梅妻鶴子 (매처학자, méiqīhèzǐ)

梅妻鶴子(매처학자)

梅妻鹤子(méiqīhèzǐ)

梅 매화 매 | 妻 아내 처 | 鶴 학 학,흴 학 | 子 아들 자 |


매화(梅花)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子息)으로 삼는다는 뜻으로, 선비의 풍류(風流) 생활(生活)을 두고 이르는 말


송나라의 완열(阮閱)이 편집한 시화집《시화총귀(詩話總龜):원명은 시총(詩總)》에 나오는 말이다. 송(宋)나라 때 임포(林浦)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평생을 홀아비로 살면서 세속의 영리를 버리고 고적한 가운데 유유자적하며 사는 시인이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유정(幽靜)하면서도 청고(淸高)하였는데, 시로써 이름이 나는 것을 싫어하여 많은 시를 버리고, 후세에 전하여질 것이 두려워 시를 읊되 기록하지 않기도 하였다.

그가 은둔 생활을 한 곳은 서호(西湖) 근처의 고산(孤山)이란 곳이었다. 자주 호수에 나가 조각배를 띄우고, 간혹 절을 찾아 유한한 정취를 즐겼는데, 임포는 처자가 없는 대신 자신이 머물고 있는 초당 주위에 수많은 매화나무를 심어 놓고 학을 기르며 살았다. 그는 학이 나는 것을 보고 손님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임포를 두고, ‘매화 아내에 학 아들을 가지고 있다(梅妻鶴子)’고 하였다. 그 후 사람들은 풍류를 즐기며 초야에서 정한(靜閑)하게 사는 사람을 가리켜 매처학자라 부르게 되었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妻梅子鶴(처매자학) | 悠悠自適(유유자적) |


詩話總龜(시화총귀) | 詩總(시총) |

盲玩丹靑 (맹완단청)

盲玩丹靑(맹완단청)

장님의 단청 구경. 보이지 않는 눈으로 단청을 구경해 봤자 아무런 소득이나 분별이 있을 수 없듯이, 사물을 보아도 전혀 사리를 분별하지 못함의 비유.

麥秀之嘆 (맥수지탄, màixiùzhītàn)

麥秀之嘆(맥수지탄)

麦秀之叹(màixiùzhītàn)

麥 보리 맥 | 秀 빼어날 수 | 之 갈 지 | 嘆 탄식할 탄,또 우 |


맥수지탄(麥秀之歎). 무성(茂盛)히 자라는 보리를 보고 하는 탄식(歎息)이라는 뜻으로, 고국의 멸망(滅亡)에 대(對)한 탄식(歎息)을 이르는 말


고대 중국 상(商)의 마지막 임금인 주왕(紂王)은 여러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고 주색에 빠졌다가 백성과 제후(諸侯)들의 마음을 잃었다. 결국 주(周)의 무왕(武王)이 서쪽의 제후들을 규합해 쳐들어오자 목야(牧野)에서 맞서싸웠지만 패배하여 자살하였고, 상(商)은 멸망하였다.

뒷날 주왕의 숙부(叔父)인 기자(箕子)가 상(商)의 옛 도성을 지나게 되었는데, 화려하던 시가지는 폐허가 되었고, 궁궐 터엔 보리와 기장만이 무성하였다. 이에 그는 맥수지시(麥秀之詩,麥秀歌)를 지어 읊으며 그 사실을 슬퍼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사기(史記)》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에 “麥秀漸漸兮 禾黍油油兮 彼狡童兮 不與我好兮(옛 궁궐터에는 보리만이 무성하고 벼와 기장도 기름졌구나. 도성이 이 꼴로 변한 것은 그 녀석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지)”로 기록되어 전한다.

