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偸梁換柱 (투량환주)

偸梁換柱(투량환주)

偷梁换柱(tōuliánghuànzhù)

偸 훔칠 투 | 梁 들보 량 | 換 바꿀 환 | 柱 기둥 주 |


'대들보를 훔치고 기둥을 바꾼다'라는 뜻으로, 겉은 그대로 두고 내용이나 본질을 바꾸어 놓음으로써 승리를 취하는 전략이다. 36계 가운데 25번째 계책이다.


三十六計(삼십육계) 倂戰計(병전계) 제25계. 병전계란 곧, '함께 싸울 때의 계략'이라는 뜻이다. 즉, 연합전선이나 동맹작전을 펴고 있을 때의 계략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 '병전계'의 계략들이 '힘을 모아 공동의 적을 치는' 계략뿐만이 아니라, '연합의 주도권을 쥐고 자신의 뜻대로 동맹군을 움직이게 하는' 계략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계략의 상대방이 '공동의 적' 뿐만이 아니라 연합전선을 펼치고 있는 '동맹군'도 계략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여러 제후국들이 중원의 패권을 차지하려고 다투었다. 그들은 각자의 유리함을 택하여 이합집산을 거듭하였으므로 오늘의 동맹국이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서로 연합하여 싸울 때라도 주도권을 잡고 우군의 세력을 자기편으로 흡수하도록 꾀하는 전략으로서 병전계가 활용되었다.

'량(梁)'은 대들보이고 '주(柱)'는 기둥이니, 집을 지탱하는 중추를 가리킨다. 그 중추를 교란 또는 탈취함으로써 적을 붕괴시키는 전략이 투량환주이다. 이 전략에 대하여는 "진지를 자주 바꾸게 하고, 그 주력을 추려 내게 하여 스스로 패하기를 기다린 뒤에 그 틈을 타서 바퀴를 끌고 온다(頻更其陣, 抽其勁旅, 待其自敗, 而後乘之, 曳其輪也)"는 해설이 덧붙여져 있다.

이는 연합한 우군을 고의로 패하게 만들어 자기 세력으로 흡수하는 것으로도 풀이되며, 속고 속이는 정치적 모략으로도 응용된다. 정치적 모략으로는 진(秦)나라의 환관 조고(趙高)의 예를 들 수 있다. 진나라의 시황제(始皇帝)는 임종을 앞두고 재상인 이사(李斯)에게 맏아들 부소(扶蘇)로 하여금 황위를 잇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때 부소는 북방에서 경험을 쌓고 있었다.

이사는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부소가 올 때까지 시황제의 죽음을 비밀로 하였다. 환관의 우두머리인 조고는 이사를 찾아가 부소가 후계자로 지목된 사실은 자신과 이사 두 사람밖에 모르니, 막내 아들인 호해가 후계자로 지목되었다고 속이면 아무도 모를 것이며, 이사도 재상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유혹하였다. 이에 두 사람은 문서를 조작하여 호해를 옹립하고, 부소를 살해하였다. 조고는 자신의 뜻대로 황제의 자리를 빼앗고 바꾼 것이다.

또 다른 사례를 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흔히 戰國時代(전국시대)로의 돌입이라 일컫는 三晉(삼진)의 분열. 즉, 晉나라가 韓(한), 魏(위), 趙(조) 세나라로 분열되는 사건의 前 이야기이다.

이 당시의 진나라는 智(지)씨, 韓(한)씨, 魏(위)씨, 趙(조)씨가 국권을 좌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엔 진나라의 땅을 4가문에서 나눠갖고야 말았다. 이에 임금인 晉出公(진출공)은 제나라와 노나라에 밀사를 보내 무도한 4家를 쳐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이는 지씨 일족의 우두머리인 智伯(지백)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이에 지백은 4가를 이끌고 진출공을 쳤다. 진출공은 제나라로 달아나고, 지백은 晉哀公(진애공)을 세운다. 이때부터 진나라의 국권은 지백이 장악하게 된다.

지백은 아예 진나라를 혼자서 독식하기 위해 남은 3가를 치기로 했다. 그리하여 당시 크게 일어나고 있는 월나라를 친다는 명목으로 3가에 100리씩의 땅을 군자금으로 내놓게 했다. 한씨와 위씨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땅을 내주었다. 하지만 조씨 일족의 우두머리인 조양자는 땅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지백은 조씨를 쳐, 그 땅을 나눠갖기로 하고 한씨와 위씨를 끌어들여 조양자를 쳤다.

