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36계.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36계. Show all posts

混水摸魚 (혼수모어, húnshuǐmōyú)

混水摸魚(혼수모어)

混水摸鱼(húnshuǐmōyú)

混 혼탁할 혼 | 水 물 수 | 摸 찾을 모 | 魚 물고기 어 |


물을 휘저어 물고기를 잡다. 혼란한 틈을 타서 한몫 보다. 혼란한 틈을 타서 정당하지 못한 이익을 챙기다.

抛塼引玉 (포전인옥, pāozhuānyǐnyù)

抛塼引玉(포전인옥)

抛砖引玉(pāozhuānyǐnyù)

抛 던질 포 | 塼 벽돌 전 | 引 끌 인 | 玉 구슬 옥 |


三十六計(삼십육계) 攻戰計(공전계) 제17계. '벽돌을 버리고 옥을 얻다'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고견이나 훌륭한 작품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자신이 먼저 미숙한 의견이나 작품을 발표한다고 겸손을 표하는 고사성어이다.

To cast a brick to attract jade—offer a few commonplace remarks by way of introduction so that others may come up with valuable opinions

抛出廉价的砖,引来珍贵的玉。比喻说出自己粗浅的意见引出别人的高论(多用作谦词)。

偸梁換柱 (투량환주)

偸梁換柱(투량환주)

偷梁换柱(tōuliánghuànzhù)

偸 훔칠 투 | 梁 들보 량 | 換 바꿀 환 | 柱 기둥 주 |


'대들보를 훔치고 기둥을 바꾼다'라는 뜻으로, 겉은 그대로 두고 내용이나 본질을 바꾸어 놓음으로써 승리를 취하는 전략이다. 36계 가운데 25번째 계책이다.


三十六計(삼십육계) 倂戰計(병전계) 제25계. 병전계란 곧, '함께 싸울 때의 계략'이라는 뜻이다. 즉, 연합전선이나 동맹작전을 펴고 있을 때의 계략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 '병전계'의 계략들이 '힘을 모아 공동의 적을 치는' 계략뿐만이 아니라, '연합의 주도권을 쥐고 자신의 뜻대로 동맹군을 움직이게 하는' 계략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계략의 상대방이 '공동의 적' 뿐만이 아니라 연합전선을 펼치고 있는 '동맹군'도 계략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여러 제후국들이 중원의 패권을 차지하려고 다투었다. 그들은 각자의 유리함을 택하여 이합집산을 거듭하였으므로 오늘의 동맹국이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서로 연합하여 싸울 때라도 주도권을 잡고 우군의 세력을 자기편으로 흡수하도록 꾀하는 전략으로서 병전계가 활용되었다.

'량(梁)'은 대들보이고 '주(柱)'는 기둥이니, 집을 지탱하는 중추를 가리킨다. 그 중추를 교란 또는 탈취함으로써 적을 붕괴시키는 전략이 투량환주이다. 이 전략에 대하여는 "진지를 자주 바꾸게 하고, 그 주력을 추려 내게 하여 스스로 패하기를 기다린 뒤에 그 틈을 타서 바퀴를 끌고 온다(頻更其陣, 抽其勁旅, 待其自敗, 而後乘之, 曳其輪也)"는 해설이 덧붙여져 있다.

이는 연합한 우군을 고의로 패하게 만들어 자기 세력으로 흡수하는 것으로도 풀이되며, 속고 속이는 정치적 모략으로도 응용된다. 정치적 모략으로는 진(秦)나라의 환관 조고(趙高)의 예를 들 수 있다. 진나라의 시황제(始皇帝)는 임종을 앞두고 재상인 이사(李斯)에게 맏아들 부소(扶蘇)로 하여금 황위를 잇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때 부소는 북방에서 경험을 쌓고 있었다.

이사는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부소가 올 때까지 시황제의 죽음을 비밀로 하였다. 환관의 우두머리인 조고는 이사를 찾아가 부소가 후계자로 지목된 사실은 자신과 이사 두 사람밖에 모르니, 막내 아들인 호해가 후계자로 지목되었다고 속이면 아무도 모를 것이며, 이사도 재상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유혹하였다. 이에 두 사람은 문서를 조작하여 호해를 옹립하고, 부소를 살해하였다. 조고는 자신의 뜻대로 황제의 자리를 빼앗고 바꾼 것이다.

또 다른 사례를 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흔히 戰國時代(전국시대)로의 돌입이라 일컫는 三晉(삼진)의 분열. 즉, 晉나라가 韓(한), 魏(위), 趙(조) 세나라로 분열되는 사건의 前 이야기이다.

이 당시의 진나라는 智(지)씨, 韓(한)씨, 魏(위)씨, 趙(조)씨가 국권을 좌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엔 진나라의 땅을 4가문에서 나눠갖고야 말았다. 이에 임금인 晉出公(진출공)은 제나라와 노나라에 밀사를 보내 무도한 4家를 쳐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이는 지씨 일족의 우두머리인 智伯(지백)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이에 지백은 4가를 이끌고 진출공을 쳤다. 진출공은 제나라로 달아나고, 지백은 晉哀公(진애공)을 세운다. 이때부터 진나라의 국권은 지백이 장악하게 된다.

지백은 아예 진나라를 혼자서 독식하기 위해 남은 3가를 치기로 했다. 그리하여 당시 크게 일어나고 있는 월나라를 친다는 명목으로 3가에 100리씩의 땅을 군자금으로 내놓게 했다. 한씨와 위씨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땅을 내주었다. 하지만 조씨 일족의 우두머리인 조양자는 땅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지백은 조씨를 쳐, 그 땅을 나눠갖기로 하고 한씨와 위씨를 끌어들여 조양자를 쳤다.

조양자는 진양성으로 들어가 굳게 문을 닫아걸고 3가와 맞섰다. 진양성을 포위한지 1년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자 지백은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진양성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진양성을 격파할 계책을 세웠다. 그것은 바로 水攻策(수공책)이었다. 근처의 水原인 龍山(용산)에 저수지를 만들어 물이 다 차거든 진양성 쪽으로 흘려보내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수공책은 계획대로 진행되어 진양성은 결국 물에 잠기고 만다. 이에 조양자가 크게 탄식한다. 그러자 장맹담이 계책을 올린다. 그리고 그날 밤을 타서 장맹담은 성을 빠져나간다.

장맹담이 간 곳은 한씨 일족의 우두머리인 한강자의 막사였다. 장맹담은 한강자를 설득한다.
"...조씨는 지백에게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백은 자기 힘만 믿고서 한씨와 위씨를 동원하여 조씨를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장차 조씨가 망하면 그 다음엔 어떻겠습니까? 한씨와 위씨도 반드시 조씨와 같은 불행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지백은 조씨를 쳐서 땅을 나누어 갖자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백이 어떤 사람입니까? 이미 한씨와 위씨로부터 사방 100리의 땅을 빼앗아가지 않았습니까? 그런 자가 조씨의 땅을 빼앗아 나누어 주겠습니까? 조씨가 망하면 지백만 더 강해지게 됩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소? 그대의 의견을 들려주오!"

"제 소견으로는 한씨와 위씨가 저의 주인과 손을 잡으시고 도리어 지백을 쳐서 그 땅을 나누어 갖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지씨의 땅은 조씨의 땅보다도 배나 더 큽니다."

이에 한강자는 조씨와 손을 잡고, 장맹담은 위씨 일족의 우두머리인 위환자도 같은 방법으로 설득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한씨와 위씨의 군사들은 저수지의 물길을 지씨의 군영 쪽으로 돌려놓았다. 그리고는 우왕좌왕하는 지백을 조양자가 사로잡았다. 그리고는 지씨 일족을 멸족하고, 땅을 똑같이 셋으로 나눠가졌다. 하지만 진애공에게는 조금의 땅도 바치지 않았다.

이후 한, 위, 조, 세 가문은 스스로 三晉을 칭했다. 그리고는 주위열왕에게서 제후로 봉해지고, 각기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게 되는 계기가 된다.

한편, 이 때 서쪽의 秦(진)나라는 晉(진)나라를 버리고 楚(초)나라에 붙고 중국과의 거래를 끊었다. 중국 또한 秦나라를 오랑캐로 대했다.

여기에서 대들보, 기둥은 굳이 사람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군대 운영의 근간이 되는 전략이나 전술도 대들보나 기둥으로 보고 바꿔넣을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보기로 하자. 전국시대 말기에 연횡, 합종으로 위세를 떨친 소진과 장의의 이야기이다.

소진은 일찍이 스승의 곁을 떠나 조나라에서 정승이 되어 있었다. 당시 秦(진)나라의 세력이 자꾸만 커져서 중원의 6국이 모두 긴장상태에 있었다. 이에 소진은 6국을 합종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秦나라가 조나라를 침공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고 있던 차에 동문수학하던 장의가 소진을 찾아온다. 소진은 장의를 푸대접해서 쫓아낸다.

이에 장의는 秦나라로 갔다. 그리고는 마침내 秦나라에서 벼슬을 살게 된다. 장의가 벼슬을 하게 된 뒤에는 이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장의에게 말한다.
"제 주인은 조나라 정승 소진대감입니다. 소정승은 장차 육국을 합종시켜 秦나라를 견제할 작정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秦나라가 조나라를 칠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조나라가 무너지게 되면 중원은 진나라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소정승께서는 저로 하여금 선생을 진나라에서 정권에 참여하도록 뒤를 봐주신 것입니다. 또한 선생께서 조나라의 작은 벼슬에 안주할까봐 그렇게 괄시해서 쫓아낸 것입니다."

이에 장의는 크게 탄식한다.
"허허. 내가 지금까지 소진의 계책에 빠져 있었구려. 참으로 소진은 나보다 그 재주가 월등하오. 그대는 돌아가거든 소진에게 전하시오. 진나라가 조나라를 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이오. 내 어찌 소진의 은혜를 저버릴 수 있으리오."

이렇게 소진은 진나라의 중역에 자기 사람을 넣음으로 해서 진나라의 조나라 침공계획을 무산시켜 버렸다. 이도 또한 '투량환주'라 할 것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偷天换日(투천환일, tōutiānhuànrì) | 훔칠 투 | 하늘 천 | 바꿀 환 | 해 일 |
하늘의 태양을 훔치고 다른 것으로 바꿔 놓다. 진상을 크게 왜곡하여 사람을 속이다. 가짜로 진짜를 대신하다.

移花接木(이화접목, yíhuājiēmù) | 옮길 이 | 꽃 화,쓸 화 | 맞을 접 | 나무 목 |
꽃이 핀 나뭇가지를 다른 품종의 꽃나무에 접목하다. 몰래 교묘한 수단을 부려 사람이나 사물을 바꿔치기 하여 다른 사람을 속이다.

借屍還魂 (차시환혼, jièshīhuánhún)

借屍還魂(차시환혼)

借尸还魂(jièshīhuánhún)

借 빌 차,빌릴 차,의지할 자 | 屍 시동 시,주검 시 | 還 돌아올 환,돌 선 | 魂 넋 혼 |


三十六計 攻戰計 第十四計 借屍還魂(차시환혼). 죽은 사람의 혼이 다른 사람의 시체를 빌어 부활하다. 이미 몰락하거나 소멸되었던 사상·세력·사물 등이 새로운 명목이나 형식을 빌어 다시 나타나다.

To come back in a new form

(of a dead person's soul) To find reincarnation in another's corpse—(of something evil) revive in a new guise

迷信指人死后灵魂附在他人的尸体上复活。比喻已经没落或死亡的思想、势力、事物等凭借另一种名义或形式重新出现。


시체를 빌려 죽은 영혼이 돌아오다. 유명했던 고인 등의 이름을 이용하여 정통성 내지 계속성의 인상을 주어 명분을 살리라는 뜻이다. 이는 즉, 꼭뚜각시를 명분으로 내세워 실리를 취하는 식의,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명분론'의 문제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유능한 자는 조종하기 어렵다. 무능한 자는 스스로 도움을 요청해 온다. 그래서 조종하기 쉬운 무능한 자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쪽에서 먼저 나서는 것이 아니라 저쪽에서 도움을 구해 오는 형세를 이용하는 것이다.[有用者,不可借;不能用者,求借.借不能用者而用之,匪我求童蒙,童蒙求我.]"

사례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다. 간단하게 몇가지를 살펴보자.

먼저 楚漢志(초한지)에 등장하는 사례를 보자.

항우와 유방이 두각을 드러내기 전에 중원을 흔들었던 것은 '진승'과 '오광'이었다. 이들은 보잘것 없는 농민출신으로 反秦의 불씨가 되었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최초에 반란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舊 楚나라의 명장 '항연'과 진시황의 장자 '부소'의 이름을 빌렸다. 스스로를 항연과 부소라고 하며 사람들을 모았던 것이다. 구 초의 명장 항연은 항우의 조부이자 항량의 부친으로, 전국시대 초나라 말기에 명장으로 이름 높았던 인물이다. 당시 反秦(반진)을 외치는 반군의 대부분은 초나라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구 초의 명장 '항연'의 이름은 반진에 불타는 초나라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또 '부소'는 진시황의 큰아들로 조고와 이사의 장난이 없었다면 진의 2세 황제가 되어 진을 안정시킬만한 인물이었다. 진시황과는 달리 유가를 존중하고 인품도 나무랄데 없어서 백성들로부터의 인기도 높았던 터였다. 둘 다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단지 그 이름에 이끌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진승과 오광은 커다란 세력을 이루어 마침내 '항연'과 '부소'의 이름을 버리고 진승은 스스로 張楚王(장초왕)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그 이후 진승과 오광의 세력은 급격히 쇠퇴하여 마침내 秦軍에게 토벌당하고 만다.

