다. 그는 나중에 남월(南粤)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 진압에 적극 협력한 공으로 무제로부터 왕의 작호를 하사받고 완전한 한나라 신하가 되었다.
출전
사기(史記)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坐井觀天(좌정관천) | 井中之蛙(정중지와) | 井中蛙(정중와) | 井中視星(정중시성) | 井中觀天(정중관천) | 井底之蛙(정저지와) | 井底蛙(정저와) | 坎中之蛙(감중지와)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怒髮衝冠 (노발충관)
怒髮衝冠(노발충관)
怒 성낼 노(로) | 髮 터럭 발 | 衝 찌를 충, 뒤얽힐 종 | 冠 갓 관 |
노한 머리털이 관을 추켜 올린다는 뜻으로, 몹시 성낸 모양(模樣)을 이르는 말
중국 전한(前漢)의 역사가인 사마 천(司馬遷:BC 145?∼BC 86?)이 저술한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오는 이야기.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이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는 귀중한 보물을 갖게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은 화씨벽을 차지하려는 욕심에 혜문왕에게 진나라의 15성(城)과 바꾸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혜문왕은 화씨벽을 주더라도 15성을 얻지 못한채 속을 것만 같고, 그렇다고 주지 않으면 진나라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 걱정되었다.
혜문왕은 인상여를 사신으로 임명하여 진나라에 보냈다. 소양왕이 큰 나라의 위세를 부리며 성을 내주지 않고 인상여가 가져간 화씨지벽을 빼앗으려 하자 인상여는 진나라 소양왕의 무례한 행동을 크게 꾸짖었는데, '매우 분노하여 머리카락이 곤두서 갓이 벗어질 정도였다[怒髮上衝冠]'고 전해진다.
송나라 흥화군(興化軍) 선유(仙遊) 사람인 임예(林豫)는 신종(神宗) 희녕(熙寧) 9년(1076) 진사(進士)가 되었다. 일찍이 통리군(通利軍)을 맡아 소식(蘇軾) 형제와 친하게 사귀었다. 소철(蘇轍)이 폄적(貶謫)되자 그가 사(詞)를 지어 보냈는데, 그 안에 “화난 머리카락이 관을 뚫었고, 비장한 마음은 돌에 비긴만 하네.[怒髮衝冠 壯心比石]”란 구절이 있었다.
출전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怒發大發(노발대발) | 怒髮上衝冠(노발상충관) | 노발충천(怒髮衝天)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怒 성낼 노(로) | 髮 터럭 발 | 衝 찌를 충, 뒤얽힐 종 | 冠 갓 관 |
노한 머리털이 관을 추켜 올린다는 뜻으로, 몹시 성낸 모양(模樣)을 이르는 말
중국 전한(前漢)의 역사가인 사마 천(司馬遷:BC 145?∼BC 86?)이 저술한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오는 이야기.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이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는 귀중한 보물을 갖게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은 화씨벽을 차지하려는 욕심에 혜문왕에게 진나라의 15성(城)과 바꾸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혜문왕은 화씨벽을 주더라도 15성을 얻지 못한채 속을 것만 같고, 그렇다고 주지 않으면 진나라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 걱정되었다.
혜문왕은 인상여를 사신으로 임명하여 진나라에 보냈다. 소양왕이 큰 나라의 위세를 부리며 성을 내주지 않고 인상여가 가져간 화씨지벽을 빼앗으려 하자 인상여는 진나라 소양왕의 무례한 행동을 크게 꾸짖었는데, '매우 분노하여 머리카락이 곤두서 갓이 벗어질 정도였다[怒髮上衝冠]'고 전해진다.
송나라 흥화군(興化軍) 선유(仙遊) 사람인 임예(林豫)는 신종(神宗) 희녕(熙寧) 9년(1076) 진사(進士)가 되었다. 일찍이 통리군(通利軍)을 맡아 소식(蘇軾) 형제와 친하게 사귀었다. 소철(蘇轍)이 폄적(貶謫)되자 그가 사(詞)를 지어 보냈는데, 그 안에 “화난 머리카락이 관을 뚫었고, 비장한 마음은 돌에 비긴만 하네.[怒髮衝冠 壯心比石]”란 구절이 있었다.
출전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怒發大發(노발대발) | 怒髮上衝冠(노발상충관) | 노발충천(怒髮衝天)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隔世之感 (격세지감)
隔世之感(격세지감)
隔 사이 뜰 격 | 世 인간 세, 대 세 | 之 갈 지 | 感 느낄 감, 한할 감 |
아주 바뀐 다른 세상(世上)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世代)와 같이 많은 변화(變化)가 있었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be astonished[amazed] at how much things have changed
출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隔世感(격세감) | 滄桑之變(창상지변) | 滄海桑田(창해상전)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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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隔 사이 뜰 격 | 世 인간 세, 대 세 | 之 갈 지 | 感 느낄 감, 한할 감 |
아주 바뀐 다른 세상(世上)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世代)와 같이 많은 변화(變化)가 있었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be astonished[amazed] at how much things have changed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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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隔世感(격세감) | 滄桑之變(창상지변) | 滄海桑田(창해상전)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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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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