投筆從戎(투필종융)
投 던질 투, 머무를 두 | 筆 붓 필 | 從 좇을 종 | 戎 병장기 융, 오랑캐 융 |
붓을 던지고 창을 쫓는다는 뜻으로, 학문(學問)을 포기(抛棄)하고 전쟁터(戰爭-)로 나아감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중국의 한(漢)나라 때 반초(班超)의 고사(故事)에서 유래
동한(東漢) 초, 반고(班固)와 반초(班超) 형제가 있었다. 반고(班固)는 한서(漢書)를 편찬하였고, 반초는 그의 동생이다.
반초는 큰 뜻을 품고 있어 사소한 일에는 개의치 않았으나, 속으로는 효성스럽고 근신하는 인물이었다. 집에 있을 때는 항상 근면하였으며, 힘든 노동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또 언변이 뛰어났고, 여러 서적을 두루 섭렵하였다. 그의 형 반고가 교서랑(校書郞)에 임명되어 어머니와 함께 낙양(洛陽)에으로 이주하였으나, 집안은 여전히 가난하여 관청에서 문서를 베껴 주는 일을 하여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당시 북방의 흉노들은 끊임없이 한나라의 북쪽 변경을 침입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반초는 관청에서 문서를 베껴 쓰는 일을 하다가 문득 붓을 던져 버리고 탄식하며 말하기를(嘗輟業投筆嘆曰) "대장부로서 지략이 없다면 마땅히 부개자(傅介子)와 장건(張騫)을 본받아 이역(異域)에서 공을 세워 봉후(封侯)의 자리를 얻어야지 어찌 붓과 벼루 사이에서 오래 지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부개자와 장건은 모두 서역(西域)에 출사하여 공을 세운 사람들이다. 주위에 있던 동료들이 그의 말을 비웃자 반초는 "소인배가 어찌 장사(壯士)의 뜻을 알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이후 반초는 31년 동안이나 서역에 머물면서 흉노의 지배를 받던 서역 국가들을 정복하는 등 한나라의 세력을 확장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 고사는 《후한서(後漢書)》의 반초전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투필종융은 문인 또는 학자가 글쓰기나 학문을 포기하고 종군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반초(班超)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기필종융(棄筆從戎)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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偸梁換柱 (투량환주)
偸梁換柱(투량환주)
偷梁换柱(tōuliánghuànzhù)
偸 훔칠 투 | 梁 들보 량 | 換 바꿀 환 | 柱 기둥 주 |
'대들보를 훔치고 기둥을 바꾼다'라는 뜻으로, 겉은 그대로 두고 내용이나 본질을 바꾸어 놓음으로써 승리를 취하는 전략이다. 36계 가운데 25번째 계책이다.
三十六計(삼십육계) 倂戰計(병전계) 제25계. 병전계란 곧, '함께 싸울 때의 계략'이라는 뜻이다. 즉, 연합전선이나 동맹작전을 펴고 있을 때의 계략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 '병전계'의 계략들이 '힘을 모아 공동의 적을 치는' 계략뿐만이 아니라, '연합의 주도권을 쥐고 자신의 뜻대로 동맹군을 움직이게 하는' 계략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계략의 상대방이 '공동의 적' 뿐만이 아니라 연합전선을 펼치고 있는 '동맹군'도 계략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여러 제후국들이 중원의 패권을 차지하려고 다투었다. 그들은 각자의 유리함을 택하여 이합집산을 거듭하였으므로 오늘의 동맹국이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서로 연합하여 싸울 때라도 주도권을 잡고 우군의 세력을 자기편으로 흡수하도록 꾀하는 전략으로서 병전계가 활용되었다.
'량(梁)'은 대들보이고 '주(柱)'는 기둥이니, 집을 지탱하는 중추를 가리킨다. 그 중추를 교란 또는 탈취함으로써 적을 붕괴시키는 전략이 투량환주이다. 이 전략에 대하여는 "진지를 자주 바꾸게 하고, 그 주력을 추려 내게 하여 스스로 패하기를 기다린 뒤에 그 틈을 타서 바퀴를 끌고 온다(頻更其陣, 抽其勁旅, 待其自敗, 而後乘之, 曳其輪也)"는 해설이 덧붙여져 있다.
이는 연합한 우군을 고의로 패하게 만들어 자기 세력으로 흡수하는 것으로도 풀이되며, 속고 속이는 정치적 모략으로도 응용된다. 정치적 모략으로는 진(秦)나라의 환관 조고(趙高)의 예를 들 수 있다. 진나라의 시황제(始皇帝)는 임종을 앞두고 재상인 이사(李斯)에게 맏아들 부소(扶蘇)로 하여금 황위를 잇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때 부소는 북방에서 경험을 쌓고 있었다.
이사는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부소가 올 때까지 시황제의 죽음을 비밀로 하였다. 환관의 우두머리인 조고는 이사를 찾아가 부소가 후계자로 지목된 사실은 자신과 이사 두 사람밖에 모르니, 막내 아들인 호해가 후계자로 지목되었다고 속이면 아무도 모를 것이며, 이사도 재상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유혹하였다. 이에 두 사람은 문서를 조작하여 호해를 옹립하고, 부소를 살해하였다. 조고는 자신의 뜻대로 황제의 자리를 빼앗고 바꾼 것이다.
