希言自然(희언자연)
말은 적은 것이 자연스럽다.
黑白顚倒 (흑백전도)
黑白顚倒(흑백전도)
黑 검을 흑 | 白 흰 백 | 顚 엎드러질 전 | 倒 넘어질 도 |
'검은 것과 흰 것이 거꾸로 되었다'라는 뜻으로, 옳고 그름이 뒤집히거나 그러한 상황을 야기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굴원(屈原)의 '회사(懷沙)'에서 유래되었다.
전도흑백(顚倒黑白) 또는 반백위흑(反白爲黑), 흑백혼효(黑白混淆) 또는 혼효흑백(混淆黑白)이라고도 한다. 전도시비(顚倒是非)나 혼효시비(混淆是非)도 같은 뜻이다.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굴원은 유배지에서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을 한탄하며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 그가 죽기 전에 자신의 심경을 담아 지은 작품이 바로 '회사'이다.
여기서 굴원은 "흰 것이 변하여 검은 것이 되고, 위가 거꾸로 아래로 되었네(變白以爲黑兮, 倒上以爲下). 봉황은 조롱 속에 갇히고, 닭과 꿩이 하늘을 나네"라고 읊으며, 간신배들이 활개치는 세상을 한탄하였다.
또 후한 시대 안제(安帝) 때의 양진(楊震)은 번풍(樊豊)과 주광(周廣) 등 탐관오리의 행태를 고발하는 상소문에서 "흰 것과 검은 것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고, 맑음과 탁함이 그 근원을 같이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유래하여 흑백전도는 문자 그대로 흑과 백이 뒤집힌 것처럼 옳음과 그름(是非)이 뒤집힌 부조리한 상황을 비유하거나, 검은 것을 희다고 말하고 흰 것을 검다고 말하는 것처럼 고의로 옳고 그름을 흐리게 하거나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굴원(屈原)의 회사(懷沙)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전도흑백(顚倒黑白) | 반백위흑(反白爲黑) | 흑백혼효(黑白混淆) | 혼효흑백(混淆黑白) | 전도시비(顚倒是非) | 혼효시비(混淆是非) |
黑 검을 흑 | 白 흰 백 | 顚 엎드러질 전 | 倒 넘어질 도 |
'검은 것과 흰 것이 거꾸로 되었다'라는 뜻으로, 옳고 그름이 뒤집히거나 그러한 상황을 야기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굴원(屈原)의 '회사(懷沙)'에서 유래되었다.
전도흑백(顚倒黑白) 또는 반백위흑(反白爲黑), 흑백혼효(黑白混淆) 또는 혼효흑백(混淆黑白)이라고도 한다. 전도시비(顚倒是非)나 혼효시비(混淆是非)도 같은 뜻이다.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굴원은 유배지에서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을 한탄하며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 그가 죽기 전에 자신의 심경을 담아 지은 작품이 바로 '회사'이다.
여기서 굴원은 "흰 것이 변하여 검은 것이 되고, 위가 거꾸로 아래로 되었네(變白以爲黑兮, 倒上以爲下). 봉황은 조롱 속에 갇히고, 닭과 꿩이 하늘을 나네"라고 읊으며, 간신배들이 활개치는 세상을 한탄하였다.