[유래]
史記(사기) : 宋微子世家(송미자세가) |


관련 한자어

유의어

麥秀之歎(맥수지탄) | 麥秀黍油(맥수서유) | 亡國之恨(망국지한) | 亡國之歎(망국지탄) |


史記(사기) : 宋微子世家(송미자세가) |

孟母三遷之敎 (맹모삼천지교)

孟母三遷之敎(맹모삼천지교)

孟 : 맏 맹| 母 : 어미 모| 三 : 석 삼| 遷 : 옮길 천| 之 : 어조사 지| 敎 : 가르칠 교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뜻으로, 인간의 성장에 있어서 그 환경이 중요함을 가리키는 말.

孟母三遷 (맹모삼천)

孟母三遷(맹모삼천)

☞ 孟母三遷之敎(맹모삼천지교)

「孟母三遷之敎(맹모삼천지교)」의 준말. 환경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여, 맹자어머니가 세 번이나 이사를 하면서 맹자의 교육에 힘썼다는 고사.

☞ 孟母三遷之敎(맹모삼천지교)

孟母斷機 (맹모단기)

맹모단기(孟母斷機)

맹자 어머니가 베의 날실을 끊다. 시작했으면 끝을 보아야 한다.


타향에서 공부하던 어린 맹자가 느닷없이 집에 돌아왔을 때 맹자의 어머니는 베틀에 앉은 채 맹자에게 물었다.

"그래, 글은 얼마나 배웠느냐?"

"별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어머님."

맹자가 대답하자 어머니는 짜고 있던 베의 날실을 끊어버리며 말했다.

"네가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고 돌아온 것은 지금 내가 짜고 있던 이 베의 날실을 끊어 버린 것과 다를 게 없다."


시작했으면 끝을 보아야 하는 이치는 단지 학문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이든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도전해보십시오.

買櫝還珠 (매독환주)

買櫝還珠(매독환주)

買 살 매 | 櫝 함 독 | 還 돌아올 환 | 珠 구슬 주 |

옥을 포장하기 위해 만든 나무상자를 사고 그 속의 옥은 돌려 준다는 뜻으로, 꾸밈에 현혹되어 정말 중요한 것을 잃는다는 말


한비자(韓非子) 외저설(外儲說)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춘추시기, 초(楚)나라 왕이 묵자(墨子)의 제자인 전구(田鳩)에게 물었다.

"묵자는 학식이 넓다고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네. 그런데 품행은 단정하지만 언설을 보면 장황하기만 할 뿐 능변이 아닌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전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옛날 진(秦)나라 왕이 그 딸을 진(晉)나라 공자에게 시집보낼 때 온갖 장식을 다하고 아름답게 수놓은 옷을 입은 시녀 70명을 딸려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자는 오히려 그 시녀들을 사랑하고 딸을 학대하였습니다. 따라서 진 나라 왕은 딸을 좋은 곳에 시집보낸 것이 아니라 시녀들을 좋은 곳에 시집보낸 꼴이 되었지요. 또 어느 초나라 사람은 자기가 가진 구슬을 팔러 정나라로 갔습니다. 그는 목란(木蘭), 계초(桂椒)와 같은 향기로운 나무로 짜고 물참새의 털로 장식한 상자를 만들어 그 안에 옥을 넣어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정나라 사람은 그 상자만 샀을 뿐 옥은 되돌려 주었다고 합니다[買櫝還珠]. 오늘날 세간의 학자들도 이와 같아서 모두 능란한 변설로 꾸미기를 잘하며, 군주는 또 그 화려함에 현혹되어 실질을 판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묵자의 언설은 성왕의 도를 전하고, 성인의 말씀을 논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킵니다. 만약 언설을 꾸미게 되면 사람들은 단지 그 꾸민 말과 표현에만 주의하여 실질은 잊게 될 것이니 그것은 언설을 꾸미면 실질의 중요성이 묻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묵자는 그 말만 장황할 뿐 능변은 아닌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매독환주란 표현의 화려함에 현혹되어 내용의 중요성은 잊는다는 비유로, 본래는 교언영색(巧言玲色)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는 호화롭게 꾸민 겉포장에 현혹되어 정말 중요한 실체를 잃는다는 의미로 두루 사용되고 있다.


출전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좌상(外儲說左上)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교언영색(巧言玲色)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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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