또 다른 사례를 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흔히 戰國時代(전국시대)로의 돌입이라 일컫는 三晉(삼진)의 분열. 즉, 晉나라가 韓(한), 魏(위), 趙(조) 세나라로 분열되는 사건의 前 이야기이다.
이 당시의 진나라는 智(지)씨, 韓(한)씨, 魏(위)씨, 趙(조)씨가 국권을 좌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엔 진나라의 땅을 4가문에서 나눠갖고야 말았다. 이에 임금인 晉出公(진출공)은 제나라와 노나라에 밀사를 보내 무도한 4家를 쳐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이는 지씨 일족의 우두머리인 智伯(지백)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이에 지백은 4가를 이끌고 진출공을 쳤다. 진출공은 제나라로 달아나고, 지백은 晉哀公(진애공)을 세운다. 이때부터 진나라의 국권은 지백이 장악하게 된다.
지백은 아예 진나라를 혼자서 독식하기 위해 남은 3가를 치기로 했다. 그리하여 당시 크게 일어나고 있는 월나라를 친다는 명목으로 3가에 100리씩의 땅을 군자금으로 내놓게 했다. 한씨와 위씨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땅을 내주었다. 하지만 조씨 일족의 우두머리인 조양자는 땅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지백은 조씨를 쳐, 그 땅을 나눠갖기로 하고 한씨와 위씨를 끌어들여 조양자를 쳤다.
조양자는 진양성으로 들어가 굳게 문을 닫아걸고 3가와 맞섰다. 진양성을 포위한지 1년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자 지백은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진양성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진양성을 격파할 계책을 세웠다. 그것은 바로 水攻策(수공책)이었다. 근처의 水原인 龍山(용산)에 저수지를 만들어 물이 다 차거든 진양성 쪽으로 흘려보내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수공책은 계획대로 진행되어 진양성은 결국 물에 잠기고 만다. 이에 조양자가 크게 탄식한다. 그러자 장맹담이 계책을 올린다. 그리고 그날 밤을 타서 장맹담은 성을 빠져나간다.
장맹담이 간 곳은 한씨 일족의 우두머리인 한강자의 막사였다. 장맹담은 한강자를 설득한다.
"...조씨는 지백에게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백은 자기 힘만 믿고서 한씨와 위씨를 동원하여 조씨를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장차 조씨가 망하면 그 다음엔 어떻겠습니까? 한씨와 위씨도 반드시 조씨와 같은 불행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지백은 조씨를 쳐서 땅을 나누어 갖자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백이 어떤 사람입니까? 이미 한씨와 위씨로부터 사방 100리의 땅을 빼앗아가지 않았습니까? 그런 자가 조씨의 땅을 빼앗아 나누어 주겠습니까? 조씨가 망하면 지백만 더 강해지게 됩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소? 그대의 의견을 들려주오!"
"제 소견으로는 한씨와 위씨가 저의 주인과 손을 잡으시고 도리어 지백을 쳐서 그 땅을 나누어 갖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지씨의 땅은 조씨의 땅보다도 배나 더 큽니다."
이에 한강자는 조씨와 손을 잡고, 장맹담은 위씨 일족의 우두머리인 위환자도 같은 방법으로 설득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한씨와 위씨의 군사들은 저수지의 물길을 지씨의 군영 쪽으로 돌려놓았다. 그리고는 우왕좌왕하는 지백을 조양자가 사로잡았다. 그리고는 지씨 일족을 멸족하고, 땅을 똑같이 셋으로 나눠가졌다. 하지만 진애공에게는 조금의 땅도 바치지 않았다.
이후 한, 위, 조, 세 가문은 스스로 三晉을 칭했다. 그리고는 주위열왕에게서 제후로 봉해지고, 각기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게 되는 계기가 된다.
한편, 이 때 서쪽의 秦(진)나라는 晉(진)나라를 버리고 楚(초)나라에 붙고 중국과의 거래를 끊었다. 중국 또한 秦나라를 오랑캐로 대했다.
여기에서 대들보, 기둥은 굳이 사람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군대 운영의 근간이 되는 전략이나 전술도 대들보나 기둥으로 보고 바꿔넣을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보기로 하자. 전국시대 말기에 연횡, 합종으로 위세를 떨친 소진과 장의의 이야기이다.
소진은 일찍이 스승의 곁을 떠나 조나라에서 정승이 되어 있었다. 당시 秦(진)나라의 세력이 자꾸만 커져서 중원의 6국이 모두 긴장상태에 있었다. 이에 소진은 6국을 합종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秦나라가 조나라를 침공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고 있던 차에 동문수학하던 장의가 소진을 찾아온다. 소진은 장의를 푸대접해서 쫓아낸다.
이에 장의는 秦나라로 갔다. 그리고는 마침내 秦나라에서 벼슬을 살게 된다. 장의가 벼슬을 하게 된 뒤에는 이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장의에게 말한다.
"제 주인은 조나라 정승 소진대감입니다. 소정승은 장차 육국을 합종시켜 秦나라를 견제할 작정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秦나라가 조나라를 칠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조나라가 무너지게 되면 중원은 진나라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소정승께서는 저로 하여금 선생을 진나라에서 정권에 참여하도록 뒤를 봐주신 것입니다. 또한 선생께서 조나라의 작은 벼슬에 안주할까봐 그렇게 괄시해서 쫓아낸 것입니다."
이에 장의는 크게 탄식한다.
