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鴻門宴 (홍문연, Hóngményàn)

鸿门宴(홍문연,Hóngményàn)

鸿门宴(Hóngményàn)

鴻 기러기 홍 | 門 문 문 | 宴 잔치 연 |


초청객을 모해할 목적으로 차린 주연(酒宴).

壁上觀 (벽상관, bìshàngguān)

壁上觀(벽상관)

壁上观(bìshàngguān)

壁 벽 벽 | 上 윗 상 | 觀 볼 관 |


수수방관하다. 강 건너 불 보듯 하다. 내버려 두다.


남은 싸우는데 성벽 위에서 바라만 보다. 《사기·항우본기(史記·項羽本紀)》에서, 진(秦)나라 군사가 조(趙)나라 거록(巨鹿)을 포위하여 초(楚)나라 장수 항우(項羽)가 군사를 이끌고 출전했는데, 지원을 나온 다른 장수들은 진(秦)나라 군대의 위세에 눌려 모두 성벽 위에서 바라만 보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출전]
史記(사기) : 項羽本紀(항우본기) |


관련 한자어

동의어

作壁上观(zuòbìshàngguān) |

유의어

坐观成败(zuòguānchéngbài) 타인의 성패에 대해 수수방관하다 |


사기 | 사기:항우본기 | 항우

史記 | 史記:項羽本紀 | 項羽

沐猴而冠 (목후이관, mùhóu'érguàn)

沐猴而冠(목후이관,mùhóu'érguàn)

沐猴而冠(mùhóu'érguàn)

沐 머리 감을 목 | 猴 원숭이 후 | 而 말 이을 이,능히 능 | 冠 갓 관 |


1. 원숭이가 관을 쓰고 사람처럼 꾸미다. 《사기·항우본기(史記·項羽本紀)》에 나오는, “사람들이 초(楚)나라 사람은 관을 쓰고 사람 행세를 하는 원숭이 같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구나.”라는 말에서 유래함. 2.[성어,비유] 덕도 없고 무능하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사람.


초(楚)나라의 패왕인 항우(項羽)가 진(秦)나라의 서울을 불태워버리고 유방(劉邦)을 추방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며 자기는 금의 환향(錦衣還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생(韓生)이 항우는 그런 의관을 할 사람이 됨이 못 된다고 비꼬아 한 말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오는 말이다. 홍문(鴻門)의 연(宴)으로 유방으로부터 진(秦)의 수도 함양을 넘겨받은 항우는 약탈과 방화를 자행하여 함양을 폐허로 만들었다. 함양이 폐허로 변하자, 자기의 성공을 고향에서 뽐내기도 할 겸 해서 초(楚)의 팽성(彭城)으로 천도를 서둘렀다. ‘부귀한 뒤에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는 금의환향(錦衣還鄕)의 욕심 때문이었다.

함양은 주(周)와 진(秦)이 일어났던 패업의 땅으로, 관중(關中)이라고도 불리는 천혜의 요지이다. 그럼에도 항우가 천도를 고집하자, 간의대부(諫議大夫) 한생(韓生)이 이를 간하였다.

“관중은 예부터 천혜의 요지로 패업의 땅이었고, 토지 또한 비옥합니다. 여기에 도읍을 정하고 천하의 왕이 되십시오. 지난 번 범승상(范丞相:范增)이 떠날 때도 결코 함양을 버리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 말을 들은 항우는 화를 벌컥 내면서 한생의 말을 막았다. 한생은 크게 탄식하며 물러나서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원숭이를 목욕시켜 관을 씌운 꼴이군[沐猴而冠].”

그런데 이 말을 그만 항우가 듣고 말았다. 항우가 옆에 있던 진평에게 그 뜻을 묻자, 진평이 답하였다.