또 후한 시대 안제(安帝) 때의 양진(楊震)은 번풍(樊豊)과 주광(周廣) 등 탐관오리의 행태를 고발하는 상소문에서 "흰 것과 검은 것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고, 맑음과 탁함이 그 근원을 같이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유래하여 흑백전도는 문자 그대로 흑과 백이 뒤집힌 것처럼 옳음과 그름(是非)이 뒤집힌 부조리한 상황을 비유하거나, 검은 것을 희다고 말하고 흰 것을 검다고 말하는 것처럼 고의로 옳고 그름을 흐리게 하거나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굴원(屈原)의 회사(懷沙)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전도흑백(顚倒黑白) | 반백위흑(反白爲黑) | 흑백혼효(黑白混淆) | 혼효흑백(混淆黑白) | 전도시비(顚倒是非) | 혼효시비(混淆是非) |
懸梁刺股 (현량자고)
懸梁刺股(현량자고)
懸 매달 현 | 梁 대들보 량 | 刺 찌를 자 | 股 넓적다리 고 |
'머리카락을 대들보에 묶고, 허벅지를 송곳으로 찌른다'라는 뜻으로, 분발하여 학문에 정진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한(漢)나라 때의 대학자인 손경(孫敬)과 전국시대에 종횡가(縱橫家)로 명성을 떨친 소진(蘇秦)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현두자고(懸頭刺股) 또는 자고현량(刺股懸梁)이라고도 한다. 손경(孫敬)과 소진 두 사람의 일화에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합쳐진 것이다.
'현량'은 손경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손경은 자가 문보(問寶)이며, 학문을 좋아하여 사람들이 찾아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근 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학문에 몰두하였다.
그는 공부를 하다가 졸음이 오면 노끈으로 머리카락을 묶어 대들보에 매달았다. [以繩系頭, 懸屋梁] 잠이 와서 고개를 떨구면 노끈이 팽팽해지면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통증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공부를 계속하였다. 이와 같이 노력하여 손경은 나중에 대유학자가 되었다. 이 고사는 《몽구(蒙求)》와 《태평광기(太平廣記)》 등에 실려 있다.
'자고'는 소진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소진은 처음에 진(秦)나라 혜왕(惠王)에게 연횡책(連橫策)을 유세하다가 좌절하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가족들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그를 박대하였다. 그는 자신을 한탄하며 궤짝에 들어 있는 책들을 꺼내 살펴보다가 태공(太公)이 지은 《음부(陰符)》를 발견하였다.
소진은 그 책을 공부하는 데 몰두하였으며, 몸이 지쳐 졸음이 오면, 송곳으로 넓적다리를 찔러 피가 줄줄 흐르곤 하였다. [引錐自刺其股, 血流至足] 1년이 지나 소진은 마침내 그 책의 이치를 터득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종횡가로 명성을 떨치며 전국시대 6국의 재상이 되었다. 이 고사는 《전국책(戰國策)》의 〈진책(秦策)〉편에 실려 있다. 이 두 가지 고사에서 유래하여 현량자고는 고통을 감수하고 분발하여 학문에 정진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전국책(戰國冊) 진책(秦策)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刺股懸梁(자고현량) | 懸頭刺股(현두자고) | 懸梁刺股(현량자고) |
懸 매달 현 | 梁 대들보 량 | 刺 찌를 자 | 股 넓적다리 고 |
'머리카락을 대들보에 묶고, 허벅지를 송곳으로 찌른다'라는 뜻으로, 분발하여 학문에 정진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한(漢)나라 때의 대학자인 손경(孫敬)과 전국시대에 종횡가(縱橫家)로 명성을 떨친 소진(蘇秦)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현두자고(懸頭刺股) 또는 자고현량(刺股懸梁)이라고도 한다. 손경(孫敬)과 소진 두 사람의 일화에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합쳐진 것이다.
'현량'은 손경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손경은 자가 문보(問寶)이며, 학문을 좋아하여 사람들이 찾아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근 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학문에 몰두하였다.
그는 공부를 하다가 졸음이 오면 노끈으로 머리카락을 묶어 대들보에 매달았다. [以繩系頭, 懸屋梁] 잠이 와서 고개를 떨구면 노끈이 팽팽해지면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통증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공부를 계속하였다. 이와 같이 노력하여 손경은 나중에 대유학자가 되었다. 이 고사는 《몽구(蒙求)》와 《태평광기(太平廣記)》 등에 실려 있다.
'자고'는 소진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소진은 처음에 진(秦)나라 혜왕(惠王)에게 연횡책(連橫策)을 유세하다가 좌절하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가족들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그를 박대하였다. 그는 자신을 한탄하며 궤짝에 들어 있는 책들을 꺼내 살펴보다가 태공(太公)이 지은 《음부(陰符)》를 발견하였다.