"허허. 내가 지금까지 소진의 계책에 빠져 있었구려. 참으로 소진은 나보다 그 재주가 월등하오. 그대는 돌아가거든 소진에게 전하시오. 진나라가 조나라를 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이오. 내 어찌 소진의 은혜를 저버릴 수 있으리오."
이렇게 소진은 진나라의 중역에 자기 사람을 넣음으로 해서 진나라의 조나라 침공계획을 무산시켜 버렸다. 이도 또한 '투량환주'라 할 것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偷天换日(투천환일, tōutiānhuànrì) | 훔칠 투 | 하늘 천 | 바꿀 환 | 해 일 |
하늘의 태양을 훔치고 다른 것으로 바꿔 놓다. 진상을 크게 왜곡하여 사람을 속이다. 가짜로 진짜를 대신하다.
移花接木(이화접목, yíhuājiēmù) | 옮길 이 | 꽃 화,쓸 화 | 맞을 접 | 나무 목 |
꽃이 핀 나뭇가지를 다른 품종의 꽃나무에 접목하다. 몰래 교묘한 수단을 부려 사람이나 사물을 바꿔치기 하여 다른 사람을 속이다.
偷梁换柱(tōuliánghuànzhù)
偸 훔칠 투 | 梁 들보 량 | 換 바꿀 환 | 柱 기둥 주 |
'대들보를 훔치고 기둥을 바꾼다'라는 뜻으로, 겉은 그대로 두고 내용이나 본질을 바꾸어 놓음으로써 승리를 취하는 전략이다. 36계 가운데 25번째 계책이다.
三十六計(삼십육계) 倂戰計(병전계) 제25계. 병전계란 곧, '함께 싸울 때의 계략'이라는 뜻이다. 즉, 연합전선이나 동맹작전을 펴고 있을 때의 계략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 '병전계'의 계략들이 '힘을 모아 공동의 적을 치는' 계략뿐만이 아니라, '연합의 주도권을 쥐고 자신의 뜻대로 동맹군을 움직이게 하는' 계략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계략의 상대방이 '공동의 적' 뿐만이 아니라 연합전선을 펼치고 있는 '동맹군'도 계략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여러 제후국들이 중원의 패권을 차지하려고 다투었다. 그들은 각자의 유리함을 택하여 이합집산을 거듭하였으므로 오늘의 동맹국이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서로 연합하여 싸울 때라도 주도권을 잡고 우군의 세력을 자기편으로 흡수하도록 꾀하는 전략으로서 병전계가 활용되었다.
'량(梁)'은 대들보이고 '주(柱)'는 기둥이니, 집을 지탱하는 중추를 가리킨다. 그 중추를 교란 또는 탈취함으로써 적을 붕괴시키는 전략이 투량환주이다. 이 전략에 대하여는 "진지를 자주 바꾸게 하고, 그 주력을 추려 내게 하여 스스로 패하기를 기다린 뒤에 그 틈을 타서 바퀴를 끌고 온다(頻更其陣, 抽其勁旅, 待其自敗, 而後乘之, 曳其輪也)"는 해설이 덧붙여져 있다.
이는 연합한 우군을 고의로 패하게 만들어 자기 세력으로 흡수하는 것으로도 풀이되며, 속고 속이는 정치적 모략으로도 응용된다. 정치적 모략으로는 진(秦)나라의 환관 조고(趙高)의 예를 들 수 있다. 진나라의 시황제(始皇帝)는 임종을 앞두고 재상인 이사(李斯)에게 맏아들 부소(扶蘇)로 하여금 황위를 잇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때 부소는 북방에서 경험을 쌓고 있었다.
이사는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부소가 올 때까지 시황제의 죽음을 비밀로 하였다. 환관의 우두머리인 조고는 이사를 찾아가 부소가 후계자로 지목된 사실은 자신과 이사 두 사람밖에 모르니, 막내 아들인 호해가 후계자로 지목되었다고 속이면 아무도 모를 것이며, 이사도 재상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유혹하였다. 이에 두 사람은 문서를 조작하여 호해를 옹립하고, 부소를 살해하였다. 조고는 자신의 뜻대로 황제의 자리를 빼앗고 바꾼 것이다.
또 다른 사례를 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흔히 戰國時代(전국시대)로의 돌입이라 일컫는 三晉(삼진)의 분열. 즉, 晉나라가 韓(한), 魏(위), 趙(조) 세나라로 분열되는 사건의 前 이야기이다.
이 당시의 진나라는 智(지)씨, 韓(한)씨, 魏(위)씨, 趙(조)씨가 국권을 좌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엔 진나라의 땅을 4가문에서 나눠갖고야 말았다. 이에 임금인 晉出公(진출공)은 제나라와 노나라에 밀사를 보내 무도한 4家를 쳐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이는 지씨 일족의 우두머리인 智伯(지백)의 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이에 지백은 4가를 이끌고 진출공을 쳤다. 진출공은 제나라로 달아나고, 지백은 晉哀公(진애공)을 세운다. 이때부터 진나라의 국권은 지백이 장악하게 된다.
지백은 아예 진나라를 혼자서 독식하기 위해 남은 3가를 치기로 했다. 그리하여 당시 크게 일어나고 있는 월나라를 친다는 명목으로 3가에 100리씩의 땅을 군자금으로 내놓게 했다. 한씨와 위씨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땅을 내주었다. 하지만 조씨 일족의 우두머리인 조양자는 땅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지백은 조씨를 쳐, 그 땅을 나눠갖기로 하고 한씨와 위씨를 끌어들여 조양자를 쳤다.