이후 반란군 중에 떠오른 세력이 '항량'의 세력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반란군이 도적이나 농민 출신이었던 반면에, 구 초나라의 귀족이며 또한 '항연'의 혈통이라는 점이 작용하여 크게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항량에게 '범증'이 찾아와 아뢴다.

"진승과 오광이 어째서 멸망했는지 아십니까?"

"어째서 멸망했소?"

"그들은 초나라 사람들을 이끌면서도 스스로 장초왕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초나라 사람들은 정통성 있는 왕을 모시길 원합니다. 그러니 그들과 같은 처지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신 초회왕의 후손을 찾아 그 분을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항량은 초나라 마지막 왕인 회왕의 자손 '심'을 찾아 똑같이 회왕으로 모신다. 그리고 초나라의 정규군이 된 항량군은 反秦의 중심에 서게 된다. 물론 초왕이라고는 하지만 그 실제는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항우가 초의 상장군이 되어 秦을 무너뜨리고 유방과 대립하며, 회왕은 '義帝(의제)'로 칭해진다. 하지만 그 후 쓸모가 없어져, 항우에게 제거당하게 된다.

여기에서 '차시환혼'은 두 번 등장한다. 먼저 진승과 오광이 항연과 부소를 사칭한 것, 그리고 항량과 항우가 초회왕을 세운 것이 바로 그것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차시환혼'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趁火打劫 (진화타겁, chènhuǒdǎjié)

趁火打劫(진화타겁)


趁火打劫 (chènhuǒdǎjié)

趁 좇을 진 | 火 불 화,화반 화 | 打 다스 타 | 劫 빼앗을 겁,겁 겁 |


三十六計 勝戰計 第五計. 불난 틈을 타서 도적질을 하다. 다른 사람이 위험하거나 위급한 틈을 타서 남의 권익을 침범하다.


불난 집에 들어가 도둑질하다. 쉽게 말하자면 '불난 집에 도둑 든다'는 얘기다. 적의 재난과 내분, 외환 등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재빨리 쳐들어가서 승리를 주우라는 이야기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적이 당한 재난이 클때, 그것을 기회로 삼아 형세에 편승하여 승리를 거둔다. 그것이 강함(剛)으로 부드러움(柔)을 끊는다는 것이다.[敵之害大,就勢取利,剛決柔也.]"

예를 살펴보자.

초한지를 보면 촉으로 쫓겨간 유방이 한신을 앞세우고 진창으로 밀고 나와 순식간에 관중을 점령해 버린다. 물론 이는 三秦王(삼진왕)들과 항우의 방심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항우가 제나라의 반란을 제압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제나가의 반란이 없었다면 항우가 단번에 유방을 제압해 버렸을 것이다.

항우는 秦을 무너뜨린 후 논공행상을 통해 용감히 싸운 장수들을 왕으로 임명했는데, 그 이전에 정치적으로 병사들을 모으고 외교적으로 힘을 기울였던 원래의 왕들은 모두 폐하여졌다. 이에 불만을 품은 제나라의 전영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토벌하기 위해 그쪽에 항우가 가 있던 사이에, 유방이 슬그머니 관중을 차지해 버린 것이다. 그 이후에 항우가 유방을 토벌하려 하자 유방은 항우에게 서신을 보냈는데, 그 내용은 '자신은 고향이 그리워 나왔을 뿐이지, 서초패왕과 다툴 생각이 없다. 오히려 제나라 쪽이 위험하니 그 쪽에나 신경을 쓰라'는 내용이었다. 항우는 그 말을 믿고 제나라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사이에 유방은 야금야금 세력을 넓혀갔던 것이다.

또한 유방이 항우를 최종적으로 이기는 데에는 한신의 힘이 컸다. 한신은 유방의 휘하군이 아니라 별동대로서 활약했다. 항우가 유방에게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에 한신이 항우가 없는 곳에서 세력을 키워 마침내는 항우와 유방보다도 큰 세력을 이루게 된다.

역사에서 가장 흔히 살펴볼 수 있는 예는 '적의 군주나 장수가 죽어서 혼란에 빠져 있는 사이에 쳐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그에 못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적이 喪을 당했을 때 공격하는 것은 仁義에 어긋납니다' 라며 말리는 신하들의 모습이다. 그만큼 성공한 예도 많고, 실패한 예도 많다.

三國志演義에 등장하는 일화를 하나 살펴보자.

조조의 아버지 조숭이 서주에서 살해당하자, 조조는 병사들을 거느리고 서주를 짓밟는다. 그 틈을 타서 승냥이 여포가 연주를 함락시키고 복양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조는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하지만 서전에서 여포에게 패하고, 거기에 복양에서 여포의 계략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한다. 겨우 살아난 조조는 복수를 꾀한다.

"하찮은 놈의 계략에 빠졌구나. 내 반드시 복수해 주리라."

곽가가 말한다. "어서 계책을 펴소서."

"지금은 놈들의 계책을 역이용해야겠다. 내가 화상을 입고 火毒(화독)이 퍼져 오경 때 이미 죽었다고 거짓말을 퍼뜨려라. 여포는 반드시 군사를 이끌고 공격해 올 것이다. 우리는 마릉산 속에 숨어 있다가 그들을 치면 여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군사들에게 상복을 입히고 發喪(발상)준비를 하도록 하며 조조가 죽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 소식을 들은 여포는 즉시 공격해 들어왔으나 미리 대비하고 있던 조조에게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겨우 복양으로 돌아갔다.

이는 진화타겁을 역으로 이용한 예이다.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喪을 기화로 공격하거나 이를 역으로 이용하는 계략이 부지기수였다.

三國志演義에서 喪을 이용한 계략이라 하면, 다음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도망치게 했다'는 이야기.

오장원에서 대치하고 있던 魏와 蜀. 제갈량이 계속 싸움을 걸어도 절대로 싸우지 않던 사마의는 어느 날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제갈량이 죽었음을 예감한다. 그리고 촉군이 물러가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는 제갈량이 죽었다고 확신하고 병사들을 이끌고 추격에 나선다. 하지만 후미의 사륜거에 제갈량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크게 놀라 도로 달아난다. 후에 제갈량이 생전에 만들어 놓은 나무인형이었음을 알고는 제갈량의 재주에 감탄해 마지 않는다.

指桑罵槐 (지상매괴, zhǐsāngmàhuái)

指桑罵槐(지상매괴)

指桑骂槐(zhǐsāngmàhuái)

指 가리킬 지 | 桑 뽕나무 상 | 罵 꾸짖을 매 | 壞 무너질 괴,앓을 회 |


이 사람을 가리키며 실제로는 저 사람을 욕하다. 빗대어 욕하다. 빈정대다.


三十六計(삼십육계) 倂戰計(병전계) 제26계 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욕하다. 이는 상대방에 대해서 직접적인 비난이 곤란할 경우, 제3자를 비난하는 듯하게 하여 간접적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을 뜻한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복종하게 하려면 경고의 방법을 써야 한다. 단호한 가운데 복종을 이끌어 내고, 과감하게 행동해서 심복시킨다.[大凌小者,警以誘之.剛中而應,行險而順.] "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功戰計(공전계) 중의 打草驚蛇(타초경사)를 설명하면서 등장했던 鄭莊公(정장공)의 이야기이다. '타초경사'에서도 얘기했듯이, 정장공은 자신이 없는 틈을 타 반역을 꾀하던 동생, 공숙 단을 처단하고 이에 내응하려 했던 어머니를 '황천에 가기 전에는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

정장공의 어머니 강씨는 정장공을 대할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강씨는 궁중을 떠나 영 땅으로 갔다. 그 뒤 정장공은 鄭城(정성)으로 돌아가 탄식했다.
"내 하는 수 없이 동생을 죽였지만 어찌 모친마저 멀리 여의고 천륜의 죄인이 되었단 말인가!"

이때, 영곡 땅을 다스리는 지방 관리의 이름은 영고숙이었다. 그는 위인이 매우 정직해서 사사로운 정으로 매사를 판단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원래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 있기로 유명했다. 그는 정장공이 그 어머니 강씨를 영 땅에다 안치시켰다는 소문을 듣고 탄식했다.
"어미가 어미답지 못할지라도, 자식은 자식의 도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주공의 이번 처사는 敎化(교화)를 상하게 하는구나."

영고숙은 몇 마리의 올빼미를 구해다가 정장공에게 바쳤다.
"이는 무슨 날짐승인가?"
"이 새는 올빼미라고 합니다. 낮이면 태산도 보지 못하며, 밤이면 능히 추호까지 분별합니다. 곧 조그만 것은 볼 줄 알지만, 큰 것은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올빼미는 어릴 때 어미의 젖을 먹고 일단 장성하면 그 어미를 쪼아 먹기 때문에 세상에선 不孝(불효)한 새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슴지 않고 이 새를 잡아먹습니다."
"..."
정장공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여기에서 영고숙이 '올빼미를 욕하면서 간접적으로 불효한 처사를 행한 정장공을 힐난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욕한 것이다.

이후 영고숙의 간언에 따라 지하에 황천을 만들고 그곳에서 어머니 강씨를 만나, 함께 정성으로 돌아왔다. 백성들은 정장공이 모친을 모시고 함께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모두 이마에 손을 대고 행렬을 바라보면서 찬탄하였다.
"참으로 우리 주공은 효자로다."
그러나 이는 모두 다 영고숙의 공로였다고 列國志(열국지)에서는 말하고 있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旁敲侧击(방고촉격, pángqiāocèjī) 양 옆과 측면을 치다. (문장이나 의견을) 빙빙 돌려 말하다. 말을 에두르다.
指鸡骂狗(지계매구, zhǐjīmàgǒu) 이 사람을 가리키며 실제로는 저 사람을 욕하다. 빗대어 욕하다. 빈정대다.

반의어

直言不讳(직언불휘, zhíyánbúhuì) 거리낌없이 솔직하게 말하다. 기탄없이 말하다.
畅所欲言(창소욕언, chàngsuǒyùyán)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다.

참조어

打草驚蛇(타초경사) |


三十六計, 삼십육계, 三十六計:倂戰計, 삼십육계:병전계, 36계

走爲上 (주위상, zǒuwéishàng)

走爲上(주위상)

走为上(zǒuwéishàng)

走 달릴 주 | 爲 하 위,할 위 | 上 윗 상 |


피해를 입지 아니하려면 달아나는 것이 제일 나은 꾀임을 이르는 말.

調虎離山 (조호이산, diàohǔlíshān)

調虎離山(조호이산)

调虎离山(diàohǔlíshān)

調 고를 조 | 虎 호랑이 호 | 離 떠날 이 | 山 메 산 |


三十六計(삼십육계) 攻戰計(공전계) 제15계. '호랑이를 유인하여 산을 떠나게 하다'라는 뜻으로, 적으로 하여금 유리한 곳에서 벗어나게 하여 힘을 약화시킨 다음에 공격하는 전략을 말한다.


36계 가운데 공전계(攻戰計)에 속한다. 상대방을 유인하여 본거지로부터 끌어내서 싸우라는 것이다. 산중(山中)의 왕이라고 하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가 그 위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산중을 떠나게 하여 힘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보통 요새에 틀어박혀 굳게 지키기만 하는 적을 밖으로 끌어내어 공략하는 데 사용하는 계책이다.

이 계책에 대한 설명은 "하늘이 적을 곤란하게 만들 때를 기다리고, 인위적으로 적을 유인하여 그 행로를 어렵게 만든다(待天以困之, 用人以誘之, 往蹇來連)"는 것이다. 往蹇來連는 往蹇來返라고도 한다. 자연적인 여러 가지 조건이나 상황들이 적에게 불리할 때를 기다리고, 위장 전술을 펴 적으로 하여금 유리한 근거지를 벗어나게 함으로써 우세한 점을 잃게 한 뒤에 제압하여 승리를 취한다는 말이다.

《손자(孫子)》에서도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적을 공격하는 것을 하책(下策)이라 하고, 실패하기 쉽다고 하였다. 적이 이미 유리한 지세(地勢)를 차지하고 있고, 응전할 준비가 잘 되어 있는 경우에는 아군의 작은 이익을 버림으로써 적을 유인하여 견고한 방어지에서 나오도록 한 뒤에 공략하여야 승리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그 의미는 조호이산과 같다.

'조호이산'의 전형적인 예로 흔히 꼽는 것이 바로 한나라의 名將, 韓信(한신)의 예이다.

초에 붙은 趙(조)를 치기 위해 한신이 조나라를 향했을 때의 일이다. 조나라를 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20만 조군에 비해, 한신은 약 2만의 군사만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는 투항병들을 많이 받아들여 군사가 많았으나, 항상 유방이 군사들을 빼내갔기 때문이었다.

조나라로 향한 한신은 '정형구'라는 곳에 이르렀다. 이 정형구는 길이 굉장히 좁아서 사람이 2열로 지나가기도 어려운 곳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군사를 가지고 이 곳을 지나갈 때 공격을 받는다면 패배는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조군은 정형구를 지나오는 한신군을 공격하지 않았다. 병사의 수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형구를 지나 병사를 정렬한 한신은 밤중에 별동대를 시켜 비밀리에 임무를 주어 보내고, 다음날 남은 병사들을 조나라 성 앞에 흐르고 있는 강물을 등지고 포진했다(유명한 '背水의 진'이다). 이에 조나라 군사들은 코웃음을 쳤다. 배수진은 그야말로 병법의 금기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한신을 '병법도 모르는 풋내기'라고 생각했다.

