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石牢約 (금석뇌약)

金石牢約(금석뇌약)

金 쇠 금, 성씨 김 | 石 돌 석 | 牢 우리 뇌(뢰) | 約 맺을 약, 부절 요, 기러기발 적 |

금과 돌같은 굳은 언약(言約)이라는 뜻으로, 서로 언약(言約)함이 매우 굳음을 비유(比喩ㆍ譬喩)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金石牢約(금석뇌약) | 金石盟約(금석맹약) | 金石相約(금석상약) | 金石之約(금석지약) |

克己復禮 (극기복례)

克己復禮(극기복례)

사욕을 누르고 예를 쫓도록 한다

「논어」의 「顔淵篇(안연편)」을 보면 이런 대목이 실려 있다. 어느 날 공자의 수제자인 안연이 仁(인)에 대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기를 극복하여 禮(예)를 행함이 仁이다. 단 하루 스스로 이겨서 예를 행하면 천하가 仁으로 돌아올 것이다. 인을 실천하는 것은 자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지 남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克己復禮爲人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人由己 而由人乎哉․극기복례위인 일일극기복례 천하귀인언 위인유기 이유인호재)』

안연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극기복례할 수 있는 細目(세목)으로는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공자의 대답은 이랬다.
『禮가 아니면 보지도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도 말라』

이런 가르침을 받고 안연은 공자에게 말했다.
『제가 비록 불민하오나 반드시 이 말씀을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자의 중심사상은 仁이고 인과 禮의 관계를 가르친 대목인데 논어 가운데서도 白眉(백미)의 하나로 꼽힌다. 克己는 도덕생활의 기본이다. 私慾(사욕) 私心(사심)에서 벗어나 이를 이기는게 극기다. 禮는 사욕과 사심을 억제하는 규율이며 극기가 있어야 예의 실천이 가능하다는 공자의 가르침은 지금도 백번 옳다.

金科玉條 (금과옥조)

金科玉條(금과옥조)

금이나 옥같이 귀중한 법칙이나 규정

根固枝榮 (근고지영)

根固枝榮(근고지영)

根 뿌리 근 | 固 굳을 고 | 枝 가지 지, 육손이 기 | 榮 영화 영, 꽃 영 |

뿌리가 튼튼해야 가지가 무성(茂盛)하다는 뜻을 나타냄

橘化爲枳 (귤화위지, júhuàwéizhǐ)

橘化爲枳(귤화위지)

橘化为枳(júhuàwéizhǐ)

橘 귤 귤 | 化 될 화,잘못 와 | 爲 하 위,할 위 | 枳 탱자 지,탱자 기 |


강남(江南)의 귤을 강북(江北)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사람도 환경(環境)에 따라 기질(氣質)이 변한다는 말


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강남에 심은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로 되듯이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비유한 고사이다.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안영(晏嬰:晏子는 경칭)은 중국 역사상 드물게 보는 명 재상(宰相)이다. 세 명의 왕(靈公·莊公·景公) 밑에서 재상을 지냈지만 절검(節儉)과 역행(力行)으로 일관하였다. 그는 재상이 된 뒤에도 밥상에는 고기 반찬을 올리지 않았고 아내에게는 비단옷을 입히지 않았고, 조정에 들어가면 임금께서 묻는 말에 대답하되 묻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았으며, 스스로의 품행을 조심하였다. 또한 유창(流暢)한 달변(達辯)과 임기응변(臨機應變)으로도 유명하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해, 초(楚)나라의 영왕(靈王)이 그를 초청하였다. 초(楚)나라 영왕은 인사말을 끝내기가 바쁘게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소? 하필 경(卿)과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낸 이유가 뭐요?" 안영의 키가 작은 것을 비웃는 말이었다. 초나라 왕은 당시 제나라를 우습게 보았기 때문에 이런 심한 농담을 함부로 해댔다. 안영은 서슴지 않고 태연히 대답하였다. "그 까닭은 이러하옵니다. 우리 나라에선 사신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에 맞게 사람을 골라서 보내는 관례가 있습니다. 즉,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보내고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보내는데, 신(臣)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초나라로 오게 된 것이옵니다."

안영의 능수능란(能手能爛)한 말솜씨에 기세가 꺾인 영왕은 은근히 부아가 끓어올랐는데, 마침 그 앞으로 포리(捕吏)가 제나라 사람인 죄인을 끌고 가자 영왕은 안영에게 들으라고 큰소리로 죄인의 죄명을 밝힌 다음, "제나라 사람은 도둑질을 잘하는군."

안영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가 듣기로는 귤이 회남(淮南)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淮北)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고 들었습니다[嬰聞之 橘生淮南則爲橘 生于淮北爲枳(영문지 귤생회남즉위귤 생우회북위지)]. 잎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과실의 맛은 다릅니다[葉徒相似 其實味不同(엽도상사 기실미부동)]. 그러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물과 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所以然者何 水土異也(소이연자하 수토이야)]. 지금 백성들 중 제나라에서 나고 성장한 자는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나라로 들어오면 도둑질을 합니다. 초나라의 물과 땅이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잘하게 하는 것입니다."

왕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성인(聖人)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고 하오. 과인(寡人)이 오히려 부끄럽군요." 제나라 출신의 죄수를 안영에게 보여 줌으로써 안영의 명성을 눌러 보려던 초왕의 계획은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참조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南橘北枳(남귤북지) | 江南橘化爲枳(강남귤화위지) |


晏子春秋(안자춘추) : 卷六 內篇雜下第六 |

歸馬放牛 (귀마방우)

歸馬放牛(귀마방우)

歸 돌아갈 귀, 돌려 보낼 귀 | 馬 말 마 | 放 놓을 방 | 牛 소 우 |

'주(周)나라 무왕이 은(殷)나라를 정벌(征伐)한 뒤, 전쟁(戰爭)에 쓴 마소를 놓아주었다'는 옛일에서 온 말로, 다시는 전쟁(戰爭)을 하지 않음이라는 말


중국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은 목야전투(牧野戰鬪)에서 주왕(紂王)의 대군을 쳐부수어 은(殷)나라를 멸망시켰다. 은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온 무왕이 전쟁에 사용한 말과 소를 놓아 주었다는 고사(故事)에서 유래하였다.

《상서(尙書)》 무성편(武成篇)의 '군대를 줄이고 문화를 발전시키며 말은 화산의 남쪽으로 돌려 보내고 소는 도림의 들에 풀어놓아 준다[偃武修文 歸馬于華山之陽 放牛于桃林之野]'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전쟁중에 쓴 말과 소를 산과 들판으로 놓아 보내어 수레나 쟁기를 끌게 하는 것으로 전쟁이 끝나고 태평한 세상을 말한다.


출전

상서(尙書) 무성편(武成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