조양자는 진양성으로 들어가 굳게 문을 닫아걸고 3가와 맞섰다. 진양성을 포위한지 1년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자 지백은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진양성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진양성을 격파할 계책을 세웠다. 그것은 바로 水攻策(수공책)이었다. 근처의 水原인 龍山(용산)에 저수지를 만들어 물이 다 차거든 진양성 쪽으로 흘려보내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수공책은 계획대로 진행되어 진양성은 결국 물에 잠기고 만다. 이에 조양자가 크게 탄식한다. 그러자 장맹담이 계책을 올린다. 그리고 그날 밤을 타서 장맹담은 성을 빠져나간다.

장맹담이 간 곳은 한씨 일족의 우두머리인 한강자의 막사였다. 장맹담은 한강자를 설득한다.
"...조씨는 지백에게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백은 자기 힘만 믿고서 한씨와 위씨를 동원하여 조씨를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장차 조씨가 망하면 그 다음엔 어떻겠습니까? 한씨와 위씨도 반드시 조씨와 같은 불행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지백은 조씨를 쳐서 땅을 나누어 갖자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백이 어떤 사람입니까? 이미 한씨와 위씨로부터 사방 100리의 땅을 빼앗아가지 않았습니까? 그런 자가 조씨의 땅을 빼앗아 나누어 주겠습니까? 조씨가 망하면 지백만 더 강해지게 됩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소? 그대의 의견을 들려주오!"

"제 소견으로는 한씨와 위씨가 저의 주인과 손을 잡으시고 도리어 지백을 쳐서 그 땅을 나누어 갖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지씨의 땅은 조씨의 땅보다도 배나 더 큽니다."

이에 한강자는 조씨와 손을 잡고, 장맹담은 위씨 일족의 우두머리인 위환자도 같은 방법으로 설득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한씨와 위씨의 군사들은 저수지의 물길을 지씨의 군영 쪽으로 돌려놓았다. 그리고는 우왕좌왕하는 지백을 조양자가 사로잡았다. 그리고는 지씨 일족을 멸족하고, 땅을 똑같이 셋으로 나눠가졌다. 하지만 진애공에게는 조금의 땅도 바치지 않았다.

이후 한, 위, 조, 세 가문은 스스로 三晉을 칭했다. 그리고는 주위열왕에게서 제후로 봉해지고, 각기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게 되는 계기가 된다.

한편, 이 때 서쪽의 秦(진)나라는 晉(진)나라를 버리고 楚(초)나라에 붙고 중국과의 거래를 끊었다. 중국 또한 秦나라를 오랑캐로 대했다.

여기에서 대들보, 기둥은 굳이 사람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군대 운영의 근간이 되는 전략이나 전술도 대들보나 기둥으로 보고 바꿔넣을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보기로 하자. 전국시대 말기에 연횡, 합종으로 위세를 떨친 소진과 장의의 이야기이다.

소진은 일찍이 스승의 곁을 떠나 조나라에서 정승이 되어 있었다. 당시 秦(진)나라의 세력이 자꾸만 커져서 중원의 6국이 모두 긴장상태에 있었다. 이에 소진은 6국을 합종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秦나라가 조나라를 침공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고 있던 차에 동문수학하던 장의가 소진을 찾아온다. 소진은 장의를 푸대접해서 쫓아낸다.

이에 장의는 秦나라로 갔다. 그리고는 마침내 秦나라에서 벼슬을 살게 된다. 장의가 벼슬을 하게 된 뒤에는 이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장의에게 말한다.
"제 주인은 조나라 정승 소진대감입니다. 소정승은 장차 육국을 합종시켜 秦나라를 견제할 작정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秦나라가 조나라를 칠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조나라가 무너지게 되면 중원은 진나라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소정승께서는 저로 하여금 선생을 진나라에서 정권에 참여하도록 뒤를 봐주신 것입니다. 또한 선생께서 조나라의 작은 벼슬에 안주할까봐 그렇게 괄시해서 쫓아낸 것입니다."

이에 장의는 크게 탄식한다.
"허허. 내가 지금까지 소진의 계책에 빠져 있었구려. 참으로 소진은 나보다 그 재주가 월등하오. 그대는 돌아가거든 소진에게 전하시오. 진나라가 조나라를 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이오. 내 어찌 소진의 은혜를 저버릴 수 있으리오."