한신을 풋내기라고 생각한 조군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만다. '지키는 입장의 유리함'을 버리고 성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전투가 벌어지자 갑자기 조군의 뒤에서 함성소리가 들렸다. 한신이 미리 보내둔 별동대가 조군이 성 밖으로 나간 틈을 타서 성을 장악한 것이었다. 그리고 강을 등에 진 병사들의 필사의 분전 앞에 조군은 무너져 버리고 만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声东击西 |


병법, 36계, 三十六計, 삼십육계, 三十六計:攻戰計, 삼십육계:공전계

李代桃僵 (이대도강, lǐdàitáojiāng)

李代桃僵(이대도강)

李代桃僵(lǐdàitáojiāng)

李 오얏 리 | 代 대신할 대 | 桃 복숭아 도 | 僵 넘어질 강 |


三十六計 敵戰計 第十一計.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를 대신하여 넘어지다'라는 뜻으로, 작은 손해를 보는 대신 큰 승리를 거두는 전략이다. 그 외에 '형제는 마땅히 환난고락을 같이 나누어야 한다', '어떤 것으로 다른 것을 대체하다', '타인의 과실을 대신 책임져 주다', '남을 대신하여 희생하다' 등의 의미도 있다.


오얏나무가 복숭아나무 대신 쓰러지다. 이는 '중요성이 적은 것을 희생하여 중요성이 큰 것을 살린다'는 뜻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복숭아나무의 병충해가 심해서 그 옆에 오얏나무를 심어 쓰러뜨리면 병충해가 오얏나무에 집중되어 복숭아나무가 무사히 자랐다고 한다.

중국 고대와 중세의 악부시를 집대성한 《악부시집(樂府詩集)》에 실린 '계명(鷄鳴)'이라는 시에서 유래되었다. 이 시는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를 대신하여 벌레들에 갉아먹혀 희생하는 것을 형제 간의 우애에 빗대어 노래하였다.

"복숭아나무 우물가에서 자라고, 자두나무 그 옆에서 자랐네. 벌레가 복숭아나무 뿌리를 갉아먹으니,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를 대신하여 죽었네. 나무들도 대신 희생하거늘, 형제는 또 서로를 잊는구나[桃生露井上, 李樹生桃旁. 蟲來齧桃根, 李樹代桃僵. 樹木身相代, 兄弟還相忘]."

여기서 이대도강이라는 성어(成語)가 생겼고, 병법에 응용되어 작은 것을 희생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어내는 전략을 뜻하게 되었다. 이른바 나의 살을 내주고 적의 뼈를 취하는 전략이다. 전쟁에서 아군과 적군은 제각기 장단점이 있으며,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는 어려운 법이다. 승부의 비결은 장단점을 서로 비교하여 단점으로써 장점을 이기는 데 달려 있다.

병법 36계의 원문의 해설은 다음과 같다.

"싸움에는 반드시 손해가 따르기 마련이다. 부분적인 손해를 무릅쓰고, 대국적인 이익을 취해야 한다.[勢必有損,損陰以益陽.]"

이것은 이른바 '살을 내주고 상대방의 뼈를 자르는' '肉斬骨斷(육참골단)'과도 뜻이 통한다 할 것이다. 이는 양동작전시의 주력부대가 승리를 차지하기 위해 미끼부대를 버린 돌로 삼는 식의 작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승리를 위해서 작은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몇가지 살펴보자.

또 한사람의 孫子(손자)로 불리우는 전국시대 제나라의 '손빈'의 일화이다.

손빈이 위나라에서 탈출하여 제나라로 망명한 후 제위왕은 손빈에게 벼슬을 주려 했다. 이에 손빈은 '자신이 제나라에서 벼슬을 산다는 것이 위나라에 알려지면 방연이 무슨 간특한 짓을 꾸밀지 모른다'는 이유로 벼슬을 사양한다.

제위왕은 여가시간에 종족과 공자들을 거느리고 사냥터에 나가서 내기를 걸고 경주를 하거나 활을 쏘는 것이 취미였다. 그런데 제위왕의 종족인 대장군 전기(田忌)는 말[馬]이 그다지 좋지 못해서 겨룰 때마다 늘 지기만 했다. 그래서 전기는 제위왕에게 늘 막대한 돈을 잃곤 했다.

어느날 전기는 손빈을 데리고 나가 내기를 구경시켰다. 그 날도 전기는 제위왕과 세번을 겨루어 다 지고야 말았다. 이에 전기에게 의탁하고 있던 손빈은 마차를 끄는 말에 상중하의 등급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전기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내일 다시 왕과 내기를 하시오. 내 반드시 그대가 이기게 해드리리다."

이에 전기는 왕에게 가서 내기를 청하고, 돌아와 손빈에게 계책을 물었다. 손빈이 대답했다.

"왕은 제나라에서 좋은 말을 다 가지고 계시오. 그대가 순서대로 왕과 겨루다가는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기기 위해서는 다음의 방법을 써야 합니다. 먼저 그대는 가장 좋지 못한 말을 타고 왕의 가장 좋은 말과 경주하십시오. 그리고 대왕이 보통 말을 타시거든 당신은 가장 좋은 말을 타고 경주하십시오. 또 대왕이 가장 좋지 못한 말을 타시거든 당신은 보통 말을 타면 됩니다. 그러면 세 번 내기에서 한 번은 지겠지만, 두 번은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손빈의 계책에 따라 전기는 한 번은 지고 두 번은 이겼다. 여기서 손빈이 사용한 계책이 이대도강의 예이다. 하등급 말이 상등급 말과 겨루면 질 것이 뻔하지만 다른 두 번의 승리를 위하여 한 번 지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결국 전기는 한 번 졌지만 두 번을 이김으로써 왕자들로부터 천금을 딸 수 있었다.

전기는 그 후에 왕에게 자신이 이긴 것은 손빈의 계책 덕분이라는 것을 고했다. 이에 제위왕은 손빈을 존경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져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손빈에게 상을 내렸다.

이와 다른 방면의 예를 또 하나 살펴보자.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일화이다. 완성에서 전위를 잃고 살아돌아온 조조는 또다시 '황제'를 자칭하는 원술의 토벌에 나섰다. 조조군에 차츰 밀리던 원술은 식량을 모두 거두어 회수 건너로 후퇴했다. 이 해에 커다란 흉년이 들어 양식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17만 조조군은 양식이 부족해 곤란을 겪고 있었다. 이에 조조는 손책에게 양곡 10만 섬을 빌려왔다. 하지만 그것으로 병사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양곡관리관의 부하인 창고지기 '왕후'가 들어와 조조에게 품했다.

"군사는 많고 양식은 적으니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작은 되로 나누어 주어 우선 급한 불이나 끄면 될 것이다."
"병사들이 원망을 하면 어찌합니까?"
"나에게 생각이 있느니라."

왕후는 명령에 따라 작은되로 병사들에게 양곡을 배급했다. 조조가 암암리에 사람을 보내 살펴보니 모든 병사들이 '승상(조조)이 우리를 속였다'며 불평하고 있었다. 조조는 남몰래 왕후를 불렀다.

"내 너에게 한가지 물건을 빌리고자 한다. 그것만 있으면 군사들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으니 너는 인색하게 굴지 말지어다."
"무엇을 빌리려 하시옵니까?"
"너의 머리를 빌려야겠다."
"저는 아무 잘못도 없사옵니다."
"나 역시 너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군사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네 식솔들은 모두 책임지고 보살필 것이니 아무 걱정 말라."

조조는 왕후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장대에 매달고 방을 붙였다.

'왕후가 군량을 작은 되로 나누어 주며 군량을 착복했으므로 군법에 따라 다스리노라.'

이리하여 조조에 대한 군사들의 원망은 비로소 해소되었다.

그리고는 원술을 무찌름에 있어, 조조는 스스로 앞장 서며 칼을 들고 적을 베고 말에서 내려 흙을 퍼 해자를 메웠다. 이 모습을 본 장수와 군사들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원술의 본거지인 수춘성을 함락시키기에 이르렀다.

이 역시도 작은 희생으로 큰 승리를 거머쥔 계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승리'란 원술을 무찌른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병사들을 진정시킨 것을 뜻한다.


출전

악부시집(樂府詩集) 상화가사(相和歌辭) 계명(鷄鳴) | 三十六計 |


관련 한시

鷄鳴(계명) |


관련 한자어

참조어

肉斬骨斷(육참골단) | 煮豆燃萁(자두연기) |


36계, 삼십육계, 삼십육계:적전계, 병법

三十六計, 三十六計:敵戰計

連環計 (연환계, liánhuánjì)

連環計(연환계)

连环计(liánhuánjì)

連 이을 련 | 環 고리 환 | 計 셀 계 |


'고리를 잇는 계책'이라는 뜻으로, 여러 가지 계책을 교묘하게 연결시킨다는 의미이다. 중국의 고대 병법인 36계 가운데 敗戰計(패전계) 35번째 계책이다.


연환(連環)이란 고리를 연결한다는 뜻이다. 36계 가운데 미인계(美人計)·공성계(空城計)·반간계(反間計)·고육계(苦肉計) 등과 함께 패전계(敗戰計)에 속한다. 패전계란 패세에 몰린 싸움에서 기사회생하여 승리를 이끌어내는 계책이라는 뜻이다.

이 계책에 대한 설명으로는 "적의 장수와 병사들이 많을 때는 정면으로 대적할 수 없다. 적으로 하여금 스스로 묶어 놓게 함으로써 그 기세를 죽여야 한다. 아군의 군사(軍師)가 뛰어나면 하늘의 은총을 입는다(將多兵衆, 不可以敵, 使其自累, 以殺其勢. 在師中吉, 承天寵也)"라고 하였다.

三國志演義에 보면 '連環計(연환계)'라는 말이 여러번 등장한다. 그 중 첫번째는 왕윤이 초선을 이용한 연환계, 둘째는 방통이 조조의 선단을 쇠사슬로 연결하게 한 연환계, 셋째는 여러 계책을 연결시켜 사용한 것을 뜻하는 연환계이다. 이 세가지에 쓰인 연환계의 의미가 각각 다르다.

첫번째로 쓰인 연환계는 왕윤(王允)이 '초선(貂蟬)'이라는 쇠사슬로 동탁(董卓)과 여포(呂布)의 발목을 묶어 둘 다 망하게 하고자 사용한 계략을 뜻한다. 왕윤은 '초선'을 이용해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해서 둘이 서로 발목을 붙잡게 만들어서, 둘 모두를 망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마치 죄수 둘의 발목을 쇠사슬로 연결해 두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될 것이다.

두번째로 쓰인 연환계는 방통(龐統)이 적벽대전(赤壁大戰)에 앞서 화계를 성공시키고자, 조조(曹操)에게로 가서 배멀미와 물 때문에 고생하는 조조군에게 내놓은 계략이다. 방통이 조조에게 건의한 연환계는 선단(船團)을 서로 쇠사슬로 연결하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서 배가 흔들리지 않게 하여, 육지와 같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그 진짜 의미는 유(周瑜)가 화계를 썼을때, 배들이 흩어져 달아나지 못하게 하여 피해를 증대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첩자를 적에게 보내 계책을 꾸미게 하고, 그 사이에 적을 공격하여 승리를 얻은 경우로서, 연환계의 대표적인 예로 언급된다.

세번째로 쓰인 연환계는 <'연환'의 계> 라기 보다는 <'계'의 연환>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여러 계책들을 빈틈없이 엮어서 몰아치는 것으로 이것도 '연환계'라는 용어로 쓰여왔다.

그 외에 송(宋)나라의 장수 필재우(畢再遇)는 금(金)나라 병사들과의 전투에서 진격과 퇴각을 거듭하여 하루종일 적군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향료를 넣어 삶은 콩을 땅에 뿌려 놓고는 적을 도발하여 싸우는 척하다가 도망쳤다. 승세를 놓칠세라 추격하던 적군이 콩을 뿌려 놓은 곳에 이르자, 하루종일 굶주린 적군의 말들은 콩을 먹느라 채찍을 휘둘러도 움직일 줄을 몰랐다. 필재우는 이 틈을 타서 역습하여 대승을 거두었는데, 이 전략도 연환계의 한 예로 언급된다.


36계, 삼십육계, 삼십육계:패전계, 병법

三十六計, 三十六計:敗戰計

順手牽羊 (순수견양, xiàolǐcángdāo)

順手牽羊(순수견양)

笑里藏刀(xiàolǐcángdāo)

順 순할 순 | 手 손 수 | 牽 끌 견 | 羊 양 양 |


三十六計 敵戰計 第十二計. '기회를 틈타 양을 끌고 가다' 또는 '손에 잡히는 대로 양을 끌고 간다'라는 말로, 병법에서 작은 틈과 작은 이익이라도 놓치지 않고 이용하는 책략을 뜻한다.


원래는 기회를 틈타 남의 양을 훔쳐 끌고 간다는 뜻이다. 적의 허점을 발견하면 주저없이 이에 편승하라는 뜻으로 36계에서는 이것을 응용하여 적전계(敵戰計), 곧 아군과 적의 세력이 대등한 경우에 사용하는 계책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적이 드러낸 허점이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반드시 이용하고, 아군에게 유리한 점은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반드시 때를 놓치지 않고 쟁취한다(微隙在所必乘, 微利在所必得.少陰,少陽.)"는 것이다.