소진은 그 책을 공부하는 데 몰두하였으며, 몸이 지쳐 졸음이 오면, 송곳으로 넓적다리를 찔러 피가 줄줄 흐르곤 하였다. [引錐自刺其股, 血流至足] 1년이 지나 소진은 마침내 그 책의 이치를 터득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종횡가로 명성을 떨치며 전국시대 6국의 재상이 되었다. 이 고사는 《전국책(戰國策)》의 〈진책(秦策)〉편에 실려 있다. 이 두 가지 고사에서 유래하여 현량자고는 고통을 감수하고 분발하여 학문에 정진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전국책(戰國冊) 진책(秦策)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刺股懸梁(자고현량) | 懸頭刺股(현두자고) | 懸梁刺股(현량자고) |
胸有成竹 (흉유성죽)
胸有成竹(흉유성죽)
胸有成竹[xiōngyǒuchéngzhú]
胸 가슴 흉 | 有 있을 유 | 成 이룰 성 | 竹 대 죽 |
대나무 그림을 그리기 이전에 마음속에 이미 완성된 대나무 그림이 있다는 뜻으로,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이미 계산(計算)이 모두 서 있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이 말은 중국 북송(北宋) 때의 시인인 소동파(蘇東坡)와 조보지(晁補之)의 시(詩)에 나오는 말로, 득성죽우흉중(得成竹于胸中)·흉중유성죽(胸中有成竹)·유성죽흉(有成竹胸)이라고도 한다.
동파라는 호로 유명한 소식은 문장뿐만 아니라 서화(書畵)에도 능하였다. 소식은 정치적으로는 불우하였으나, 그가 그린 대나무와 그 기법은 옥국법(玉局法)으로 유명하였다. 그는 일찍이 화죽기(花竹記)라는 책에서 대나무를 그리려면, 먼저 마음 속에 대나무을 완성해야 한다[故畵竹, 必先成竹于胸中]라고 하였다.
그에게는 문동(文同)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문동(文同)은 중국 북송의 문인이자 화가로, 자는 여가(與可)이다. 시문과 글씨·죽화(竹畵)에 특히 뛰어났으며, 인품이 고결하고 박학다식하여 사마 광(司馬光)·소식 등은 문동을 매우 존경했다고 한다. 문동은 후세에 묵죽(墨竹)의 개조(開祖)로 추앙받았다.
문동의 집은 앞뒤로 대가 우거져 있어 제법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대를 몹시 사랑하여 직접 심어서 돌보기도 하였다. 시간만 나면 죽림에 들어가서 대가 자라는 모습, 가지 치는 상태, 잎이 우거지는 모습, 그리고 죽순이 나오는 모양과 자라는 모습 등을 정성들여 꼼꼼히 관찰하여 대에 대한 모든 것을 터득하였다. 그후로, 그는 대를 완상(玩賞)하다가 흥에 겨우면 집으로 들어가 종이를 펼치고 먹을 갈아 그림을 그렸다. 대에 대해 충분히 연구 관찰하였으므로, 그가 그리는 묵죽화는 박진감이 있다고 평판이 높았다. 그 자신은 마음속에 떠오르는 대로 대를 그릴 뿐이었으나, 세간에서는 높이 평가하여 귀하게 취급하게 되었다. 그의 묵죽화가 천하일품이라고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전국 각지에서 그림을 그려받으려는 사람들이 몰려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조보지(晁補之)는 학자이자 시인이었는데 문동과는 절친한 친구였다. 문동은 그가 찾아오면 반가이 맞아 죽림으로 가서 차를 마시며 즐겨 한담을 나누었는데, 조보지는 문동이 즉석에서 대를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 날 문동에게 그림을 배우고 싶어하는 청년이 조보지를 찾아와 문동의 그림에 대해 물었다. 조보지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여가가 대를 그리고자 할 때, 흉중에는 이미 성죽이 있다[與可畵竹時 胸中有成竹].” 여기서 ‘여가’는 문동의 자(字)이다. 조보지는 문동의 그림이 어느 만큼 높은 경지에 이른 것인가를 이 말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비롯하여 ‘흉유성죽’이란 말이 나왔으며, 어떤 일에 착수하기 전에 이미 충분한 복안이 서 있음의 비유로 사용되고 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得成竹于胸中(득성죽우흉중) | 成竹在胸(chéngzhúzàixiōng) 일을 하기 전에 이미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 有成竹胸(유성죽흉) | 胸中有成竹(흉중유성죽) |