이렇게 소진은 진나라의 중역에 자기 사람을 넣음으로 해서 진나라의 조나라 침공계획을 무산시켜 버렸다. 이도 또한 '투량환주'라 할 것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偷天换日(투천환일, tōutiānhuànrì) | 훔칠 투 | 하늘 천 | 바꿀 환 | 해 일 |
하늘의 태양을 훔치고 다른 것으로 바꿔 놓다. 진상을 크게 왜곡하여 사람을 속이다. 가짜로 진짜를 대신하다.

移花接木(이화접목, yíhuājiēmù) | 옮길 이 | 꽃 화,쓸 화 | 맞을 접 | 나무 목 |
꽃이 핀 나뭇가지를 다른 품종의 꽃나무에 접목하다. 몰래 교묘한 수단을 부려 사람이나 사물을 바꿔치기 하여 다른 사람을 속이다.

指桑罵槐 (지상매괴, zhǐsāngmàhuái)

指桑罵槐(지상매괴)

指桑骂槐(zhǐsāngmàhuái)

指 가리킬 지 | 桑 뽕나무 상 | 罵 꾸짖을 매 | 壞 무너질 괴,앓을 회 |


이 사람을 가리키며 실제로는 저 사람을 욕하다. 빗대어 욕하다. 빈정대다.


三十六計(삼십육계) 倂戰計(병전계) 제26계 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욕하다. 이는 상대방에 대해서 직접적인 비난이 곤란할 경우, 제3자를 비난하는 듯하게 하여 간접적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을 뜻한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복종하게 하려면 경고의 방법을 써야 한다. 단호한 가운데 복종을 이끌어 내고, 과감하게 행동해서 심복시킨다.[大凌小者,警以誘之.剛中而應,行險而順.] "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功戰計(공전계) 중의 打草驚蛇(타초경사)를 설명하면서 등장했던 鄭莊公(정장공)의 이야기이다. '타초경사'에서도 얘기했듯이, 정장공은 자신이 없는 틈을 타 반역을 꾀하던 동생, 공숙 단을 처단하고 이에 내응하려 했던 어머니를 '황천에 가기 전에는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

정장공의 어머니 강씨는 정장공을 대할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강씨는 궁중을 떠나 영 땅으로 갔다. 그 뒤 정장공은 鄭城(정성)으로 돌아가 탄식했다.
"내 하는 수 없이 동생을 죽였지만 어찌 모친마저 멀리 여의고 천륜의 죄인이 되었단 말인가!"

이때, 영곡 땅을 다스리는 지방 관리의 이름은 영고숙이었다. 그는 위인이 매우 정직해서 사사로운 정으로 매사를 판단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원래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 있기로 유명했다. 그는 정장공이 그 어머니 강씨를 영 땅에다 안치시켰다는 소문을 듣고 탄식했다.
"어미가 어미답지 못할지라도, 자식은 자식의 도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주공의 이번 처사는 敎化(교화)를 상하게 하는구나."

영고숙은 몇 마리의 올빼미를 구해다가 정장공에게 바쳤다.
"이는 무슨 날짐승인가?"
"이 새는 올빼미라고 합니다. 낮이면 태산도 보지 못하며, 밤이면 능히 추호까지 분별합니다. 곧 조그만 것은 볼 줄 알지만, 큰 것은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올빼미는 어릴 때 어미의 젖을 먹고 일단 장성하면 그 어미를 쪼아 먹기 때문에 세상에선 不孝(불효)한 새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슴지 않고 이 새를 잡아먹습니다."
"..."
정장공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여기에서 영고숙이 '올빼미를 욕하면서 간접적으로 불효한 처사를 행한 정장공을 힐난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욕한 것이다.

이후 영고숙의 간언에 따라 지하에 황천을 만들고 그곳에서 어머니 강씨를 만나, 함께 정성으로 돌아왔다. 백성들은 정장공이 모친을 모시고 함께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모두 이마에 손을 대고 행렬을 바라보면서 찬탄하였다.
"참으로 우리 주공은 효자로다."
그러나 이는 모두 다 영고숙의 공로였다고 列國志(열국지)에서는 말하고 있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旁敲侧击(방고촉격, pángqiāocèjī) 양 옆과 측면을 치다. (문장이나 의견을) 빙빙 돌려 말하다. 말을 에두르다.
指鸡骂狗(지계매구, zhǐjīmàgǒu) 이 사람을 가리키며 실제로는 저 사람을 욕하다. 빗대어 욕하다. 빈정대다.