조양자는 진양성으로 들어가 굳게 문을 닫아걸고 3가와 맞섰다. 진양성을 포위한지 1년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자 지백은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진양성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진양성을 격파할 계책을 세웠다. 그것은 바로 水攻策(수공책)이었다. 근처의 水原인 龍山(용산)에 저수지를 만들어 물이 다 차거든 진양성 쪽으로 흘려보내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수공책은 계획대로 진행되어 진양성은 결국 물에 잠기고 만다. 이에 조양자가 크게 탄식한다. 그러자 장맹담이 계책을 올린다. 그리고 그날 밤을 타서 장맹담은 성을 빠져나간다.
장맹담이 간 곳은 한씨 일족의 우두머리인 한강자의 막사였다. 장맹담은 한강자를 설득한다.
"...조씨는 지백에게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백은 자기 힘만 믿고서 한씨와 위씨를 동원하여 조씨를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장차 조씨가 망하면 그 다음엔 어떻겠습니까? 한씨와 위씨도 반드시 조씨와 같은 불행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지백은 조씨를 쳐서 땅을 나누어 갖자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백이 어떤 사람입니까? 이미 한씨와 위씨로부터 사방 100리의 땅을 빼앗아가지 않았습니까? 그런 자가 조씨의 땅을 빼앗아 나누어 주겠습니까? 조씨가 망하면 지백만 더 강해지게 됩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소? 그대의 의견을 들려주오!"
"제 소견으로는 한씨와 위씨가 저의 주인과 손을 잡으시고 도리어 지백을 쳐서 그 땅을 나누어 갖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지씨의 땅은 조씨의 땅보다도 배나 더 큽니다."
이에 한강자는 조씨와 손을 잡고, 장맹담은 위씨 일족의 우두머리인 위환자도 같은 방법으로 설득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한씨와 위씨의 군사들은 저수지의 물길을 지씨의 군영 쪽으로 돌려놓았다. 그리고는 우왕좌왕하는 지백을 조양자가 사로잡았다. 그리고는 지씨 일족을 멸족하고, 땅을 똑같이 셋으로 나눠가졌다. 하지만 진애공에게는 조금의 땅도 바치지 않았다.
이후 한, 위, 조, 세 가문은 스스로 三晉을 칭했다. 그리고는 주위열왕에게서 제후로 봉해지고, 각기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게 되는 계기가 된다.
한편, 이 때 서쪽의 秦(진)나라는 晉(진)나라를 버리고 楚(초)나라에 붙고 중국과의 거래를 끊었다. 중국 또한 秦나라를 오랑캐로 대했다.
여기에서 대들보, 기둥은 굳이 사람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군대 운영의 근간이 되는 전략이나 전술도 대들보나 기둥으로 보고 바꿔넣을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보기로 하자. 전국시대 말기에 연횡, 합종으로 위세를 떨친 소진과 장의의 이야기이다.
소진은 일찍이 스승의 곁을 떠나 조나라에서 정승이 되어 있었다. 당시 秦(진)나라의 세력이 자꾸만 커져서 중원의 6국이 모두 긴장상태에 있었다. 이에 소진은 6국을 합종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秦나라가 조나라를 침공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고 있던 차에 동문수학하던 장의가 소진을 찾아온다. 소진은 장의를 푸대접해서 쫓아낸다.
이에 장의는 秦나라로 갔다. 그리고는 마침내 秦나라에서 벼슬을 살게 된다. 장의가 벼슬을 하게 된 뒤에는 이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장의에게 말한다.
"제 주인은 조나라 정승 소진대감입니다. 소정승은 장차 육국을 합종시켜 秦나라를 견제할 작정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秦나라가 조나라를 칠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조나라가 무너지게 되면 중원은 진나라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소정승께서는 저로 하여금 선생을 진나라에서 정권에 참여하도록 뒤를 봐주신 것입니다. 또한 선생께서 조나라의 작은 벼슬에 안주할까봐 그렇게 괄시해서 쫓아낸 것입니다."
이에 장의는 크게 탄식한다.
"허허. 내가 지금까지 소진의 계책에 빠져 있었구려. 참으로 소진은 나보다 그 재주가 월등하오. 그대는 돌아가거든 소진에게 전하시오. 진나라가 조나라를 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이오. 내 어찌 소진의 은혜를 저버릴 수 있으리오."
이렇게 소진은 진나라의 중역에 자기 사람을 넣음으로 해서 진나라의 조나라 침공계획을 무산시켜 버렸다. 이도 또한 '투량환주'라 할 것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偷天换日(투천환일, tōutiānhuànrì) | 훔칠 투 | 하늘 천 | 바꿀 환 | 해 일 |
하늘의 태양을 훔치고 다른 것으로 바꿔 놓다. 진상을 크게 왜곡하여 사람을 속이다. 가짜로 진짜를 대신하다.
移花接木(이화접목, yíhuājiēmù) | 옮길 이 | 꽃 화,쓸 화 | 맞을 접 | 나무 목 |
꽃이 핀 나뭇가지를 다른 품종의 꽃나무에 접목하다. 몰래 교묘한 수단을 부려 사람이나 사물을 바꿔치기 하여 다른 사람을 속이다.