胸有成竹[xiōngyǒuchéngzhú]
胸 가슴 흉 | 有 있을 유 | 成 이룰 성 | 竹 대 죽 |
대나무 그림을 그리기 이전에 마음속에 이미 완성된 대나무 그림이 있다는 뜻으로,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이미 계산(計算)이 모두 서 있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이 말은 중국 북송(北宋) 때의 시인인 소동파(蘇東坡)와 조보지(晁補之)의 시(詩)에 나오는 말로, 득성죽우흉중(得成竹于胸中)·흉중유성죽(胸中有成竹)·유성죽흉(有成竹胸)이라고도 한다.
동파라는 호로 유명한 소식은 문장뿐만 아니라 서화(書畵)에도 능하였다. 소식은 정치적으로는 불우하였으나, 그가 그린 대나무와 그 기법은 옥국법(玉局法)으로 유명하였다. 그는 일찍이 화죽기(花竹記)라는 책에서 대나무를 그리려면, 먼저 마음 속에 대나무을 완성해야 한다[故畵竹, 必先成竹于胸中]라고 하였다.
그에게는 문동(文同)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문동(文同)은 중국 북송의 문인이자 화가로, 자는 여가(與可)이다. 시문과 글씨·죽화(竹畵)에 특히 뛰어났으며, 인품이 고결하고 박학다식하여 사마 광(司馬光)·소식 등은 문동을 매우 존경했다고 한다. 문동은 후세에 묵죽(墨竹)의 개조(開祖)로 추앙받았다.
문동의 집은 앞뒤로 대가 우거져 있어 제법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대를 몹시 사랑하여 직접 심어서 돌보기도 하였다. 시간만 나면 죽림에 들어가서 대가 자라는 모습, 가지 치는 상태, 잎이 우거지는 모습, 그리고 죽순이 나오는 모양과 자라는 모습 등을 정성들여 꼼꼼히 관찰하여 대에 대한 모든 것을 터득하였다. 그후로, 그는 대를 완상(玩賞)하다가 흥에 겨우면 집으로 들어가 종이를 펼치고 먹을 갈아 그림을 그렸다. 대에 대해 충분히 연구 관찰하였으므로, 그가 그리는 묵죽화는 박진감이 있다고 평판이 높았다. 그 자신은 마음속에 떠오르는 대로 대를 그릴 뿐이었으나, 세간에서는 높이 평가하여 귀하게 취급하게 되었다. 그의 묵죽화가 천하일품이라고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전국 각지에서 그림을 그려받으려는 사람들이 몰려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조보지(晁補之)는 학자이자 시인이었는데 문동과는 절친한 친구였다. 문동은 그가 찾아오면 반가이 맞아 죽림으로 가서 차를 마시며 즐겨 한담을 나누었는데, 조보지는 문동이 즉석에서 대를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 날 문동에게 그림을 배우고 싶어하는 청년이 조보지를 찾아와 문동의 그림에 대해 물었다. 조보지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여가가 대를 그리고자 할 때, 흉중에는 이미 성죽이 있다[與可畵竹時 胸中有成竹].” 여기서 ‘여가’는 문동의 자(字)이다. 조보지는 문동의 그림이 어느 만큼 높은 경지에 이른 것인가를 이 말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비롯하여 ‘흉유성죽’이란 말이 나왔으며, 어떤 일에 착수하기 전에 이미 충분한 복안이 서 있음의 비유로 사용되고 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得成竹于胸中(득성죽우흉중) | 成竹在胸(chéngzhúzàixiōng) 일을 하기 전에 이미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 有成竹胸(유성죽흉) | 胸中有成竹(흉중유성죽) |
諱疾忌醫 (휘질기의)
諱疾忌醫(휘질기의)
諱 숨길 휘/꺼릴 휘 | 疾 병 질 | 忌 꺼릴 기 | 醫 의원 의 |
병을 숨기고 의원에게 보이기를 꺼린다는 뜻으로, 자신의 결점을 감추고 남의 충고를 듣지 않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한비자(韓非子)》의 유로(喩老)편과 《사기(史記)》의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에 실려 있다.