반의어

直言不讳(직언불휘, zhíyánbúhuì) 거리낌없이 솔직하게 말하다. 기탄없이 말하다.
畅所欲言(창소욕언, chàngsuǒyùyán)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다.

참조어

打草驚蛇(타초경사) |


三十六計, 삼십육계, 三十六計:倂戰計, 삼십육계:병전계, 36계

樹上開花 (수상개화, shùshàngkāihuā)

樹上開花(수상개화)

树上开花(shùshàng kāihuā)

樹 나무 수 | 上 윗 상 | 開 열 개 | 花 꽃 화 |


'나무 위에 꽃을 피운다'라는 뜻으로, 본래 꽃을 피울 수 없는 나무에 조화(造花)를 진짜 꽃처럼 장식하여 상대방을 속인다는 말이다. 삼십육계 가운데 29번째 계책이다.


철수개화(鐵樹開花:쇠나무에 꽃이 피다)가 전화(轉化)한 것으로, 원래는 지극히 실현되기 어려운 일을 비유하는 말이었다. 중국의 대표적 병법의 하나인 삼십육계에서는 병전계(倂戰計:동맹 등을 맺어 함께 싸울 때의 계략)에 속하는 29번째 계책으로 사용되었다. 원뜻은 '꽃이 없는 나무 위에 꽃이 핀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의미이다. 쉽게 말해서 '없으면서도 있는척' 하는 것이다.

그 내용은 '형세에 따라 위세를 떨치면, 작은 세력이라도 큰 세력처럼 꾸밀 수 있다. 기러기가 높은 하늘을 날 때 무리를 지어 날개를 활짝 펴고 대형을 이루어 나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借局布勢, 力小勢大. 鴻漸于陸, 其羽可用爲儀也).' 곧, 아군의 힘이 약할 때, 다른 세력이나 어떤 요인을 빌려 아군을 강하게 보이게 함으로써 적으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만들어 굴복시키는 것이다.

보통 병법들이 '있으면서도 없는척'을 강조한 것과는 대조된다. 손자병법 등의 병법서에서는 일관적으로 '우리측이 유리해도 열세하게 보이게 하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상대방의 방심을 이끌어 내서 승리를 취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없으면서도 있는척' 이라는 것은 우세한 상대방의 경계를 이끌어 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판단을 주저하게 하는 것이다.

사례를 살펴보자. 三國志演義 이야기이다. 이때 유비는 형주에 있다가 조조의 군세에 쫓겨 동오로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백성들이 뒤를 따른데다가, 병사도 적어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 신세였다. 또한 조조군의 추격 속에 유비의 식솔들과 장수들도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태였다.

장비는 유비군의 후위를 맡아 長坂橋(장판교)에 버티고 섰다. 그의 휘하에 있는 병사는 기병 20여명뿐이었다. 장비는 다리 일대에 숲이 우거져 있는 것을 보고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냈다. 병사들에게 나뭇가지를 잘라 말꼬리에 매달고 숲속을 달리게 하면서 흙먼지를 일으키게 했다. 그로 인해 복병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장팔사모를 비껴 든 채 다리 위에 멈춰서서 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빙이 이끄는 조조군이 장판교 어귀에 다다랐다. 장비가 호랑이 수염을 곧추세우고 고리눈을 부릅뜬채 장팔사모를 뻗쳐들고 다리 위에 말을 세우고 노려보고 있었다. 또한 다리 건너편 숲속에서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오르는 것으로 보아 복병이 있지 않을까 의심되었다. 이에 문빙은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잠시후 조인, 이전, 하후돈, 하후연, 악진, 장료, 장합, 허저 등의 장수들이 모두 도착했다. 이들은 모두 장비가 다리 위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제갈량의 계책이 아닌가 싶어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이에 조조가 보고를 받고는 앞으로 달려나왔다.

이를 보고 장비가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내가 바로 燕人 張翼德(연인 장익덕)이다! 어느 누가 나와 한 판 겨뤄 보겠느냐!"
목소리가 마치 천둥을 치는 듯했다. 그 소리를 듣는 조조의 군사들은 모두 겁에 질렸다. 조조가 급히 좌우를 돌아보고 말했다.
"전에 운장에게 들으니, 익덕은 백만대군에 둘러싸여 있는 上將의 목을 식은 죽 먹듯이 벨 수 있다고 하였다. 오늘 만났으니 가벼이 대적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장비가 또다시 외쳤다.
"싸우나 하면, 싸우지도 않고, 물러가나 하면 물러가지도 않으니 도대체 어쩌자는 것이냐!"