推敲 (퇴고)
推敲(퇴고)
推 밀 추, 밀 퇴 | 敲 두드릴 고, 두드릴 교, 두드릴 학 |
미느냐(推) 두드리느냐(敲)라는 뜻으로, 시문을 지을 때 자구(字句)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침. 당(唐)나라 가도(賈道)가 시를 짓는 데 퇴(推)자를 쓸까 고(敲)자를 쓸까 하고 고심한 고사에서 유래
당(唐)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말을 타고 길을 가다가 문득 좋은 시상(詩想)이 떠올라서 즉시 정리해 보았다. 제목은 '이응(李凝)의 유거(幽居)에 제(題)함'으로 정하고, 다음과 같이 초(草)를 잡았다. 閑居少隣竝(한거소린병) 이웃이 드물어 한적한 집草徑入荒園(초경입황원) 풀이 자란 좁은 길은 거친 뜰로 이어져 있다.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새는 못 속의 나무에 깃들고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 스님이 달 아래 문을 밀친다. 그런데, 결구(結句)를 밀다(推)로 해야 할지, 두드리다(敲)로 해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궁리하며 가다가 자신을 향해 오는 고관의 행차와 부딪혔다. 그 고관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의 한 사람이며 부현지사(副縣知事)인 한유(韓愈)였다. 가도는 먼저 길을 피하지 못한 까닭을 말하고 사괴했다. 역시 대문장자인 한유는 뜻밖에 만난 시인의 말을 듣고 꾸짖는 것은 잊어버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이윽고 말했다. " 내 생각엔 두드리다가 좋을 듯하네."이후 이들은 둘도 없는 시우(詩友)가 되었다고 한다. 이 고사로 인해 퇴(堆)와 고(鼓) 두 자 모두 문장을 다듬는다는 뜻이 전혀 없는데도 그러한 뜻을 지니게 되었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潤文(윤문) | 敲推(고퇴) | 改稿(개고)
推 밀 추, 밀 퇴 | 敲 두드릴 고, 두드릴 교, 두드릴 학 |
미느냐(推) 두드리느냐(敲)라는 뜻으로, 시문을 지을 때 자구(字句)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침. 당(唐)나라 가도(賈道)가 시를 짓는 데 퇴(推)자를 쓸까 고(敲)자를 쓸까 하고 고심한 고사에서 유래
당(唐)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말을 타고 길을 가다가 문득 좋은 시상(詩想)이 떠올라서 즉시 정리해 보았다. 제목은 '이응(李凝)의 유거(幽居)에 제(題)함'으로 정하고, 다음과 같이 초(草)를 잡았다. 閑居少隣竝(한거소린병) 이웃이 드물어 한적한 집草徑入荒園(초경입황원) 풀이 자란 좁은 길은 거친 뜰로 이어져 있다.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새는 못 속의 나무에 깃들고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 스님이 달 아래 문을 밀친다. 그런데, 결구(結句)를 밀다(推)로 해야 할지, 두드리다(敲)로 해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궁리하며 가다가 자신을 향해 오는 고관의 행차와 부딪혔다. 그 고관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의 한 사람이며 부현지사(副縣知事)인 한유(韓愈)였다. 가도는 먼저 길을 피하지 못한 까닭을 말하고 사괴했다. 역시 대문장자인 한유는 뜻밖에 만난 시인의 말을 듣고 꾸짖는 것은 잊어버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이윽고 말했다. " 내 생각엔 두드리다가 좋을 듯하네."이후 이들은 둘도 없는 시우(詩友)가 되었다고 한다. 이 고사로 인해 퇴(堆)와 고(鼓) 두 자 모두 문장을 다듬는다는 뜻이 전혀 없는데도 그러한 뜻을 지니게 되었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潤文(윤문) | 敲推(고퇴) | 改稿(개고)
吐哺握發 (토포악발)
吐哺握發(토포악발)
현자를 우대함. 주공(周公)이 손님이 오면, 밥 먹을 때는 밥을 뱉고, 머리감을 때는 머리를 움켜쥐고 나가서 극진히 맞아들였다는 고사에서 유래.
현자를 우대함. 주공(周公)이 손님이 오면, 밥 먹을 때는 밥을 뱉고, 머리감을 때는 머리를 움켜쥐고 나가서 극진히 맞아들였다는 고사에서 유래.
吐故納新 (토고납신)
吐故納新(토고납신)
吐 토할 토 | 故 연고 고 | 納 들일 납 | 新 새 신 |
묵은 숨을 내쉬고 새로운 숨을 들이킴. 심호흡법.
묵은 것을 토(吐)해내고 새것을 들이마신다는 뜻으로, 낡고 좋지 않은 것을 버리고 새롭고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기공(氣功) 요법(療法)의 하나
출전
莊子(장자)
吐 토할 토 | 故 연고 고 | 納 들일 납 | 新 새 신 |
묵은 숨을 내쉬고 새로운 숨을 들이킴. 심호흡법.