“폐하를 비방하는 말이온데,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원숭이는 관을 써도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과 원숭이는 꾸준하지 못해 관을 쓰면 조바심을 낸다는 것, 그리고 원숭이는 사람이 아니므로 만지작거리다가 의관을 찢고 만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듣고 격분한 항우는 한생을 붙잡아 펄펄 끓는 가마솥에 던져 죽였다. 한생이 죽으면서 말했다.

“나는 간언하다가 죽게 되었다. 그러나 두고 보아라. 백일 이내에 한왕(漢王)이 그대를 멸하리라. 역시 초나라 사람들은 원숭이와 같아 관을 씌워도 소용이 없구나.”

결국 천도를 감행한 항우는 관중을 유방에게 빼앗기고 마침내는 해하(垓下)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 속에 목숨을 끊고 말았다.

[유래]
史記(사기) : 項羽本紀(항우본기)


관련 한자어

참조어

錦衣還鄕(금의환향) | 四面楚歌(사면초가) |


史記(사기) : 項羽本紀(항우본기) |

錦衣還鄕 (금의환향, jǐnyīhuánxiāng)

錦衣還鄕(금의환향)

锦衣还鄕(jǐn yī huán xiāng)

錦 비단 금 | 衣 옷 의 | 還 돌아갈 환 | 鄕 고향 향 |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간다는 뜻의 고사성어.


'금의(錦衣)'는 화려하게 수놓은 '비단옷'이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왕이나 고관들이 입던 옷으로 출세의 상징이었다. 반면 평민들은 흰색의 베옷을 입었는데, 이것은 '포의(布衣)'라 하였다. 즉,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간다는 뜻으로, 출세하여 고향을 찾는 것을 뜻한다.


六朝(육조)시대 梁(양)나라의 유지린 이란 사람이 남군 태수로 승진했을 때 武帝(무제)는 이렇게 격려했다.
“그대의 모친은 연세가 많고 덕망도 높으니 ‘그대에게 비단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서(令卿衣錦還鄕․영경의금환향)’마음껏 효도를 할 수 있도록 해주겠노라.”

衣錦之榮(의금지영)이란 말도 있다. ‘비단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영예’니까 금의환향과 같은 뜻인데 宋(송)의 文豪(문호) 歐陽修(구양수)가 晝錦堂記(주금당기)란 글에서 쓴 것이다.


초(楚)나라와 한(漢)나라의 전쟁이 한창일 때의 이야기이다. 유방(劉邦)이 먼저 진(秦)나라의 도읍인 함양(咸陽)을 차지하자, 화가 난 항우(項羽)가 대군을 몰고 홍문(鴻門)까지 진격하였다. 이때 유방은 장량(張良)과 범증(范增)의 건의로 순순히 항우에게 함양을 양보하였다.

함양에 입성한 항우는 유방과는 대조적으로 아방궁을 불태우는가 하면 궁중의 금은보화를 마구 약탈하고 궁녀들을 겁탈했으며, 시황제(始皇帝)의 묘까지 파헤쳤다. 항우는 스스로 망쳐놓은 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향인 팽성(彭城)에 도읍을 정하려 하였다.

신하들은 항우가 예로부터 패왕(覇王)의 땅이었던 함양을 버리고 보잘것없는 팽성으로 도읍을 옮기겠다고 하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때 간의대부(諫議大夫) 한생(韓生)이 간언했지만 항우는 오히려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길거리에서 '부귀하여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면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라는 노래가 떠돌고 있다고 하더군. 이건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야. 그러니 어서 길일(吉日)을 택하여 천도하도록 하라."

그래도 한생이 간언을 그치지 않자, 항우는 그를 기름이 끓는 가마 속에 넣어 죽이고 말았다. 하지만 이 노래는 항우가 천하의 요새인 함양에 있는 한 유방이 승리할 수 없으므로 항우를 함양에서 내쫓기 위해 장량이 퍼뜨린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함양을 싫어했던 항우는 그 노래가 하늘의 뜻이라고 판단하여 마침내 팽성으로 천도하게 되었다.

