路遙知馬力日久見人心 (노요지마력일구견인심)

路遙知馬力,日久見人心(노요지마력 일구견인심)

路 길 로, 길 노, 울짱 락, 울짱 낙 | 遙 멀 요 | 知 알 지 | 馬 말 마 | 力 힘 력, 힘 역 | 日 날 일 | 久 오랠 구 | 見 볼 견, 뵈올 현 | 人 사람 인 | 心 마음 심 |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세월이 흘러야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은 같이 살아 보아야 알고, 말은 타 보아야 안다.

A Long Road Tests a Horse’s Strength


출전

명심보감(明心寶鑑) 교우편(交友篇)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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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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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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弄瓦之慶 (농와지경)

弄瓦之慶(농와지경)

딸을 낳은 경사.

勞心焦思 (노심초사)

勞心焦思(노심초사)

마음을 졸이며 생각에 골몰한다. 근심걱정이 많다

老生之夢 (노생지몽)

老生之夢(노생지몽)

인생은 한 바탕의 꿈과 같이 허무함.

鹿死誰手 (녹사수수)

鹿死誰手(녹사수수)

鹿 사슴 녹(록) | 死 죽을 사 | 誰 누구 수 | 手 손 수 |

사슴이 누구의 손에 죽는가라는 뜻으로, 승패(勝敗)를 결정(決定)하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 말


진서(晉書) 석륵재기하(石勒載記下)에 나오는 이야기다.

서진(西晉)말기, 중국 5호16국(五胡十六國)의 하나인 후조(後趙)의 제1대 황제 석륵(石勒:재위 319∼333)은 재간이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에 대하여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석륵은 외국의 사신들을 연회에 초대하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자, 석륵은 신하인 서광(徐光)에게 말했다.

"그대가 보기에 나는 이전의 어느 제왕(帝王)과 비교될 것 같소?"

서광은 공손하게 대답하였다.

"폐하의 지모(智謀)와 무용(武勇)은 모두 한(漢)나라 고조(高祖)인 유방(劉邦:재위 BC 202∼BC 195)을 능가합니다."

석륵은 이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그대의 말은 너무 지나치오. 내가 만약 한나라 고조를 만났더라면, 나는 기꺼이 그의 부하가 되어, 그의 지휘를 받으며 한신이나 팽월 같은 장군들과 실력을 겨루었을 것이오. 만약 한나라의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를 만났더라면, 나는 그와 함께 중원(中原)에서 함께 말을 달리며 재간을 겨루어, 사슴이 누구의 손에 죽는지를 알지 못하였을 것이오[未知鹿死誰手]."

양쪽의 실력이 비슷해 누가 이길지 모를 정도로 미리 승부를 짐작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지위나 정권을 사슴에 비유하였는데, 천하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라는 뜻에서 제위의 다툼을 비유하는 중원축록(中原逐鹿)과 비슷한 말이다.


출전

진서(晉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角逐(각축) | 中原逐鹿(중원축록) | 逐鹿(축록) |



路逢狹處難回避 (노봉협처난회피)

路逢狹處難回避(노봉협처난회피)

길 좁은 곳에서 원수를 만나면 피하기 어렵다는 뜻.

景行錄 曰, 恩義 廣施。人生何處不相逢。讐怨 莫結。路逢狹處 難回避。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라. 인생이 어느 곳에서든지 서로 만나지 않으랴? 원수와 원한을 맺지 말라. 길 좁은 곳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렵다"라고 경행록에 나와있다.


관련 속담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


경행록, 명심보감, 명심보감:계선편, 원수

景行錄, 明心寶鑑, 明心寶鑑:繼善篇

怒髮衝冠 (노발충관)

怒髮衝冠(노발충관)

怒 성낼 노(로) | 髮 터럭 발 | 衝 찌를 충, 뒤얽힐 종 | 冠 갓 관 |

노한 머리털이 관을 추켜 올린다는 뜻으로, 몹시 성낸 모양(模樣)을 이르는 말


중국 전한(前漢)의 역사가인 사마 천(司馬遷:BC 145?∼BC 86?)이 저술한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오는 이야기.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이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는 귀중한 보물을 갖게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은 화씨벽을 차지하려는 욕심에 혜문왕에게 진나라의 15성(城)과 바꾸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혜문왕은 화씨벽을 주더라도 15성을 얻지 못한채 속을 것만 같고, 그렇다고 주지 않으면 진나라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 걱정되었다.

혜문왕은 인상여를 사신으로 임명하여 진나라에 보냈다. 소양왕이 큰 나라의 위세를 부리며 성을 내주지 않고 인상여가 가져간 화씨지벽을 빼앗으려 하자 인상여는 진나라 소양왕의 무례한 행동을 크게 꾸짖었는데, '매우 분노하여 머리카락이 곤두서 갓이 벗어질 정도였다[怒髮上衝冠]'고 전해진다.


송나라 흥화군(興化軍) 선유(仙遊) 사람인 임예(林豫)는 신종(神宗) 희녕(熙寧) 9년(1076) 진사(進士)가 되었다. 일찍이 통리군(通利軍)을 맡아 소식(蘇軾) 형제와 친하게 사귀었다. 소철(蘇轍)이 폄적(貶謫)되자 그가 사(詞)를 지어 보냈는데, 그 안에 “화난 머리카락이 관을 뚫었고, 비장한 마음은 돌에 비긴만 하네.[怒髮衝冠 壯心比石]”란 구절이 있었다.


출전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怒發大發(노발대발) | 怒髮上衝冠(노발상충관) | 노발충천(怒髮衝天)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