묵은 것을 토(吐)해내고 새것을 들이마신다는 뜻으로, 낡고 좋지 않은 것을 버리고 새롭고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기공(氣功) 요법(療法)의 하나
출전
莊子(장자)
兔角龜毛 (토각귀모)
兔角龜毛(토각귀모)
兔 토끼 토 | 角 뿔 각, 사람 이름 록(녹), 꿩 우는 소리 곡 | 龜 거북 귀, 땅 이름 구, 터질 균 | 毛 터럭 모 |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이라는 뜻으로, 불교(佛敎)에서 이른바 세상(世上)에 있을 수 없는 일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출전]
능엄경(楞嚴經)
兔 토끼 토 | 角 뿔 각, 사람 이름 록(녹), 꿩 우는 소리 곡 | 龜 거북 귀, 땅 이름 구, 터질 균 | 毛 터럭 모 |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이라는 뜻으로, 불교(佛敎)에서 이른바 세상(世上)에 있을 수 없는 일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출전]
능엄경(楞嚴經)
太平聖代 (태평성대)
太平聖代(태평성대)
太 클 태 | 平 평평할 평, 다스릴 편 | 聖 성인 성 | 代 대신할 대
태평스런 시절.
관련 한자어
유의어
堯舜之節(요순지절) | 道不拾遺(도불습유) | 鼓腹擊壤(고복격양) | 康衢煙月(강구연월) |
太 클 태 | 平 평평할 평, 다스릴 편 | 聖 성인 성 | 代 대신할 대
태평스런 시절.
관련 한자어
유의어
堯舜之節(요순지절) | 道不拾遺(도불습유) | 鼓腹擊壤(고복격양) | 康衢煙月(강구연월) |
泰然自若 (태연자약)
泰然自若(태연자약)
泰然自若(tàiránzìruò)
泰 클 태 | 然 그럴 연, 불탈 연 | 自 스스로 자 | 若 같을 약, 반야 야 |
마음에 충동을 받아도 동요하지 않고 천연스러운 것
Behave with perfect composure; be self-possessed.
관련 한자어
유의어
言笑自若 언소자약 | 談笑自若 담소자약 |
泰然自若(tàiránzìruò)
泰 클 태 | 然 그럴 연, 불탈 연 | 自 스스로 자 | 若 같을 약, 반야 야 |
마음에 충동을 받아도 동요하지 않고 천연스러운 것
Behave with perfect composure; be self-possessed.
관련 한자어
유의어
言笑自若 언소자약 | 談笑自若 담소자약 |
泰山壓卵 (태산압란)
泰山壓卵(태산압란)
泰 클 태 | 山 뫼 산 | 壓 누를 압, 싫어할 염, 숙일 엽, 누를 녑(엽) | 卵 알 란(난) |
큰 산이 알을 누른다는 뜻으로, 큰 위엄(威嚴)으로 여지없이 누르는 것의 비유(比喩ㆍ譬喩)①큰 위력(威力)으로 내리 누름 ②아주 손쉬운 것. 중국의 진(晉)나라 때 손혜(孫惠)의 고사(故事)에서 유래.
진(晉)나라 때, 손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조부와 부친은 모두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관리를 지냈다. 당시 진나라는 각지역 황족들의 다툼으로 몹시 혼란한 와중에 있었다.
손혜는 제왕(齊王) 경의 모사(謀士)로 있으면서 조왕(趙王) 윤(倫)을 토벌하는 일 등에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제왕이 차츰 교만하고 참람하게 행동하는 데 실망하여 병을 핑계로 떠났다. 손혜는 은거하던 중에 동해왕(東海王) 월(越)이 하비 지방에서 군사를 일으키자 남악일사(南嶽逸士) 진비(秦秘)라는 가명으로 편지를 보냈다.
손혜는 이 글에서 "하물며 순리를 따라 역리를 토벌하고, 정의로움으로 사악함을 정벌하는 것이니, 이는 오획 같은 장사에게 얼음을 깨뜨리게 하고, 맹분(孟賁)과 하육(夏育) 같은 장사에게 썩은 나무를 뽑아내게 하며, 맹수에게 여우를 잡아먹게 하며, 태산으로 달걀을 누르게 하며, 불타는 들판에 바람이 몰아치는 것과 같아서 맞설 수 없는 일입니다[況履順討逆, 執正伐邪, 是烏獲携氷, 賁育拉朽, 猛獸呑狐, 泰山壓卵, 因風燎原, 未足方也]"라고 하면서 동해왕의 거병에 동조하였다.
동해왕은 이 글을 읽고 손혜를 기용하여 기실참군(記室參軍)으로 삼았다. 이 고사는 《진서(晉書)》의 〈손혜열전(孫惠列傳)〉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태산압란은 태산처럼 큰 산이 아주 조그만 달걀을 누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큰 세력으로 미약한 세력을 억누르는 일이나 그러한 경우처럼 매우 쉬운 일, 또는 약자에 대한 강자의 압도적인 우세 등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진서(晉書) 손혜전(孫惠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排山壓卵(배산압란) | 泰山壓卵(태산압란) |
泰 클 태 | 山 뫼 산 | 壓 누를 압, 싫어할 염, 숙일 엽, 누를 녑(엽) | 卵 알 란(난) |
큰 산이 알을 누른다는 뜻으로, 큰 위엄(威嚴)으로 여지없이 누르는 것의 비유(比喩ㆍ譬喩)①큰 위력(威力)으로 내리 누름 ②아주 손쉬운 것. 중국의 진(晉)나라 때 손혜(孫惠)의 고사(故事)에서 유래.
진(晉)나라 때, 손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조부와 부친은 모두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관리를 지냈다. 당시 진나라는 각지역 황족들의 다툼으로 몹시 혼란한 와중에 있었다.