결국 항우는 함양을 차지한 유방에게 해하(垓下)에서 크게 패함으로써 천하를 넘겨주고 만다. '금의환향'으로 자신의 공덕을 고향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는 하였지만 천하를 잃고 만 셈이다. 출전은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記)>이다.

[유래] 史記(사기) : 項羽本紀(항우본기)


관련 한자어

유의어

衣锦还乡(yījǐnhuánxiāng) 衣 옷 의, 锦 비단 금, 还 돌 선, 乡 시골 향 | 衣锦荣归(yījǐnróngguī) 衣 옷 의, 锦 비단 금, 荣 꽃 영, 归 돌아갈 귀 | 衣錦之榮의금지영)

반의어

錦衣夜行(금의야행) |

참조어

沐猴而冠(목후이관,mùhóu'érguàn) |


Tag

史記(사기) : 項羽本紀(항우본기) |

錦衣夜行 (금의야행, jǐnyīyèxíng)

錦衣夜行(금의야행)

锦衣夜行(jǐnyī yèxíng)

錦 비단 금 | 衣 옷 의 | 夜 밤 야 | 行 다닐 행 |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간다는 뜻의 고사성어.


항우(項羽)가 한 말로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를 보면, 항우가 진(秦)나라를 쳐부수고 유명한 아방궁(阿房宮)을 비롯하여 모든 궁전을 모조리 불지른 다음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자, 부하 한 사람이 말하기를 “이곳 진나라 땅은 사방이 험한 산으로 막히고 땅이 기름지니 여기에 도읍을 정하면 천하를 잡을 수가 있습니다.”라고 권하였으나 항우는 불탄 그곳이 싫었고, 또 고향에 돌아가 뽐내고 싶은 마음에서 “부귀를 하고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마치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누가 알아 줄 사람이 있겠는가(富貴不歸故鄕 如衣繡夜行 誰知之者)”라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 여기에는 의수야행(衣繡夜行)이라고 쓰여 있고 《한서(漢書)》에는 의금(衣錦)야행이라 쓰여 있는데, 이것이 나중에 변하여 금의야행이 되었다고 한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衣繡夜行(의수야행) | 衣錦夜行(의금야행) |

반의어

錦衣還鄕(금의환향) |

傾國之色 (경국지색, qīngguózhīsè)

傾國之色 (경국지색)

倾国之色(qīng guó zhī sè)

傾 기울어질 경 | 國 나라 국 | 之 갈 지 | 色 빛 색 |


나라를 기울어지게 할 만큼의 미인.


원래 傾國의 본뜻은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이었으나, 나라 안에 으뜸가는 미인 혹은 나라를 뒤집어엎을 만한 절세미인을 지칭하기도 한다.

경국(傾國)이란 말은 이백(李白)의 '淸平調詞' 중 '名花傾國兩相歡' 구절과 백거이의 '장한가' 中 '한왕은 색(色)을 중히 여겨 경국(傾國)을 생각한다.'라는 구절, 항우에게서 자기 처자(妻子)를 변설로써 찾아준 후공(侯公)을 한고조(漢高祖) 가 칭찬한 데서도 찾을 수 있으며, 또한 이연년의 시에서도 볼수 있다.


한고조(韓高祖) 유방이 항우에게 부모와 처자식을 포로로 빼앗겨 괴로워하고 있을 때, 후공(侯公)이라는 자가 변설(辯舌)로써 이들을 구출한 일이 있다. 이때 유방은 이런 말을 했다.

"그대는 천하의 변사(辯士)요. 그 변설이면 나라도 기울게 할 것이오. "

유방은 여기서 '경국'이라는 말로 나라를 기울게 할 정도로 뛰어난 후공의 변설을 칭찬했다.

[출전] 史記(사기) : 項羽本紀(항우본기) |


경국지색은 중국 한무제(漢武帝) 때 협률도위(協律都尉:음악을 관장하는 벼슬)로 있던 이연년(李延年)이 지은 다음과 같은 시에 나온다.