장비의 고함소리에 조조의 옆에 있던 하후걸이 놀라 말에서 떨어졌다. 이와 함께 조조군의 모든 병사와 장수들이 일제히 달아났다. 사람은 썰물처럼 빠지고 말들은 산사태가 무너지는 듯 서로가 밟고 밟히었다. 장비의 위용과 숲속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복병 때문에 조조군은 물러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복병이 있는 것처럼 보여 조조로 하여금 판단을 유보하게 하고, 나아가 판단을 그르치게 한 것이 바로 장비의 '수상개화'였던 것이다.

이후 장비는 장판교를 끊고 유비에게 달려가 자신이 한 일을 얘기했다. 유비가 말했다.
"나의 아우가 용감하긴 했지만, 잘못 생각한 것이 애석하다."
장비가 까닭을 묻자, 유비가 대답했다.
"조조는 지략이 뛰어난 사람이다. 네가 다리를 끊지 않았다면 그는 매복이 있지 않을까 하여 감히 전진하지 못했겠지만 이제 다리를 끊었으니, 그들은 우리가 겁을 먹고 있고 군사도 없다고 생각하여 반드시 추격해 올 것이다."

上屋抽梯 (상옥추제, shàngwūchōutī)

上屋抽梯(상옥추제)

上屋抽梯(shàng wū chōu tī)

上 위 상 | 屋 집 옥 | 抽 뽑을 추 | 梯 사다리 제 |


'지붕 위에 올라가게 한 뒤에 사다리를 치워 버린다'라는 말로, 적을 유인하여 사지에 빠뜨리거나 상대방을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함으로써 주도권을 잡는다는 뜻이다. 삼십육계 가운데 28번째 계책이다.


三十六計(삼십육계) 倂戰計(병전계) 제28계 지붕 위로 유인한 뒤 사다리를 치우다. 상옥추제계(上屋抽梯計)라고도 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병법 가운데 하나인 삼십육계 가운데 하나이다. 곧, 적에게 작은 이득을 주어 아군의 깊숙한 곳으로 유인한 뒤에 원군의 도움을 받지 못하도록 차단함으로써 적을 사지에 빠뜨리는 계책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상대방을 작은 이익으로 유혹하여 나아가게 하고 퇴로를 차단하여 사지에 빠져들게 한다. 적이 해독을 입는 것은 빠져서는 안되는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이다.[假之以便,唆之使前,斷其援應,陷之死地.遇毒,位不當也.]"

중국 고대의 병법서인 《손자(孫子)》의 〈구지(九地)〉편에도 "장수가 병사들을 이끌고 싸울 때에는 마치 높은 곳에 올라가게 한 뒤에 사다리를 치우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한다(帥與之期, 如登高而去其梯)"고 하였다.

이 고사성어의 전거가 되는 이야기는 《삼국지》의 〈제갈량전〉 또는 三國志演義 '搏望坡(박망파)'에 실려 있다.

후한(後漢) 시대 말기에 유표(劉表)의 맏아들 유기(劉琦)는 계모의 미움을 받았다. 연의에서는 당시 유비는 형주의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고 초려를 세번 방문해서 제갈량을 얻은 상태였다. 하지만 형주는 유표의 후계자 문제를 둘러싸고 음모들로 흉흉한 상태였다. 또한 유비 자신도 유표에게 '장자를 후계자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가 유표의 후처인 채부인에게 미움을 사, 채모에게 죽을뻔 한 일도 있었다.

유표는 자신이 죽은 후의 일을 부탁하고자 유비를 불렀다. 유표는 '자신이 죽고 나면 유비가 형주의 주인이 되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비는 이를 정중히 거절하고 물러나왔다. 역관에서 쉬고 있는데 유기가 와서 유비에게 말했다.
"계모(채부인)가 용납하지 않아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옵니다. 바라옵건대 숙부께서는 불쌍히 여겨 구해주소서."