손혜는 제왕(齊王) 경의 모사(謀士)로 있으면서 조왕(趙王) 윤(倫)을 토벌하는 일 등에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제왕이 차츰 교만하고 참람하게 행동하는 데 실망하여 병을 핑계로 떠났다. 손혜는 은거하던 중에 동해왕(東海王) 월(越)이 하비 지방에서 군사를 일으키자 남악일사(南嶽逸士) 진비(秦秘)라는 가명으로 편지를 보냈다.
손혜는 이 글에서 "하물며 순리를 따라 역리를 토벌하고, 정의로움으로 사악함을 정벌하는 것이니, 이는 오획 같은 장사에게 얼음을 깨뜨리게 하고, 맹분(孟賁)과 하육(夏育) 같은 장사에게 썩은 나무를 뽑아내게 하며, 맹수에게 여우를 잡아먹게 하며, 태산으로 달걀을 누르게 하며, 불타는 들판에 바람이 몰아치는 것과 같아서 맞설 수 없는 일입니다[況履順討逆, 執正伐邪, 是烏獲携氷, 賁育拉朽, 猛獸呑狐, 泰山壓卵, 因風燎原, 未足方也]"라고 하면서 동해왕의 거병에 동조하였다.
동해왕은 이 글을 읽고 손혜를 기용하여 기실참군(記室參軍)으로 삼았다. 이 고사는 《진서(晉書)》의 〈손혜열전(孫惠列傳)〉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태산압란은 태산처럼 큰 산이 아주 조그만 달걀을 누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큰 세력으로 미약한 세력을 억누르는 일이나 그러한 경우처럼 매우 쉬운 일, 또는 약자에 대한 강자의 압도적인 우세 등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진서(晉書) 손혜전(孫惠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排山壓卵(배산압란) | 泰山壓卵(태산압란) |
泰山不讓土塊 (태산불양토괴)
泰山不讓土塊(태산불양토괴)
泰 클 태 | 山 뫼 산 | 不 아닐 부, 아닐 불 | 讓 사양할 양 | 土 흙 토, 뿌리 두, 쓰레기 차 | 塊 덩어리 괴 |
태산은 한 줌 흙도 마다하지 않는다. 포용을 강조할 때 사용.
출전
文章軌範(문장궤범)
泰山不讓土塊,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태산불양토괴, 고능성기대. 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
큰 산은 작은 흙과 돌멩이 하나도 가리지 않고, 큰 바다는 가늘게 흐르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다.
泰 클 태 | 山 뫼 산 | 不 아닐 부, 아닐 불 | 讓 사양할 양 | 土 흙 토, 뿌리 두, 쓰레기 차 | 塊 덩어리 괴 |
태산은 한 줌 흙도 마다하지 않는다. 포용을 강조할 때 사용.
출전
文章軌範(문장궤범)
泰山不讓土塊,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태산불양토괴, 고능성기대. 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
큰 산은 작은 흙과 돌멩이 하나도 가리지 않고, 큰 바다는 가늘게 흐르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다.
泰山北斗 (태산북두)
泰山北斗(태산북두)
泰山北斗(tàishānběidǒu)
泰 클 태 | 山 뫼 산 | 北 북녘 북, 달아날 배 | 斗 말 두, 싸울 두, 싸울 투, 싸울 각 |
중국(中國) 제일(第一)의 명산인 태산(泰山)과 북두성(北斗星)이라는 뜻으로, ①학문(學問)ㆍ예술(藝術) 분야(分野)의 대가(大家) ②태산(泰山)과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여러 사람이 우러러보듯이, 남에게 존경(尊敬)받는 뛰어난 존재(存在).
Mount talisman and the northern star - person of distinction; abbreviation as 泰斗.
명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의 한사람인 한유(韓愈)는 두 살에 고아(孤兒)가 되었으나, 각고의 노력 끝에 25세에는 진사(進士)가 되었고, 차츰 벼슬이 올라 드디어 경조윤(京兆尹) 겸 어사대부(御史大夫)에까지 이르렀다. 그가 죽은 뒤 조정에서는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증(贈)하고, 시호(諡號)를 문(文)이라 했다. 한유는 벼슬살이를 할 때에 궁중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폐단을 상소하여 황제(皇帝)의 노여움을 사기도 했는데, '논불골표(論佛骨表)'라 하여 황제(皇帝)가 부처의 유골을 영접하여 궁중에 삼 일간이나 머물게 한 후, 여러 절에 보낸 일에 대해 간단한 글이 유명하다. 한유는 이 글에서 불교는 사교이므로 불골 같은 것은 수화(水火)에 던져버려야 한다고 통렬히 간했기 때문에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기도 했다. 한유는 글의 모범을 선진(先秦)에 구하고, 육조(六朝) 이래의 사륙(四六)변려의 숙폐(宿弊)를 타파하려 했다.
그 때문에 당서(唐書) '한유전(韓愈傳)'에는 "당나라가 일어난 이래, 한유는 육경(六經)의 글을 가지고 모든 학자들의 도사(導師)가 되었다. 그가 죽은 뒤에 그 학문(學問)이 점점 융성하여 학자들은 그를 태산북두를 우러러 보는 것 같이 존경했다."고 기록되어 있음.
