亡國之音(망국지음)
亡 망할 망, 없을 무 | 國 나라 국 | 之 갈 지 | 音 소리 음, 그늘 음 |
나라를 망치는 음악(音樂)이란 뜻으로, '저속(低俗)하고 난잡(亂雜)한 음악(音樂)'을 일컫는 말
《예기(禮記)》 악기(樂記)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세상을 다스리는 음악은 편하고 즐거우니 그 정치가 조화를 이루게 되며, 세상을 어지럽히는 음악은 원망하고 성내게 하니 그 정치를 어긋나게 한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음악은 슬프고 생각하게 하니 그 백성이 곤궁하니라[治世之音 安以樂 其政和, 亂世之音 怨以怒 其政乖, 亡國之音 哀以思 其民困].
한비자(韓非子) 십과편(十過篇)에는 위(衛)나라 영공(靈公)이 진(晉)나라로 가는 도중에 들었다는 멋있는 음악에 관한 고사가 기록되어 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위(衛)나라의 영공(靈公)이 진(晉)나라로 가는 도중 복수(濮水) 근방에 이르렀을 때였다.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현묘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음률이 너무나 절묘하여 마치 천상의 소리인 듯했다. 한참을 넋을 잃고 듣던 영공은 수행하던 악사(樂師)에게 그 가사를 베끼고 악보까지도 채록하라 명했다.
진(秦)나라에 도착하자 영공은 그 신묘한 음악을 진(秦)나라의 평공(平公)에게 손수 연주하여 들려주었다.
평공은 다시 진(秦)나라에서 유명한 음악가였던 사광(師曠)을 불러들여 함께 듣도록 했는데, 영공의 음악을 듣고 있던 사광은 깜짝 놀라 영공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것은 망국의 음악입니다[亡國之音]."
놀란 영공과 평공에게 사광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옛날 주나라의 악사인 사연(師延)이라는 유명한 음악가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신성백리(新聲百里)'라는 음탕한 음악을 지어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에게 바쳤습니다. 주왕은 이 음악을 즐기며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무왕(武王)에게 망했고, 사연은 복수까지 도망와서는 거문고를 안고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지금도 복수를 지날 때는 누구나 이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음악을 망국의 음악이라 하며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亡國之音은 亡國之聲(망국지성)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음란하고 사치스러워 나라를 망칠 음악을 말한다.
사광의 이야기가 끝나자, 평공은 픽 웃었다.
“그럴듯한 이야기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음악에 불과하다. 한낱 음율에 무슨 그런 조화가 따르랴.”
그리고는 사광의 간곡한 반대를 무릅쓰고 사연으로 하여금 ‘신성백리’를 끝까지 탄주하도록 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사광더러 이보다 더 슬픈 노래를 들려 달라고 명했다. 밥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평공이었다. 왕명에 어쩔 수 없이 거문고를 잡은 사광은 ‘청치(淸徵)’란 곡을 탄주했는데, 갑자기 검은 학들이 남쪽으로부터 날아와 대궐 지붕 용마루에 앉았다. 그것을 본 평왕이 다시 한번 탄주를 명함에 따라 사광이 거문고 줄을 퉁기자 학들은 나란히 열을 지어 섰고, 세 번째 탄주에서는 목을 뽑아 우짖으면서 너울너울 춤을 추기 시작했다.
“좋다! 그보다 더 슬픈 곡을 뜯도록 하라.”
신바람이 난 평공은 그렇게 명했고, 사광은 체념한 듯 ‘청각(淸角)’이란 곡을 들고 나왔다. 그러자 첫 번째 탄주에서 서북쪽으로부터 검은 구름이 몰려왔고, 두 번째 탄주에서는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기왓장과 그릇들이 날아서 깨지고 휘장이 찢어지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 지경에 이르자 아무리 음악을 좋아하는 평공도 혼비백산하여 숨지 않을 수 없었고, 연회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진나라는 삼 년이나 가뭄이 들어 백성들은 무수히 굶어죽었고, 평공도 불치병에 걸려 무진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한다.