채부인은 자신의 아들인 유종(유표의 작은아들)을 유표의 후계자로 삼기 위해 유비와 유기를 제거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비는 유기에게 그것은 집안일이므로 자신이 어찌할 일이 아니라 했다. 유기가 다시 제갈량에게 물었으나 제갈량의 대답도 마찬가지였다. 유비가 유기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내일 내가 공명에게 답방토록 하겠으니 현질은 이렇게이렇게 하시게. 그러면 계책을 알려줄걸세."

다음날 유비는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공명에게 유기를 답방케 했다. 차를 마시고 난 후 유기가 말했다.
"저는 계모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께서 한 말씀하여 구해주시면 다행이겠사옵니다."
"저는 손님에 불과한데 어찌 남의 집안일에 대해 말할 수 있겠소이까? 혹 누설되기라도 한다면 그 해가 적지 않을 터이옵니다."

말을 마친 공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유기가 술이라도 하자며 공명을 만류했다. 술을 마시다가 또 유기가 말했다.
"계모가 나를 용납하지 않으니 제발 선생께서 한 말씀하여 나를 구해주소서."
"그것은 제가 감히 도모할 바가 아니옵니다."
말을 마치자 또 작별하고 가려고 하였다.

"말씀을 안해주시면 그만이지, 어찌 금방 가시려고만 하시옵니까?"
그래서 제갈량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유기가 말했다.
"저에게 古書(고서) 한 권이 있는데, 선생께서 한 번 보아주시오."
그래서 제갈량은 유기를 따라 작은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책은 어디에 있소?"
"계모가 용납하지 않아 저는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오. 선생은 서운하게도 한 말씀도 해주시지 않습니까?"
제갈량은 일어나 다락을 내려가려 하였다. 그러나 이미 사다리가 치워진 후였다.

유기가 말했다.
"선생은 누설될까 염려하여 제게 방책을 가르쳐주지 않으셨소이다. 지금 위로는 하늘도 듣지 못하고 아래로는 땅도 듣지 못하오이다. 선생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저의 귀로 들어갈 뿐이니 가르쳐 주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남의 친족은 이간질할 수 없다고 하였소. 내 어찌 공자를 위해 도모할 수 있겠소?"
"선생은 끝내 저에게 가르쳐주지 않겠소이까? 그렇다면 어차피 저는 죽은 목숨이니 선생 앞에서 죽겠소이다!"
유기는 즉시 칼을 뽑아 자신의 목을 찌르려 하였다. 제갈량이 말리며 말했다.
"좋은 방책이 있기는 하오."
"어서 가르쳐 주소서."
"공자는 신생과 중이의 일도 못 들으셨사옵니까? 신생은 안에 있었기 때문에 죽었고, 중이는 밖에 있었기 때문에 무사했소. 지금 황조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 강하는 지키는 사람이 없는데 공자는 어찌 강하로 가서 지키겠다고 하지 않으시옵니까? 그렇게 하면 화는 면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이에 유기는 두 번 절하며 가르쳐 준 것을 고마워했다. 그리고는 사다리를 다시 가져오게 하여 제갈량을 내려가게 했다.

여기서 유래하여 상옥추제는 적을 유인하여 사지에 몰아넣거나 상대방을 곤경에 처하게 함으로써 주도권을 잡는 계책을 의미한다. 또한 배수진(背水陣)이나 파부침주(破釜沈舟)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퇴로를 끊음으로써 사력을 다해 싸우게 하는 일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때 제갈량이 유비에게 왔고, 박망파에서 初戰(초전)을 치룬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正史(정사)에 따르면 이때는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가기 전이고, 박망파 전투는 유비의 전략으로 승리한 것이었다. 박망파에서 승리한 이후에 유비가 제갈량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연의에서는 제갈량을 띄워주기 위해서 박망파에서 크게 승리한 것을 제갈량의 공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反客爲主 (반객위주, fǎnkèwéizhǔ)

反客爲主(반객위주)

反客为主(fǎnkèwéizhǔ)

反 돌이킬 반 | 客 손님 객 | 爲 할 위 | 主 주인 주 |


주객이 전도되다. 본말이 전도되다. 피동적이던 것이 주동적으로 되다.


三十六計(삼십육계) 倂戰計(병전계) 제30계. 주객이 전도되다. 말 그대로 주객을 전도시켜 주도권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즉, 수동적 위치에 놓여 있다가 주인의 자리까지 차지해 버리는 것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주도권을 차지한다. 다만 서두르지 않고 점진적으로 성사시킨다.[乘隙揷足,扼其主機,漸之進也.]"