이는 《육도(六韜)》에서 "잘 싸우는 사람은 아군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될 때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절한 때가 되면 의심을 품지 않고 단행한다(善戰者, 牽利不失, 遇時不疑)"라고 말한 것과 통한다. 적의 허점을 놓치지 않고 공격하여 작은 승리를 거두고, 이러한 작은 승리가 쌓이면 큰 승리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로 적이 이동하면서 드러내는 허점을 공격하여 승리를 얻어내는 것을 말한다.

4세기 때 전진(前秦)의 황제 부견은 동진(東晉)을 정복하기 위하여 90만 대군을 징집하였다. 부견은 동생인 부융을 선봉대로 보내어 수양을 점령하였다. 부융은 동진의 병력이 적고 군량도 부족한 사실을 파악하고, 부견에게 빨리 공격할 것을 건의하였다. 부견은 90만 대군이 모두 집결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수천 명의 기병만 이끌고 수양에 당도하였다.

동진의 장군 사석(謝石)은 전진의 대군이 모두 집결하지 않은 틈을 타서 적의 선봉을 공격하여 격퇴시킴으로써 적의 예봉을 꺾었다. 이후 동진과 전진은 비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되었는데, 사석은 중과부적이므로 속전속결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였다. 사석은 교만한 부견을 자극하여, 물을 사이에 두고 싸우기 불편하니 조금만 병력을 후퇴시키면 물을 건너가 싸우겠노라는 뜻을 전하였다.

부견은 동진의 군대가 물을 건널 때 기습하여 섬멸할 요량으로 군대를 후퇴시켰는데, 전진의 병사들은 그 이유를 모르고 동진에 패하여 후퇴하는 줄로만 알고 서로 먼저 도망치려 하는 바람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동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수를 건너 공격하였고, 부견은 그 와중에 화살에 맞아 부상하여 겨우 10만 병사만 이끌고 장안으로 돌아갔다.

이 전투를 비수전투라고 하는데, 고대 전쟁사에서 열세인 병력으로 강대한 적을 상대하여 승리한 전례(戰例)의 하나로 꼽힌다. 이 전투에서 동진이 사용한 병법이 순수견양의 예로 인용된다.

또 다른 예를 하나 살펴보자.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유명한 일화이다.

적벽대전 이후 형주에 눌러앉은 유비는 형주를 반환하라는 吳의 요청을 완전히 묵살하고 있었다. 이에 吳의 주유와 손권이 이를 갈고 있었는데, 사자로 보냈던 노숙에게서 '병사들이 모두 상복을 입고 있었고, 喪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주유가 누가 죽었는지 묻자 유비의 부인인 감부인이 죽었다고 했다. 이에 주유는 계책을 내놓으며 형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유비는 부인들이 모두 죽었으니 당연히 새장가를 들어야 할 것이다. 이에 주유는 손권의 여동생을 미끼로 유비를 꾀어 죽일 계책을 세운다. 그리고는 유비에게 사자를 보내 양가가 인척을 맺고 힘을 합쳐 조조를 무찌르자는 뜻을 전하게 한다.

이에 형주에서는 제갈량이 이를 눈치채고 조운을 동행하여 유비를 동오로 보낸다. 의심을 품고 감히 가지 못하는 유비였으나 제갈량이 이미 계책을 세워두었다고 하자 길을 떠난다. 그리고 제갈량은 조운을 불러 금낭(비단주머니) 세개를 주며 순서대로 행하라 이른다. 유비 일행이 남서에 도착하자 조운이 첫번째 금낭을 열었다. 거기에 쓰여진 계책에 따라 병사들에게 지시한다. 그리고는 유비에게 교국로를 찾아가 만나라고 여쭈었다. 교국로는 '강동의 이교(손책의 부인 대교와 주유의 부인 소교)'의 아버지였다. 유비는 교국로를 만나 이번에 동오로 장가를 들러 왔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병사들은 떠들썩하게 혼례용품을 구입하며 유비가 동오로 장가들러 왔다는 소문을 계속 퍼뜨렸다.

한편 교국로는 유비를 만난 후 오국태(손권의 이모. 손권의 친어머니는 일찍 죽었고 그 이모가 길렀다)를 만나 경사를 축하했다. 이에 오국태는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하고, 교국로가 유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손권을 만났다.

"너는 이렇게 나를 무시할 셈이냐? 나의 언니가 돌아가실 때 너에게 뭐라고 분부하시더냐?"
"어머니! 하실 말씀이 계시면 분명히 하소서. 무엇 때문에 이리 서러워 하시옵니까?"
"사내가 장가들고 계집이 시집가는 것은 고금의 이치이다. 그러나 내가 너의 어미가 되었으니 그런 일은 당연히 나에게 묻고 명을 받아야 할 터인데, 너는 유현덕을 매제로 삼으려 하면서 어찌 나를 속이느냐?"

손권이 깜짝 놀라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니옵니다. 이는 주유의 계략이옵니다. 형주를 빼앗기 위해 구실을 내세운 것 뿐입니다. 유비를 속여 이곳에 잡아 가두고 그와 형주를 바꿀 생각이었습니다. 이는 계략이지 진실로 혼사를 맺고자 함이 아니옵니다."

이에 오국태가 크게 노해 손권을 꾸짖는다.

"주유는 6군 81현의 대도독으로 있으면서 형주 하나 빼앗을 계책이 없어서 나의 딸을 구실로 유비를 죽이겠다고 하더냐? 그러면 나의 딸은 바로 까막과부가 될터인데 앞으로 어떻게 다시 시집을 가라고 말하겠느냐? 내 딸의 평생을 그르쳐 놓게 생겼으니 너희들은 참 잘도 했구나!"

이에 교국로가 '일이 이렇게 되었고, 유황숙은 황실의 종친이니 그를 정말로 사위로 맞아들여 망신을 면하는게 낫겠다'며 옆에서 거든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손권이 말하자, 유황숙은 세상의 호걸이니 이는 영매에게도 욕되지 않을 것이라 한다. 이에 오국태는 자신이 유비를 만나보고 마음에 들면 사위로 삼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유의 마음대로 하라고 말했다.

이에 손권은 연회를 준비시키는 한편 병사들을 매복시켜 놓으라 지시한다. 그리고 유비를 불렀는데 유비는 조운이 이끄는 5백 병사의 보호를 받으며 감로사에 왔다. 손권은 현덕의 풍채가 비범한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다. 오국태는 현덕을 보자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사위라 말했다. 갑자기 유비가 울며 말한다.

"만일 유비를 죽이시려거든 이 자리에서 즉시 죽여주소서!"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가?"
"도처에 도부수들을 숨겨 놓으셨으니 유비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옵니까?"

이에 오국태는 크게 노해 손권을 꾸짖었다. 그리고는 유비와 손부인의 혼례가 치러졌다. 주유는 크게 놀랐다. 그리고는 다른 계책을 손권에게 전했다. 그 계책은 유비는 가난하게 자라서 풍요로운 생활을 한 적이 없으니 그에게 온갖 사치를 시켜주어 형주로 돌아갈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이 계략은 제대로 먹혀서 유비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형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에 조운은 두번째 금낭을 열고 계책을 실행한다. 유비를 만나서 형주가 조조의 침입을 받고 있으니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유비에게 말한 것이다. 유비는 돌아가려 하나 동오에서 순순히 보내줄까 염려했다. 이에 손부인이 꾀를 내어 설날에 동오를 빠져나간다. 하지만 이윽고 손권의 부하들이 추격해 오자 조운이 세번째 금낭을 열었다. 이에 유비가 손부인에게 울면서 지금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손부인은 직접 나서서 자신들을 추격해온 손권의 부하 장수들을 오히려 꾸짖어서 돌려보낸다. 이에 손권은 크게 화가 나서 손부인의 목도 유비의 목과 함께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유비는 강 기슭에 도착하였으나 배가 한 척도 없었다. 그리고 동오의 군사들은 바로 지척까지 와 있었다. 유비가 이제 죽었구나 탄식하는데 갑자기 강 기슭에 돛단배 20여척이 일렬로 늘어선다. 유비와 손부인이 황급히 배에 오르고, 조운도 병사들과 배에 오르자 한 사람이 나와 웃으며 말했다.

"주공! 우선 축하드리옵니다. 제갈량이 여기서 기다린지 이미 오래이옵니다."

배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형주의 수군이었다. 제갈량이 동오의 병사들을 보고 말했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너희들은 돌아가 주랑에게 다시는 미인계 같은 수단을 쓰지 말라고 전하여라!"

그리고 돌아가는데 동오의 병사들이 추격해왔다. 또한 소식을 들은 주유도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나왔다. 그리고 배가 형주에 이르자 배에서 내려 추격해갔다. 하지만 이미 형주에는 관우, 황충, 위연등이 모두 대기하고 있어서 동오의 군사는 크게 패하였다. 허둥지둥 달아나는 동오의 병사들을 보며 병사들이 소리쳐 놀려댔다.

"천하를 안정시키겠다던 주유의 묘책이, 부인만 얻어 주고 군사마저 잃었구나!"

이는 주유의 계책을 간파하고 그 헛점을 노려서 양(손부인)을 끌고와 버린 틀림없는 '순수견양'이라 할 것이다.

위 사례에서 연의에서 묘사하고 있는 예이나, 정사와는 다르다. 실제로 손권이 혼인을 청한 것은 나날이 늘어가는 유비의 인기에 편승해 보고자 했을 따름이며, 따라서 유비를 죽일 생각 같은 것은 전혀 없었고, 동오행이 위험하다고 말린 것은 소심한 제갈량이었으며, 그 만류를 뿌리치고 동오로 간 것이 유비였다. 위의 이야기는 나관중이 지어낸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순수견양 계략은 실행하는 데 있어서 주의가 필요한 계략이다. 적의 작은 헛점도 놓치지 말고 공략하여, 아군은 작은 이익이라도 꼭 챙겨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상당한 위험부담의 문제가 있다. 바로 상대방의 속임수에 넘어갈 위험이 있는 것이다. 같은 삼십육계 내에서만 봐도 제6계 '성동격서(동쪽에 소리내고 서쪽을 친다)', 제8계 '암도진창(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창으로 건너가다)', 제11계 '이대도강(오얏나무가 복숭아나무 대신 쓰러지다)', 제13계 '타초경사(풀을 쳐 뱀을 나오게 하다)', 제16계 '욕금고종(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풀어주다), '제17계 '포전인옥(돌을 던져서 구슬을 얻다)' 등등 작은 이익으로 상대방을 꾀어내는 계략들이 많다.

樹上開花 (수상개화, shùshàngkāihuā)

樹上開花(수상개화)

树上开花(shùshàng kāihuā)

樹 나무 수 | 上 윗 상 | 開 열 개 | 花 꽃 화 |


'나무 위에 꽃을 피운다'라는 뜻으로, 본래 꽃을 피울 수 없는 나무에 조화(造花)를 진짜 꽃처럼 장식하여 상대방을 속인다는 말이다. 삼십육계 가운데 29번째 계책이다.


철수개화(鐵樹開花:쇠나무에 꽃이 피다)가 전화(轉化)한 것으로, 원래는 지극히 실현되기 어려운 일을 비유하는 말이었다. 중국의 대표적 병법의 하나인 삼십육계에서는 병전계(倂戰計:동맹 등을 맺어 함께 싸울 때의 계략)에 속하는 29번째 계책으로 사용되었다. 원뜻은 '꽃이 없는 나무 위에 꽃이 핀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의미이다. 쉽게 말해서 '없으면서도 있는척' 하는 것이다.

그 내용은 '형세에 따라 위세를 떨치면, 작은 세력이라도 큰 세력처럼 꾸밀 수 있다. 기러기가 높은 하늘을 날 때 무리를 지어 날개를 활짝 펴고 대형을 이루어 나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借局布勢, 力小勢大. 鴻漸于陸, 其羽可用爲儀也).' 곧, 아군의 힘이 약할 때, 다른 세력이나 어떤 요인을 빌려 아군을 강하게 보이게 함으로써 적으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만들어 굴복시키는 것이다.

보통 병법들이 '있으면서도 없는척'을 강조한 것과는 대조된다. 손자병법 등의 병법서에서는 일관적으로 '우리측이 유리해도 열세하게 보이게 하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상대방의 방심을 이끌어 내서 승리를 취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없으면서도 있는척' 이라는 것은 우세한 상대방의 경계를 이끌어 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판단을 주저하게 하는 것이다.

사례를 살펴보자. 三國志演義 이야기이다. 이때 유비는 형주에 있다가 조조의 군세에 쫓겨 동오로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백성들이 뒤를 따른데다가, 병사도 적어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 신세였다. 또한 조조군의 추격 속에 유비의 식솔들과 장수들도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태였다.

장비는 유비군의 후위를 맡아 長坂橋(장판교)에 버티고 섰다. 그의 휘하에 있는 병사는 기병 20여명뿐이었다. 장비는 다리 일대에 숲이 우거져 있는 것을 보고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냈다. 병사들에게 나뭇가지를 잘라 말꼬리에 매달고 숲속을 달리게 하면서 흙먼지를 일으키게 했다. 그로 인해 복병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장팔사모를 비껴 든 채 다리 위에 멈춰서서 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빙이 이끄는 조조군이 장판교 어귀에 다다랐다. 장비가 호랑이 수염을 곧추세우고 고리눈을 부릅뜬채 장팔사모를 뻗쳐들고 다리 위에 말을 세우고 노려보고 있었다. 또한 다리 건너편 숲속에서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오르는 것으로 보아 복병이 있지 않을까 의심되었다. 이에 문빙은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잠시후 조인, 이전, 하후돈, 하후연, 악진, 장료, 장합, 허저 등의 장수들이 모두 도착했다. 이들은 모두 장비가 다리 위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제갈량의 계책이 아닌가 싶어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이에 조조가 보고를 받고는 앞으로 달려나왔다.