춘추시대, 채(蔡)나라에 편작(扁鵲)이라는 유명한 의원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채나라 환공(桓公)에게 말했다.
"대왕께서는 병이 나셨는데, 그 병은 피부에 있습니다. 지금 치료하시지 않으면 심해질 것입니다."
이에 채환공은 병이 없다면서 치료를 거절했다. 열흘 후, 편작은 채환공을 알현하고 그에게 병이 살 속까지 퍼져서 서둘러 치료하지 않으면 심각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환공이 이를 무시하며 몹시 불쾌해했다.
다시 열흘이 지나자, 편작은 채환공을 찾아가 병이 이미 내장에 이르렀으니,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하게 됩니다 라고 했다. 그러나 환공은 여전히 이를 무시하며 화를 냈다.
열흘 후, 편작은 환공을 찾아가 병이 이미 골수에 이르러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닷새 후, 채환공은 온몸에 고통을 느끼며 결국 죽고 말았다.
북송(北宋)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는 《통서(通書)》에서 "요즘 사람들은 잘못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바로잡아 주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병을 숨기면서 의원에게 보이지 않아 몸을 망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今人有過, 不喜人規, 如護疾而忌醫, 寧滅其身而無悟也]"라고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였다.
출전
한비자(韓非子) 유로(喩老) | 사기(史記)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 | 주자통서(周子通書)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護疾忌醫(호질기의) |
반의어·상대어
|
중요도·활용도
諱 숨길 휘/꺼릴 휘 | 疾 병 질 | 忌 꺼릴 기 | 醫 의원 의 |
병을 숨기고 의원에게 보이기를 꺼린다는 뜻으로, 자신의 결점을 감추고 남의 충고를 듣지 않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한비자(韓非子)》의 유로(喩老)편과 《사기(史記)》의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에 실려 있다.
춘추시대, 채(蔡)나라에 편작(扁鵲)이라는 유명한 의원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채나라 환공(桓公)에게 말했다.
"대왕께서는 병이 나셨는데, 그 병은 피부에 있습니다. 지금 치료하시지 않으면 심해질 것입니다."
이에 채환공은 병이 없다면서 치료를 거절했다. 열흘 후, 편작은 채환공을 알현하고 그에게 병이 살 속까지 퍼져서 서둘러 치료하지 않으면 심각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환공이 이를 무시하며 몹시 불쾌해했다.
다시 열흘이 지나자, 편작은 채환공을 찾아가 병이 이미 내장에 이르렀으니,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하게 됩니다 라고 했다. 그러나 환공은 여전히 이를 무시하며 화를 냈다.
열흘 후, 편작은 환공을 찾아가 병이 이미 골수에 이르러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닷새 후, 채환공은 온몸에 고통을 느끼며 결국 죽고 말았다.
북송(北宋)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는 《통서(通書)》에서 "요즘 사람들은 잘못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바로잡아 주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병을 숨기면서 의원에게 보이지 않아 몸을 망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今人有過, 不喜人規, 如護疾而忌醫, 寧滅其身而無悟也]"라고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였다.
출전
한비자(韓非子) 유로(喩老) | 사기(史記)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 | 주자통서(周子通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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護疾忌醫(호질기의) |
반의어·상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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