이 '반객위주'를 잘 사용한 사람으로는 유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조조에게 몸을 붙이고 있으면서 슬그머니 서주성을 차지했으며, 동오로 피신해서 조조와 손권을 싸움 붙이고 자신은 형주를 슬그머니 차지했고, 장로의 위협에 도움을 청하는 유장에게로 가서 또 슬그머니 촉을 집어삼켜 버렸다.

특히 유비의 入蜀(입촉)은 '反客爲主(반객위주)'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三國志演義에 그려지고 있는 유비의 입촉을 살펴보자.

당시 유장은 한중을 차지하고 있는 오두미교의 교조, 장로의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장로에게 항복하자는 의견과 외부의 힘을 빌려 장로를 막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리고 '빌리고자 하는 외부의 힘'으로 물색된 것이 조조와 유비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동족'인 유비의 힘을 빌리기로 한다.

이에 유비는 방통을 군사로 삼아 병사들을 이끌고, 장로가 쳐들어온다는 가맹관으로 가서 주둔하고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東吳에서 형주를 빼앗고자 술책을 부려 손부인은 오나라로 돌아갔고, 또한 조조군은 유수로 침범해 왔다는 소식이 제갈량으로부터 전해진다.

그래서 유비는 방통과 상의한다.
"조조가 손권을 이기면 반드시 형주를 빼앗으려 할 것이고, 손권이 이겨도 반드시 형주를 빼앗으려 들 것이니 어떻게 해야 하겠소?"
"주공께서는 걱정 마소서. 공명이 그쪽에 있으니 동오가 감히 형주를 침범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유장에게 편지를 보내서 '조조가 손권을 공격하여 손권이 구원을 청하고 있소. 장로는 자신을 지키는 도적일 뿐, 감히 침범해 오지는 않을 것이오. 그러니 나는 이제 형주로 돌아가 손권과 함께 조조를 치려하오. 그러나 군사는 적고 군량은 모자라니 정예병 3,4 만과 군량 10만섬을 도와주시기 바라오' 라고 말씀하소서. 그리고 군마와 군량을 얻게 되면 그때 다시 의논드리겠습니다."

유비의 편지를 받은 유장은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했다. 황권이 유장에게 말했다.
"유비는 사납고 야심찬 호걸이옵니다. 오랫동안 촉에 머물러 두고 보내지 않는 것은 호랑이를 안방에서 키우는 꼴이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군마와 군량을 보낸다면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 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사옵니까?"
이에 유장은 늙고 약한 군사 4천명과 군량 1만섬만을 보내기로 했다.

유장의 답장을 받은 유비는 불같이 노했다.
"나는 너를 위해 적을 막느라 애쓰면서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너는 이제 재물이나 아끼며 이렇게 인색하게 구니 어찌 군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겠느냐!"
즉시 답장을 찢고 큰 소리로 욕을 하며 벌떡 일어섰다. 방통이 계책을 아뢴다.
"저에게 세가지 계책이 있사옵니다. 주공께서는 한가지를 선택하소서."
"어떤 세가지요?"
"지금 즉시 정예병을 골라 뽑아 이틀 길을 하루에 도와 곧장 蜀郡(촉군)을 기습하는 것이 上策(상책)이고, 형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관을 지키고 있는 양회와 고패가 전송하러 나올터이니 그들을 바로 죽이고 관을 빼앗아 성도로 쳐들어 가는 것이 中策(중책)이옵니다. 그리고 백제성으로 물러났다가 형주로 돌아가서 천천히 빼앗을 계획을 세우는 것이 下策(하책)이옵니다. 만일 망설이며 가지 않으셨다가는 멀잖아 큰 곤란이 닥칠 것이옵니다."
"상책은 너무 빠르고 하책은 너무 느리오. 중책이 늦지도 빠르지도 않으니 그것으로 합시다."

이에 촉을 지키기 위해 들어왔던 유비군은 침략군으로 변해 순식간에 촉을 먹어들어가 결국 촉의 수도인 성도마저 함락시켜, 촉을 차지해 버린다. 이야말로 손님으로 촉에 들어가 트집을 잡아 결국엔 촉의 주인자리를 차지해 버린 '反客爲主(반객위주)'의 예라 할 것이다.