北方有佳人
絶世而獨立
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
寧不知傾城與傾國
佳人難再得

북쪽에 어여쁜 사람이 있어
세상에서 떨어져 홀로 서 있네.
한 번 돌아보면 성을 위태롭게 하고
두 번 돌아보면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어찌 경성이 위태로워지고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모르리요만
어여쁜 사람은 다시 얻기 어렵도다.

이 노래는 무제 앞에서 절세미인인 자기 누이동생을 자랑하여 부른 것이었다.

항우와의 결전을 거쳐 천하를 통일한 유방이 세운 한(漢)은 무제(武帝) 때에 이르러 탄탄한 반석 위로 올라선다. 일찍 황후를 잃은 무제는 이때 이미 50고개를 넘어 있었고, 사랑하는 여인도 없이 쓸쓸한 처지였으므로 당장 그녀를 불러들이게 하였다. 무제는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와 날아갈 듯이 춤추는 솜씨에 매혹되었는데, 이 여인이 무제의 만년에 총애를 독차지하였던 이부인(李夫人)이었다. 그녀가 병들었을 때 무제가 문병을 와서 얼굴 보기를 청하였으나 초췌한 얼굴을 보이기 싫다고 끝내 얼굴을 들지 않았다 한다.

[출전]
漢書(한서) : 外戚傳(외척전) |


관련 한시

秋風辭(추풍사) | 長恨歌(장한가) | 淸平調詞三首(청평조사3수) | 北方有佳人(북방유가인) |


동의어·유의어

傾城之色(경성지색) | 萬古絶色(만고절색) | 絶世美人 | 羞花閉月(수화폐월) | 國香 | 國色 | 花容月態(화용월태) | 丹脣皓齒(단순호치) | 解語花(해어화) |

반의어

薄色(박색) |


관련 고사성어

하나라 걸왕과 매희: 酒池肉林(주지육림) |

은나라 주왕과 달기: 酒池肉林(주지육림), 炮烙之刑(포락지형) |

주나라 유왕과 포사: 丹脣皓齒(단순호치) |

정나라 영공과 하희: 三夫二君一子(삼부이군일자) |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 解語花(해어화) |


史記(사기) : 項羽本紀(항우본기) | 漢書(한서) : 外戚傳(외척전) | 長恨歌(장한가) | 淸平調詞三首(청평조사3수) |

傾國 (경국, qīngguó)

傾國(경국)

倾国之色(qīng guó zhī sè)

傾 기울어질 경 | 國 나라 국 |


나라를 위태롭게 하다. 나라를 위태롭게 할 정도로 뛰어남. 나라를 기울어지게 할 만큼의 미인.


원래 傾國의 본뜻은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이었으나, 나라 안에 으뜸가는 미인 혹은 나라를 뒤집어엎을 만한 절세미인을 지칭하기도 한다.

경국(傾國)이란 말은 이백(李白)의 '淸平調詞' 중 '名花傾國兩相歡' 구절과 백거이의 '장한가' 中 '한왕은 색(色)을 중히 여겨 경국(傾國)을 생각한다.'라는 구절, 항우에게서 자기 처자(妻子)를 변설로써 찾아준 후공(侯公)을 한고조(漢高祖) 가 칭찬한 데서도 찾을 수 있으며, 또한 이연년의 시에서도 볼수 있다.


한고조(韓高祖) 유방이 항우에게 부모와 처자식을 포로로 빼앗겨 괴로워하고 있을 때, 후공(侯公)이라는 자가 변설(辯舌)로써 이들을 구출한 일이 있다. 이때 유방은 이런 말을 했다.

"그대는 천하의 변사(辯士)요. 그 변설이면 나라도 기울게 할 것이오. "

유방은 여기서 '경국'이라는 말로 나라를 기울게 할 정도로 뛰어난 후공의 변설을 칭찬했다.

[출전] 史記(사기) : 項羽本紀(항우본기) |

☞ 傾國之色 (경국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