戴天之讐 (대천지수)

戴天之讐(대천지수)

이 세상에 함께 살 수 없는 원수

大志遠望 (대지원망)

大志遠望(대지원망)

大 클 대 | 志 뜻 지 | 遠 멀 원 | 望 바랄 망 |

큰 뜻을 품고 멀리 바라본다.

對症下藥 (대증하약)

對症下藥(대증하약)

對 대할 대 | 症 증세 증, 적취 징 | 下 내릴 하 | 藥 약 약, 뜨거울 삭, 간 맞출 략(약) |

증세(症勢)에 맞게 약을 써야 한다는 뜻으로, 문제(問題)의 핵심(核心)을 바로 보고 대처(對處)해야 함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화타전(華 傳)에는 동한(東漢) 말기 뛰어난 의술로 신의(神醫)라는 칭송을 받았던 화타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한번은 고을의 벼슬아치인 예심(倪尋)과 이연(李延) 두 사람 모두 고열(高熱)과 심한 두통(頭痛)을 앓게 되었다. 다른 의원들이 와서 그들을 살펴 보았으나 효과가 없자, 결국 화타가 초빙되어 왔다. 그는 두 사람의 상태를 살펴 본 후, 각각 다른 처방을 내렸다. 증상이 똑같은 두 사람에게 각기 다른 약을 먹게 하자, 많은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하며 그 이유를 물었다.

화타는 대답하였다.

"예심은 신체 외부에 병은 없으나 잘못 먹어 내부에 배탈이 났으므로 사약(瀉藥)을 먹어야 하고, 이연은 신체 내부에 병은 없으나 외부의 영향으로 감기에 걸린 것이니 발산약(發散藥)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對症下藥(There is a slave for every sore)는 증세에 맞게 약을 써야 한다는 뜻이며, 이는 곧 문제의 핵심을 바로 보고 대처해야함 을 비유한 말이다.

大材小用 (대재소용)

大材小用(대재소용)

大材小用(dàcáixiǎoyòng)

大 클 대, 큰 대, 클 태, 클 다 | 材 재목 재 | 小 작을 소 | 用 쓸 용 |

큰 재목(材木)이 작게 쓰이고 있다는 뜻으로, ①사람을 부리는 데 있어서 제 능력(能力)을 다 발휘(發揮)할 수 있는 조건(條件)이 안됨 ②역설적(逆說的)으로 큰 재목(材木)은 큰 일에 쓰여야 한다는 말 ③정부나 조직(組織)에서 사람을 쓰는 법이 잘못되었음을 가리킴

to assign talented people for trivial tasks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牛鼎烹鷄(우정팽계) 소를 삶을 수 있는 큰 가마솥에 닭을 삶는다는 뜻으로, 큰 재목(材木)을 알맞은 곳에 쓰지 못하고 소소한 일을 맡기는 경우(境遇)를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

代人捉刀 (대인착도)

代人捉刀(대인착도)

代人捉刀(dàirénzhuōdāo)

代 대신할 대 | 人 사람 인 | 捉 잡을 착 | 刀 칼 도 |

남을 대신(代身)하여 일을 함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편의 이야기다.

위(魏)나라 무제(武帝) 때, 흉노(匈奴)의 사신이 위 무제를 만나러 왔다. 위 무제는 자신의 키가 작고 풍채가 초라하여 사신들에게 위풍을 보이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에 위무제는 대신(大臣) 최계각(崔季珪)으로 하여금 흉노의 사신을 접견하게 하고, 자신은 칼을 잡고 시위(侍衛)처럼 서있었다[帝自捉刀立牀頭].

최계각은 본시 큰 몸집에 짙은 눈썹과 큰 눈으로 풍채가 당당하고 위엄있었으며, 우렁찬 목소리에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흉노의 접견을 마친 후, 위 무제는 몰래 사람을 보내어 흉노의 사신이 위 무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 보게 하였다.

흉노 사신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위왕의 고상한 덕은 대단했습니다만, 칼을 들고 옆자리에 서있던 그 사람은 위풍이 당당하여 정말 영웅같았습니다.

위 무제는 이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흉노의 사신을 죽여 버렸다.

위 무제는 다름아닌 조조(曹操)인데, 그는 체구가 작았다고 한다. 代人捉刀란 사람을 대신하여 일을 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편(容止篇)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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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義名分 (대의명분)

大義名分(대의명분)

지켜야 할 큰 의리와 직분.

大義滅親 (대의멸친)

大義滅親(대의멸친)

국가나 사회의 대의를 위해서는 친족도 멸한다는 말로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족에 대한 정같은 것을 버린다는 뜻이다.


때는 춘추시대. 衛(위)나라 公子(공자)인 주우가 임금인 桓公(환공)을 죽이고 스스로 임금자리에 올랐다.

환공과 주우는 이복형제간인데 둘 다 후궁의 소생이었다. 위나라 대부 석작은 충의지사로 이름난 사람으로 일찍이 주우에게 역심이 있음을 알고 아들인 石厚(석후)가 주우와 가까이 지내지 못하도록 했으나 듣지 않았다. 석작은 환공이 왕위에 오르자 은퇴했지만 그가 우려했던 주우의 반역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반역이 성공하자 석후는 아버지인 석작에게 어떻게 하면 주우의 왕위를 굳힐 수 있겠는지를 물었다.

석작은 周(주)나라 天子(천자)의 허락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허락을 받기 위해서는 주나라 왕실과 친한 진공을 통해서 청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주우와 석후가 진나라로 떠나자 석작은 陳公(진공)에게 밀사를 보내어 이렇게 말하도록 했다.

『주군을 시해한 이 두사람을 잡아 처치해 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두사람은 위나라 책임자의 입회를 기다려 사형에 처해졌다. 석작은 君臣(군신)의 대의를 이룩하기 위해서 육친의 사사로운 정을 버린 것이다.

대의멸친과 비슷한 뜻을 가진 한자성어로 滅私奉公(멸사봉공)과 先公後私(선공후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