隔岸觀火 (격안관화)

隔岸觀火 (격안관화)

隔岸观火(gé'ànguānhuǒ)

隔 사이 뜰 격 | 岸 언덕 안 | 觀 볼 관 | 火 불 화,화반 화 |


三十六計 敵戰計 第九計. 강가에 앉아 맞은편 기슭에 난 불을 바라보다. 강 건너 불 보듯 하다. 수수방관하다.


강 건너 불보듯 하다. 우리에게도 쉽게 와닿는 말일 것이다. 문자 그대로의 계략이다. 건너편에 불이 나면 그냥 구경이나 하라는 것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적 진영이 자중지란에 빠지면, 조용히 그들의 변란을 기다린다. 횡폭한 세력은 자멸하기 마련이다. 사태의 변화에 순응하며 순리에 따라 행동하라.[陽乖序亂,陰以待逆.暴戾恣睢,其勢自斃.順以動豫,豫順以動.]"

역시나 간단한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이번에도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일화이다.

관도대전에서의 승리로 원소를 궤멸시킨 조조는 살아남은 원소의 두 아들, 원희(원소의 차남)과 원상(원소의 삼남)을 죽이고자 계속 추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袁家(원가)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 만리장성을 넘어 이민족의 땅에까지 쳐들어갔다.

하지만 조조가 신뢰하던 軍師(군사)인 郭嘉(곽가)가 죽어 조조는 크게 상심하고 있었다.

"봉효(곽가)가 죽은 것은 바로 하늘이 나를 망치려는 것이오."

그리고 여러 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모두 나이가 나와 비슷하지만 봉효는 한참 적소. 그래서 나는 후사를 그에게 부탁하려 했는데, 이렇게 뜻밖에 요절을 하니 가슴이 미어지는구려."

곽가를 모시던 사람들이 봉함된 편지를 바치며 말했다.

"곽공께서 돌아가실 무렵 손수 써서 봉해 놓은 편지이옵니다. '승상께서 만일 이 편지대로 하신다면 요동의 일은 평정될 것이다'고 하셨사옵니다."

조조는 편지를 뜯어 보고 머리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그 뜻을 몰랐다.

이튿날, 하후돈이 무리를 이끌고 들어와 품했다.

"요동태수 공손강은 오래전부터 賓服(빈복 : 제후가 천자에게 공물을 바치고 복종하는것)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 또 원희와 원상이 가서 의탁했으니 반드시 후환이 될 것이옵니다.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빨리 가서 토벌하는 것이 낫사옵니다. 그래야만 요동을 평정할 수 있습니다."

조조가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이 번거롭게 虎威(호위)를 뽐내지 않아도 며칠 후면 공손강이 스스로 원희와 원상의 머리를 보내올 것이오."

여러 장수들은 모두 믿으려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다. 조조는 여전히 군사를 역현에 묶어둔 채 움직이지 않았다. 하후돈과 장료가 들어와서 품했다.

"요동을 정벌하지 않을 것 같으면 허도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유표가 딴마음을 먹을까 두렵습니다."
"원희와 원상의 수급이 오면 즉시 회군하겠다."

여러 사람들은 은근히 비웃었다. 그 때 갑자기 사람이 들어와 공손강이 원희와 원상의 수급을 보내왔다고 아뢰었다. 여러 사람은 모두 크게 놀랐다. 조조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과연 곽봉효의 예상이 틀리지 않는구나!"

조조는 사자에게 큰 상을 내리고 공손강을 양평후 좌장군에 봉했다. 여러 관원이 조조에게 물었다.

"어째서 곽봉효의 예상이 틀리지 않다고 하시옵니까?"

조조는 곽가의 편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 원희와 원상은 요동으로 몸을 의탁하러 갔다고 하는데, 명공께서는 절대로 쳐들어가지 마소서. 공손강은 오래전부터 원씨가 자기의 땅을 빼앗을까봐 두려워 했는데 원희와 원상이 의탁하러 갔으니 반드시 의심을 할 것이옵니다. 만일 군사를 이끌고 가서 공격하면 반드시 힘을 합해 맞설 것이니 간단히 쳐부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공격을 늦추고 있으면 공손강과 원씨는 반드시 자기들끼리 죽이고자 획책할 것이옵니다. 그러니 명공께서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시면 되옵니다.

강건너 불구경하라는 隔岸觀火(격안관화)는 제5계인 趁火打劫(진화타겁)의 불난 집에 들어가 도둑질하라는 전략과 상충되는 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