여기서 '태산'은 글자상으로는 큰 산이라는 뜻이지만 중국에서는 오악(五嶽)의 하나로서 성산(聖山)으로 우러러보는 산이다. '북두'는 북두칠성을 가리키는데, 북두칠성이 모든 별의 중심적인 존재로 받들어지고 있는 데서 '북두'라는 말 자체도 뛰어난 인물을 비유할 때 사용한다. 오늘날 이 말은 '태두(泰斗)', '산두(山斗)'라는 약칭으로 통용되며, 특히 학술적 업적이 뛰어난 학자를 가리키는 데 쓰인다.
출전: 당서(唐書)
관련 인물
한유(韓愈, 768~824)
관련 한자어
유의어
泰斗(태두) | 山斗(산두) |
泰山北斗(tàishānběidǒu)
泰 클 태 | 山 뫼 산 | 北 북녘 북, 달아날 배 | 斗 말 두, 싸울 두, 싸울 투, 싸울 각 |
중국(中國) 제일(第一)의 명산인 태산(泰山)과 북두성(北斗星)이라는 뜻으로, ①학문(學問)ㆍ예술(藝術) 분야(分野)의 대가(大家) ②태산(泰山)과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여러 사람이 우러러보듯이, 남에게 존경(尊敬)받는 뛰어난 존재(存在).
Mount talisman and the northern star - person of distinction; abbreviation as 泰斗.
명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의 한사람인 한유(韓愈)는 두 살에 고아(孤兒)가 되었으나, 각고의 노력 끝에 25세에는 진사(進士)가 되었고, 차츰 벼슬이 올라 드디어 경조윤(京兆尹) 겸 어사대부(御史大夫)에까지 이르렀다. 그가 죽은 뒤 조정에서는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증(贈)하고, 시호(諡號)를 문(文)이라 했다. 한유는 벼슬살이를 할 때에 궁중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폐단을 상소하여 황제(皇帝)의 노여움을 사기도 했는데, '논불골표(論佛骨表)'라 하여 황제(皇帝)가 부처의 유골을 영접하여 궁중에 삼 일간이나 머물게 한 후, 여러 절에 보낸 일에 대해 간단한 글이 유명하다. 한유는 이 글에서 불교는 사교이므로 불골 같은 것은 수화(水火)에 던져버려야 한다고 통렬히 간했기 때문에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기도 했다. 한유는 글의 모범을 선진(先秦)에 구하고, 육조(六朝) 이래의 사륙(四六)변려의 숙폐(宿弊)를 타파하려 했다.
그 때문에 당서(唐書) '한유전(韓愈傳)'에는 "당나라가 일어난 이래, 한유는 육경(六經)의 글을 가지고 모든 학자들의 도사(導師)가 되었다. 그가 죽은 뒤에 그 학문(學問)이 점점 융성하여 학자들은 그를 태산북두를 우러러 보는 것 같이 존경했다."고 기록되어 있음.
여기서 '태산'은 글자상으로는 큰 산이라는 뜻이지만 중국에서는 오악(五嶽)의 하나로서 성산(聖山)으로 우러러보는 산이다. '북두'는 북두칠성을 가리키는데, 북두칠성이 모든 별의 중심적인 존재로 받들어지고 있는 데서 '북두'라는 말 자체도 뛰어난 인물을 비유할 때 사용한다. 오늘날 이 말은 '태두(泰斗)', '산두(山斗)'라는 약칭으로 통용되며, 특히 학술적 업적이 뛰어난 학자를 가리키는 데 쓰인다.
출전: 당서(唐書)
관련 인물
한유(韓愈, 768~824)
관련 한자어
유의어
泰斗(태두) | 山斗(산두) |
探花蜂蝶 (탐화봉접)
探花蜂蝶(탐화봉접)
探 찾을 탐 | 花 꽃 화 | 蜂 벌 봉 | 蝶 나비 접
꽃을 찾는 벌과 나비라는 뜻으로 ①사랑하는 여자를 그리워하여 찾아가는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여색(女色)을 좋아하는 사람을 비유(比喩ㆍ譬喩)로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유의어
탐화광접(探花狂蝶) 꽃을 찾아다니는 미친 나비라는 뜻으로, ‘탐화봉접’을 강조하여 이르는 말.
探 찾을 탐 | 花 꽃 화 | 蜂 벌 봉 | 蝶 나비 접
꽃을 찾는 벌과 나비라는 뜻으로 ①사랑하는 여자를 그리워하여 찾아가는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여색(女色)을 좋아하는 사람을 비유(比喩ㆍ譬喩)로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유의어
탐화광접(探花狂蝶) 꽃을 찾아다니는 미친 나비라는 뜻으로, ‘탐화봉접’을 강조하여 이르는 말.
打草驚蛇 (타초경사, dǎcǎojīngshé)
打草驚蛇(타초경사)
打草惊蛇(dǎcǎojīngshé)
打 칠 타 | 草 풀 초 | 驚 놀랄 경 | 蛇 뱀 사 |
풀을 두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는 뜻으로, 을(乙)을 징계하여 갑(甲)을 깨우침을 비유하거나 또는 변죽을 울려 적의 정체를 드러나게 하거나 공연히 문제를 일으켜 화를 자초함을 비유한 말.
打草惊蛇(dǎcǎojīngshé)
打 칠 타 | 草 풀 초 | 驚 놀랄 경 | 蛇 뱀 사 |
풀을 두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는 뜻으로, 을(乙)을 징계하여 갑(甲)을 깨우침을 비유하거나 또는 변죽을 울려 적의 정체를 드러나게 하거나 공연히 문제를 일으켜 화를 자초함을 비유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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