이를 보고 장비가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내가 바로 燕人 張翼德(연인 장익덕)이다! 어느 누가 나와 한 판 겨뤄 보겠느냐!"
목소리가 마치 천둥을 치는 듯했다. 그 소리를 듣는 조조의 군사들은 모두 겁에 질렸다. 조조가 급히 좌우를 돌아보고 말했다.
"전에 운장에게 들으니, 익덕은 백만대군에 둘러싸여 있는 上將의 목을 식은 죽 먹듯이 벨 수 있다고 하였다. 오늘 만났으니 가벼이 대적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장비가 또다시 외쳤다.
"싸우나 하면, 싸우지도 않고, 물러가나 하면 물러가지도 않으니 도대체 어쩌자는 것이냐!"

장비의 고함소리에 조조의 옆에 있던 하후걸이 놀라 말에서 떨어졌다. 이와 함께 조조군의 모든 병사와 장수들이 일제히 달아났다. 사람은 썰물처럼 빠지고 말들은 산사태가 무너지는 듯 서로가 밟고 밟히었다. 장비의 위용과 숲속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복병 때문에 조조군은 물러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복병이 있는 것처럼 보여 조조로 하여금 판단을 유보하게 하고, 나아가 판단을 그르치게 한 것이 바로 장비의 '수상개화'였던 것이다.

이후 장비는 장판교를 끊고 유비에게 달려가 자신이 한 일을 얘기했다. 유비가 말했다.
"나의 아우가 용감하긴 했지만, 잘못 생각한 것이 애석하다."
장비가 까닭을 묻자, 유비가 대답했다.
"조조는 지략이 뛰어난 사람이다. 네가 다리를 끊지 않았다면 그는 매복이 있지 않을까 하여 감히 전진하지 못했겠지만 이제 다리를 끊었으니, 그들은 우리가 겁을 먹고 있고 군사도 없다고 생각하여 반드시 추격해 올 것이다."

笑裏藏刀 (소리장도, xiàolǐcángdāo)

笑裏藏刀(소리장도)

笑里藏刀(xiàolǐcángdāo)

笑 웃을 소 | 裏 속 리 | 藏 감출 장 | 刀 칼 도 |


三十六計 敵戰計 第十計. 웃음 속에 칼을 품다.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해칠 생각을 가지다. '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있다'라는 뜻으로, 겉으로는 웃는 낯으로 상냥하게 대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상대방을 해칠 뜻을 품고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웃음 속에 칼날을 숨기다. 우리 옛말에 '솜으로 칼을 싼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부드러운 말씨와 미소짓는 표정으로 상대방의 경계심을 풀고 방심하게 하라는 말이다. 병법에서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하여 안심시킨 뒤에 허를 찔러 공격하는 계책이다.

원문의 풀이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성의를 보여 적을 안심시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뜻하는 바를 도모하라. 충분히 준비한 후에 행동하라. 마음 속에 剛(강)을 품고 겉으로는 柔(유)를 보여라.[信而安之,陰以圖之,備而後動,勿使有變.剛中柔外也.]"

外柔內剛(외유내강)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나는 부분이다.

전통적으로 '笑裏藏刀'의 대명사로 꼽히는 인물은 '呂蒙(여몽)' 이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서 관우를 함정에 빠뜨려 사로잡고, 관우가 죽은 후 그의 혼령에 사로잡혀 죽게된 인물, 그가 바로 여몽이다. 자세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삼국지연의》에서 적벽대전 이후 유비는 형주를 차지해 버리고, 파촉을 차지하고, 한중까지 나아가 급기야는 스스로 '漢中王(한중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자, 위나라의 조조는 오나라의 손권과 손을 잡고 형주를 치려고 하였다. 유비는 관우를 보내 형주를 지키게 하면서 위나라의 번성을 치도록 하였다. 吳의 손권은 형주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지만, 관우는 吳에 있어 공포의 대상이었다. 노숙의 뒤를 이어 대도독의 자리에 오른 여몽은 관우가 번성을 치러 간 사이에 형주를 공략하고자 하나, 관우가 남겨놓은 봉화대가 큰 걸림돌이 되었다. 결국에 여몽은 자리에 드러눕고 만다. 손권이 크게 걱정하나 '陸遜(육손)'은 그 속을 꿰뚫어 보고 여몽을 문병간다. 여몽은 형주를 탈환하고 싶지만 관우의 봉화대가 걸림돌이 되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꾀병을 앓은 것이었다. 이에 육손이 조언을 한다.

"관우는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믿고 자기를 당해낼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소. 염려하는 사람은 오직 장군이 있을 뿐이오. 장군은 이러한 기회에 병을 칭탁하고 사직한 다음, 육구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그 사람에게 관우를 비굴한 말로 찬미케 하면 관우는 마음 가득 교만해져서 형주의 군사를 철수시켜 모두 번성으로 향하게 할 것이오. 만일 형주에 방비가 없다면 어찌 함락시키지 못하겠소?"

육구에 주둔한 오나라의 여몽(呂蒙)은 관우가 마음을 놓도록 하기 위하여 병이 든 것처럼 속여 물러갔고, 육손을 추천하며 사직을 청했다.

"만일 인망이 두터운 사람을 쓴다면 관우는 반드시 대비를 할 것이옵니다. 육손은 사려가 깊으나 아직 이름이 덜 알려졌으니 관우가 경계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 대신 임용하시면 반드시 성과가 있을 것이옵니다."

이리하여 무명의 육손(陸遜)이 여몽 대신 육구를 지키게 되었다. 육손은 육구에 부임하여 관우의 무용을 칭송하는 겸손한 내용의 편지 한 통을 써서 명마와 이금, 주례 등을 준비해 번성에 있는 관우에게 보냈다. 편지는 말놀림이 극히 겸손하고 조신했다. 관우는 읽고 나서 크게 웃으며 사자를 돌려보냈다. 관우는 노련한 여몽은 경계하였지만 젊고 무명인 육손에 대해서는 애송이라 여기고, 형주 병력의 태반을 거두어 번성을 공격하는 데 투입하였다. 여몽은 형주의 병력이 취약한 틈을 타서 공격하여 봉화대를 침묵시키고 형주를 함락시켰다. 관우는 여몽과 육손의 소리장도 계책에 넘어간 것이다.

연의에서는 여몽을 깎아내리기 위해 위의 계책도 여몽이 아닌 육손이 낸 것으로 되어있고, 또한 관우가 죽은 후 여몽은 관우의 혼령에 씌어 비참하게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正史에 의하면, 위의 계략은 여몽에 의한 것이었고, 여몽은 단지 병 때문에 죽은 것 뿐이었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겉으로는 상냥하게 남을 위하는 척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해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 대표적 인물이 당나라 고종 때 중서시랑을 지낸 이의부(李義府)이다. 그는 겉으로는 온화하고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미소를 지으며 선량한 얼굴을 하였다.

그러나 마음 속은 각박하고 간사하여 음험한 계책으로 다른 사람들을 해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의부의 웃음 속에는 칼이 숨겨져 있다고 말하였다(故時人言義府笑中有刀). 이 고사는 《구당서(舊唐書)》의 〈이의부전〉에 실려 있다. 당나라 현종 때의 간신 이임보(李林甫)의 고사에서 유래된 구밀복검(口蜜腹劍)과 같은 의미이다.

소리장도의 또 다른 예는 바로 '臥薪嘗膽(와신상담)'이라는 고사의 주인공인 越王(월왕) '구천'이다.

춘추시대 말기, 위대한 전략가 손무와 명장 오자서의 힘으로 강국 초나라를 무찌르고 주변나라를 떨게 했던 吳나라의 왕 합려는 초를 치고 난 후, 越나라와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만다(이 때 손무는 은퇴한 이후이다). 이에 합려의 뒤를 이어 吳王이 된 합려의 손자인 '부차'는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한다. 그리고 합려의 상이 끝나자 곧 越을 치기 위해 군사를 움직인다. 손무는 없었지만 명장 오자서의 힘으로 월나라는 궤멸적인 타격을 받는다. 이에 월나라는 오왕의 측근인 백비를 매수하여 '월왕 부부가 신하가 되어 오나라에서 생활하는 것'을 조건으로 멸망은 면하게 된다.

월왕 구천은 오나라에 와서 오왕 부차의 신하로 생활하게 된다. 이때 '섶에 누워 쓸개를 빨며' 생활한 것이 '臥薪嘗膽(와신상담)'의 고사가 되었다. 오왕 부차의 경계를 풀기 위해 그의 배설물까지 먹어가며 고생을 하여 결국엔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물론 오자서가 반대했지만, 이미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는 오왕에겐 충신의 강직한 충언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월왕 구천은 고국으로 돌아가 즉시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복수를 계획한다. 그리고 오왕에게 많은 보물과 미인 '서시'를 바친다. '찡그린 얼굴도 그렇게 아름다웠다'는 '西施嚬目(서시빈목)'의 주인공인 서시를 선물로 받은 오왕 부차는 점점 더 방탕한 생활에 빠지게 된다. 그리하여 커다란 궁궐의 공사까지도 실행하는데 월왕은 커다란 목재를 보내 토목공사의 규모를 더 크게 부추켜 吳의 재정을 파탄나게 한다.

또한 한 해는 越나라에 흉년이 들었는데 吳나라에서 곡식을 꾸기로 했다. 과연 곡식을 빌려줄까 싶었으나 '복수를 꾀하고 있다면 곡식을 빌려달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에 따라 吳에서는 곡식을 꾸어준다. 다음해에는 越에는 풍년이 들었으나 吳에 흉년이 들었다. 월왕 구천은 이 때를 틈타 공격하려 하였으나 신하들이 만류한다. 越은 吳에 빚을 갚는다며 곡식을 보냈는데, 이 때 낱알이 좋은 것만을 골라 살짝 쪄서 보냈다. 이에 吳에서는 곡식의 품종이 좋은 것을 보고 다음해에 종자로 쓰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찐 씨앗이 자랄리가 없는 법. 吳에는 그 해에 유래없는 대흉을 맞게 되고, 이를 기회로 越은 吳를 크게 쳐 무너뜨린다. 吳王 부차는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을 받아주길 청하지만, 越王은 자신이 이미 그렇게 해서 살아남아 복수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인간의 복수심'을 쉽게 보지 않았다. 그러게 吳는 越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월왕 구천은 한 나라의 王으로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신하가 되고, 온갖 허드렛일을 다하고, 다른 사람의 대변까지 먹으면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리고는 그 힘든 날들을 지나며 복수심이 무뎌지게 하지 않기 위해 고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섶에 누워 쓸개를 빠는' 생활을 계속했다. 또한 吳王의 경계심이 느슨해지게 하기 위해 많은 뇌물을 보내 그 눈을 흐리게 만들었고, 미인 서시를 보내 정사로부터 관심이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급기야 吳를 무너뜨리기에 이른다. 이야말로 여몽의 예보다 훨씬 처절한 '笑裏藏刀'의 예라 할 것이다. 물론 이 예는 '臥薪嘗膽'으로 더 유명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관련 한자

유사어

口蜜腹劍(구밀복검) | 包藏禍心(포장화심) |

참조어

臥薪嘗膽(와신상담) | 西施嚬目(서시빈목) |


36계, 삼십육계, 삼십육계:적전계, 병법

三十六計, 三十六計:敵戰計

聲東擊西 (성동격서, shēngdōngjīxī)

聲東擊西(성동격서)

声东击西(shēngdōngjīxī)

聲 소리 성 | 東 동녘 동 | 擊 칠 격 | 西 서녘 서 |


三十六計 勝戰計 第六計. 동쪽에 소리내고 서쪽을 친다. 상대편에게 그럴듯한 속임수를 써서 공격하는 것을 이르는 말.

to make a feint to the east and attack in the west


원문의 해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적의 정세판단이 흩어져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게 되면 고여있던 물이 점차 불어나 넘쳐흐르는 상태가 되어 막지 못한다. 그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이익을 챙길 따름이다.[敵志亂萃,不虞,坤下兌上之象,利其不自主而取之.]"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을 친다'라는 뜻으로, 동쪽을 쳐들어가는 듯하면서 상대를 교란시켜 실제로는 서쪽을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통전(通典)》 병전(兵典)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중국 한(漢)나라의 유방(劉邦:BC 247?∼BC 195)과 초(楚)나라의 항우(項羽:BC 232∼BC 202)가 서로 싸우던 중 위(魏)나라의 왕 표(豹)가 항우에게 항복하였다. 유방은, 항우와 표가 양쪽에서 쳐들어오는 위험에 처하자 한신(韓信:?∼BC 196)에게 적을 공격하게 하였다.

