作法自斃(작법자폐)
作 지을 작 | 法 법 법 | 自 스스로 자 | 斃 죽을 폐 |
'자기가 만든 법에 자신이 죽다'라는 뜻으로, 제가 놓은 덫에 제가 먼저 걸려든다는 속담과 비슷한 말이다. 자기가 한 일로 인하여 자신이 고난을 받는 경우를 비유한다. 중국 전국시대에 강력한 법치주의를 실현한 상앙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위법자폐(爲法自弊)라고도 한다.
전국시대 秦(진)나라 孝公(효공)은 진나라가 中原(중원)의 여러 나라로부터 오랑캐로 대우받을 정도로 전락한 것을 한탄했다. 춘추시대 때는 목공이 春秋五覇(춘추오패)의 한사람으로 불릴 정도로 진의 국력이 강성하지 않았던가. 효공은 오늘날의 이 치욕을 씻고 목공의 전성시대를 재현해보겠다는 욕망에 불타고 있었다. 효공은 그런 자신의 욕망을 이루어낼 만한 인물로 원래 위(衛)나라 사람이었던 상앙을 찍고 그를 재상 자리에 앉혔다.
상앙은 진나라의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먼저 낡은 법률과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2차례의 변법(變法)을 실행하였다.
법률 제도개혁론은 일부 중신들의 반대에 부닥쳤으나 효공의 강력한 지원으로 상앙의 변법은 탄생할 수 있었다. 상앙은 효공의 지지를 받아 귀족의 세습 특권을 폐지하고 군공(軍功)의 크고 작음에 따라 작위를 수여하는 제도를 시행하였고, 연좌법을 시행하였으며, 井田制(정전제)폐지, 信賞必罰(신상필벌) 연좌제, 토지매매 허가제, 도량형 통일 등의 정책을 시행하였는데 모두 진나라의 부국강병책에 부합되는 것이었다.
새로운 법령이 시행된 지 1년만에 백성들 사이에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자들이 많았다. 이때 태자가 법을 어기는 행위를 하였다. 상앙은 "법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위에서 법을 어기기 때문이다"하고는 태자를 처벌하려 하였으나, 태자는 효공의 뒤를 이을 신분이었으므로 차마 형벌을 가할 수는 없었다. 그 대신 태자를 보좌한 공자건(公子虔)을 처형하고 그의 스승인 공손가(公孫賈)의 얼굴에 먹물을 들이는 형벌을 가하였다. 이로부터 백성들이 두려워하여 모두 새 법령을 따르게 되었다.
상앙의 부국강병책에 힘입어 진나라는 10년도 채 못되어 경제적 번영을 이루고 강대국의 기초를 닦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세습 귀족들의 이익을 침해하여 원성을 많이 사게 되었다.
그러나 효공이 죽고 혜왕(惠王)이 즉위하면서 상앙은 바람 앞의 촛불신세가 된다. 반대파는 상앙이 역적 모의를 한다고 음해했고 혜왕도 태자로 있을 때부터 상앙에 대해 유감이 있었기 때문에 즉각 체포령이 내려졌다.
상앙은 숨어다니는 도망길에 어느날 하룻밤 묵고 가려고 주막을 찾아들었다. 그러나 주막 주인은 이렇게 말하면서 재워주기를 거절했다.
"손님의 신분을 확인하지 않고는 재워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를 어겼다가는 큰 벌을 받게 되지요. 상앙의 법률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상앙은 탄식하고는 중얼거렸다. "내가 만든 법 때문에 내가 죽는구나(作法自斃)."
이 고사는 《사기(史記)》의 상군열전(商君列傳)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작법자폐는 자기가 한 일로 인하여 자기가 고난을 받는 경우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자승자박(自繩自縛), 자업자득(自業自得)과 비슷한 뜻이며, '제가 놓은 덫에 제가 먼저 걸려든다'라는 속담과도 비슷하다.
[출전]
사기(史記) 상군열전(商君列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爲法自弊(위법자폐) | 作法自斃(작법자폐) | 自繩自縛(자승자박) | 자업자득(自業自得)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제가 놓은 덫에 치이다.
제가 놓은 덫에 제가 먼저 걸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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