출전
예기(禮記) 악기편(樂記篇), 한비자(韓非子) 십과편(十過篇)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亡國之聲(망국지성) [출전] 한비자(韓非子) |
靡靡之樂(미미지악) | 亡國(망국)의 음악. 중국 殷(은)나라의 최후 임금인 紂王(주왕)이 師延(사연)에게 시켜서 만든 음악. 망한 나라의 음악. [출전] 淮南子(회남자). |
濮上之音(복상지음) 음란한 노래. 중국 衛(위)나라 靈公(영공)이 晋(진)나라에 가는 중 濮水(복수) 근처에서 이 곡을 들었는데 이것을 平公(평공) 앞에서 연주하게 했더니 師曠(사광)이 亡國(망국) 殷(은)나라의 음악이라 하여 中止(중지)시켰다는 옛일. [출전] 禮記(예기) |
北里之舞(북리지무) 북리는 북비. 음란한 음악. 北鄙之音(북비지음) |
桑間濮上(상간복상) 淫亂(음란)한 음악. 濮水(복수) 가에 있는 뽕나무 숲 사이에서 유행하였으므로 음란한 음악의 대명사가 됨. |
鄭衛桑間(정위상간) | 난세의 음악. 본래는 춘추시대 두 나라의 이름인데 그 나라 노래 소리가 음란하였으므로 인심을 현혹케 하는 음란한 음악을 정위의 소리라고 함. 鄭衛之音(정위지음). |
鄭音(정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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苛政猛於虎 (가정맹어호, kēzhèngměngyúhǔ)
苛政猛於虎(가정맹어호)
苛政猛於虎(kēzhèng měng yú hǔ)
苛 가혹할 가 | 政 정사 정 | 猛 사나울 맹 | 於 어조사 어 | 虎 호랑이 호 |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뜻.
《예기(禮記)》의 '단궁하편(檀弓下篇)'에 나오는 “가정맹어호야(苛政猛於虎也)”에서 유래되었다.
가정이란 혹독한 정치를 말하고, 이로 인하여 백성들에게 미치는 해는 백수(百獸)의 왕이라 할 만큼 사납고 무서운 범의 해(害)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 기슭을 지나고 있는데, 한 부인이 무덥 앞에서 울며 슬퍼하고 있었다. 공자는 제자인 자로에게 그 까닭을 묻게 하였다. 그 부인은 대답하길 오래전에 시아버님이 호랑이게 죽음을 당하였고, 저의 남편 또한 호랑이에게 변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의 아들마저 호랑이게 목숨을 잃게 되었답니다. 라고 하였다.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말에 그 부인은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無苛政]라고 짧게 대답하였다. 자로의 말을 듣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잘 알아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다[苛政猛於虎也]"라고 하였다.
춘추 말엽 노(魯)나라의 대부 계손자(系孫子)의 폭정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은 차라리 호랑이에게 물려죽는 쪽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苛政이란 번거롭고 잔혹한 정치를 뜻한다. 政을 徵(징)의 차용으로 보아 번거롭고 무서운 세금과 노역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苛政猛於虎(kēzhèng měng yú hǔ)
苛 가혹할 가 | 政 정사 정 | 猛 사나울 맹 | 於 어조사 어 | 虎 호랑이 호 |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뜻.
《예기(禮記)》의 '단궁하편(檀弓下篇)'에 나오는 “가정맹어호야(苛政猛於虎也)”에서 유래되었다.
가정이란 혹독한 정치를 말하고, 이로 인하여 백성들에게 미치는 해는 백수(百獸)의 왕이라 할 만큼 사납고 무서운 범의 해(害)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 기슭을 지나고 있는데, 한 부인이 무덥 앞에서 울며 슬퍼하고 있었다. 공자는 제자인 자로에게 그 까닭을 묻게 하였다. 그 부인은 대답하길 오래전에 시아버님이 호랑이게 죽음을 당하였고, 저의 남편 또한 호랑이에게 변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의 아들마저 호랑이게 목숨을 잃게 되었답니다. 라고 하였다.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말에 그 부인은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無苛政]라고 짧게 대답하였다. 자로의 말을 듣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잘 알아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다[苛政猛於虎也]"라고 하였다.
춘추 말엽 노(魯)나라의 대부 계손자(系孫子)의 폭정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은 차라리 호랑이에게 물려죽는 쪽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苛政이란 번거롭고 잔혹한 정치를 뜻한다. 政을 徵(징)의 차용으로 보아 번거롭고 무서운 세금과 노역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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