위나라의 왕인 표는 백직(柏直)을 대장으로 하여 황허강[黃河]의 동쪽 포판(蒲坂)에 진을 치고 한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오지 못하게 하였다. 한신은 포판을 쳐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으나, 병사들에게 낮에는 큰 소리로 훈련하도록 하고 밤에는 불을 밝혀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표시를 나타내게 하였다. 백직은 이러한 한나라 군대의 작전을 보고 어리석다며 비웃었다. 한신은 비밀리에 한나라 군대를 이끌고 하양에 다다라 뗏목으로 황허강을 건너서 매우 빠르게 전진하여 위나라 왕 표의 후방 본거지(本據地)인 안이[安邑]를 점령하고 표를 사로잡았다.

병법(兵法)의 한 가지로, 한쪽을 공격할 듯하면서 약삭빠르게 상대편을 속여서 방비가 허술한 틈을 타 다른쪽으로 쳐들어가 적을 무찌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또 다른 예로 三國志(正史) 曺操傳(조조전)에 등장하는 예를 살펴보자.

하북의 강자, 원소는 조조를 치기 위해 군사를 몰아 조조의 본거지인 허도(허창)로 향했다. 그리고는 선발대를 황하 건너로 보내 백마를 포위하여 공격하고 있었다. 이에 조조는 병력을 이끌고 백마를 구원하러 가고자 했다. 이 때 조조의 병력은 원소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그 때 조조의 모사 중 한사람인 순유가 건의한다.

"적은 수가 많으니 우선 분산시키지 않으면 부수기 힘듭니다. 먼저 서쪽의 연진으로 향해서, 황하를 건너 적의 배후로 우회하는 듯한 태세를 보여야 합니다. 그러면 원소는 반드시 서쪽으로 군을 이동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그 틈에 재빨리 백마로 급행해서 불시에 무찔러야 합니다."

조조는 바로 이 '성동격서'의 전략을 택했고, 그 선택은 적중했다. 원소는 급히 군사를 나누어 서쪽으로 보냈고, 조조는 원소의 분할된 군대를 섬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예를 하나 살펴보자.

유비가 吳로부터 형주를 얻어 안주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익주를 다스리고 있던 유장은 한중의 장로(오두미교의 교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었다. 이에 유장은 동족인 유비에게 구원을 청하게 되고, 유비는 방통의 조언을 받아들여 유장을 치고자 마음먹는다.

이후 방통의 계략에 따라 익주의 성들을 하나둘 장악해 나간다. 하지만 방통이 낙봉파에서 죽게 되고, 기세가 꺾인 유비는 제갈량에게 원군을 보내달라 한다. 이에 제갈량은 관우에게 형주를 맡기고 스스로 나선다. 이때 조운, 장비도 함께 나서게 된다.

기세 좋게 전진해 나가던 장비였으나 巴郡(파군)에서 발이 멈추고 만다. 파군을 지키는 노장 엄안에게 발이 묶여 앞으로 나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아무리 싸움을 걸어도 엄안이 싸움에 임하지 않자 장비는 초조해졌다. 그 때 부하 장수 한 사람이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 파군을 지나갈 수 있는 샛길을 발견한다. 이에 장비는 그 날 밤으로 바로 군사들을 이끌고 샛길로 지나갈 계획을 세운다.

"오늘 밤 이경에 밥을 지어먹고 삼경에 달이 밝은 틈을 이용하여 영채를 거두고 모두 출발한다. 사람은 입에 함매를 물고 말방울은 모두 떼어낸 뒤 조용히 가야 할 것이다. 내가 직접 앞에서 길을 열 것이니, 너희들은 조용히 따라오도록 하라."

하지만 엄안이 파견한 염탐꾼들이 이 소식을 알고 즉각 엄안에게 보고했다. 엄안은 즉시 병사들에게 싸움에 나설 준비를 시킨다.

밤이 되고, 삼경이 지나 장비는 조용히 군사들을 이끌고 전진했다. 엄안은 장비와 병사들의 이동을 확인한 후 병사들을 움직어 기습을 가했다. 하지만 그 순간 뒤에서 큰소리가 나며 한 무리의 군사들이 덮쳐왔다.

"늙은 놈아, 달아나지 말라! 내 너를 만나기를 고대했는데, 마침 잘 만났구나!"

엄안은 깜짝 놀라 돌아보았는데 그 곳에는 앞에 지나갔을 터인 장비가 있었다. 먼저 지나간 장비는 가짜였던 것이다. 샛길로 가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뒤에 대기하고 있다가 엄안이 나오자 공격한 것이다. 장비가 엄안을 잡기 위해 계책을 세운 것이었다. 엄안은 장비에게 붙잡히고 만다.

"너희들은 의리도 없이 우리 주군(유장)을 침략하고 있다! 그러니 斷頭將軍(단두장군 : 머리 잘린 장군)은 있을 지언정 어찌 降將軍(항장군 : 항복한 장군)이 있으리오!"

하지만 엄안은 붙잡히고 나서도 오히려 당당한 태도를 보여 장비는 그에게 감탄하게 된다. 그래서 장비는 엄안의 목숨을 살려주고, 엄안은 장비의 恩義(은의)에 감복하여 항복한다.

이 역시 샛길로 가는 척하면서 적을 꾀어내어 공격하는 '성동격서'의 예라 할 것이다.

여기의 장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이 부분에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재편한 모종강은 총평에 이렇게 쓰고 있다.

"장비는 평생 속시원한 일을 몇 번 했다. 督郵(독우)를 매질하고, 呂布(여포)에게 욕을 하고, 長坂橋(장판교)에서 호통을 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용기는 嚴顔(엄안)을 사로잡은 지혜만 못했다. 또한 엄안을 사로잡은 지혜는 엄안을 살려준 현명함만 못하다."

술 좋아하고, 성격 급하고, 머리 나쁜 모습으로 흔히 묘사되는 장비이지만, 正史(정사)에 의하면 장비는 知勇(지용)를 겸비한 名將(명장)이었다고 한다. 연의에서는 후반부에서나 제갈량에게 감화되어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 식으로 간간히 계략을 쓰는 모습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장비가 쓴 계략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출전

三十六計(삼십육계) 勝戰計(승전계) 第六計(제6계) | 통전(通典) 병전(兵典) |


관련 한자어

참조어

明修棧道 暗渡陳倉(명수잔도 암도진창)

明修栈道 暗渡陈仓 (míngxiūzhàndào, àndùchéncāng)

明 밝을 명 | 修 닦을 수,길 수 | 棧 우리 잔 | 道 길 도 |
暗 어두울 암,햇빛 침침할 암 | 渡 건널 도 | 陳 늘어놓을 진 | 倉 창고 창 |

1. 한군(漢軍)이 겉으로는 잔도를 내는 체하면서 몰래 군사를 되돌려 초군(楚軍)의 진창(陳倉)을 기습하다. 2. 성동격서(聲東擊西)하다. 가상(假象)으로 적을 미혹시켜 목적을 달성하다.

To pretend to advance along one path while secretly going along another; to do one thing under cover of another

調虎離山(조호이산)

调虎离山(diàohǔlíshān)

調 고를 조 | 虎 호랑이 호 | 離 떠날 이 | 山 메 산 |

범을 산으로부터 유인해 내다. 적을 유리한 장소나 진지로부터 유인해 내어 그 허점을 이용하여 공략하다.

上屋抽梯 (상옥추제, shàngwūchōutī)

上屋抽梯(상옥추제)

上屋抽梯(shàng wū chōu tī)

上 위 상 | 屋 집 옥 | 抽 뽑을 추 | 梯 사다리 제 |


'지붕 위에 올라가게 한 뒤에 사다리를 치워 버린다'라는 말로, 적을 유인하여 사지에 빠뜨리거나 상대방을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함으로써 주도권을 잡는다는 뜻이다. 삼십육계 가운데 28번째 계책이다.


三十六計(삼십육계) 倂戰計(병전계) 제28계 지붕 위로 유인한 뒤 사다리를 치우다. 상옥추제계(上屋抽梯計)라고도 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병법 가운데 하나인 삼십육계 가운데 하나이다. 곧, 적에게 작은 이득을 주어 아군의 깊숙한 곳으로 유인한 뒤에 원군의 도움을 받지 못하도록 차단함으로써 적을 사지에 빠뜨리는 계책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상대방을 작은 이익으로 유혹하여 나아가게 하고 퇴로를 차단하여 사지에 빠져들게 한다. 적이 해독을 입는 것은 빠져서는 안되는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이다.[假之以便,唆之使前,斷其援應,陷之死地.遇毒,位不當也.]"

중국 고대의 병법서인 《손자(孫子)》의 〈구지(九地)〉편에도 "장수가 병사들을 이끌고 싸울 때에는 마치 높은 곳에 올라가게 한 뒤에 사다리를 치우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한다(帥與之期, 如登高而去其梯)"고 하였다.

이 고사성어의 전거가 되는 이야기는 《삼국지》의 〈제갈량전〉 또는 三國志演義 '搏望坡(박망파)'에 실려 있다.

후한(後漢) 시대 말기에 유표(劉表)의 맏아들 유기(劉琦)는 계모의 미움을 받았다. 연의에서는 당시 유비는 형주의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고 초려를 세번 방문해서 제갈량을 얻은 상태였다. 하지만 형주는 유표의 후계자 문제를 둘러싸고 음모들로 흉흉한 상태였다. 또한 유비 자신도 유표에게 '장자를 후계자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가 유표의 후처인 채부인에게 미움을 사, 채모에게 죽을뻔 한 일도 있었다.

유표는 자신이 죽은 후의 일을 부탁하고자 유비를 불렀다. 유표는 '자신이 죽고 나면 유비가 형주의 주인이 되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비는 이를 정중히 거절하고 물러나왔다. 역관에서 쉬고 있는데 유기가 와서 유비에게 말했다.
"계모(채부인)가 용납하지 않아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옵니다. 바라옵건대 숙부께서는 불쌍히 여겨 구해주소서."

채부인은 자신의 아들인 유종(유표의 작은아들)을 유표의 후계자로 삼기 위해 유비와 유기를 제거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비는 유기에게 그것은 집안일이므로 자신이 어찌할 일이 아니라 했다. 유기가 다시 제갈량에게 물었으나 제갈량의 대답도 마찬가지였다. 유비가 유기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내일 내가 공명에게 답방토록 하겠으니 현질은 이렇게이렇게 하시게. 그러면 계책을 알려줄걸세."

다음날 유비는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공명에게 유기를 답방케 했다. 차를 마시고 난 후 유기가 말했다.
"저는 계모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께서 한 말씀하여 구해주시면 다행이겠사옵니다."
"저는 손님에 불과한데 어찌 남의 집안일에 대해 말할 수 있겠소이까? 혹 누설되기라도 한다면 그 해가 적지 않을 터이옵니다."

말을 마친 공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유기가 술이라도 하자며 공명을 만류했다. 술을 마시다가 또 유기가 말했다.
"계모가 나를 용납하지 않으니 제발 선생께서 한 말씀하여 나를 구해주소서."
"그것은 제가 감히 도모할 바가 아니옵니다."
말을 마치자 또 작별하고 가려고 하였다.

"말씀을 안해주시면 그만이지, 어찌 금방 가시려고만 하시옵니까?"
그래서 제갈량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유기가 말했다.
"저에게 古書(고서) 한 권이 있는데, 선생께서 한 번 보아주시오."
그래서 제갈량은 유기를 따라 작은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책은 어디에 있소?"
"계모가 용납하지 않아 저는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오. 선생은 서운하게도 한 말씀도 해주시지 않습니까?"
제갈량은 일어나 다락을 내려가려 하였다. 그러나 이미 사다리가 치워진 후였다.

유기가 말했다.
"선생은 누설될까 염려하여 제게 방책을 가르쳐주지 않으셨소이다. 지금 위로는 하늘도 듣지 못하고 아래로는 땅도 듣지 못하오이다. 선생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저의 귀로 들어갈 뿐이니 가르쳐 주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남의 친족은 이간질할 수 없다고 하였소. 내 어찌 공자를 위해 도모할 수 있겠소?"
"선생은 끝내 저에게 가르쳐주지 않겠소이까? 그렇다면 어차피 저는 죽은 목숨이니 선생 앞에서 죽겠소이다!"
유기는 즉시 칼을 뽑아 자신의 목을 찌르려 하였다. 제갈량이 말리며 말했다.
"좋은 방책이 있기는 하오."
"어서 가르쳐 주소서."
"공자는 신생과 중이의 일도 못 들으셨사옵니까? 신생은 안에 있었기 때문에 죽었고, 중이는 밖에 있었기 때문에 무사했소. 지금 황조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 강하는 지키는 사람이 없는데 공자는 어찌 강하로 가서 지키겠다고 하지 않으시옵니까? 그렇게 하면 화는 면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이에 유기는 두 번 절하며 가르쳐 준 것을 고마워했다. 그리고는 사다리를 다시 가져오게 하여 제갈량을 내려가게 했다.

여기서 유래하여 상옥추제는 적을 유인하여 사지에 몰아넣거나 상대방을 곤경에 처하게 함으로써 주도권을 잡는 계책을 의미한다. 또한 배수진(背水陣)이나 파부침주(破釜沈舟)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퇴로를 끊음으로써 사력을 다해 싸우게 하는 일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때 제갈량이 유비에게 왔고, 박망파에서 初戰(초전)을 치룬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正史(정사)에 따르면 이때는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가기 전이고, 박망파 전투는 유비의 전략으로 승리한 것이었다. 박망파에서 승리한 이후에 유비가 제갈량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연의에서는 제갈량을 띄워주기 위해서 박망파에서 크게 승리한 것을 제갈량의 공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釜底抽薪 (부저추신, fǔdǐchōuxīn)

釜底抽薪(부저추신)

釜底抽薪(fǔdǐchōuxīn)

釜 가마솥 부 | 底 어조사 저 | 抽 뺄 추 | 薪 땔나무 신 |


솥 밑에 타고 있는 장작을 꺼내(어 물이 끓어오르는 것을 막)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다. 발본색원(拔本塞源)하다.

To take away the firewood from under the cauldron ; To take drastic measures to deal with an emergency


三十六計(삼십육계) 混戰計(혼전계) 제19계이다. '혼전계'는 전투가 시작되어 공방이 혼란스럽게 오고갈때 사용하는 계략이다. 그러기에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닌 뒷공작 등의 계략이 주를 이루고 있다.

솥밑에서 땔감을 빼낸다. 풀이글을 보면, "적이 강력해서 정면으로 맞서기 어려울 때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기세를 꺾도록 해야한다. 우회적으로 접근하여 상대방의 굳건한 기세를 꺾는 것이다.[不敵其力,而消其勢,兌下乾上之象.]" 라고 되어있다.

여기에서 이르는 '땔감'이라 함은, 여러가지를 뜻한다. 기본적으로 군대의 사기를 뜻하기도 하고, 그 사기의 원천이 되는 그 어떤 것일 수도 있으며, 혹은 군대가 기본적으로 필요한 군량미 등을 뜻할수도 있다. 따라서 "솥밑에서 땔감을 빼낸다."는 의미는 적의 사기를 꺾기 위한 선동이라거나, 군량미 탈취 등의 광범위한 공작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 된다.

예를 살펴보도록 하자. 楚漢志에서 아주 유명한 고사인 '四面楚歌(사면초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항우와 유방의 마지막 결전전야, 항우가 장수들과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그때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이에 수많은 장병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전의를 잃고 군영에서 탈출하여 전장을 떠나버린다. 이에 항우가 슬퍼하며 고립무원의 처지를 슬퍼하며 애첩 우희(虞姬)를 불러 함께 술을 마시면서 그 유명한 해하가를 부른다.

力拔山兮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뒤덮을만 하건만
時不利兮騅不逝 시운이 불리하여 오추마도 나아가지 않네.
騅不逝兮可奈何 오추마가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虞兮虞兮奈若何 우희여! 우희여! 당신을 어쩌면 좋을까!

이 장면이 바로 중국의 대표적인 경극 중 하나인 '覇王別姬(패왕별희)'로 유명한 바로 그 장면이다. 초군을 포위하고 있던 한군에서 흘러나온 초나라 노래가 초나라 장병들의 사기를 꺾어, 다음날 결전에 임해서는 수많은 병사들과, 계포, 종리매 등의 장수들마저 군영을 이탈한 상태였다. 항우를 중심으로 죽음을 불사하고 한군의 포위를 깨부수려던 초나라 군사의 사기를 한군은 이렇게 무너뜨려 버린 것이다.

또다른 유명한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三國志演義에서는 그다지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지만, 실제로는 천하를 가름하는 일전이었던 '官渡大戰(관도대전)'.

이 싸움에서 하북의 패자, 원소에 비해 군사적으로 열세에 몰려있었고, 군량도 떨어져 패배를 목전에 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때 원소의 진영에서 이탈하여 조조에게로 투항한 허유의 계략에 따라 원소군의 군량고였던 '烏巢(오소)'를 습격하여, 일거에 원소군의 군량을 빼앗음으로 하여 관도대전에서 승리하여 중원의 지배자로서의 입장을 굳힌다.

솥의 물을 끓게 하는 것은 아궁이의 땔감이다. 물이 아무리 펄펄 끓고 있어도, 아궁이의 땔감을 빼버리면 더 이상 끓지 못하는 것이다. 물이 끓고 있을때, 찬물을 붓는 것이 아니라, 땔감을 빼는 것. 이것이 바로 '釜底抽薪(부저추신)'의 의미라 할 것이다.


관련 고사성어

유의어

抽薪止沸(chōuxīnzhǐfèi) : 솥 밑의 장작을 끄집어 내어 솥의 물이 더 이상 끓지 못하게 하다.

반의어

扬汤止沸(yángtāngzhǐfèi) : 끓는 물을 퍼냈다 다시 부어 끓는 것을 막으려 하다.

참조어

四面楚歌(사면초가) |


관련 한시

垓下歌(해하가) |

反客爲主 (반객위주, fǎnkèwéizhǔ)

反客爲主(반객위주)

反客为主(fǎnkèwéizhǔ)

反 돌이킬 반 | 客 손님 객 | 爲 할 위 | 主 주인 주 |


주객이 전도되다. 본말이 전도되다. 피동적이던 것이 주동적으로 되다.


三十六計(삼십육계) 倂戰計(병전계) 제30계. 주객이 전도되다. 말 그대로 주객을 전도시켜 주도권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즉, 수동적 위치에 놓여 있다가 주인의 자리까지 차지해 버리는 것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주도권을 차지한다. 다만 서두르지 않고 점진적으로 성사시킨다.[乘隙揷足,扼其主機,漸之進也.]"

이 '반객위주'를 잘 사용한 사람으로는 유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조조에게 몸을 붙이고 있으면서 슬그머니 서주성을 차지했으며, 동오로 피신해서 조조와 손권을 싸움 붙이고 자신은 형주를 슬그머니 차지했고, 장로의 위협에 도움을 청하는 유장에게로 가서 또 슬그머니 촉을 집어삼켜 버렸다.

특히 유비의 入蜀(입촉)은 '反客爲主(반객위주)'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三國志演義에 그려지고 있는 유비의 입촉을 살펴보자.

당시 유장은 한중을 차지하고 있는 오두미교의 교조, 장로의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장로에게 항복하자는 의견과 외부의 힘을 빌려 장로를 막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리고 '빌리고자 하는 외부의 힘'으로 물색된 것이 조조와 유비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동족'인 유비의 힘을 빌리기로 한다.

이에 유비는 방통을 군사로 삼아 병사들을 이끌고, 장로가 쳐들어온다는 가맹관으로 가서 주둔하고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東吳에서 형주를 빼앗고자 술책을 부려 손부인은 오나라로 돌아갔고, 또한 조조군은 유수로 침범해 왔다는 소식이 제갈량으로부터 전해진다.

그래서 유비는 방통과 상의한다.
"조조가 손권을 이기면 반드시 형주를 빼앗으려 할 것이고, 손권이 이겨도 반드시 형주를 빼앗으려 들 것이니 어떻게 해야 하겠소?"
"주공께서는 걱정 마소서. 공명이 그쪽에 있으니 동오가 감히 형주를 침범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유장에게 편지를 보내서 '조조가 손권을 공격하여 손권이 구원을 청하고 있소. 장로는 자신을 지키는 도적일 뿐, 감히 침범해 오지는 않을 것이오. 그러니 나는 이제 형주로 돌아가 손권과 함께 조조를 치려하오. 그러나 군사는 적고 군량은 모자라니 정예병 3,4 만과 군량 10만섬을 도와주시기 바라오' 라고 말씀하소서. 그리고 군마와 군량을 얻게 되면 그때 다시 의논드리겠습니다."

유비의 편지를 받은 유장은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했다. 황권이 유장에게 말했다.
"유비는 사납고 야심찬 호걸이옵니다. 오랫동안 촉에 머물러 두고 보내지 않는 것은 호랑이를 안방에서 키우는 꼴이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군마와 군량을 보낸다면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 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사옵니까?"
이에 유장은 늙고 약한 군사 4천명과 군량 1만섬만을 보내기로 했다.

유장의 답장을 받은 유비는 불같이 노했다.
"나는 너를 위해 적을 막느라 애쓰면서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너는 이제 재물이나 아끼며 이렇게 인색하게 구니 어찌 군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겠느냐!"
즉시 답장을 찢고 큰 소리로 욕을 하며 벌떡 일어섰다. 방통이 계책을 아뢴다.
"저에게 세가지 계책이 있사옵니다. 주공께서는 한가지를 선택하소서."
"어떤 세가지요?"
"지금 즉시 정예병을 골라 뽑아 이틀 길을 하루에 도와 곧장 蜀郡(촉군)을 기습하는 것이 上策(상책)이고, 형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관을 지키고 있는 양회와 고패가 전송하러 나올터이니 그들을 바로 죽이고 관을 빼앗아 성도로 쳐들어 가는 것이 中策(중책)이옵니다. 그리고 백제성으로 물러났다가 형주로 돌아가서 천천히 빼앗을 계획을 세우는 것이 下策(하책)이옵니다. 만일 망설이며 가지 않으셨다가는 멀잖아 큰 곤란이 닥칠 것이옵니다."
"상책은 너무 빠르고 하책은 너무 느리오. 중책이 늦지도 빠르지도 않으니 그것으로 합시다."

이에 촉을 지키기 위해 들어왔던 유비군은 침략군으로 변해 순식간에 촉을 먹어들어가 결국 촉의 수도인 성도마저 함락시켜, 촉을 차지해 버린다. 이야말로 손님으로 촉에 들어가 트집을 잡아 결국엔 촉의 주인자리를 차지해 버린 '反客爲主(반객위주)'의 예라 할 것이다.

反間計 (반간계, fǎnjiànjì)

反間計(반간계)

反间计(fǎnjiànjì)

反 | 돌이킬 반 | 間 사이 간 | 計 꾀할 계 |


'적의 첩자를 이용하여 적을 제압하는 계책'으로, 36계 가운데 하나이다. 적의 첩자를 포섭하여 아군의 첩자로 이용하거나 적의 첩자인 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거짓 정보를 흘려 적을 속이는 방법으로 활용된다. 적을 속이는 기만전술을 뜻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중국의 대표적 병법인 36계 가운데 33번째 계책이다. 미인계·공성계·고육계(고육지책)·연환계와 함께 패전계(敗戰計)의 하나이다. 패전계는 패세에 몰린 싸움에서 기사회생하여 승리를 이끌어내는 계책이라는 뜻이다. 간(間)은 적으로 하여금 서로 의심하여 믿지 못하도록 하는 의미이고, 반간은 아군을 이간하려는 적의 계략을 역이용하여 적을 이간한다는 의미이다. 적의 첩자를 역이용하여 적을 속이는 기만전술 가운데 으뜸으로 친다.

적의 첩자를 포섭하여 아군의 첩자로 이용하는 방법과 적의 첩자인 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거짓 정보를 흘려 적을 속이는 방법으로 활용된다.

《손자》의 <용간(用間)〉편에서도 첩자를 이용하는 5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로 반간을 들고 있다.

'因間(인간)'은 적국의 평범한 주민을 첩자로 이용하는 것이다.
'內間(내간)'은 적국의 벼슬아치를 포섭하여 첩자로 이용하는 것이다.
'反間(반간)'은 적의 첩자를 매수하거나 역이용하는 것이다.
'死間(사간)'은 적에게 허위정보를 흘리게 하는 첩자이다.
'生間(생간)'은 적국을 정탐한 뒤 살아 돌아와 정보를 보고하는 것이다.

적으로부터 침투한 첩자는 반드시 색출하여, 후한 뇌물로 매수하거나 두터운 대접으로 회유하여 전향시킨 다음에 적에게 되돌려 보낸다. 이렇게 해서 아군이 '반간'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간'을 통하여 적국의 상황을 탐지할 수 있으므로, 적국에 '향간(인간)'과 '내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반간'을 통하여 아군의 정보가 적에게 전달되므로, 이는 '사간'을 적에게 침투시켜 허위정보를 제공하는 셈이 되며, '반간'을 통하여 첩자간의 접선이 가능하므로, '생간'으로 하여금 기일 내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서 돌아가도록 할 수 있게 된다.

楚漢志의 예를 살펴보자. 항우에게 기가 질리도록 쫓겨다니기만 하다가 영양성에 갇혀버린 유방은, 진평에게 책략을 구한다. 이에 진평이 계책을 올렸다. 그것은 바로 楚에 첩자를 들여보내, 항우와 범증, 종리매를 이간질시키는 것이었다. 유방이 이를 승인하여 진평은 첩자를 楚에 보냈다.

그리하여 '범증과 종리매는 수많은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항우가 논공행상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 불만을 품고 있다. 그래서 한나라와 내통하여 초나라를 무너뜨릴 생각을 갖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에 항우는 이들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좌우에 이 이간계에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진언이 있어, 항우는 의심을 풀었다. 그리고는 한층 더 격렬하게 영양성을 공격했다.

이에 장량과 진평이 계책을 올린다. 이번에는 항우에게 화친을 청하자는 것이었다. 유방이 화친을 청하자, 항우는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래서 사신을 보내 결정사항을 통보하겠다고 말했다. 영양성의 허실을 확인해 보고 나서 판단을 내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항우는 자신의 총희인 우미인의 오라비인 우자기를 사신으로 보낸다.

우자기가 사신으로 오자 장량과 진평은 극진히 우자기를 대접했다. 호화로운 객사에서 온갖 산해진미를 대접하며 이렇게 말을 꺼냈다.
"범증 군사께서는 안녕하시옵니까. 오늘은 무슨 일로 이렇게 귀공을 보내셨소이까."
이에 우자기가 대답했다.
"나는 범증 군사가 보낸 사람이 아니고, 항왕의 사신이오."

이 말을 듣자 장량과 진평은 크게 놀라며 낯빛을 바꾸고는 우자기에게 말했다.
"그러면 당신은 범증 군사가 보낸 밀사가 아니고, 항왕의 사신이란 말이오?"
그러고는 사람을 불러 우자기를 다른 곳으로 안내했다. 그 곳은 아주 초라하고 대접도 형편이 없는 곳이었다.

우자기의 보고를 받은 항우는 범증에 대한 의심을 굳히고 범증을 쫓아내고 만다. 초한지에서 가장 기량이 뛰어난 군사인 범증을 잃은 항우가 후에 어떻게 되는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진평이 우자기를 역으로 이용한 것이 삼십육계의 '반간계'에 가장 근접한 예이다. 또한 영양성에서 항우군의 포위에 갇혀서 지쳐버린 유방군이 사용한 것이므로 패전계로 분류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예로는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주유가 펼친 반간계가 대표적인 예이다. 북방 출신인 조조의 군대는 기마전에는 능했지만 수전(水戰)에는 약하였다. 채모와 장윤은 조조에게 투항한 장수들로, 수전에 능하여 조조의 군대를 조련하였다. 주유가 내심 이를 걱정하고 있던 차에 조조의 참모로 주유와 동문수학한 장간이 항복을 권하러 주유를 찾아왔다. 주유는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하여 자는 척하면서 탁자 위에 채모와 장윤이 보낸 것처럼 꾸민 편지를 놓아두었다. 장간은 이 편지를 보았고, 또 주유가 다른 장수와 나누는 밀담에서 채모와 장윤에 대하여 말하는 것도 들었다. 장간은 편지를 훔쳐 빠져나와 조조에게 고하였다. 조조는 채모와 장윤을 오나라의 첩자로 오인하여 목을 베게 하였다. 이로써 조조의 군대는 수전의 약점을 보완하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조조는 주유의 반간계에 넘어가 전력이 매우 우세하였음에도 대패하고 말았다.

美人計 (미인계, měirénjì)

美人計(미인계)

美人计(měirénjì)

美 아름다울 미 | 人 사람 인 | 計 셀 계 |


아름다운 여성을 미끼로 하여 사람을 꾀는 계략(計略).


三十六計(삼십육계) 敗戰計(패전계) 제31계 미인으로 유혹하다.

삼십일계부터 삼십육계까지는 '敗戰計(패전계)'로 묶여있다. 이는 이미 전쟁에서 승기를 바랄 수 없는 경우,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계략들이 모여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앞선 30가지의 계략들을 모두 시도해 보고, 그러고도 승기가 보이지 않을 경우에 쓰는 것이다. 무작정 도망치면서 '36계 줄행랑이 최고다'라는 식이 아니다.

원문에는 다음과 같이 풀이되어 있다.
"병력이 강한 적이라면, 장수에게 작용한다. 장수가 지혜로운 자라면, 정서적인 약점을 공략한다. 장수가 약하고 병사들의 사기가 흩어지면, 스스로 붕괴된다. 적의 약점에 편승하여 힘쓴다면, 아군에게 유리하게 전환할 수 있다.[兵强者,攻其將;將智者,伐其情.將弱兵頹,其勢自萎.利用御寇,順相保也.]"

미인계에 관한 사례는 많다. 고대로부터 하왕조를 멸망으로 몰고 간 말희, 은왕조를 망하게 한 달기, 주왕조를 망조들게 한 포사, 오나라를 망하게 한 서시, 동탁을 죽음으로 몰고간 초선, 당현종을 죽게 만든 양귀비 등 미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지도자 들에게 주색을 경계하기 위한 이야기로 많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살펴보자. 초한쟁패에서 끈질기게 항우에게 시비를 걸어, 결국엔 항우를 물리치고 漢(한)나라를 건국한 고조 유방, 한나라 내부를 어느 정도 정리하고 황제의 위에 오른 후, 흉노족 토벌에 나섰다. 항우와 유방이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흉노족은 묵특 선우에 의해 통일되었다. 그리고는 국경을 수시로 침입해 오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유방은 흉노족의 계략에 말려들어 작은 平城(평성)에서 40만 흉노군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적은 병력으로 성에 틀어박혀 꼼짝없이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진평이 계략을 내놓는다. 진평의 계략은 다음과 같다.

흉노의 장, 묵특은 여색을 아주 밝히는 자이다. 여자를 좋아하면서도 부인에게는 꼼짝을 못하고 잡혀 살았다. 그래서 진평은 화가에게 美人圖(미인도) 한 장을 그리게 하여, 보물과 함께 묵특의 부인에게 가지고 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묵특 선우께서 미인을 좋아한다 하시기에 미인을 바칠 생각인데, 마음에 드실지 몰라 먼저 그림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그림을 보시고 마음에 드신다면, 곧 본인을 보내드릴 터이니, 대왕께 여쭈어 주십시오."

그러자 묵특의 부인은 유방이 이 그림같이 꽃같은 미인을 바친다면 묵특의 총애를 잃을까 싶어, 묵특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또한 혹시 유방이 미인을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닌가 싶어 묵특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한나라를 친다고 해도 우리가 한나라에서 살수도 없는 일이니, 군사를 물리는게 좋을듯 하옵니다."
이에 묵특 선우는 그 말을 타당히 여겨, 군사를 돌렸다. 유방, 구사일생의 순간이었다.

겨우 살아 돌아온 유방이었으나, 흉노는 여전히 그의 골칫거리였다. 묵특 선우는 대군을 몰고 국경지대에 계속 침입해 왔던 것이다. 이에 유방은 군사를 일으키고자 진평과 유경에게 상의를 했다. 유경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천하를 평정하느라 너무 오랜 세월을 싸워왔습니다. 이제 다시 묵특을 무력으로 정벌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종실의 공주 한사람을 묵특에게 시집보내 화친을 맺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이에 유방은 유경의 계략에 따라 공주를 시집보내고, 매년 조공을 바치는 것을 조건으로 묵특과 화친을 맺게 된다. 묵특은 잠시 침략을 멈추었으나, 국경지대에서 흉노에게로 투항하는 자들은 계속 노략질을 하곤 했다.

진평은 거짓 미인계를 써서 유방을 살렸고, 유경은 진짜 미인계를 써서 흉노와 화친을 맺은 것이다.

無中生有 (무중생유)

無中生有(무중생유)

无中生有(wúzhōngshēngyǒu)

無 없을 무 | 中 가운데 중 | 生 날 생 | 有 있을 유


三十六計 敵戰計 第七計. 無에서 有를 창조하다. 본래 없던 일을 있다고 말하다. 없는 사실을 날조하다. 터무니없이 꾸며 대다.


'敵戰計(적전계)'의 敵은 '원수 적'이지만, '짝 적'으로도 해석된다. 즉 '필적하다'는 의미이며, '견줄만하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敵戰計'란 적과 병력이 비슷할 때 사용하는 계략을 뜻한다. 하지만 단순히 적과 병력이 비슷하다고 해서 무턱대고 사용하는 계략은 아니다. 적과 병력이 비슷해서 '어느 쪽도 섣불리 움직이기 힘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사용되는 계략이 '敵戰計'인 것이다.

無에서 有를 창조하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속이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속이는 것만은 아니다. 그 속이는 바를 실속있게 만드는 것이다. 無에서 有로, 虛에서 實로의 전환이 필요하다.[誑也,非誑也,實其所誑也.少陰,太陰,太陽.]"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三國志演義의 적벽대전. 그 적벽대전 직전의 吳의 대도독 주유는 후에 화근이 될 제갈량을 죽이고자 여러차례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제갈량을 죽여야한다는 주유의 결심은 확고해져 갔다. 그러다가 군사회의에서 주유가 제갈량에게 물었다.

"며칠 내에 조조와 싸우게 될 듯 싶소. 강에서 싸우자면 무슨 무기가 필요하겠소?"
"큰 강 위에서는 활과 화살이 주가 되어야겠지요."
"내 생각이 선생의 생각과 같소. 그러나 우리 군중에는 바로 그 화살이 부족하오. 수고스럽지만 선생께서 화살 10만개만 만들어 주시지 않겠소? 이것은 公的인일이니 거절하지 말아주시오."
"도독께서 부탁하시니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화살 10만개는 언제 쓰시려 하십니까?"
"열흘 안에 만들어 주실수 있겠소?"
"조조의 군사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데 열흘이나 허비하다가는 큰일을 그르칠 것입니다."
"그러면 며칠이나 걸릴 것 같소이까?"
"사흘이면 화살 10만개는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軍中(군중)에는 戱言(희언:농담)이 있을 수 없소!"
"어찌 감히 농담을 하겠습니까? 사흘 안에 화살 10만개를 조달하지 못하면 중벌을 받겠다는 軍令狀(군령장)이라도 써 드리겠소."

주유는 대단히 제갈량이 스스로 함정에 빠졌다며 대단히 기뻐했다. 제갈량이 사흘 안에 화살 10만개를 만들지 못하면 군령을 어긴 죄로 죽여버릴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노숙에게 일의 처리 상황을 보고하도록 했다. 노숙은 명령을 받고는 제갈량에게 갔다. 제갈량이 노숙에게 말했다.

"내가 자경(노숙)에게 누차 말하지 않았소? 공근(주유)에게 말하면 그가 반드시 나를 해치려 할 것이니 말하지 말라고. 그 덕에 내가 공경에 빠지게 되었으니, 자경이 나를 구해주어야겠소."
"공이 스스로 화를 불렀는데, 내가 어찌 구해드릴 수가 있겠소?"
"자경은 나에게 배 스무척만 빌려주시기 바라오. 배마다 30명의 군사가 있어야 하오. 배는 푸른 장막으로 둘러치고 그 속에 짚단 1천여단을 배 양쪽으로 나누어 쌓아 주오. 나에게 쓸 곳이 있소. 그러나 공근에게 또 알려서는 아니되오."

노숙은 그 뜻은 알 수 없었으나,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주유에게 제갈량은 대나무, 새깃, 아교(화살을 만드는 재료들)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약속한 배에 대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 주유는 의아해하며 어쨌거나 사흘 동안 기다려 보기로 했다.

노숙은 쾌속선 20척을 선발하여 제갈량이 말한대로 준비를 해두고 제갈량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첫째날, 제갈량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둘째날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사흘째 되는 날 새벽에 제갈량은 노숙을 찾았다.

"이제 화살을 가지러 갑시다."
"어디 가서 가져온다는 것이오?"
"물어볼 것 없이 가보면 아시게 될게요."

제갈량은 즉시 배를 긴 밧줄로 연결하게 한 다음 북쪽을 향해 이동했다. 이 날의 장강은 안개가 짙게 끼어 눈 앞에 있는 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새벽 오경 무렵이 되자 배들은 조조의 수상영채 가까이 접근하게 되었다. 제갈량은 뱃머리를 서쪽으로 향하게 하고 배꼬리가 동쪽으로 향하게 하여 배를 한 줄로 늘어세웠다. 그리고 배 위에서 병사들에게 북을 치며 함성을 지르라 명했다. 노숙이 깜짝 놀랐다.

"조조의 병사들이 공격해 오면 어찌합니까?"
"공은 아무 걱정 말고, 나하고 술이나 드십시다."

한편 보고를 받은 조조는 이렇게 명령했다.

"짙은 안개 속에서 갑자기 쳐들어 온 것을 보면 반드시 매복이 있을 것이다. 절대로 가벼이 나가지 말고, 수군 궁노수를 동원하여 난전을 쏘도록 하라. 그리고 장료와 서황의 육상 궁노군 3천명씩을 대동하여 강변으로 나와 화살을 쏘아 돕도록 하라."

이리하여 조조의 궁노수 대략 1만여명이 강을 향해 화살을 쏘아 댔다. 화살은 빗발치듯 날아들었다. 제갈량은 이번에는 뱃머리와 배꼬리의 방향을 바꾼후 한층 더 힘차게 북을 치고 고함을 지르게 했다. 화살은 더욱 빗발치듯 쏟아졌다.

해가 높아져 안개가 걷힐 즈음 제갈량은 재빨리 배를 거두어 돌아가자는 명을 내렸다. 그리고 배의 모든 병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외치게 했다.

"승상! 화살 고맙게 잘 쓰겠소!"

노숙이 가져온 쾌속선은 워낙에 빨라, 조조의 수군이 따라잡을 수 없었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제갈량이 노숙에게 말했다.

"배마다 5~6천개의 화살이 꽂혀있을 것이오. 조금의 힘도 들이지 않고 10만개의 화살을 얻었소. 내일이라도 바로 조조의 병사들에게 쏘아 돌려줘도 될 것이오."
"선생은 참으로 神人(신인)이시오. 오늘 이렇게 짙은 안개가 낄 줄 아셨소이까?"
"장수가 되어 천문을 알지 못하고, 지리를 알지 못하고, 기문을 알지 못하고, 음양을 알지 못하고, 진도를 볼 줄 모르고, 병세에 밝지 못하다면 이는 용렬한 사람이오. 나는 이미 사흘 전에 오늘 짙은 안개가 낄 줄 알고 말미를 사흘로 잡은 것이오. 공근은 화살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나를 죽이려 했겠지만, 내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어찌 공근이 나를 죽일 수 있겠소?"

노숙은 가슴 깊이 감복했다. 돌아가자 노숙은 주유에게 자세히 보고했다. 그러자 주유는 크게 놀라 개연히 탄식했다.

"공명은 지략이 귀신 같소이다. 나는 따라가지 못하겠소."


관련 한자어

유의어

捕风捉影(bǔfēngzhuōyǐng): 말이나 일이 전혀 근거가 없다.

捕 사로잡을 포 | 风 바람 풍 | 捉 잡을 착 | 影 그림자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